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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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혁신과 연합으로 대선 승리를 향해 나아가자

 

 

411총선의 결과가 많은 국민을 실망시켰다. 작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후보의 승리로 한껏 높아졌던 2013년체제의 출범에 대한 기대도 냉정한 현실 앞에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이번 총선 결과를 야권의 패배로 보기는 어렵다는 일각의 의견도 있다. 비록 새누리당이 과반을 넘는 의석을 갖게 되었지만, 야권은 과거 총선과 비교할 때 이번 성적이 좋은 편에 속하고 총득표수에서 여권에 밀리지 않았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는 듯하다. 이번 총선에서 국민은 야권을 버린 것은 아니라 새로운 기회를 주었다고도 할 수 있다. 대선 승리를 통해 2013년체제를 열어갈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렇지만 야권이 목표에 크게 미달하는 성적표를 받은 것은 엄연한 현실이며 이는 무엇보다 선거전을 일선에서 치른 야당들의 책임이다. 2010년 지방선거 이후의 정치적 흐름과 이명박정부의 거듭되는 실정을 고려할 때 야권은 훨씬 좋은 성적을 거두어야 했다. 야권이 총선에서 큰 실패를 했다는 점, 그리고 이 실패가 내부의 문제에서 비롯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제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하고 스스로의 실천으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변화를 만들어내는 이신작칙(以身作則)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 야권정당들은 변화의 노력은커녕 민심과 동떨어진 행태를 보이고 있어 대선 승리를 거쳐 2013년체제의 활로를 만들어가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총선 이후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총선 실패의 원인에 대한 뼈를 깎는 반성 없이 계파갈등을 서둘러 봉합하려는 모습을 드러냈을 뿐 아니라 새로운 계파갈등을 유발할 소지도 남기고 있다. 앞으로 남은 전당대회, 대선후보의 선출 과정에서 일신한 면모를 보여주지 않으면 미래는 없을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문제의 발단은 비례대표의 선출과정에서 발생한 절차적 오류와 부정행위 의혹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였다. 그런데 이것이 합리적으로 수습되기보다 정파투쟁으로 번지면서 내부의 고질적 폐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나마 더 늦기 전에 드러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위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서도 구성원 모두가 다른 사람을 탓하기보다 자기를 먼저 되돌아보고 책임지는 태도가 필요하다. 통합진보당 스스로 현실을 직시하고 환골탈태하지 못한다면 한국 진보정치의 의미있는 주체로 남기 어려울지 모른다.

통합진보당 사태가 단적으로 보여주듯이 야권정당들이 총선에서 실패한 것은 입으로는 새로운 정치와 시대를 이야기하지만 내용적으로나 인적으로 낡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의 처참한 패배에 주된 책임이 있는 정치주체들이 진정한 자기혁신 없이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것은 양두구육(羊頭狗肉)과 다름없다. 국민은 이번 총선에서 야권정당들에 대해, 이명박정부를 견제하기 위한 쓰임새는 있지만 권력을 맡길 정도의 신뢰를 주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야권이 수권세력으로 인정받기 위해 혁신과 연합이라는 두 수레바퀴가 필요함은 상식이지만, 이제 야권은 혁신 없이는 선거연대조차 다시 이루기 힘든 고비에 이른 것이다.

혁신은 무엇보다 내부 기득권과의 싸움이며 합리적 절차와 진지한 공론을 통해 새로운 정치적 에너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자신과의 싸움이라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작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나타난 무소속 돌풍에 위기의식을 갖게 되면서 다른 정치세력과의 통합으로 돌파구를 열고자 했으나 혁신의 과제는 여전히 뒷전에 밀려 있었다. 총선 실패와 현재 야권정당들의 혼란상은 이러한 한계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그에 따라 야권연합도 큰 도전에 당면해 있다. 총선 실패 이후 연합정치 무용론까지 제기되었지만 야권정당들이 뚜렷한 이슈나 비전을 만들어내지 못한 상황에서 수도권에서 선전한 것은 그나마 연합 덕분이라는 것이 객관적인 평가일 듯하다. 그런데 현재 연합의 한축인 통합진보당이 정당 운영에서 심각한 결함을 보이면서 연합정치에 대한 회의론이 증폭될 가능성이 높다. 보수언론이 통합진보당 사태를 야권연합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데 활용하고 있는 것은 그 나름의 정략에 따른 것일지 모르나, 연합정치의 위기 자체가 보수언론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야권연합은 특정 정당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 진보정치에 희망을 걸었던 사람들 역시 우리 정치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데 빠질 수 없는 동력이다. 그뿐 아니라 ‘안철수 현상’이 보여주는 것처럼 기존 정당들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지만 변화에 대한 강렬한 열망과 실천력을 갖춘 개혁적 부동층도 동참할 수 있어야 한다. 대선 승리에 필요한 연합은 바로 이들의 이해와 요구까지 대변하는 정책을 만들고, 이들이 참여할 정치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혁신과 연합이라는 두 바퀴를 돌리는 작업을 정당에만 맡길 수 없다. 이제야말로 시민정치의 지혜를 발휘할 시점이다. 2008년 총선에서 참담한 패배로 야권정당이 무력화되었을 때 역사를 전진시킨 것은 촛불항쟁에서 보여준 시민의 힘이고, 연합정치라는 활로를 연 시민정치의 힘이었다. 정당의 혁신을 촉진하고, 기득권의 자의적 결합이 아니라 혁신된 주체들의 차원 높은 연합을 이루어내고, 대선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각성된 시민의 감시와 참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골이 깊을수록 산도 높은 법이다. 현재의 시련을 극복하고 더 큰 희망을 만들어내자고 독자와 더불어 굳게 다짐한다.

 

이번호 특집 ‘다시 장편소설을 말한다’는 2007년 여름호 특집 ‘한국 장편소설의 미래를 열자’의 후속 기획으로, 근래 발간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삼아 우리 장편문학의 현황과 미래를 점검한다. 한기욱의 「기로에 선 장편소설」은 최근 제출된 장편소설 관련 비평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시도한다. 2010년대를 장편소설의 ‘기회’와 ‘위기’가 겹쳐 있는 시대로 파악하면서, 다양한 비평적 관점들을 소환해 꼼꼼한 재검토를 수행하고 있다. 생산적 논쟁이 희귀한 최근 평단에 신선한 자극이 되기를 기대한다. 백지연의 「장편소설의 현재와 가족서사의 가능성」은 세계의 위태로운 경계를 상상하고 비춰보는 장편소설의 본래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글이다. 특히 오늘날 변화된 상황에 처한 가족서사와 성장서사의 현황을 천명관 최진영 김이설의 소설에 주목하여 점검한다. 허윤진의 「분노와 경이」는 배명훈과 구병모의 장편소설을 대상으로 우리 시대의 ‘환상문학론’을 전개한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소설론의 재구성에 유익한 참조가 될 만한 글이다. 김동수의 「아름다운 것들의 사라짐 혹은 사라지는 것들의 아름다움」은 프랑스 작가 미셸 우엘벡을 텍스트로 삼아 장편소설의 현대적 가능성에 주목한 글이다. 우엘벡 특유의 ‘비관적 리얼리즘’과 ‘묵시록적 상상력’이 어떻게 근대와 탈근대의 논쟁적 영역으로 침투해가는지를 자상하게 밝히고 있다.

특집과 관련지어 읽을 만한 글들이 문학평론란을 장식하고 있다. 조연정의 「당신의 사랑을 포기하지 말라」는 사랑을 부정하고 냉소하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신경숙과 한강의 소설이 “사랑을 구축하고 삶을 재발명”하는 풍경을 재구성한다. 진은영과 왕 샤오밍의 글은 2011년 겨울호 특집 ‘동아시아 지역문학은 가능한가’를 이어간다. 진은영은 지난 2월 상하이에서 열린 동아시아문학 토론회 내용을 섬세한 성찰과 함께 정리하고 있으며, 왕 샤오밍의 「육분천하」는 ‘블로그 문학’ ‘엄숙문학’ ‘신자본주의 문학’ 등 다양한 경로들이 경쟁하는 오늘의 중국문학 판도를 비판적으로 소묘한다.

이번호 작가조명의 주인공은 장편 레가토를 출간한 중견소설가 권여선이다. 문학평론가 심진경과의 인터뷰에서 권여선은 자신의 장편소설을 당당한 ‘후일담 문학’으로 자리매김한다. 그것이 통상적인 후일담 유의 한계를 넘어서 미래를 지시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창작란도 예년처럼 풍성하다. 시란에는 원로에서 신진까지 망라되어 있으며 단편소설란을 빛내준 작가들의 면면 역시 화려하다. 또한 연재를 시작하는 정이현의 신작 장편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대화에서는 2013년체제론을 제기해 주목을 받았던 본지 편집인 백낙청, 참여정부 총리를 역임하고 이번에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현실정치에 복귀한 이해찬, 정・관계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정치에 대한 예리한 논평을 보여주는 윤여준 등 중량감있는 인사들이 한국정치의 현주소와 미래에 대해 논한다. 독자들은 총선 이후 오랜만에 여야 사이의 수적인 균형이 이루어진 19대 국회의 운영, 올 연말의 대선 전망, 2013년체제의 향방 등 여러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탁견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논단과 현장 역시 주목에 값하는 글들로 채워졌다. 김기원의 「한국사회의 모순과 2013년체제」는 양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삶의 질은 악화되는 한국사회의 문제를 ‘고단한, 억울함, 불안함’이라는 키워드로 분석한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고 2013년체제로 나아가기 위해 진보, 개혁, 평화라는 복합적 과제를 추구할 비전과 전략을 갖추자고 제안한다. 김항의 「계몽의 한계와 대중지성의 전개」는 후꾸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 지식사회가 보여준 성찰의 한계를 짚으며 시민의 자발적인 대응과 실천 속에서 대중지성의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다. 개번 매코맥의 「광명성 3호 발사 이후」는 북한의 위성 발사가 일으킨 파장의 이면을 들추어 한반도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준다. 시시비비를 날카롭게 가르는 분석이 흥미로울 뿐 아니라 북한의 핵과 우주 프로그램의 문제가 남북관계 및 북일・북미관계의 정상화와 더불어 해결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촌평란은 번역서의 비중이 많은 점이 다소 아쉽지만 다양하고 요긴한 내용으로 아쉬움을 충분히 달랠 만하다. 짧은 분량임에도 우리 시대의 흐름을 읽는 데 큰 도움을 준 필자들께 감사드린다.

 

여름호부터 본지 편집진에 일부 변화가 있다. 도종환 시인이 국회에 진출하게 되어 편집위원을 사퇴하고 그 자리를 김사인 시인이 메운다. 도종환 시인의 건투를 빌고 김사인 시인의 합류를 환영한다. 본지가 제정한 사회인문학평론상 공모가 2회째를 맞아 새로운 주인공을 찾는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동참을 요청드린다. 한국사회의 격동은 계속되고 있다. 본지가 이러한 격동 속의 독자들에게 희망을 일깨우고 힘을 북돋을 수 있기를 바란다.

南周

이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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