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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금희 金錦姬

1979년 부산 출생.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 등이 있음. novelist79@hanmail.net

 

 

장편연재 2

경애(敬愛)의 마음

 

 

3. 너와 나의 안녕

 

경애는 누군가에게 쉽게 마음의 문을 여는 편은 아니었지만 상수와는 예상보다 빨리 가까워졌다. 그것은 시련 때문이었다. 일단 옆방의 이사가 프로젝터를 설치해 자기 방에서 회의를 진행하겠다고 결심하는 바람에 이들의 사무실이 반토막 났다. 이틀 동안 그렇게 반으로 줄어든 공간에 사무실을 새로 꾸미는 이사 아닌 이사를 해야 했다. 첫날에는 책장을 버렸다. 그 무거운 책장을 옮기면서도 상수는 이상하게도 다른 직원의 도움은 거절하고 경애와 둘이서만 해결하려고 했다. 그런 고집은 경애에게는 무척 피곤한 일이었다. 더구나 상수는 책장을 들고 그 넓은 영업부를 통과해야 하는 일이 신경 쓰였는지 책장을 이고 나오자마자 들으라는 듯, “거, 인도에서 연락 왔어요? 성사되겠죠?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 그렇겠죠?” 하는 말을 늘어놓았다.

그 인도 건은 경애와 상수가 팀이 생기고 처음으로 접촉한 해외 바이어였다. 회사의 영문 카탈로그에 일일이 의견을 덧붙여 상수만의 고유한 카탈로그를 만들었고 그걸 페덱스로 보내겠다는 상수를 말리며 경애가 PPT 작업을 했다. 바이어는 제로베이스에서 가격을 흥정하길 원했다. 그러니까 이미 반도미싱에서 미싱을 제작하면서 설정해놓은 얼마간의 이윤까지 다 깎아서 정말 미싱 한대의 원가를 놓고 협상하는 방식이었다. 밑지고 하는 장사란 없으니까 밑지지 않는 마지노선을 공개하라는 식이었다.

그렇게 해서 빈번하게 이메일이 오가는 동안 상수가 즐겨 사용했던 구글 번역기 대신 경애가 영어 번역을 했다. 대학에서 무역영어를 전공하기는 했지만 다년간 총무부에서 물품 대장을 작성하느라 딱히 영어를 쓸 일이 없었던 경애는 그 작업을 위해 창고에서 전공서적을 꺼냈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곰팡이 하나 슬지 않아 있었다. 가격 흥정이 되고 나서는 미싱 대금의 신용 상환기간이 문제였다. 바이어는 아라비아숫자를 발명한 민족답게 수십개의 경우의수를 바탕으로 제안서를 작성해달라고 요구했고 그걸 하자면 회계팀과의 협업이 중요했는데 거기서 일이 진척되지 않았다. 회계팀은 그냥 정해진 아우트라인에 따라서 하시면 돼요,라고 했다. 아니면 이사님이랑 얘기해보시든가요.

그렇게 해서 상수가 답을 못하니까 바이어와는 2주째 연락이 끊겨 있었지만 상수가 그 넓은 영업부 사무실과 복도에 프로젝트가 활기를 띠고 있음을 떠들어대니까 경애는 “괜찮겠죠, 연락을 곧 할 것도 같고요” 하는 식의 돕는 말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상수의 떠들썩한 열의와 연극적인 액션은 누군가의 입김—이를테면 공상수씨 거 좀 조용히 하라고, 통화 중인데, 하는 부장의 목소리만 들려와도 시무룩하게 꺼져버릴 것이었다.

경애에게는 46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인도의 바이어가 아니라 지금 들고 있는 이 책장의 무게가 문제였다. 너무 무거워서 아무리 긍정적인 사람이라도 삶의 회의를 느낄 만했다. 경애는 그 무게를 감당하면서 대체 영업하는 사람에게 이런 책장이 필요한가, 애초에 왜 가져다놓았는가 생각했다. 사실 상수와 함께 사무실 생활을 하면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도 때도 없이 알림을 보내는 상수의 휴대전화가 특히 그랬다. 영업일로 쓰는 휴대전화는 얼음 상태에 가까운데, 상수가 개인적으로 쓰는 건 너무나 자주 울려댔다. 정작 실제로 통화를 원하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오는 일은 없는데, 어디에 그렇게 수많은 인맥이 있어 온라인으로 신호를 보내오는지 모를 일이었다. 마치 매미가 일정한 간격으로 울듯 진동은 쉴 새가 없었다.

그것이 페이스북의 알림이라는 것은 상수가 없는 사이 문서를 책상에 놓으러 갔다가 알게 되었다. 친구 요청과 친구 확인, 게시물 업데이트, 메시지, 쪽지, 누군가의 생일과 태그, 친구 추천 같은 페이스북과 관련한 갖가지 소식들이었다. 보려고 본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서 상수는 “언니”라고 불리고 있었다. 언니님의 페이지를 좋아합니다. 언니님이 게시물에 태그되었습니다. 언니는 죄가 없다 페이지 활동: 453회. 닉네임이야 대개 현실의 존재를 배반하는 재미니까 이상할 건 없었다. 뭔가 어울리는 이름이라고도 생각했다. 경애에게 ‘언니’란 따뜻하고 챙기고 돌봐준다기보다는 어떤 감정적 사건에 충분히 함께 동요해주는 사람이라는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냉소적이다, 정이 없다, 이기적이다 혹은 속물이다, 고문관이다 하는 상수에 대한 평가에는 그런 풍부한 감정 동요에 대한 고려가 없는 것 같았다. 그런 비난들은 상수가 무언가를 하지 않는 데서 비롯했는데, 자기 나름으로는 또 그 모든 것에 표준전과식의 이유들이 다 있었다. 상수의 그 하지 않음은 촛불처럼 쉽게 일렁이는 자신의 마음 상태 때문이었다. 경애가 보기에 상수의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건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았지만 정작 상수 자신마저 그런 감정변화를 두려워한다는 건 모르는 듯했다. 상수는 뜨거운 감자를 쥔 소년처럼 그 마음이라는 것을 어쩌지 못해 쩔쩔맸다.

어쨌든 한 팀이 되었으니까 경애와는 좀 다르게 지내고 싶은지 상수는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애썼다. 연속되는 타일의 무늬를 보면 긴장한다거나 수박 겉껍질의 무늬가 뱀을 떠올리게 해 잘 먹지 못한다거나 시침 소리를 견딜 수 없어 무소음 시계여야 한다거나 하는 사소한 생활습관에서, 직원들의 경조사에 전혀 가지 않는 삶의 원칙까지 다양했다. 상수가 회사 내에서 인심을 잃어가는 이유가 바로 그 후자의 원칙 때문이었는데, 자기가 싫다는데 어쩌랴 싶었다. 상수에게는 결혼이 사랑의 불운한 결말처럼 느껴져 축하할 수가 없다는데, 막 돌을 맞은 아이에게는 인생사 고행인데 어쩌나 싶은 안쓰러움만이 든다는데, 타인의 죽음은 어떻게 보면 인간이 맞을 수 있는 최상의 안식처럼 느껴진다는데.

그런 설명은 누군가에게는 씨도 안 먹히는 변명일 수도 있었지만 경애는 딴은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다. 그런 인생의 특별한 순간들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고통이기도 하니까. 이른바 ‘편모슬하’에서 살다보면 그런 일은 부지기수였다. 엄마에게만 안겨 실이나 공책 따위가 아니라 엄마의 머리띠를 벗겨서 들었던 돌잡이에서, 카네이션을 만들어보라는 선생의 주문에 하나만 뚝딱 만들고 남은 시간을 블록 쌓기 같은 것을 하면서 보냈던 유치원 시절을 지나, 엄마가 쉴 수 없는 날에는 혼자서 졸업장을 받아—친구가 없으니까—비디오나 빌려서 돌아와야 했던 졸업식까지. 경애는 그런 건 사실 고통이라기보다는 부당한 불편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상수는 그렇게까지 쿨해지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런 번뇌의 굴레는요, 그냥 5만원짜리 한장으로 해결하면 돼요. 10만원도 필요없고 5만원이면요.”

경애는 상수에게 그렇게 충고했는데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그주 주말에 있던 누군가의 결혼식에 공상수 이름으로 적힌 3만원이 경애 편으로 전달되기도 했다. 그게 3만원이라는 건 물론 경애가 봉투를 열어본 것이 아니라 공상수씨가 웬일이냐며 사람들 입에 회자되었기 때문이었다.

 

책장을 옮긴 다음날 상수는 오랜만에 육체노동 비슷한 걸 해서 온몸이 쑤시고 결리는 불운한 아침을 맞았다. 그래서 문득 이제 막 시작하려는 팀에 이런 조치는 너무 가혹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아침에 부장을 마주친 김에 항의해보았다.

“그러면 어쩌나? 이사가 그러겠다는데.”

부장은 심드렁했다.

“저희를 다른 곳으로 옮겨주실 수도 있지 않습니까?”

“있지 않네.”

“네?”

“그런 방법이 있지 않다고. 어쩌겠어, 뭐 어디 강당 가서 있으려나? 둘이 쓰기에 좁은 공간도 아니잖아. 오붓하고 좋지 뭘.”

그렇게 말하고 부장은 문득 자기가 이런 사항까지 일일이 신경 써야 한다는 사실이 억울해져서 내가 동네북이네, 북, 여기서 쳐, 저기서 쳐, 하고 혼잣말했다.

그날 운수가 나쁜 사람은 부장만이 아니었다. 그간 상수를 달달 볶던 인도 바이어가 그가 아니라 유정과 계약해버렸던 것이다. 그런 인터셉트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유정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대구에서의 그 맞선 난입 사건 이후로 독대는 처음이라서 긴장이 되었다. 긴장이 되자 호흡이 가빠왔고 안면이 굳어가는 것 같아서 상수는 화장실에 가서 왜!라고 묻는 걸 연습해보았다. 볼 안에 공기를 넣어서 풍선처럼 부풀린 다음, 있는 힘껏 왜!라고 한번 외쳤다. 그리고 몸을 풀 겸 다시 팔다리를 움직이면서 왜! 왜! 왜! 하고 구령을 붙였는데 불운하게도 화장실 어느 칸에 있던 부장이 “공팀장!” 하고 소리 질렀다.

“왜긴 왜야. 사장 다음 이산데 까라면 그냥 까는 거지.”

하지만 그렇게 연습한 상수가 막상 유정 앞에 섰을 때 가장 먼저 한 말은 안녕,이었다. 상수는 그 말을 마치 유치원에 들어간 어린아이가 하듯 쭈뼛거림과 어색함과 불안, 하지만 그것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힘 같은 건 전혀 없는 어떤 유약함을 띤 채로 했다. 그런 상수에 이어 연초에 입사해 아직 인턴딱지도 떼지 않은 신입사원들이 어디를 갔다 왔는지 한무더기 몰려와 안녕하십니까, 팀장님, 팀장님, 안녕하십니까, 하고 패기있게 인사했다. 팀장님, 출장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피곤하지는 않으셨습니까, 몸살은 없이 아침 컨디션 괜찮으셨습니까. 상수가 말문을 떼려고 할 때마다 서른도 되지 않은 그 싱싱한 젊은이들은 계속해서 유정의 안부를 물어댔는데, 나중에는 상수가 나서서 그만해, 그만, 안녕하다고, 안녕하다잖아,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상수는 그러지 않았다. 그런 조무래기들, 미싱의 노루발도 모르는 까마득한 인턴들과는 말도 섞고 싶지 않았다.

다만 상수는 마음으로 맹렬히 청년들에 대해 혹평하기 시작했다. 인턴들이 평소에는 그 투가 아니라 적절히 펌한 자기들 헤어스타일처럼 부드럽고 나긋나긋하게 말하다가 이렇게 회사에 출근만 하면 그놈의 다나까체를 쓰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야유회나 워크숍에 가서 장기자랑을 해보면 갱스터랩은 물론이고 아이돌 군무까지 소화하면서 직장만 나오면 그것이 자기 몸에 걸쳐야 하는 중요한 유니폼인 양 군대 말투를 썼다. 하기는 상사들이 그러니까 따라하는 것일 터였다.

어쩌면 그들이 생각하는 영업이라는 것이 그럴지도 몰랐다. 그들이 즐겨 바르는 포마드처럼. 사실 그 포마드라는 것이 꼰대 상사들이 젊었던 칠팔십년대에 이미 유행했던 것인데 아무리 복고라도 그런 따위가 왜 또다시 유행하는지 상수는 불만이었다. 그런 것이 표상하는 남성스러움이라는 것에 상수는 격렬한 거부감을 보였다. 원래 상수는 누구의 취향을 존중하는 데는 인색했으므로 어쩌면 그 숱한 혐오 중 하나일 수도 있었지만 때마침 유정 앞에 서서 얼마 넣지 못한 축의금 봉투를 내밀듯 시들시들한 목소리로 안녕,이라고 겨우 한마디 한 뒤라 상수의 마음은 좋지 않았다.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건 아니지. 영업은 포마드처럼 강력하게 무언가를, 이를테면 사람의 마음을 자기 뜻대로 고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공기 중을 부유하는 먼지나 홀씨, 혹은 햇볕처럼 그냥 슬쩍 내려앉는 것이 아닌가.

상수는 반도미싱에서 외롭고, 친한 사람도 거의 없는 직원이지만 거의 유일하게 가까웠던 사람이 지금은 회사에서 잘리고 없는 조선생이었다. 호칭에서 알 수 있듯이 나이 오십이 넘어서도 지금은 발령조차 잘 내지 않는 ‘과장보’라는 애매한 직급을 달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일본 본사에서 생산기술직으로 일하다가 옮겨왔는데 1990년대 활황기에 일본어 능통자가 필요해지면서 영업부 직원이 된 경우였다. 하지만 이후에 오래 병가를 낼 일이 생기고 경기도 안 좋아지면서 승진 대열에 합류하지 못했다. 부장은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과장’이라고 해야 하는 상황을 부담스러워했고 좋은 세상에서는 기술자를 우대해야 한다며 자기 편한 대로 ‘선생’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 선생이라는 호칭은 존칭이기는 하지만 묘하게 그를 고립시키는 것이기도 했다.

상수는 일정이 맞으면 조선생과 파트너가 되어 지방 출장을 다녔다. 그러면 조선생은 딱히 마케팅이 필요 없을 듯한 영세한 봉제공장들을 돌며 시간을 보냈다. 서너명의 미싱공들이 일하는 그런 곳은 으레 지하에 있었고 누가 사장인지 직원인지 모호하게 동일한 노동과 피로를 겪고 있었다. 그러기에 묘한 결의 안정감 또한 있는 분위기였다.

“아니, 왜 또 오셨어요. 어떻게?”

누군가가 일손을 계속하며 물으면 조선생은 지나가다가요, 하면서 아무 데나 걸터앉았다. 이따금 그건 천을 얼마나 끊은 거예요, 어디 쇼핑몰로 가지요, 하고 확인하고는 또 가만히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 어느새 호시절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고 직원이 수천에 이르렀던 어느 방직공장에 대한 증언들이 나왔다. 하지만 할 일이 있으니까 그런 얘기들은 다시 끊겼고 그렇게 아무런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아도 조선생은 얼마간 앉아 있었다. 상수는 성격이 급하고 유불리를 맵짜게 따지는 청년이었지만 그런 조선생의 리듬에 영향받은 것이 사실이었다.

조선생은 상수에게 미싱이 ‘머신’(machine)의 일본식 표현에서 온 말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사람이기도 했다. 머신은 기계이고 미싱은 거기서 유래한 단어이기에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본질 같은 것을 알 수 있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미싱회사 직원인 우리는 이 일을 하면서 긍지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옷을 왜 입냐는 것인데, 우리가 혼자 살면 옷 안 입어도 됩니다. 그런데 옷을 입는다는 건 어딜 나간다는 거고 누굴 만난다는 거고 그렇게 해서 인간이 된다는 거잖습니까. 인간다워지라고 미싱을 돌리는 거라고 생각한단 말이에요. 상수씨, 그거 안 잊어야 합니다.”

다른 사원들은 그러지 않았지만 상수는 그런 말들을 아주 귀담아 들었다. 그것은 정말 말 그대로 듣기 좋은 소리였다. 마음 어딘가에 쌓여 있는 만년설 같은 것을 녹이는 소리였다. 본인은 극구 인정하지 않지만 아버지 덕분에 회사에 들어와 대강 시간을 뭉개며 살아보려 하던 상수를 깨우는 소리였다. 하물며 기계라는 것, 미싱이라는 것, 물건을 사고파는 일에도 그런 ‘의미’랄까 ‘본질’이랄까 하는 것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 그것이 상수에게 삶의 활기를 불어넣었다. 상수가 그토록 좋아하는 영화와 연애소설들에서만 이야기되던 것을 현실에서 말해준 사람이었으니까. 오래된 가죽가방을 들고, 지방에서 1박 할 때는 늘 손수건과 양말을 꼼꼼히 빨아 창가에 널며, 몸이 상한 적이 있다고 음주는 꼭 청하로 세잔만 하는, 그런 실재의 인간에게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외롭지 않은 느낌이었다.

아무튼 봉제공장에 그렇게 앉아 있다보면 어느 틈엔가 신기하게도 그래, 요즘 전자동은 얼마씩이나 해, 하는 질문이 나왔다. 그리고 그뒤로는 먹고 죽을 돈도 없다는 지금까지의 말과는 달리, 앞으로 상황이 더 나아질 기미에 대한 기대의 말들이 나왔다. 모르지, 그 건이 들어오면은, 그쪽에서 미수만 해결해주면은. 조선생은 그때서야 카탈로그를 꺼내, 점심을 먹고 물려놓은 사각의 철제 쟁반 위에 슬쩍 올려놓았다. 기대가 현실이 되면 팔 수 있을 것이고 기대로 그치면 팔 수 없을 것이었다.

 

상수는 처음에는 조선생이 ‘농땡이’를 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그 지하의 공장에서 어떤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차르차르차르 미싱이 돌아가면서 옷을 짓는 소리. 그 얇고 값싼 천으로 만드는 옷들은 몇천원의 가격에 도매로 넘어가 다시 소매로, 지갑을 여는 어느 소비자에게로, 가지를 뻗듯 나가는데 그것은 어떤 정교한 프로그램으로도 다 장악할 수 없고 계량할 수 없는, 어떻게 보면 상상과 미루어 짐작으로만 가능한 순환이었다. 그러니까 고정되지 않는 것이었고 우연히 내려앉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회사가 조선생을 내모는 방식에는 완전히 고정된 형태가 있었다. 대량 해고가 있었던 3년 전 사표를 받고 돌려주지 않았는데, 자기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다 부장, 이사가 된 상황에서도 현직에서 뛴다는 자존심으로 겨우 버텨온 조선생은 결국 그때 해고당한 50명과 함께 주차장에서 연대농성을 하는 신세가 되었다. 상수는 그런 조선생이 농성에 나서기 전, 간만에 아주 말끔하게 양복을 입고, 이사를 찾아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는 장면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앞을 서성이던 조선생은 끝내 노크를 하지는 못했고 회사 주차장에서 들려오는 불법해고 철회하라, 눈 가리고 아웅이다, 하는 소리를 들으며 복도로 들어선 손바닥만한 봄볕 속에 한참을 서 있다가 그냥 계단을 내려갔다.

 

상수는 그렇게 한동안 완전히 잊고 있던 조선생을 자신이 떠올렸다는 데 놀랐다. 그뒤로는 연락도 없었는데 그런 기억들이 어디에 잠겨 있다가 누가 손을 넣어 저어보듯 떠오르는지 알 수 없었다.

 

“공팀장님도 안녕하십니까. 사무실 정돈은 잘하셨습니까?”

드디어 인턴들의 관심이 상수에게로 향했다.

“네, 했어요. 다 됐어요.”

“도와드리려고 했는데 다 하셨습니까? 나중에라도……”

“됐어요. 다 했다고요. 신경 안 써도 됩니다. 우리 팀 일은 우리가 하니까요.”

말끝에 자기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져서 사무실 분위기가 잠시 어색해졌는데 경애가 접이식 핸드카트를 밀고 밖으로 나왔다. 더이상 공간이 없어서 사무실에 놓을 수 없는 상수의 화분들이 실려 있었다. 유정이 상수에게 자리를 옮겨서 얘기하자고 해 회의실에 갔지만 사람이 있어서 탕비실에 들렀다가 차를 한잔씩 담아서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박경애씨.”

거기에는 화분을 내려놓고 경애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유정과 눈이 마주치자 경애는 고개를 약간 숙여서 인사했고 그러자 유정이 친근감 있게 인사를 받았다.

“경애씨, 일은 할 만해요? 상수씨가 잘해줘요?”

“그런 거 없는데요.”

“네?”

“잘해주고 뭐 그런 거 없는데요. 업무는 하고 있고요.”

유정이 잠깐 당황했다가 제가 말을 좀 그렇게 했죠, 나도 그런 말 싫어하는데, 하고 받았다. 경애는 그렇다는 것도 아니라는 것도 아니게 뭔가 혼자 생각하는 사람이 자기만의 동의를 하듯 자기 박자에 맞춰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그러고는 담배를 마저 피웠다. 경애는 대개의 경우에 말 시키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특히 담배를 피울 때는 더 그랬다. 그것이 코와 기도와 폐와 폐포에 빨려들어갔다 나오는 순간 자기 안에 그렇게 무언가가 들어갔다 모든 것이 무화된 채 새파란 연기가 되어 나오는 과정에 온전히 집중하고 싶은 것이 애연가들의 마음이니까.

“그런데 경애씨, 여기에 화분 두면 죽습니다.”

상수는 유정과의 얘기는 시작도 않은 채 한동안 화분 얘기만 열중해서 했다. 이 스투키로 말할 것 같으면 7년 전부터 키워왔는데 추위에 약해서 꽃샘추위 바람이라도 불면 죽고 말 테니 여기에 놓아서는 안 된다. 벵갈고무나무는 키가 54센티미터인데 미국 FDA에서 추천한 공기정화식물로 자기가 양재화훼단지까지 가서 5만 3천원이나 주고 사왔는데 여기 두면 안 된다.

“경애씨, 사무실 공기가 안 좋잖아요. 거기에는 프린터나 팩시밀리에서 나오는 포름알데히드 같은 오염물질들이 넘쳐나지 않습니까. 게다가 회사 건물은 1982년에 지어졌잖아요. 그게 뭘 말하는지 알잖아요, 우리.”

“뭘 말하는데요?”

경애가 마지못해 묻자 상수는 꽤 심각한 표정으로 석면,이라고 했다. 회사 건물에 석면이 쓰였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였다. 가만히 둘의 대화를 듣던 유정이 카디건 입은 어깨를 약간 떨었고 그것은 한기를 느낀다는 분명한 동작이었으므로 상수는 순간적으로 뭐 어떻게 도와줄 수가 없나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기 옷을 벗어주거나 어깨를 안아주거나 아니면 어디 따뜻한 곳으로 옮겨가거나. 3년 전 오오사까라면 상수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았겠지만 지금 여기는 서울이고 회사 주차장이고 경애가 보고 있으므로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어디다 놓을 건데요? 사무실은, 이제 쓰레기통도 겨우 들어가요.”

경애는 창고로 들어가서 다시 핸드카트를 밀고 나오며 인생이 왜 하는 것도 없이 이렇게 피곤할까 생각했다.

상수는 할 말이 없었다. 어디에 놓는단 말인가, 대체 어디에. 저 1등급 공기정화식물들을. 유정이 듣고 있다가 그러면 자기 팀에 두라고 했다.

“캐비닛 사이에 두면 되지. 내가 틈틈이 신경 쓸게.”

틈틈이 신경 쓴다……는 말이 상수의 귀에 착 하고 달라붙었다. 지금 상수는 인도 수출이라는 영업3팀 최대의 프로젝트가 좌초될 위기에 처해 따지러 왔지만 그것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상수의 신경은 이제 캐비닛 사이에 놓여서 매일 유정의 시선을 받게 될 공기정화식물에 가 있었다. 그런 유정의 시선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이런 회상 씬들이 여름 호수의 나무 그림자들처럼 은은하게 떠올랐다. 그건 주말마다 미어터지는 오오사까의 우메다 공중정원을 오르기 위해 줄지어 걷는 사람들의 머리통들이었다. 걸어가는 상수 앞에는 머리통들이, 그 앞에는 또다른 머리통들이 여행용 백팩 같은 것을 멘 채로 걸어가는데 거기에는 상수가 거의 얼이 빠진 채로 바라보고 있는 유일한 머리통—유정의—이 있었다. 상수는 사람들이 자꾸 자기 앞에 끼어들어서 그 머리통에서 멀어지는데도 거리감을 느끼지도, 그러니까 쫓아가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왜냐면 그 거리의 측정이 무의미할 정도로 상수에게는 그 머리통이 세상의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얼이 빠져 있는데 머리통이 회전하면서 상수에게 얼른 와,라고 했다. 상수씨, 얼른 와, 하고 그 작은 손으로 재촉하면서.

상수는 유정을 떠올리며 수백번 울었지만 공중정원을 갔던 그날의 기억은 특히 더 그랬다. 그 41층의 공중에서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었기 때문이었다. 푸른 조명이 깔린 전망대의 유리 바닥을 걸으며 그때도 유정은 춥지 않아, 물었지만 상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따뜻한 기운이 몸을 덥혔고 그것은 아마 유정을 안고 싶다는 욕망과도 연관이 되어 있겠지만 그 모든 것이 뒤섞여 궁극적으로는 행복하다는 느낌이었다. 일평생 별로 써본 적이 없는 행복하다,라는 말을 입밖으로 내어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간의 고립감이 완전히 씻겨나간 듯한 느낌이었다. 이런 순간이 예정되어 있다는 걸 알았다면 모든 게 견딜 만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었다.

유정은 다시 좀 춥지 않아, 하고 물었고 상수의 얼굴을 만졌다. 상수의 눈꼬리와 이마에는 흐릿하게 흉터가 나 있었는데, 그건 모두 괴팍한 형에게 맞아서 다친 것이었다. 때로는 그렇게 누구를 괴롭히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인간도 있어서 누군가의 유년이 완전히 망하게 되는데 하지만 어떤 날에는 또 그런 상처가 있으니 누군가의 손이 따라 움직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마치 그렇게 해서 상수가 보냈던 시간들을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유정은 꼼꼼하게 얼굴을 만졌다. 아침저녁으로 피부 컨디션에 따라 두개의 클렌징폼으로 세안하고 잘 때는 나이트크림으로 보습까지 챙긴 덕분에 아주 보드라운 상수의 살결과 거스러미 하나 없이 말끔한 입술, 그리고 애석하게도 상수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나면 판단이 달라지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언급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깊고 잘생긴 눈을. 유정은 상수의 머리카락을 흔들듯이 흐트러뜨리고 나서 부드러워, 하고 속삭였다.

그때까지 상수는 누군가가 자신을 그렇게 가만히 만져주는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대답을 고민하다가 겨우 오일을 쓰거든,이라고 했다.

“오일을 쓴다고?”

“그렇지. 아르간 오일인데 80퍼센트 불포화 지방산으로 되어 있고.”

“그래서 이렇게 부드럽구나.”

“면세점에서 사면 60달러쯤 해.”

상수는 그동안 연애소설들을 무섭게 독파해가며 많은 로맨틱한 장면들을 습득했지만 정작 그런 순간이 찾아오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60달러?”

유정이 의아한 듯 물었다.

“면세점 카드 있으면 10퍼센트 할인해주고 신용카드 포인트 5퍼센트 결제도 가능하고.”

상수는 그렇게 해서 자신이 쓰고 있는 르네휘테르나 아베다 같은 외국 브랜드의 헤어제품에 대해서 지루하게 설명했는데, 그건 정말이지 불필요한 정보들이라서 그렇게 난수표처럼 이어지는 헤어제품에 대한 이야기는 유정이 말한 부드러워,라는 속삭임과 끝 간 데를 모르고 펼쳐지는 저 금방이라도 소멸할 것처럼 아스라한 도시의 불빛들과 어느 때보다도 가까운 둘의 간격과는 정말 물과 오일처럼 전혀 섞여들지 않았다.

둘은 폐장시간까지 전망대에 머물렀다. 그리고 마침내 그 공중에서 내려가야 했을 때 유정은 상수에게 묻는 것인지 혼잣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게 작은 목소리로 자물쇠들을 봐,라고 했다. 왜 도시의 높은 곳에는 꼭 저렇게 사랑을 약속하는 마음들이 걸리는 거야, 가장 높은 곳에 왜 전시되는 거야.

이별하고 나서 상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오랫동안 고민했다. 한동안 그것은 맹세의 위치에 관한 생각이었다. 상수는 사랑에 대해 맹세한다면 그때 그 공중정원만큼 타당한 곳도 없었으리라 생각했다. ‘공중’과 ‘정원’은 상반된 개념이라는 점에서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의미하는 것 같았다. 공중이 아무것도 없는 불모라면 정원은 개간이고 공중이 무한이라면 정원은 울타리의 경계가 확실한 것이었다. 공중은 상승이고 정원은 하강까지는 아니더라도 바닥이었는데, 그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생각했던 세상의 성(聖)과 속(俗) 같은 것을 포괄하고 있었다. 그러니 사랑을 맹세한다면 그 위치가 아니면 어디가 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상수는 이 무력한 사랑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공중과 정원 모두에서 시작한 것이었으니까. 비행기에서 유정이 통보한 그 이별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불모일 수도, 황폐한 상태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바로 그 상태가 연속되면서 개간되는 사랑의 바닥일 수도 있었다. 타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상관없었다. 그들은 맹세의 위치에 있지 않았으니까. 그날 전망대로 불어드는 바람이 어떤 세기와 부딪침으로 상수에게 다가왔는지 실감이 없을 테니까. 어머니가 죽고 나서 늘 무언가를 학대하는 데 재미를 붙였던 형이 어느 공사장에서 주워온 쇠꼬챙이로 상수를 찔러서 생긴 그 상처를 누군가 최초로 더듬듯 만져준 순간이었다.

어려서 그런 일로 입원을 하면 상수는 어머니가 이미 죽어서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머니를 기다렸다. 아니, 딱히 어머니를 기다렸다고는 할 수 없었다. 정말 어머니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날에는 죽은 영혼이 나타났다는 사실에 혼비백산할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혼자 병상에 누워 밤을 보내고 있으면 기다리게 되었다. 거기에는 문이 있고 문은 언제나 열릴 것을 전제로 하니까 그것이 열리고 어머니랄까, 아니면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어떤 것,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들어올 듯했다. 어린 상수가 상상하기로 그것은 당시 상수가 열렬히 좋아하던 「라붐」의 쏘피 마르소 같은 연모의 대상이기도 하고, 「록키」에 등장하는 복서나 「스타워즈」의 제다이 기사 같은 것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그 문은 적어도 그때는 전혀 열리지 않았다.

둘은 그날 연수원 숙소로 들어가지 않고 도오똔보리의 호텔에 묵었다. 차례를 정해서 씻었고 상대방이 씻는 동안 남은 사람은 텔레비전을 봤다. 상수가 욕실에서 나왔을 때 유정은 뉴스를 보고 있었고 유정이 욕실에서 나왔을 때 상수는 남녀가 아주 시끄럽게 떠드는 토크쇼를 보고 있었다. 상수가 텔레비전을 끄려고 하자 유정이 그러면 너무 어두워,라고 했다. 소리를 줄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화면이 스피디하게 바뀌는 텔레비전 때문에 상수는 어색했다. 아주 사적인 일인데 타인이 끼어드는 것 같았고 특별한 순간이 일상화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유정은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해서 신경을 분산시키고 연속되는 행위를 끊는 편을 좋아했다. 유정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맥락 없이 웃기도 하고 자기가 원할 때 동작을 멈추고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 상수가 그것에 대해 물었을 때 유정은 그게 내 리듬이야, 했다. 나는 그렇게 하길 원해.

그후로도 그렇게 유정이 상수의 몸 안으로 들어왔다가 빠져나갈 때마다 상수는 충만과 고독 사이를 오갔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사이에 있는 것 같았다.

유정은 상수가 반도미싱의 다른 팀과는 협의 없이 일을 진행한 게 패착이었다고 설명했다. 인도 바이어들은 의심이 많고 특히 다른 바이어보다 비싼 가격에 물건을 사게 되는 것을 싫어하는데 유정의 팀에서 접촉하고 있던 또다른 바이어가 자기네 팀의 가격정보를 그 바이어에게 알려준 것이었다. 유정의 팀에서 제시한 가격이 상수네 팀보다 현저히 낮았다고 했다.

“신의를 잃었다고 회사에 알린다는 걸 내가 겨우 달랬어. 그 직원은 이제 회사에서 퇴직했다고 둘러대서 나랑 하게 된 거야. 일부러는 아니었으니까 오해는 하지 말고.”

인도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끼리는 대개 관계가 얽혀 있어서 그런 정보는 삽시간에 퍼지니 조심하라는 것이 유정의 설명이었다. 인도 땅이 얼마나 넓고 인구수도 세계 2위인데 그렇게 긴밀하게 정보를 공유하고 있을지는 상수도 몰랐다. 자신과 유정의 팀 중 대체 누가 먼저 그 바이어들과 접촉하고 있었는지, 상수가 제시한 가격은 최저치에 가까웠는데 어떻게 그보다 낮게 제시할 수 있었는지도. 하지만 상수는 시시콜콜 묻지 않고 오해도 하지 않았다. 상수는 다만 유정에게 대단해,라고만 말했다.

유정이 들어간 뒤 경애는 자기만의 상념에 빠져 있는 상수를 건너보았다. 그렇게 소중하다는 공기정화식물에는 이제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경애는 다시 화분을 카트에 실었다. 카트가 덜컹거리면서 화분들이 한편으로 기울자 그때서야 상수는 경애씨, 안 돼요, 안 돼, 하고 신경을 썼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말은 상수가 경애와 한 팀이 된 이후 가장 자주 반복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꼭 경애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라는 표현을 써서 사실 자기 자신한테 하는 다짐이 아닐까 생각하게 했다. 예를 들어, 경애씨, 우리는 영업을 하면서 우리의 모든 것을 팔되 마음을 팔아서는 안 됩니다. 경애씨, 우리는 장사를 하되 장사꾼이 돼서는 안 됩니다. 경애씨…… 하루에도 몇번씩 사무실의 침묵을 깨는 그 경애씨라는 호칭이 들릴 때마다 경애는 자기 일을 하다가도 고개를 들어 상수를 봐야 했는데, 그렇게 막상 눈이 마주치면 상수는 은근히 시선을 비끼면서 달력이나 벽시계를 보며 그런 다짐들을 계속하곤 했다.

“그래도 우리가 일조를 한 거예요.”

상수가 따라오며 덧붙였다.

“공리주의적인 관점으로다가 잘된 거 아닙니까. 회사에서도 우리 공을 무시하지는 않을 거예요. 경애씨, 우리도 한건 했습니다.”

경애는 상수가 믿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것을 얘기한다고 생각했다. 상수는 괜찮지도, 낙관에 차 있지도 않아 보였다. 그게 아니라면 왜 자기가 밀 것도 아니면서 자기 손 하나도 무거운 사람처럼 시무룩하게 핸드카트에 손을 올리고 있는가. 저 지치고 상심한 표정은 무엇인가. 거기에는 상수의 손뿐 아니라 동요하는 마음까지 얹혀 있는 것 같았다. 날아간 계약건은 어쩌면 상수의 어떤 맹목을 흔들지도 몰랐다.

 

창립기념일에 열린 체육대회도 상수와 경애의 단합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였다. 반도미싱은 창립기념일마다 하수종말처리장 부속 운동장에서 전직원 사기 진작을 위한 체육대회를 개최했다. 청백으로 팀을 나눴는데, 팀은 총무부에서 짰지만 운동에 유독 관심이 많은 젊은 사장의 의중을 반영해 회사의 에이스라고 할 수 있는 직원들은 무조건 사장과 같은 편에 넣었다. 경애가 총무부에서 그 일을 맡아서 했을 때 성별과 나이대만으로 정말 공정하게 팀을 짰다가 분위기가 엉망이 된 적이 있었다. 사장은 자기 팀이 질 때마다 실망을 감추지 못했고 중간에 점심식사를 할 때는 막걸리를 들이켜 만취한 뒤 “여러분 그것밖에 안 됩니까? 아니, 탁구할 때 스매싱이 이게 안 돼요? 안 돼?” 하고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사장은 탁구를 너무나 사랑해서 점심시간에도 회사 공터에 탁구대를 놓고 직원 중 상대가 될 만한 사람을 골라 탁구를 치곤 했다. 그렇게 해서 사장의 탁구 메이트가 되는 것은 여러모로 좋은 일이었으므로 남자직원들은 으레 점심시간이면 탁구대 옆에 모여 있었다. 이사들은 사장이 회사 운영에 열의가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직원들과는 ‘프렌들리’하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경애가 보기에 사장은 탁구를 정말 좋아하고 정말 게임에서 이기고 싶을 뿐이었다. 마치 친구들을 모아놓고 골목대장을 하는 아이처럼. 처음에는 천원 내기를 하다가 지금은 진 사람 꿀밤 맞기를 했는데 타격의 세기를 조절하지 않은 채 언제나 최선을 다해 딱, 하고 때렸다.

상수와 경애는 당연히 사장과 같은 편이 아니었다. 사장이 있는 청팀은 매게임에서 승리했고 점심시간 직전에 했던 줄다리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직원들과 나이가 있는 직원들로 구성된 백팀은 우르르 끌려가 운동장에 엎어지는 것으로 경기를 마감했다. 그 체육대회에서 경애와 상수는 가장 매가리 없는 선수들이었다. 팀 주장을 맡은 부장이 키가 크니까 자기 몫을 하겠지 하고 배구경기에 경애를 집어넣었지만 경애는 단 한번도 리시브를 해내지 못했다. 닭싸움에서는 물류팀의 막내사원이 너무 호전적으로 달려드는 바람에 상수는 그 얼굴을 멍하니 보다 몸이 맞닿기도 전에 균형을 잃어 넘어가버렸다. 유일한 승리는 남녀 팔씨름 부문이었는데 여성 수가 모자라 모두 부전승으로 올라간 것이었다. 그렇게 자꾸 져서 백팀 직원들도 기분이 상하자 상수는 적극성을 보이며 아주머니들에게 족구에 대해 직접 설명해주었다.

식당의 아줌마들과 ‘미화 여사’라고 불리는 청소팀 아줌마들은 그런 설명을 들어도 “손을 쓰면 안 돼? 손은 안 된다고?” 하고 묻는 정도의 수준이었는데 상수는 그런 팀에 뭘 바라는 게 많은지 공격수, 센터, 우측수비, 좌측수비까지 정해가며 열심이었다. 어차피 질 거라면 빨리 우르르 져버리고 퇴근이나 했으면 싶은 경애와는 달랐다. 그런데 의외의 반전은 탁구에서 나왔다. 상수가 무서운 집중력으로 사장의 공을 받아냈던 것이다. 그건 어린 시절 피지컬한 부분을 중시하는 미국식 교육을 선호했던 부친의 원칙 덕분이었다. 유년 내내 수영과 탁구와 스케이트와 테니스 강습을 꾸준히 받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상수가 원한 것은 아니었다.

“공팀장, 제법인데, 어디 탁구야?”

“네?”

“당구에 인천다마, 서울다마 있듯이 탁구도 그렇거든. 공팀장 자란 곳이 강남이야 강북이야?”

“방배동인데요.”

“나 서초잖아. 아, 강남탁구라서 우리가 이렇게 죽이 잘 맞는구나.”

사장은 그렇게 농담을 하면서도 예상치 못한 상수의 실력에 은근히 긴장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전직원이 보는 가운데 자기가 사랑하는 탁구에서 지는 것, 그건 사장이 미처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회사의 단합을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상황처럼 느껴져서 아무도 상수를 응원할 수는 없었다. 세트 스코어가 2대2가 되었을 때 사장이 5분만 쉬자고 했다. 그리고 벤치에 앉아 이온음료를 마시면서 그 끝에 아버님 잘 계시지? 하고 상수에게 물었다.

“우리 노인네는 요즘 그렇게 화를 내. 아주 하루 종일 화가 나 있어. 공팀장네 부친은 어떠셔?”

“비슷하죠, 뭐. 사람이 늙는 게.”

“뭐가 비슷해, 교수님이니까 뭐가 달라도 다르시겠지.”

상수는 아버지 이야기가 나오자 강력한 스매싱을 맞은 것처럼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선거에서 거푸 떨어지고 지방의 대학 자리로 옮겨가 정년만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는 실패도 성공도 아닌 어중간한 삶을 살고 있었다. 새어머니는 지금도 선거철이 되면 아버지가 다시 재도전해야 한다고, 사람이 이렇게 끝을 낼 수는 없다고 말했지만 형은 그냥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이야,라고 말했다. 재기를 노리는 정치인도, 후학 양성에 관심 있는 노교수도 아닌 그냥 알코올중독자로 늙어가고 있다고. 그렇게 아버지를 떠올리자 상수의 마음은 흔들렸고 자기가 이 작은 공을 튕겨내고 받으려고 애쓰는 것이 모두 부질없이 느껴졌다. 마지막 세트는 박진감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이 시시하게 끝이 났다. 사장의 승리였다.

이어진 일정의 클라이맥스는 계주였다. 그것만큼 역량의 차이가 확실한 경기도 없어서 거의 운동장 한바퀴 차이가 났다. 그런데도 어쩐지 승자들은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고 탁탁탁탁, 붉은 운동장에 발자국을 내며 뛰어갔다. 그러고 나서는 아주 한참이 지나서 패배할 일밖에 남지 않은 선수들이, 그렇다고 뛰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턱턱턱턱, 하면서 지나갔다.

경애는 철봉에 기대서 어떤 기대도 희망도 없지만 여전히 뛰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과 흩날리는 머리카락 같은 것을 지켜보았다. 그때 문자메시지가 울렸다. 산주 선배였다. 오늘은 뭐 하니, 하는 문자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아무것도 안 해요,라고 답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러자 날이 이렇게 좋은데 왜 아무것도 안 하니,라고 다시 문자메시지가 왔다. 경애는 그냥,이라고 문자를 쓰면서 혹시 만나자는 말이 나오지 않을까 기다렸다. 그 6,7초간은 너무 길었고 오늘의 어느 순간보다도 경애를 마음 졸이게 했는데, 그래 좋은 하루 보내, 하는 답장이 도착했다.

이윽고 사장이 마지막 주자가 되어 직원들의 박수를 받으면서 결승 테이프를 끊었다. 그리고 5분쯤 지나 경기가 끝난 뒤에도 트랙을 다 돌았던 상수가 들어오자 먼 기척처럼 몇몇이 박수를 보내주었다. 경애는 그렇게 들어온 상수가 잠깐 눈으로 유정 쪽을 확인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유정은 불행히도 그런 상수의 귀환을 보고 있지 않았고 숨을 할딱거리며 운동장에 벌렁 누운 상수에게 생수 한컵을 내민 사람은 경애였다. 경애는 무시무시하게 무표정한 얼굴로 수고하셨어요, 하고는 자기도 물 한컵을 따라서 벌컥벌컥 마시고는 하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 나서는 또다시 일없는 봄날이 이어졌다. 부장은 안 되겠는지 그들에게 몇몇 거래처를 인계해주었는데, 접촉해보면 모두 크고 작은 불행에 시달리고 있는 곳들이었다. 전화를 받아서 밀린 미싱 대금을 요구하거나 추가로 우리의 새롭고도 멋진 미싱을 구입하지 않겠느냐고 하면 파산 직전이요, 누가 요즘 미싱밥을 먹는다고, 일없어요, 나 그 돈 못 갚아, 기계 다시 가져가려면 가져가든지, 하는 반응이 돌아왔다. 도무지 연락을 안 받는 거래처에는 직접 찾아가야 했다. 그런 영세한 공장들에 물려 있는 돈이란 사실 받기도 힘들고 액수도 크지가 않아서 서울 인근이 아니라면 출장비가 더 들었지만 막막한 일—없음의 쳇바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해서 둘이 다니는 곳은 주로 서울의 변두리나 인천이나 부천 같은 지역이었다. 상수는 출장비가 나오지 않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원래 대중교통을 좋아하는지 주로 전철을 이용했다. 경애도 한낮에 전철이나 버스 따위를 타고 낯선 곳을 찾아가는 일이 싫지는 않았다. 여러 이유에서 경애는 상수의 자동차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너무 많은 것들이 버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경애는 그런 마음에 대해서 꽤 잘 알았다. 그러니까 현실의 효용가치로 본다면 애저녁에 버렸어야 하는 물건들을 단지 마음의 부피를 채우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마음을 말이다.

 

경애가 산주 선배와의 연애가 끝난 뒤에도 그와 관련한 물건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대학의 선후배 사이였던 둘은 간단히 정리하자면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관계였다. 둘은 연애했지만 자주 헤어졌고 헤어진 뒤에도 멀리 가지는 않은 채 어떤 이름으로든 머물렀다. 그건 산주 선배가 결혼하고 나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경애는 그런 자기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야기되는지 잘 알았다. 대부분 경애의 무지와 뻔뻔스러움에 관한 쑥덕거림이었다. 동창들이 모이고 술자리가 깊어지면 누군가는 자연스럽게 경애에게 아직도?라고 물었다.

“아직도 산주 선배와 연락해?”

경애가 그렇다고만 하고 별말 하지 않고 있으면 고등학교 동창이자 대학동기인 미유가 뒷말을 받아서 “야, 요즘 세상에 뭐, 대학 때 그랬다고 인연 끊고 사냐. 할리우드에서는 전남편 결혼식도 가더라” 하면서 도왔는데, 그러면 누구는 또 여기는 할리우드가 아니고, 하면서 어깨를 툭 치듯이 받았다. 그런 이야기가 나온 날이면 미유는 자리가 다 파하고도 집에 가지 않고 늦게까지 하는 까페에 경애를 데려가서 동기들을 흉봤다. 너한테 그런 말 한 놈 중 한명은 지금 같은 세상이면 성희롱범으로 진작에 잡혀 들어갔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 새끼가 무슨 상식을 떠드니, 상식을. 그러면서 미유는 이제 모임에 나오지 말자고, 차라리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자고 했지만 다음에도 둘은 또다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건 당연히 경애 때문이었다. 경애가 그런 자리에 가겠다고 하면 걱정되는 미유는 어쩔 수 없이 애를 시댁에 맡겨놓고 나와서 같이 앉아 있었다. 경애가 그 자리에 나가는 건 운이 좋으면—경애는 그것을 운이 좋다고 표현했는데—산주 선배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선배를 만날 수 없더라도 거기 앉아 있으면 기억이 연관된 사람들을 통해 선배를 더 가까이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산주 선배와 경애는 뻔뻔하게 로맨스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헤어졌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만났다 헤어지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그것마저 관계의 숙명처럼 느껴지던 시절은 오히려 로맨스의 과정이었고 한쪽이 결혼을 한 것은 확실히 그것의 정리에 가까운 것이었다. 식장에 가서 무슨 오기인지 50만원을 축의금으로 내고 계단식으로 된 연단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평소에 신지도 않던 펌프스 때문에 찌릿찌릿한 발가락들을 참아가며 식당에 가 잔치국수를 먹는 것. 관계의 변화는 그렇게 오는 것이었다. 우리 헤어져, 하는 선언이나 다 관둬, 하며 등 돌리는 동작이 아니라 식권을 받아 식당으로 가며 남들이 다 하는 표정과 몸짓으로, 그것을 기꺼이 해야 하는 순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오는 것이었다.

그날 경애는 뷔페접시에 육회와 초밥과 샐러드, 연어 따위를 연신 담아서 먹었고 친구들과 맥주까지 한잔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동네 편의점에 앉아 혼자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그러면서도 모든 것이 끝났다고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끝나지 않았다면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것이 아닌가. 대체 끝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어떻게 실감하고 확신하는지 알 수 없었다. 끝이 만져지는 것이라면 모를까. 느끼는 것이고 상상하고 인식하는 것인데 지금 내가 그렇지 않은데 어떻게 끝을 말해. 끝을 말하려면 지금 경애 발밑으로 너풀거리며 나뒹구는 아이스크림 포장이나, 택시의 노란 헤드라이트 불빛같이 눈앞에 지나가는 어떤 것도 아픔을 환기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어야 했다. 어떤 풍경도 산주 선배를 떠올리게 하지 않고 지시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는 경애에게는 모든 것이 선배와 관련된 것처럼 느껴졌다. 여름밤 사람들이 집어들고 나가는 아이스크림바 따위도 술을 먹은 뒤에는 늘 그렇게 달고 차가운 것을 사 먹던 산주의 표정을 떠올리게 했다. 경애는 산주가 그것을 차가워서 먹는 건지 달콤해서 먹는 건지, 굳이 따지자면 어떤 감각이 우선하는 건지 궁금했다. 언젠가 산주는 그건 단지 빨리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라고 한 적이 있었다. 술을 마시고 난 뒤에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서 그러는 거라고.

그날 경애는 가능한 한 집에 들어가지 않고 오랫동안 편의점 앞에 앉아 있고 싶었다. 집에는 산주의 거의 모든 것이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학 때 함께 샀던 이제 켜지지도 않는 노트북이나, 여행 다닐 때 들고 갔던 바퀴 빠진 캐리어, 영화티켓과 편지, 화났어?라고 묻는 말이 선배의 필체로 씌어 있는 햄버거 가게의 냅킨까지. 하지만 자정이 넘자 편의점 사장이 와서 경애에게 이제 문 닫을 시간이라고 알렸다. 편의점이라면 24시간 열려 있는 곳이 아닌가 경애가 묻자 사장은 그러면 안 돼요, 못 견뎌요,라고 했다.

“요즘 한 집 걸러 편의점이잖아요. 알바생도 못 써서 저랑 와이프가 번갈아 보는데 아주 우리가 죽을 맛이에요. 내내 열면 뭐해요. 닫을 땐 닫아야죠. 사람이 그래야 살죠.”

경애가 하는 수 없이 일어나 집으로 가는데 편의점 사장이 “아가씨, 주말에 오세요”라고 했다.

“우리가 주말에는 1박2일을 열어요.”

그렇게 산주 선배가 결혼하고 3년이 지나는 동안 경애는 언제든 아, 이런 것이 끝이구나, 정말 끝이다, 끝, 할 수 있는 순간이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로맨스가 종료됐다는 것은 느꼈지만 경애의 마음이 멈춰지지는 않았다.

경애의 이런 상태를 못 견뎌하는 미유는 경애를 설득하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비유를 들었다. 어린아이가 자기 손에서 놓아버린 풍선을 허공에서 찾는 것, 당뇨환자가 여전히 당분이 든 음식을 탐하는 것, 폐암 말기 환자가 흡연 습관을 고치지 못하는 것, 허기가 지는데 잘 차려놓은 7첩반상 놔두고 굳이 불량식품으로 배를 채우려고 하는 것. 미유는 하나를 잃지 않으려다가 어쩌면 너 자신을 다 잃을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경애는 그 말들을 자신에 대한 미유의 애정으로 받아들였고, 미유가 자기가 아는 모든 인맥을 동원해 소개팅 자리를 만들면 선선히 나가서 앉아 있었다. 미유 말대로 그들은 대부분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이 남자들은 어디서 뭘 하며 괜찮게 있다가 자기 앞에 나타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알지도 못하던 사람들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기 위해서는, 그렇게 안녕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행운이 작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태어나야 했고 자라야 했고 먹어야 했고 사고를 피해야 했고 견뎌야 했다. 무엇보다 불운을. 불운이라고 말하면 그것이 대체 피할 수 있는 건가 싶은데, 적어도 살아 있다면 그것을 피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경애는 알았다. 고등학생이었던 1999년에 가까웠던 친구들을 한번에 잃어봤기 때문이었다.

 

 

4. E

 

‘모두의 영(화)(호회)’이라는 이름의 그 하이텔 영화동호회는 경애가 학창 시절 유일하게 친구들을 사귄 곳이었다. 경애 같은 중고등학생들뿐 아니라 성인들까지 있었고 나중에는 죽이 맞는 사람들끼리 소모임을 조직해 모였다.

 

그리고 그중에는 E가 있었다.

 

E와 경애가 특별히 친해진 건 둘 다 말이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번개를 하면 대학로의 민들레영토 같은, 그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까페형 세미나실에 모여 ‘문화비’로 5000원을 내고 자기가 본 영화에 대해서 누가 듣거나 말거나 마구 떠들었는데, 레오스 까락스나 안드레이 따르꼽스끼, 키아로스타미, 끼에슬롭스끼 같은 영화감독들이 주로 거론되었다. 그럴 때 둘은 그냥 그 얘기를 듣고만 있었는데, 그렇게 침묵하는 것 또한 자유였으므로 누구 하나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번개가 끝나고 밥을 먹으러 가는 다른 일행과 헤어져 전철역으로 걷다가 경애가 먼저 말을 걸었다.

“왜 저녁 먹으러 안 가? 인천에 산다며, 한참이잖아.”

“너 지금 저 사람들이 간다는 패밀리 레스토랑이 얼마짜린지 알아? 멋모르고 들어갔다가 음료만 먹고 나온 적이 있는 데야. 종업원이 무릎을 꿇고 주문을 받는다고. 이름이 패밀리라는 것도 웃겼어. 패밀리인데 무릎은 왜 꿇어.”

둘은 가다가 우동을 사 먹었고 E의 독특한 영화관도 비로소 그날 들을 수 있었다. E는 영화도 마치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처럼 우연이 작동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건 네가 타고 온 전철처럼 필연과 우연이 적절히 섞여 있어야 해. 나는 특정 감독의 작품만 판다든가 배우의 광팬이 되어 영화를 고른다든가 하는 건 좀 촌스럽다고 생각해. 그건 영화의 본질을 모르는 거야. 영화에 대한 마니아적 지식이나 쌓아놓고 떠드는 애들을 보면 너무 한심해. 씨퀀스가 어떻고 카메라 워킹이 어떻고 씬의 전환이나 무슨무슨 주의들을 가지고 해석하는 애들 말이야.”

“하지만 너도 데이비드 린치가 좋다며?”

“린치는 달라. 린치는 감히 장악할 수 없는 세계니까 나는 좋아만 하고 그것에 대해서는 말을 안 해. 때로 린치를 좋아하는 건 아무것도 좋아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야.”

E는 그 외에도 사실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줄거리도 씬도 배우도 아니고 오직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관객과 상영되는 영화 사이에 이는 그 순간의 시간이라는 좀 과격한 논리를 폈고 그걸 ‘불타는 시간’이라고 불렀다. 관객과 영화가 만나 영상의 자극에 관객의 모든 것이 반응하면서 시간이 흐르고 이윽고 소멸해버리는 것, 그동안에 일어나는 감각의 에너지.

“그러니까 우리가 영화를 보고 나서 이렇다 저렇다 하는 건 결국 다 식어버린 잿더미 같은 얘기라는 말이지. 우리가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영화는 결국 다 차갑고 죽어버린 것이 돼. 기억 속에서 우리는 그렇게 죽어버린 영화를 만나는 거야.”

그렇게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의 무상함을 얘기해놓고 E는 경애에게 어떤 영화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경애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사실 자기는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고.

“멋진데?”

E는 냅킨으로 입을 삭 닦으면서 경애를 향해 웃었다.

“뭐가 멋져?”

“아나키스트잖아. 영화 동호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

경애는 그때까지 아나키스트라는 말은 몰랐지만 뭔가 전문가라는 뉘앙스 같아서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E는 꼭 극장에서만 영화를 봤고 그것도 자기가 사는 인천에서만 봤다. 그 당시 애들이 애용하던 비디오로는 영화를 보지 않았다. ‘영화마을’이라는 고급한 마니아들을 위한 비디오대여점도 이용하지 않았고 씨네마떼끄도 가지 않았다. E는 인천의 오래된 극장들, 거의 백년 가까이 됐다는 건물에서 언제 갈았는지 모르는 천시트의 좌석에 몸을 구긴 채, 그때그때 상영하는 대로 우연에 맡긴 채, 앞에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는 것 외에 중요한 것은 없으니까 그 상영되고 있는 순간에 몰입한 채 영화를 봤다.

경애는 어디론가 멀리 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학교가 있던 구로에서 1호선을 타고 그 끝자락에 있는 동인천역까지 가서 E를 만났다. 수업이 끝나고 대충 눈치를 보다가 보충수업을 ‘째면’ 5시쯤이었고 6시 무렵에는 동인천역에 닿을 수 있었다. 영화 한편을 보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면 인근의 남자고등학교에 다녔던, 경애보다 두 학년 높은 고3이었던 E 역시 자율학습 따위를 ‘째고’ 슬리퍼를 신은 채 어슬렁어슬렁 나와서 경애를 맞았다. 수업을 어쩌고 나왔느냐고 경애가 물으면 약간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러는 너는? 하고 되물었다.

“피조, 너는 학생 아니야?”

동호회 사람들은 서로를 닉네임으로만 불렀는데, E는 「이레이저 헤드」라는 영화의 앞글자를 따서 자기 닉네임을 지었고, 『프랑켄슈타인』을 좋아했던 경애는 소설에서 박사가 만든 그 존재를 가리키는 ‘creature’라는 표현에서 따다 피조물이라고 지었다. 나중에 애들은 그걸 줄여서 ‘피조’라고만 불렀다. 둘이 함께 영화를 본 동인천의 그 영화관들은 애관, 오성, 인형, 미림 같은 어딘가 낭만적인 이름들이었다. 멀티플렉스가 아니었던 그 극장들은 대개 좁고 영화표도 수기로 작성하며 좌석번호랄 것도 없이 사람들이 아무 데나 앉아 있곤 했는데, 그래서 영화관이라기보다는 영화감상실 같은 느낌이었다.

 

경애는 사진 한장 가지고 있지 않지만 아직도 E의 얼굴을 생생히 기억했다. 약간 각이 져 있고 이마가 넓고 뒷머리가 짱구였는데 눈은 쳐져 있었고 아직 열아홉살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그동안 뭐가 그렇게 웃을 일이 많았는지 양눈가에 서너줄의 주름이 져 있었다.

 

화재가 일어난 그 골목도 경애는 눈을 감고도 그릴 수 있었다. 그곳은 그런 비극이 일어날 것 같은 공간이 전혀 아니었다. 그냥 사람들이, 때론 학생들이 모여 신분증 검사도 없이 맥주를 마시고 다시 흩어지는 그런 번화가의 골목이었다. 노래방과 치킨집과 대형 문구점과 당구장이 뒤섞인. 영화에서 그런 비극들은 복선과 전조를 지니고 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히치콕의 영화에서 죽는 여자들은 금발이고 누아르에서 살인은 어두운 골목에서 일어나는 것과는 달랐다. 그것에는 아무런 불행의 전조가 없었다고 경애는 기억했다. 현실은 그런 것이었다.

축제가 열렸던 10월의 그날에 학교에서도 영화반을 했던 E는 자기가 촬영한 단편영화를 튼다며 동호회 사람들을 초대했다. E의 학교는 자유라는 이름이 붙은 공원길로 한참 올라가야 했는데, 거기서 경애는 드디어 바다를 볼 수 있었다. 막상 인천에 와도 바다는 보이지 않고 월미도라든가 연안부두라든가 하는 지명들만이 환상처럼 바다를 환기했는데 거기서는 다 보였다. E는 롱테이크로 이어진 영화를 보는 듯한 어떤 내면성을 가지고 있는 애였다.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동호회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견과 비평을 내놓느라 바쁜데, 그런 얘기는 하지 않고 영화 속에 나온 그 꽃 예쁘지 않았어요? 하고 묻는 애였다. 데이지 아니었어요? 제비꽃인가. 그런 E와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경애는 생각했지만 E는 그의 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최종에는 휴식을 느낄 수가 있다고 했다. 그건 아주 시끄럽고 더러우며 매매춘을 하는 여자들과 칼잡이가 있는 어두운 골목을 지나서 공원의 묘지 같은 곳을 찾았을 때와 유사하다고.

그날 상영한 E의 단편영화도 그런 느낌이었다. ‘마음’이라는 제목의 그 영화는 뭔가를 계속 떠들어대는 남자애의 목소리와 함께 시작했다. 영화와 소설, 그리고 자기가 여행한 곳들에 대한 말이었는데 잠시의 침묵도 견디지 못하는 불안한 톤의 수다였다. 그러는 동안 카메라는 아웃포커싱이 된 채로 빛이 들어오는 창가를 비추고 있었고 갈색 조끼와 와이셔츠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서로 장난을 치거나 뛰거나 하며 오후의 나른한 교실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다 카메라는 이야기하는 남자애의 뒷모습에 초점을 맞춰갔는데 그동안에도 남자애의 말은 그치지 않았다. 그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뱉는 것이라고 경애는 생각했다. 관객들은 그걸 들으면서 이 의미없는 말들이 대체 언제 끝날까를 기다리게 되는데, 이윽고 남자애가 교문 밖으로 나가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도 말은 계속되고 카메라는 남자애의 얼굴이 아니라 뒤통수와 한쪽 어깨만 클로즈업해 비췄다. 그러다 남자애는 버스에서 내렸고 그때 카메라가 갑자기 위로 각도를 틀어 납골당의 현판과 그 위의 어스름한 하늘을 확 비추면서 영화는 끝이 났다.

그렇게 카메라 각도가 바뀌는 과정은 갑작스러워서 마치 새가 날아오르는 것과 같다고 경애는 생각했다. 그래서 뒤풀이를 위해 힛트호프에 갔을 때 경애는 E의 소매를 잡아끌면서 새냐고 물었다.

“그 수다맨의 말을 듣고 있던 걔 말이야.”

E는 그렇다 아니다 말하지 않고 연기를 꽤 잘했지?라고 되물었다.

“곧 그 친구가 올 거야. 너에게 소개시켜주고 싶어.”

“실제로도 그렇게 말이 많아? 걔는 왜 그렇게 말이 많아?”

경애는 그렇게 물으면서도 그 남자애가 왜 그렇게 말이 많은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학교에 앉아서 듣는 사람도 없는 말들을 늘어놓다가 ‘야자’를 째고 죽은 누군가를 만나러 버스를 타는 애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남자애의 어깨에 새나 병아리 같은, 작은 동물처럼 카메라를 얹어놓은 E의 연출이 적절하다고 느꼈다. 물론 모두들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 동호회 애들은 좀더 서사적이었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플롯이 있었어야지, 액션도 있고 대화도 있고, 음악도.

“나는 그 영상을 아주 솔직하게 찍었어.”

조용히 듣고 있던 E가 반대는 하지 않고 다만 약간 쑥스러워하며 대답했다.

“거기에는 내 마음이 다 담겨 있어.”

그러면서 E가 사람들 몰래 경애의 손을 살짝 잡았다 놓았기 때문에 경애는 그 말을 할 때의 E의 톤, 목소리, 말투를 다 기억했다. 거기에는 내 마음이 다 담겨 있다는 말. 맥주와 팝콘이 몇번 더 돌고 경애는 전화를 하기 위해 힛트호프에서 나와 역 앞에 있는 공중전화로 갔다. 그리고 돌아왔을 때 이미 2층의 호프집으로 가는 좁은 통로에는 연기가 자욱했다. 신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경애는 엉뚱하게도 그때 다시 공중전화가 있는 전철역까지 뛰었다. 경애는 그렇게 전화기를 찾아 뛰었던 자신을 두고두고 원망했다. 자기가 그렇게 하지 않고 옆가게에 들어가 전화기 좀 빌려주세요,라고 했다면, 혹은 신고해주세요,라고 했다면 친구들은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사실 말이 안 되는 얘기였다. 역까지 뛰던 경애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을 때 이미 소방차와 경찰차가 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한명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그 잠깐 사이에 건물 밖까지 시뻘건 불길이 넘실댔다.

 

그러니 57명의 아이들이 죽은 건 경애와는 무관한 일일 것이었다.

 

그런데도 경애는 지금까지도 꿈을 꾸곤 했다. 공중전화를 향해서 뛰다가 다리가 참을 수 없이 무거워지고 나중에는 결국 넘어지고 마는 꿈이었다. 그래도 더 가보려고 하면 공중전화는 멀어져서 보이지도 않게 되는 것. 나중에 휴대전화를 갖게 되었을 때 경애는 이제 무슨 일이 생기면 공중전화를 찾아 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부터 했다. 그런 세상이 와서 이제 손안에 만능의 기계가 있는데도 어디에 전화해 누구를 구할 필요가 없는 날들을 살고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그렇게 많은 친구들을 잃은 뒤에도 경애가 해야 할 일은 아침 보충수업에 늦지 않게 출석해 7교시 수업을 듣고 곧바로 이어지는 또다른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마친 뒤 귀가하는 것이었다.

사고가 나고 더이상 동호회에 나갈 일도 없어졌지만 경애는 슬픔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변함없이 굴러가는 일상이 이물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E가 죽었는데도 데이비드 린치가 2001년이 되자 「멀홀랜드 드라이브」라는 영화를 만든 것이 이상했다. 자기를 그렇게 열렬히 좋아한 E가 죽었는데 데이비드 린치가 그런 걸 모르고 심지어 그런 채로 신작이나 발표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는 이미 1999년에 린치가 어마어마한 명작을 만들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 영화는 아마도 섹스와 살해와 공포와 미스터리가 뒤섞인 연소자 관람불가 영화일 텐데 그때면 대학생이니까 당당히 극장에서 볼 수 있을 거라고.

 

경애가 인천으로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보러 간 건 2002년이었다. 영화가 개봉한 지 반년은 지나서 월드컵으로 아주 시끄러울 때였다. 동인천에 있는 영화관 중 하나가 멀티플렉스에 밀려 문 닫을 위기에 놓이자 예술영화관으로 변신했고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를 연속해서 상영하고 있었다. 물론 그 예술영화관은 얼마 못 가 정말 문을 닫고 말았지만 경애는 그것이 꼭 E를 위한 일종의 애도처럼 느껴져서 여름의 한낮에 전철을 탔다. 그때까지 한번도 인천에 다시 오지 않았던 경애에게 그 인천행은 아주 어렵게 한 결심이었다. 전철이 종점을 향해 갈수록 전철에 탄 사람들은 점점 사라져 텅 비어가고 역 이름도 경애에게 낯선 것으로 바뀌었다. 백운이라든가 동암이라든가 제물포라든가 하는 이름들은 무언가 아주 오래되어서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것 같은 어떤 풍경의 느낌이었다. 마치 이명처럼 무언가를 지시하고 있지만 그 지시하고 있음이 아무런 구체적인 실감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막상 동인천역에 도착하고 나서는 바로 개찰구로 나가지 못하고 플랫폼에 서 있었다. 경애가 내린 전철에는 꾸벅꾸벅 졸고 있는 청년 하나가 남아 종점으로 갔는데, 그렇게 청년을 싣고 가는 전철을 문득 붙들어 세우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불현듯 경애를 무겁게 누르며 찾아드는 불안은 경애가 늘 견뎌야 하는 고통이었다. 그리고 분노 같은 것도 있었다.

경애는 조용한 자율학습 시간, 페이지를 넘겨가며 부지런히 문제집을 풀다가도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 지르고 싶은 충동이 들곤 했다. 다 어디로 간 거야, 하는 질문을 하고 싶었다. 왜 구해주지 않은 거야, 하는 질문을. 경애는 자기가 망가졌다고 느꼈고 어쩌면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피조물처럼 사람들이 기피하는 무언가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친구들을 잃었으니 어쩌면 난폭한 악마가 될지도 모른다고 여겼고 복수심에 불타는 괴물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자기는 아무것도 되지 못하리라는 사실에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사고가 있던 날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간 경애는 겨울방학 때까지 학교를 나가다 말다 했다. 경애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아는 애들은 잔인하게도 이런 것들을 묻곤 했다. 그러니까 거기 있는 애들이 다 노는 애들이었다며, 불량한 애들이 거기에서 술을 마시다 죽었다며, 하는. 어느날은 교사가 이런 말을 하고 지나가기도 했다. 마치 경애를 겨냥하듯이, 그러니까 학생들이 비행을 저지르면 다 그런 사고에 엮이는 거야. 그러니까 학교 지도사항을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경애는 대답도 없이 다만 그런 말들에 질려 창백하게 앉아 있다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면 밖으로 나가버리곤 했다. 어느새 경애는 수업 중간에 그냥 가방을 들고 교실을 나가도, 수업에 늦어도 교사들이 뭐라고 하지 않는 아이가 되어갔다. 유령 같은 아이였다.

경애는 비행과 불량, 노는 애들이라는 말을 곱씹어보다가 맥주를 마셨다는 이유만으로, 죽은 57명의 아이들이 왜 추모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하는가 생각했다. 그런 이유가 어떤 존재들의 죽음을 완전히 덮어버릴 정도로 대단한가. 그런 이유가 어떻게 죽음을 덮고 그것이 지니는 슬픔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 수 있는가.

경애를 아예 견딜 수 없는 절망으로 몰아넣은 건 화재의 전말이었다. 발화지점은 건물 지하였고 불이 번지기까지 분명 시간이 있었는데도 그 많은 아이들이 빠져나오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놀란 아이들이 출입문으로 나가려고 할 때 술값을 받지 못할까 걱정한 호프집 사장이 문을 잠갔기 때문이었다. 문을 잠갔기 때문이었다,라고 신문에서 읽는 순간, 경애는 아주 차가운 무언가가 와서 자신을 꽉 끌어안은 것 같았다. 몸체가 아주 크고 체온이 아주 낮은 그것이 마치 등에 업히듯 자신에게 와서 붙은 것만 같았다. 그것이 팔을 벌려 경애의 머리와 눈과 입술과 마침내 심장까지 완전히 장악했다. 이를테면 정말 누군가 잘못 만든 어떤 피조물 같은 것이.

출입문을 두드리던 학생들은 대부분 빠져나오지 못했고 돈 내고 나가라던 사장만 자기가 아는 통로로 빠져나와 살았다. 돈 내고 나가라,라는 말에 대해서 생각하면 자신을 끌어안은 거대한 분노에 갇혀버리는 기분이었다.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았다. 경애는 도저히 그런 것은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문을 잠갔다,는 것과 돈 내고 가라,고 살기 위해 뛰쳐나가던 아이들을 막은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열일곱 이후로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을 때 경애는 물론이고 많은 애들이 교복을 입고 있었다. 너네 교복 입고 창피하지도 않냐, 하고 경찰이 말했다. 경애는 자신이 무엇을 그렇게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그렇게 말하는 누구도 용서할 수 없었다. 경애가 잠을 자다가 발딱 일어나 소리를 지르거나 신음소리를 내면서 악몽에 시달리고 있으면 엄마는 경애를 붙들어 안으면서 기도하자, 기도해, 경애야, 자 기도해,라고 했지만 경애는 기도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아이들을 죽게 하는 것이 창조주라면, 그런 비극을 기꺼이 만들어내는 창조주라면 기도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도 엄마는 기도를 했고, 그러면 숟가락 따위를 던지면서 기도하지 마,라고 소리 지르던 열일곱의 경애가 있었다. 새벽기도 안 갈래? 하고 엄마가 문을 두드리면 등을 돌린 채 자는 척하던 경애가 있었다. 밤새도록 끙끙 앓다가 문득 깨어 등이 땀으로 젖어 있으면 오히려 이상한 안도감이 들면서 그때 그 친구들의 죽음을 겪었던 날 자신에게 왔던 거대하고 차가운 그것, 슬픔에 안심하던 경애가 있었다. 그리고 때론 그 모든 것을 느끼는 마음 따위는 차라리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경애가 있었다. 거기에 경애가 있었고 그리고 2002년 어떻게 길을 통과해야 그 호프집이 있던 골목을 보지 않을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경애가 있었다.

 

하지만 경애는 결국 어느 길로 가든 그 골목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윽고 경애는 지하상가로 내려갔다. 구두칼과 좀약 그리고 귀이개를 파는 노점 앞을 지나다 경애는 턱이 조붓하고 눈이 아주 작으며 쪽을 져서 머리를 올린 여자의 인상이 낯익어 다시 돌아왔다. 낡은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은 여자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다가 나른하게 하품을 했는데 아래 치아가 거의 빠져 있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경애는 그 여자가 E가 말한 적이 있던 바로 그 노숙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3년 전에 여자는 역 계단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E는 경애와 함께 그 앞을 지나면서 마치 중요한 비밀을 가르쳐주듯이 “아이가 있어”라고 말했다. 과연 옆을 보니 작은 이불을 덮고 있는 아이의 발이 보였다. 경애는 그 발이 지하도의 찬 기운 속에 불쑥 나와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지나가는 말로 불행하네,라고 했는데, E가 문득 경애의 팔을 잡으면서 그렇게 말하면 안 돼,라고 했다. 살아가는 누구에게도 그렇게 말하면 안 돼,라고.

경애는 물건을 구경하는 척하면서 한동안 노점 앞을 서성였다. 그사이 병아리색 체육복을 입은 남자애가 노점까지 달려와 여자에게 무언가를 받아갔다. 아이는 학교에 다니는 것 같았다. 경애는 그 아이와 여자가 아니라 노점에 놓인 물건들에 관심을 두려고 노력했다. 물건들은 다 필요한 것 같기도 하고 다 필요하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그 물건들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것들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러니까 E처럼 죽은 이들에게는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경애는 그 물건들이 다 필요할 것 같다가도 하나도 갖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빠지면서 결국 그 앞을 한동안 떠나지 못했다. 그러자 여자가 아가씨, 뭐 찾아요? 하고 물었다. 내 물건 내가 다 알아, 찾아줄게요, 내가.

결국 경애가 고른 것은 작은 부채였는데, 거스름돈을 받으면서 경애는 잠깐 여자의 손을 스치듯 잡아보았다.

 

극장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관객은 예닐곱명밖에 없었다. 상영에 앞서서 영화제를 기획한 사람이 올라와 데이비드 린치에 대해 짧게 브리핑했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되었는데, 그 기괴하고 현란한 화면이 연속되는 동안 경애가 앉아 있는 줄의 가장 끝의 남자가 훌쩍거리며 울었다. 딱히 울 만한 장면이 없는데도 그러기에 경애는 대체 남자가 영화를 보고나 있는 건가 싶었는데, 나갈 때 보니 코뼈를 다쳤는지 얼굴에 깁스를 하고 있어서 또 한번 의아했다.

뚱뚱한 체구와 트레이닝복 그리고 그 깁스는 데이비드 린치 영화에 썩 잘 어울리는 차림이기는 했지만 영화 관람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차림이기도 했다. 상영이 끝나고 나가는데 스태프가 이벤트를 한다며 입구에서 응모권을 나눠주고 있었다. 리뷰를 남기면 추첨을 통해 DVD를 주는 것이었다. 귀찮아서 그냥 가려는 경애를 스태프가 간절하게 부르는 바람에 경애는 하는 수 없이 답변을 적어나갔다. 아까 그 남자도 종이를 유리문에 대고 써내려갔는데 깁스에 시야가 가려지는지 글씨가 사선으로 기울었다. 경애는 저렇게 앞도 잘 안 보이는 사람이 어떻게 영화를 봤을까, 보긴 봤을까 생각했다. 혹시 그냥 울고 싶어서 영화관에 앉아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힐끔 보니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는 질문에, 난 널 사랑해,라고 적는 것을 보고 보긴 봤구나 싶었다.

응모권을 작성한 남자는 투명한 플라스틱함에 넣고 극장을 나갔다. 경애는 자기 응모권을 넣다가 거기 남자의 응모권에 이름이 실명이 아니라 E라는 닉네임으로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경애는 그 이름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굴까 싶어서 극장 밖으로 황급히 따라나갔지만 어디로 걸어갔는지 남자를 찾을 수는 없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