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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2012년을 어떻게 준비할까

 

백승헌 白承憲  ‘희망과 대안’ 공동운영위원장, 변호사. 민변 회장, 총선시민연대 대변인 역임.

 

심상정 沈相奵  진보신당 전 공동대표. 제17대 국회의원 역임, 2010년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

 

이인영 李仁榮 민주당 최고위원. 제17대 국회의원, 2010년 서울시당 지방선거 기획단장 역임.

 

이남주 李南周 성공회대 교수, 정치학. 세교연구소 소장,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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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균

 

이남주 (사회)62 지방선거를 치른 이후, 정당들의 체제정비가 마무리되고 이제 본격적으로 2012년을 향한 경주가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진보개혁세력은 이명박정부의 출범 이후 김대중-노무현정부 10년과는 사뭇 다른 정치환경에 직면했고, 여기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두고 적지않은 혼란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그 대응방안으로 연합정치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었고, 일정한 성과를 거뒀습니다. 지금도 연합정치는 2012년이라는 권력교체기를 어떻게 준비할지에 대한 논의에서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이번 좌담은 연합정치를 주제로 현정국의 성격, 2012년 진보개혁세력의 과제, 연합정치의 실현방안, 연합정치와 진보정치의 관계 등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참석한 세분은 지난 지방선거를 각각 다른 입장에서 치르셨지요. 심상정 전 대표는 지난 17대 국회의원을 하시고 진보신당 대표를 맡으셨다가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하셨습니다. 그후 긴 모색의 시기에 들어서신 것 같은데, 지금 시점의 심정도 듣고 싶어요. 백승헌 변호사는 ‘희망과 대안’에서 활동하시면서 연합정치 협상을 진행해오셨고, 이인영 전 의원은 얼마전 민주당 최고위원이 되셨죠. 인사말 겸해서 지난 지방선거를 겪으면서 어떤 생각을 갖게 되셨는지 들었으면 합니다. 이인영 최고위원부터 말씀해주시죠.

 

 

6월 지방선거가 한국정치에 말해주는 바

 

李仁榮 민주당 최고위원. 제17대 국회의원, 2010년 서울시당 지방선거 기획단장 역임.

이인영李仁榮

이인영 6·2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요인을 저는 세가지로 정리했어요. 우선 진보개혁세력의 요구가 대중의 요구와 맞아떨어졌죠. 친환경 무상급식이나 일자리·교육·복지를 중심으로 한 사람중심의 사회를 내세운 게 주효했다고 봅니다. 또 하나는 민주당과 진보정당, 시민단체의 연대가 힘을 받으면서 대중에게 승리에 대한 확신을 준 것이 정치전술로서도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는 후보들이 괜찮았다고 생각해요. 지방의원의 절반 가까이가 40대인데, 세대교체 측면으로도 분석할 수 있겠지만 교육이나 복지, 일자리, 사람중심의 사회에 대한 이들의 생각이 이전 세대와 크게 다르거든요. 민주당뿐 아니라 진보정당은 더 그러한데, 이 세가지가 대중의 이해와 요구에 부합했던 거죠. 저는 이것을 더 강화하면 2012년에는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민주당에서는 7·28 재보선을 하면서 그 반대로 간 경향이 있었죠. 어쨌든 지방선거 결과가 보여준 가능성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생긴 것 같아요.

그런데 민주당 안에서도 우리가 잘해서라기보다는 현정권이 워낙 잘못한 덕이라는 생각이 많아요. 하지만 저는 민주당이 진보개혁세력의 요구에 방향타를 맞추고 독식이 아닌 연대와 단결로 나아가려던 시도가 없었다면 민주노동당도 구청장이나 광역의원 선거에서 후보단일화에 동의해주지 않았을 거고, 진보개혁적 요구를 내걸지 못했다면 진보정당이나 시민단체의 후보에게 표가 더 갔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단지 현정부에 대한 거부라는 측면뿐 아니라, 새로운 사회에 대한 대중의 요구라는 면도 봐야 하고 민주당이 나름대로 그러한 방향으로 변화해간 측면도 적극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명박정부에 대한 심판의 정서가 크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복지 관련 이슈들이 등장해 사회적으로 공인되는 시점이고, 크게는 2012년 이후를 바라보는 정치적 전환과 재편이 시작되는 과정이죠. 그래서 지금까지는 연대나 후보단일화 같은 연합정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면 앞으로 그걸 뛰어넘어 거대한 재편으로까지 밀고갈 수 있느냐가 매우 중요한 논의거리로 제시된다고 하겠습니다.

 

李南周 성공회대 교수, 정치학. 세교연구소 소장,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위원.

이남주李南周

이남주 민주당이 반사이익을 누릴 뿐 아니라 더 큰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얘기인데, 혹시 본인의 최고위원 당선이 그런 가능성을 좀더 높여준다고 생각하세요?

 

이인영 저희 당원이나 대의원을 만나보면 실제로 변화에 대한 요구가 꽤 크더라고요. ‘빅3’로 나타나는 질서, 그들의 영향력하에 있는 지역위원장, 거기에 일정하게 연관되어 있는 당원이나 대의원 때문에 확 드러나지는 못하지만, 선거를 여러번 치러보면서 변화에 대한 요구가 크다는 것을 체감했어요. 민주당이 확고하게 진보의 길로 가야 한다, 진보정당이나 시민단체와 소통하고 그 과정에서 신뢰가 회복되면 단결과 통합을 거쳐 2012년에 승리하는 길을 열어야 한다는 데 일정하게 동의한다고 보여요. 이제 분열된 상태로 이길 수 없고 독식하려고 들면 안된다는 것은 알게 된 것 같고요. 그리고 특정 지역에 기반을 둔 정치인보다 전국적인 가능성을 지닌 정치인을 선호하는 경향도 생겼어요. 전략적 투표가 필요하다는 거죠. 물론 젊은 사람이 치고나오면 좋겠는데 마땅한 사람이 없으니까 중간 정도에서 저를 선택한 것 아닐까요.(웃음) 이렇게 이겨야 된다는 생각이 투표심리로까지 이어진다면, 왜 이기고 싶은 걸까 생각해봤어요. 한마디로, 피곤하고 고단한 거예요. 지금 정권과 함께 있는 게 피곤하고 자기 삶이 고단하니까 바꿔야 된다는 거죠. 그런 정권교체 열망이 일단은 600만표를 되찾아오겠다며 대권주자의 이미지를 전략적으로 부각시킨 손학규 대표에게 모인 거죠. 조금 진보적이고 젊은 세대는 그에 대한 보완으로서 저를 선택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남주 심상정 선생님은 그동안 시련도 많으셨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고민도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沈相奵 진보신당 전 공동대표. 제17대 국회의원 역임, 2010년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

심상정沈相奵

심상정 제가 소속된 진보신당은 지난 지방선거가 당의 현실로 보나 진보정치 미래로 보나 매우 중요한 계기였어요. 당의 잠재력으로 볼 때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선거전략 실패로 아쉬운 결과에 그쳤습니다. 저도 매우 안타깝고 국민에게 죄송스러웠죠. 미래의 전망을 선취하지 못하는 진보는 단순 저항세력으로 소멸되었던 역사의 교훈을 뼛속 깊이 새기면서 성찰하고 있습니다.

정치에서 시대정신이라는 것은 선거민심으로 표출되잖아요? 지난 지방선거에서 제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민심의 진보화입니다. 많은 분들이 지난 지방선거를 이명박정권에 대한 심판, 그리고 야권연대의 승리라고 이야기하지만, 저는 그 이상의 시대정신의 변화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난 선거에서 국민은 수십년 동안 한국사회를 주도해온 성장개발 담론 대신에 복지·진보를 요구했습니다. 특히 다섯명의 진보교육감이 탄생됐는데, 이는 복지와 진보로 대한민국의 새 판을 짜라는 촉구라고 봅니다. 아까 이인영 최고위원께서 정권교체 얘기를 하셨는데, 저는 이제 우리 국민이 단순한 정권교체를 넘어 시대교체의 의지를 강력하게 주문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남주 두분 말씀이 같은 부분도 있지만, 통합을 강조하는 것과 수권적 진보정당의 필요성 혹은 시대정신의 전환을 강조하는 것에서 차이가 보이는군요.

 

이인영 저도 민심이 진보했다는 것, 대중의 요구가 진보했다는 점에 동의해요. 그러니까 제가 자꾸 민주당이 진보 쪽으로 가야 한다고 얘기하는 거죠. 그저 제 생각이 옳으니 당이 급진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심상정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정치연합이나 진보개혁세력의 재편 과제가 크게 부각되고 있는데요, 이런 얘기들이 당략적인 정치공학을 넘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민심에 의해 강력하게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국민의 뜻을 좀더 헤아려보면 새로운 시대정신을 받아안을 수 있는 책임있는 진보정치를 기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삶을 제대로 책임질 수 있는 대안정치세력을 재편해가는 과정에서 야당들 간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경쟁하라는 게 지금 연합정치의 의미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남주 백승헌 변호사님, 이른바 상층연합 사업을 많이 하시면서 느끼신 점이 있다면요?(웃음)

 

백승헌 제가 오늘 여기 초청받은 이유가 6·2 지방선거에서 시민사회의 여러가지 노력에 일조한 면 때문이겠지만, 그보다는 유권자의 한사람으로서 할 이야기가 있다는 생각에서 초청에 응했습니다.

지난 지방선거가 시민사회 입장에서도 첫 실험인 것은 반대나 비판 위주의 유권자운동에서 나아가 정치권의 흐름에 관여했던 것인데, 이는 정치권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중의 요구에 의해서 시작된 겁니다. 그 내용은 단기적으로는 현정부의 일방독주 또는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반대로 집약되는 반MB를 선거에서 어떻게 표출할 것인가이고, 중장기적으로는 우리 사회에서 좋은 정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였다고 봅니다. 비판이나 반대만 해서 개선되는 게 아니라 대중의 요구를 실현할 통로를 만들어낸다는 측면에서 좋은 정치의 가능성이 모색되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서 지난 지방선거에서 야권과 시민사회의 대화가 정치공학적이라거나, 단지 선거 승리만을 목표로 한 내용 없는 반MB에 그쳤다는 일각의 비판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아쉽게도 포괄적 연합까지는 되지 않았습니다만 상당부분 유권자의 의사가 반영되었고, 포괄적 협상이 실패했지만 결과에 있어서 대중의 욕구가 반영된 점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6월 선거의 평가를 넘어, 현상태에서 좋은 정치의 요구는 2012년과 그후를 바라보는 기획으로 나와야 할 겁니다. 그런데 그것이 안정적으로 진행될 기반이 마련됐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단순히 연합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중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정치담론이나 그것을 실행할 정치권의 수준이 두루 올라가야 하는데, 진보개혁세력은 아직 그런 점에서 매우 부족하지요. 단적으로 6·2 지방선거 이후 7·28 재보선의 실패가 규모는 작지만 뼈아프게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가지 말씀드릴 것은 연합정치 실현이라는 요구와 진보정치 강화라는 요구가 모순되지 않고 또 모순되지 않아야 한다고 봅니다. 좋은 정치를 실현하려면 우리 사회 대중의 요구와 실제 정치적 힘의 편제가 일치해야지요. 연합정치를 통해서 진보성이 강화되고, 진보성을 표방하는 세력이 최소한 자기 지지도에 걸맞은 대표성을 확보하는 것이 연합정치의 요건이자 목표입니다.

 

 

목표와 가치의 공감이 연대의 전제

 

이남주 정치에 불신감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 좋은 정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진보정치도 강화될 수 있고 그것이 현실화되도록 연합정치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데 대체로 의견이 모아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 좌담에 참가한 세분은 주변에서 그런 역할을 하리라는 기대를 많이 받고 계시죠. 그런데 최근에 이 주제로 토론이 몇번 있었잖아요. 연합정치에 대한 방안이 7,8개나 제출된 상태인데, 논의과정에서는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이렇게 각자 방법론만 펼치다보면 수없이 갈라질 수도 있고 그 계산이 무척 복잡할 수밖에 없겠죠. 그러니 좀더 원론적인 문제를 얘기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왜 연합정치가 필요한지, 연합정치의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 공감대를 넓혀야 발전적인 논의로 건너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창비』에서는 작년부터 이에 대해 많이 다뤄왔어요. 연합정치란 우리 사회에서 전략적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분단체제가 오래 지속되면서 수구이념이 과잉대표되는 상황이 구조화되었고, 그것이 극복되지 않는 한 좋은 정치라든가 정책수준의 논의가 어려웠던 거죠. 이명박정부 출범과 그후가 그런 구조적 문제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연합정치의 목표라는 문제에 대해 백변호사님이 말씀해주시죠.

 

白承憲 ‘희망과 대안’ 공동운영위원장, 변호사. 민변 회장, 총선시민연대 대변인 역임.

백승헌白承憲

백승헌 지난 지방선거에서 시민사회세력이 정치연합의 원칙으로 세가지를 제시했습니다. 포괄적 연합, 가치와 정책에 근거한 연합, 유권자가 참여하는 연합입니다. 포괄적 연합은, 우리 사회의 정치구도가 민주주의의 이상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는데다 87년에 형식적 민주화를 이루어냈다고는 하지만 그후 역행(逆行)을 막아내지 못했다는 반성에서 출발합니다. 지금의 정치적 대표구조가 수구와 보수의 일방통행이 되어버린 반면, 진보개혁세력은 분열에 의해서든 지난 10년간의 피로감 탓이든 위축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진보와 개혁을 내세우는 정치세력들이 포괄적 연합을 통해 권력 획득이라는 정당으로서의 목표뿐 아니라 진보적 가치나 정책을 안정적으로 실현해가는 토대를 마련해야 합니다. 둘째는 가치와 정책에 근거한 연합이 성립되어야 연합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실현할 것이라고 국민에게 제시할 수 있다는 겁니다. 연합의 기술적 성격, 즉 선거공학적 측면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것이 전면에 드러난다면 결코 지지를 받지 못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정치 염증이 만연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유권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즉 정치에서의 자기결정력에 대한 확신이 선거나 일상적인 정치활동에서 확인되어야 합니다. 최근 투표율이 높아졌다고들 하는데요, 그동안 시민사회나 선관위에서 벌인 투표참여운동은 일종의 당위론이었습니다. 당신의 권리니까 행사해야 한다거나, 부패하고 무능한 정치인을 물러나게 해야 한다는 수준이었죠. 이번에는 더 나아가 당신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당신이 믿는 가치가 현실에 반영되기 위해서는 선거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식이 폭넓게 형성돼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이 연합을 이루는 과정이나 지방정부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나타나야 연합정치의 원칙과 내용이 확보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남주 저는 가치연합이라는 말이 좀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왜냐하면 가치까지 똑같다면 연합이 아니라 아예 ‘같이’하면 되는 거잖아요.(웃음) 그리고 특정한 가치를 강요하는 듯한 느낌도 있어서요. 물론 수구세력이 과잉대표되는 구도가 상당히 지속됐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반대를 넘어서 포지티브한 내용으로 공동의 사회비전이나 정책을 제시하는 차원이라면 가치연합에 동의할 수 있는데, 이를 꼭 가치연합이라고 지칭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백승헌 가치의 차이가 크지 않은데 왜 이렇게 여러 갈래로 나뉘어 있는가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는데, 거꾸로 가치가 달라서 정당도 따로 만들었는데 왜 연합해야 하느냐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융합될 수 없을 정도의 차이라면 연합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고, 별로 구별되지 않는 정도의 차이라면 굳이 따로 할 이유가 없겠죠. 하지만 오늘날 우리 정치에서 야권이 분립되어 있다면 찬반을 떠나 그럴 만한 역사적·현실적 이유가 존재하며 그것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 연합정치의 의의는, 서로 대의에 대해서는 폭넓게 동의하지만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는 이견이 있을 때 이를 어떻게 극복할까와 관련된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사회가 그 차이를 인정하게 하면서도 공통점을 끌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지요. 6·2 지방선거에서도 진보정당이 주축이 돼 정책연합이 이루어졌는데, 예를 들어 한미FTA의 경우가 그렇죠. 이러한 정책면에서의 접근이 없으면 연합은 선거공학에 그칠 뿐이라는 지적이 협상주체들 사이에서 상당한 공감을 이뤘던 것입니다.

포괄적 연합이 성사되지 않아서 발표되진 못했지만 정책 차원에서는 합의가 거의 이루어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정책연합이 쉽다는 말이 아니라 이렇듯 정책을 놓고 논의할 때 서로를 훨씬 잘 이해했고 차이도 극복 가능한 것으로 느꼈거든요. 저 개인적으로는 이번 정책연합 논의가 진보정당들의 정강정책이 모토 수준에서 실제적인 정책으로 만들어질 시작점이 될 수 있겠다는 희망도 품게 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책·가치연합을 지나치게 분식적(粉飾的)으로 보는 견해에 대해서도 반대합니다.

 

이남주 이 점은 심 전 대표님께서 하실 말씀이 많을 것 같은데요.

 

 

정치연합 바라보는 진보정당의 고민

 

심상정 정치연합은 정당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일상적인 방편일 수 있는데, 우리 정치현실에서 정치연합을 논의할 때 유념해야 할 몇가지 특수성이 있습니다. 우선 지금 우리는 시대교체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세기 이상 한국사회를 주도해온 경쟁과 효율, 성장담론, 그것을 뒷받침해온 제도와 씨스템으로는 더이상 지속가능할 수 없는 단계에 왔다고 봅니다. 많은 국민이 불행을 느끼고 있고, 젊은이들은 성공이 아니라 그저 루저가 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희망을 열어갈 새로운 가치와 비전, 정치의 혁신이 필요합니다. 이 점에 대한 인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게 보면 지금 다양한 정당들의 분화는 분열이라기보다 새로운 시대정신에 조응해가는 과도적 상황이라 할 수 있겠죠. 연합정치의 필요성을 반MB연대로 가두는 것이 왜 협소한지가 공유될 거라고 봅니다.

그 다음으로 지금 정치연합 공간은, 여기 이인영 최고위원도 계시지만, 제1야당인 민주당의 주도력 약화가 중요한 배경이 되고 있다는 것이죠. 민주당의 패권주의가 경계되고 비판받아야 될 이유고요. 연합정치에서 야당들간에 협력의 측면만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경쟁도 열려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이 문제는 연합정치를 가로막는 권력구조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습니다. 내각제나 결선투표제를 실시하는 나라들은 선거결과를 가지고 연합정치를 하는 반면, 우리는 승자독식구조다 보니 사전연합이 강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권력분점과 연합정치에 효과적인 제도개선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봅니다.

진보신당의 경우, 선거전략의 핵심적인 문제는 정치연합에 수세적이고 방어적으로 대응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참여정부 시절에는 집권당과 야당의 관계였기 때문에 집권세력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켰지만, 이제 같은 야당이 된 조건에서는 협력적 경쟁관계로의 전략변화가 필요하지요. 또 하나는 연합정치가 거대정당에게 유리한 것으로만 보고 소수당은 잘못하면 먹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 속에서, 민심이 진보로 향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민주당의 약화로 비롯된 연합정치의 공간을 적극적으로 해석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정세변화에 둔감하고 과거의 인식에 안주한 점은 깊이 성찰해야겠지요.

그러나 아울러 함께 고민해보았으면 하는 것 두가지를 말씀드리면, 하나는 연합정치의 필요성이 새로운 대안세력 형성이라는 국민적 요구에 의해서 뒷받침되고 있는 것인데요, 미래를 열어가는 정당간의 건강한 경쟁까지 억압한 채 이명박정권 심판이라는 당위를 강요하는 것으로 흐르면 곤란하지 않느냐는 고민이죠. 둘째는 승자독식구조 탓에 사전 정치연합이 강조되는 건데, 야권내 정치연합에서도 역시 승자독식이 관철된다면 성공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그 점에서 정당들간의 권력분점에 대한 합리적인 룰이 만들어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가치연합과 관련해서는요, 우리가 권력을 함께 만들 때 그 권력의 행사 방향에 대한 큰 틀에서의 합의는 전제되어야 할 텐데, 바로 이것을 저는 가치연합이라고 봅니다. 정치연합에는 선거연합, 정책연합, 세력연합이 있는데 가치연합은 더 큰 세력연합을 향한 실천이고,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저는 그동안의 가치연합이나 정책연합이 너무 타성화되어서 국민의 입장에서는 이를 실감할 수 없었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아까 한미FTA 이야기도 나왔는데, 굵직한 현안과 쟁점에 대해 국민이 체험할 수 있는 구체적 공동실천이 뒷받침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남주 정치연합은 다분히 현실적인 메커니즘인데 가치연합이라고 하면서 추상적이고 고상한 명분이 되어버린다면 실제로 검토해야 할 문제는 빼고 넘어갈 수 있는 측면이 있지 않을까요?

 

백승헌 정치연합이란 한마디로 종합적이고 중층적인 과정입니다. 공동의 정책을 추진하는 측면, 구체적으로 후보자를 조정하는 측면, 선거운동 과정의 협력을 어찌할지에 대한 측면, 선거 이후 공조를 모색하는 측면 등 다양한 측면이 동시에 논의되는 거지요. 연합이 포괄적일수록 이런 측면들이 한자리에서 동시적으로 해결되는 과정이 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심선생님이 말씀하신 연합정치 자체의 가치, 그것을 무엇으로 구성할지의 문제도 당연히 고민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정책을 이야기할 때 후보자 조정이라는 현실을 무시한다거나, 후보자 조정을 협의할 때 정책 논의를 하는 것은 서로 층위가 안 맞지요. 명분과 현실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 그 부분이 연합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힘을 합칠 부분과 각 정당의 독자적인 발전전략이 모순되지 않아야겠죠.

 

이남주 연합정치가 창조적 발전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은 매우 중요한 지적입니다. 제 전공이 중국정치학인데, 중국도 무수한 분열과 통합의 역사가 섞여 있지만, 정부는 보통 통일의 역사를 강조하죠. 그런데 분열기는 정쟁과 전쟁으로 어려운 시기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가치나 혁신적 사상이 나오고 그것이 다음 통일왕조의 중요한 토대가 된 경우가 많아요. 연합정치에도 정파적인 이합집산이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만, 동시에 그것을 발전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어야겠죠. 그런데 문제는 연합에 참여해야 하는 일부 주체들이 배제되고 억압될 수도 있다는 거죠. 특히 지금의 한국정치가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여러 가치를 대표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정치가 연합을 실현하면서도 그러한 다양한 스펙트럼을 대표하는 공존의 질서도 만들어야 하는 두가지 과제 사이에 딜레마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최고위원께서는 통합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계시는데, 얘기를 이어가보죠.

 

 

야권내 정당한 경쟁 위한 민주당의 역할

 

이인영 저는 가치 논쟁에 있어서 큰 단계는 넘어갔다고 생각해요. 민주당의 경우, 복지당으로 가자는 얘기가 예전 같으면 안 통했겠지만 지금은 통한 거죠. 큰 그림에서 가치의 방향은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상대적 비중이 다르고 핵심쟁점의 차이가 남아 있지만, 이 문제는 그렇게 결정적일 것 같지 않아요. 그러면 남는 것은 가치를 공유하고 있지만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있는 세력과 어떻게 동맹을 형성할까의 문제입니다. 저는 이 점에서 민주당이 양보할 수 있다,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난번에는 내려놓지 않은 부분이 많아요. 더 가지려고 한 것이죠. 그런데 공동의 승리로 가면 오히려 민주당 입장에서도 더 많이, 더 크게 이기더라고요. 혼자만 이기려고 하면 힘만 많이 드는데, 함께 승리하려고 나서면 결과적으로 더 많이 더 크게 이겨요.

 

이남주 그러니까 민주당에만 이익이 된다는 불만이 나오는 것 아닐까요?(웃음)

 

이인영 그런데 곁을 보니 함께 참여했던 민주노동당도 가령 인천 등지에서 많이 이긴 거예요. 공동의 승리인 동시에 각자가 더 크게 이기는 결과가 되었죠. 그래서 저는 민주당 내에서 안 내놓으려는 사람들에게, 내놓으면 더 많이 이긴다는 얘기를 해요. 연합공천을 하려면 대체로 30%는 내놓아야 한다고 봐요. 지난 지방선거 당시 4+4협상에서는 서울의 25개 구청장 중 6개를 양보하라는 거였잖아요. 실제로 거의 그럴 뻔했고요. 연합공천을 하겠다는 건 그만큼은 할 생각이 있다는 거예요. 저는 더 나아가서 그럴 생각이 있다면 통합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거죠. 30% 가까이 내놓겠다고 하면, 주로 수도권과 호남이겠죠. 나머지에서 내놓아봤자 별로 믿어주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니까 그 정도라면 통합까지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1991년 김대중과 이기택, 즉 신민당-민주당 통합에서는 5050까지도 했어요. 그리고 지난 지방선거 당시 서울지역 협상을 나갈 때는 제 지역구에서부터 내부적인 희생을 감수하면서 협상을 타결해놓고 나갔었죠. 물론 그런 방식이 꼭 좋은 결과를 내지는 않지만 그렇게 내놓고 시작할 의향이 있다는 겁니다.

 

이남주 그런데 이번에는 구청장도 있고 시의원도 있으니 그런 양보가 가능하다고 봤지만 과연 다음 총선에서도 가능하겠느냐, 그게 만은 분들이 민주당에 대해서 갖는 가장 큰 의문 아니겠어요?

 

이인영 저도 그래서 연합공천이 더 어렵고, 거기서 내놓을 지분 정도면 당을 통합하는 편이 오히려 쉽다고 생각하는 거죠.

 

심상정 이 최고위원은 가치 문제는 다 해결되었으니까 자리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 했는데, 글쎄요. 이 최고위원의 정체성은 인정하지만 국민의 눈에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당장 섞여도 될 만큼 민주당의 변화가 있다고 비치진 않을 것 같군요. 진보정당 하는 사람들은 근본주의자가 아니라도 향후 연합해서 얻은 권력이 어떤 방향으로 행사될 것인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개혁과 진보의 사이를 벌려놓았던 정책들에 대한 성찰과 공동의 대안 마련을 위해 국민이 공감하고 신뢰할 만한 계기가 필요합니다.

자리배분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룰이 연구될 필요가 있어요. 연합정치란 철저히 당익(黨益)을 매개로 해서 형성되는 거죠. 서로 이익이 정당하게 조정되어야 하는데 정당한 조정의 원칙이 무엇인지에 대해 합의가 필요하다고 봐요. 예를 들어 선거시기 단일화 등을 논의할 때 흔히 나오는 게 ‘단순지지율이 앞서니 큰 당 중심으로 단일화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이것은 사실 여러모로 제한이 많은 작은 정당에 ‘일방적인 양보와 굴복’를 강요하는 일종의 패권적 논리죠. 설사 지지율이 앞선다 해도 단일화에 실패할 경우에는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전략적인 당익을 따져 단일화하는 것입니다. 작은 정당의 존재가치와 전략적 이익에 대한 적극적 평가와 자리매김이 전제되어야 정치연합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연립정부 구성이 가능한 권력구조나 비례대표제 확대와 결선투표제 등 선거제도 개선에 실천한다는 대전제가 있어야 하고요. 당장의 협상과정에서는 공존의 가치를 기준으로 한 룰을 분명히해야 합니다. 민주당의 경우에는 힘이 있으니까 연합 아닌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으면 안하잖습니까. 민주당 자력으로 이길 수 있으면 단일화에 안 나오잖아요. 제가 덕양갑에서 떨어졌을 때처럼.(웃음) 그런데 왜 다른 진보정당은 거기에 응하지 않으면 그 책임을 져야 되느냐, 그런 점에서 선거연합의 룰에 대해 합리적인 인식과 합의가 필요한 거죠.

 

 

다가오는 거대한 전환기를 어떻게 맞이할까

 

이인영 연합공천을 하다보면 지분 문제를 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만, 사실 저는 그외의 생각이 더 많아요. 혼자서 안되니까 연합하자, 뭐 이렇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가 2012년을 앞두고 거대한 전환기로 들어간다고 봐요. 권력재편과 함께 토대재편도 있을 수 있다고 보거든요.

 

이남주 토대라면 정치지형의 재편을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이인영 네, 그와 함께 전반적인 정치지형이나 유권자 혹은 사회경제적 상황까지 보면 거대한 세력재편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면 그동안 민주당-진보정당-시민단체, 또는 진보-중도-개혁 같은 구도가 크게 한덩어리로 공통된 요구나 지향, 시대정신으로 묶여서 재편될 가능성도 있어요. 예를 들면 작은 진보와 큰 진보가 뭉쳐 범진보로 간다거나, 그동안 민주나 중도 혹은 개혁처럼 애매하게 이야기되던 세력도 범진보로 갈 수 있죠. 이처럼 범진보라는 영역에서 함께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생각해요. 즉 거대한 재편의 문제로서 통합을 이야기하는 거죠. 그건 새로운 질서나 가치가 창조되는 것일 수 있어요.

사실 한나라당은 대단히 광범위한 보수대연합 재편의 일차적 결과물이에요. 1997년에 정권을 놓치고 2002년에는 언론 정도가 붙었던 건데, 2007년으로 오는 과정에서는 지식인그룹이나 종교세력까지 결합해서 대폭 확대재편된 상황이에요. 물론 자유선진당 같은 분파들도 남아 있고, 질적인 면에서 형편없는 보수가 뒤섞여 있는 상태지만요. 그에 비해서 우리는 계속 분열정립해왔잖아요. 만약 거대한 전환 속에서 우리가 범진보라는 혹은 새로운 가치나 시대정신으로 재편될 수 있다면 이번이 그 계기일 수 있다는 거죠. 저는 이것을 ‘범진보로의 재구성’이라고 부르는데, 진보와 보수의 큰 덩어리로 분별정립하는 단계로 넘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누가 주도하느냐의 문제가 나오겠지만 누구만이 진짜다, 누구만이 그럴 수 있다는 식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정태적이고 과거회고적인 분열을 용인하는 것에서 나아가 동태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질서의 창조로 가야죠.

저는 요즘 2012년이 향후 적어도 30년 정도의 미래 한국사회를 결정짓는 갈림길이니 이기기 위해서 전력을 다해야 하고 분열을 방치해서는 승산이 없으니 단결하고 통합하자고 선동하지만, 사실 제 마음 깊은 곳에서는 거대한 시대변화에 맞는 우리의 재편전략이 욕망처럼 꿈틀거립니다. 그렇게 보면, 지분이나 양보 문제는 좀 다르게 해석되죠. 그 한덩어리 속에 들어와서 보면, 민주당 안에서도 구래의 정치를 답보해온 인물보다는 신선한 인물을 지지하고 자기 후보로 세워주는 성향이 더 쉽게 표출된다는 말이에요. 총량으로 보면 민주당, 진보정당, 시민단체가 제각기 들어와서 후보경쟁을 하는 것같이 보여도, 하나가 되고 나면 진보적인 가치를 온전히 간직한 사람을 대표로 선택할 가능성도 꽤 있거든요. 이건 지분 문제와 전혀 다르게 합리적인 절차나 과정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어요.

 

이남주 2012년을 큰 틀에서의 재편기로 만들어내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얘기인데요.

 

심상정 저 역시 2012년을 전후한 시기가 큰 정치변동성을 갖는 시기가 될 거라고 봐요. ‘진보·복지를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의 재편’으로 향하는 정치적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인영 최고위원이 민주당 내에서 거대한 전환을 위해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에 기대가 크죠. 또 기존 가치와 씨스템으로는 더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은 단계에 와 있다는 국민의 자각 그리고 변화의 욕구가 크게 뒷받침되고 있다고 봐요. 국민이 원하는 길이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재편될 테고, 우리는 국민의 바람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할 겁니다. 진보-개혁-보수 3분정립이냐, 민주당과의 통합을 위한 빅텐트냐, 민노당 진보신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정당의 소통합이냐의 문제는 사실은 경로에 관한 것이죠. 저도 진보개혁세력이 크게 하나의 틀로 갈 수 있다면 제일 좋다고 봐요. 그런데 그 경로의 현실성 여부는 민주당에 달려 있어요. 왜냐하면 국민이 요구하는 재편의 방향은 분명한 진보·복지이기 때문에, 민주당 내에서 과연 진보가 주도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경험으로 볼 때, 민주당으로 그동안 시민사회에서도 많이 수혈됐지만 다 용해되어버렸고, 현재 이인영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혁신의 흐름이 형성되고는 있지만 주류로 오르지는 못했지요. 그런 점에서 빅텐트론은 현재로선 회의적입니다. 이 최고위원이 당대표가 되면 현실성이 높아질 거예요.(웃음)

그렇기 때문에 저는 지금은 각자의 위치에서 국민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서로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은 민주당에는 좀더 과감한 혁신을 주문하고 있고, 진보정당에는 뜻은 좋지만 실현할 힘이 없지 않느냐며 통합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인영 최고위원께서는 민주당을 바꿔서 본인의 생각이 주류가 되도록 총력경주하시고, 저는 진보정당의 통합재편과 문제해결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서로의 거리는 정책연합, 선거연합의 방식으로 좁혀보지요. 그렇게 열심히 노를 젓다보면 멀리 바다가 보이지 않겠습니까?

 

백승헌 우리 국민이 오랫동안 진보개혁세력에 요구했던 바는, 혁신과 통합이라고 생각합니다. 둘 다 놓쳐서는 안되겠지요. 통합에 대한 요구가 각 정당의 혁신 노력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 내부의, 그리고 정치세력 전반의 혁신 가능성을 넓히는 과정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제 연합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인데, 연합을 통합에 반대되거나 다른 개념이라기보다는 좀더 넓은 개념으로 이해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6·2 지방선거에서 제가 속한 ‘희망과 대안’은 연합의 필요성을 이야기했습니다. 연합이란 통합이나 막판 후보단일화와는 다른 것이고, 각 정당이 힘을 합해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국민에게 신뢰를 얻고 궁극적으로 목표를 달성하는 길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2012년에도 똑같은 방식을 반복해서는 곤란합니다. 훨씬 다채로운 방식이 계속 모색되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빅텐트론’이나 ‘100만 민란’ 같은 다양한 구상이 논의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어느 한가지 경로만 옳다거나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 혹은 어떤 방식을 해보고 안되면 그만두겠다는 식이 아니라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선택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 멀지 않은 2012년까지 룰과 방식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이인영 최고위원의 이야기에 덧붙이고 싶은 부분인데, 통합이 연합정치 과정의 소모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유력한 대안 중 하나라는 점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공동의 정책 마련이나 후보 확정을 위한 수고를 단순히 생략할 수 있기 때문에 통합하는 게 정당구조를 그대로 두고 연합하는 것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려워요. 견해가 다른 정치세력이 한 당에 모여서 논의하는 것은 각 정당의 고유성을 전제하고 논의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할 수 있지요. 그런 지난한 과정을 서로 감당할 수 있다고 검증된 다음에 비로소 통합 논의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난 지방선거에서 큰 어려움을 느꼈던 점은 이겁니다. 민주당이 호혜적 양보를 이야기하지만, 총론에서는 그렇다 해도 각론에서는 각자 양보 못할 마지노선이 너무 많은 거예요. 선거 후보를 두배로 늘려도 안되는 거죠. 또 하나는 협상과정에서 당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압력이 있습니다. 시민사회가 그런 역할을 맡았죠. 당신들이 생각한 게 10의 양보라면 5를 더 양보해라 하는 식인데, 각 정당이 그런 압력을 당 내부의 당리당략이나 이기성을 완화하는 방법으로 활용한 게 아니라 오히려 반대쪽으로 흘렀기 때문에 최종협상에서 상당히 접근했다가도 결국 타결되지 못한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6·2 지방선거 이후 2012년 총선 및 대선까지 연합 논의는 지금보다 훨씬 풍부해져야 한다고 봅니다.

 

 

2012년의 정치적 의제와 진보의 재구성

 

이남주 연합과 정치혁신 또는 연합과 진보적 가치의 실현은 동시에 실현해야 하는 과제입니다. 연합을 가로막는 제도적 요인으로 선거제도가 지적되고,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가치의 대표성이 발현되지 못하는 이유로 민주당의 독식이 얘기되고 있지요. 민주당이 연합이나 통합을 얘기할 때 이 패권주의를 얼마나 극복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연합의 과제가 떠오른 것은 뭔가 같이 모여서 하라는 요구가 분명 있기 때문인데요, 진보정당들의 경우 이에 대해 어떤 전략적인 결정이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이인영 아주 현실적으로 얘기해보죠. 칸막이 뜯고 다 합쳐보면 이제는 아마 진보개혁세력이 다수일 거예요. 지금은 칸막이가 여기저기 있기 때문에 저도 진보로 여겨지기보기보다는 그냥 ‘민주당 사람’인 거죠. 칸막이를 뜯어내고 하나로 놓고 보면 안심할 구조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봐요. 앞으로 민주당의 운명도 그저 민주화나 정권교체, 정치개혁 같은 것들만으로 보장되지는 않아요. 제가 민주당을 절절하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면,(웃음) 그걸로는 더이상 호소력이 없어요. 민주당의 운명은 진보로 갈 수밖에 없고, 그걸 거부하면 그냥 말라버리는 거예요. 이렇게 생각한다면 당 내부에서도 꽤 적극적으로 임할 것 같아요. 물론 밖에서는, 민주당이 여태까지 안 그랬는데 하는 의심이 있겠죠. 기업과 노동자 사이에서, 부자와 서민 사이에서,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오락가락했으니까요. 결국 신뢰가 문제인데, 우선 지방자치단체 몇곳에서라도 해보면 되는 거죠. 몇가지라도 실천하고 입증하면서 우리가 이렇게 바뀌었다고 보여주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남주 통합을 하기 전에 다른 쪽에서 통합할 수 있겠다고 생각할 만큼 민주당이 개혁의 모습을 보여줘야 되는데, 그냥 앉아서 통합을 기다리면 누가 응하겠냐는 거죠.

 

이인영 그렇죠. 민주당이 진보적인 노선을 설정했다고 천명하는 것만으로 믿어주겠어요? 실천이 되어야 믿어줄 텐데, 그 공간으로서 지금은 지방자치단체가 있지요. 또 국회에서도 계속 대차게 싸우면서 그런 방향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민주당 안에서는 대체로, 통합이 되겠어? 연대나 연합이 현실적인 것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봐요.

 

이남주 심상정 선생님은 이 점에 대해 어떻게 보시나요?

 

심상정 어쨌든 진보의 가치를 중심으로 수권능력을 만들라는 것이 국민의 주문인데, 그것은 민주당뿐 아니라 진보세력의 과제이기도 하죠. 어떤 길이 직선도로인지 따져봐야죠. 민주당과 합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지금까지의 민주당은 우파가 주도하고 있다고 보고 있어요. 이인영 최고의원을 포함해서 진보적 가치를 존중하는 분들이 계시지만, 정당의 기득권을 해체하는 것도 또다른 정치과정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진보세력에서는 그 점에 대해서 회의적인 분위기라는 거죠.

또 통합은 정당 안으로는 내부결의가 이루어져야 하고 밖으로는 국민의 동의과정이 동반돼야 하죠. 그러니까 하나의 경로를 고집하지 말고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전략적 과제에 대해 확고한 소명의식을 갖되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의 실천을 해가면서 경로를 찾아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진보정치세력의 소통합 노력도 그 일환이라고 보는 겁니다. 큰 흐름으로 보면 이른바 민주개혁세력과 진보세력이라는 두 갈래가 있죠. 저는 이 양 세력이 어떻게 융합하느냐의 문제가 한국정치 미래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지난 10년 민주개혁세력 집권기에 보여준 성과와 한계, 그리고 지난 12년 진보세력의 실천을 종합하는 바탕 위에 미래 비전도 책임있게 설계될 수 있다고 봐요. 조직재편의 여러 그림이나 경로만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니고, 말하자면 그동안의 경험을 총괄하는 성찰과 모색의 정치 광장이 열려야 된다고 보고, 이 일은 연합정치에 필요한 여러 논의와 병행해서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남주 연합정치나 진보정치를 얘기할 때 2012년에 어떤 과제와 비전을 들고 나갈 것인가가 핵심 주제입니다. 그게 논의되어야 연합이고 뭐고 될 수 있겠죠. 요즘 강조되는 것이 진보와 복지인데, 복지가 중요한 이슈임은 사실이지만 이것만으로 진보정치를 재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여러 면에서 실현능력을 따져봐야 하고 재정 문제도 건드릴 수밖에 없죠. 또 민주주의와도 관련이 있어요. 사실 박근혜 의원이나 보수진영에서도 복지 얘기를 하지만, 복지란 정치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시혜적 차원이어서는 지속될 수 없고, 민주적 참여가 보장돼야만 제대로 실현되는 거니까요. 또 사회적으로 예산증가에 대한 저항이 있죠. 효율적인 감독이 보장되지 않으면 국가예산 늘리는 것에 거부감도 있고요. 이 역시 상당부분 민주주의와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분단상황에서 예산제약이라든지, 현재 남북관계하에서 어떻게 복지정책을 실현할지 같은 과제를 놓고 진보세력이 좀더 종합적 시각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창비에서는 분단체제극복이라는 목표를 지향하면서 1980년대 변혁운동의 민족자주, 민중 주체의 사회, 그리고 민주주의 발전에 대한 문제의식이 모아지는 변혁적 중도의 길을 가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습니다.

심 전 대표님은 그동안 진보진영의 대안세력화나 진보정치의 전환을 주장하셨는데, 진보세력이 뭔가 좋은 걸 하려고 한다는 건 다들 알고 있지만 대안모델이 불분명한 점이나 그 실현계획이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 불만이기도 해요. 전반적으로 2012년을 바라보며 어떠한 정치적 과제가 있고, 무엇이 정책 비전의 핵심이 되어야 할지 말씀해주시죠. 이어서 다른 분들도 답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심상정 그것과 연관해서 먼저 민주당의 진보성 문제부터 짚어보지요. 일각에서는 최근 민주당의 진보화에 대해서 진정성을 의심하고 비판하지만, 저는 이런 변화가 분명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17대 국회 때만 하더라도 복지에는 항상 ‘병(病)’자가 붙었습니다. 여야를 막론하고 ‘복지병’ 운운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심지어 박근혜 의원까지 복지 얘기를 하고 있지요. 7년 전 경인운하의 변함없는 옹호자였던 송영길 인천시장이 경인운하 안하겠다고 한 것이 얼마나 중요한 변화예요. 그리고 정동영 의원 경우는 ‘담대한 진보’를 얘기하면서 한미FTA 독소조항을 모두 재검토해야 된다고 했지요. 한미FTA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손학규 대표도 특위 구성해서 재검토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단순히 레토릭이나 선거공학으로만 끝날 수 없는 것은 그런 변화가 국민의 뜻이고 국민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죠. 한미FTA는 비정규직 문제와 함께 개혁세력과 진보세력 사이의 거리를 벌려놓았던 핵심의제라는 점에서,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이 하나의 시금석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난 정부에서 추진할 때하고는 정세와 조건이 바뀌었기 때문에 손학규 대표께서 선행책임과 구별해서 책임있게 판단하시리라 기대합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민심은 한마디로 ‘국민의 삶의 질에 정치가 집중해라’입니다. 복지는 역시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 현실에서는 복지만으로 안되고 ‘노동과 복지’라고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는 냉전과 권위주의가 노동을 완전히 유배시켜왔던 역사가 있습니다. 그후 민주화되면서도 노동조합을 인정하는 수준에서 제기되었지, 노동이 인간적인 삶을 실현하는 사회경제적 기본권이라는 측면에서 접근되지는 못했지요. 그래서 민주화 이후 노동은 잔인한 시장에 내던져졌고, 그 결과가 지금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의 시대를 불러온 겁니다. 노동과 복지는 서로 맞물려 있기 때문에 노동의 혁신 없이는 복지가 삶의 질 변화에 큰 역할을 하기 어렵죠.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 없는 복지국가는 공염불이 될 겁니다. 복지도 기본권이라는 점을 분명히하고, 보육·교육·의료를 중심으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또 노동의 혁신과 보편적 복지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경제체제와 맞물려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저는 과거 대선 경선과정에서 ‘세박자 경제’를 제시한 바 있는데요. 사회경제와 공공경제 그리고 공정한 시장경제를 조화시키고, 남한의 서민경제와 한반도 평화경제, 동아시아 호혜경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게 하는 비전입니다.

 

이남주 이인영 최고위원은 진보정치를 상당히 강조했는데, 아예 진보정당으로 가라는 얘기는 듣지 않나요?(웃음)

 

이인영 그게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차이예요. 한나라당은 진보정당으로 가라고 하지만 민주당에서는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없더라고요.(웃음) 복지만 가지고 진보를 이야기하는 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은 그게 진보라고 받아들이죠. 복지 규모가 작은 나라이기 때문에 경제가 흔들리면 복지가 덩달아서 흔들리거든요. 그럴수록 더욱 복지와 경제가 같이 가야 된다고 생각해요. 복지 자체로 삶의 진보, 생활의 진보를 얘기할 수도 있지만, 좀더 깊이 들어가면 지금의 시장경제를 수정하자는 데까지 이어지죠. 시장만능주의, 승자독식의 시장경제를 상생과 공존의 시장경제로 바꾸자는 얘기인데, 신자유주의 시장질서를 사회통합적인 경제, 예컨대 독일식 사회시장경제 수준으로라도 바꾸어놓지 않으면 복지의 토대가 허약하기 때문에 실현되기 어렵습니다. 중장기적으로는 조세제도를 잘 정리해서 전략적·역사적인 호흡으로 진전해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당장은 국가재정의 배분전략을 바꿔야 할 것 같아요. 산업정책이나 사회기반시설 등에서 복지정책 부문으로 더 많이 배분하고, 조세정의 차원에서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화해서 재원을 더 끌어낼 수 있어야죠. 이런 문제를 제기함과 동시에 지방자치에서 실천하는 게 대단히 중요해요. 그런 것이 쌓이면 나중에 정권을 바꾼 뒤에도 힘이 되거든요. 결국 미래 비전을 현실화하는 거니까요. 지방자치에서 조금이라도 좋은 일자리를 더 만들고 보육과 교육, 의료에서 복지써비스를 확대해야죠. 사실 민주당이 서울시장을 차지했으면 SH공사를 활용해 주거복지를 해보고 싶었어요. 이런 것들을 지방자치를 통해서 당장이라도 더 해나가야 합니다. 이번에 친환경 무상급식을 못하면 아마 앞으로도 기회를 얻기 힘들 거예요.

 

 

남북문제의 전략은 진보진영의 ‘약한 고리’인가

 

이남주 노동이나 복지에 대한 권리의식이 한국의 경제발전이나 정치 수준에 비교하면 상당히 낙후되어 있다는 점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분단체제론에서는 이런 낙후성이 분단구조 속에서 나타난 문제라고 봅니다. 진보신당의 경우에는 민주노동당에 비해 북한체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 남북문제에 대한 설계나 프로그램이 면밀하지 않은 것 같아요. 한국의 정치세력으로서 상당히 중요한 이슈일 텐데, 자신의 입장을 국민에게 설득한다는 측면에서는 설명이 부족한 것 아닌가요?

 

심상정 일리있는 지적이에요. 진보정치세력의 통합 논의에서 핵심 이슈가 북한 문제인데, 최근에 어느 인터뷰에서 백낙청 선생님이 잘 말씀해주셨더라고요. 서로 혐의를 두고 있는 종북(從北)과 반북(反北)의 인식을 뛰어넘는 대안이 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진보신당의 일부가 반북 일국주의에 경도되어 있다고 비판받는 것은 진보신당에 분단극복을 위한 전략이나 정책이 아직 구체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노동과 복지, 민주주의, 그리고 외교 및 안보전략은 분단극복 과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요. 그것에 대한 전략과 프로그램이 없다면 수권능력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려울 겁니다. 최근에 북한 문제로 논란이 많았습니다만, 앞으로 진보정당의 통합・재편이 진행되면 그 과정에서 이에 대해 양편향이 극복되면서 책임있는 수권세력으로서의 전략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인영 저는 우리가 준비된 통일을 맞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고 생각해요. 특히 북한 정세의 대변화가 한반도에 미칠 영향이 막대하고, 통일이냐 남남이냐의 선택지를 앞둘 가능성도 점차 커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2012년에 정권을 교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해집니다. 평화정권이 수립된다면 준비가 다소 덜 됐더라도 어떻든 평화를 통해서 통일의 길로 가려고 할 텐데, 이명박정부 같은 정권이 들어서면 서로 등 돌린 남남으로 갈 가능성이 크고 그 과정에서 심각한 위기가 출현할 수 있죠. 이 또한 진보의 잣대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종북/반북을 뛰어넘는 새로운 대안을 만들면 좋겠지만, 지금으로선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느닷없이 한반도 정세의 변화가 찾아왔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대한 과제예요.

 

심상정 최근 북한의 3대세습에 대해 논쟁하는 걸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는데요. 저는 인식론 차원의 논쟁은 넘어섰으면 해요. 요는 진보정당이 어떤 전략을 가지느냐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딱 한가지예요. 진보정당의 대북전략은 국민의 신뢰를 깊이 고려해야 한다는 것.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진보는 으레 친북으로 매도당해왔어요. 진보정치세력이 남북문제 해결의 주체로서 확고한 신뢰를 받아야 평화의 길, 통일의 길로 거침없이 달려갈 수 있습니다. 또 목적주의로서의 통일이 아닌 분단체제극복으로부터 접근하고, 특정한 체제와 방향을 고정시켜놓지 않고 남북이 서로 다가가는 변화의 과정을 충분히 경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일단 평화체제 확립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북한 상황도 가변적이기 때문에 2012년 정권교체 이전에 야당이 힘을 모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백승헌 2012년의 과제에 대해 큰 틀에서는 별반 이견이 없을 것 같아요. 형식적 민주주의 달성 이후에도 지난 10년간 실질적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고 현실화 전략은 더더욱 없었다는 점에서, 복지 담론이나 정책이 진보개혁세력에서 본격화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사회의 공동체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복지 및 경제정책이 나아가야 합니다.

물론 개혁진보세력의 담론이 복지로만 수렴될 수 있진 않지요. 여러 모순을 동시에 해결할 전략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평화체제가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보수담론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점, 그리고 남한 중심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는 사고가 필요하다는 점도 진보의 중요한 담론이 되어야겠죠. 아울러 현정부의 일방독주로 인한 민주주의 후퇴에 강력히 반대하고, 저항하는 시민을 보호하는 정치세력으로서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밖에 환경문제 등에서도 공동체성 강화라는 것을 풍부히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봐요.

 

심상정 복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과거 경험을 보면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경제정책을 바꾸지 않고 복지정책으로 메울 수는 없지 않습니까? 복지에 대한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는 사실 노동 및 경제 정책을 맞춰봐야 된다는 점에서 아직 민주당과 많은 얘기를 못한 거죠. 재벌이라든가 금융 관련해서도요. 그리고 복지를 하려고 해도 어쨌든 돈이 들어가죠. GDP 대비 공공복지 지출이 OECD 평균을 목표로 잡더라도 10.6%가량 작으니 금액으로 환산하면 100조가 필요한데, 이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을 내야 됩니다. 안보비용 축소나 알뜰예산 같은 것을 다 하더라도 결국 증세가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저 역시 선(先) 복지체험 같은 국민의 조세저항을 고려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기본 방향은 증세라는 것이죠. 이 점에 대해서 분명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제가 17대 국회에서 증세안을 낼 때, 여야를 막론하고 저한테 그런 충고를 했어요. 대한민국에서 증세를 말하는 정당은 집권을 포기하는 정당이다, 증세 주장하는 의원은 금배지 한번밖에 못 단다 그러더군요. 그래서 제가 한번밖에 못 달았어요.(웃음) 이렇게 볼 때 복지가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문제인지, 또 복지 내세우니까 우리는 하나라고 단정할 수 있는지 지적하고 싶고요.

지금 나오는 얘기가 한쪽은 사민주의를 바탕으로 한 복지국가, 다른 한편은 진보적 자유주의에 기초한 조정시장경제인데, 실천의 측면에서 보면 복지국가론은 좌파의 근본주의에 대한 성찰과 연결되고, 진보적 자유주의는 자유주의세력의 시장지상주의에 대한 성찰과 연결돼 있다고 봐요. 이 양자를 종합하려는 노력도 담론 수준에선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남주 중요한 화제가 계속 나오는데 시간이 많지 않네요. 정리를 겸해서 마지막으로 정치연합을 어떻게 진전시킬 수 있을지 한말씀씩 해주십시오.

 

 

소통과 협력의 경험으로 신뢰 쌓기

 

 

이인영 얼마전 비정규직 문제로 기륭전자에 갔었는데, 각각의 사업장이나 현장에서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문제를 놓고 야4당이든 5당이든 상시적인 논의체계나 대책기구를 만들어 공동으로 대응해주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왔어요. 4대강 관련해서도 비슷한 요구가 있어요. 사안별로 시작해봐서 더 발전할 수 있다면 사안별 상설체나 포괄적인 협의체로 만들 수도 있죠. 그렇게 실천하면서 신뢰의 근거를 많이 쌓아갔으면 합니다. 예전에 비해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는 체계가 많이 약화된 듯한데, 그것을 먼저 복원하기를 바라고요. 둘째는 지금 ‘이중질서’를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각 정당이나 시민단체의 일차적인 질서가 있는데, 그밖에도 미래지향적인 논의나 공동의 모색을 할 수 있는 질서를 만들어서, 이중의 체계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대안을 찾아보면 어떨까 생각해요.

 

이남주 혹시 심 전 대표님께 그런 제안이 온다면 어떻게 하실지요?

 

심상정 이인영 최고위원이 비정규특위장도 맡으셨는데, 저는 다른 것도 중요하지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야5당 연석회의’ 상설화를 시급히 추진했으면 합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공동의 주요 의제로 합의하고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벌어진 개혁과 진보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연합정치를 성공시키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 되리라 봅니다. 또 이명박정권의 친서민 행보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부자정치를 심판하는 지렛대가 될 것이고요.

저는 조직재편이 전향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진보세력 간의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진영 내부도 자주 만나지 않고 서로 깊이 토론해보지 않고서 예단하고 규정함으로써, 말하자면 소통 부재가 만들어낸 차이도 크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당 대 당의 공식입장에 갇힌 논의를 넘어 과감한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는 흐름을 형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 이 최고위원이 말씀하신 이중체계의 의미도 비슷한 문제인식인 것 같아요. 조직재편은 당의 공식체계를 중심으로 추진되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진보의 재구성을 위한 성찰과 모색은 당의 공식성을 넘어 다양한 방법으로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진보간 소통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적극 고민중입니다.

 

백승헌 저는 일상적 시기의 연합에 대한 고민이나 실천이 상당히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을 하고 싶어요. 선거시기에는 논의가 활발하다가 그후에는 이야기가 따로따로 흘러가거나 의석수 차이로 인해서 실질적인 토론이나 정책 반영이 안되는 일이 반복될 때 과연 이렇게 해서 정당간 신뢰나 국민의 신뢰가 생길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이인영 최고위원이 지방정부 운영에서 성과를 보여야 한다고 했는데, 사실 많은 지역이 연합으로 인해서 승리했지만, 실제로 그 정당들 간에 소통이 원활한지가 아직 검증되지 않았고, 민관협치(民官協治)에 대해서는 시민사회가 개입해서 연합을 성사시킨 지역에서도 매우 미진하다고 평가합니다. 공동의 가치라는 것이 구두선(口頭禪)에 그치지 않으려면 무엇이 가능한지 보여줘야 하는데, 지금처럼 일상의 정치 속에서 힘을 합치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일년 후쯤 그것이 부메랑으로 다가올 가능성도 있다, 확장 국면만이 있는 게 아니라는 고언도 드리고 싶습니다.

 

이남주 세분이 앞으로도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데 앞장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장시간 귀한 토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좌담을 마치겠습니다.(201010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