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독자의 목소리 | 창비에 바란다

 

협동조합의 눈으로 창비를 보다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김형미 소장 인터뷰

 

 

이일영 李日榮

한신대 중국학과 교수, 경제학. 본지 편집위원. 저서로 『혁신가 경제학』 『새로운 진보의 대안, 한반도 경제』 등이 있음. ilee@hs.ac.kr

 

김형미 金亨美

(재)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소장, 경제학 박사. 공저 『협동조합 키워드 작은 사전』 『한국생활협동조합운동의 기원과 전개』 등이 있음. hyungmikr@gmail.com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김형미 소장은 항상 바쁘다. 박사학위를 가진 연구자이면서 운동과 학습 현장 곳곳에서 동분서주하는 협동조합 운동가이기도 하다. 한번 뵙고 싶기도 해서 인터뷰를 빙자한 만남을 청했는데 흔쾌히 응해주었다. 부지런함과 겸손함에서 늘 연구자 이상의 면모를 보여주는 분이다. 인터뷰를 한 날은 415일이었다. 우연히 총선일과 세월호사건 2주기 사이에 만나게 되었는데, 희망과 걱정, 기억과 행동에 대한 여러 생각이 교차했다.

아이쿱생협은 수도권에 있던 생활협동조합 중에서 적자가 심했던 6개의 작은 생협이 연합을 모색한 1997년부터 발걸음을 시작했다. 당시 사업액(매출액)은 15억원 정도였고 누적 적자액은 5억원에 달했다. 초기 멤버 중 어느 분으로부터 이때는 정말 “내일을 알 수 없는 지경”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2015년말 기준으로 조합원 237610명, 회원조합 85개, 사업액(매출액)은 5256억원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김형미 소장은 초기 활동가로 시작해서 일본 유학 중에도 생협의 국제활동을 이어갔고 학위를 마친 후 연구소의 상임이사를 거쳐 소장으로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협동조합과 창비에 대해서 그와 나눈 이야기를 옮겨본다.

 

왼쪽부터 김형미, 이일영.

왼쪽부터 김형미, 이일영.

 

이일영 우리 세대는 대체로 대학 시절에 창비의 영향을 받거나, 받지 않더라도 그 ‘명성’은 접할 기회가 있었지요. 소장님은 어떠셨나요?

김형미 저는 전투적 학생운동권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1980년대에는 웬만하면 그런 공감대가 있었지요. 대학 시절 검정색의 두툼한 『창비』 영인본을 접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문학보다는 사회비평 글로부터 영향을 크게 받았어요. 그때 말로 ‘시각 교정’이 된 건데요, 리영희(李泳禧) 선생님 글에서 특히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아무래도 계간지에서 좀 멀어진 것 같고요. 사회에 나와서 글쓰기 교사를 한 적이 있는데 이때 창비에서 내는 어린이책에 신뢰를 갖게 됐어요. 어린이 글쓰기 교육을 하면서 장기려(張起呂) 박사, 채규철(蔡奎哲) 선생의 청십자 의료협동조합운동과 두밀리자연학교 이야기를 접한 기억도 납니다.

이일영 요즘 『창비』는 어떻게 읽고 계시는지요?

김형미 워낙 대단한 곳이라는 생각은 있는데…… 솔직히 요즘에는 열심히 따라 읽지 못했습니다(몹시 미안하다는 표정). 최근에는 페이스북을 통해 창비가 전해주는 소식을 듣고 있어요. 창비가 50주년을 맞는다는 소식도 알게 되었고 그때를 계기로 정기구독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정기구독을 하면 전자책 형태로도 볼 수 있다는 게 크게 작용한 것 같아요. 요샌 워낙 정보의 홍수 시대고, 종이책이 자연을 훼손한다는 느낌도 있고요. 아이쿱연구소에서 내는 『생협평론』은 종이책으로도 내지만 기본적으로 웹진 형태로 배포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행본은 아직 종이책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잡지는 종이를 절약하는 방식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 중입니다.

이일영 최근 계간지를 다시 읽기 시작하셨다는데, 소감을 좀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김형미 개인적인 취향도 있고 만나는 사람들이 생협 활동가가 많다는 점을 감안해서 들어주시면 좋겠어요. 아무래도 대중에게는 다루는 내용이나 형식이 좀 어려운 듯한데요, 특히 문학비평은 접근이 쉽지가 않습니다. 제가 속한 분야의 특성도 있겠으나 사회비평을 더 먼저 읽게 됩니다. 『창비』의 발행부수가 얼마나 되나요?

이일영 지금 만이천부쯤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형미 대단한 규모네요. 그런데 독자 중 많은 수는 오십대 이상일 것으로 짐작합니다. 주변의 생협 활동가나 대중을 보면 『녹색평론』이나 『시사인』을 가장 많이 구독하는 것 같아요. 생협 조직의 앞날을 위해서 저희도 항상 고민하는 문제인데, 향후 이삼십년을 생각하면 『창비』도 삼십대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겁니다. 지금 삼십대에게 『창비』는 매우 낯선 존재가 아닐까 싶어요.

이일영 왜 그럴까요?

김형미 젊은 세대가 접하는 매체환경이 전과는 상당히 달라진 때문 아닐까 해요. 워낙 매체가 많아졌고 정보를 받아들이고 공부하는 방식도 달라진 것 같아요. 책을 대하는 태도도 그렇고요. 시나 소설 같은 전통적인 문학영역은 그 안에서 권위가 있을 수 있지만 대중에게는 멀리 느껴져요. 과거에도 본격문학과 통속문학의 구분은 있었겠지만, 이제는 과거에 비해 대중 내부의 상호작용이 엄청나게 많아져서 본격문학을 친근하게 느끼기가 더 어려워진 것 같아요. 그래서 『창비』는 아무래도 구름에 떠 있는 존재로 느껴질 듯해요. 일단 너무 두꺼워요. 젊은 활동가나 대중이 손에 쥐게 하려면 분량을 반 이하로 줄여야 하지 않을까요?

이일영 『창비』가 나름대로 운동성과 현장성 강화를 위해 노력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성과가 영 미흡하다고 느끼시나봅니다. 좀더 인간적인 세상을 바라는 『창비』와 협동조합의 지향성에 차이가 있지는 않을 텐데요. 어떻게 거리감을 좁힐 수 있을까요?

김형미 협동조합이 창비와 연대감을 느끼는 키워드가 있다면 ‘인문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협동조합은 산업혁명과 함께 형성되었습니다. 당시는 협동조합이 주류적 발상을 뒤엎는 이단적 존재였는데요. 1844년 영국 로치데일(Rochdale)에서 선구적으로 협동조합 실험을 할 때, 주류적 통념은 사업은 상인이 운영하는 것이고 노동자에게는 그런 역량이 없다는 것이었죠. 노동자들이 사업에 도전하고 자치적으로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은 주류적 사상이나 관행과는 달랐습니다. 무엇을 믿고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인간에 대한 존중과 신뢰가 새로운 실험을 가능케 했다고 봅니다. 인간이 존귀하고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는 존재라는 것을 믿고 이웃에 손길을 내밀었던 거죠. 당시는 의무교육이 없어도 노동자들이 그리스신화나 르네상스 시대의 이야기를 듣고 프로메테우스에 대해 감동을 느끼곤 했다고 합니다. 인문적 교양의 전통에서 휴머니즘의 영감을 키웠다고 할까요. 제가 평생 가슴에 새기는 국제협동조합연맹의 감동적인 슬로건이 있어요. “협동조합은 영혼을 지닌 기업이다.” 인간의 영혼에 접근하는 것은 인문학의 정신입니다. 아이쿱 조합활동 중에 ‘아이쿱, 책을 먹다’라는 게 있는데요, 함께 읽고 싶은 100권의 책을 선정하는 것이죠. 지역조합에 널리 물어서 함께 정합니다. 지역단위 생협에서 가장 광범하게 이루어지는 교육도 인문학이에요. 협동조합은 오랜 토론을 거쳐 의사결정을 하는 조직입니다. 의견이 달라서 사람에 대한 상처가 심해지는 경우가 많죠. 사람을 알고자 하는 생각이 중요합니다. 인문학은 치유의 힘이 있고 사람들에게 용기를 준다고 생각해요. 창비가 제대로 된 인문학의 기지 역할을 해주실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일영 협동조합에서 원하는 인문학이라는 게 상아탑 안의 분과학문을 가리키는 건 아니겠지요. 협동조합이 개인의 교양만을 강조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창비는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구분해서는 안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고, 나름대로 한국사회의 방향과 관련한 담론을 개발하는 작업도 해왔습니다만……

김형미 창비의 문제의식은 공감하고 존경합니다. 그런데 협동조합은 실천조직이므로 사람을 훈련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중요한 과제예요. 도움을 청하는 의미로 말씀드리면, 창비가 대중조직에서 사람을 훈련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협동조합은 얼핏 모순적인 내부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구성원 사이에 자질의 격차가 있어도 11표의 원칙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합니다. 사공이 많아서 배가 산으로 갈 수 있죠. 자치가 가능하려면 의사를 모으는 공부를 해야 해요. 민주주의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조합원이 되면 표를 던져야 하니까 가입 전 교육을 받아야 하지요. 임원 교육은 특히 중요하고요. 이사회는 사업집행을 위한 결정을 해야 합니다. 어찌 보면 이사회가 가장 큰 조직의 위험요인이 될 수 있어요. 경영자를 채용하고 해고하는 의사결정을 해야 하고, 지역사회에 어떻게 기여할까도 고민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한국사회에 관한 심화된 인식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창비가 꾸준히 제시하는 사회적 담론에 대해서도 대강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 현장에서는 좀 막연하다는 느낌도 듭니다. 대중 속에서 성장한 활동가들이 창비에서 말하는 분단체제나 변혁적 중도주의 같은 논의를 이해하고 관심을 갖기가 쉽지 않아요. 좀 어렵죠. 대신 광우병 문제, 세월호참사 같은 데는 폭발적 관심을 갖습니다. 조합원들에게 어필하는 것은 환경, 안전, 신뢰, 공정 등과 같은 이슈예요. 이런 구체적 문제들을 통해 체계적인 사회인식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공부재료를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협동조합운동은 여타 민중운동에 비해서는 온순해 보인다. 김소장도 착한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을 지녔다. 항상 조용조용 온화하게 말을 이끌어가는데, 창비에 대해서도 그런 방식으로 이야기했다. 그러나 협동조합은 그 역사가 보여주듯이 끈질긴 조직이고, 그 조직의 리더들도 만만치 않은 속내를 지닌 사람들이다. 김소장은 협동조합 이야기를 중심에 놓고 창비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기대감을 말했다. 그러나 그 말과 말 사이에는 대중 활동가들이 창비에 느끼는 신랄한 이야기들이 녹아 있었다. 김소장은 창비에 현장성과 대중성을 강화해달라는 바람을 말했다. 어떻게 젊은 독자들에게 친근한 잡지가 될까 하는 것은 지금 창비에 주어진 질문이자 중대한 도전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