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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2013년 이후의 한국 외교

 

 

김준 金峻亨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 저서로 『세계화의 현상과 대응』 『미국이 세계최강이 아니라면』 등이 있음.

 

백학 白鶴淳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저서로 『북한 권력의 역사』 『남북한 정부수립 과정 비교 1945~1948』(공저) 등이 있음.

 

 李根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주요 논문으로 「해외주둔 미군재배치계획과 한미동맹의 미래」 「국제정치에 있어서 말, 상징의 연성권력이론」 등이 있음. 

 

이남주 李南周

성공회대 중국학과 교수, 정치학. 저서로 『중국 시민사회의 형성과 특징』 『이중과제론』(편서) 등이 있음.

 

 

 

ⓒ 이영균

ⓒ 이영균

 
 

이남주 (사회)  겨울호 대화는 한국 외교로 주제를 잡았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또는 동북아시아만 해도 상당히 중요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고 내년에 들어설 우리 새 정부에도 외교 문제가 중요한 과제가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대선 과정에서는 그리 중요한 이슈로 다뤄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 오늘 토론이 그러한 논의에 다소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먼저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나름대로 대선 캠프의 자문 역할을 맡으신 분도 있을 텐데, 현재 선거판에서 외교안보 분야의 논의에 대한 간단한 논평을 곁들여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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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학순

백학순  제 전공은 북한정치, 남북관계, 북미관계, 북핵문제 등입니다. 그러다보니 남북발전위원회 민간위원도 맡고 있고, 통일부 자체평가위원장이라든지 외교통상부 정책자문, 서울-워싱턴포럼 사무총장도 한 적이 있습니다. 외교 영역의 대선 공약은 10월 중순 현재 문재인(文在寅) 후보 쪽에서 부분적으로 나와 있고 박근혜(朴槿惠) 후보 경우는 공식적으로 나와 있지 않죠. 안철수(安哲秀) 후보도 아직 공표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안철수 후보를 정책 면에서 돕는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이분이 민족화해에 대한 생각이 뚜렷해서지요. “민족화해가 없이는 평화도 공동번영도 어렵다”고 말씀하시더군요. 통일을 ‘과정’으로 본다든지 평화체제 수립에 명확한 소신이 있다든지, 이분의 생각이 저와 많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오늘 대담에서는 대선과 관계없이 평소 제가 학자로서 갖고 있는 소견을 말씀드리니 그렇게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근  저는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국제정치를 가르치고 ‘미래’라는 민간 싱크탱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국제정치를 가르치지만 정치경제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근래에는 이명박정부에서 남북관계 문제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정치경제 관련된 문제에 좀더 치중해왔습니다. 그리고 문재인 후보 캠프의 남북경제연합위원회에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대선후보 중에서 제일 존경할 만한 분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고, 또 주변 사람들의 권유도 있었고요.

 

김준형  저는 경북 포항의 한동대에서 국제정치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서울에서 뛰는 사람들과는 연계가 약하죠. 주로 칼럼 기고 같은 걸로 기여하고 있어요. 제 전공은 국제정치, 그중에서도 미국 관련한 연구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대선 초반에는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외교정책 보고서 내지 공약질의에 관여했어요. 인간적으로 문재인 후보가 좋기도 하지만 외교와 남북관계를 이명박 대통령이 너무 망쳐놔서 어떻게든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거든요.

 

 

한미동맹 강화 속에 실종된 한국 외교

 

이남주  이명박정부 초기부터 한미동맹 강화라는 게 핵심 목표였고 아직까지 한국 외교에서는 이것이 알파요 오메가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러한 정책과 실천을 검토해보면서 대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방향 설정이 올바른 것이었는지, 어떤 문제가 있었다고 보시는지요? 김준형 선생님이 말문을 열어주시죠.

 

金峻亨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 저서로 『세계화의 현상과 대응』『미국이 세계최강이 아니라면』 등이 있음.

김준형

김준형  저는 이른바 진보개혁정권 10년에 대해 이명박정부에서 어떤 강박관념이 작동했었다고 봐요. 두가지 테마죠. 햇볕정책과 한미관계 악화. 이에 따라 대북강경책과 한미동맹 강화가 이명박정부 외교안보정책의 핵심적 방향이 되었습니다. 대북정책이 실패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박근혜 후보마저 이를 바꿔야 한다고 얘기하는 형국이니까요. 그런데 한미관계에 대해서는 이중적인 면이 있어요. 이명박정부 초기부터 한미관계에 대해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얘기가 미국 관료들에게서도 나왔고 겉으로도 굳건해 보이죠. 마치 한국이 미국에 대한 발언권도 높아지고 대북정책도 주도하는 듯하고요. 그런데 실상은 그렇게 보이는 만큼 비용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착시효과죠. 북한이나 중국에 대해 미국과 한국의 입장이 일치했고, 또 미국 내부의 국내개혁이라든지 경제위기 같은 요인이 겹쳐 마치 한국이 주도권을 갖게 된 것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한미관계만 강화하다보니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그 비용을 치러야 했죠. 한미동맹 절대주의로 가는 바람에 미국에 완전히 주도권을 내주고 그들 국익에 따라 움직이게 되어 사실상 많은 비용을 초래한 겁니다. 결국 이명박정부는 대북정책과 한미동맹 강화 둘 다 실패한 정권입니다.

 

이남주  겉으로 보면 한미관계가 좋다는 게 강조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비용이 상당히 컸다는 말씀이군요. 그런데 이명박정부에서 한미동맹의 강화와 함께 그 방향과 관련해서도 새롭게 제기했던 부분이 있지 않았어요? 이른바 포괄적 전략동맹, 가치동맹 같은 것들인데, 이를 계속 견지해야 할지도 검토해봐야 하겠습니다.

 

백학순  포괄적 전략동맹론은 지정학적으로 한반도를 넘어서는 전략적인 동맹이란 의미고, 또 이슈 면에서는 안보뿐 아니라 대량살상무기라든지 테러, 마약, 심지어 해적행위까지 포함하는 것이죠. 한미 간의 포괄적 전략동맹론에는 911테러 이후 미국 군사외교에서의 전환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어요. 조지 부시 대통령 때부터 미국정부는 공동이익을 지향하는 ‘의지의 연대’(coalition of the willing)를 강조했고 다른 나라들이 거기에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이러다보니 말씀하신 ‘가치동맹’이 나오게 됐죠. 자유, 민주주의, 인권, 시장경제 등이 대표적으로 미국이 말하는 가치인데, 가치동맹이라 하면 그 전제가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나라와 진영은 배제하고 적대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지요. 그러다보니 특히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는 한쪽에 한・미・일이 있고, 다른 쪽에서 중국과 북한이 맞서는, 대결적인 한미동맹이 되어버리는 거죠. 우리 입장에서는 남북관계에서 대립이 심화되고 핵문제도 해결하기 어렵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로서는 한미동맹을 대결적인 성격으로 끌고 가서는 안되고 한반도에서 평화추구적 성격으로 만들었어야 하는데 이 점을 실패한 거죠. 저는 이것이 가장 뼈아픈 실책이고 또 바로잡아야 한다고 봅니다.

 

이남주  한미동맹 강화가 대결적 구도를 재생산했다는 게 문제였다고 보시는데요, 일반적으로 가치동맹이라는 말 자체는 나쁘지 않게 들려요. 어떤 이해득실만 따지는 게 아니라는 뜻이니까요. 전문가 입장에선 달리 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간 관계에서 가치를 배제할 수 있느냐 하는 반문도 나올 것 같아요.

 

李根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주요 논문으로 「해외주둔 미군재배치계획과 한미동맹의 미래」 「국제정치에 있어서 말, 상징의 연성권력이론」 등이 있음.

이근

이근  과연 가치를 가지고 동맹을 맺는 국가들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원래 동맹이라는 건 위협이 있을 때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하는 거죠. 그런데 가치가 같으면 굳이 동맹을 맺을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결국 ‘동맹을 위한 동맹’을 하기 위한 명분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가치동맹이란 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냉전이 끝나고 서방에 위협을 주는 세력이 대거 사라졌잖아요. 그러면서 동맹이 재조정으로 들어가고 동맹의 미래가 불확실해지니까 그 목표를 가치에 대한 위협을 막아보자는 것으로 바꾼 게 가치동맹이라는 아이디어인 듯한데, 그러다보니 대단히 공격적인 성격이 되어버렸어요. 동맹이 공격적이면 그걸 동맹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특정한 외교안보적인 목표를 위해 다른 나라들을 변환시키고 자기 이익을 추구한다는 것인데, 상당히 제국주의적인 냄새가 나죠. 그래서 저는 가치동맹이라는 말은 다음 정권이 들어서면 폐기되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김준형  전략동맹론이 어느 시기에 나왔는지 잘 봐야 하는데, 가장 냉전적이고 공세적인 부시 행정부와 이명박정부 때였어요. 대중・대북 강경책에 의한, 다시 말하면 위협을 살려내고 그 위협에 대한 동맹을 다시 살려내는 냉전복귀적 동맹이었는데, 그것을 포장하기 위해 평화 구축, 신뢰, 가치동맹 이렇게 세가지를 내세웠어요. 그런 이름을 붙임으로써 실상을 숨기는 거죠.

 

백학순  이명박정부가 들어섰을 때 대통령직 인수위나 청와대 주변에서 ‘한미동맹을 영미동맹 수준으로 올리자’는 논의가 있었죠. 어찌 보면 등골에 소름이 끼칠 얘기죠. 영국과 미국이 어떤 관계입니까. 그 두 나라는 핏줄, 언어, 문화, 역사가 한미관계와는 판이하잖아요. 집권 당시 이명박정부의 친미 지향이 그 정도로 심했다고 볼 수 있지요. 돌이켜보면, 제1기 조지 부시 행정부 때 무력을 사용하여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는 전쟁을 일으켰지만 비용이 너무 컸기 때문에 제2기 정부 때는 ‘악의 축’ 국가들을 무너뜨리는 방법으로서 비무력적 가치들, 즉 자유, 민주주의, 인권, 시장경제 등을 앞세운 ‘변환 외교’를 시작했잖아요. 그 결과 북한인권법 같은 것이 생겨났고요. 이명박정부가 그것을 그대로 좇아서 그 가치를 다른 진영에 대해 아주 공세적으로 취하는, 그러니까 어찌 보면 전통적인 방법이 아닌 ‘또다른 형태’의 전쟁을 수행하는 동맹을 강화한 것이지요.

 

이근  이명박정부에서 가장 일하기 편한 부처가 외교부하고 통일부였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노무현정부나 김대중정부에서 만들어놓은 것들을 안하면 되었으니까요. 남북관계도 그렇지만 여러 면에서 가급적 실행을 안하다가 선언만 멋있게 해놓고 마는 이벤트 외교였어요. G20정상회의나 핵안보정상회의도 그렇고, 자원외교 한다고 돌아다니면서 우리 이거 따냈다 하는 식의 쇼케이스만 벌였으니 의전(儀典) 담당자들 빼놓고는 모두 편안했죠. (웃음)

 

 

미 대선 이후 한반도 전략, 어떻게 달라질까

 

李南周 성공회대 중국학과 교수, 정치학. 저서로 『중국 시민사회의 형성과 특징』 『이중과제론』(편서) 등이 있음.

이남주

이남주  이명박정부의 한미동맹이 많은 부작용을 나타냈지만 지금 이명박정부의 외교를 비판하는 야권의 정책을 봐도 대부분 ‘한미동맹 강화’가 들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한중협력을 병행 발전시켜야 된다는 이야기가 뒤따르지만요. 그런 내용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근  지금 한미동맹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하는 수준이니 더 강화하자는 주장이 그렇게 절박하게 들리진 않는 것 같아요. 지금 대선은 양쪽에서 중간층을 어떻게 더 끌어오느냐에 사활이 걸려 있죠.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한미관계와 남북관계만큼 진보, 보수를 명확히 가르는 이슈가 드물어요. 따라서 중간층 공략을 위해서는 어느 쪽도 한미동맹 문제를 크게 건드리지 않을 것 같아요. 이번 대선에서는 안정적인 면을 부각시켜 중간층을 끌어오는 것이 야권의 목표이고, 보수층도 이른바 ‘집토끼’를 모아야 하기 때문에 한미동맹 강화를 확실하게 내세우자는 전략이죠. 그러나 다분히 선언적인 수준이고 대선 전략용이지 특별히 새로운 내용은 없다고 봐요. 문재인 후보나 안철수 후보 쪽에서도 한미동맹 문제는 크게 건드리지 않을 것 같아요.

 

이남주  그렇다면 한미관계의 방향은 어떻게 잡아야 할까요? 최근에 국제정세가 상당히 복잡하게 전개되고 중국이 떠오르는 상황에서 한미관계의 발전이라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요?

 

이근  흔히 한미관계가 미국의 국내정치에 좌우된다고 생각하는데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우리가 한미관계를 재조정하고 심각하게 문제 삼을 건 없다고 생각해요. 오바마의 대한정책은 한국의 대북정책에 맞추어 가급적 그쪽으로 지원하는 식이었는데 만약 롬니로 정권이 바뀌면 거기는 참모진에 네오콘(neo-conservative, 원래 ‘신보수주의자’라는 뜻이지만 극우적인 보수주의자를 주로 가리킴)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갈등 국면으로 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한국에 진보정부가 들어서면요. 롬니로 바뀌지 않는다면 한미관계는 비교적 큰 문제 없이 갈 거고,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가령 미중관계가 갈등 국면이라면 한미관계를 재조정할 필요가 생길 테지만 미중관계도 그렇진 않다고 보거든요. 특히 경제적인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에요. 미 대선 국면에서는 중국이 환율 조작국이니 어쩌니 하며 대중관계를 바꾸겠다는 얘기도 하지만 끝나고 나면 다시 돌아오거든요. 롬니가 돼도 미중관계가 크게 악화될 것 같지 않아요.

 

이남주  대북관계에서는 한국정부의 처신에 따라 미국정부가 이를 수용하는 면이 있고, 이명박정부 시기에도 그런 양상이 나타났죠. 그런데 세계적 차원의 변화에 대응하는 데서는 그러기 어려운 측면도 있지 않나요? 가령 해외 파병이라든지 방위비 분담 증가 같은 사안에서는 마찰이 나타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근  그러니까 매크로(macro)가 아니라 마이크로(micro)한 마찰인데, 세계 차원의 문제에서도 미국은 자국의 경제나 정치 때문에 크게 움직일 것 같지 않아요. 방위비 분담은 아주 중요한 문제지만, 누가 돈을 더 많이 내느냐라는 미시적인 문제이지 대형 위기로 옮아간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방위비 분담을 논할 때 우리가 세게 나가면 미국이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동맹 끊겠다는 거냐’면서 협박할 가능성은 있죠. 그게 협상전략이니까. 그런 게 노무현정부나 김대중정부 때도 있었고, 한국의 보수언론을 통해 미국이 협박성 발언을 흘리면서 협상력을 높이곤 했지요. 그런 부분은 우리가 잘 감안해야겠지만 거시적 마찰은 별로 없을 것 같아요.

 

김준형  한미동맹이란 게 남북관계와 연동되면서 우리에게 아킬레스건 같은 게 되었다고 봐요. 그래서 국민도 실제적인 한미동맹의 강화 필요성보다 크게 과장된 신화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우리 정치에서 종북이라는 문제가 떠오르고 이게 한미관계와 연결되죠. 그런데 늘 보면 한미동맹이 강해지는 건 남북관계가 안 좋을 때예요. 또한 미중관계도 관건입니다. 2010년 이후에 영토 문제라든지 북한 문제 또는 서해상의 군사훈련 같은 사안을 보면 미중관계가 파국으로 가진 않겠지만 이른바 ‘아시아로의 귀환’(pivot to Asia)이 있은 다음에는 경색국면으로 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백학순  한미관계의 발전방향에 대해 말씀들 하셨는데, 저는 다음 네가지 방향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첫째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세력들 간에 대결보다 평화증진을 꾀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둘째로는 좀더 균형적이고 호혜적인, 말하자면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한국의 ‘주된 당사자 원칙’이나 주권에 대해 미국이 좀더 존중하는 동맹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고요. 셋째는 남북화해와 동아시아 평화안정을 위한 협력으로 나아가는, 특히 한반도에서 통일과정을 지원하는 동맹이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상태를 끝내고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는 데 공헌해야 하고요.

조지 부시 당시 네오콘의 일방주의 외교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미국이 추구해온 가치라든지 동맹관계가 다 망가졌잖아요. 그래서 오바마는 다자외교와 동맹외교를 중시하겠다는 입장이었는데, 마침 우리나라에 이명박정부가 들어서서 가치동맹을 강조하면서 한미관계를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공격적 성격으로 이끌어가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셈이 됐죠. 미국은 강국으로서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나름대로의 이해관계가 있지만, 최소한 한반도 문제에서는 우리가 주된 당사자임을 명확히하고 주도해가는 것이 향후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남주  어떻게 보면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 오바마 행정부는 이명박정부의 입장을 뒷받침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미관계가 호혜적이고 수평적인 거 아니냐 반문할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런 관계가 한국정부의 의지만 있으면 가능한 건지 아니면 여전히 호혜적이고 수평적 관계를 가로막는 제도적・구조적 제약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김준형  우선 호혜적이라는 의미를 받아들이는 게 미국과 우리가 달라요. 노무현정부 때부터 있던 문제인데, 우리에게 호혜적이라 함은 한국의 이익을 일방적으로 보호하는 게 아니라 우리를 존중하고 평등한 관계를 맺는 동맹을 의미하는데, 미국 쪽에서 보면 미국이 한국에 주는 만큼 한국도 미국에 이익을 줘야 된다는 것을 뜻하죠. 이게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나 중국 전략에서 ‘전략적 유연성’으로 드러났고, 나중에 미사일방어계획(MD) 같은 데 참여를 요구했지요. 그런 측면에서 호혜성에 대한 양국의 시각이 다르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백학순  맞아요. 한미 간에 생각이 다르죠. 노무현정부 때를 떠올려보면, 우리는 민족화해와 남북관계 개선이 중요한데 부시 대통령은 그것을 이해하지도 못했고 또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지요. 부시의 생각은, 한국에 북한은 적국이고 미국은 동맹국인데 왜 동맹국을 섭섭하게 하면서 적국과 자꾸 대화하려고 하느냐는 것이었죠. 겉으로는 한미 양국이 동맹을 중시하고 협력하니까 좋아 보이지만, 양국이 힘을 합해 무엇을 하느냐가 사실 중요한 것이죠. 장기적으로 중국과 경쟁하면서 21세기 동아시아 질서를 짜나가야 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군사안보적으로는 이미 한국이 자기편이지만 이제 한미FTA를 통해 경제통상 분야에서까지 완전히 자기편에 묶어 중국에 대항케 함으로써 미국의 이익을 확고하게 지켜나가려는 거지요. 그러다보니 한미협력은 평화적이고 우호적인 것이 아니라 대결적이고 미국의 이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되었고요.

 

이근  조지 부시 때만 하더라도 미국이 잘나가던 시기잖아요. 경제위기가 오기 전이고 냉전에서도 승리했으니까요. 자신만만하게 글로벌 정책을 추구하다보니 동맹국들과 마찰이 생겼어요. 그런데 지금은 안으로 곪아터져서 돈도 없고 외교적 역량도 안되죠. 동맹국들도 미국과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관계만 유지하면 되기 때문에 롬니가 대통령이 되고 네오콘이 다시 돌아온다 하더라도 외교 면에서 공격적인 것은 별로 없을 듯해요. 가장 큰 문제라면, 한국이 남북관계를 강하게 추진해갈 때 미국이 한국정부를 신뢰하지 않을 경우 갈등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크게 보면 미국이 역량이 안되고 의지도 없기 때문에 동맹 조정을 요구할 정도의 글로벌 전략은 나오지 않을 것 같아요.

 

 

G2시대, 성급한 동맹 추구보다 위험 분산의 지혜를

 

이남주  한미관계에서 핵심적으로 걸리는 문제가 두가지인 것 같아요. 하나는 남북관계를 해결하는 데 한미협력이 어때야 하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한미동맹이 중국의 부상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입니다. 실제로 이명박정부는 한미관계가 잘됐다고 자평하지만, 한중관계는 악화됐다는 게 중론입니다. 먼저 대중외교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간단히 점검하고 중국의 부상이 한미관계에 어떻게 연관되는지 이야기해보면 좋겠습니다.

 

이근  정부 간 관계를 보면 한미관계만큼 한중관계가 가깝고 원활하게 돌아가지는 않지만, 중국은 교역량으로 우리의 최대 파트너고 중국 관광객이 오지 않으면 제주도나 명동이 먹고살기 어려울 정도죠. 중국에 한국 유학생도 엄청나게 있고 한국에서 여행도 많이 가고 중국을 공부하자는 열풍도 있고요. 한중관계가 많이 나빠졌다면 이런 것들이 다 꺼지겠죠. 영토분쟁도 크게 부각되진 않았어요. 최근까지 정치외교적 마찰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한중관계는 그런대로 잘 유지돼왔다고 봅니다.

 

백학순  전반적인 상황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를 보면 분명 그러한데, 이명박정부가 보였던 외교 리더십을 중국 측에서 과연 신뢰했느냐는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초기부터 일본과 미국에 치우치고 중국에 대해서는 소원한 태도를 취했잖아요. 그때부터 중국이 갖게 된 불신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특히 북핵문제라든지 천안함사건과 연평도사건을 겪으면서 한미 양국과 북중 양국이 각각 편을 갈라 충돌하자 우리로서는 중국으로부터 멀어지고 미국에 더 의존하게 된 상황이 되었지요. 현재 21세기 동아시아 질서가 새로 짜이는 와중에 중국 지도부가 한국 지도부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도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앞으로 들어설 우리 지도자들은, 김대중 대통령처럼 모든 나라로부터 존경받기야 어렵겠지만 주변국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외교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김준형  그동안 오바마 행정부의 미중관계를 살펴보면 초기 2년에는 G2라는 개념이 다분히 상호적이었어요. 중국을 이용하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중국의 격을 높여 파트너를 삼는다는 거였는데 이게 후반기로 가면서 점차 강경책으로 변합니다. 외교 인사진을 봐도 초기에는 양국의 협력적 관계를 강조하는 제임스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과 제프리 베이더 국가안보회의 선임보좌관이 중국 관련 정책을 이끌었는데, 둘 다 물러나고 그보다 강경한 대중정책을 지지하는 국방부가 중심이 됩니다. 미국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국방예산을 10년간 5천~6천억달러 정도 줄여야 하는데 아시아에선 이를 안 줄이겠다, ‘균형 회복’(rebalancing)을 하겠다면서 ‘아시아로의 귀환’ 방침이 나왔거든요. 이런 움직임이 미중관계를 조금씩 갈등으로 이끌자 중국 역시 영토분쟁과 관련해 맞대응하면서 관계는 더 나빠졌지요. 그런데 저는 이게 오바마의 선거전략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외교를 유화외교라고 비난하는 롬니에 대한 견제구로서 대중정책을 강경하게 가져가고 있지만,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하면 다시 협력과 봉쇄의 균형을 회복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정권이 롬니로 넘어가면 방향을 확 틀어 경색적으로 변할 겁니다. 지금 롬니 진영을 묶어주는 게 크게 보면 애국주의거든요. 이런 미국의 애국주의가 대중 강경책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롬니는 대선 후보 마지막 토론에서 중국에 대한 강경발언을 쏟아냈습니다. 중국이 환율조작을 일삼아서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아갔다고 비난했고, 자신이 취임하는 첫날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했죠.

 

이남주  균형 회복, 아시아로의 귀환 같은 주장은 중국이 부상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인데, 이는 미중관계에서 경쟁적 측면이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이러한 상황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얘기해주시죠.

 

이근  앞으로 미국이 군사전략을 새로 짜려면 그 배경이 중국밖에 더 있겠습니까? 유럽에 가겠어요, 라틴아메리카에 가겠어요. 더구나 중국이 부상하고 있으니 중국을 중심으로 해서 군사전략을 세울 수밖에요. 중국도 경제성장에 따라 군사비 지출이 늘어나면서 상호작용이 일어날 수 있고요. 그런데 중국의 부상에 우리가 성급하게 대응할 필요는 없어요. 한미동맹의 리스크를 안고 중국과 갑자기 가까워질 이유도 없고요. 일단 관망하자는 거죠. 요즘에는 외교를 정부만 하는 게 아니죠. 옛날에야 나라들끼리 전쟁을 많이 하니까 외교관이 나서서 조약을 맺고 그랬지만 지금은 대부분 민간에서 알아서 잘해요. 오히려 정부가 민간에 의존할 정도죠. 기업들이 그렇잖아요. 국가가 성급하게 뭘 하기보다는 민간에서 잘하게 지원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백학순  물론 그런 면이 있지만, 우리로서는 미중관계의 변화, 미국의 ‘아시아로의 귀환’에 대해 기본적인 입장과 전략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가 경제적인 면에서 중국에 점점 더 의존적으로 되어가고 군사적인 면에서는 여전히 미국에 기대는 상황인데, 여기서 우리가 여태껏 해왔듯이 미국에만 편승해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균형자 역할’을 맡을 힘이 있는 것도 아니죠. 그렇다면 다양한 요소를 종합해 최대한 편익을 지키고 위험을 회피하는 전략, 우리 처지에서는 미국과 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를 증진시킴으로써 좀더 균형적인 외교를 하는 일종의 헤징(hedging, 위험 분산)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변화하는 동북아 정세와 한국의 역할

 

이남주  균형 회복이나 아시아로의 귀환이 단지 수사적 차원인지 아니면 실내용이 있는 건지 궁금하네요. 제 느낌으론 미국이 군사비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고, 동북아에서 동남아, 인도, 남아시아까지 걸쳐둔 그물을 유지할 만한 자원을 갖고 있는 것 같진 않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아시아로 귀환한다는 입장을 두고 한미관계를 중시하는 측에서는 이를 한미관계 강화의 논거로 내세우는데, 그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준형  저는 이게 일종의 예방 봉쇄라고 봐요. 실제로 미국은 주위 국가들과 군사적 협력을 구축해왔고, 중국도 이를 연성 봉쇄로 이해하고 있지 않습니까? 미국은 이게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과거의 동맹처럼 많은 돈을 들일 필요 없이 주위 국가들과 넓지만 느슨한 연대를 맺는 거죠. 주변국들과 중국 사이에는 나름대로 갈등 요소가 있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선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이들을 이용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작년에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이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이쪽 국가들을 방문 또는 초청했을 때 많이 한 말이, 미국과의 동맹 또는 중국으로부터의 보호판에 대해 너무 기대하지 말라는 거였어요. 그저 수사가 아니라 비용을 줄이는 대안이자 미래의 대비책으로 보는 것 같은데, 실제로 이런 그물은 미국의 의도대로 안될 것이고 아무리 느슨하게 친다 하더라도 유지하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들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근  아시아로의 귀환이라고 했을 때 한국에서 오해하는 게 뭐냐면, 우리는 아시아를 곧 동북아로 생각해요. 그래서 미국이 일본과 한국 쪽으로 돌아온다고 해석하는데, 동북아에서야 워낙 미국과의 동맹이 건재한 거고 실상은 동남아로 돌아오는 것, 그리고 호주와 협력을 강화하는 것을 의미하죠. 중국의 부상을 지켜보며 동남아 국가들이 불안해하니, 미국이 ‘걱정하지 마라, 우리는 아시아로 돌아오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데, 그게 지금까지의 미국의 동맹정책과 크게 다른 것 같진 않아요.

 

백학순  미국의 아시아로의 귀환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최근 이명박정부가 일본과 협력하여 도입하려했던 한일군사정보협정은 중국을 겨냥한 일종의 ‘아시아판 나토(NATO)’라는 주장이 있는데, 일리가 있죠. 나토 이야기가 나왔습니다만, 미국이 한국, 일본, 호주 등을 나토의 글로벌 파트너십에 참여시키자고 제안함으로써 유럽의 나토를 아시아에까지 끌고 와서 중국을 봉쇄하려고 한 것도 벌써 6년 전 일이지요. 이처럼 미국이 동북아에서 한국과 일본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는 계속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남주  아까 나온 헤징 전략을 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죠. 외교적으로 위험을 분산시키고 자원을 다양하게 이용하는 식으로요. 한편으론 기회라고 할 수 있지만 자산배분을 잘못할 경우 손실의 위험이 따르겠죠. 그런 면에서 우리가 무엇을 주의해야 할까요?

 

이근  중국과 관련해서는 두가지가 중요해요. 중국이 위협이 되느냐 안되느냐 따지기보다는, 사실 일본이나 미국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신뢰 구축을 어떻게 하느냐 또 정부가 얼마나 많은 노력과 투자를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한국 차기정부의 외교 방향은 아까 말씀하신 대로 동북아 균형자로서의 역량은 부족하기 때문에 신뢰 구축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무현정부 때도 나온 얘기입니다만. 신뢰 구축을 위한 전략을 많이 만들어내는 게 중요합니다. 둘째 방향은 중국을 동아시아 지역주의로 묶어야 한다는 겁니다. 동아시아 지역 차원으로 가면 한・중・일 협력이 상당히 잘 이루어지는 편이에요. 그래서 동아시아 지역주의라는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위험을 분산을 시키면서 중국을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준형   전략동맹이 한미관계의 성숙으로 나아간다면 동맹과 지역주의의 공존이 가능한데 이명박정부에서는 사실상 그걸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렸죠. 앞으로는 한미관계와 함께 다면적인 외교를 동시 추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미중관계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우리가 많이 좌우될 텐데, 그게 위험해질 경우에는 말씀하신 것처럼 헤징을 해야 하고 관계가 좋아질 때라면 우리가 촉진자가 되어서 신뢰 구축을 해야 하죠. 이때 우리가 너무 앞서지 말아야 해요. 이명박정부는 너무 빨리 선을 긋고 편을 정해버렸죠. 한발 뒤에서 기다리다가 때가 되면 민첩하게 대응하는, 또 예민한 사안에 대해서는 전략적 모호성도 가지는 외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급랭한 한일관계와 영토분쟁을 해결하려면

 

이남주  새 정부가 들어서면 한미관계, 한중관계를 어떻게 할지가 문제지만 당장 시급하게 해결할 과제는 한일관계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정부가 큰 짐을 새 정부에 유산으로 넘겨주고 가는 것 같아요. 지역주의를 잘 형성하기 위해서 한일협력은 매우 중요하고, 국가의 규모나 여러 역할을 고려할 때도 그렇죠. 한일관계가 악화되는 게 우리에게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백학순  한일 간에는 크게 두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영토분쟁, 역사논란, 일본군위안부 같은 현안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 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증진시키기 위한 공조지요. 우선 영토분쟁이나 교과서 논란은 기본적으로 일본이 과거 식민주의에 대해 더욱 철저히 반성하고 우리도 한일관계를 그 방향으로 이끌어가면서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문제를 풀어가야겠지요. 한일 정부는 양국 국민이 민족주의적 감정에 과도하게 휩싸이지 않도록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봐요.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그동안 책임 인정과 반성, 배상 차원에서 주로 논의됐는데 이제는 인권 침해라는 측면도 함께 부각해서 국제사회를 설득해나감으로써 일본이 해결에 적극 나서도록 압력을 넣어야죠.

북한 문제와 관련해선 한일 양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끝내고 평화체제를 수립하며 핵문제를 해결하도록 협력해야 합니다. 일본 외교를 보면, 해결에 실패한 사안 중 하나가 바로 북한 문제예요. 물론 일본도 북한과 과거 식민관계를 청산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북일평양선언(2002)도 나왔죠. 그 합의사항들은 올바른 문제해결의 방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일본정부는 이를 하나의 모범답안으로 여기고 그것을 이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겁니다.

 

이남주  영토분쟁의 경우 원칙적으로는 말씀하신 방향으로 해결되어야 하겠지만, 이슈가 상당히 커진 게 아닌가 합니다. 한일 간에도 그렇고 이게 댜오위다오(釣魚島)/센까꾸(尖閣) 문제 등과도 얽히면서 더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마당에 조용하고 장기적인 방법보다는 뭔가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백학순  독도 문제에서는 우리가 영토로서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으니까 다른 어떤 새로운 접근을 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일본은 현재 쿠릴열도까지 포함해서 세곳에 걸쳐 영토분쟁을 하고 있는 셈인데, 일본정부로서도 독도 문제를 해결할 특별한 묘안을 찾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영토분쟁은 그렇게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단지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일본이 독도 영유권에 대해 국제사회에서 공세적인 선전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도 정부와 민간이 힘을 합해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정책을 펴나가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반가운 것이, 지난 9월말 일본 지식인과 시민단체가 모여 발표한 호소문이에요. 독도와 센까꾸에서의 영토분쟁이 일본의 침략과 국유화 도발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하고 자성을 촉구했죠. 세 나라 시민사회 차원의 연대와 협력도 이 문제를 풀어갈 또다른 경로일 겁니다.

 

이근  대일외교에서는 역대 정부 가운데 이명박정부가 최악이라고 봅니다. 이 정부 들어서 외교 분야에서 별로 하는 일이 없었는데 일본에 대해서는 그나마 뭘 좀 했어요. 그런데 그마저도 이벤트 외교였고, 또 이벤트 중에서도 잘못한 케이스죠. 취임 후 내내 일본과 친밀한 외교를 했고 한일군사정보협정이라는, 국민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까지 밀고나갔는데, 갑자기 180도 바뀌어서 독도에 대통령이 직접 방문하고 천황(일왕)에 대해 발언해 일본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렸단 말이죠. 이걸 한중관계와 비교해보면, 한중관계는 안 좋다 하더라도 관광객도 여전히 많이 오가는데 한일관계는 독도 문제가 터지니까 저도 당시 일본에 가봤지만 한국 사람들이 굉장히 불안해해요. 그러니까 잘못된 외교로 국민에게 큰 피해를 입힌 거죠.

한일관계에서 영토나 교과서, 위안부 문제는 기본적으로 아이디어와 아이디어의 대결이에요. 저쪽의 아이디어에 대해 우리도 아이디어로 대응을 해야 하죠. 역사인식의 문제에 대해 군사적으로 대응할 순 없는 거니까요. 그러면 일본의 식민지 책임이라든가 인류보편적 가치의 훼손 같은 문제에 대해 학자들도 동원하고 외국에서 책도 내고 일본의 만행을 알릴 수 있는 전시 기획도 해야 되는데 그런 부분에서 너무 못하는 것 같아요.

 

김준형  그런 점에서 북한에 대해 줄곧 강경책을 펴다가 나중에 돈봉투 내놓으면서 정상회담을 제안한 거랑 비슷해요. 5년 동안 대북관계의 원칙을 지키겠다고 하면서 뒤에서는 밀실거래를 했죠. 이런 외교에는 한마디로 철학이 없는 거죠. 국가적인 중장기 비전을 보는 게 아니라 말씀하신 것처럼 이벤트적이란 말이에요. 한미관계도 그렇고 남북관계도 그렇고 이명박정부 외교의 대부분이 국내용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그게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죠. 일본이나 중국도 정권교체기에 이런 걸 국내적으로 이용하니까요. 그런데 독도 문제에서처럼 이런 방식으로 국민을 예민하게 만들어놓으면 당장은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나중에 그런 기대를 어떻게 만족시켜줄 것인가가 문제죠. 그나마 다행인 건 올 대선으로 선거가 다 끝난다는 거예요. 적어도 정권교체가 되면 이 문제는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가능성이 있죠.

 

백학순  일반적으로, 선거를 통해 정권이 교체되면 정책이 변하죠. 새로운 지도자는 새로운 정책을 의미하니까요. 정책에 일관성이 없으니 정부로서는 어려움이 많죠. 상대방 국가로서도 대응하기에 어렵고요. 한국에서 김대중정부, 노무현정부가 북한에 대해 포용정책을 추진했는데, 이명박정부 들어와서 대북정책이 정반대로 바뀌었고, 미국도 클린턴 정부에서 부시 정부로 바뀌면서 대북정책이 180도로 바뀌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번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에 대해 한 행동은 조금 다른 차원에서 문제가 되었다고 봐요. 한 지도자가 불과 얼마 전에 했던 것과는 180도로 다른 행위를 함으로써, 요즘 유행어로 하면, 상대방을 ‘멘붕’(멘탈 붕괴)시켰죠.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불신이 생긴 거예요. 정부라기보다는 지도자, 사람에 대한 불신 말이죠.

 

이남주  최근 영토분쟁을 보면 아시아에서 2차대전을 어떻게 청산할까의 문제가 등장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쌘프란시스코조약(1951) 문제가 제기됩니다. 이 조약에 전쟁 피해국인 한국과 중국이 참여하지 못한 한계를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고, 이것을 일본 지식인들과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봐요. 그게 제대로 되지 않으면 그저 영토 싸움하는 양상이 되는 것 같아요.

 

이근  일본에서 쌘프란시스코조약에 대한 비판은 주로 진보 쪽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일본의 진보는 냉전 이후 서서히 기울다가 납북자 문제로 완전히 망가졌어요. 그러면서 보수층이 올라오고 민주당이나 자민당이나 모두 보수적인 강경 발언을 내놓게 된 것인데, 그런 상황에서 진보 지식인들이 쌘프란시스코조약에 대해 얘기한다면 지금으로선 주목받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기도 해요.

 

이남주  그런데 지금 중국이 그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느낌이에요. 댜오위다오/센까꾸, 나아가 오끼나와 문제와도 연관되니 앞으로 그 논의가 진행되지 않을까 합니다.

 

김준형  조약 체결에 분명 미국의 잘못 또는 실수가 있었기 때문에, 그 책임을 공개적으로까지는 묻지 못하더라도 미국을 상대로 물밑작업을 통해 설득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백학순  쌘프란시스코조약체제가 지속되면서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주요 문제의 해결이 지체되고 있는 셈인데, 이를 구체적으로 풀어가는 출발점이 바로 한반도에서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것이라고 봐요. 일단 625전쟁부터 종식하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을 시작하는 것이죠.

그리고 지금 18대 대선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평화체제 수립을 이야기하고 있으나 박근혜 후보는 큰 관심이 없어 보여요. 정전체제는 적대와 불신의 구조이기 때문에 그것의 표현으로서 자꾸 서해상에서 군사충돌이 발생하고, 또 핵과 미사일 문제가 불거지는 거지요. 이런 상황인데도 박근혜 후보는 한반도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어요. 이것이 통일·외교·안보정책에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안철수 후보 간에 가장 큰 차이지요. 백낙청() 선생도 평화체제 수립이 기본이 되는 ‘2013년체제’ 담론을 내놓으셨지만, 대다수 우리 국민도 특히 천안함사건과 연평도 포격을 겪은 이후에는 무력충돌과 전쟁위협에 신물이 난다, 지긋지긋하다고 느끼고 있고 이제는 평화정착을 이룰 때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고 봐요.

 

 

남북관계 회복을 위한 국내정치적 기반

 

이남주  내년에 체결 60년을 맞는 정전협정에 관해서는 분명 얘기가 될 것 같은데 지난 5년 동안 여러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천안함사건, 연평도 포격도 있었고 금강산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못했죠. 남북이 실질적인 협력관계로 전환하려면 어떤 프로세스를 밟아야 할까요? 물론 그 프로세스도 말처럼 쉽지는 않을 테고, 정권이 바뀌어서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제약이 많으리라 보입니다.

 

백학순  우선 그 프로세스를 끌고 나가는 지도자가 갖춰야 할 명확한 가치와 방향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본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알지 못하는 지도자에게 그러한 평화 프로세스를 맡긴다면, 얼마나 시행착오와 혼란을 겪겠습니까. 둘째로, 일단 민족화해가 모든 프로세스의 기반이자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고 봐요. 그리고 남북관계 개선, 평화체제 수립, 북핵문제 해결을 서로 연계하지 말고 동시병행적으로 추진해가는 게 필요해요. 만일 우리가 이 세가지 문제를 상호연계하거나 선후관계로 놓는다면, 과거의 경험이 잘 보여주듯이, 결국 정전체제의 유지를 원하고 북핵문제의 해결방법으로서 압력과 제재를 선호하는 쪽에서는 우리의 독자적인 남북관계 개선을 허용하지 않을 것임은 뻔한 일입니다. 결국 민족화해가 되어야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협상도 가능하고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공동번영도 가능하다는 겁니다.

 

이근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이 한국인의 심리적 안정에 기여한 바가 있다고 봐요.(웃음) 먹고살기도 가뜩 힘든데 남북관계까지 시끄럽게 한다면 더 골치 아프겠죠. 이명박정부 후반기에 들어와서 한국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북한이 없어졌잖아요. 정부가 하는 게 없으니까. 이제 다음 정부는 누가 정권을 잡든 간에 이 이슈를 끄집어낼 거란 말이죠. 그러면 굉장히 시끄럽게 될 거예요. 남북관계만큼 보수와 진보가 싸우는 문제가 없으니까요. 이미 북방한계선(NLL) 문제가 나왔잖아요. 물론 특정 대선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서였지만, 어떻든 저는 남북관계에 있어서는 진보진영이 불리하다고 봐요. 오히려 보수 쪽에서 대북정책을 전환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해요. 남북관계에 초당적으로 임하지 않으면 신뢰 문제도 그렇고 한미관계도 그렇고 풀리지 않는 부분이 많은데 이 점에서는 박근혜 후보 쪽이 유리하죠. 보수진영이 대북정책에서 전향적으로 나가면 지지층이 더 붙을 수 있지만 진보진영에서 그렇게 하면 지지기반이 분열되니까요. 지금까지 우리가 햇볕정책도 했고 다 해봤지만 가장 큰 문제는 초당적인 지지가 없다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다음 정부는 대북정책을 하려면 국내적으로 잘 다독이면서 나가는 게 필요하고, 또 급하게 나가는 건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김준형  저는 좀 달리 봅니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보수 쪽이 대북정책을 전향적으로 펼치면 초당적인 지지를 받기가 쉬운 면이 있지만,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태생적으로, 세력적으로, 또 정치공학적으로도 보수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북정책 변화를 가져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보수층은 보수층대로 자신의 지지기반 분열을 막기 위해서라도 못한다고 보는 거고요. 진보가 정권을 잡는다면, 특히 문재인 후보가 당선이 되어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해간다면 또 북한 퍼주기 하느냐, 국민을 분열시키느냐는 비판이 쏟아져나올 겁니다. 그래서 저는 통합이나 초당적 합의에 너무 연연해서 시기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고, 오히려 집권 초기 통치력이 제일 높은 1~2년간 과감하게 치고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백학순  제가 보기로는, 우리 국민 대다수가 특히 천안함사건과 연평도사건을 통해 긴장이 고조되는 차원을 넘어 전쟁위협이 급증하고 있음을 직접 겪었잖아요. 이럴수록 남북 간에 대화를 해야 하는데 이명박정부 들어 그 흔한 장관급 회담도 하지 못했죠. 국민은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더이상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또 지금은 우리 경제가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데, 그 활로로 남북경협을 기반으로 중국과 러시아까지 연결하여 북방경제의 블루오션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안철수 후보 같은 사람도 있고요.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 구상한 ‘철의 실크로드’, 러시아 가스관 연결사업 등을 떠올리면, 북방경제 블루오션을 개척하자는 주장이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라 아주 오래된 뿌리를 가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근 교수께서 진보진영이 집권하면 대북정책과 관련하여 우리 사회에서 지지기반의 분열 현상, 즉 남남갈등이 깊어질 위험을 우려하셨습니다만, 저는 어느 정부가 들어서든 간에 지금처럼 망가진 남북관계를 그냥 놔둘 수는 없고, 빠른 속도로 신뢰와 관계 회복을 해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오히려 적극적인 화해로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그러한 대북정책에 대한 지지도가 높아질 것이고 이는 결국 우리 사회에서 남남갈등 현상을 완화하고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해요.

 

이근  저는 남북관계는 물론 중요한 이슈지만, 거기서 좀 벗어나야 된다고 생각해요. 한국 외교가 다른 무한한 대륙과 바다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은데 남북관계에 발목이 잡힌단 말이죠. 그리고 남북관계는 신중히 해나가면서 신뢰가 어느정도 쌓이는 게 보였을 때 한번 크게 도약하고, 또 신중하게 나가다가 신뢰가 쌓였다 하면 또 한번 뛰어오르고, 이렇게 단계적으로 해나가야 된다고 생각해요.

 

백학순  그런데 문제는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외교·통상 부문이 발목을 잡힌다는 거죠.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 대내외적 요인에 따른 한국의 국가신용도 저평가)도 생겨나고요. 남북관계가 외교·통상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되고 도움을 주어야 하는데, 과거 경험을 보면 정반대의 경우가 훨씬 많아요. 무엇보다도 남북관계가 악화되어 한반도에서 전쟁 위협이 커지고 북핵문제가 다시 불거지면, 우리는 외교·통상 분야에서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김준형  김대중정부나 노무현정부 때도 너무 성급했죠. 제 말은 자기 임기 내에 뭔가 완성시키려 서두르지 말라는 거죠. 큰 흐름을 바꿔나가야 되고 지금 잘못돼 있는 걸 바로잡되 국민에게 잘 설명해야죠. 지금 여론조사를 봐도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이 역행한다는 것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잖아요. 그러니 누가 대통령이 되든 초기에 거버넌스가 괜찮을 때를 위해 많이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근  문재인 후보나 진보개혁진영에 대해 우려하는 부분은 뭐냐면, 대북정책은 노무현정부 시절 정책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에요. 그게 가장 걱정스러워요. 왜냐하면 그때 방향은 좋았지만 좌초했잖아요. 그 원인이 바로 국내정치였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대북정책을 잘하려면 국내정치를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정은체제에서의 북미관계 전망

 

이남주  남북관계의 회복 내지 개선에 관련해서는 국내적으로는 어느정도 합의와 동력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변수는 북한의 움직임과 북미관계인 것 같아요. 북쪽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남한에서 이루어놓은 합의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죠. 김정은체제 이후 북미관계가 전환될 것인지, 또 북핵문제를 대화로 관리하는 프로세스가 만들어질 수 있을지요?

 

백학순  김정은은 현재 남한과 미국 대선에 악영향을 줄 도발을 자제하면서 대화와 협상의 파트너가 될 새로운 리더십이 들어서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죠. 북한도 여느 나라처럼 좀더 좋은 전략을 세우려고 노력해온 것은 사실인데, 소련의 멸망으로 자기 나름의 21세기 생존과 발전 전략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지요. 국내적으로는 3대 권력세습을 통해 정치의 안정성을 획득했다고 볼 수 있지만, 경제는 여전히 해결이 되지 않았죠. 남북관계에서는 그동안 평화적 공존과 번영의 틀을 어느정도 마련했다고 생각했겠지만, 이명박정부 들어와서 이게 뒤집히는 바람에 전략적 한계를 느꼈을 거고요. 대외관계에서는 미국과 빨리 적대관계를 끝내고 평화체제를 수립해 관계정상화를 이룸으로써 대외 생존과 발전의 틀을 마련하려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중에서 경제 회생이 가장 시급한데, 이를 풀기 위해서는 국제사회로부터 협력을 얻어야 하죠. 중국과의 경제협력은 좋은 편이지만 너무 일방적으로 중국에 대한 경제의존도가 높아졌어요. 따라서 하루빨리 남한, 미국, 일본 등과 관계를 개선하여 경제협력을 하고 싶어합니다. 북한은 핵을 보유하고 싶겠지만 국제사회가 일치하여 반대하고 있죠. 자신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으려고 하면서 핵과 미사일 문제를 나 몰라라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죠.

북한이 이러한 상황이라면, 우리가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여 국제사회와 관계를 개선하고 핵도 미사일도 포기하게끔 적극 유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압력과 제재를 더 세게 가한다고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어요? 결국 근본적인 접근법을 택해서 북한이 원할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는 길을 찾아 상호 윈윈(win-win) 하는 협상을 해내야죠. 아까 쌘프란시스코체제 얘기를 했지만 그것을 한반도에서부터 해소함으로써 동아시아가 안정될 수 있는 해법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에서는 평화체제 수립을 얘기하면 친북이라 몰아붙이는데, 이것은 역사적 사실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에요. 한반도에서 전쟁을 끝내고 평화체제를 수립하지 않고서는 북핵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클린턴 행정부가 김영삼정부를 설득하여, 한국・미국・중국・북한이 참여해 한반도 평화체제를 논의하는 4자회담이 1996년에 제주도에서 한미 공동으로 제안되었잖아요. 이 4자회담은 1999년까지 계속되었지요. 이후 일본과 러시아가 합류한 6자회담에서 북핵문제 해결책으로 합의한 2005919공동성명을 보면, 한반도 평화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직접 당사국들’이 ‘별도의 포럼’을 갖기로 한다고 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 합의가 이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단계 조치들을 합의한 213합의(2007)를 추진하는 데는 당시 미 국무부 고문인 필립 젤리코(Philip Zelikow)가 쓴 유명한 두편의 보고서가 영향을 미쳤는데,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근본적인 접근법이 아니면 한반도에서 핵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내용이었지요. 결론적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하려면 평화체제 수립을 함께 논의해가야 한다는 것을 국제사회가 인정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회담까지 이미 했던 것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북한만 평화체제를 주장하는 것처럼 잘못 알려져 있지요.

 

이근  북핵문제는 우리가 해결하려고 할수록 위협으로 다가오고, 안 건드리면 별로 의식하지 못하는 이슈예요. 지금 우리 국민에게 북핵이 두렵냐고 물어보면 아마 생각도 안하고 있을 겁니다. 미국도 북핵 위협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거의 안 움직였잖아요. 또한 2, 3년 안에 해결될 문제도 아니에요. 아주 긴 프로세스이기 때문에 어떤 정권이든 임기 안에 해결하겠다고 달려들면 오히려 악화시킬 공산이 있어요. 그래서 남북관계에서는 평화체제든 교류협력이든 이런 것들을 추진하되, 북핵에 관해서는 상당히 장기적인 프레임으로 신중하게 접근해서 국민에게 이 문제가 긴급한 것 같은 신호를 안 주는 상태에서 병행해가야 합니다.

 

김준형  북핵문제는 미국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해요. 이 말은 우리가 주체성도 없이 미국에게 떠맡기자는 것이 아니고요. 북핵문제의 본질이 곧 북미 간의 문제라는 말입니다. 북한이 핵을 개발함으로써 생존을 확보하려는 요구의 대상이 미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바마의 재선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다음 6자회담의 동력과도 연결이 될 겁니다. 과거 경험을 보면, 대화가 성사됐을 때도 북미 양국간 막후협상을 통해서 한 거고, 반대로 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질 때도 미국이 돌아서서 깨진 거죠. 그렇게 미국이 나설 경우 좋은 게 뭐냐면, 한국이 대북화해를 먼저 제안하면서 천안함이나 연평도 문제에서 훨씬 부담을 덜 수 있거든요. 미국이 나섰을 때 우리가 거기 편승한다든지 촉진시킨다든지. 그런 방식이 제일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남주  천안함이나 연평도 문제에 대한 부담을 더는 방식은 물론 차이가 있겠지요. 연평도 포격 같은 사건은 재발을 막기 위한 확고한 의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천안함사건의 경우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시민사회에서 정부 발표에 대한 문제제기를 계속하며 재조사를 요구하고 있고 문재인 후보도 그러한 국민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추가 조사 등의 노력이 필요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지요. 이 작업이 진행되어야 남북의 여러 현안을 어떻게 풀어갈지가 더 분명해질 것 같습니다. 북핵문제로 다시 넘어가면, 미국과 북한 사이에는 핵문제 접근 방식에 대해 상당한 견해 차이가 있는데 이게 어떻게 좁혀질 수 있을지가 관건일 것 같아요.

 

백학순  국제 현실을 보면, 미국이 강대국으로서 나름대로 외교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많은데 북핵에 대해서는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십’이 제대로 확립됐다고 볼 수 없어요. 부시 정부 때부터 북핵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북한의 핵능력을 키워주는 식으로 반북 강경정책을 추진하다보니 리더십이 무너졌고, 그 부정적 영향이 그대로 미국인들의 여론에 뿌리를 박았죠.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서도 북핵문제에 관해서는 여전히 정치적 리더십이 작동되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결국 테크노크라트, 관료들이 북핵문제를 장악하여 모든 것을 기술적인 차원으로 접근해 검증 공방만 벌였지요. 북핵문제는 625전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현실에서 하나의 ‘병의 증후로’서 생겨난 것으로,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성격’의 문제지요. 그러니까 ‘정치적 해결’로 풀어야 하고요. 전쟁보다 더 ‘정치적’인 사건이 어디 있겠어요. 앞으로 미국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대통령이 직접 틀어쥐고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시각에서 과감한 포괄적 주고받기 협상을 해야 하겠지요.

 

이근  북핵문제는 결국 억지(抑止)의 차원으로 가져가면서 해결책을 모색해야지 성급하게 답부터 찾으려고 들면 한미관계도 헝클어지고 남북관계도 꼬이게 되죠. 국민을 안심시키면서 나가는 게 필요합니다. 미국도 마찬가지고요.

 

이남주  국내정치에서는 그런 태도가 갈등을 일으키지 않을까요? 핵문제 해결 없이 뭘 하겠느냐는 식으로요.

 

이근  그러니까 초당적으로 합의해야 할 게 뭐냐면, 우리가 북핵에 대해서는 확실히 억제시킨다, 그리고 이건 1, 2년 안에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이런 거죠.

 

백학순  제대로 된 협상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핵문제 해결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조건이 있지요. 한반도에서 전쟁과 평화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고 미국에서 이 사안을 다루는 데 정치적 리더십이 세워지는 것이죠. 만일 그런 조건이 갖춰지기만 한다면 협상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의제설정 능력과 방향성 확립이 시급

 

이남주  남북관계가 잘 풀리면 한국 외교의 공간이 더 넓어지는 거고 불행히도 거기 발목이 잡히면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겠죠. 그런데 남북관계 외에도 한국 외교가 해야 할 몫이 상당합니다. 최근에는 국제적으로 상당한 관심과 기대도 받고 있습니다.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출된 것을 봐도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맡아야 할 역할이 있는 것 같아요. 이제 우리 외교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나가야 할지 이야기해봤으면 좋겠습니다.

 

김준형  이명박정부 임기 동안 한국이 국제사회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건 오바마의 다자주의(多者主義) 영향이 컸다고 생각해요. 한미동맹이 강화되고 한국의 비중이 커진 데서 오는 반사이익 중의 하나죠. 그런데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회의를 몇차례 개최하고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하는 것보다, 국제협력에서 의제설정 능력과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서 적극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하거나 다른 나라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아직 턱없이 부족합니다. 앞으로 자꾸 새로운 의제를 찾아내고 기존의 역할에서도 기여도를 높이는, 실질적인 외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백학순  이명박정부의 외교정책을 보면 외견상 글로벌 거버넌스에 공헌하고 중요한 구성원으로 참여해 성과를 이룬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마치 우리 경제를 볼 때 거시지표는 좋아졌지만 실제로는 양극화로 인해 서민의 삶은 무너지고 있는 것처럼, 우리 외교도 외형적으로는 발전했지만 실속은 아직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있어요. 앞으로는 외교나 통상 분야에서 좀더 유능한 정책행위자들이 나와 정교하게 실속을 채워넣는 작업을 함으로써 한층 유능한 실력국가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근  과거에는 자본주의체제와 사회주의체제가 대립했지만 지금은 다 자본주의잖아요. 그럼에도 외교가 중요한 이유는 신뢰관계가 구축되지 못해 자꾸 싸우기 때문이죠. 단순히 군사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면에서도, 사회문화적인 차원에서도 역시 신뢰가 문제기 때문에 한국이 외교 지평을 넓히려 한다면 신뢰구축을 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욱이 동북아에서는 신뢰 문제가 가장 크기 때문에 한・중・일 간에 그리고 남북관계에서 신뢰를 쌓는 경험을 만들고 성과를 보여주면서 그 노하우를 국제적으로 넓혀가야 합니다. 지금 동북아에서 민족주의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는데, 세계화가 된 이후에도 민족주의가 나타나는 까닭은 각 나라가 이제 삶의 질을 높이고 자긍심을 가져보자는 거지 다른 민족을 지배하겠다는 얘기가 아니거든요. 그런 맥락을 잘 잡아내고 이른바 상생적 민족주의를 추구하며 중간에서 신뢰구축도 해주는 역할을 한국이 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이남주  말씀하신 상생적 민족주의가 동아시아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민족주의를 버리자 하더라도 그게 현실적인 동력으로 존재하는데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고, 또 과거의 공격적인 민족주의 양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상당히 위험하니까요. 그것을 어떻게 승화시켜서 새로운 신뢰구축의 역사를 만들어내는가가 상당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김준형  두분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역시 문제는 국내정치에서 굴절된다는 겁니다. 민족주의는 어느 국가에게나 아주 요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정치적 자본이니까요. 그리고 상생이라는 게 실제 이루기에는 오래 걸리고 효과도 잘 안 나타나니까 과거처럼 영토를 빼앗자는 건 아니더라도 나쁜 놈, 나쁜 국가를 하나 정해놓고 우리끼리 단결하자는 게 유혹이 크거든요. 지금 중일관계나 한일관계를 봐도 그런 경향이 보여요.

 

이남주  잘 알겠습니다. 오늘 대화의 마무리를 겸해서 다가오는 대선에서 정권을 누가 맡든지 임기 내에 해결해야 할 외교의 핵심 과제는 무엇인지, 또 말씀 중에 미진하신 게 있으면 덧붙여주시죠.

 

이근  차기 정부가 임기 내에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임기 내에 끝장을 보려고 하면 무리를 하다 좌초되는데, 큰 방향을 설정해서 물길을 깊게 파고 그쪽으로 계속 흐를 수 있을 정도만 하면 되지, 임기 내에 해결하려는 어젠다를 제시하면 안됩니다. 외교와 관련해 핵심적인 이슈는 다름아닌 국내정치라고 봅니다. 초당적인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죠.

 

백학순  차기 정부는 한반도에서 전쟁과 평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대하게 해나가야 합니다. 임기 내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방향은 정확하고 분명하게 정립했으면 좋겠습니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중심으로 하는 유능한 외교를 펼치고, 일부러 드러낼 필요는 없겠지만 G10 실력국가가 될 수 있도록 목표를 세우면 좋겠어요. 요약하자면, 평화외교와 실력 통상외교지요.

 

김준형  저도 임기 내에 뭘 이루겠다는 태도는 야심차지만 비현실적이라고 봐요. 앞에 말씀하신 것처럼 방향성을 설정하면 될 텐데, 한마디로 하자면 그동안 망친 것을 회복하는 외교가 필요합니다. 요새 유행하는 말로 ‘힐링(healing)’ 외교라고 할까요. 그 핵심은 무엇보다 남북관계겠지만, 어느 하나에 몰두하기보다는 좀더 다양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교량적 위치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움받는 국가에서 도와주는 국가로 성장한 것은 사실이죠. 잘사는 나라지만 제국주의의 원죄가 없으니 국제사회에서 크게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얘기죠.

 

이남주  중요하고 흥미로운 말씀이 많아 독자들에게 유익한 읽을거리가 되겠습니다. 오늘 수고하셨습니다.(2012.10.19. 세교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