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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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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 孔善玉

1963년 전남 곡성 출생. 1991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소설집 『피어라 수선화』 『명랑한 밤길』 『나는 죽지 않겠다』, 장편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등이 있음. hahan7@hanmail.net

 

 

 

장편연재 4(마지막회)

꽃 같은 시절

 

 

아가 아가 얼뚱아가

 

영희는 아무리 눈을 뜨려 애써도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몸을 일으켜보려고 해도 등이 방바닥에 붙어버린 듯 꿈쩍도 하지 않아, 누가 내 등을 잡고 있나, 등 밑으로 손을 넣어보려 했으나 손도 말을 듣지 않았다. 이제 어떡해야 하나, 그저 울기나 해야겠다, 울면서 천천히 생각해봐야겠다, 하고 어딘가에 쪼그려 앉았는데, 그곳이 바로 천길 낭떠러지였다. 얼른 몸을 피하려 했지만 이미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죽는 건가 싶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순한 바람이 이마를 스치는 느낌이 든다. 다시 살아난 건가? 주위를 둘러보는데, 먼 데인 것 같기도 하고 제 옆 같기도 한 곳에서 조그만 여자아이가 울고 있다. 자신을 닮은 어린아이가 눈에 눈물을 가득 담고 영희를 바라본다. 아이는 영희와 눈이 마주치자, 자기 있는 데로 오라고 손짓한다. 내게는 딸이 없는데 누굴까, 다가가보니 세상에, 바로 어린시절의 자신이 아닌가. 반가워서 와락 껴안고 싶은데, 이상하게 복주 생각이 먹구름처럼 가슴을 덮는다.

‘우리 복주가 어린이집에서 올 시간인데.’

어린 영희가 손을 살랑살랑 흔드는 것이 복주는 잊어버리라는 것 같았다. 어린 영희의 몸짓을 보면서 영희는 기분이 좀 이상해졌다. 왜 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지? 혼란스럽기도 하고 재미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이 짠했다. 오래 잊어버리고 있었던 가슴속 아픔이 되살아나는 듯도 했다. 어쨌든 눈물 가득한 어린 영희를 외면할 용기가 없어서 영희는 어린 영희가 손짓하는 하얀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보기에는 가까운 것 같은데, 새벽인지 저녁인지 알 수 없는 희부윰한 빛 속에서, 오솔길은 꿈길처럼 아득하게 돌아간다. 어린 영희가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영희가 태어나던 순간부터 ‘울음 우는 영희’는 그 자리에서 영희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 영희를 다른 누구도 아닌, 영희 자신이 오래 잊고 있었던 것인지도. 그래서 영희는 ‘영희를 오라고 손짓하는 영희’를 보자마자 그렇게 반가웠는지도 모른다. 내가 저 어린 영희를 왜 그렇게 오랜 세월 잊고 있었던 것일까, 왜 그리 오래 그 자리에 세워뒀던 것일까 싶어 이제 영희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래서 어린 영희가 손짓하는 곳으로 몸이 미끄러지듯 저절로 가지는 것이었다. 어린 영희가 입은 병아리색 인조견 치마는 엄마가 만들어준 것임을 영희는 기억해냈다. 인조견의 매끄러운 감촉이며, 밝은 곳에 서 있으면 속이 비칠까봐 안절부절못하던 것까지도. 비에 젖으면 다리에 찰싹 달라붙고 작은 열기에도 홀라당 구멍이 나는 인조견 치마. 치마를 추억하느라 걸음이 늦어졌던 것일까. 어린 영희가, 빨리 안 오고 뭐하냐는 듯 더욱 재게 손을 흔든다. 나이 먹은 영희가 물었다.

“뭐 좋은 것이 있다고 자꾸 오라는 거여?”

영희는 깜짝 놀랐다.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돌아가신 엄마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금방, 아하, 그럴 수도 있겠다, 수긍했다. 자신의 나이가 엄마 돌아가시던 무렵의 나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기 때문이다.

어린 영희를 따라 한참을 간 것 같았다. 숲으로 난 오솔길을 지나고 맑은 물이 흐르는 작은 실개울을 건너고 자잘한 들꽃이 가득 핀 들을 건너니 거기, 아름다운 집 한채가 기다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예전에 살던 집이다. 우리집으로 가는 길에는 숲길도, 실개울도, 꽃이 가득 핀 들판도 없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우리집이 저렇게 근사하지도 않았는데 이상하다 하면서도, 눈에 보이는 집이 진짜 자신의 집임이 확인되자, 영희는 또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분명 옛집인데, 왠지 더 환해지고 더 따뜻해진 것 같다. 모습은 안 보이지만 뒤꼍에서 장작 패는 소리며 아궁이에 불 때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니, 월남 간 오빠가 돌아왔거나, 그도 아니면, 그도 아니면……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신 것도 같다. 그러면 정말 좋을 텐데, 좋을 텐데…… 가슴이 두근거린다. 한번 조심스럽게,

“아부지, 아부지는 죽었는데 왜 집에 와 계세요?”

물어보고 싶다. 그러면 아버지가,

“떽끼, 누가 그런 거짓부렁을 허드냐. 이렇게 멀쩡허니 살아 있는 것을 보고도 그런 소리 허냐?”

해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희는 안다. 오빠라면 몰라도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욕심이란 것을. 아버지는 아주 오래전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영희가 분명히 알기 때문에. 그렇지만, 그런 사실을 나는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그것은 먼 훗날 일어날 일이고 아버지는 지금 뒤꼍에서 장작을 패 아궁이에 불을 넣고 있고 엄마는 부엌에서 밥을 짓고 있다,고 영희는 생각한다. 그 생각은 정말 현실로 이루어졌다. 큰오빠하고 작은오빠는 산에서 캐온 칡을 마당 한켠에서 작두로 썰고 있다. 영희는 닭모이를 주러 닭장이 있는 텃밭으로 가는데, 연기 나오는 부엌문에서 엄마가 고개를 내밀고는 텃밭에 간 김에 파를 좀 뽑아오라고 한다. 막 파랗게 솟아난 쪽파를 조심스럽게 솎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동화 같다. 저녁인 것 같기도 하고 새벽인 것 같기도 하지만 영희는 저녁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영희는 저녁이 포근해서 좋았다. 어디선가 닭울음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날이 새는 모양이라고 동네사람 누군가가 두세두세거리며 문밖 고샅을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언제나, 사는 것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전개되곤 했다. 그래서 동화 같은 풍경이 펼쳐졌을 때, 조마조마했다. 그 좋은 저녁은, 포근한 저녁에의 꿈은 어디론가 가뭇없이 사라지고 영희의 가능하지 않은 욕심을 확인시키기라도 하듯, 옛집은 이제 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작은오빠가 빨간 페인트로 쓴, ‘심’자가 지워진 ‘개조’, 그리고 ‘조’ 밑에다 누군가 못으로 ‘ㅅ’자를 새겨넣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양철대문. 대문은 한쪽이 기울어져서 문을 받치기 위해 안쪽에 커다란 돌덩이가 괴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 돌이 그대로 있다. 돌덩이는 하도 오랜만에 봐서 신기하기는 해도, 사실 그리 반가운 물건은 아니다. 방위병이었던 작은오빠가 한여름 퇴근길에 멱을 감다가 물속에서 영영 나오지 않던 날, 엄마가 그 돌덩이 위에 앉아 가슴을 치며 울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큰오빠 아래로 언니를 낳았지만, 아기 때 장질부사로 ‘날려버렸다’. 그리고 두번째로 작은오빠를 잃은 것이다. 개목에 걸어 돌덩이에 감아놓았던 개줄이 보인다. 대문가에 개가 있어서, 문지방을 넘어서자마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개밥그릇이 늘 발에 채였었다. 파리는 또 어떤가. 빈 밥그릇에 까맣게 달라붙어 있던 파리들. 파리들도 그대로인데, 개는 보이지 않는다. 아아, 개는 큰오빠가 군입대하던 날, 오빠하고 오빠 친구들이 잡아먹어버렸지. 월남에 간 우리 큰오빠. 자랑스러운 오빠. 그러나, 개를 잡아먹어버린 오빠. 오빠 친구들은 개고기 뜯어먹은 붉은 입들을 크게 벌려 웃으며, 오빠 등을 두드렸다.

“어이, 영달이, 구탕 먹고 힘내서 베트콩 많이 때려잡아야지.”

어떤 친구는 울었다.

“이역만리 떠나는 자네에게 개고기밖에 못먹여 보내는 것이 이렇게나 내 가슴을 에이게 하는구먼.”

산적처럼 생긴 오빠 친구가 가슴을 치며 우는 모습이 지금 일인 듯 옛날 일인 듯, 아득한 듯 생생하게 보인다.

사진 한장 남겨놓지 않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빼닮았다는 큰오빠. 그래서 가끔 오빠 대신 아빠라고 부르고 싶었던 큰오빠는 스무살 되던 해 개고기탕 한그릇 먹고 월남 가서 돈 벌어오겠다는 말만 남긴 채 떠나버렸다. 집안이 조용한 걸 보니, 아마도 오빠가 그렇게 떠난 뒤인가보다.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엄마가 재봉틀 앞에 고개를 수그리고 옷을 만들고 있다. 영희를 한번쯤 뒤돌아볼 만도 한데, 엄마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그저 재봉틀만 돌릴 뿐이다. 그래도 정말 오랜만에 엄마를 보자 가슴이 뛴다. 왈칵 울음이 나온다.

“엄마아!”

엄마 대답이 없는 것이 좀 서운하다. 다시 한번 부르려는데, 엄마가 불쑥 다 만든 옷을 영희에게 입힌다. 여전히 얼굴은 보여주지 않은 채. 엄마가 분명히 옷을 입혀주는데 얼굴이 안 보이다니, 이상하다 하면서도 영희는 엄마가 입혀주는 대로 옷을 입는다. 치마에서 새 옷 냄새가 난다. 그 냄새가 좋아, 영희는 자꾸만 숨을 킁킁거린다. 새 옷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좋다.

“요놈 입고 가서 매 맞지 말고 상 받아갖고 오니라이.”

엄마는 영희에게 치마를 건네주고 밭에 간다며 호미를 들고 대문 밖으로 나간다. 가지 말라고, 조금만 더 나랑 있자고 하고 싶은데, 이번에는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엄마는 어느새 대문 밖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저렇게 가는 것은 틀림없이 죽는 일인데, 죽는 것은 내가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다는 것인데, 엄마를 붙잡아야 하는데, 왜 발이 떨어지질 않을까. 영희는 발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 속상하고 엄마를 영영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말할 수 없는 슬픔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그런 영희 마음을 알고서 그랬던 것일까. 엄마는 여전히 모습은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목소리는 더 또렷해졌다.

“엄마 간다고 우지를 마러라, 아가.”

“알았어, 엄마아, 그런디 엄마아, 엄마 얼굴 한번만 보여줘어.”

소리쳐보지만 이번에도 소리는 나오지 않고 목만 꺽꺽거린다.

할 수 없이 영희는 이제 방금 만들어진 노란 치마를 입고 학교엘 가려고 집을 나섰다. 새옷 때문에 엄마를 못 본 서운함은 금세 가시고 기분이 산뜻해진다. 그런데 자꾸 치마가 흘러내렸다. 엄마가 밭에 갈 생각으로 마음이 바빠 치마 호크를 미처 달지 않은 것이 틀림없다. 좀전의 기쁜 마음은 금세 사라지고 놀림을 받을까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할 수 없다. 집에 가봐야 엄마도 없고 늦으면 오늘도 선생님한테 매를 맞을 것이 틀림없다. 영희는 자신이 만날 선생님한테 매를 맞았다는 것이 기억났다. 도화지를 못 사간 날, 수업 시간에 자꾸 코를 흘린다고, 걸레를 안 만들어가서, 난로에 피울 장작을 안 가지고 가서, 학교 퇴비장에 넣을 풀을 안 베어가서, 잔디씨를 안 받아가서, 학교 환경미화하는 데 돈을 안 내서, 육성회비를 안 내서, 머리에 이가 많아서…… 매 맞았던 이유들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영희는 꽁꽁 언 겨울 아침 신작로에서 학교에 가다 말고 돌로 얼음장을 깨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더니 그 위에 오줌을 눈다. 얼음이 녹고 그 속에 박혀 있던 백원짜리 지폐가 영희 손에 들어온다. 선생님이 돈이 어디서 났느냐고 묻는다. 얼음장 속에서 났다는 말을 못한다. 매가 날아온다. 화들짝 깨어나니 엄마가 머루밭 속에서 얼굴을 안 보여주고 목소리로만,

“아가, 인자부터 선생님한테 매 맞지 말고 상 받아와라이.”

영희 발밑에 머루가 가득 담긴 광주리가 보인다. 영희는 머루를 깨물어먹으며 울면서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매 안 맞고 상 받아오기 위해서 영희는 호크 안 달린 치마를 손으로 꽉 쥐고 간다. 그런데 가다가 자꾸만 해찰을 한다. 이러면 학교 늦어서 선생님한테 또 매를 맞을 텐데, 틀림없이 그럴 텐데,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학교 안 가고 산에를 갈까, 냇가엘 갈까, 두리번거린다. 오늘은 구구단과 국민교육헌장을 외워가야 한다. 구구단은 다 외웠는데 국민교육헌장을 아직 못 외웠다. 선생님의 대나무뿌리 회초리가 손바닥에 닿는 느낌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어떻게 할까. 저 멀리 논둑길에서 영희처럼 서성이는 아이가 보인다. 건너마을 사는 동선이다. 동선이는 아파서 죽었는데, 하는 생각이 얼핏 났지만, 그래도 어쨌든 살아 있는 동선이가 보인다. 동선이 엄마가 차부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갑자기 쓰러졌던 것을 영희는 기억해냈다. 조금 전까지 차가 왜 이리 안 온다냐, 혼잣말을 하다가 문득 보따리 속에서 알사탕을 꺼내 영희한테 건네주었는데, 차 온다고 일어서다가 핑그르르 쓰러졌다. 영희는 사람 살려, 사람 살려, 목놓아 부르면서도 사탕은 또 열심히 빨아먹었던 것이 부끄러워 몸이 떨린다. 오늘도 동선이는 제 동생 보느라 학교에 늦었나보다. 동선이는 논둑길을 벗어나 신작로에 접어들었다. 학교에 가기로 마음먹은 모양이다. 학교에 늦으면 나도 매 맞고 동선이도 맞겠지 싶어 조금 안심이 된다. 동선이랑 함께 맞으면 덜 서러웠던 것 같다. 무엇보다 매를 맞고 영희가 울면 동선이가 영희야, 울지 말고 나랑 놀자 하면서 손을 잡고 운동장 가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로 데려갈 때 무척 행복했다. 매 맞고 흘린 눈물이 플라타너스 아래로 가는 동안 말라가는 느낌이 좋았고, 제 손을 잡은 동선이의 손이 꼼지락거리는 느낌이 좋았다. 동선아아, 부르는데 역시나 목이 꽉 잠겨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신작로 미루나무 사잇길로 올라섰던 동선이가 보이지 않는다. 동선이는 어디로 갔을까. 어디선가 동선이 웃음소리가 난다. 드넓은 보리밭 한가운데쯤에서 비비종 배비종, 종달새 울음소리가 났다. 동선이가 보리밭에서 종달새 울음소리를 흉내낸다. 종달새는 사람이 저를 흉내내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화답한다. 비비종 배비종. 보리밭 속을 아무리 뒤져도 보이지 않는 동선이는 끝없이 종달새 흉내만 내고 있다가 갑자기,

“영희야, 내 발에 티눈이 났단다.”

영희는 이번에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것만 같아 그냥 맘속으로만,

‘동선아, 티눈이 났으면 성냥불로 발을 지져부러라.’

“영희 너는 엄마가 호호 불어주더냐?”

그렇다고 말하면 동선이가 슬퍼할까봐,

‘울엄마는 새복에 밭에 가서 오밤중에 돌아온단다.’

“영희 너는 엄마가 명태국 끼래주더냐.”

‘울엄마는 나한테 밥 안해놨다고 옷을 벗겨 쫓아내더라.’

“영희 너는 엄마가 명태 아가미를 티눈에다 처매주더냐.”

명태 아가미 속 물렁뼈를 동선이 발에 처매줘야 할 텐데, 그래야 티눈이 없어질 텐데, 우리집 찬장 속 명태를 훔쳐내 갖다줘야지, 갖다줘야지, 안타까워하며 집으로 오는 중인데, 동선이는 죽고 말았다. 그러나 동선이가 죽는 것도 아주 나중 일, 아직은 살아서 티눈 때문에 발이 부어 동생을 업지 못하고 땅바닥에 내려놓은 채로 확에 보리쌀을 갈고 있다. 그런 동선이를 바라보며 영희는 하염없이 울고 있다.

‘동선아, 동선아, 너 죽으면 나는 외로워서 어찌 살끄나.’

동선이가 감나무 아래 화덕에 불을 지펴 보리밥을 한다.

“영희야, 사람이 죽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란다. 울지 말고 화덕에 불이나 때라.”

영희는 동선이의 말에 안심이 되어 화덕에 불을 넣는데, 땅바닥이 축축해서인지, 불쏘시개 나무가 젖어서인지 매운 연기만 난다. 어서 낭글낭글한 보리밥을 해서, 동선이 엄마가 죽기 전에 담가놓은 된장으로 보드라운 된장국을 끓여서 동선이 동생 점선이한테 먹여야 할 텐데, 점선이는 배가 고파 땅바닥을 불불 기어다니며 흙을 주워먹고 있다. 마음이 바빠진다.

‘점선아, 내가 우리집에 가서 밥을 가져오마. 그동안 흙은 먹지 말고 차라리 울고 있으려무나. 동선아, 내가 우리집에 가서 명태 아가미 물렁뼈를 가져오마. 그동안에 너는 사카린물이나 타서 먹고 있으려무나.’

동선이네 집을 빠져나와 신작로를 버려두고 지름길인 산길을 넘는 참인데, 천지사방에서 주황색 점박이 나리꽃이 호르르호르르 피어나고 있다. 점선이한테 빨리 밥을 갖다줘야 하는데 동선이한테도 빨리 명태 아가미 물렁뼈를 갖다줘야 하는데, 하면서도 영희는 집으로 가는 길을 놔두고 나리꽃 피어나는 언덕길을 허위허위 기어오르고 있다. 언덕에는 나리꽃뿐 아니라 원추리꽃, 엉겅퀴꽃, 개망초꽃, 여뀌꽃, 동자꽃, 꽃, 꽃, 꽃들이 한정없이 피어 있다. 밥 가지러 간 사이에 누가 꽃을 다 꺾어가버릴지도 모르니 우선 꽃부터 꺾어야겠다고 영희는 생각한다. 꽃다발을 만들어 동선이한테 갖다주면 참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다. 한참 정신없이 꽃을 꺾는데, 설렁설렁 바람이 불더니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흰 저고리에 까만 중의(몸뻬)를 입은 낯선 할머니가 영희 뒤를 바짝 따라오면서, 어서 가자, 어서 가자, 닦아세운다. 비가 오니 집에 가자는 말일 것으로 여기고 종종거리며 앞장섰다. 그러나 뒤돌아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어둠속의 흰 저고리와 검정 중의, 그리고 목소리가 왠지 서늘하다. 숨이 가쁘다. 금방이라도 뒤에서 쫓아오는 할머니에게 뒷덜미를 챌 것만 같다. 할머니가 제 뒷덜미를 채가려고 갑자기 나타난 것만 같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될 것 같다. 멀리서 노랗게 깜빡이는 불빛이 보인다. 집인가? 집이다. 엄마아, 부르는데 엄마가 컴컴한 뒤꼍에서 확에 뭔가를 득득 갈고 있다.

‘엄마 그것이 뭣이대?’

“우리 새끼 질러 좋아허는 오뇌죽 끼래줄라고 녹두 가는 거여.”

이번에도 엄마 모습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린다. 녹두죽을 오뇌죽이라고 하는 엄마. 오뇌죽 소리만 들어도 벌써 고소한 녹두냄새에 코가 킁킁거려진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영희가 오뇌죽을 먹고 있는 참인데, 작은오빠가 아궁이 불빛 일렁이는 부엌문을 왈칵 열어젖힌다. 오빠가 서 있는 부엌문 밖은 캄캄하다. 오빠가 어서 부엌 안으로 들어와 바람 들어오는 부엌문을 닫고 따뜻한 부뚜막에 앉아 함께 오뇌죽을 먹으면 좋으련만, 그래서 이제야말로 오래전에 잊어버린 오빠 얼굴도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건만, 오빠는 도통 들어올 생각을 안하는 것 같다. 할 수 없이 노글노글한 오뇌죽을 한 양재기 퍼담고 부엌문 밖으로 내가려는데, 부엌문 밖에는 오빠 말고도 얼굴이 자세히는 보이지 않고 형상만 보이는 사람들이 중긋중긋 서 있다. 양재기 말고 큰 양동이에다 오뇌죽을 퍼담아 내오고 부리나케 헛간으로 달려가 선반에 매달린 덕석을 떼어다가 주르르 마당에 깔자 서 있던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는다. 오빠는 어느새 사람들 속에 파묻혀서 간간히 뒷모습만 보여줄 뿐, 영희를 돌아보지 않는다. 오빠 옆에 아기를 안고 있는 조그만 아이는 틀림없이 동선이다. 점선이를 데리고 왔나보다. 덕석 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오뇌죽을 퍼먹는 참인데, 읍내에서 온 사진사가 사진을 찍는다.

“자자, 먹는 것을 잠시 멈추고 여기를 보세요. 박석택씨, 김용택씨, 김애순씨, 노분례씨, 김공님씨, 영산리 김기택씨 큰어머니 되시는 분, 영산리 김기택씨 큰어머니 되시는 분? 안 계십니까? 아 예, 그러면, 봉현리 박석춘씨 이모 되시는 분, 아 예, 그쪽으로 서시고요. 다음, 이영희씨, 이영희씨? 이영희씨, 거기서 뭐해요?”

대답을 하려는데, 말이 잘 안 나온다. 영산리 김기택씨 큰어머니, 그러니까 왕언니 오명순이 사진 찍는 줄도 모르고 저만큼 가고 있다. 오명순 가는 쪽으로 끝없는 꽃밭이 펼쳐져 있다. 아, 저기가 꽃밭이라 가는구나, 여기보다 저기가 좋은가보다, 나도 얼른 따라가야지, 깜빡 한눈팔았다간 놓쳐버릴까 겁나 허걱허걱 따라가는데, 오명순은 뒤도 안 돌아보고 무정하게 가고 있다. 뭐라고 불러야 하는데 목소리는 안 나오고 왠지 울음만이 치받친다. 오명순은 이미 꽃밭 가운데를 가로지르는데 영희는 아직도 가시밭길 한가운데 서서 울고 있다. 어린 영희는 처음에 영희가 발견했던 그 길로 울면서 멀어지고 있다.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린다.

“아가 아가 얼뚱아가, 미역국에 밥 말아주께 우지 마라, 우지 마라, 아가 아가 얼뚱아가, 삼단 같은 머리채로 비단옷을 지서주께 우지 마라, 우지를 마라.”

아가아, 소리가 들려서 엄만가? 하고 퍼뜩 뒤돌아보니, 거기 엄마, 그리고 엄마 같은 엄마들이, 하나도 아닌 수많은 엄마들이 어린 영희를, 하나도 아닌 수많은 어린 영희들을 안고, 보듬고, 업고, 손을 잡은 채 영희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엄마아, 나 올 때까지 꽃밭에 꽃은 꺾지 마아.”

“꽃은 안 진게로 울지 마라, 아가. 천년이 가도 만년이 가도 꽃은 지지 않을 것잉게 걱정을 말아라, 아가아……”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점점 멀어지면서 뒷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천년이 가도 만년이 가도 지지 않을 꽃밭에 사는 엄마들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올 뿐이다. 아가 아가 얼뚱아가 미역국에 밥 말아주께……

사진사는 아직도 영희를 애타게 부르고 있다. 이영희씨, 빨리 오세요, 안 오면 우리끼리 찍습니다아!

 

 

남자라는 이유로

 

누나에게서 영희의 옷 만드는 기술이 일취월장했다고 들었던 터라 그날은 영희가 군청에서 열리는 순양석재의 불법 산지훼손 문제에 대한 청문회에 간다고 했을 때도 철수는 다른 때와 달리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어깨를 움츠리며 버스를 타는 모습이 그날따라 유달리 야위어 보여, 저녁 때 집에 오는 길에 돼지고기 두어근을 샀다.

“어이, 고기 사왔……”

“추, 추워.”

영희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앞니를 딱딱 부딪치면서 누워 있다.

“뭔 일 있었는가?”

대답은 없고 눈꼬리에 눈물 자국이 나 있다. 가슴 한켠이 울컥했으나, 마음이 급해, 우선 보일러부터 틀고 그다음에 부엌으로 나가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집주인이 아궁이를 없애지 않고 놔둔 것이 이럴 때 써먹으라고 그랬는지도 몰랐다. 보일러의 온기와 아궁이불의 온기는 차원이 다르니까. 으슬으슬 추울 때는 아궁이에 불을 깊이 넣고 뜨거운 아랫목에서 몸을 ‘지지고’ 나면 개운해지던 것을 철수도 경험한 바 있다. 시골 사니까 이런 맛도 있구나 싶어, 철수는 그동안 이곳을 뜨자고 했던 사실을 그 순간만큼은 잠시 잊은 채 시골에서 좀더 오래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마저 들던 것이었다. 그래서 아궁이 깊숙이 나무를 밀어넣으며,

“내가 만약에, 만약에 여그서 더 살고자픈 맘을 먹는다고 한다며는, 자네처럼 할머니들 좋아서가 아니라, 불 때는 거 좋아서라는 것을 자네는 알란가 모르겄네.”

하고 영희가 듣든 말든 중얼거리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게 불을 양껏 때놓고 들어와보니, 영희는 벌써 자고 있었다. 다른날 같으면 잠을 못 이루고 뒤척였을 텐데, 그날은 잘 자는 것 같았다. 철수는 방이 더워 뒤척이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한숨 붙이고 일어나, 영희가 아침까지도 꿈나라에서 헤매는 듯하기에 차마 깨우지 못하고 조용히 아이를 안고 나와 밥을 먹이고 세수시켜 어린이집 차에 실어 보냈다. 그러고 나서 자신도 조용히 일을 나갔다. 영희가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 대책위원장을 맡은 뒤부터였을 것이다. 영희는 괴로우면 괴로운 대로 잠을 못 잤고 기쁘면 기쁜 대로 잠을 못 잤다. 복주가 자다 깨서 엄마 왜 안 자냐고, 제 옆에 와서 빨리 자라고 칭얼대면 영희는 혼잣말처럼, 엄마는 너무 화가 나서 잠이 안 오고, 엄마는 너무 눈물이 나서 잠이 안 온다고 했다.

선 보고 연애 비슷한 것을 하던 기간에,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간 철수는 ‘잠 안오는 밤이면 무엇을 하시나요?’라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영희가 얼굴을 붉히며 시를 쓴다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철수 눈에는 시라는 것이 어디 먼 데 있지 않고 바로 영희의 붉은 뺨에 있는 것만 같았다. 어떤 시가, 어떤 예술이 저 붉은 뺨보다 더 아름다우랴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 아름답게 붉던 뺨은 잠을 못 자서 파리한데다 고단한 생활의 흔적인 검은 기미가 가득하다. 기미가 생길망정, 예전처럼 잠 못자는 밤이면 시라도 쓰면 좋으련만 영희는 돌공장 때문에 생긴 서류더미에 코를 박고 있었다. 그만 자자고 철수가 역정을 내면, 영희는 서류더미를 들고 부엌으로 나간다. 새벽에 일어나 부엌으로 나가 보면 영희는 눈이 빨개진 채로 아침밥을 하며,

“새벽일 나온 저 사람들 밥은 먹고 나왔을까? 이 시간부터 일하려면 잠도 많이 못 잤겠다, 그치?”

새벽부터 굉음을 울리며 질주하는 덤프트럭 사람들을 걱정했다. 그런 영희한테, 남 걱정 말고 니 걱정이나 하라고 불퉁맞은 소리나 했던 자신이 철수는 밉고 또 밉다.

아무리 찬바람 들어갈까봐, 그래서 잠을 깨울까봐 그랬다지만, 어떻게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한번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았을까, 어째서 들여다볼 마음이 생기지 않았을까. 왜 이마에 손 한번 올려보지 않고 손 한번 잡아보지 않았을까. 왜 그렇게 대수롭잖게 넘어갔던 것일까, 내가 그렇게 무심하고 나쁜 남편인가, 아니 나쁜 인간인가 싶어 견딜 수 없이 괴롭고 또 괴로운데, 한번 잠이 든 아내는 깨어날 줄 모른다.

영희가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앞집 사람의 전화를 받고서도 의식불명이 된 줄은 상상도 못한 채,

“왜요? 뭣이 이상해요?”

퉁명스레 대꾸했던 것을 생각하면 온몸이 오그라들고 치가 떨린다.

입원실에 필요한 물품을 가지러 집에 들렀다가 나서는 길에 돌공장 덤프트럭과 마주쳤다. 일단 길을 막고, 물어나 볼 심산이었다. 당신들, 새벽부터 일 나오려면 집에서 밥은 먹고 나오느냐고, 당신들 때문에 고통받고 사는 사람이 당신들 걱정을 다 하더라고. 그런 줄이나 아느냐고. 지금 그 사람이 쓰러졌다고. 그것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뭐, 크게 소리칠 맘도 없고 한번 가만히 물어나 보고 싶었다. 그러나 덤프트럭 앞으로 나가려는 발을 딱 붙잡는 것은 결국 자신이었다. 자신 속에 자신을 향한 분노가 더 커서 차마 남들을 향해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철수가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그만둔 낌새를 트럭 기사가 눈치챈 모양이다. 창문을 열고,

“어이, 아저씨, 뭐 할말 있어요?”

“아녀요, 아녀.”

“그런데 왜 길을 막으려다 말어?”

이왕 이렇게 된 거 물어나 보자, 하고서

“당신들, 밥은 먹고 다니요?”

애초에 맘 먹은대로 단지 그 한마디만을 물어봤을 뿐이다. 그런데 갑자기 트럭기사가 운전석에서 톡 튀어내려와 철수 멱살을 그러잡았다.

“감정 있으면 있다고 솔직히 말하면 될 것 갖고 뭔 야로를 부리냐, 엉?”

“야로가 아니고…… 근데 이 자식이.”

대낮의 난투극이 벌어졌고 분을 이기지 못한 철수가 돌을 들어 트럭 백미러를 박살냈다. 그리하여 영희는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철수는 경찰서를 가게 되었다. 병원일 때문에 마음이 급해, 묻는 대로 대충대충 대답하고 끝낼 맘으로,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권리가 있고 어쩌고 하는 조사경찰의 입을 봉하고, 빨리빨리 조사하라고 채근했다.

“시비가 있었습니까?”

“예, 있었습니다.”

“왜 그랬나요?”

정말로 밥은 먹고 다니는지가 궁금해서 그랬다고 하려다가 순간적으로 맘이 바뀌었다.

“덤프트럭이 고속질주하는 그 길은 원래 인근 마을사람들의 농로로 이용되는 한적한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순양석재 채석운반용 차인 덤프트럭들 때문에 이제는 죽음의 길이 되부렀습니다. 그것 때문에, 시방 인근 진평리, 영산리, 봉현리, 평주리 노인들이 밤낮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음서 아조 죽지 못해 사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보다못한 제 아내, 이영희가 지금 어떤 지경에 있는지 씨발, 느그들이 아냐, 엉?”

처음에는 좋게 나오다가, 끝내 분에 못 이겨 아무렇게나 나오는 말을 철수라고 의식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겨우 흥분을 가라앉히고 있으려니 경찰이 묻는다.

“그럼 김철수씨는 본건 재물손괴 부분에 대해 피해자와 이의라도 있는 건가요?”

정말로 병원일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더 악을 쓰고 싶어도 시간이 촉박하여,

“아닙니다, 알았습니다.”

합의는 했는가요? 화해는 했는가요? 폭행에는 법의 처벌이 따른다는 사실을 아는가요? 할말이 더 있는가요? 위 사실이 사실인가요?를 모두 통과, 통과시키고는 위 진술 내용은 사실입니다, 자필서명하고 지장을 꽉 눌러주고 나서 내빼다시피 병원으로 달려갔다. 나중에 무슨 결과가 나오든, 지금 상황 같기야 하겠는가, 일단은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영희는 일종의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직접적인 원인은 ‘열사병’이라 했다. 과로와 스트레스로 생체리듬이 깨진 상태에서 너무 과한 열이 몸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줄도 모르고 신나게 불을 처넣었던 자신을 아주 패죽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어떻게 할 바를 모르고 병실을 뛰쳐나와 머리를 감싸쥐고 병원 입구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손이 자동으로 담배를 찾는다. 몸에 안 좋아서라기보다 담배값이 아까워 끊어보려던 참이었는데 도저히 안되겠다. 철수는 병원 맞은편 편의점으로 담배를 사러 나갔다. 그 길에 제 남편과 함께 병원 쪽으로 오는 처조카 미란과 마주쳤다.

“고모부.”

미란이의 고모부, 소리가 철수는 언제 들어도 낯설었다. 철수는 고모부를 고숙, 이모부를 이숙이라고 불렀는데, 요새는 다 고모부, 이모부라고 한다. 그러나 철수가 대답을 안한 것은 듣기 어색한 고모부 소리 때문이 아니다. 직업이 시민운동가라는 처조카사위 때문이다. 영희가, 조카사위 강인섭이한테 그렇게 도와달라고 했는데도 더 큰 다른 일이 있다며 이쪽 일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서러워하는 기색이었는데, 그때는 그런 영희를 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콧방귀를 뀌며 야유까지 던졌던 것이다.

“헛참, 그 사람들이 너같이 그렇게 깝깝헌 사람들이가니? 인섭이가 보통 야문 애가 아니라 진작에 알아서 안 오는 것이제, 그것을 모르냐?”

“뭘 아는데?”

“내가 꼭 갈쳐줘야 아냐? 긍게 깝깝헌 사람이란 소리를 듣제. 이런 싸움은 지게 되어 있는 쌈이란 것을 안다, 이 말이여.”

그때 영희 눈에 얼핏 눈물이 비치는 듯해 그쯤에서 입을 닫았기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지금 더 괴로웠을 것 같다. 덤프트럭 기사 앞에서 그랬듯이 또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체신머리없이 처조카사위 멱살이라도 잡게 될 일이 생길까 두려워 미란 부부를 못 본 척, 부르는 소리를 못 들은 척하고 휘적휘적 길을 건너가버렸다. 고모부가 불러도 대답이 없자 무안해진 미란은 횡단보도 위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빨간불이 들어오자 그만 찻길 한가운데 갇히고 말았다. 미란의 남편 강인섭은 제 아내가 그러든지 말든지 어느새 병원쪽 인도로 올라가서는 미란을 향해 뭐라고 소리치고 있다. 길 건너편 인도에서 미란 부부가 투닥투닥 다투는 듯하다가 편의점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철수를 향해 소리치는데, 못 들은 척 철수는 먼산바라기를 한 채 두개비째의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어이, 자네 여그서 뭣 허고 있는가?”

놀라 돌아보니 처남, 영달이 허걱거리며 걸어오고 있다. 뭐라고 대꾸를 하긴 해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는다. 처남 돈을 쓰고 갚지도 못한 주제에 어떻게 얼굴을 볼 수 있으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돈을 갖다 썼으면 갚아야 할 것 아니냐고, 나도 빚 내서 준 돈이라고, 그 빚을 내가 갚았는데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가 없느냐고 화를 내도 시원찮을 판국에 처남은 되레 자신이 빚 갚은 것이 미안한 일이라도 된다는 듯이 늘 철수 앞에서 상냥하고도 겸손한 태도다. 처남이 잘못한 사람 앞에 두고 잘한 사람이 벌받는 모습을 보여서 사람 마음을 더욱 불편하게 하는 작전을 쓰고 있는 것 같아 철수는 안절부절못한다.

“보면 모르요? 담배 피우고 안 있소.”

말투에서부터 배어나오는 철수 불편한 심경은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혹은 알아도 모른 척하는 것임이 분명하게,

“댐배는 몸에 해로워.”

철수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제가 시방, 몸에 해롭고 안해롭고를 따질 상황이 아니잖아요, 형님.”

“밥은 묵었는가?”

이 판국에 밥 생각이 나겠느냐고 하려다보니 아까부터 배가 고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곧바로, 밥은 먹어 뭐 하랴 싶어,

“밥 생각도 없네요.”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이고, 엄중한 상황이니만큼 자네라도 기운을 차려사 쓰제애. 안에 누구 있는가?”

사람이 사흘이나 의식을 못 찾고 있으니, 처남 말대로 엄중한 상황인 것은 맞다.

“누님도 있고, 방금 미란이 부부가 들어갔구만요.”

“그려? 그러면 자네는 나랑 가서 밥을 먹세.”

손윗처남의 손이 제 어깨를 돌려세우는데 풀 먹인 광목처럼 왠지 모르게 뻣뻣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다. 순대국밥을 가운데 놓고 마주앉긴 했지만, 두 사람 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자네, 술 한모금 헐랑가?”

‘의식없이 누워 있는 사람 놔두고 술을 입에 대고 싶지는 않다’고 해야 옳을 줄은 아나, 처남의 술 얘기에 마음에 남아 있던 뻣뻣한 기운이 급격히 사라지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형님이 잡숫고 싶으시면 뭐……”

맨정신으로 국밥 한그릇을 언제 다 먹을까 싶었는데, 술이 나오자 마음이 바뀐다.

“뭐, 안주거리라도 시키시지요.”

“아니, 나는 뭐, 자네 먹는 국물 한숟가락만 있으면 돼야.”

“앗따, 그러지 마시고, 뭐 정식으로 하나 시키시지요.”

“그럴 것 없당게 그러네.”

“형님, 제가 형님 안주거리 하나도 못 사드릴 정도로밖에 안 보이시나요? 제가 그렇게 못났냐고요.”

“알았어, 알았어, 시키께, 시킬 것잉게……”

일단 조용히 하라고 손사래를 친다.

“죄송허네요. 하여간, 저 그렇게 못난놈…… 못나긴 못났죠, 씨부갈.”

국밥이고 뭐고, 술이나 따라 휙 들이켜고 말았다. 술 때문인가. 사는 일의 비애가 급격히 몰려오는 기분인 것은. 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울고는 싶은데, 울어서는 안될 것 같다. 그놈의 체면상 말이다. 철수는 사실, 돈이 없어 시골 낯모르는 이의 집에 공짜로 들어가 사는 일이 그렇게 비애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밖으로 드러낼 만한 비애도 아니었다. 기왕 못난놈 더 못나진다고 태가 날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누구한테 제 비애를 털어놓을 수 있는 입장도, 그럴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라 그저 속으로만 움츠러들고 또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주민들 속으로 어우러져들어간 영희 하는 일에 그 자를 놓았던 것도 어쩌면 그런 제 속을 다른 누구도 아닌 영희가 몰라준다 싶은 서운한 마음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남자가 오죽 못났으면 집 한칸이 없어서 처자식 데리고 시골 빈집을 얻어들어와 사나, 하는 것 같아 동네 사람들과 마주칠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렸던 것이 사실이었다.

“너무 본인을 탓허지 마러. 자네 힘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불가항력적 상황이었잖어. 철거 건도 그렇고, 야 쓰러진 건도 그렇고. 그나저나, 아조 나쁜 놈들이여. 가만 봉게 그놈들은 빨갱이보다 더 나쁜 놈들이드랑게. 내가 허술해 봬도 국가유공자네. 월남 참전용사들도 요번에 국가유공자로 지정을 받았어. 하도 부애가 치밀어서 내가 공장하고 군청을 돌면서 악을 썼네. 내가 이영희 오빠다, 내가 이래봬도 월남전 참전용사 출신 국가유공자다, 나도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어느정도는 기여를 한 사람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당신들이 이영희를 포함하야 주민들을 괴롭히고 무시하는 행위는 법은 물론 도덕적으로도 용납할 수가 없는 사안이다, 이것은 공산주의국가에서도 벌어질 수 없는 천인공노할 짓거리다, 진정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면, 절대로 주민들을 함부로 할 수 없는 법이다…… 자네도 알다시피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나, 이영달이, 하나뿐인 내 동생 영희 오빠가…… 헐 수 있는 것이 암것도 없어서…… 끄윽끅……”

말이 좀 장황해서 무슨 뜻인지 요점정리가 잘 되지는 않지만, 하여간 중요한 것은 처남이 여동생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도우려고 했다는 점이다. 동생을 위해 뭔가를 하긴 해야겠는데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던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오빠’가, 내세울 것 하나 없어 오직 월남 참전용사라는 것 하나 내세우고 사는 오빠가 동생을 위해, 동생을 위해…… 그런데 나는 남편으로서…… 다시 휙, 술이 들어갔다.

철수 목 언저리가 자꾸만 울룩불룩 해쌓는 것이 필시 터져나올 기회만 엿보고 있는 울음덩어리라는 것을 알아서, 아무래도 처남이 선수를 친 것 같다. 철수는 처남의 끄윽끅 하는 울음소리를 견디며 어디다 눈을 둘 데가 없어 식당 선반 위 텔레비전만 쳐다본다. 오늘이 일요일이었던가. 송해가 사회 보는 <전국노래자랑>이 나오고 있다.

남자라는 이유로 묻어두고 지낸 그 세월이 너무 길었어어어어—

출연자가 부르는 노래 중에 유독 남자라는 이유로,라는 구절이 가슴에 와 박힌다. 남자이기 때문에 울 수는 없다, 울어서는 안된다, 안된다, 입술을 깨무는데, 동네 노인들이 ‘천불나 못살겠다’고 했듯이, 철수 가슴 또한 자신에 대한 분노로 들끓어오른다. 영희가 노인들 ‘초롱초롱한’ 눈이 자기만 바라보고 있다고 눈물을 글썽일 때, 세상에서 가장 순한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싸움을 한다며 짠한 표정을 지을 때, 거미를 죽여서 죄로 갈 것 같다는 할머니가 다 있더라며 눈을 반짝일 때, 내가 지금 거미 한마리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다고, 한번도 험하지 않은 세월이 없었지만 그 험한 세월 중에 그래도 지금이 가장 꽃시절이라며 함박꽃같이 웃는 사람들하고 같이 있다고, 그러니 나는 얼마나 복받은 사람이냐고, 힘들긴 하지만 또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인지도 모른다며 방긋 미소지을 때, 길가에 핀 코스모스를 밟고는 “아이갸, 이쁜 꽃을 볼바부렀네” 하더라고, 얼굴 붉어지더라고, 꽃한테 미안해하더라고, 그래서 폴짝 뛰더라고, 폴짝 뛴 할머니 흉내내느라 저도 폴짝 뛰며 어린애처럼 웃던 아내의 그 말들을 왜 다 허투루 듣고 말았을까. 귀기울이고 새겨듣지는 못할망정, 왜 그렇게 생각없는 말들을 내뱉었던 것일까. 목구멍 안에서 또 한번 거대힌 파도가 인다.

“김서방, 우리 영희가 어떤 아인 줄은 안가? 자네도 알다시피 갸가 어떤 아이냐 허먼, 옛날에 원기소라는 것이 있잖았는가. 그것을 한나 어디서 얻었는갑서. 영희한테는 나 포함 오빠가 원래 둘이여……”

언젠가 영희가 죽은 작은오빠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 오빠가 시를 좋아했다고, 윤동주 시인 같았다고. 워낙 시에는 관심도 없고 먹고사는 일하고는 하등 관계없는 ‘시나부랭이’에 열의를 보이는 영희 꼴이 보기 싫어 오빠 얘기하다 결국 또 시 얘기냐? 힐난해서 끝까지 듣지는 못했지만, 하여간 오빠 얘기를 들은 기억은 난다.

“그런디 그 원기소를 끝내 오빠한테 못 줬다고, 어트케 먹고 싶은지, 그것을 못 참았다고…… 굳이 말 안하먼 알도 못헐 일을 그것이 뭔 큰 잘못이라도 된다고…… 우리 영희가 그런 아이여.”

그런 ‘아이’ 영희가 눈을 뜨기만 한다면, 원기소 백통을 사줄 거라고 영달이 울음을 토해내는데, 철수의 술잔 털어넣는 속도는 이제 휙이 아니라 휘리릭이 되었다. 영희가 깨어나면 영달은 가장 먼저 원기소 백통을 산다고 했다. 그러면 나는 가장 먼저 무엇을 할까. 영희가 깨어나기만 한다면, 그런다면…… 얼른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자기가 아내와 뭘 함께하고 싶은지, 뭘 함께할 수 있는지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철수는 깨달았다. 영희가, 꽃 좀 봐, 하면 철수는 꽃보다 먼산을 보았고 영희가 시 좀 들어봐, 하면 철수는 텔레비전을 켰다. 영희가 지붕골 속 참새나 줄을 타고 내려오는 거미나 봉창에 부딪치는 벌을 보라고 하면 별 시답잖은 소리 말라고 야유를 보냈다. 이제 영희가 깨어나기만 하면 꽃도 보고 시도 듣고 참새 거미 벌도 보고 그것이 소리나 몸짓으로 말을 건다고 했으니 정말로 그런가 한번 귀도 기울여보리라고, 정말 그러리라고 결심하는데 목구멍 속 울룩불룩은 이제 거의 터져나오기 일보직전이다. 휴대폰이 울린다. 누나다.

“느그 새끼가 울어싼다, 어딨냐, 빨리 와라.”

텔레비전에서는 ‘참가번호 3번 남자라는 이유로’를 부른 남자가 최우수상을 받고 있다.

“시방 어떤 새끼가 남자라는 이유로 상을 받네, 누나.”

“너는 벌을 받아야 혀어, 그것도 아주 그냥 천벌 감이여어, 이 속창아리 없는 인간아아!”

누나는 거의 절규하고 있다.

“어이, 자네는 뭔 술을 벌받듯이 묵는가. 벌 그만 받고 인나소, 인나.”

처남 영달이 잔뜩 웅크린 철수 어깨를 툭 치자마자 철수는 그만 의자에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집 나간 정직이

 

“성님, 계시요?”

공님은 빈집일 줄 뻔히 알면서 공연히 한번 불러본다. 그날도 공님은 밭에 가는 길에 오명순네 집에 들러 지금처럼 불렀었다. 그날 공님이 영산리 오명순네 집에 들른 이유는, 그 전날 군청 일인시위를 끝내고 장에 들러 사온 사탕 때문이었다. 집에 ‘단것’이 떨어졌단 소리를 얼핏 들은 것 같아, 안 들었으면 모를까 이왕 들은 김에, 언젠가 조카 영식이가 사다준 누룽지맛 사탕이 먹을 만했던 것이 생각나 두봉지를 사서 그중 한봉지를 밭에 가는 길에 가져온 것이다.

불러도 대답이 없기에, 밭일 하러 오며가며 들러서 늘 그랬던 것처럼 먼지는 없어도 머리수건을 벗어 마루 위 먼지를 닦는 시늉도 하고 뚤방 아래 수돗물을 틀어서 목이 안 말라도 물 한모금 먹어보고 그러곤, 일없이 파리를 쫓으며 좀 앉아 있다가 공님은 사탕을 마루에 올려놓고 밭으로 갔다. 공님이 고추밭으로 가는 길에 혹시나 하고 개울 건너 오명순네 밭을 살피니, 과연 오명순은 고구마밭에 엎디어 있었다. 반가워서 공님이 성님, 부르며 다가갔는데, 고구마를 캐는 오명순이 돌아보지를 않았다.

“성님, 왜 불러도 대답을 안허요?”

하고서 오명순 어깨를 툭 건드렸는데 그만 오명순이 한옆으로 배그르르 쓰러졌다. 왕언니, 오명순은 고구마를 캐다 그 모습 그대로 저승길로 떠났다. 호미 끝에 고구마 서너알이 따라나와 있었다.

오명순이 꽃상여 타고 다시는 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나는 날 아침, 그날따라 비가 추절추절 내렸다. 환갑 넘은 오명순 딸의 아이고오 아이고오 곡소리가 빗물 고인 마당에 깔리고 소리쟁이댁 임애기의 사설이 구슬프다.

무정헌 인사 시앙골떠기야, 나럴 두고 뭣이 좋아 혼차 도망을 가느냐

몬차 가먼 염라대왕이 상 주마고 약조를 했드냐아

끙거온 꼬사리는 삶지도 안했는디이 뭣이 급해서 처 몬차를 가느냐

몬차 가는 인사가 나중 사람 자리나 보아주소오, 어이, 시앙골떠기 한잠 자고 보세나이

“우리 이럴 것이 아니고, 시앙골떠기 가는 길 외롭지나 말라고 우끈하게 놀아나 보세.”

노분례의 제안에 김채선이 장구를 치자 이내 오명순의 좁은 초상마당이 잔치마당이 되었다.

젓푸른처원우게뚜루뚜루뚜루그림가튼지블지코사랑허는우릿님과한백년살고시퍼어어머니메소느을노오코도라설때게애부엉새도우렀쏘오나도우렀어쏘오오운다고옛싸랑이오리요오마아는눈물로오달래보는구슬픈이바암……

쿵덕쿵덕 장구가락 하나에 맞추어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고구마밭 한귀퉁이에 오명순을 묻고 와서 또 울다가 노래하다 웃다가 발광을 했다. 그때 이영희가 그랬었다.

“오늘은 이 정도에서 끝내고 나중에 우리가 승리하면 다시 한번 왕언니네집에서 잔치를 하자고요.”

오명순을 그렇게 보내고 얼마 안된 저녁무렵에, 공님은 왠지 낯이 익은 젊은 남자가 한 노인을 업고 오명순의 무덤 앞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 오명순은 늙은 딸만 있을 뿐 젊은 아들이 없는데 누굴까, 궁금해 가만히 들여다보니, 노인은 틀림없이 옛날 주막집 옥화다. 와락 반가워,

“옥화가 여그 뭔 일이여?”

“맹순이성 보러 왔네. 여그는 우리 아들이여.”

어린 아들이 저렇게 나이 먹었구나 하고 다시 보는데, 그 또한 낯이 익다.

“거 머시냐, 우리 디모헐 때 본 형사 아녀어?”

“앗따, 여그서는 그냥 모른 척해주십시오. 엄마가 하도 우리 맹순이성 무덤이라도 봐야겄다고 떼를 쓰시는 통에……”

“오무니한테 떼를 쓴다고 허먼 쓰가니.”

“조르는 통에.”

“말이라도 안허먼 중이나 간게 암말 허지 말어.”

강형사가 부끄러워하며 밭가 나무 뒤로 돌아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고, 담배는 몸에 해롭다는 말을 하려다 그만두고,

“집이 오마니한테도 댐배 한나 주소.”

하고 말았다. 나무 뒤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먼 하늘을 쳐다보고 섰는 것이 영락없이 서울 왕십리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아들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 아들도 저러고 건물 귀퉁이 같은 데 돌아서서 담배를 피우겠거니 싶어서 마음이 짠해졌다. 공님은 예전에 옥화가 주막을 할 때 동무 못해준 것이 미안해서, 담배동무나 해주자 하고 평생 안 피우던 담배를 옥화하고 나눠 피우고 술도 나눠 먹고 노래도 한자락씩 나눠 불렀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후련해져, 남은 담배와 막걸리를 두고 가라 해놓고 자기는 밭에서 이것저것 따고 뜯어서 한봉지 들려주고 나니, 그제야 오래 묵은 체기가 내려가는 것같이 마음이 가벼워졌다.

가을 가고 겨울 지나 다시 봄이 오는 동안 오명순네 집은 눈에 띄게 수척해지고 고적해졌다는 것을 공님은 금방 알아보았다. 그대로 놔두면 오명순네 집은 내가 언제 이 세상에 있기나 했더냐 싶게 폭삭 사라져버릴 것임을 알기에, 공님은 오늘도 밭에 가다 말고 일없이 들러 그냥 한번 불러보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서 빈집에 사람의 훈기를 불어넣어주고 싶은 것이다.

“성님, 그놈들이 아조 우리를 잡아묵을라고 작정을 헌 모양이요. 우리 윈장이, 길국에는 씨러져부렀소. 존일 헌다고 성님이 좀 굽어 돌봐주소사, 내가 요러고 빌고 또 빌랑게, 지발직신에 성님이 쪼까, 우리 불쌍헌 윈장을 자알 따독거려주소사……”

오명순이 저승사람이 되고 이영희 위원장이 쓰러지는 동안에도 돌공장은 쉼없이 돌아간다. 이 집에서 잔치를 할 날은 언제나 올까, 한숨을 포옥 내리쉬는 참인데, 바로 눈앞에서 장다리꽃이 화들짝 피어나고 있다. 아니, 꽃은 진작에 피어 있었는데 바람이 건듯 불어 꽃이 흔들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님은 방금 꽃이 자신의 비원에 화답한 것만 같다. 꽃술 위에 앉아 졸고 있던 나비도 화들짝 날아오른다.

“꽃허고 나비가 성님을 대신해서 약조를 했응게로 그러면 그렇게 믿고 나는 밭에 일허러 갈라요이.”

해놓고 공님은 오명순네 집을 나와 밭으로 오르는 산길을 가는 중인데, 전화 왔어요 전화 받으세요오, 하는 소리가 난다. 지난 설에 막내딸이 사주고 간 휴대폰이다. 벨소리가 하도 요망스러워 전화 왔다는 소리가 나도 뉘 집 전화가 우냐, 하고서 전화기만 가만히 들여다보고는 했는데, 이제는 제법 철커덕, 능숙하게 받을 줄도 알게 되었다.

“여보시요?”

“엄마 난데애. 엄마 지금 뭐 해?”

“나 시방 밭에 간다.”

“엄마 요새는 데모 안허지?”

“디모? 그것이 그렁게, 으흐.”

“엄마 웃었어?”

딸한테는 공님한테서 나오는 희한한 소리가 웃음으로 들리나보다.

“웃제 울겄냐이.”

“엄마 뭔일 있구나?”

“그것이 그렁게……”

그러나 차마 말이 안떨어진다. 속으로만,

‘느그 엄마가 시방 죄인 신분이 되어서 곧 재판소를 가야 쓴단다.’

“그것이 그렁게, 뭣이여?”

“아녀어, 다들 핀치야?”

“그렇지 뭐. 근데 엄마, 영식이 오빠가 요새 군수 나온 사람 선거운동 한다네. 그래서 혹시라도 엄마 데모 나가느냐고, 못 나가게 하라고 또 전화왔어. 자기가 말하면 안 들을 것 같다고. 혹시라도 알아? 오빠가 미는 사람이 군수 되면, 우리한테도 좋은 일 생길지? 그러니까 엄마, 데모하는 데는 절대로 나가지 말어, 알았지? 이건 비밀인데애, 오빠가 미는 사람이 누구냐며언, 오빠 회사 오너라네. 그니깐, 돌공장 사장은 바지사장이고 군수 나온 그 형이라는 사람이 실질적 주인인 거지. 엄마, 근데 왜 아무 말도 안해? 내 말이 좀 어렵지?”

“니가 말허는데, 중간에 내가 어찌고 말을 혀.”

“알았어, 엄마. 하여간 엄마 데모 안 나갈 걸로 알고 있을 테니까, 엄마도 그렇게 알고 있어, 알았지? 아, 그리고 엄마, 고춧가루가 다 떨어졌네? 고춧가루 좀 보내줘. 사먹는 건 도대체 믿을 수가 없어. 왜 아무 말 안해, 엄마? 아유, 돈 보낼게애.”

누가 돈 줘야 고춧가루 보낸다고 했나. 막내딸의 돈 보내준다는 말이 공님은 아주 징그럽다. 돈은 주면 좋고 안 줘도 상관없었다. 그저 내가 농사지은 것 자식들이 잘 받아서 잘 먹어주면 그것만으로도 좋고 고마울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막내딸은 이쪽에서는 하지도 않았는데 걸핏하면 돈 말을 한다. 알았어, 알았어, 돈 주면 될 거 아냐. 그 말이 거슬려서 하루는,

“아이, 자식한테 묵을 것 보냄서 어느 부모가 돈 욕심을 낸다냐. 그런 방정맞은 입초실랑은 놀리지를 마러라.”

했더니,

“엄마, 좀더 솔직해지면 안돼? 돈이 좀 작다,라고 한달지, 뭐 그렇게.”

하던 것이었다. 억장이 무너져서, 당최 아뭇소리도 안하고 싶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어쩌다 내 자식이 저렇게 변했나, 울고만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야말로 공님이 자식들한테 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때가 왔는지도 몰랐다. 그 말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돈 얘길랑은 꺼내지도 말라고 한 지가 언젠데, 자신이 먼저 돈 얘기를 꺼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공님의 목구멍에서 웃음도 아니고 울음도 아닌 이상한 소리가 시도때도없이 나오곤 하는 것이다. 영악한 막내딸은 공님에게 이런 날이 올 줄 미리 알고서 그렇게 돈 얘기를 했던 것일까. 돈을 얼마나 보낼지는 몰라도 일단은 돈을 보내준다 하니, 고춧가루도 보내고 말은 안했지만 참기름도 보내고 싶은데, 아차, 하필이면 고춧가루가 동이 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난달에 큰아들 집에 싹 그러모아 보낸 것이다. 이제 겨우 지주 세우고 있는데, 새 고춧가루 나오려면 아직 멀었다. 더군다나 돌공장 먼지 때문에 고추농사든 깨농사든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식들은 알고나 있을까. 혹시 알고도 모른 척하는 것은 아닐까. 공님이 ‘죄인’이 된 것은 사실 자식들 탓이 컸다. 평생 기 한번 못 펴고, 하고 싶은 말 한마디 못해보고 살다가 돌공장 덕분에 몸도 고달프고 울화통도 치미는 것이 사실이지만 또 그 한편으로는 죄지은 것 없어도 한번씩 드나들 때마다 오금이 졸아들던 관청에서 데모라는 것도 해보고 데모하면서 가슴에 맺혔던 설움도 토해내보고, 나도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아가는 재미도 있었는데, 그런 제 속도 모르고 자식들이 반대를 놓으니, 없던 어깃장이 생기던 것이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앞장서서 돌공장 트럭을 가로막고 몇마디 퍼부었던 것이 오늘날, 자신을 죄인으로 만들 줄이야. 돌공장이 자기를 죄인으로 만든 줄도 모르고 막내딸이 속없는 소리를 하니, 고추밭 올라가다 말고 공님은 그만 목놓아 울고만 싶다. 돈 말은 하지도 말라고 해놓고 돈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게 속상하고, 늙은이를 기어코 판사 앞에 세우는 법이 무섭다. 정작 죄 있는 사람들은 돈 버느라 다갈다갈 쿵쿵거리고 있는데, 죄 없는 자기는 산비탈 고추밭 올라가다 말고 속시원히 울지도 못하고 꾸적꾸적 눈에 눈물을 달고 있는 것이 서러운데, 푸드덕 하고 이 산에서 저 산으로 꿩이 날아간다.

 

꿔엉꿔엉 장서방아 멋을 묵고사냐

아들집에 콩 한섬 딸네집에 한섬

그작저작 묵고사네

 

소리쟁이댁 밭너머 쪽에서 화답하는 노랫소리가 건너온다.

 

용수막이 공님이야 뭔 느리를 보겄다고 고치를 숭겄는가

저 건네 돌공장 땀새 용수막떠기가 죽어불면

용수막떠기 고치로 돈을 사서 맛난 괴기를 사묵세

 

폭폭한 심사이기는 마찬가지인 을자동댁 노분례 목소리다.

“클클클, 지랄딴스춤을 춰라. 아나, 돈이다, 아나 괴기다, 썩을.”

둘 다 허리를 펴고 깔깔 웃는 참인데, 비가 오기 시작한다.

“용수막떠기, 니얼이 장이네이. 돈 사서 괴기 사묵세이.”

노분례가 끝까지 장난을 치며 산밭을 내려간다. 하기야 장에 가야 돈을 사고 돈을 사야 고기를 사먹을 수 있을 것이다. 내일 장에 들고 나갈 것이 뭐가 있을까, 궁리하느라 내리는 비를 홀딱 맞고 집에 돌아와 보니, 조카 영식이가 기다리고 있다.

“하따, 고모, 뭔 비를 이렇게 맞고 돌아댕기요.”

“비 맞응게 션허니 조타!”

심사가 불편해, 맘에도 없는 소리가 퉁 나온다.

“우리 맘씨 고운 고모가 어찌 오늘 쫌 컨디션이 안 좋그만.”

“왔응게 밥 묵고 가라.”

“고모, 내가 요새 좀 바뻐.”

모른 척하고,

“바뻐야 묵고살제. 느그 새끼들은 어쩌냐.”

“새학년 되고 나서 큰애가 영어를 백점을 맞고 왔드만요. 막내가 울어싸서 쪼까 문제지, 위에 큰것들은 좋아. 막내도 아직 어려서 그렇지 내가 볼 때는 괜찮아. 고모, 내가 사실은 고모한테 뭔 부탁 하나 하려고 왔어.”

“아이, 영식아, 느그 작은누이가 고칫가리 조까 보내도라 허는디, 나는 고칫가리가 딱 떨어져부렀다. 혹간에 느그 집에 고칫가리 잠 남은것 없냐?”

“나도 사서 묵는디, 뭣이 있겄소? 갸도 그냥 사서 묵으라고 허씨요, 거. 도시사람들은 참말로 요상혀. 시골서 오는 것은 다 존 것인 줄 아나봐요이. 요새 도시 가면 진짜 존 것 많드만. 촌사람들 성가시게 자꾸 뭘 그렇게 달라고 해쌌나 몰라, 참.”

혀를 끌끌 찬다.

“그렁게나 말이다. 아이, 밥묵어라.”

“내동 바쁘당게 그러네. 고모, 다음달 2일에 투표날인 거 알지라이. 다른 것은 몰라도 군수는 요 사람을 찍으씨요. 인물을 좀 봐바, 훤허게 생겼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캬아, 고모, 기호 5번, 정직한 일꾼 김봉철 후보를 낼 장에 꼭 나와서 보씨요이.”

영식이 건네는 종이를 보니 기호 5번 김봉철은 이마가 훨떡 벗겨진것만 훤허고 눈이고 코는 오종종하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정직한 일꾼

김봉철과 함께

공정한 나라로 갑시다!

 

“아이, 영식아, 귀 잠 장 요리 대봐라.”

“왜라우?“

영식이 목소리도 덩달아 작아진다.

“저그 밭가상에 정직이란 아가 살았단다. 그런디, 갸가 집을 나가 돌아오지를 않는다네. 갸를 찾을라먼, 어찌 해야 허느냐고 밭가상이서 그집 아부지가 목놓아 울고 있드라.”

“거참, 안됐구만이라우. 하여간 고모 낼 장에 꼭 나오씨요이.”

부리나케 나가다 돌아보며 고모 화이티잉! 하고 씩 웃는 영식의 뒤에 대고 나지막하게, 지랄용천발광허고 사니라고 애쓴다, 해놓고 공님은 언제나 그랬듯이 어둠속에서 후지럭후지럭 늦은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불타는 신발

 

해정이 비어 있는 오명순 할머니네 집으로 이사하던 날은 하필 비가 내렸다. 서울 딸네 산바라지 하러 갔던 경희엄마가 다시 시골집에 돌아온 터라 그동안 머물던 경희 집에는 더 있기 어렵게 되었던 것이다.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그 말이 생각났다. 해정이 조그만 단칸 토담집을 둘러보며, 어머어머 소리를 연발하자, 왕언니 오명순 할머니가 한 그 말.

“나 죽으면 이 집에 니가 와서 살아라.”

그 말을 들을 때는 이런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 죽으면 쥐가 먼저 파고 살고 새가 먼저 파묵고 살고 바람이나 희희낙락 드나들 것이니 먼저 드는 것이 임자라며, 오명순이 클클클 웃었었다.

“집도 그렇고 과부도 먼첨 차지허는 놈이 임잔디 말여이.”

하고 클클클 웃었던 것이, 그 말을 하려던 것임을 듣고 나서야 해정도 뒤늦게 따라 웃었었다. 그게 정확히 작년 이맘때였다. 마당 한귀퉁이 돌담장 앞 텃밭에 피어난 장다리꽃도 작년의 그 꽃이다. 돌담장 너머 가죽나무에 돋아난 푸른 가죽잎, 가죽나무 위에 얹혀진 오래된 새집. 그리고 마당 가득히 깔리던 자우룩한 저녁연기. 그때 해정은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그 두께를, 깊이를, 무게를 헤아릴 길 없는 도저한 고적과 적막한 생애 앞에서 무슨 말을 꺼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아프다는 표현조차 닿을 수 없는 막막한 느낌에 다만 몸을 좀 떨었던 것도 같다.

“앗따, 저놈의 다글다글 우르릉 쿵쿵거리는 소리가 나는 꼭 아무 죄없는 우리 아그들 뚜드러 패는 소리 같당게. 아이구메, 우리 새끼들 다 죽겄네 싶어서 내가 그냥 맘이 조마조마혀.”

‘우리 아그들’이란 어떤 아이들을 말하는 것일까. 아흔 노인이니, 당신의 ‘아이들’ 또한 이제는 노인이 되었을 것이고, 그 아이들의 아이들 또한 더이상 아이는 아닐 것인데. 해정은 나중에야 알았다. 아흔 노인에게 ‘우리 아그들’이란 ‘세상의 모든 아이들’임을. 세상의 모든 어린것, 여린것, 약한 것…… 채석장과 돌공장에서 나는 소리가 아이들 때리는 소리 같다고 말하는 소처럼 순한 ‘어머니 오명순’의 눈에서 꾸적꾸적 눈물이 배어나오는 것을 바라볼 때, 내가 저 눈물을 닦아주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비장한 결심을 한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서해정인데, 누가 본 것은 아니지만 하여간 그랬던 것이니, 머물 거처 없다고 순양을 떠날 수는 없는 ‘입장’이 된 것인데…… 글 쓰겠다고 시골 찾아온 서울사람임은 변함이 없지만, 그래서 여기 일은 여기 사는 사람들이 알아서 하시오, 하고서 훌훌 떠나버려도 뭐라고 할 사람 없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고 그럴 수 없는 것인데…… 그렇게 떠나고 나면, 앞으로 글을 쓰고 살든, 다른 일을 하고 살든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이곳이 시끄럽다고 다른 곳으로 가면, 거기서의 삶이 과연 고요할 수 있을까 싶어 떠나지 못한다는 이영희의 말이 이제야 좀 이해되려던 참인데…… 그러니 아직 순양을 떠날 수 없는 것인데…… 오래 고민할 이유는 없다고 결론내리고 해정은 이삿짐을 쌌다. 짐이라야 그저 서울에서 가지고 와서 경희 집에 부렸던 트렁크 하나가 전부였다. 그러나 비가 와서였을 것이다. 석현이 이사랄 것도 없는 이사에 그렇게 잔뜩 우거지상을 했던 것은. 다른 건 아니고 그저 날씨 때문일 것이라고 해정은 믿고 싶었다. 그래서,

“원래 시골이, 비가 오면 그래. 땅도 질척거리고, 날파리도 끓고. 그러다가 해 한번 나봐. 아주 그냥 죽여주지.”

정작 도회지 출신인 자신이 시골 출신인 석현에게 시골을 설명하려 들기까지 했었다. 해정의 상상 속에서는 이사하는 날 석현과의 다툼 같은 장면은 설정되어 있지 않았다. 석현은 말없이 제 차로 트렁크를 옮겨주고 나서 차 속으로 쏙 들어가서는 나오지를 않는다. 부글부글 끓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켜가며, 트렁크 속 짐들을 전날 미리 봐놓은 자리에다 꺼내 정리하고는 마루에서 석현의 차를 가만히 바라보고 앉았다. 그렇게 한사람은 차 속에서 한사람은 마루에서 대치 아닌 대치를 하는 침묵의 시간을 반시간쯤 보냈다.

해정은 석현이 차에서 나오기를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 없어서 부엌으로 가 밥을 했다. 노인 혼자 살았던 집이라, 부엌은 옛날 ‘원시적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검은 그을음, 시커먼 아궁이, 대나무로 만든 찬장, 쌀뒤주가 고요히 해정을 지켜보았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한번도 아궁이에 불을 때본 적이 없었다. 자신이 이런 모습의 부엌에서 밥을 짓는 날이 오리라고는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혹시 상상을 했다면 이런 데가 아니라, 최고급은 아니라도 인조대리석 씽크대와 조리대가 좀 넓고 개수대 위에 창이 달리고 이왕 창 달린 김에 창 너머로는 푸른 숲 정도는 아니어도 나무나 꽃이 조금은 내다보이는 정도의 부엌을 상상했을 수는 있다. 미장원에서 머리를 자르며 들여다본 여성잡지의 화보 같은 것을 보면서 잠깐씩 그런 상상을 했을 수는 있어도, 자신이 이런 순 오리지널 원시 부엌에 퍼질러 앉아 나무를 분질러 아궁이에 처넣으며 부지깽이 들고 장단을 맞출 줄은 정말 몰랐다. 이왕에 골 난 인간 더 골이나 내주자 하고, 해정은 비록 거위가 꽥꽥거리는 소리 못지않은 발성법으로나마 할머니들한테 배운 육자배기 한소절을 불러젖히기 시작했다.

꽃같이 고운 님은 열매같이 맺어주고 가지같이 많은 정은 뿌리같이 깊건만은……까지 하다보니, 혹시 고운 님이 석현인가? 싶어 갑자기 비위가 상해온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서 맘대로 불러젖히기로 했다.

장석현아 장석현아, 골이 났냐, 골이 나, 뭔 일로 골이 났냐

니가 골이 나면 너만 손해, 서해정이한테는 소용없다

허허어, 허허, 오야 에이로구나 헤

아무렇게나 부른 노래가 그래도 효험이 있었나 보다. 석현이 부엌문밖 토방에 주저앉아, 해정을 째려보고 있다.

“왜? 멋있어?”

“퍽도 멋있다.”

“멋있으면 됐지 뭐가 불만인데?”

“우리 좀 진지해지자.”

“당신은 진지 드시고 나는 밥을 먹을게.”

진심으로 진지하고 싶지 않아서 한 말이 아니었다. 딴에는 부드러운 분위기 좀 만들어보자고 나온 것이 분명한 순간적 ‘드립’이었다. 석현의 표정은 이제 골이 난 정도가 아니라, 분노의 빛마저 어리고 있다.

“당신 화에 화답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밥을 먹어야 쓰겠네.”

할머니들이 흔히 하는 말을 흉내내며 해정은 그동안 할머니들한테 배운 대로 밥 위에다 계란을 쪄내고 할머니들한테서 얻어온 김치를 꺼내 밥을 먹기 시작했다. 고요한 가운데 돌공장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 사이사이에 질세라, 뚜르르르, 지렁이가 운다.

“뚜르르르 하는 저 소리가 뭔 소린지 알아?”

“귀뚜라미지 뭐야. 하여간, 귀뚜라미고 뭐고 애초에 당신 시골 내려온 동기가 뭐야?”

속으로, ‘지금이 봄이냐, 가을이냐’ 소리가 절로 나오지만 꾹 참고,

“글 쓰는 거였지.”

“썼어?”

“아니.”

사실 글을 못 써서 해정은 지금 출판사로부터 계약금 반환요청까지 받은 상태다. 얼마 전 독촉전화가 왔다.

“소설은 다 되어가고 있지요?”

“그게, 그러니까 말이죠.”

“예, 뭐 필요한 자료라도 있나요?”

“아니, 그게 아니고요, 사실을 말하자면, 막상 자연 속에 살아보니, 사람이 자연에게 상처를 줘서 위로받을 자연이 시방 아주 아작이 난 형편에……”

“그러니까 아직 글을 완성하지 못하셨단 말씀이군요?”

“저어, 이번 소설은 도저히 쓸 수 없을 것 같아요. 혹시, 돌공장 땜에 싸우는 사람들 이야기라면 몰라도.”

“싸움, 투쟁이요? 여보세요, 서해정씨, 그렇잖아도 상처받은 사람들 투성인데, 거기에 또 싸움하고 투쟁하고 미워하고 할퀴어서야 되겠습니까? 따뜻하고 위로하고 치유하고, 얼마나 좋습니까. 애초에 우리가 서해정씨하고 계약할 때도, 자연 속에서 치유받는 사람의 따뜻한 이야기라는 데 공감을 해서, 검증이 안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계약을 했던 것 아닙니까?”

“그것이 그러니까, 다른 누구보다도 제가 따뜻하고 위로받고 치유되고는 싶은데, 그런 상황이 현실적으로 좀 어렵구만요.”

순양에 살다보니 순양말이 절로 나온다.

“알았습니다. 그러면 뭐, 이번 계약은 없던 걸로 하지요. 계약금은 빠른 시일 내에 반환해주십시오.”

당장 계약금을 돌려줘야 할 판국이라 속이 좀 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에게 받은 상처를 자연에서 치유받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있기에는 자신이 목격한 ‘자연 속에 사는 사람들의 현실’이 좀 ‘거시기’하다는 말을 어떻게 전할 방법이 없었다. 말로 어떻게 설명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거시기’하고 ‘머시기’한 현실을 놔두고 다른 얘기를 쓸 자신이 없었다. 지금 사정이 그렇다는 것을 출판사한테가 아니라 남편한테까지도 설명을 하려니, 숨이 절로 차올라 해정은 그저 밥만 퍼넣는다.

“밥이 맛있냐?”

“당신, 우리 언니 알아?”

외동딸인 해정에게는 언니가 없다.

“없는 언니라도 생겼어?”

“이 집에 살던 아흔세살 먹은 오명순 언니를 당신이 알아?”

“나야 당연히 모르지. 그런데, 아흔셋 노인한테 언니가 뭐냐, 버릇없게.”

“설명하려면 복잡해서 안하는 건데, 우리 아흔셋 왕언니를 모르고, 우리 위원장 언니를 모른다는 건 당신이 나를 모르는 것과 같은 거야. 지금.”

하는데, 목이 콱 메어온다.

‘아흔셋 언니는 이세상에 없고 위원장 언니는 사경을 헤매고 있어. 그 사람들 두고 나 여기 못 떠나. 더군다나, 내일은 또 칠십 노인들이 재판정에 서. 나 그 노인들 두고 여기 못 떠나.’

해정은 더이상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석현이 물을 떠다준다. 그래도 영 몰인정한 인간은 아니구나 싶어, 좀 부드럽게 물었다.

“아까 운 게 귀뚜라미가 확실해?”

“그럼 아냐?”

속으로, ‘무식이 하늘을 찔러요, 아주’ 소리가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이영희를 비롯해 노분례, 김공님, 박석택, 김기택이 돌공장 영업을 방해해 손해를 입히고, 도로를 차지하고 데모를 하여 일반 교통을 방해하고, 돌공장 사장 동생인가 뭔가 하는 자한테 너는 부모도 없느냐고 악을 썼다고 약식기소되어 벌금형을 받았다. 벌금형 받은 것이 억울해 정식재판을 해달라고 해서 열리는 재판이다. 박석택 이장은 예식장 갈 때나 입는 양복을 입고 나왔다. 같은 피고인 신분인 노분례가,

“아조 그냥 자르르르 허네.”

“새장개나 한번 가볼라요.”

박이장은 자기 대답에 자기가 얼굴을 붉힌다. 피고인들은 앞자리에 앉고 해정과 마을사람들은 방청석 의자에 앉아 있는데 판사가 입장하자 일어서라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 일어서는데 한사람이 못 일어나고 앉아 있다.

“피고인, 일어나주세요.”

피고인, 노분례가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 순간, 판사가 자리에 앉았다.

“모두 앉아주십시오.”

소리와 동시에,

“나는 인자사 포도시 인났어라우.”

“앉아주시라니깐요.”

“금방 앙그라고 헐람서 뭣 할라고……”

금방 일어섰다 금방 앉기는 더욱 힘들어한다. 노분례 피고인 입에서 아구구 소리가 터진다.

“박석택씨.”

박석택이 일어섰다.

“노분례씨.”

노분례가 일어서야 하나,

“처 염병을 허네애.”

딴에는 조그맣게 한다는 소리가 앞까지 들렸던가보다.

“노분례씨, 일어서라고 해도 일어서지 않아서 아까부터 제가 유심히 봤는데, 법정에서 그러시는 것 아닙니다. 아시겠지요? 법정 내에서 재판장의 법정질서 유지명령을 위배할 시에는 법원조직법 611항에 의거 20일 이내 감치 또는 백만원 이하의 과태료……”

살이 떨린다는 것은 바로 이런 때, 이런 느낌이 올 때 쓰는 말인지 모른다. 해정이 떨리는 가슴을 붙안고 벌떡 일어나,

“재판장님, 이건 아니잖아요. 노분례씨가 언제 재판장님의 법정질서 유지명령을 위배했으며……”

“만약 위배할 시에는 그렇다는 것을 미리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방금 말씀하신 분 성함이?”

“서해정입니다. 재판장님, 이왕 제 이름을 물으셨으니, 제게 잠시만 발언권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재판장이 이영희 발언권 신청을 무시하고, 판결문을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피고인 박석택의 업무방해 및 일반교통방해의 점. 피고인 박석택은 200852610시 경 순양석재 쇄석기설치가동 반대집회에 참가한 주민 100여명과 함께 순양석재 정문 앞에 집결하여 위 회사 정문 앞 도로를 전면 점거하고 ‘순양석재 쇄석기 설치 결사반대’라는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머리띠를 두르고 ‘유정면민은 순양석재 쇄석기 설치를 결사 반대한다’라는 구호를 외치고 같은날 18시경까지 연좌시위를 전개하여 위 회사 쇄석운반용 차량의 진·출입을 막았다. 이로써 피고인들은 공모하여 위력으로써 피해자 순양석재의 쇄석 생산 및 운반 등 업무를 방해함과 동시에 위 차량들의 소통을 불통하게 한 것을 비롯하여 별지 범죄일람표 기재와 같이 2008915일부터 2008115일까지 같은 방법으로 위력으로써 위 회사의 업무를 방해하고 회사 앞 도로를 불통하게 하여 교통을 방해하였다.”

바로 그 순간, 해정의 뒤에서 벽력같은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뭔 요따구 재판이 다 있다요? 앞에 선 사람들은 죄인이 아녀. 진짜 죄인들은 이 시간에도 불법으로 공장 가동허고 있는 순양석재고 불법가동을 묵인허고 있는 군수 이하 공무원들이여. 그런디 거그다 대고 항의 좀 했다고 죄 없는 사람들을 재판정에 세우는 요따구 나라는 뭔 나라여 엉, 뭣이 어쩌고 어쪄? 지랄염병들 허고 자빠졌네. 이러면……”

악을 쓴 이는 다름아닌 평주리 사는 이학수였다. 역시 자기 자식들 데모할 때 재판정에 많이 다녀본 가락이 있어 저런 악이라도 쓴다고, 임애기 할머니가 해정에게 귓속말을 한다. 이학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디선가 제복 입은 법원경위들이 득달같이 나타나 그를 법정 밖으로 끌고 나간다. 끌려나가면서도 이학수는 악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군사독재정권의 시녀인 재판부는 각성하라!”

“어르신, 군사독재정권 끝난 지가 언젠데 그러십니까. 자아, 나가십시다, 나가요.”

“법정 내에서 폭언 소란 등의 행위로 심리를 방해하거나 재판의 위신을 현저하게 훼손하는 행위를 할 시에도 20일 이내 감치명령 또는 백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해집니다, 아시겠지요? 에애, 피고인들의 업무방해 일반교통방해의 점……은 했고, 다음 피고인들의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위반의 점. 위 순양석재 쇄석기설치 반대대책위원회는 2008523일 순양경찰서에 피고인 박석택 명의로 2008521일부터 921일 사이에 매일 일출에서 18시까지 순양군 유정면 진평리 순양석재 앞 폐도에서 집회를 개최하겠다는 취지로 집회신고를 마쳤다. 피고인 박석택은 위 집회의 주최자이고 피고인 김기택은 위 집회의 질서유지인인 바 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 질서유지인은 신고한 목적, 일시, 장소, 방법 등의 범위를 뚜렷이 벗어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됨에도 불구하고……”

“집어쳐라, 집어쳐.”

박석택이 소리쳤다. 국선변호인이 악을 쓴 박석택에게 자제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피고인 박석택, 김기택을 비롯하여 별지 범죄일람표 1 내지 19번에 기재된 바와 같이 집회의 주최자 및 질서유지인으로서 당초 신고한 장소, 방법 등의 범위를 뚜렷이 벗어나는 행위를 하였다. 피고인 김기택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공동상해의 점. 피고인은 200852812시경 순양석재 앞에서 위 집회에 참가한 주민 팔십여명과 함께 회사 정문 앞 도로를 전면 점거한 채 ‘순양석재 쇄석기설치 결사반대’라는 내용의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머리띠를 두르고 ‘유정면민은 순양석재 쇄석기 설치를 반대한다’라는 내용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하였다. 당시 피고인 및 집회에 참가한 성명불상자들은 위 순양석재의 상무인 피해자 김순철이 위 시위장면을 사진촬영하는 것을 발견하고 위 성명불상자들 중 1인이 피해자에게 ‘네가 뭔데 사진을 찍느냐, 죽여버린다’라는 취지로 욕설을 가하며 피해자의 가슴 부위를 한차례 때려 피해자를 넘어뜨렸다. 위 성명불상자들은 넘어진 피해자를 발로 걷어차 피해자에게 약 4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좌제4늑골골절상을 가하였다. 이로써 피고인은 성명불상자들과 공동하여 피해자에게 상해를 가하였다. 피고인 이영희의 모욕의 점. 피고인은 2008529일경 위 순양석재 정문 앞 노상에서 마을 주민들과 함께 쇄석기 가동 중단을 요구하면서 회사로 출입하는 차량을 막는 등의 시위를 하던 중 위 회사 직원인 김영탁과 피해자 김순철이 시위장면을 촬영하는 것을 발견하고 초상권 침해를 이유로 거론하며 피해자를 모욕한 바……”

“순 거짓부렁이다.”

“이것은 재판이 아녀. 순양석재 놈들한테 놀아나는 거여.”

“요런 재판은 받을 필요도 없어.”

일부는 이학수를 따라 나가고 앉아 있던 주민들이 소리치는 가운데 판사가 긴긴 판결문을 다 읽어내리고 나서 인정머리라고는 하나도 없는 표정과 말씨로 선고를 ‘때렸다’.

“피고인 박석택에게는 벌금 이백만원, 피고인 김기택에게는 벌금 백오십만원, 피고인 이영희에게는 벌금 백만원, 피고인 노분례, 김공님에게는 각 벌금 팔십만원에 처한다. 피고인들이 위 벌금을 납입하지 아니하는 경우 각 5만원을 1일로 환산한 기간 피고인들을 노역장에 유치한다. 피고인들에게 위 벌금에 상당한 금액의 가납을 명한다.”

판사가 판결을 때릴 때, 해정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임애기가 겨우 붙잡고 섰다가 너무 힘들어, 판사가 단상을 내려가자마자 둘다 선 자리에서 그대로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 순간을 놓치면 안되는데, 안되는데, 일어설 힘이 없다. 당신이 벌금형을 때린 이영희가 지금, 지금…… 하려는데 목이 잠겨 말이 잘 안 나와서 답답한 마음에 우선 손에 닿는대로 해정은 신발을 벗어들었다. 해정의 신발을 누군가 나꿔채더니 마악 법정을 나서는 판사의 뒤통수를 향해 힘껏 던지는데, 던지는 솜씨가 심상찮아 돌아보니 낯익은 남자가 일부러 그러는 게 역력하게 딴청을 부리며 씨익 웃고 있다. 판사는 자신의 뒤통수를 친 신발을 주워들고 경위를 목놓아 불렀다. 판사가 나가는 줄 알고 자신들도 법정을 나가다 말고 경위들이 뒤늦게 짓쳐들어오는데, 우루루 빠져나가는 방청객 속에서 해정은 누군가의 조용한 읊조림을 들었다.

“신발에 불이라도 붙은 거여? 왜 저리 방방 뜨는 거여? 판사가 체신머리없게시리.”

 

 

혼엄마의 노래

 

어서 오라고 아무리 채근해도 내 혼이 황천강을 선뜻 넘어서지 않자 이제 저승쪽 사람들도 나를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저승도 그러한데, 이승마저도 이제는 희미해질대로 희미해져 황천강으로 흐르는 은하수에 막 내 혼을 실으려는 찰나, 먼 데서 귀에 익은 목소리, 눈에 익은 형상이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영산리 살던 시앙골댁이다. 시앙골댁이 별스럽게 이쪽저쪽을 살피며 나 있는 데로 날아오고 있다.

“시앙골떠기, 아니시요?”

“아이고 무수굴떠기, 이승 뜬 지가 언젠디, 오도가도 않고 어찌 여가 요러고 있는가? 저짝에서 누가 못 오게 막는가?”

“저짝에서는 어서 오라고 채근허는디, 이쪽이 눈에 밟히고 맘에 걸려서 시방 여가 요러고 있은 지가 얼매나 됐는지 나도 모르겄소.”

“그것이 시방 긍게 그런갑만이. 내가 저승길 초보라!”

시앙골댁이 내 옆에 사뿐이 내려앉았다. 저승길 초보라, 저승쪽 사정을 좀 가르쳐달라는 것이리라.

“누구는 누가 갈쳐줘서 알았간디. 앉아 있으면 저절로 알아질 것인게, 너무 안달을 허지 말고, 오랜만에 만났으니 어디 노래나 한자리 해보씨요.”

혼사람들이 노래 좋아한다는 것을 저승 초보 시앙골댁이 알 리 없다.

“호랭이 물으갈, 노래를 해야 갈쳐준다는 것이여 뭣이여? 저승길 먼저 왔다고 유세를 허는 것이제, 시방.”

말은 그렇게 해도 싫지는 않은 기색이다. 댓바람에,

 

다리 아파 넘던 고개 꽃가매가 넘어오네

배가 고파 넘던 고개 이바지꾼이 넘어오네

님 그리워 넘던 고개 옥과기생이 넘어오네

목이 몰라 넘던 고개 탁주병이 넘어오네

디모 허다 넘던 고개 순사가 넘어오네

 

“디모가 다 뭣이다요?”

“상전 앞에서도 헐말을 허는 것이 디모라네.”

나는 ‘디모’라는 것도 못해보고 이승 떠났는데, 시앙골댁은 나 없는 새 좋은 꼴도 많이 봤는가 싶어,

“나 이승 떠난 뒷엣소식이나 더 갈쳐주씨요.”

“자네 떠난 뒤에 내가 꽃시절을 살다 왔네. 꽃 같은 시절을 보내다 왔어.”

나는 이승에 있을 적에 꽃시절 한번을 못 보고 온 것 같은데, 역시 나 없는 새 좋은 꼴을 보기는 본 모양이다.

샘이 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궁금하여 더 물었다.

“그 꽃시절 이야기나 좀 해보씨요.”

“스무살 때 서방 징용 갈 때허고 서른살 때 산사람한테 감자 줬다고 갔을 때는 찍소리도 못허고 오는 매만 맞았는데, 아흔살 때 디모했다고 가서는 악이라도 쓰고 왔응게 그것이 꽃시절 아니고 머시여, 작것.”

스무살 때 가고 서른살 때 간 곳이 어디인 줄은 나도 아니, 시앙골댁이 ‘디모’하다 간 곳이 어디인 줄도 알겠다.

나도 그곳, 경찰서를 간 적이 있었다. 술을 못 담그게 해서 숨어서 좀 담갔더니 조사가 나와 갔고, 아궁이에 나무를 때야 하는데 나무를 못하게 하니, 남의 산에서 부러진 ‘고자백이’ 좀 주워왔다고 산감한테 발각되어 갔고, 김춘복이가 ‘도리짓고땡’을 해서 잡혀들어갔을 때 밥 갖다주러도 갔고…… 나는 그때, 경찰서에 가서 말 한마디 못하고 눈 한번을 위로 못 뜨고 울기만 했는데, 시앙골떠기는 악을 썼다니, 나 떠난 사이 세상은 참말로 꽃시절이 도래했는가. 그럴 줄 알았으면 조금만 더 살고 올 것을. 아쉬움에 시앙골떠기한테 나 떠난 뒤 세상소식을 자꾸 묻고 있자니, 나처럼 이승 소식이 궁굼한 혼사람들이 부스럭부스럭 모여드는 기척이 난다.

“내가 고구마밭에서 고구마 캐다 몸은 밭에 놔두고 혼만 쏙 빠져나와 여그로 왔더니, 여그는 디모도 안허고 경찰서도 없네.”

황천강 저쪽에서 강도 안 건넌 사람들이 어찌 더 시끄럽냐고 고함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보다 김춘복이 목소리가 제일 크다. 이승사람일 때나 저승사람일 때나 목소리 큰 것은 여전하다.

“저쪽 사람들이 왜 악을 쓴단가?”

“냅두고 이야기나 해보씨요. 강을 한번 건너불면 이승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생각이 안나 허도 못헌다요. 나도 벌써, 모습도 안 보이고 소리도 안 들리고 냄새도 안 나는디, 그저 맘에 이는 생각만 남았소.”

내 말에 혼사람들이 고개를 주억거린다. 혼사람들 고개 주억거리는 것이야, 이승 쪽에서는 그저 진평리 당산나무 이파리 하나 살랑거리는 기척에 다름없을 테지만 말이다. 시앙골댁 오명순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첨에 쿵쿵 허는 소리가 나길래 다시 인공이 되는가, 혔는디 그것이 아니고 독공장에서 독 깨는 소리여. 독 깨는 소리가 어트케나 큰지 인공 때 대포소리 같애. 그 소리에 놀래서 어미 뱃속에서 소새끼가 죽고 염생이가 죽고 갱아지가 죽고 닭이 알을 안 낳고 천지사방이 문지투성이라 깻잎삭 한나를 못 묵어. 그런디도 나랏님들은 ‘돈을 벌어야’ 쓴다고 독공장 돌리는 것을 안 막어. 그렁게 디모를 헌 거여. 디모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여. 못 살겄다고 악을 써도 암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고 암도 들어주는 디가 없으면 가서 악을 쓰는 것이 디모여. 디모를 다 해보고, 경찰서를 가보고 이 오맹순이가 말년에 꽃시절을 보내고 오네, 시방.”

듣다보니, 얼마나 꽃시절 한번을 못 보고 살았으면 ‘디모’를 하고 경찰서에 간 것을 두고 꽃시절이라 하나, 눈물이 포옥 나올 뻔한 것을 겨우 틀어막고,

“그런디 그 좋은 꽃시절을 누가 보게 해줍디여.”

“우리가 디모를 다 허게 헌 사람이 누구냐면 바로 무수굴떠기집에 들어온 젊은 색시여.”

나는 그제야 조금씩 생각이 날락말락 한다. 내가 이승 떠난 지 얼마 안됐을 때 내가 살던 집에 피어나던 꽃이 손짓하자 용케 그것을 알아보고 나 살던 집으로 들어가던 젊은 부부. 나는 그들을 보고 나서야 안심하고 살던 집을 잊고 구만리 장천 허공으로 날아올랐던 것이다.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던 울음소리가, 그 색시 울음소리였던가. 잊어버릴 만하면 들려오던 당산나무가 울던 것 또한 그 색시 우는 모습이 마음 아파 울었던 것인가. 이제 막 이승 떠나온 혼사람이 하는 이승 이야기 들을 생각에 마음이 바쁜데, 이야기를 하다 말고 시앙골댁이 자기 날아온 쪽을 가리키며,

“아이갸, 저것이 누구다냐, 아이구메나!”

머언 빛무리 속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가리킨다. 이승 쪽으로는 저승 초보 시앙골댁이 가장 눈이 밝은지라 누가 또 저승길을 떠나오나보다, 짐작만 할 뿐, 우리는 그저 시앙골댁이 말해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아이구메나! 시앙골댁이 비명을 지르는 통에 황천강 건너편 귀신들이 또 건너오지 않을 거면 조용히나 하라고 궁시렁거린다. 이쪽에서도 그쪽 귀신들이나 조용히 하라고 맞소리쳐놓고는, 우리는 먼데 빛무리 쪽으로 귀를 모둔 시앙골댁을 지켜보았다.

“뭣을 허고 있소?”

“우리 복주어매가 나를 따라올라고 기를 쓰고 있네.”

“복주어매가 누구요?”

“무수굴떠기집에 들어온 색시, 이영희지 누구여. 나를 찾다가 우네. 엄마를 찾아 우네. 가만 두면, 나 찾아, 즈그 엄마 찾아 요리 오게 생겼는디, 영희가 와불면 안되는디, 그러면 안되는디.”

“왜 안된다요?”

“영희가 와불면 디모허는 할마씨들은 다 어찌라고오!”

나 이승 있을 적에 시앙골댁이 저렇게 야무진 사람이 아니었는데 꽃시절을 보고 나서 달라졌다 싶어 꽃시절 못 보고 이승 떠난 나는 그저 내 혼 한자락을 펄럭, 했을 뿐이다.

“어이, 자네들이 시방 혼이나 펄럭거릴 새가 없네. 쟈를 돌려보낼라며는 어치케 해야 허는가, 그것이나 갈쳐주소.”

“노래를 허씨요.”

“아무리 이승 떠난 지 나보다 오래다 해도, 이렇게 속아지가 없어질 줄은 참말로 몰랐네. 노래는 낭중에 헐 것잉게 우선, 쟈를 다시 이승에 보낼 방도나 갈쳐주소.”

“그렁게 노래를 허란 말이요.”

“이 판국에 노래가 어찌 나온단가?”

“이영희를 못 오게 할라면 이영희 마음속에 사는 애기 눈물을 닦아주먼 된다요.”

“어치케 해야 눈물을 닦아줄 수 있단가.”

“눈물 흘리는 그 애기를 우리가 달래주면 된다요.”

나는 이영희 속에서 눈물 흘리는 혼을 쏙 빼와 혼사람을 만들었다. 그랬더니, 아주 조그마한 어린아이가 생겨났다. 형상은 하나지만 혼은 여럿이라 어린아이 혼사람 여럿을 만들어 내가 안고 시앙골댁이 업고 모여든 여러 혼사람들이 손 잡아 걸리고서 우리는 빛무리 속에서 헤매는 영희한테 나아갔다. 노래를 부르면서 나아갔다.

아가 아가 얼뚱아가, 미역국에 밥 말아주께 우지 마라, 우지 마라

아가 아가 얼뚱아가 삼단 같은 머리채로 비단이불을 지서주께 우지 마라 우지 마라

우리 노랫소리에 여기저기 사방에서 혼사람들이 나서는데, 남자 혼사람들은 쑥스러워 나서지 못하는지 몰라도 태반이 여자 혼사람이고 또 그중에는 새끼 못 잊어 애달파하는 엄마 혼사람들이 많아 우는 애기 달래는 노래 부르면서 자기들이 울고 있다. 혼엄마들이 목놓아 부르는 노래가 저승과 이승의 허공에 꽉 들어찼다. 아가 아가 얼뚱아가 미역국에 밥 말아주께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혼엄마들 목멘 노랫소리에 울음을 거두기로 했는지, 하얀 빛무리 속에서 울고 있던 이영희 그림자가 가뭇없이 사라진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저승길에는 바람이 건듯 불고 은하수 물결이 출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