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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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 중편 특집

 

공선옥 孔善玉

1963년 전남 곡성 출생. 1991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소설집 『피어라 수선화』 『내 생의 알리바이』 『멋진 한세상』 『명랑한 밤길』 『나는 죽지 않겠다』, 장편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 『시절들』 『수수밭으로 오세요』 『붉은 포대기』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영란』 『꽃 같은 시절』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등이 있음. hahan7@hanmail.net

 

 

은주의 영화

  

내가 아버지와 함께 처음으로 영화관엘 간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지금 그 영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영화를 보고 나와서 아버지와 함께 영화관이 있는 길모퉁이 찻집에서 아버지는 커피를 마시고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었을 때가 떠오른다. 창밖을 한참동안 바라보던 아버지가 문득, 딱 저런 길모퉁이였다, 내가 너희 엄마를 처음 본 게,라고 말했다. 나는 저런 길모퉁이에서 파란 제복을 입고 호각을 불고 있었는데, 단발머리 나풀거리며 길을 건너오던 너희 엄마가 내 옆을 지나가더라.

예뻐서 나는 호각소리를 더 크게 냈다. 너희 엄마가 한번 더 돌아볼까봐, 가슴을 졸였지. 정말로 돌아보더라. 숨이 멎을 뻔했지. 거의 영화였다, 영화였어.

돌아보면 아버지가 눈을 가늘게 뜨고서 거의 영화였다, 영화였어, 했던 순간이 내 영화의 시작이었다.

내가 두번째로 아버지와 영화관에 갔을 때는 고등학교 졸업식 날이었다. 졸업식 날 나에게 특별히 해줄 것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그날 우리는 중국 지아장커 감독의 「스틸라이프」를 봤다. ‘삼협호인’이라고도 했다. 영화를 보고 나온 아버지와 짜장면집에 갔다. 중국영화를 보고 났으니 자동으로 중국음식을 먹으러 가게 된 것이다. 짜장면을 비비며 아버지가, 야, 좋다 좋아, 감탄사를 연발했다.

은주야, 너도 저런 영화 하나 만들어볼래?

아버지의 그 말이 또 내 영화의 시작이다. 나는 대학을 떨어졌다. 영화는 대학에 가서 배워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카메라 한대만 있으면 되겠지.

카메라가 없는데?라고 했더니,

까짓 거 한대 사지 뭐, 하고서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카메라 가게로 갔다. 옜다, 우리 딸 대학 떨어진 선물이다!

아버지가 내게 캠코더를 선물한 것이 또 내 영화의 시작이다. 그 캠코더 값을 갚는 데 아버지는 꼬박 열달이 걸렸다. 아버지도 나도 영화라는 것이 돈이 드는 일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나는 이미 영화 이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중에 대학 영화과를 다 떨어지고 영화와는 아무 상관없는 도서관학과로 점수 맞춰 들어갔지만, 영화는 내 천직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번도 버린 적이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 영화의 길은 요원했다.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는 적어도, 엄마의 언니, 그러니까 나의 이모가 다리를 절게 된 사연이라든가, 이모가 세들어 사는 집 옆방 아이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죽었다든가, 엄마가 아버지한테 두들겨 맞고 집을 나갔는데 우리 아버지 오중철씨가 집 나간 우리 엄마 이상순씨를 찾으러 갔다가 근무지 무단이탈로 직장에서 짤린 이야기 같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내가 이 영화도 아닌 영상물을 보며 골방에서 거의 혈거를 방불케 하는 생활로 시간을 죽였던 것은 물론 내가 백수여서였다. 그런데 내가 매번 이 영상물을 보면서 경험한 이상한 현상들은 다 무엇이었을까. 내가 이상한 현상들을 겪으며 이 영상물로 시간을 죽이는 동안 엄마의 돈 없는 생활의 공포에서 오는 나를 향한 공격과 습격은 간단없이 이어졌고 아버지의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고 동생은 나보다 더 늙어갔고 나의 미래에 대한 불안은 극에 달했다. 이상한 현상을 경험하게 한 그 영상물의 첫 장면은 이모가, 세상 모든 것이 다 뜨거웠다는 말로 시작되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뜨거웠어. 하늘의 해, 닭백숙이 끓고 있는 솥,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때는 나, 양손에 닭날개를 잡고 햇빛 속을 뚫고 걸어오는 아버지, 장독, 나뭇잎, 흙도 다 뜨거워서 나는 숨을 다 못 쉴 지경이 되어부렀단다.

이모의 억양은 엄마처럼 세지 않고 부드러웠다. 나는 숨도 못 쉴 지경이 되어부렀단다, 하고서 이모는 정말로 숨이 가쁜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모가 그렇게 말할 때까지만 해도 내 카메라는 무심했다. 나도 무심했다. 나는 아직 카메라 밖에 있었다.

 

손님은 아예 없는 날도 있고 그날같이 산 쪽의 참나무 두그루, 벚나무 한그루, 마당의 감나무 한그루 밑에 아버지가 만들어놓아둔 평상이 다 찰 때도 있어. 마당 감나무 밑 손님들이 닭날개를 잡고 마당을 가로질러 오는 아버지를 부르더라.

아저씨, 여기 얼마요?

저어기 우리 가시내한테 계산하십쇼이. 내가 지금 보시다시피 닭 잡니라고 정신이 없어서.

나는 아궁이에 불을 밀어넣고 손님에게로 종종거리고 가서 돈을 받지. 얼마요? 삼만원이요. 삼만원? 머시 그렇게 비싸?

돈을 치른 남자가 내 위아래를 훑어봐. 그러고는 침을 뱉듯이 물어. 아가씨 몇살이야?

나는 대답하지 않지. 그러면 얼라, 예쁜 아가씨가 장애가 있네이, 장애가 있어. 아이고, 아까워라 아까워. 그러면서 가. 니가 잡아먹을 것도 아니면서 머시 아깝냐 새꺄, 이빨을 쑤시면서들 간다고. 그다음엔 또 참나무 아래서 보양탕을 먹던 사람들이 급하게 아버지를 부르더라고.

선천성이요, 다쳤소?

아버지가 나를 돌아보고는,

선천성은 아닌 게 다쳤다고 봐야제. 안 그러냐이?

다쳤다고 본다면 그 시점이 언젭니까? 내가 왜 시점을 묻냐면 요새는 의술이 좋아져서 저 정도 장애는 얼마든지 고칠 수도 있을 거란 말입니다. 오늘 이 집 음식도 잘 먹고 내가 한번 좋은 일을 해보고 싶어서 그래요. 다친 시점이……

오일팔 때 그랬습니다. 오일팔 때.

아, 그럼, 총 맞았어요?

어어어, 그것이 아니고오, 맥없이 맥없이 그랬단게애. 그냥 군인들이 퇴각험시로 뿔따구가 좀 났던개비여어. 왜 안 글겄소. 군인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전진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데 퇴각을 하니까 군인들 심정이 좀 안 좋았던갑서. 그래서 좀 화풀이를 한다고 한 것이 지나는 길에 장독아지도 좀 깨고 총질도 좀 하기는 했제이. 시내서는 뭐 많이 죽기도 죽었지마는 우리 동네서는 그저 닭 몇마리, 개새끼 몇마리 죽고 거 머시냐, 하여간 그뿐이여. 소소허다면 소소허제. 아, 근디 저것이 방에서 나오다가 달구새끼 죽는 것을 좀 봤던 모양이여. 그것이 뭣이 어쩐다고 심적 타격을 좀 얻었던 모양이라. 한창 예민한 사춘기 때라이, 그럴 수도 있어. 충격을 먹었는가, 그뒤로 저러요 안.

아버지가 그날따라 내가 다리 절게 된 사연을 길게 말하더라고. 날은 뜨겁더라. 날이 뜨거워서 내 속도 뜨거웠지. 꼭 아버지 때문은 아니라고.

오일팔 피해자그만, 피해자여.

앗따 그런 말 하지들 마쑈. 저 아래 누구집, 누구집 해서 죽은 사람들이 얼매나 많은디 우리집 가시내는 직접적 피해를 입은 것도 없고 단지 달구새끼 때문에 충격을 좀 먹은 것을 가지고 무슨 피해자는 피해자여. 어어어, 당최로다가 그런 말은……

사람들이 갑자기 ‘오일팔 이야기’에 열을 올리더라. 자기는 그때 어디 있었다, 무엇을 했다, 광주서 뭔 일 난지도 모르고 라면 끓여먹고 춤췄다, 라면 먹고 왜 춤을 추냐, 나도 모른다, 그냥 그랬다, 와글와글와글, 참나무 아래서 아주 신이 났더라. 신이 나 죽겠다가 또 아버지를 불러.

군인들이 그럴 때 아저씨는 뭐했어요?

나는 요아래 주막에서 술 묵고 있었지라.

앗따, 딸이 지금 죽게 생겼는디 너무 무심했던 것 아녀어?

참나무 아래 신난 인간들은 어느새 반말이야.

내 잘못이 많지라, 내가 죄가 많어노니.

딸은 이쁘게 생겼그만.

지 에미 닮아서 이쁘긴 이뻐라.

아줌마는 어딨어요?

진작에 가부렀어라. 쟈들 어려서 가부렀어.

새장가도 안 가고 아저씨 혼자 애들을 키웠어?

누가 이런 데 와서 고생하고 살라고 할랍디여?

아저씨, 여기 얼마야?

삼만 오천원인디, 삼만원만 줏쇼.

어이, 아가씨 일롸바, 오천원은 아가씨 줄게, 이뻐서 주는 거야이.

당최로다가 그러시면 안되는디이.

당최로다가 그러먼 안되는디이.

내가 집을 나서자, 아버지가 바쁜데 어디 가냐고 하더라. 그냥 간다고 했지. 아버지가 빨리 오너라 하더라고. 그럴게요, 했어. 아버지는 내가 진짜로 집을 나가는 걸 몰라서 그랬겠지. 가겟집 앞에까지 내려왔다가 아무래도 돈을 가지고 나와야 할 것 같아서 산중턱 집으로 다시 올라갔지. 아버지가, 왔냐? 얼른 보양탕 솥에 불 좀 너라. 나는 다시 아궁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 땀을 흘리며 불을 땠단다, 오살할. 나에 비하면 니 엄마는 용감한 년이여.

 

오살할,이라고 이모가 말했을 때인 것 같다. 카메라가 갑자기 입을 크게 벌리는 것 같았다. 아마 술기운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한순간, 내가 카메라 속으로 쑤욱 빨려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카메라 속에서도 이모를 찍어야겠다고 카메라를 찾고 있었다.

 

엄마는 잘 기억나지 않아. 내 생각에 엄마도 아마 선한 사람이었을 거야. 사람들이 보통 악하기보다 선하기가 더 쉬운 법이니까. 아닌가? 악하기가 더 쉬운가? 나한테 엄마 사진이 있었어. 우리 버리고 간 나쁜 년 사진 보지 말라고 오빠가 빼앗아가서 갈기갈기 찢어버렸지만 사진 속 엄마 얼굴이 동글납작한 게 채송화같이 생겼어. 채송화같이 생긴 엄마가 악할 리가 없지. 채송화같이 생긴 엄마를 두들겨 패서 집 나가게 한 아버지도 나쁜 아버지는 아니야. 착해. 너희 아버지는 징그럽게 착한 사람이라고 동네사람들이 다 말했어. 그렇게 착한 아버지를 버린 너희 엄마가 복을 찬 것이라고. 아버지는 술에 취해서 말했지.

나의 실수였제. 그렇다고 나가버리냐, 어린 자식들이 울고 기다리는 줄 번연히 알면서이. 오면 좋겠지야만서도 와야 말이지. 인자 올 수도 없어. 니 엄마가 시집을 갔다더라는 말은 내가 했을 것이다이.

우리는 아버지한테 엄마가 시집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었어. 그날 처음 들은 거야.

그런디 니 엄마가 시집가서 애기 낳고 잘 살다가 죽었다더라. 누가 가서 본 게 느그 엄마 애기들이 아직 어린디, 서럽게 울더란다.

아버지가 그 말을 했을 때 우리는 다 함께 울었단다. 엄마가 죽은 것은 별로 실감이 안 나. 엄마가 그리운지 아닌지도 무감각해. 근데 엄마 아이들이 서럽게 울었다는 대목에서 난데없이 서러워지더라고. 아부지와 나와 상순이가 그렇게 울고 있을 때 중학생인 오빠가 미친년 죽은 것이 뭐가 슬프다고 우냐,고 바가지를 집어던지더라.

오빠도 겉은 거칠지만 고운 속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어.

춥냐? 뭐가 춥다고 지랄이냐, 어깨 안 펴?, 스을, 펴라고 했다이. 안 피네, 일루와 콱 그냥, 피라면 피란 말이야.

우리 어깨를 잡아당기고는, 어디선가 구해온 빵이나 오징어다리 같은 것을 쓱 건네주곤 했단다.

니 엄마 상순이도 착했다이. 남의 것을 잘 훔치긴 했지만 인정은 많았지.

내가 언니 줄라고 먹고 싶은 것을 꾹 참고 갖고 왔으니까 먹어이.

가겟집에서 훔친 과자를 나한테 주는 거여, 저는 안 묵고 나한테. 가시내 망할 것 같으니라고. 흐흐흐.

 

이모가 웃었다. 분명히 카메라 속에서 이모가 웃었는데 현실에서의 나도 웃고 있었다.

돈도 못 버는 것이 뭐가 좋다고 처 웃냐, 웃기를. 내 등 뒤에서 언제 들어왔는지 엄마가 내 등짝을 후려쳤다.

카메라 꺼 이년아. 나가서 돈 벌려면 기어나와서 얼른 밥이나 처먹어.

엄마의 거친 언사는 날이 갈수록 그 도를 넘고 있다.

이력서 넣어놨으니 연락이 올 거라고.

연락 올 때까지 카메라만 들여다보고 있으시겠다?

그럼 어떡해. 딱히 할 일이 없는데. 밥 맛있네, 흐흐흐.

방구석에만 틀어박혀 있더니 슬슬 미쳐가는구나.

내가 정말 미쳤나? 나는 정말 미친 척하면서 밥만 먹고 내 방으로 들어와버렸다.

야이, 미친 가시내야, 니가 먹은 밥 설거지는 해얄 거 아녀어. 저년 수발 드니라고 쉬는 날 쉬지도 못해.

내 밥그릇 씻는 설거지 소리가 요란하다. 나는 숨을 곳이 없다. 카메라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카메라가 숨을 쉰다. 카메라가 큰 숨으로 나를 빨아들인다. 나는 저항하지 못하고 카메라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카메라 속에서 카메라를 찾는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카메라 속에서는 카메라가 필요 없다는 것을. 카메라 속에서는 내가 카메라고 카메라가 이모다. 나는 이제 이모가 되었다.

 

나는 엄마를 집 나가게 한 아버지가 정말 미웠다. 아버지가 미워서 공부를 잘 하지 않았는데 아버지는 내 머리가 원래 공부머리가 아니라고 판단했는지는 몰라도 초등학교 육학년 가을에 학교에서 돌아와서 작대기를 가지고 개와 함께 놀고 있는 나를 아버지 있는 쪽으로 오라고 손짓해서는 조용히 말했다.

니 오빠 공부시킬라니 할 수가 없구나, 상순이는 아직 어리고 니가 아부지를 도와줘야제,

나는 말 잘 듣는 딸처럼 순순히 그러겠다 했다. 순순히 그러겠다 해놓고 나는 벽장에 올라가 서럽게 울었다. 집 나간 엄마도 밉고 아버지도 밉고 오빠도 미웠다. 밉지만 그 미움을 나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자주 산중턱에 있는 우리집 아래 도시를 내려다보곤 했다. 한낮에도, 저녁에도, 오밤중에도, 새벽에도. 새벽에 변소에 가려고 나온 아버지가, 그런 나를 보고, 거기서 뭔 생각을 그리 하냐,고 대수롭잖게 물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가 내 곁에 오지 않고 방으로 그냥 들어가버리는 것이 나는 견딜 수 없이 또 미워져서 방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산중턱 우리집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시를 가만히 노려보고 앉아 있는 수밖에는, 노려보고 앉았다가 가슴 한복판을 꽝꽝 치거나 득득 긁는 수밖에는. 아무리 꽝꽝 치고 득득 긁어봐도 뭔가 스멀거리거나, 뭔가 따끔거리는 증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검정 페인트로 토종닭, 보양탕이라고 씌어진 나무 간판은 진작에 없어져버렸어도 사람들은 우리집에 토종닭과 보양탕을 먹으러 왔다. 나는 아버지를 도와 토종닭, 보양탕 솥에 불을 때고 손님들이 먹고 나간 그릇을 씻었다. 일을 다 끝내고 나면 돌아서서 개처럼, 아무 곳에나 대고 컹컹 짖었다. 으르릉, 혹은 가르릉도 해보다가 아무 데나 확, 침을 뱉었다. 그러면 가슴 한복판의 스멀거림이라든가 따끔거림이 조금은 줄어드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골방에 틀어박혀 있으니 이가 생겼냐? 왜 득득 긁냐, 긁기를. 가슴은 또 왜 쳐, 맨날 처박혀 소화가 안되는 거여? 나는 아직도 내가 내 가슴을, 득득 긁다가 꽝꽝 치고 있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엄마의 비명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내가 이상한 행동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절대로 그러려고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다만 이빨을 쑤시면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나가다가 아깝다고 흰소리하는 인간들을 향해 침을 뱉었다고 말하는 이모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침이 고였고 이모처럼 나도 저절로 그런 행동이 나왔던 것이다. 엄마는 절규했다. 아이고오, 아이고오, 딸년이 엄마한테 침을 뱉네애, 침을 뱉아아. 나도 내가 당황스러워 이번에는 아예 문을 잠그고 말았다. 언제 온지도 모르게 갑자기 내 등 뒤에서 나를 공격해오는 엄마한테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겁이 났다. 엄마 말대로 카메라만 들여다보고 살아서 내 정신이 좀 이상해진 것인가. 취직을 하자, 취직을 해. 그렇지만 어디서 연락이 와야 취직을 하든지 말든지 하지. 그러고 보니 내가 이 골방에서 목적도 없이 찍어온 이모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며 틀어박힌 지도 한달이 다 되어간다. 그 한달 동안 내게는 어디서도 연락이 없었다. 한달 전 아버지는 아침부터 술에 취해서 말했다. 고향이란 것은 돌아갈 곳이 못돼. 노래도 안 있냐, 돌아갈 갈 곳 못돼드라 내 고향이라고. 사는 게 지랄 맞아 부모 제사에 고향 한번 못 간다고 식전 댓바람부터 한 엄마의 잔소리가 아버지를 아침부터 술 마시게 한 이유가 되었다. 묵묵부답으로 술만 마시는 아버지한테 말이 통하지 않자 엄마의 잔소리는 결국 내게로 튀었다. 돈 벌기가 어디 쉽냐이, 니 나이 이제 서른이다, 나는 너를 열아홉에 낳았다, 남들 다 있는 애인이 너는 왜 없냐, 니가 무슨 돈으로 영화를 하냐, 회사에 취직을 해라, 고등도 안 나온 나도 살았다, 대학 나온 니가 뭣이 무섭냐…… 거의 융단폭격이었다. 내가 반응이 없자,

그놈의 카메라만 딜다보고 있는 것이 숫제 누집 개가 짖냐 식이제이? 뭣이 이쁘다고 카메라를 사줘, 사주길. 저놈의 카메라 때문에 헛바람이 들었어, 오중철이가 딸년을 베래놨어어, 베래놔아. 내가 저 웬수놈의 카메라를 그냥 콰악.

엄마가 카메라를 부실 기세로 돌진해왔고 나는 내 유일한 재산인 카메라 한대만 챙겨들고 집을 나와 고속버스터미널로 갔던 것이다. 내가 광주 가는 버스에 막 몸을 실었을 때, 대학동기 경화한테서 전화가 왔다.

나는 인터넷방송 <현장>에서 석달치 임금을 받지 못했다. 임금을 못 받았을뿐더러 어느 순간, 내 호주머니에서 취재비가 나가는 것이 분해서 <현장>을 그만두었다. 내가 그만둔 걸 모르는지,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나 하나쯤 그만둬도 상관없다는 건지, <현장>을 나온 지 일주일이 넘도록 <현장> 사람들 중 나한테 연락해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화는 해외 다큐멘터리영화제에 출품할 작품을 구상중이라고 했다. 자본 위주의 도시에서 농업이 가지는 가치와 의의를 찾아서 도시농업을 하는 사람들을 취재하다가, 그들 중 게릴라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평화적 혁명가들이야. 상상해봐. 광화문 네거리가 밤새 꽃밭으로 변해 있는 모습을. 실제로 뉴욕이나 베를린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어. 그 사람들을 게릴라가드너라고 하지. 게릴라니까 이름도 전부 가명을 써. 정체를 숨기고 길 가다가 꽃씨폭탄을 아무데나 투척하지. 그러면 빈 땅에 꽃이 피고…… 이 가공할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들은 그렇게 무기가 아닌 식물로 대항하는 거야. 어때, 흥미롭지 않니?

나는 작업을 할 수 있는 돈이 없다. 당장 움직일 수 있는 교통비 같은 기본경비가 없다. 트럭 한대 가지고 우리를 먹여살린 아버지는 지난겨울, 가구를 배달하다가 빙판길에 사고가 나서 차는 물론이고 배달하던 가구들이 망가져서 가구회사에 돈을 물어줘야 할 형편이 되었다. 그나마 크게 안 다친 것만도 다행이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허리를 다쳐 봄이 된 지금까지 일을 못하고 있다. 엄마 말에 의하면 엄마는 아버지 만나 하루도 쉰 적이 없는 세월을 살았다고 한다.

솔직히 책 한권을 읽고 싶어도 한권 읽는데 일년이 걸릴지 이년이 걸릴지 모를 세월을 살고 있다, 나 이상순이가.

쉬는 날, 독서 좀 해보겠다고 하다가 책을 얼굴에 덮고 자고 일어나서 엄마가 한 말이다.

나와 다섯살 터울인 은영이는 휴학을 몇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지금도 휴학 중인지 아닌지 헷갈린다. 공부보다 아르바이트하는 시간이 더 많아서다. 나도 당장 편의점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한다. 그런 우리집 사정은 경화한테 굳이 말 안해도 알 것이다. 경화는 물었다. 광주를 왜 가느냐고. 엄마가 아침에 카메라 부셔버리겠다고 해서 피신가는 거라고 하니까 경화는 웃었다. 내가 나중에 상 받으면 우리 같이 그 돈으로 떡 먹자이. 내가 광주 간다니까 경화가 농담을 광주억양으로 했다. 기억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나는 누가 고향을 물으면 이 도시 이름을 댔다. 광주. <현장>에서 일하기 전에 일했던 지역정보지 『도깨비』 사장은 내가 광주라고 말하자, 잘 안되는 억지 억양으로, 그러니까 오은주씨는 광주여자네이, 광주여자여이, 하면서 정체 모를 미소를 지었다.

내가 아는 광주여자가 둘이 되었네, 둘이 되었어.

직원들이 여자라는 말에 생글생글 눈빛을 빛냈다.

거, 광주여자들은 원래 다 그런가? 광주여자들 특징이 좀 있어이.

뭔데요, 뭔데요.

하여간 있어.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말해줘요, 말해줘요.

의욕이 좀 많아. 모든 면에서. 매사에 적극적이지.

액면 그대로는 좋은 말 같기도 한데 웬일인지 기분이 나빴다. 사장은 물었다.

광주서 났으면 광주에 대해서도 잘 알겠네?

광주서 세살 때 떠나서 잘은 몰라요.

세살 때 떠났으면 광주여자도 아니네, 아니여. 좀 아쉽게 되었구만, 아쉽게 되었어. 우리 회사에 광주여자 하나 있는 것도 좋을 뻔했는데 말이야이.

초장에 기분 나쁘면 끝까지 기분 나쁜 법. 『도깨비』를 그만둘 때 도깨비굴에서 나온 듯 기분이 아주 개운했다. 기분 좋은 여세를 몰아 <현장>에 왔는데 지금 끝이 안 좋게 되었다. 외할아버지 제사에 엄마 대신 백수가 고향에 왔다가 이모에게 듣는 고향이야기, 나는 기억할 수도 없는 나와 이모의 동거 시절을 나는 쓸모가 없을지도 모를 카메라에 담았다. 이젠 <현장>에서 쓰지도 않을 ‘현장이야기’를 습관처럼 담았다. 그렇게 담아온 것을 나는 한달째 내 골방에 처박혀 들여다보고 있다. 이력서를 넣은 어떤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아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광주 가서 카메라에 담아온 이모의 이야기를 보고 또 보는 것 말고는. 세번쯤 보고 났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카메라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다섯번째 보고 났을 때, 이력서를 낸 곳의 하나인 출판사에서 문자 연락이 왔다.

오은주씨와는 다음 기회에 좋은 인연으로 만나뵙길 바랍니다. 저희 회사에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하마터먼 내 휴대폰에 대고 침을 뱉을 뻔했다. 이모가 그랬던 것처럼, 컹컹, 으르르릉, 가르릉, 콰악.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이모가 음복을 하며 풀어놓는 이야기를 졸기도 하면서 습관처럼 카메라에 담았을 뿐이다. 외할아버지는 돌아가셨기 때문에 당연히 내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다. 그런데 카메라 속에서 외할아버지가 닭날개를 잡고 뜨거운 마당을 가로질러 오는 것이다. 이모가 모든 것이 다, 뜨거웠어, 닭백숙이 끓고 있는 솥,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때는 나,라고 했을 때 나는 내가 이모가 말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 살고 있는 착각을 하곤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카메라 안에서 이루어졌다. 카메라 속 세상에서 카메라 밖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은 늘 엄마 때문이었다.

엄마가, 내 방문을 왈칵 열어젖히며, 카메라 속으로 아예 들어가라 들어가,라고 했을 때 나는 아직 카메라 밖으로 나오기가 힘들어서 몸이 좀 뻣뻣해졌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상순아, 너 나한테 왜 그러냐? 했던 것은.

옴마옴마, 저년이 광주 갔다 오더니 즈그 이모가 되어부렀네이, 홈빡 뒤집어쓰고 와부렀어어.

나는 그때서야 멋쩍게 웃었다.

저놈의 카메라 땜에 숫제 미쳐부렀네, 미쳐부렀어. 취직해서 빨리 돈 벌어와 이년아, 돈.

그러나 나는 돈을 벌 길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카메라 속으로 몸을 숨겼다. 카메라 속으로 들어가 살아버렸다. 카메라 속에서 또다른 카메라를 들고 말하는 사람을 찍다가 어느 결에 내가 그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는 이제 오은주가 아니라 이상희다.

 

상순이 열다섯, 내가 열일곱살 때 우리는 똑같이 그 광경을 우리집 마루에서 보았다. 우리집이 있는 언덕 아래 가겟집 여자가 내가 번개탄을 사러갔을 때,

군인들이 다 쏴 주개분단다. 그렁게 절대로 시내 나가먼 안돼야이,라고 말했다.

시내만 안 나가면 된다요?

하먼, 나가지 말고 집에 콱 어푸러져 있어라이.

안 어푸러져 있으먼요?

어푸러지든 자빠지든 니 맘대로 해라, 니무랄 것. 좌우당간 나가지만 마러라이.

마치 엄마 없는 우리의 엄마처럼 우리를 단속했다. 시내에만 안 나가면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고 우리 식구들은 생각했다. 아버지, 오빠, 나, 상순이는 그날 저녁밥을 일찌거니 해먹고 아버지는 가겟집으로 마실을 가고 오빠는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가겟집 아줌마가 시내 청년들은 다 숨어버렸단다, 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원래 오빠 방이 다락방이었기 때문이다. 나하고 상순이하고 둘이서 한 이불 속에 발을 넣고 있을 때였다. 어스름 속에서 와장창 장독 깨지는 소리가 났다. 시내에만 안 나가면 군인들이 사람들을 죽인 일은 우리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줄 알았다. 나는 시내에 안 나가봐서 죽은 사람을 보지도 못했다. 나는 시내에 있던 군인들이 왜 우리집까지 와서 우리집 장독을 깼는지 알지 못한다. 군인들이 왜 우리집 닭과 개한테 총질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문을 열고 나가다가 우리집 개가 총을 맞고 피를 뿜으며 죽어가는 것을 나는 보았다. 닭들이 살점이 너널너덜한 채로 도망치는 것을 보았다. 우리집 개한테 총을 쏜 군인이 나를 돌아보고 개처럼 혀를 날름거렸다. 그 순간 내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손을 뻗을 수도 고개를 젖힐 수도 없었다. 내가 누워 있는데, 오빠가 나를 툭툭 발로 찼다.

우리 닭만 죽은지 아냐, 바보야. 우리 장꽝만 깨진지 아냐, 멍청아.

나중에는 장단을 맞춰 노래를 불렀다.

우리 닭만 죽은지 아냐, 바보야, 우리 장꽝만 깨진지 아냐, 멍청아.

나는 오빠 노래에 웃었다. 누운 채로 나도 오빠 장단에 노래를 불렀다.

우리 닭만 죽은지 아냐 바보야, 우리 장꽝만 깨진지 아냐 멍청아.

상순이는 내가 오빠하고 신이 나면 질투가 나서 화를 냈다.

일하기 싫으니까 그러지? 꾀병 부리지 마 작것아.

아이, 아이, 뭣 때문에 아부지 속을 상하게 하냐아, 좋은 일 한다고 인나봐라.

아버지는 손까지 싹싹 빌며 사정을 했다.

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일어날 수가 없었다. 오빠가 일어나라고 나를 마당으로 끌고 나갔다.

군인들이 너한테 해꼬지를 한 것도 아니잖아, 근데 왜 병신처럼 구냐고오, 가시내야아. 오빠가 마당에서 나를 질질 끌면서 엉엉 울었다.

아팠다. 등이. 그래서 일어났다. 일어났는데 한쪽 다리가 영 힘이 없었다. 나는 한쪽 다리를 저는 절름발이가 되었다. 열일곱살 여름부터.

아니이, 군인들이 지랄하는 것을 똑같이 봐놓고도 누구는 멀쩡한데 누구는 뭣이 어쨌다고 막 몸이 다 굳어불고 그런데? 나도 봤어, 나도 봤다고. 근데 왜 나는 암시랑토 안하냐고. 오빠가 나한테 이럴 줄 알았으면 나는 차라리 그때 군인들 총에 맞아서 죽어부렀으면 싶다니까아. 진짜여.

학교를 안 가고 시내를 싸돌아다니다가 오빠한테 작신 얻어맞은 상순이 발광을 했다.

뭔가, 하여간 뭔가가 항상 불만이던 상순이는 집에서 훔치는 것을 넘어 저랑 똑같은 가시내들하고 작당하고서 가겟집까지 털다가 경찰서까지는 안 갔어도 온 동네 우세를 샀다. 그때 오빠한테 매타작을 당한 뒤 입술이 반나마 터져서 절규하며 집을 나갔다. 가출 청소년 이상순을 교통경찰 오중철이 계도하다가 연애를 하고 그러다가 애를 낳았다. 한참을 소식도 없이 살다가 애엄마가 되어 돌아왔다. 애엄마가 되어 돌아온 가시내를 또 아버지가 두들겨 팼다.

아무리, 아무리 내가 못났어도 애비는 애비여. 그런디, 그런디, 자식인 니가 나를 이런 식으로 배신을 혀?

그렇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상순은 울지 않고 웃었다. 아버지를 비웃었다.

배신 좋아하십니다요이, 배신은 먼 배시인! 아부지가 나한테 뭐를 해준 게 있어야지 배신을 허든지 말든지, 허제애. 아하, 그러고 본게 옛날에 엄마도 이렇게 두들겨 팼는갑제애? 그래갖고 엄마가 집 나갔던 모양이제?

퍼붓고 가서 집하고는 영 발길을 끊을 줄 알았던 상순이 그해 봄 애까지 낳고 사는 집을 나갔다. 집 아래 가겟집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나서 내려가보니, 교통경찰 제복을 입은 오중철이 은주를 데리고 가겟집 안에서 쑥 나왔다.

은주엄마 찾아올 때까지만 좀 맡아주십쇼. 두고 보세요, 꼭 찾고야 말 겁니다.

상순이를 찾으면 찾는 것이지, 꼭 찾고야 말겠다며 입술을 앙다물 건 뭔가.

찾아서, 찾아서 어쩌려구요?

아니나 다를까.

아가리를 돌려버릴 겁니다.

은주가 내게로 온 그 아침에 공교롭게도 산중턱집이 이 세상에서 없어진 날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쓰러진 것이 내가 업고 올라온 은주 때문인 줄 알았는데, 순식간에 밀고 들어온 그놈의 포크레인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어어어어, 하다 쓰러졌다. 우리집을 부수던 포크레인이 잠시 멈칫하다가 맹렬한 기세로 다시 일을 시작하자 아버지는 정신을 잃었다. 진작에 철거고지가 났고 이사비용도 받았지만 우리가 미처 아침밥도 먹기 전에 와서 쓸어버릴 줄은 나도 몰랐다. 은주를 업고 쓰러진 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새 거처를 얻는 데 하루가 갔다. 이상하게 나는 그날 신이 좀 났던 것 같다. 어떤 이유 때문인지 그랬다. 집이 우지끈 무너질 때 아버지는 쓰러졌지만 나는 솔직히 후련하기 그지없었다.

 

후련하기 그지없었다고 말할 때 이모의 어깨가 크게 흔들렸다. 나도 흔들렸다. 내 카메라도 흔들렸다. 술기운인지, 잠기운인지는 알 수 없었다. 엄마는 집을 나가고 아버지는 집 나간 엄마를 찾으러 가고 이모는 외할아버지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집이 순식간에 철거되어 새 거처로 이사를 하는 이모 등 뒤에 매달린 세살의 나를 나는 가만히 들여다본다. 내가 들여다보자 세살인 내가, 먼저 이마를 찡그리고 그다음에 눈썹을 급기야 입술을 씰룩이며 울기 시작한다. 이모가 등 뒤에서 우는 나를 크게 한번 추스린다. 이모 엉덩이 밑으로 내려왔던 내가 이모 허리 위로 쑥 올라간다. 오오이, 울지 마라, 울지 마, 착하다, 우리 은주. 이모가 떼끼 해주마, 떼끼. 상희는 세살 은주한테서 나를 쫓아버렸다. 은주한테서 은주를 아내다니!

언니, 나야, 나. 왜 나한테 떼끼 하는데애.

피곤에 절어서 눈 밑이 시커먼 은영이 골방문을 빼꼼히 열고 이모한테서 쫓겨난 나를 새초롬히 들여다보고 있다. 언니, 자, 이제 그만 자라고. 잠은 안자고 카메라만 들여다보니까 언니가 자꾸 이상한 거잖아아.

 

집주인네 뒷방, 그 집에서는 동쪽방이라 부르는 방에 세들어 사는 땜쟁이 김씨가 마당에서 땜질하는 연장을 손질하며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욕을 했다.

순전히 도독놈들인 거라.

나는 병원에 가져갈 죽을 끓이고 있었다. 아버지가 병원밥이 맛이 없다고 닭백숙을 먹고 싶다고 했다. 닭백숙 끓이는 연탄불에서 올라오는 가스가 매웠다. 그래서 부엌문을 열어놓고 죽을 쑤고 있는데 김씨가 자꾸 내쪽을 훔쳐보는 것이 역력하게, 뭉그적거리며 하는 소리였다.

그것이 칼 안 든 강도들이여.

집주인 할머니가 담배를 피우며, 뭣이 어쨌다고 씨부렁거리느냐 하자,

뭐긴 뭣 땜에 그래요. 테레비서 하는 오공청문회 때문이지. 총 있으면 쏴 죽여버려도 시원찮을 쌍놈의 새끼들. 국가를 좀먹는 놈들이 힘 좀 있다고 염병을 하는 꼬락서니 쳐다보고 있을라니, 울화통이 치밀어 더는 못 보겠소, 장사나 나가야지.

텔레비전이 없는 나는 세상일을 알 수 없었다. 은주를 업고 죽냄비를 챙겨 나가려는데, 저 희방 앞 툇마루에 오도마니 앉아 있던 북쪽방 아이가, 마당 수돗가에 걸린 쪽거울을 보며 후이후이, 한숨을 쉰다.

한숨 쉬는 거냐고 물었더니 얼굴을 붉힌다.

아줌마 애기는 내가 쳐다만 봐도 울어요.

높낮이도 없고 어떤 감정도 섞여 있지 않은 말간 목소리였다.

아이는 엄마하고 둘이 사는데 어젯밤, 애엄마가 안 들어온 모양이었다. 나는 보자기를 풀어 닭백숙을 아이한테 덜어주었다.

아줌마, 닭백숙 냄비를 들고 다리를 절룩이면서 애기를 업고 가다가 넘어지면 어떡할 거예요?

내가 이 집으로 이사 들어오던 날도 아이는,

아줌마는 왜 절름발이가 됐어요?

아줌마도 우리 엄마처럼 남편이 없어요? 아줌마는 절름발이고 아줌마 애기는 못생겨서 아줌마 남편이 아줌마 버린 거 맞죠?

아이는 되바라진 질문을 너무도 정직하게 너무도 조용히 했다.

아이가 제가 먹는 죽을 은주한테도 먹이는 시늉을 하는 것이 어쩐지 안심이 돼 은주를 아이한테 맡기고 병원으로 갔다.

아이는 은주를 정말 봐주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아이는 너무 고적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외로워서 그렇다는 것을 나는 단박에 알았다. 근지럽다는 것이 실은 외롭다는 말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나도 예전에 산중턱집에서 산 아래 도시를 바라보며 마음이 근지러웠다. 근지러워서 얼마나 가슴 한복판을 꽝꽝 치고 득득 긁었는지 모른다.

 

아버지는 내가 가지고 간 죽을 맛나게 다 비우고는,

아이, 요새 텔레비전서 오공인가, 광준가 청문회를 헌단다. 국회의원들이 총출동해서 누가 총질을 했는지 따지고 있단다. 그런디, 아직까지는 장꽝 깨지고 닭 죽고 개 죽은 사연 가지고 따지는 국회의원은 없다냐?

나는 땜쟁이 김씨가 마당에서 오공청문회를 한다는 말을 듣긴 들었어도 그것이 무엇인지는 잘 몰랐다. 잘 몰랐어도 그런 것 같다고 대답했다.

하기사, 그까짓 것이 뭔 큰일이라고이. 큰일도 아닌 것 가지고 보상헐 것이 없을 것이여이.

아버지 옷을 갈아입히면서 나는 아버지 등을 한대 세게 때렸다.

암것도 아니지요, 사람도 죽었는데 닭 몇마리 개 몇마리 죽은 것이 뭐가 대수래요이.

아버지는 시원하다고 한번 더 쳐보라고 한다. 얹힌 것이 쑥 내려가네, 쑥 내려가.

나는 아버지 등을 두대 쳤다.

아이고 션허이. 돈은 얼마나 남았냐. 아부지 병원비는 충분허겄냐, 못하겄냐.

 

또 한대 더 쳐주라고 한다.

아이고 좋다 좋아, 니 오빠는 직장생활을 잘하고 있는가 모르겄다, 나를 너한테 딱 맡겨불고는 소식이 없다이.

더 쳐드릴까요?

고만 됐다…… 아부지가 많이 미웠지야? 인자 나는 잘란다, 그만 들어가거라.

아버지가 미운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또 아버지가 미웠다. 나는 밉지 않은 아버지를 미워하는 것밖에 내 속에 일어나는 이상한 기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아버지 등을 친 내 손이 미워 나는 나를 쳤다.

이상하게 꼼짝할 수 없어서 일어나지 못했는데, 그런 나를 보고 웃었던 열일곱의 내가 십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왜 그렇게 미운지 알 수 없었다. 오빠가 우리 닭만 죽은지 아냐 바보야, 우리 장꽝만 깨진지 아냐 멍청아, 장단을 맞추어 노래하면서 나를 쿡쿡 찌를 때 나는 웃었지, 울면 이상할까봐 내가 바보같이 실룩실룩 처웃었어.

나는 이제 울고 싶었다. 내가 운다고 나를 야단칠 아버지도 없고 운다고 나를 때릴 오빠도 없으니 실컷 울고 싶었다. 나는 그 울음을 집에 돌아와서 울었다. 북쪽 방 아이가 은주를 업고 엎드린 채 자다가 내 기척에 깨어나서는,

내가 만화책도 보여주고 노래를 불러줘도 계속계속 울잖아요, 업어주니까 안 우는 거예요. 얘는요. 사람이 꼭 업어줘야만 안 우는 진짜 성질 이상한 얘라니깐요, 하는데 왈칵 참았던 울음이 터져나오던 것이었다.

 

엄마가 내 등을 쳤다. 아이갸, 우네, 울어? 왜 우냐? 왜 울어? 왜 우냐고오, 엄마 눈에도 눈물이 고인다. 요새 니가 무엇을 딜다보고 있는지 내가 다 안다. 니 이모가 쓰잘데없이 뭐라고 뭐라고 다 지나간 옛날간날 이야기 하는 거 니 등 뒤에서 나도 다 봤다. 나는 지금까지 너희를 하늘에 맹세코 떳떳하게 키울라고 나 딴에는 죽을 둥 살 둥 발버둥을 치며 살아왔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 니 이모가 내 자식한테 내가 너를 이모한테 버려두고 집을 나갔니 어쨌니, 돌아보면 본인도 몸서리칠 옛날이야기를 뭣할라고 미주알 고주알 해서 떡이 나와 밥이 나와, 누구 좋으라고오 그러냐고오.

엄마의 절규는 최고조로 올라갔다가 갑자기 뚝 떨어지듯이 조용해졌다.

아이, 은주야, 나는 죽고 싶다. 자식한테 우세를 당하고 어찌 살아야 하나, 나도 죽고 싶은 심정이라. 그런디이, 죽고 싶어도 먹고 죽을 약 살 돈 하나가 없어 못 죽는다, 시방. 코를 팽 푼다.

엄마가 나 버리고 갔을 때 이모가 할아버지 병원에 죽 갖다주러 가는 동안 얘가 나를 봐줬다네. 봐바, 저기 애가 나오네, 엄마 나 잠깐 저 속에 들어갔다 올게. 엄마, 울지 말고 잘 있어. 나는 카메라고 카메라는 저기 나오는 저 애야이.

울지 말라고 했건만, 카메라 밖에서 엄마가 울다가 악을 쓴다. 미친 가시내야, 아니 은주야, 내가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좋은 일 하는 셈치고 카메라 밖으로 나오너라.

카메라 속 아이가 잠이 들고 나서야 나는 카메라 밖으로 나왔다. 나는 다시 은주가 되었다. 그새 시간이 꽤 지난 모양이었다. 거실에서 은영이가 내가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앉아 있다가 발딱 일어난다.

언니 땜에 엄마가 죽고 싶다고 난리잖아 지그음. 누구는 밤새 알바하고 왔는데 누구는 골방에 처박혀서 사람 미치게 하고 엄마는 죽고 싶다 난리고 아빠는 아픈 몸에 술만 마시고오, 나만, 나만 살아보겠다고 이 고생을 왜 해야 하냐고오.

은영이 절규했다. 안방에서는 또 엄마가 절규한다.

내가 그때 집 나가고 싶어서 나갔냐고오. 당신이 조선대학생 이철규 잡으러 간다고 핑계 대고 집에 안 들어 왔잖아. 가서보니 이철균가, 머시깽인가 하는 머시매는 안 잡고 술이나 퍼마시고 있었잖아. 아침부터 어떤 미친년하고 노닥거리면서이. 행복한 삶이 우리 앞에 펼쳐져? 거짓말, 그때부터 거짓말을 밥먹는 듯이 하는 인간이이었잖아아아아, 오중철이 이 나쁜 놈아아아.

어허, 말은 바로 해야지이. 그것은 술이 아니고 커피였잖아아. 그리고 나는 절대로 조선대학생 이철규를 잡으러 갔던 것이 아녀어. 택시강도 때문에 비상이 걸려 집에 못 들어온 거였지. 하도 피곤해 다방에서 커피 한잔 하고 있을 때 상순이 니가 들이닥친 거여어. 다방 레지한테, 니년은 어떤 년이냐고 애먼 소리를 하는데 내가 뿔다구가 나지 안 나냐. 누구 딸 아니라고 몇대 쳤다고 새끼 놔두고 집을 나가고 말이야이? 처형한테 애를 맡겨놓고 너 찾으러 갔더니 너는 또 여수 쥐치포공장에서 어떤 놈하고…… 내가 상순이 너 땜에 근무지 무단이탈로 순경모가지가 날아갔잖아아. 길거리 헤매는 가시내 살려줬드만, 그 은공은 모르고이.

니가 나를 살려줘? 뭐? 누구 딸 아니라고? 철모르는 애 데려다놓고 니가 나를 오늘날까지 부려먹으면서이.

오중철과 이상순은 또 그렇게 싸웠다.

나는 다시 내 골방으로 들어가 카메라만 바라본다. 잠이 들었던 아이가 어느새 깨어나 있었다. 내가 만화책도 보여주고 노래를 불러줘도 계속계속 울잖아요, 업어주니까 안 우는 거예요. 진짜 성질 이상한 애라니깐요. 상희가 운다. 상희 울음 때문인지 카메라가 흔들린다.

 

울어라, 상희야, 천지가 진동하도록 울어라 상희야, 하늘이 바다가 되고 바다가 하늘이 되도록 울어라 상희야, 그 울음 다 울고 나서 비 개인 꽃밭에서 춤이나 춰보자 상희야……

사위는 조용했다. 늘 시끄럽다가 갑자기 조용한 것에 놀라서 카메라 밖으로 나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식구들은 술에 취해서 혹은 울음에 지쳐서 혹은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다들 잠든 모양이었다. 조용한 속에 나오는 소리가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라는 걸 나는 그때사 알았다. 울어라 상희야, 천지가 진동하도록 울어라 상희야, 하늘이 바다가 되고 바다가 하늘이 되도록 울어라 상희야, 그 울음 다 울고 나서 비 개인 꽃밭에서 춤이나 춰보자 상희야,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주문인지, 노래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내 입에서 소리가 잦아들고 나서야 나는 카메라의 화면이 정지된 것을 알았다. 화면은 정지됐어도 내가 만화책도 보여주고 노래를 불러줘도 계속계속 울잖아요, 업어주니까 안 우는 거예요, 얘는, 진짜 성질 이상한 애라니깐요, 하는 소리는 계속 카메라 밖으로 나와 내 골방 안에 흘러다녔다.

이력서를 넣었던 곳 중 지원해줘서 감사하다는 출판사 문자 이외에는 아직 어디서도 소식이 없다. 나야말로 집을 떠날 때가 됐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입은 옷 그대로 카메라만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또 어디 가냐. 니 동생은 짠지가 되도록 돈을 버는데 너는 돈도 없는 것이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어디를 가냐고오. 저 망할 것이 대답도 안해 대답도.

엄마는 선잠을 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이, 가만 놔두어. 저도 다아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것 아니겄어어, 아이고 허리야.

허리 아프담서 술은 뭣할라고 퍼마시냐고오.

나는 조용히 현관을 열었다. 부옇게 동이 터오고 있었다. 붉은 아침노을로 이름만 맨션인 낡은 우리집, 동산맨션 301호 녹슨 창문이 붉게 빛나고 있었다.

 

내가 광주에 거의 도착할 무렵, 경화한테서 전화가 왔다. 근 한달 만이다.

지난번 게릴라가드너 건은 날라가버렸어. 지원금 좀 타보려고 했는데 떨어져버렸다고. 근데 새로운 아이템이 떠올랐어. 이번엔 가까운 데서 찾았지. 너 아직 취직 안했지? 못했다고? 잘됐다, 너나 나나 백수잖아, 그니깐 백수 이야기나 좀 해볼까 해. 학교 때부터 우리도 실은 안해본 거 없잖아. 커피점 알바에, 영화제 도우미, 베이비시터, 아참, 제주도에 귤 따러 가기도 했지. 하도 많아 생각도 안 나네, 하여간, 너하고 내 얘기를 하려면 니가 나를 찍고 내가 너를 찍어야 하니까 니 도움이 필요하다고. 지금 어디야? 광주 가고 있다고? 내가 전화할 때마다 광주를 가네, 좀 이상한데. 뭐라고? 애를 만나러 간다고? 너를 업어줬다고? 걔 만나고 오면 꼭 연락해라이.

이모는 생업인 식당일로 바빴다. 한달 전 외할아버지 제삿날 저녁처럼 한가하게 옛날이야기를 할 상황은 아니었다. 자신이 해준 옛날이야기로 동생 집안이 분란이 났다는 것을 안 이모는 다시 또 옛날이야기를 하려 하지 않는다. 외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엄마가 돌아옴으로써 석달간의 이모와 나의 동거생활은 끝났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이모는 이 집으로 왔다. 내가 너를 업고 왔다갔다하는 것을 본 이 집 주방장의 꼬드김에 내가 넘어간 거라고 말하는 이모의 입술이 일그러졌다. 이모는 그 주방장과 애도 하나 낳고 살다가 이혼을 했다. 이모부가 손님하고 바람을 피워서 그랬다나, 어쨌다나. 내가 그 인간 만나 남은 것은 딱 두가지뿐이야. 이 식당하고 우리 성복이. 이모 아들 성복이는 지금 미국 유학 중이다. 이번에는 옛날이야기 대신 이모는 성복이 자랑에 바쁘다. 우리 성복이가 나같이 되지 말라고 나는 이렇게 날마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번다, 나는 부모복이 없어 못 배웠으니 너라도 미국같이 큰 데 가서 맘껏 배우라고 보내놨는데 돈이 좀 들기는 든다,고 말하면서도 이모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근데 은주야, 참 이상한 일이다. 생전에 누구한테 그런 말 안하다가 니가 와서 처음으로 옛날이야기를 쏟아놓고 났더니 그뒤로 그렇게 잠이 잘 온다. 너 오기 전에 어떤 방송에서 나와서는 내가 요리하는 것을 찍어갔다, 저 벽에 붙어 있는 생방송 「생생맛집」 저거 말이여. 그때 한번 카메라 앞에 서는 연습이 되어놔서인지, 말이 술술 잘 나오더라. 나는 편하다만 너희 집이 분란이 났다니 미안하네, 미안해, 상순아, 미안하다이.

이모는 꺼진 카메라에 대고 장난스럽게 외쳤다. 나는 내가 광주에 다시 온 이유를 아직 말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을 이모한테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다. 내가 이모를 찍고 가서 한달을 골방에 박혀서, 찍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찍었던 이모 이야기를 보고 또 봤다, 그러다가 내가 카메라가 되어버렸다, 카메라는 이모가 되었고 이모는 내가 되었다, 그런데 자꾸 아이가, 나를 업어줬다는 아이가 했다는 말이 내 방에 흘러다녔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하고 싶었으나, 그러지는 못하고, 우리집 안부를 묻는 이모의 물음에 엄마, 아버지가 이십년도 훨씬 전 일로 다툰 일을 전했다. 조선대학생 이철규를 잡으러 간다고 나간 아버지가 집에는 안 들어오고 다방에서 술을 마셨다고 우기는 엄마와, 택시강도 때문에 비상이 걸려 밤샘근무를 하고 피곤해서 차를 한잔 마셨다고 주장하는 아버지 말 중 이모는 어떤 게 맞는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모는, 조선대학생 이철규가 누구야? 왜 그애를 잡으러 가? 교통경찰이? 하다가, 그쯤에서 오중철과 이상순의 싸움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사실 나도 엄마 아버지의 근황을 전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내가 조선대학생 이철규는 몰라도 그때 그 철규는 내가 알아, 걔 성이 뭐였드라? 성도 모르겠다. 하도 오래돼서 다 잊어부렀다이. 지금 박선자가 저기 산다, 멀리도 아니고 바로 저어기. 이모가 가리키는 곳은 이모의 대구탕집 맞은편에 있는 호프집이었다.

인성이엄마 박선자가 옛날에 철규엄마다. 철규, 앗따 오래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다이, 내가 그 집으로 이사들어갔을 때 처음 보는 나를 보고, 아줌마는 왜 잘름바리가 됐어요? 아줌마가 잘름바리고 아줌마 애기가 못생겨서 아줌마 남편이 아줌마 버린 거죠? 물었던 것이 어제 일같이 생생해. 눈이 말간 조그만 머시매, 우리 아들, 아이고오. 보고잡다야, 우리 철규, 하면서 이모 눈에 못물 같은 눈물이 고요히 고인다.

 

가게 안은 썰렁했다. 내가 인제 막 나왔거등, 뭐 드실라고?

나는 맥주를 시켰다. 손님 없어서인지 인성이엄마, 아니 철규엄마, 박선자가 내 앞에 앉았다. 미장원에서 파마를 말고 왔는지 머리에 두른 보자기 틈으로 플라스틱 파마말이가 보인다.

어디서 오셨을까? 광주여자가 아니구만. 나는 딱 보면 안다고. 서울여자들은 뭔가 특징이 있어. 하여간 뭔가. 후후후. 영화 찍는 사람이죠이? 카메라 들고 다니는 것 보니까 딱 그쪽 계통 같아, 내 말 맞죠?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이에요.

멋지네, 꿈이 있는 사람은 멋있는거여이.

철규엄마, 박선자는 명랑했다. 초면인데도 스스럼없이 하는 반말 비슷한 말투도 불쾌하다기보다 오히려 경쾌하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오징어 한마리를 알맞게 구워와 내 앞에 앉아 북북 찢었다.

내가 철규엄마를 만나보고 싶다고, 아니 철규를 만나보고 싶다고 하자 이모는, 철규는 지금 세상에 없다고 말했다.

너를 업어줬던 철규는 시방 여기에 없고 먼 데로 갔단다. 한번 가면 못 돌아오는 세상으로 갔단다. 그 어린 것이, 그렇게 빨리 가버렸단다. 그러니, 철규엄마를 만나더라도 호프집이니까 술이나 한잔 갈아주고 와라. 요새 아주 말썽쟁이 아들 땜에 죽을 맛이란다. 선자가. 새 남자가 생겼는데 인성이 땜에 연애전선에 장애가 많아, 아주. 나이 오십이 넘어도 연애에 골몰하는 것이 박선자는 청춘이다, 청춘이야.

아가씨는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인가? 하기사 나 같은 사람보다는 조용한 사람이 더 멋있제애. 나는 시끄럽다고 우리 애아빠가 아주 질색을 하잖아.

‘우리 애’는 철규가 아니고 인성이라는 말썽쟁이 아들인가? 내 방을 흘러다니던 소리들은 이제 내 속에서 흘러다니다 못해 뒤엉키고 있었다. 내가 만화책도 보여주고 노래를 불러줘도 계속계속 울잖아요, 업어주니까 안 우는 거예요, 얘는, 진짜 성질 이상한 애라니깐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면, 뭔 영화? 드라마 같은 건가? 영화 안 본 지도 진짜 오래됐다. 한병 더할라고?

취기가 오를수록 철규의 목소리는 이제 나를 쿵쿵 친다.

박선자는 부산하다. 저녁장사 준비를 하나도 안해놨어. 다 해놓고 머리도 풀러 요 앞 미장원에 갔다 와야 하고, 대구탕집 상희하고는 아는 사인가? 지난번에도 카메라 들고 와서 그 집서 자고 갔잖아이? 나는 뭔 방송국 사람이 또 왔는가 했지이.

내가 만화책도 보여주고 노래를 불러줘도 계속계속 울잖아요, 업어주니까 안 우는 거예요, 얘는, 진짜 성질 이상한 애라니깐요.

뭐여어? 아가씨 왜 그래? 왜 그러는 거여어?

아가씨, 이름이 뭐여, 어디서 온 거여!

내가아 만화책도 보여주고 노래도 불러줘도 계속계속 울잖아요 업어주니까 안 우는 거예요.

아이고오, 우리 철규네, 우리 철규여, 죽은 우리 철규여, 철규야아아아아아.

철규엄마 박선자의 통곡소리에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대낮부터 마신 술에 내가 취한 것을 알았다. 낮술은 되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언젠가 아버지가 한 말은 맞는 것 같았다.

 

철규엄마 박선자가 아침 일찍 대구탕집 문을 두드렸다. 박선자의 호프집에서 맥주로 취했는데 또 이모의 대구탕집에서 소주를 추가한 결과로 비몽사몽 간에 박선자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아가씨가 우리 철규를 어떻게 알고이, 우리 철규가 아가씨여. 아가씨 속에서 우리 철규가 나와서 엄마, 엄마 하고서 덜덜 떠네애. 아이고오 철규야아, 눈이 툭 불거지고 얼굴이 서커먼 것이 꿈에 나타난 지 아부지하고 똑같애, 그 어여뻤던 우리 철규가, 그 열무싹같이 어린 내 새끼가이.

사설이 잦아들며 코를 팽 푼다. 그 순간, 나는 켠 기억이 없는데 카메라가 지가 절로 움직이며 박선자한테 간다. 촤르르, 카메라가 숨을 쉬기 시작한 것이다. 숨을 쉬기 시작했으니, 카메라는 이제 곧 피가 돌고 살이 붙게 될 것이다.

 

우리 철규하고 나하고 그렇게 둘이 살았어. 우리 철규가 아부지도 없이 그렇게 살았다고. 세상에 있는 것이라고는 애오라지 나 하나뿐이여. 그런디 철없는 내가 혼자 사니라고 그랬겄제이, 내가 젊어서, 철이 없어서 말이여이. 내가 집에 안 들어간 담날 우리 철규가 가게로 찾아와서 그러더라고.

엄마 왜 집에 안 왔어? 연탄불 꺼져서 추웠단 말이야, 엄마가 없어서 추웠단 말은 못하고 연탄불이 꺼져서 추웠다고 말이여어어어어엉. 철규야아아아아, 엄마가 잘못했다아, 엄마가 잘못했어어어어 내가 못 들어간 이유가 있었단다, 집주인 할망구가 방세 안 준다고 갈군게애, 방세 만들어 갈라고오.

어느 순간, 박선자 울음이 딱 멈추었다.

내가 우리 철규한테 물었어, 할망구가 뭐라고 안하디? 우리 아들이 그러더라고.

나보고 염병을 한다고 했어. 개가 지랄하니까 내가 발길질 한번 했거든. 그랬더니 나한테 염병을 한다고 하더라고. 근데, 엄마, 염병이 뭐래?

집세 안 준다고 할망구가 우리 철규한테 염병을 한다고 했다는 거야. 그 어린것한테 염병을 한다고.

그럴수록 집주인네 개한테도 잘하고 해야지, 나는 속도 없이 우리 아들한테만 야단을 쳤지. 우리 아들도 속이 없기는 마찬가지여, 호호, 집세 주면 되잖아, 하더라고, 그놈이. 내가 그랬지. 장사가 안되는데 어떻게 돈을 주냐. 엄마 지갑에 돈 있잖아, 이놈이 언제 봤는지 내 지갑에 돈 있는지를 알아. 내가 화장실 갔다 온 새에 이놈이 지갑을 갖고 튀었더라고, 흐흐흐.

박선자가 울다가 웃었다.

울다가 웃는 박선자의 뒤를 이상희가 이었다.

그날, 비가 오는데, 돈이 없어서 그 비를 홈빡 맞고 가겟집에서 집까지 걸어온 자네가 내 멱살을 잡았지. 지갑 내놔.

자네가 안 들어오니까 철규가 우리 방에서 잤다고. 혼자 춥다고 웅크리고 있길래 아줌마 방에서 자거라, 했더니 아뭇 소리 않고 곱게 와. 지갑을 손에 꼭 쥐고 놓지를 않길래, 내가 안 가져갈 테니 놓고 자라고 했어. 애가, 지갑에서 울 엄마 냄새 나요, 하더라고.

당신이지? 우리 아들한테 내 지갑 훔쳐오라고 시킨 게 당신이지. 내 멱살을 잡고 흔들어. 나도 박선자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지.

오지 마,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고, 울 엄마도 가서 안 왔어, 그래도 나 잘 컸다, 그러니 당신도 오지 마.

안돼요, 아줌마, 울 엄마 가지 말라고 해요, 엄마, 가지 마, 엄마아.

그날 동쪽 방에 사는 땜쟁이 김가만 아주 신났지. 이쪽 방 사는 년이든, 저쪽 방 사는 년이든, 아무나 한년이라도 걸려만 봐라, 어떻게든 해볼 날만 기다리는 음흉한 놈이란 걸 누가 몰라, 놈 숭악한 속을 우리는 다 알지. 우리를 순 바보로 아는 멍청한 김가가, 우리 쌈하는 거 구경하는 재미에 홀딱 넘어가 아주 신이 났어.

싸워라, 싸워. 싸워야 큰다. 아이고 비야, 석달 열흘을 그냥 푹푹 내려부러라이, 내려부러. 어라, 비가 오시네, 봄비가 내리시네. 비도 오는데, 장사는 무슨 얼어죽을 장사냐이. 오늘은 문을 닫아야겠다. 박선자야, 울지 말고 오늘은 나하고 술이나 한잔하자. 술이나 한잔하면서 가슴속 묻어둔 이야기나 실컷 하거라. 언제 우리가 이런 날이 있었냐. 너나 나나이? 영화 하는 우리 은주 덕분이다이. 우리 은주 덕분이여.

이모가 대구탕집 문을 닫았다. 비가 와서인지 문을 닫자 실내가 어두컴컴해졌다. 이모는 불을 켜지 않았다. 내 카메라에서 나오는 빛이 실내를 푸르게 비췄다. 나는 주저없이 빛 속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철규가 빛의 끝에서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이윽고 카메라는 철규가 되었다. 박선자와 이상희가 동시에 카메라를 향해 소리쳤다. 철규야아아아.

 

4학년 첫날, 3학년 때까지 친하게 지냈던 김학수하고 김학수 돈으로 오락을 하다가 내가 이기니까 김학수가 화가 나가지고 나를 쳤다. 내 돈으로 이긴 것이 아니어서 나는 맞고도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있는데도 계속 쳐서 나도 한대 쳤다. 내가 한대 치니까 김학수가 나를 세대 쳤다. 내가 가만히 있으니까 김학수는 더 치지 않고 가버렸다. 우리가 치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심해서 여기저기를 빙글빙글 돌다가 김학수 아버지가 개를 키우는 자개공장 뒤 산으로 갔다. 김학수 아버지는 개를 서른마리 정도 키우는데 개들이 울면 한꺼번에 울고 그치면 한꺼번에 그쳤다. 개들이 울면 한꺼번에 울기 때문에 그 울음소리가 동굴에서 울리는 소리같이 좀 이상했다. 개들한테 돌을 던지면 그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돌 하나를 던졌는데, 개들은 조용했다. 두개를 던졌지만 실패였다. 세번째는 조금 성공하려다 말았다. 네번째 돌을 던지려고 하는데 누가 내 팔을 아프게 비틀었다.

사는 것이 좆같지? 그러니까 너도 죽고 싶은 거구나, 새끼.

집에 오는 길에 엄마가 그전에 우리가 세 살았던 우물집 아줌마하고 싸우는 것을 발견했다. 우물집 아줌마보다 엄마 힘이 더 센 것 같았다. 그래서 안심을 했다. 엄마가 이기나 지나 전봇대 뒤에서 관찰했다. 엄마가 이겼다. 이제 우리는 우물집에 밀린 방세, 전기세, 우물세, 오물세를 떼먹을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나운 우물집 여자를 이겨버린 엄마가 자랑스럽고 또 창피했다. 그런데 우물집 아줌마는 사람들한테 왜 우물을 그냥 쓰게 안하고 돈을 받는지 알 수 없었다. 물을 자기가 만드는 것도 아니면서 돈을 받는 게 정말 이상했다. 우물집 아줌마네 돈통에는 얼마나 돈이 많을까. 우물집 아줌마네 돈통을 상상만 해도 침이 꼴깍 넘어가서 목구멍이 근질거렸다. 엄청 무거울 것이다 그 돈통은. 아무리 무거워도 나는 그런 돈통을 한번 꼭 들어보고 싶었다. 그런 돈통 하나만 엄마한테 주면 엄마가 얼마나 행복해할까.

 

카메라 밖에서 두사람이 카메라 안을 숨을 죽이고 바라보고 있다. 철규야, 말 좀 해라, 말 좀 해. 너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을 하라고 말을. 오메, 우리 철규가 뭐라고 하네, 뭐라고 해, 내가 우물집 여자하고 싸우고 있다고 하네, 싸우고 있다고 해. 숭악한 년 우물집 년하고 머리끄댕이를 잡고 싸우고 있다고 해.

상희가 선자 뒤를 질세라 잇는다.

나하고도 한번 싸웠지. 우물물 쓰는 데 돈 백원씩을 내야 하는지 알게 뭐야. 제한급수라고 물이 안 나와서 은주를 업고 우물터로 가 빨래를 하는데 여자가 나를 미틀어불더라고, 사정없이 미틀어부러. 돈 백원, 우물세 안 냈다고. 그래놓고는 어라, 병신이네이, 다리병신이여이, 하면서 들어가부러. 다리병신을 미틀었다고 남들이 욕할까봐 겁났던 모양이야.

철규야, 우리 말 들려? 들리면 어서 말 좀 해봐라이. 좋은 일 한번 하는 셈치고 말 좀 해봐.

 

우리는 그날 저녁에 이사를 했다. 내가 무서워서 가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간다고 하고 엄마는 수도가 설치된 집으로 짐을 옮겼다. 리어카를 빌려서 짐을 실었는데 딱 두번 왔다갔다 하니까 이사가 끝났다.

새로 이사 들어온 집주인 할머니는 우리집은 백년도 넘은 집이야. 백년도 넘은 집 중에 이렇게 좋은 집 봤는가? 이 집이 바로 그런 집이야, 백년도 넘은 중에 제일 좋은 집이라고. 잘 알아들었는가? 왜 눈만 말가니 뜨고 대답이 없어? 우연히 왔지마는 좋은 집인 줄을 알고 그에 맞게끔 방세 같은 것 밀리지 말고 살자고이? 그런디, 이상하네이, 식구가 왜 둘뿐이여?

엄마는 눈도 깜짝 안하고,

애아빠는 미국 갔죠.

미국서 언제 와?

돈 벌면 오겠지요, 하하하하…… 어어어어엉.

웃음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는 울어버렸다.

딴살림을 채렸는가아…… 끄응. 벅구야, 벅구 어딨냐아. 할머니가 애먼 개를 부른다.

에이씨, 개 같은 할망구 같으니라구, 나가는 할머니 뒤에 대고 엄마가 입술을 움직여 욕을 했다. 나는 엄마가 그렇게 욕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엄마는 소리 안 내고 욕하는 능력이 있다. 입술을 빠르게 움직여서 상대방이 눈치 못 챌 정도로 욕을 하는 것이다.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왔다가 돌아가는데 뒤에서 엄마가 욕이 분명하게 입술을 움직였던 것이다. 나는 엄마가 왜 욕을 했는지 모른다. 엄마, 우리 선생님한테 욕했지, 하니까 엄마는 아니, 그러는 것이었다. 엄마한테는 분명히 욕을 했으면서 아니라고 발뺌하는 재주도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교양 없는 할망구 땜에 기분 나빠 죽겠네, 자자 자.

운 것이 기분 나빠 우리는 짐도 정리 안하고 잠부터 자버렸다. 아니, 자자고 했던 엄마는 잠을 자지 않았다.

니 아부지가 말이야, 꿈에 나타났더라. 어이, 나네 나, 나란 말이여. 보니까, 눈이 툭 튀어나오고 얼굴이 시커먼데 목소리 들어보니 니 아부지가 틀림없어, 니 아부지는 니 아부진데, 겁나게 무서워. 사람이 아녀, 딱 봐도 죽었어. 나란 말이여, 왜 안 본가, 나를. 당신이 무서워서 그러지. 그놈들이 나를 죽여서 여기다 파묻었어. 내가 그날, 당신이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나가서 지금 이렇게 죽은 몸이 되어부렀네. 그런 줄이나 알소이. 나는 죽었어. 그러니, 인자 자네는 나를 잊어버리소이. 잊어불고 잘 살어이.

니 아부지는 역전 세차장서 일했단다. 차 닦는디 말이여. 그 전날 니 아부지 직장사람들이 군인들한테 잽혀갔단다. 니 아부지는 마침 그날 집안 일로인가, 하여튼지 간에 집안에 뭔 일이 있어갖고 출근을 안해서 화를 면했는디, 직장이 어뜨케 됐는가 가본다고 기언씨 나가갖고 여적지까지 소식이 없다가 십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사 내 꿈에 나타났더라, 시커먼 시체가 나타나서 지가 나라고, 니 남편이라고이. 니가 막 돌이 지났을 때였다이, 너 돌 지나고 며칠 안 지나서 니 아부지가 행불이 되었단게. 행불, 행방이 불명이 되었다는 뜻이여이. 니 돌 때, 니 아부지가 너를 안고 얼매나 좋은가 열바쿠를 돌더라, 어지럽도 안한가, 열바쿠를 돌아. 니가 까르륵까르륵 해대는 것이 좋아서 열바쿠를 돌았다니까, 니 아부지가. 자냐?

자면서도 나는 엄마 말을 다 들었다.

오메, 빗지락을 빠치고 왔다아, 우물집 년 지랄통에 빗지락을 빠치고 왔어어. 아이고 아까라. 아이고 아까.

새 곳으로 이사한 첫날, 빗자루 빠뜨리고 온 것을 아까워하다가 엄마도 잠이 들었다.

 

니 아부지가 죽고 없는 세상에서 니 엄마는 돈 때문에 싸웠다, 철규야.

니 엄마 박선자는 밀린 방세 때문에 머리끄댕이를 붙잡히고 나 이상희는 그놈의 백원 때문에, 물속에 처박혔단다, 철규야.

머리가 희끗한 두 여자가 카메라를 번갈아 들여다본다.

듣고 있냐, 철규야, 니 엄마 말소리 들리냐? 내가 좀 늙었다. 세월이 몇년이냐이, 안 늙고 배기겄냐. 아이, 철규야, 왜 아무 소리가 없냐, 설마 엄마 얼굴 잊어먹지는 않았겠지? 니가 아무리 먼 데로 갔어도 엄마는 엄만디, 잊어불면 안되겄지? 글지? 지금이라도 그 속에 있으면 여기로 나와봐라. 나와서 엄마랑 이야기도 하고, 너 이 세상 있을 때 못했던 것 다 해보고 하루만이라도 있다 가거라. 엄마는 그것이 소원이다, 철규야.

니 엄마한테 오는 길에 아줌마한테도 오너라. 너하고 나하고 짧은 인연이었지마는 나는 너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단다. 나는 니가 우리 은주를 업어주고 노래해주고 춤춰준 것을 알고 있지, 니가 얼마나 착한 애란 것을 니 엄마도 모르고 세상사람 다 몰라도 나는 알고 있단다. 너는 니 엄마 아들이지만 나한테도 사랑하는 내 아들 철규였단다, 철규야.

 

축구나 한판 하자. 김학수가 내 어깨를 툭 쳤다. 나한테 사과하려고 그러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김학수가 자꾸 태클을 걸었다. 도저히 못 참겠어서 이번에는 내가 김학수 다리를 걸었다. 김학수는 넘어졌다. 얼굴도 좀 긁혔다. 선생님이 김학수 얼굴이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왜 대답이 없어.

김학수가 대답하지 않자 나한테 물었다.

제가 김학수와 축구를 하다가 김학수가 자꾸 태클을 걸어서 제가 화가 나서 발을 걸어 넘어져서 얼굴이 긁힌 것입니다.

철규, 니 아부지 뭐해?

돌아가셨습니다.

한 사람의 인성은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습관이 문제다. 박철규는 지금부터라도 사과할 일이 있으면 바로바로 사과를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자, 사과해라.

사과 몰라?

사과하라니까.

사과해, 자식아.

안해?

담임의 손이 결국 내 머리통 위로 날아왔다. 우리집 키우는 개도 박철규 너보다는 낫다, 인마. 말을 너무 안 들어, 말을. 낼은 꼭 학교에 어머니 모시고 나와라. 어머니하고 너에 대해 상담 좀 해야겠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되겠어. 너는 이대로 가면 사람새끼가 아니고 개새끼가 된다, 개새끼이.

엄마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엄마는 돈을 벌어야 들어올 수 있다고 했다. 엄마는 오늘도 돈을 못 번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왜 안 나오셨지?

………

왜 말 안해?

………

왜 말 안하냐고 묻잖아아

………

이 새끼가!

………

어제보다 더 세게 내 머리통을 내리쳤다. 우리집 개도 듣는 말을 사람새끼가 안 들어, 사람새끼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내일은 꼭 어머니 보시고 와라이.

 

김치는 있고 밥이 없으면 그냥 김치만 먹어도 맛있다. 밥이 없어서 그냥 김치만 먹어도 배가 고파서인지 맛있었다. 김치 한번 먹고 물 한모금 마시고 김치 한번 먹고 물 한모금 마시고 하다보니 배가 불러서 더 먹을 수가 없었다.

김치 맛있냐?

땜쟁이 아저씨가 김치를 한가닥 북 찢어 먹으며,

음, 맛있구나, 맛있어. 엄마가 솜씨가 좋아, 김치도 맛있게 담그고이. 아들놈, 생기기도 잘 생겼다. 니 엄마는 언제 오냐, 어제도 안 들어오신 모양이구나. 엄마한테도 무슨 사정이 있겠지. 인생은 참 복잡한 것이란다, 생각보다 복잡해. 니 엄마 인생이 복잡하니, 니가 고생이다, 니가 고생이여. 옛다, 김치 잘 먹어서 주는 것이니, 이것으로 몸에 좋은 우유하고 빵 사먹어라. 사아랑으을 팔고오사아는 흙바람 소오개애. 아저씨가 장사 잘해서 돈 벌어 올 테니까 집 잘 보고 있어라이.

땜쟁이 아저씨도 엄마하고 똑같이 돈을 주면서 우유와 빵을 사먹으라고 한다.

나는 수돗가 거울을 보고 후이후이를 세번 정도 했다. 그렇게 했더니 어젯밤 엄마가 끝내 안 들어올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부터 시작됐던 후이후이가 겨우 멎었다. 후이후이는 내가 지은 근지럼의 이름이다. 머리가 근지럽고 등이 근지러워서 죽을 것 같을 때, 괜히 후이후이, 하니까 재밌었다. 후이후이는 거울을 보면서 하면 더 재밌다. 근지럼은 멎었지만 나는 심심해서 후이후이를 몇번 더 했다.

왜 거울을 보고 한숨을 쉬는 거냐?

옆방 아줌마는 냄비를 싼 보자기를 들고 애기를 업고 어디를 가려는 모양이었다.

아줌마가 보자기를 풀어 닭백숙을 나한테 덜어주었다.

나는 왜 한숨을 쉬느냐는 아줌마 물음에는 어쩐지 부끄러워 대답하지 않고 아줌마 애기를 쳐다봤다. 애기가 울었다.

아줌마 애기는 내가 쳐다만 봐도 운다. 못생긴 애가.

아줌마 애기는 왜 내가 쳐다만 봐도 울어요?

저도 엄마가 없어서란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엄마가 끝내 안 들어온 것을 알고 후이후이를 세번하고 세수를 하려고 나왔는데, 집주인네 마당에 피어 있는 진달래꽃 빛깔이 왠지 근지러웠다. 그날따라 나한테 고분고분한 벅구 코도 근지러웠다. 등이 근지럽거나 머리가 근지러운 것은 있어도 마음이 근지러운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오늘은 학교 안 가나부지? 잘되었구나, 아줌마 올 때까지 우리 은주 좀 봐주려무나.

마음 한복판이 근지러워서 나는 은주를 봐주기로 했다.

야, 니 이름이 뭐냐. 아 참, 은주라고 했냐? 반갑다. 니 가짜엄마가 지난번 나한테 라면을 줄 때, 자기는 안 먹고 나한테만 딱 한개 남은 계란을 주더라. 근데 너는 맨날 왜 우냐? 니 엄마가 가짜엄마라서 우는 거냐? 은주를 옆에 두고 만화책을 보고 있는데 애가 더럽게 운다. 원래 못생겼는데 우니까 진짜 못생겼다. 애기들은 다 성질이 좋은 줄 알았는데 이 가시내는 성질도 못된 것 같다. 세살이라는데 싹수가 노란 것 같다. 너도 염병하는 애냐? 너도 만화책 볼래? 애는 도리질을 하며 계속 앵앵거린다. 야, 그러면 내가 노래해줄까? 개구리소년 빰빠바 개구리 소년 빰빠바 니가 울면 무지개 연못에 비가 온단다 비바람 몰아쳐도 이겨내고 일곱번 넘어져도 일어나라 울지 말고 일어나 빰빠바 피리를 불어라 빰빠바…… 계속 운다. 요리 보고 조리 봐도 음음 알 수 없는 둘리 둘리 빙하 타고 내려와 음음 친구를 만났지만 일억년 전 옛날이 너무도 그리워 보고픈 엄마 찾아 우리 함께 떠나자 아아아아 외로운 둘리는…… 하는데 외로운 둘리는…… 계속 운다. 아, 맞다, 너도 외로워서 우냐? 내가 그럼 춤춰주까? 얼씨구씨구 돌아간다 꼴뚜기별에 꼴뚜기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절씨구씨구 돌아간다 꼴뚜기별에 꼴뚜기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운다, 또 운다.

한대 때려줄까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서 업어줬더니 그제야 울음을 그친다. 그런데 뭔가 등어리가 축축한 것이 오줌을 싼 것 같다. 세살이나 먹었다는데 옷에 오줌을 다 싸다니, 못된 것이 멍청하기까지 한 것 같다. 그래도 우는 소리 듣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아서 계속 업은 채로 만화책을 보는데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프다. 우리 엄마 허리가 끊어지지 않은 이유를 알겠다. 나는 적어도 은주처럼 맨날 우는 바보 같은 애는 아니어서 우리 엄마는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나를 업어줄 필요가 없어서였다. 적어도 그 정도는 돼야 하는데 말이다. 그래도 할 수 없지. 니가 우는 것은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은주를 업고 엎드려서 만화책을 보다가 나는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내가 와서 보니 철규가 우리 은주를 업고 자다 일어나서 대뜸 한다는 소리가 그래.

내가 만화책도 보여주고 노래를 불러줘도 계속계속 울잖아요, 업어주니까 안 우는 거예요, 얘는요, 사람이 꼭 업어줘야만 안 우는 진짜 성질 이상한 애라니깐요.

그때 내가 두 애기를 보듬고 어뜨케 울었는지 몰라. 하여간 실컷, 울었어, 내가. 실컷 울었다고 말하는 상희는 고요한데,

박선자가 부들부들 떨고 있다. 카메라를 껐으면 좋겠네, 껐으면 좋겠어. 꺼진 카메라 앞에 박선자가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었다.

쇠고랑을 차는 한이 있어도, 내가 이 말을 해놓고 죽는 한이 있어도 말을 해야겠지, 말을. 철규야, 이 엄마를 용서해라. 그리고 이 엄마를 잊어버려라. 나도 인자부터 너를 잊어버릴 테다, 잊어버리고 새 인생을 살아갈 거다. 너도 다 털어놓고 훨훨 날아가라. 니 가고 싶은 데로 날아가라. 우리 인생에는 그런 시기가 있단다. 막 미쳐돌아가는 시기가 말이여이. 남한테 절대로 털어놓을 수 없는 한 시기가 있는 모냥이, 우리 인생에는. 그때 내가 그랬단다. 니 엄마 박선자 인생이 그때 막장인생이었어.

그 일 있기 며칠 전, 우리 철규가 그날따라 해사하게 웃음서 내 품으로 달려와 지갑을 주더라고. 지갑을 주고는 이번에는 내 옷에다 코를 대고 킁킁거려. 뭐하고 지냈냐니까 아줌마 애기를 봤다고, 그런데 못생긴 애가 맨날 울더라고 해. 나도 그랬냐고 하고 애를 내려다봤어. 눈코는 지 아부지 닮고 입은 나 닮은 것을 그때 알았다고, 내가. 우리 철규가 그렇게 생겼다고. 말그름한 그 눈이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데, 억장이 무너지더라고. 억장이. 그 순간까지도 속을 못 차리고 엄마는 친구들하고 꽃놀이를 다녀올 테니, 엄마 없는 동안 우유하고 빵을 사먹으라고 돈을 줬네, 그 미친년이 밥해줄 생각은 안하고 돈을 줬어. 그때도 나는 야가 학교를 안 가고 산이건 어디건 짐승같이 쏘다니는 것을 몰랐지, 몰랐다고. 돈 번다는 핑계 대고 젊은 삭신이 애먼 사랑에 눈이 멀어서, 지 새끼가 학교를 가는지 밥을 먹는지 몰랐다고. 엄마 지갑이나 낚어채가는 새끼가 쳐다보기도 싫고 외롭더라고, 내가 내새끼를……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여. 내가 준 삼천원 중에 겨우 천원 쓰고 갔어. 개비를 열어보니, 돈 이천원이 있더라고. 비에 혼빡 젖어서 있더라고. 휴우.

나도 말해야겠네. 진짜 말 못했는데, 울 아부지 제삿날 우리 은주한테도 못한 말을 철규한테 할라네, 우리 아들 철규 앞에서는 할라네. 자네가 오지 않아서 철규는 이제 내 아들이 된 셈이지. 적어도 그해 석달간 철규는 선자 자네 아들이 아니라 내 아들이었다고. 아들아, 어디를 제일 가고 잡냐, 바다를 가고 싶대, 나도 바다를 그때까지 한번도 안 가봤어. 바다 구경을 갔지. 은주를 업고 철규 손을 잡고 갔다고.

박선자 자네한테 다시는 오지 말라고 악을 쓰고 났으니 꼼짝없이 철규엄마가 되는 수밖에 없었지. 나는 아이들과 여행을 하고 싶었어. 그래서 바다로 간 거여. 은주를 업고 철규를 데리고 바다를 구경하고 나니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드만이. 선창에서 아무 섬이나 가는 배를 탔네. 아이들을 업고 걸리고 섬 가운데로 난 길을 걷고 있는데, 남자 둘이 우리를 따라오고 있는 것을 알았지.

아줌마, 죽기 전에 우리한테 좋은 일 좀 하시지. 다리를 절룩이는 거 보니 사연이 좀 있는가보네. 사연 있는 여자가 좋지, 싱겁지 않아서 좋을 거야. 낄낄낄.

철규야, 엄마 손 꽉 붙잡아.

응, 엄마. 걱정 마.

철규도 제법 으젓하게 대답하더라고. 그러나 사내들의 힘을 감당하기에는 내 아들 철규는 너무 어렸어. 우리는 섬 가운데 소나무숲으로 끌려갔다고.

철규야, 은주 좀 보고 있어. 내가 아저씨들 혼내고 올게.

나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더 깊은 숲으로 달려 들어갔지. 힘껏 갈 수 있는 끝까지 갔다고.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사내 둘이 느긋하게 나를 따라오드만.

그놈들이 바지를 추켜 입으면서 그래. 죽이기에는 애가 둘이나 있다고. 애들 봐서 죽이지는 못하겠다고.

철규가 나를 살렸어. 내가 숲에서 나왔을 때 철규가 은주를 업고 나를 기다리고 있더라고. 철규는 울지 않았고 은주도 울지 않았다고. 나도 울지 않았지. 다만 갈매기만 울드만. 파도만 울드만. 우리는 결코 울지 않았다고. 철규도 나도 아뭇 소리 안했어. 그냥 가만히 있었어, 울지도 않고, 그것이 다여. 자네 안 들어오는 동안 우리한테 그런 일도 있었다고. 그러나 그것은 암것도 아니라고, 살았으면 된 거라고. 박선자야, 그냐, 안 그냐.

은주야, 인자 카메라 켜라.

 

밖에 아직도 비가 오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어두운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우리는 가만히 기다렸다. 카메라 속에서 철규가 나타나기를. 철규가 카메라 안에서 밖으로도 나오기를. 나를 보세요, 엄마. 나도 엄마 보니까 엄마도 나 봐요. 엄마는 내 엄마잖아요. 그러니까 무섭다고 딴 데 보지 말고 나를 보라고요.

박선자가 조용히 말했다. 가만, 우리 철규 목소리가 들리네. 분명히 우리 철규여. 우리 철규가 먼 데서 이 못난 엄마한테 오고 있다고.

 

산길을 한참 타고 가니 갑자기 큰길이 나왔다. 마침 버스 한대가 올라오고 있어서 나는 버스를 탔다. 산꼭대기에 있는 절로 가는 버스였다. 언젠가 어린이날 엄마와 함께 그 버스를 타고 절에 놀러간 적이 있어서 나는 그 버스가 절에 가는 버스라는 걸 알고 있었다. 엄마는 어린이날이라고 남들 다 가는 놀이공원에 가면 기분만 잡치니까 절에나 가자고 했었다. 절에 가서 싸가지고 간 김밥만 까먹고 다시 버스를 타고 금방 내려오긴 했지만 차창에 스치는 바람 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 좋았다. 버스 안에는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나는 버스 맨 뒷자리로 가서 작년에 내가 맡았던 바람 냄새를 맡으려고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야 새꺄.

나는 움찔했다.

고개 집어넣어라이.

나는 밖으로 길게 뺐던 목을 얼른 자라처럼 집어넣었다.

너 어디 가냐.

절에요.

왜 이 시간에 학교 안 가고 절에 가. 당장에 내려 자식아. 내려서 학교 가.

나를 내려놓고 산으로 올라가는 버스 뒤꽁무니를 향해 돌멩이를 던져봤지만 돌멩이는 차에 닿지 않았다. 터덜터덜 내려오는데 마을이 나타났다. 지게를 진 할아버지가 지나가다가 또 나한테 욕을 했다.

야, 이놈 새끼야. 너는 누구냐?

박철규인데요.

박철규가 누집 새끼여. 니 아부지가 누구여.

군인들이 죽여버린 것 같아요. 우리 엄마 꿈에 나타나서 그러셨다는데요.

애비 없는 후레자식이구먼. 이 시간에 학교도 안 가고 말이여이. 학교 가, 이 시러죽일 후레자식놈아.

할아버지가 작대기로 나를 몰아냈다. 나도 엄마처럼 해보고 싶어서 할아버지 뒤에서 빠르게 입술을 움직여 욕을 했다. 사람들 눈에 띄는 것이 귀찮아 그만 길 아닌 곳으로 들어갔다. 잡풀이 우거져서 걷기는 무척 힘들었다. 아무래도 길을 잃은 것 같았다. 길을 잃은 것 같아도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아아아아, 타잔처럼 소리를 질러봤다. 조용했다. 아무도 내 소리를 못 들은 것 같았다. 새소리만 들렸다. 정글숲을 헤쳐서 가자 엉금엉금 기어서 가자 악어떼가 나올라 악어떼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뒤죽박죽이지만 콧노래도 나왔다. 한참동안 덤불을 헤쳐가다보니 바위가 나왔다. 나는 바위 위로 올라갔다. 내가 눕기 딱 알맞은 바위였다. 바람이 불어와서 땀으로 축축한 등을 쓸어주는 것 같아 기분 좋았다. 이제 내려가는 길만 잘 찾아놔야지. 그래서 다음에 꼭 다시 와야지. 여기는 내 놀이터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놀이터. 땀이 어느정도 식어서 바위 아래로 내려갔다. 바위 밑에 크진 않지만 굴이 있었다. 여기서 놀다가 비가 오면 저 굴속으로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았다. 어디 한번 들어가보자. 굴속은 내가 허리만 약간 구부리고 누우면 적당한 크기였다. 엄마도 툭하면 집에 안 들어오는데, 나도 이제부터 집에 안 들어가고 이 굴에서 살아야지. 이 굴은 이제부터 내 방이다. 나는 굴 입구인 바위 밑을 팠다. 조금만 팠는데도 방이 금세 넓어졌다. 칡줄기로 입구를 장식했다. 꽃이 달려 있어서 향기가 좋았다. 엄마가 시킨 대로 사온 우유와 빵을 향기나는 내 방에서 먹었다. 배가 부르고 바람이 기분 좋게 내 얼굴을 간지럽혀서 기분 좋게 졸음이 왔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날이 어두워졌다. 약간 겁이 났다. 겁이 나니까 다리에 힘이 좀 없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산속이라 그런지 사방이 금방 캄캄해졌다. 산에서는 어둠이 호랑이처럼 쏜살같이 오는 것 같았다. 눈물이 나려고 했지만 참았다. 어차피 나한테는 방도 있다. 나는 바위 밑 내 방으로 들어갔다. 웅크리고 앉아 있으니까 먹을 것 생각이 났다. 아줌마가 준 닭죽, 엄마가 담근 김치를 생각했다. 언젠가 엄마가 해준 감자튀김, 아줌마가 해준 볶음밥도 생각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니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서창선이라고 하더라고. 자기가 우리 철규 담임이라고. 그러시냐고, 깍듯이 인사까지 했네, 이 등신이. 나중에사 알았지. 김빛나라고 우리 철규 짝꿍이야, 그 여자아이가 그래, 담임선생이 철규 머리통을 때렸다고. 그뒤로 철규가 학교를 안 나왔다고. 우리 철규가 학교를 못 가고 산속을 헤매고 다녔어. 산속을 짐승처럼 헤매고 다녔다고. 본 사람이 더러 있어. 어떤 영감이 그래, 죽은 애가 당신 애였소? 쥐알만 헌 놈 하나가 학교에 있을 시간에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산속을 헤매고 다니는 것을 보고 내가 야 이놈아, 학교를 가야지 이 시간에 왜 산속을 헤매고 다니느냐고 야단을 좀 쳐준 적이 있소. 내가 딱 보니, 죽은 놈이 바로 그놈이더란 말여. 말 들어보니 그날 밤에 대학생 한명이 검문에 걸려 쫓기고 있었다등만. 이 어린애가 저 잡을라고 쫓아온 사람들인 줄 알고 그 밤에 어이없이 쫓기다가 어이없이 사고를 당한 거여. 어둠 속에서 발을 잘못 디뎌 벼랑 아래로 떨어진 것이여, 벼랑 아래 바위에 머리가 파삭 깨져부렀어. 그렁게 그날 밤에 이 산에서 두 놈이 쫓기다가 죽은 것이여. 두놈 다 자기만 쫓아오는 줄 알았겄제이.

그 영감이 우리 철규를 마지막 본 사람이여. 우리 철규가 어땠는지, 그 영감 보면 우리 철규 마지막 모습이라도 말해줄까 싶어 갔는데, 그 영감도 지금은 죽었어. 이젠 아무도 없어. 우리 철규 살아 있던 마지막 모습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경찰서에서 오라고 해서 갔어. 박철규군은 19895322시경에 광주시 청옥동 제4수원지 부근 야산에서 단순추락사한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이. 사인은 두부파열입니다잉. 단순하게 말해서 머리가 깨져부렀다는 것이제이. 의사와 검사의 싸인이 찍힌 서류를 들고 경찰서에서 나오는데, 시내에서 학생들이 이철규를 살려내라,고 데모를 해. 우리 철규를 왜 살려내라고 하나, 죽은 애가 철규는 철균데 우리 철규가 아냐. 그 철규는 대학생이래. 철규를 살려내라고 데모하는 사람들한테 물었어. 대학생 철규는 왜 죽었답니까, 무슨 사건으로 수배를 당했는데 수원지에서 시체로 떠올랐대. 시체를 보니, 그냥 죽은 게 아니고 고문을 받다 죽은 흔적이 역력하더래. 그래서 사람들이 철규의 죽음을 밝혀내라고 데모를 한다고 하더라고. 대학생 철규가 부럽더라고, 그때는. 우리 철규는 어떻게 죽었는지, 열한살짜리 우리 철규의 죽음을 밝혀내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내가 혼자 어떻게 해. 우리 철규는 대학생도 아닌데. 그래도 이상해. 철규를 살려내라는 말이 꼭 나한테 하는 말 같아, 나보고 철규 살려내라고 사람들이 종주먹을 들이대는 것 같아, 실은 사는 것이 지옥이었어. 철규야, 내가 이십년도 넘어서 이십년이 다 뭐냐, 너를 불러본다. 말은 솔직하니 다 해서 시원은 하다마는, 너를 보고 싶은 마음은 날이 갈수록 사무치는구나 철규야, 왜 카메라 속에서 나오지를 않는 거냐, 박선자가 카메라 속을 바짝 들여다본다. 마치 카메라 속에만 들어가면 철규를 만날 수 있을 것처럼.

 

밤이 되니까 추워졌다. 아무리 먹을 것을 생각해내려 해도 더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잠은 안 오지만 잠을 자버려야 할 것 같았다. 집에서 엄마가 안 올 때도 나는 잠이 안 와도 기어코 잠을 자버린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낮에 아무리 졸음이 와도 꾹 참고 내 방을 좀더 근사하게 꾸밀 걸 잘못했다. 사람은 눕지 않고도 얼마든지 잘 수 있고 서서도 잘 수 있다는 말을 김학수한테 들었지만 나는 그렇게 잘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막 잠이 안 와도 잠을 자버리려고 손바닥으로 땅을 다진 후 누우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산 아래서 번쩍이는 불빛이 올라왔다. 악, 악, 거기 서, 고함소리도 났다. 우두두두, 하는 쫓아가는 소리인지 도망가는 소리인지 하여간 뛰는 소리도 들려왔다. 저쪽으로, 저쪽으로, 하는 소리도 났다. 잡아, 잡아, 하는 소리도 났다. 내 바위밑 방이 발각됐는지도 모른다. 아래쪽에서 비치는 서치라이트가 바로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저기다, 저기야, 어디, 어디, 저기, 저기. 나는 내 방에서 튀어나왔다. 저 자식이다, 놓치지 마, 빛은 점점 이쪽으로 오는 것 같았다. 나는 그때야 알았다. 사람들이 나를 잡으러 왔다는 것을. 분명히 철규 이 자식이라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서창선이 나를 잡아가지고 오라고 시켰을까. 학교에 안 오니 기어코 잡아서 학교 데려오라고 경찰들한테 시킨 것인지도 몰랐다.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그쪽이다, 그쪽으로 도망간다, 잡아라, 철규 이 쌍놈의 새끼.

 

짧은 순간이었는지 아니면 긴 시간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내가 너무 오래 이곳에 누워 있는 것 같았다. 이제 그만 툴툴 털고 일어나 우물집 아줌마가 화를 내든 말든 우물터로 가서 대충 씻고 집으로 가서 약 바르고 엄마 올 때까지 텔레비전을 보다가 배가 고플 테니 밥을 먹거나 밥이 없으면 라면을 먹거나 옆집 아줌마한테 먹을 것을 좀 달래서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저께 저녁에 상희아줌마가 해준 카레라이스는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지난 일요일 낮의 팥죽은 또 어떤가. 엄마가 해준 먹을 것 중에서는 밥과 라면이 생각났다. 작년 내 생일에 엄마가 해준 것은 흰쌀밥에 소고기미역국, 라면에 떡볶이였다. 내가 맛있는 것을 좀 해달라고 하면, 내가 그런 것을 할 줄 몰라 안 하는 줄 아냐, 사는 게 재미가 있어야지, 해놓고도 그다음 날쯤 부쳐준 부침개는 우리 엄마 최고의 요리였다. 엄마는 아마 사는 것만 재미있으면 최고의 요리사가 됐을지도 모른다. 옛다, 맛난 것, 하면서 커다란 부침개를 프라이팬째로 나한테 턱 내놓을 때의 엄마 얼굴은 꽃이 피어난 것처럼 예뻤다. 엄마가 들어와 있으면 또 맛있는 것 좀 해달라고 떼도 써봐야지. 그러나 꼼짝할 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꽃냄새가 났다. 계절이 오월이니 그럴 만도 했다. 눈만 조금 돌려도 하얀 산벚꽃이 온 산을 덮었고 보라색 칡꽃, 노란색 원추리꽃, 또 무슨 꽃, 꽃들이 난리도 아니었다. 사방은 조용한데 우우, 이이, 어어, 하는 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저렇게 울다 새들도 이제 곧 잠들 것이다. 나도 얼른 집에 가서 자야 하는데, 이 차가운 바닥에서 자면 안되는데, 그러면 나는 얼어 죽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자꾸 졸음이 몰려왔다. 엄마는 친구들하고 꽃놀이를 잘 갔을까. 엄마는 꽃놀이에 가서 무슨 꽃을 보고 올까. 엄마가 꽃놀이 가 있는 동안 우유와 빵을 사먹으라고 엄마가 준 돈이 얼마나 남았을까. 만화가게에서 오백원어치 만화를 봤고 떡볶이 삼백원어치를 사먹었고 버스를 한번 탔으니 이천원 정도가 남았을 것이다. 이제 여기서 빨리 툴툴 털고 일어서서 집에 가면 먼저 라면을 끓여 먹어야지. 계란도 넣고 파도 넣고. 우유하고 빵도 사먹어야지. 그런데 자꾸 잠이 온다. 움직일 수 없는 내 몸 위로 찬 이슬이 내리고 머리 위에서 꾸루루꾸루루, 밤새 소리가 났다. 나는 꼭 엄마하고 여기로도 꽃놀이를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랑 꽃놀이를 와서 춤추고 노래하고 싶었다.

 

철규 손에 삼천원을 쥐어주고 나는 꽃놀이를 갔다고, 내가 꽃놀이 가 있는 그동안에 우리 철규는, 아무도, 아무도 오지 않는 산속 벼랑 밑 바위 위에서…… 어디 가서 말을 못하고 살았어. 천벌 받을 일을 내가 어디 가서 말하느냐고. 그랬는데, 인자사 하네, 내가 인자사 우네. 울도 못했지. 죄인이 울 수나 있가디. 근데 정말 이상하네이. 카메라 안에서 자꾸 우리 철규가 보이는 것이 참말로 이상해. 저것이 뭔 조홧속일까. 우리 철규가 나한테 노래하고 춤추자고 하네, 거기는 꽃밭이라고 거기로 오라고 하네. 여기로는 안 오고 거기로만 오라고 하네. 그곳이 아무리 좋다 해도 카메라 속으로 내가 어찌 들어갈 것이여이.

나도 섬에서 몹쓸 일 당한 걸 누구한테도 말 못했다가 이번에 했네.

박선자와 이상희가 카메라를 부둥켜안는다. 우리가 철규한테 못한 말을 카메라한테 했네, 카메라가 우리 철규여. 철규야, 너는 더 할 말이 없느냐? 할 말이 있건 없건 간에 카메라를 끄지 않으마. 절대로 끄지 않을 테니, 카메라 속으로든, 어디로든 오기만 오너라, 상희가 카메라를 들여다보며 소리쳤다. 그 순간 카메라가 꺼졌다. 내가 끈 것이 아닌데, 그랬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모가 가게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야야, 저어기 노랑나비 봐라, 봄은 봄인갑다, 노랑나비가 날아가네, 노랑나비가. 초로의 두 여인이 노랑나비를 쫓는 순간은 카메라에 담지 못했다. 카메라가 고장이 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도무지 열리지가 않았다. 고속버스터미널로 가려고 택시를 타는 순간, 경화한테서 전화가 왔다.

너 업어줬다는 아이는 만나봤어? 내가 제의한 너와 나의 영화 생각해봤어? 근데, 은주야, 우리가 정말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근데 영화가 뭘까? 영화는 너한테 뭐냐?

경화는 술을 한잔한 것 같았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오밤중이었다. 식구들은 모두 잠든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내 골방으로 들어갔다. 골방에 들어와 습관처럼 카메라를 켰다. 광주에서 갑자기 꺼졌던 카메라는 내 골방에서 정상적으로 켜졌다. 카메라를 켜는 순간, 카메라 속에서 처음 보는, 그러나 익숙한 느낌의 소년이 카메라 속에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년은 철규였다. 철규는 아직 할 말이 더 남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엄마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커튼부터 내렸다. 빛은 완벽하게 차단된 것 같았다. 사위는 조용했다. 빛은 오직 카메라 속에서만 나왔다. 한줄기 빛 속에 철규가 있었다. 철규는 나를 바라보고 나는 철규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라도 할 것 같았는데 한참이 지나도록 철규는 아무 말이 없었다. 오랫동안, 철규는 카메라 밖을 뚫을 듯이 응시하고 있었다. 그 침묵이 너무 단단해서, 뭐라고 말을 붙여볼 수조차 없는 그런 침묵이었다. 오랜 침묵의 뒤에 소년 철규는 카메라 저편으로 사라졌다. 내 영화는 소년 철규의 그 오랜 침묵의 끝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나는 아직 알지 못한 채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사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전히 조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