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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금희 金錦姬

1979년 부산 출생.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 등이 있다. novelist79@hanmail.net

 

 

장편연재 3

경애(敬愛)의 마음

 

 

5. 없는 마음

 

산주가 경애를 찾아온 건 장마가 끝나가던 여름날이었다. 근처 까페에서 포인트가 적립되었다는 문자메시지가 도착했고 무심히 넘기려던 경애는 그렇게 휴대전화 번호를 눌러 적립할 사람은 산주밖에 없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산주가 결혼하고 나서 둘이서만 만난 건 거의 없는 일이었다. 대부분 사람들 속에 섞여 있었다. 그렇게 있으면 어떤 마음들은 아예 없었던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으니까, 안전했다. 산주와 경애는 그냥 함께 대학을 다닌, 이제 마흔에 가까워지고 있는, 어느 정도의 포기와 축적으로 ‘삶’이라고 할 만한 것의 얼개를 완성해가는 대학 동창일 수 있었다. 이따금 모임에서 만나 무언가를 먹고 마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문자메시지를 받은 경애는 산주에게 어디냐고, 혹시 까페 레이어에 있느냐고 물었다. 오라는 건 아니었어. 그냥 포인트를 쌓아준 거야,라는 답이 돌아왔다. 경애는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산주의 마음이 편했으면 하는 생각에서 그렇겠지,라고 답했다. 하지만 전화번호로 포인트를 쌓으면 경애에게 신호가 간다는 사실을 산주가 모르지는 않았을 거였다. 단지 산주에게는 변명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결혼한 자신이 경애를 만나고 싶어한다는 부담감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원래 상수와 점심시간에 새로 개업한 돈가스집에 가기로 했던 경애는 지갑을 챙겨 나가며 급한 약속이 생겼다고 양해를 구했다.

“누가 왔어요? 갑자기?”

“네, 좀 그럴 일이 있어요.”

상수는 얼마 전에 홍보 전단지에서 오려낸 반우동 무료 쿠폰을 내밀며 경애보고 쓰라고 했다. 자기는 그냥 회사 식당에서 먹으면 되니까. 경애는 상수가 지갑에 일주일 동안 보관해온 쿠폰 두장을 내려다보았다. 절취선을 따라 반듯하게 잘린 그 쿠폰은 얼마나 잘 넣어뒀는지 구겨진 데 하나 없었다. 경애는 돌려주며 괜찮다고 했다.

“박경애씨, 반우동이면 3000원입니다. 3000원.”

“괜찮아요. 팀장님 쓰세요.”

“아니, 친구랑 가면 되잖아요.”

“괜찮아요, 상관 안 해도 돼요.”

“아니 박경애씨, 이거 기한 있어요. 내일까지 써야 한다고요.”

“괜찮아요, 괜찮다고요.”

경애는 괜찮다고는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자기가 여러번 하고 있는 ‘괜찮다는 말’에 대해 곱씹어보고 있었다. 자기가 지금 자신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떠나가 결혼까지 한 남자를 만나기 위해, 이렇게 다급하게 긴장하면서 나가려고 하는 건 정말 괜찮은 걸까. 그런 생각을 할수록 경애는 왠지 그 쿠폰을 더더욱 받을 수 없어져서 나중에는 상수의 손을 단호히 밀어서 거부했다. 머쓱해진 상수는 싫으면 말아요, 하면서 손을 거두었다. 그렇게 까페로 가는 길은 흐리고 바람이 불었다. 경애는 그냥 차 한잔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기 위해 애썼다. 친구들에게 이미 들은 말들, 산주 선배가 사는 데 문제가 좀 있나봐, 하는 말이나, 기획사를 아예 접었다던데, 서촌에 있던 그 공연장은 여태 운영하나, 같은 말이나, 처가 돈을 써서 사이도 좋지 않고, 하는 수군거림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산주 선배도 결혼할 때 좀 영리한 선택을 한 것이 아니겠어, 하는. 경애는 애들이 산주의 결혼을 그렇게 말하는 것에 문득 마음이 가다가도 그것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으려고 애썼다. 산주의 삶에 대한 그런 요약은 최종적으로는 경애에게도 좋을 것이 없었다. 6년간의 연애가 끝이 나야 했다면 그건 그런 세속의 셈법이 아니라 사랑 본질의 것, 슬프게도 그것이 가지고 있는 불연속의 속성이기를 원했다. 적어도 경애에게 이별을 통보할 때 산주는 경애의 선배이기도 한 그 여자를 선택하면서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어,라고 정확히 이야기했으니까. 그때 둘은 막 끓기 시작한 전골을 앞에 두고 있었는데 이윽고 경애가 왜, 왜 그런 일이 벌어졌지,라고 묻자 그렇게 되었어, 좋아하게 되었어,라고 다시 말했다. 내가 너를 우연히 좋아한 것처럼 그런 일은 그렇게 벌어졌어,라고.

경애는 여기서 연애는 끝이 나지만 산주를 잃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결별이 아니라 마음의 이동을 선택했다. 마음이 다른 마음으로 옮겨가는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어서 경애는 인턴으로 일하고 있던 무역회사를 그만두고 한 계절 동안 집에 틀어박혀 있어야 했다. 아주 긴 여름이었다. 8평 임대아파트에 누워 있으면 매미들이 마치 파도처럼 연이어서 쌔 하고 울다가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 겨우 고립감을 덜 수 있는. 설거지도 빨래도 요리도 하지 않는 일상에서는 오로지 오늘만 있는 것 같았다. 산주가 있었던 어제도 없고 산주가 없는 내일도 없는,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사이에서 되도록 현실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경애의 마음만 있었다.

그런 여름날 속에서 경애를 집 밖으로 나가게 하는 것은 맥주와 옥수수뿐이었다. 어느날 시장에 갔다가 옥수수가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경애는 이삼일에 한번씩 나가서 옥수수를 사왔다. 옥수수의 힘센 잎들, 동물의 것처럼 부드러운 수염, 그리고 아주 꽉 차오른 알갱이들을 보고 있으면 창으로 문득 들어오는 밤바람을 느끼듯 어떤 환기가 들면서 산다,라는 말이 생각나곤 했다. 경애가 이 방에서 하릴없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동안에도 여전히 저 밖에는 ‘산다’라는 것이 있어서 수많은 것들이 생장하며 싸우며 견디고 있다는 것. 다행히 그런 것들이 여전히 있어서, 사람들의 시선이 싫어서 아무도 만나지 못하는 여름의 낮을 보내다 경애가 슬리퍼를 끌고 시장으로 나가면 그 살고 있는 것들을 두 손 무겁게 사들고 어쨌든 돌아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해서 경애도 아무튼 살고 있다는 것. 그런 마음이 들면 경애는 불현듯 약속을 잡아보다가도 낮이 되면 그래도 아직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생각하며 외출을 취소하곤 했다.

옥수수는 상온에 놔두면 쉽게 상했고 그러면 그걸 치워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경애는 뭔가가 자기 몸을 아주 무겁게 잡아당기는 듯한 무기력에 빠졌다. 연애를 상담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문득 편지를 쓰는 게 그나마 하는 일이었다. 경애는 주로 자기가 아는 산주에 대해 최대한 자세히 설명했다. 지난 6년 동안 봐온 산주에 대해 복기하면서 그렇게 적어 보내면 그 계정 속의 언니는 이런 짤막한 답장을 보내오곤 했다.

 

프랑켄슈타인프리징 님께, 우리는 끝장난 연애를 미화하기 위해서 기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어요. 하루에 한번은 거울을 꼭 보도록 하세요.

 

그런 약간은 무성의한 답변은 사실 누구에게나 들을 수 있는 정도의 것이었지만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 여름에 그 연애상담 페이지는 경애가 소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상이었다. 그런 답장을 받고 나서도 여전히 거울을 보기는커녕 세수도 제대로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고 있으면 다시 여름밤이 찾아왔고, 경애는 방 불도 다 꺼놓고 쇳쇳 하면서 옥수수를 찌고 있는 가스레인지의 파아란 불꽃들만 어둠 속에서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앉아 있었다. 그리고 다 익으면 여름인데도 단단히 얼어붙은 듯한 마음을 옥수수의 따끈한 온기에 녹여보면서 또다시 편지를 썼고 빠르면 새벽 무렵이 되어서 잠이나 자,라는 제목의 답신을 받기도 했다.

님은 비로소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싸움을 시작한 것인데요. 그건 님이 님 스스로를 옛사랑의 유령으로부터 구해내는 일입니다. 패트릭 스웨이지와 데미 무어가 나온 「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 기억하나요? 언니는 그게 최상의 로맨스 영화라고 생각하는데 그 두 사람이 죽음을 극복하고 재회해서는 아닙니다. 언니는 거기 나오는 유령은 사실 사라진 연인이라기보다는 그냥 실연 이후의 자기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어느 밤 당한 노상강도처럼 연애는 참 황망하게 끝이 나버리고는 하잖아. 그러고 난 뒤로도 유령처럼 우리를 잡고 놓아주지 않고 그런 마음은 ‘마음’이니까 전지전능하게도 온갖 방법을 이용해서 곁을 떠돌고 늘 우리의 대기에 숨어 있지. 프랑켄슈타인프리징(그런데 대체 왜 이렇게 아이디가 긴 거야?) 님이 말한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간 옛 애인이 여전히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잖아. 그런데 봐라, 그거 그 사람 아니고 그냥 님의 마음일 뿐이야. 그런 건 사랑이 남아 있는 게 아니야. 마음만으로는 뭣도 안 돼. 영화 클라이맥스에서 패트릭 스웨이지가 우피 골드버그 몸으로 빙의될 때, 그렇게 해서 둘이 포옹할 때 우피 골드버그가 아니라 패트릭 스웨이지가 등장해서 그 장면을 연기하잖아. 그것만큼 정작 사랑에는 영혼이 전부가 아니라는 현실을 알려주는 씬이 있을까. 자기들이 내세운 영화 주제를 스스로 뒤집는 셈이지. 아무리 십분 양보해도 몸은 패트릭 스웨이지여야 한다는 거잖아. 그리고 영화에서 여자는 늘 사랑한다고 말했다가 동감,이라는 대답을 남자에게 듣고 상처받잖아? 현실에서도 여름날의 삼선쓰레빠만큼이나 흔해빠진 유형의 남자들인데, 그런 식으로 자기 아우라를 유지하려는 남자들은 다 겁쟁이야. 섹스도 키스도 애무도 다 하면서 그 말 하나를 안 하겠다는 종자들은 그냥…… 아무튼, 님 아직도 그 남자나 그 남자의 새로운 연인의 트위터나 페이스북, 아니면 미투데이를 확인하면서 그 실존을 느껴보려 할 것 아냐. 네 곁에 머무는 그 사랑의 기억, 사랑의 현존, 사랑의 공기를 확인하기 위해서. 그런데 그럴 때 너가 찾고 싶어하는 건 이미 세상에 없는 것이야. 되돌릴 수 없어. 너가 오로지 차지할 수 있는 건 그런 사랑에 참여했던 너 자신뿐이야. 생각해봐, 영화의 마지막에서 데미 무어는 패트릭 스웨이지가 막판에 뭐 선심 쓰듯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냥 ‘동감이야’라는 말로만 대꾸해주었어. 늘 사랑한다는 대답을 기대했다가 패트릭 스웨이지가 동감이라고 말하는 것에 상처받았던 여자는 사라지고 이제 그 사랑이라는 것이 타인에게 맞부딪쳐 화답으로 돌아오리라는 것에 마음을 걸지 않고 그냥 환영처럼 보이는 사랑의 기억에만 동감이라고 하는 것이지. 그러니까 님도 이제…… 이런 길고 지루한 답장을 읽으면서 경애는 아마도 언니는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상당히 낭만적이고 어딘가 과시적인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저 묻고 답하는 과정이 좋았기 때문에 딱히 도움이 되지도 않는 연애상담 페이지를 매일 이용했다. 그 페이지의 첫 화면에는 모토라고 할 만한 사랑 시가 적혀 있어서 여기를 운영하는 언니의 어떤 교양의 정도와 문화코드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했는데, 그 시는 이런 내용이었다.

 

사랑은 잔혹한 마피아,

너는 결국 내게서 모든 걸

다 빼앗아가겠지.

 

하지만 그런 가상의 언니의 말에 맞는 부분도 있었다. 경애가 산주와 그 여자의 SNS를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자의 SNS 계정에는 그가 갖고 싶어하는 모든 것들정갈한 쿄오또의 식당들, 고양이, 사회적 공헌을 게을리하지 않는 외국계 기업들에서 생산하는 목욕용품과 화장품, 외국의 식자재들과 유기농과 요가, 유년시절을 환기하게 하는 놀이공원이나 비스킷, 인디밴드의 영상, 전공인 프랑스의 소설 같은 것들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그리고 그 모든 예쁘고 환한 것들 사이에는 산주의 사진이 올라오기도 하고. 언니가 말했듯이 산주라는 대상, 산주의 다정함과 산주의 체취, 산주의 감촉과 산주의 목소리, 산주라는 실감과 산주의 살아 있음은 이제 환영과 같은 자신의 기억이나 타인의 SNS에서만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없었다, 이제 경애의 현실에서는. 죽어버린 것이었다.

경애는 산주와 그 여자의 환하고 생기에 찬 일상들을 옥수수가 시들어가는 식탁에서 지켜보았다. 그들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특별히 잘못되거나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경애라는 누군가의 불행과 둘의 사랑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였다. 그저 그 자체로 시작하는 연인의 환희를 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럴 때면 경애는 언니의 말처럼 유령 같은 무언가와 싸우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아무도 없는 휑한 부엌과 엉망인 방 안을 둘러보면 거기 어딘가에 또다른 경애가 앉아 있다가 동감,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럴 때쯤 안산에서 경애의 엄마가 연락도 없이 올라왔다.

 

경애의 엄마는 들어와서 경애의 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니까 세탁기를 돌리지 않아 아무 바구니에나 수북이 담겨 있는 경애의 지난 계절의 빨래들을, 여름이 왔는데도 그렇게 방치되어 있는 점퍼와 티셔츠, 양말, 장갑, 담요와 속옷들을. 그리고 누군가가 아주 구겨버린 것처럼 방 안에 웅크리고 있는 경애를. 경애의 엄마는 세탁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오전에 시작해 저녁까지 이어진 그 빨래는 세탁기를 일곱번 돌려야 할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경애의 엄마는 그 일을 다음으로 미루지 않고 그날 다 해냈는데, 그렇게 해야 경애가 일어설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경애는 여러번 넘어져왔다고 경애의 엄마는 생각하고 있었다. 남편이 평생을 살아갈 반려자로 적당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 경애가 겨우 돌이 되었을 때였다. 경애의 엄마는 폭력과 폭언을 피해 이혼을 결심했고 자기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다 ‘기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런 기술마저 없었으면 경애를 그 불행에서 건져내주지 못했을 거라고, 결국 미용가위와 롯드, 고무줄과 염색약, 드라이어와 고데기, 거울과 가운 같은 것들이 어려서 미용실에 앉혀두어도 한번 울지도 않던 그 아기를 구해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믿을 건 자신의 그 두 손밖에 없었다. 가위질하고 퍼머하는 이 기술, 이 무형의 것밖에. 하지만 자기가 그 기술이라는 것에 매달려 사는 동안 경애도 사실 믿을 거라고는 엄마의 두 손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그녀는 경애가 친구들을 잃고 우울증을 겪었을 때에야 깨달았다. 자기가 믿을 게 자신의 두 손밖에 없었던 것처럼 그 아기 역시 믿을 건 엄마의 두 손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하지만 경애의 엄마는 언제나 경애가 일어서는 아이라고 믿었고 꽃처럼 예쁘게 보내야 할 경애의 시간들이 오래되어 퀴퀴한 빨래처럼 방치된 채 흐르고 있어도 슬프거나 경애에게 뭐라고 한소리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힘든 순간이 왔을 때 말 그대로 힘들어지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픈데 아픈 걸 모르는 것도 병이 아닌가. 그냥 자기 딸은 아플 때 아파야 하는 사람이라서 그렇겠거니 여기면 속상해하거나 마음 부대껴야 할 필요가 없었다. 경애가 그 화재사건을 겪고 경찰서에 왔다 갔다 하고 학교에서 선생들에게 한마디씩 듣고 그게 동네 장사를 했던 경애 엄마의 귀에 들려올 때도, 퍼머를 하러 왔던 아줌마들이 그러게 돈만 벌지 말고 애를 좀 살펴야지, 한다든가, 벌써부터 술집을 들락거려서 어떡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경애의 엄마는 그런 소리 하려면 다시는 머리하러 오지 말라고 가위를 탁 내려놓았다. 상대가 아무리 사과해도 다시 가위를 잡아주지 않았다. 그러면 머리를 자르다 만 동네 여자들은 그렇게 들쑥날쑥한 머리가 창피해서 내 머리 어떡하느냐며 화내고 욕하다가 나가버리곤 했는데, 그런 여자들이 얼마나 무섭고 안 좋은 소문을 내든 경애 엄마는 자기 성질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그걸 부끄러워하면 내 자식은 죽는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자기라도 그러지 않으면 경애는 일어설 수 있었다. 그래서 경애 엄마는 미용실 벽에다 「누가복음」의 문장을 붙여놓았다.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그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경애 엄마가 집을 치우는 동안 경애는 그냥 침대에 누워서 엄마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경애 엄마는 깨끗한 수건 한장 없는 서랍장을 뒤져보다가 밖으로 나가서 수건과 속옷을 사왔고 경애를 일으켜 세워 욕실로 보냈다. 그리고 콩나물국을 끓였는데, 경애가 언제나 좋아하는 건 맑게 끓여서 식힌 콩나물국이었다. 그러려면 멸치국물을 내야 했다. 그 비릿하고 짠내가 나는 것이 끓으면 이상하게도 바다 생각이 나고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경애는 말했다. 씽크대 앞에 서서 경애의 엄마는 그들이 함께했던 저녁들을 떠올렸다. 미용실 곁방에서 늘 조용히 엄마가 일을 끝내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일곱시가 되면 문을 열고 가게를 살피던 아이. 경애가 엄마, 언제 밥 먹어? 하고 물으면 비로소 쉴 수 있는 시간의 시작이었다.

경애가 들어간 욕실에서는 물줄기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경애가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는 건 경애 엄마도 알고 있었다. 엄마 나 회사 그만뒀어,라고 전화했을 때 이미 경애에게 또 넘어질 만한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신기하게도 그런 것들은 금방 느낄 수 있었다.

“엄마.”

경애가 욕실에서 불렀다. 경애 엄마는 욕실 문 앞에 앉아서 왜, 하고 물었다.

“아무것도 하지 마. 그냥 앉아 있다 가. 엄마 힘든데 아무것도 하지 마.”

“집을 이 꼴로 해놓고 그런 말이 나오니.”

경애 엄마는 뭔가 마음이 무너지는 기분을 이기기 위해 일부러 핀잔을 주며 말했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하지 마. 우리 아무것도 하지 말자.”

경애 엄마는 경애가 씻는 것, 머리를 감고 이를 닦고 세수를 하는, 누구나 하루에 한번쯤은 귀찮아도 후다닥 해내는 그런 일마저도 너무 무거운,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남들에게는 자신을 방치하는 것이고 자신에게는 최선인 그런.

“그래, 아무것도 하지 말자. 엄마도 안 할게. 엄마도 그냥 누워 있을란다.”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올려놓았던 냄비의 불을 끄자 좁은 집은 조용해졌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머리까지 다 감아서 말개진 얼굴의 경애가 이윽고 욕실에서 나왔다.

 

까페에 나가보니 산주는 여름 날씨에는 어울리지 않는 꽤 두께감 있는 점퍼를 입은 채 까페에 앉아 있었다. 둘은 마주 앉아서 커피맛이 좀 어때, 빵을 더 시킬까, 하고 대화를 이어갔는데, 그 사이사이의 침묵을 빗소리가 간신히 메워주었다.

“요즘은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르겠어. 마치 우주를 유영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어떤 알 수 없는 중력이 있어서 다리가 둥둥 떠다니는, 현실감 없는 느낌.”

한참 앉아 있던 산주가 마침내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왜 그런 점퍼를 입었어? 그런 날씨는 아니잖아. 덥지 않아?”

“왜냐고?”

산주는 자기를 한번 내려다보더니 매장을 한번 둘러보았다.

“이상하게 요즘은 정신이 좀 없어서, 그런데 덥지 않고 서늘한데? 너는 춥지 않아?”

경애는 가만히 산주를 지켜보았다. 산주가 마치 잠에서 깬 사람처럼 좀 어리둥절하고 뭔가를 간신히 생각하는 듯한 얼굴로 다른 테이블의 사람들을 쳐다보는 것을. 그렇게 남들을 한번 보는 것만으로도 자기가 얼마나 필요 이상으로 두터운 점퍼를 입고 있는지, 마치 무언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처럼 지나치게 웅크리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산주는 자기가 왜 매장을 그렇게 둘러보았는지마저 모르는 사람처럼 별말 없이 테이블 위로 시선을 내렸다.

경애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가서 베이글을 주문했다. 최대한 오래 시간을 끌면서 크림치즈의 종류를 골랐다. 울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우는 자신은 상관없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서 산주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곱씹을 것이 두려웠다. 왜 산주가 힘들 때 나를 찾아와서 그 얘기를 하고 싶어할까,라고도 생각했다. 기쁜가, 득의만만한가,라고도 날카롭게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맹세코 그렇지 않았다.

 

경애는 여태껏 산주의 그렇듯 무기력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건 무언가가 산주를 아주 깊숙이 찌르고 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산주는 언제나, 가장 가난할 때조차 당당했던 사람이었다.

 

경애가 처음 산주를 만난 건 대학교 2학년 때였다. 부교재를 단체로 구입할 일이 있어서 과 차원에서 돈을 걷었다가 돌려주었는데 착오가 생겨서 산주의 계좌에 경애의 것까지 입금이 됐다. 조교는 자기가 실수해놓고는 산주의 휴대전화 번호만 알려주고 돌려받는 일은 경애에게 맡겼다. 전화를 걸어보니 고객의 사정으로 정지되었다는 안내가 나왔다. 정원만 300명이 넘는 경영학부 2학년 중에서 경애는 누가 산주인지를 알 수 없어 강의가 끝나고 과대표에게 물어야 했는데, 걔가 산주형, 하고 부르자 급하게 가방을 메고 나가다 말고 한 남자가 뒤돌아보며 왜, 하고 대답했다. 그런 산주의 조금은 피곤하고 마른 얼굴, 그러면서도 구김 하나 없이 단정하게 다려 입은 셔츠에서 느껴진 깨끗한 인상이 경애는 아직도 눈에 선했다.

경애가 다가가 상황을 설명하자 산주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했으니 이제 됐겠지, 하며 경애가 마음을 놓는 순간 그런데 지금은 돌려줄 수가 없다고 산주가 말했다.

“못 돌려준다고요?”

생각지도 못한 말이라서 경애는 되물었다.

“지금 제가 통장에 돈이 없어서요, 아마 대출 이자로 나갔을 거예요.”

경애는 아무리 그래도 76000원을 돌려주지 못하다니, 그 정도 여윳돈도 없다니,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그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남들이라면 좀 부끄러워할 말을 저렇게 하는 건 그게 진실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거짓말을 너무 뻔뻔하게 잘하는 사람이라서 그런가, 혹시 자기를 속이려고 그러는 건 아닌가 싶어서 경애는 알겠다고, 다음에 달라고도 하지 못했다. 믿을 수가 없었으니까.

“지금 제가 더 설명을 해야 하는데 알바를 가야 하거든요. 정문까지 같이 걸으면서 대화하면 안 되겠어요?”

산주와 경애는 경영학과 건물에서 나와 산책자의 길이라고 부르는 작은 숲을 통과해 정문까지 걸었고 그사이 산주는 자기도 뭔가 착오로 두번 입금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빼놓아야지 했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고, 그건 정말 자기 잘못이라고 사과했다. 그렇지 않아도 자기가 친구가 나가는 소켓 공장에 오늘부터 모레 밤까지 야간작업을 하기로 했으니까 그러면 목요일쯤에는 갚을 수 있다고 했다.

“목요일쯤.”

경애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리겠냐는 뜻이 아니라 3일을 일해야 76000원을 갚을 수 있다면 하루치 일당이 얼마나 될까 셈해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는 어려운가요. 어쩌지, 그러면 밤에 일당 받으면 일부라도 입금할게요.”

경애는 당장 그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무 때나 주세요,라고 하기에는 뭔가 망설여졌기 때문에 알았다고만 했다.

그리고 그날 밤, 경애가 평소처럼 방 안의 불을 끄고 엄마가 깨면 안 되니까 헤드폰을 쓴 채 비디오를 보고 있을 때 “박경애 학우님, 넣었습니다” 하는 문자메시지가 왔다. 경애는 그 문자메시지를 보면서 고맙습니다, 수고했습니다, 밤공기가 찬가요, 조심해서 귀가하세요, 같은 다양한 말들을 떠올리다가 그냥 아무 답신도 보내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통장을 확인해보니 거기에는 25000원이 송금되어 있었다. 새벽 네시쯤이었다.

그렇게 3일이 지나는 동안 경애는 그 돈이 입금되는 새벽 시간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기가 그렇게 잠에 드는 건 어쩐지 옳지 못한 것 같아서 우마 서먼이 노란 트레이닝복을 입고 복수를 해내는 「킬 빌」을 여러번 보면서 밤을 새웠다. 우마 서먼이 장칼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사람들이 죽어나갔는데 그렇게 엄정하게 치르는 복수와, 부천 어디에 있다는 작은 공장에서 산주와 대여섯명의 야간조가 모여 소켓을 끼워 작은 알전구를 밝히는 일은 뭔가 비슷한 맥락의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아무리 타란티노 영화라도 반복해서 돌려보는 복수의 서사는 지루하고 빤한 느낌이었으므로 경애는 꾸벅꾸벅 졸았다. 그러다 비디오테이프가 탁, 하고 돌아가 멈추면 잠에서 확 깨어났다. 그러면 이상하게 허무해지고 세상 모든 일에 신물이 나곤 했다. 하지만 “오늘도 입금했어요!” 하는 산주의 문자메시지는 그런 새벽의 매캐한 환멸을 몰아내고 무언가 평소와는 다른 감정을 불러내곤 했다. 이를테면 아침이 온다는 것을 느꼈을 때 어쩔 수 없이 품게 되는 기대 같은 것, 어제보다는 낫지 않겠어, 하고 식빵처럼 부푸는 마음 같은 것. 하지만 경애는 그러다가도 왠지 자기가 그런 것에 속아 넘어갈까봐, 그래서 또다시 어떤 것을 바라고 실망하게 될까봐 마음을 붙들곤 했다. 산주가 76000원을 다 입금했을 때 경애는 고민을 하다가 점심을 같이 먹지 않겠느냐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래요, 하는 답을 받자 경애는 마음 어딘가가 탁, 하고 켜지는 것 같았다. 약속을 앞두고 경애는 전철역을 지나다 처음으로 마스카라라는 것을 샀지만 정작 산주를 만나러 갈 때는 망설이다가 그냥 서랍에 넣어두었다.

 

그런 산주가 지금은 내 옷이 이상하니, 하고 묻고 있었다. 아침에 좀 쌀쌀해서 챙겨 입고 나왔는데 많이 이상해?

 

경애는 산주에게 요즘은 뭘 하며 지내느냐고 물었다. 산주는 기타가 사고 싶어서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전자기타? 통기타?”

“당연히 전자기타지.”

경애는 산주가 고등학생 때 지미 헨드릭스에게 반해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어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기타를 치기 위해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결국 사지 못하고 생활비로 써야 했다는 것을. 대학의 시간강사인 산주의 아내는 요즘 아예 학교가 있는 지방에서 머물고 있다고 했다. 대화를 잘 하지 않고 자주 싸움이 일어나며 관계가 소원해져 있다고. 경애는 나이프로 베이글에 치즈를 바르다가 내가 왜 그런 얘기를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어,라고 했다.

“두 사람이 하는 부부 싸움에 대해 왜 내가 알아야 해?”

“미안해, 그냥 생각 없이 한 말이었어.”

비는 까페를 나갈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산주가 우산이 없다며 지하철역까지 데려다달라고 부탁했다. 경애는 우산을 같이 쓰고 걸으며 산주와 어깨가 스치고 손등이 맞닿는 순간순간을 의식했다. 헤어진 지 아주 오래였지만 그렇게 가까이 있는 것이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졌다. 경애는 그것이 견딜 수 없어서 중간에 편의점으로 들어가 우산을 사들고 나왔다.

“이편이 나을 것 같아.”

산주는 우산을 받고 펼치더니 튼튼하네,라고 했다.

그뒤로 경애는 산주와 자주 만났다. 살아 있지만 더이상 가까이 있을 수 없기에 죽은 사람처럼 여겨졌던 누군가가 다시 일상으로 들어온다는 건 마치 기적처럼 느껴졌다. 그러다가도 다시 산주에 대한 마음을 키워가는 자신이 두려워지면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에도 괴물 같은 데가 있어서 시간이 흐를수록 어떤 애정의 허기를 채우려는 욕망을 버리지는 못했다. 경애는 산주의 일상에 점점 더 깊이 들어가면서 오늘은 산주가 점심에 무엇을 먹었고 누구를 만났으며 어떤 물건을 사고 몇시에 잠이 들었는지에 관해 아는 것이 당연한 상태를 맞았다. 마치 둘이 여전히 연인이었을 때처럼 전화를 받아서 여보세요,라든가, 선배, 혹은 경애야, 하고 부르지도 않고 응, 가는 길이야, 왜, 혹은 그래 밥은 먹었고, 하면서 곧장 일상적인 대화로 들어가는 것이, 헤어질 때도 내일도 또 볼 것이기 때문에 그다지 큰 아쉬움이나 대단한 안녕 없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그 상황을 알게 된 미유는 당장 산주에게 전화하겠다며 흥분했다. 경애가 산주는 상처를 받은 사람이라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을 수 있다고, 들어줄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을 찾아오는 것뿐이라고 설명했지만 미유는 그게 얼마나 이기적인 일이니, 인생 망했는데 지금 바람이라도 나자는 거니,라고 말해서 경애를 슬프게 만들었다. 경애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간 미유는 다시 전화해 난 너가 안 힘들었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전화기 너머로 미유의 딸이 옹알이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이 내는 소리는 너무 아름다워서 때로는 어떤 풍경을 아주 비참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경애는 생각했다.

“그런 기약 없는 일에 아까운 인생 소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런 건 사랑도 아니잖아.”

“아니지.”

“아닌데 왜 그래? 왜 그래야 해? 너가?”

경애는 더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그냥 미유에게 너무 걱정하지는 마,라고 말했다. 지금 산주와 가까이 있고 싶은 경애의 마음은 어떤 로맨스적 욕망도, 관계 회복에 대한 열망도 아닌 그냥 일종의 패배감일 뿐이라는 것. 그런 것 뒤의 미약한 연대감만이 지금 두 사람을 추동하고 있을 뿐이라고 고백하고 싶었지만 그 사실을 저렇게 예쁜 아기와 밤을 맞을 미유에게 이해시킬 방법은 없어 보였다. 그것은 아주 무참히 패배해서 결국에는 아무것도 지키지 못할 것이 뻔한 두 사람이 서로의 형편없는 얼굴을 간신히 쓸어주는 일일 뿐이라는 것을.

 

*

 

상수가 부장에게 불려가 자네 아마 발령이 날 거야,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자기의 발뒤꿈치를 무언가가 와락 물어버린 것 같았다. 이를테면 불운 따위가. 상수는 자기가 덫에 걸려버렸다고 생각했다. 사람이 자기 인생의 방향을 되돌려야 하는 순간들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으면 삶이 고약하게 꼬이는데 지금이 그랬다.

부장이 말한 상수의 발령지는 한국의 어느 지방도 아니고 협력사가 있는 일본도 아닌 베트남이었다. 한국의 방직공장들은 중국이나 동남아로 넘어간 지가 오래니까 사실 이성적으로 따져보자면 놀랄 것도 없었다. 공장을 상대로 영업해야 하는 미싱회사에서는 그런 이동을 따라다니는 것이 당연했으니까. 상수도 한때 베트남을 공략해야 한다고 회의시간에 열변을 토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자기가 가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런 곳에 가는 사람은 이제 막 들어온 사원들 중 아직도 문명 개척에 가까운 저돌적 영업 방식에 향수를 가지고 있는 자, 동남아와 한국의 상대적 물가 차이를 이용한 생활수준의 업그레이드에 관심 있는 자, 실연·이혼·불화 등으로 일종의 도피처가 필요한 자로 요약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상수가 아는 많은 신입사원들이 중국과 베트남으로 차출되었는데, 문제는 그들의 근무조건이 하나 좋을 게 없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일관되게 곤란했고 견딜 수 없이 우울해했다.

상수가 알기로 최근에 베트남에 파견된 영업사원 하나는 신경쇠약으로 귀국해 끝내는 퇴사했다. 그 영업사원의 증세는 혼잣말을 중얼중얼거리는 데서 출발했다. 습하고 덥고, 세찬 비바람과 작열하는 태양이 수시로 교차하는 종잡을 수 없는 기후, 그리고 타국인들 사이에서 완전히 고립되다시피 한 그가 주로 한 말은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구나”였다고 들었다.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다라니 얼마나 절망적인 말인가. 그건 결국 삶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말이지 않은가. 기껏 뭔가를 했는데 플러스마이너스 제로라면 얼마나 맥이 빠지는가. 상수는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묵 같은 상태의 삶이 아닐까 생각했다. 겉으로는 중량감 있는 색채에, 기포 하나 없이 단단해 보이지만 숟가락질 한번으로 완전히 파괴되어버리는 묵 같은 인생.

“그럼 혼자 갑니까? 팀이 가죠?”

베트남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정신이 곤죽이 된 상수가 겨우 한 말은 그것이었다.

“거야 모르지, 일단 회사는 팀으로 보내도 되지만 여자가 거기까지 가는 게…… 박경애씨가 안 원하면 안 가는 거지.”

부장의 그 말은 상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겨우 두 계절 운영해보고는 자기네 팀을 없애겠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상수가 발끈해서 그러면 이건 징계나 좌천 아니냐고 하자 부장은 무슨 얘긴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말게, 하고 발뺌했다.

“차장을 시켜준다던데, 사장이.”

“차장이요?”

상수가 주춤하는 사이 전화가 걸려와 부장은 이제 그만 나가보라며 손짓했다. 그러면서 아무튼 경애씨와도 대화해보고 같이 갈 기술자도 찾아보면서 이렇게 저렇게 플랜을 짜보라고, 하는 애매한 맺음말을 했다. 상수는 그 두툼하고 뭉툭한 손가락들이 내는 작은 바람에도 허리가 폭 꺾이는 듯한 위기감을 느끼며 사무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비보를 공유할 유일한 사람인 경애를 찾았지만 자리에 없었다. 상수는 참을성이 별로 없고 이런 상황에서는 더더욱 인내를 발휘하기가 힘드니까 휴대전화로 전화를 했지만 통화 중이었다. 탕비실에 가봐도 없고 복사실에도 끽연을 즐기곤 하는 주차장에도 없어서 상수는 혼미한 정신이라도 붙들어보자는 마음으로 보도블록에 주저앉았다. 멀고 먼 베트남, 우기와 밀림과 메콩강과 전쟁과 미군과 헬리콥터 같은 이미지로밖에 상수에게 남아 있지 않은 나라로 가야 한다는 사실에 기분이 완전히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사실 보는 사람도 없는데도다 젖은 빨래처럼 실의에 빠진 몸을 움직여 근처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플라스틱 음료박스에 걸터앉았다. 병을 꽂는 부분들이 비어 있어서 엉덩이가 부분부분 깨알같이 불편했다.

상수는 이제 자기 앞에 놓인 미래가 죽 이러리라고 생각했다. 이른바 안남미, 그 푸슬푸슬한 쌀알부터가 상수를 슬프게 할 것이다. 한국기업을 상대로 영업하니까 베트남어를 못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어딜 가든 타국의 언어가 들려오는 상황은 만만치 않을 것이었다. 그나마 익숙한 영어도 일본어도 아니라서 더더욱 상수의 마음을 갉아먹을 그 베트남의 말들. 말 걸어주는 사람 하나 없을, 물론 서울에 있을 때도 그리 활발한 사교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고독감 속에서 인터넷으로 한국의 드라마들이나 다운받으면서 긴긴 밤을 보내야 하는 건가. 그러면 언니는 죄가 없다 페이지는 어떻게 하는가. 그렇게 먼 곳에서 과연 지금처럼 명징하게 사랑의 죄 없음, 그 참여자들의 무고함을 얘기해줄 수 있을 것인가. 상수에게는 사랑에 상심한 회원들언니들이 필요했다. 그들이 상수라는 언니를 필요로 하듯이. 상수는 그런 생각들을 하면 가슴이 탁 막혀왔는데 더 기가 막힌 건 자기가 다른 나라로 전출되어가더라도 아쉬워할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사실 서울에서 베트남으로가 아니라 죽어서 사라진다고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가 아닌가. 내면에 엄청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그런 비관으로 빠져들어가던 상수는 다시 한번 경애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아직까지 통화 중이었다. 상수는 무슨 통화를 그렇게 오래 합니까? 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려다가 말았다. 퇴근시간에 전화하고 있다면 누구겠는가.

상수는 경애가 마음의 급격한 전환을 맞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고 그것은 사랑으로의 전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면에는 눈치가 없었지만 그런 촉은 있는 편이었다. 경애가 시작한 그 사랑의 면면을 상수가 직접 확인할 길은 없었지만 그런 변화는 일상생활 전반에 일어나는 것이므로 상수도 충분히 느낄 수가 있었다.

가장 먼저 일어난 변화는 흐트러지고 느슨해지는 것이었다. 마치 무언가에 단단히 묶인 사람처럼 최소한의 동작, 최소한의 말, 최소한의 공간만 차지한 채 사무실에서의 시간을 견디던 경애는 이제 책상 앞에 앉아 바나나나 과자 따위의 간식을 먹으며 여느 회사원들이 그렇듯, 일상을 들이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느슨해지고 관성화되듯 지내고 있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남들처럼 사는 것이었다. 수금이 되면, 좋네요, 하고 엄지손가락을 척 추켜올리고, 야근할 일이 있으면, 짜증 지대로 아닌가요, 하고, 상수가 외근을 나갔다 오면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거나 인터넷 쇼핑을 하다가 슬며시 끄곤 했다. 상수가 뭘 하고 있었느냐고 물으면 경애는 언제나 아무것도,라고 대답했다.

“아무것도 안 하면 어떡합니까? 일을 해야지.”

“일은 늘 하니까 특별한 뭘 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상수는 그런 경애의 일종의 태업을 반가워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연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언제 책잡혀 해고되지 않을까 덜 걱정한다는 뜻이었고 상사인 자신을 믿는다는 것 같았다. 아무튼 경애의 그런 마음의 해동은 저녁으로 선지해장국 따위를 먹으러 가는 순간에도 여전히 계속됐다. 길을 가다가 문득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멈춰서 들었고 조용히 따라 부르다가 누군가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우연히 보게 된 그 문자메시지에 남겨진, 저녁 먹었어? 내가 들려줬던 노래 나온다, 같은 말은 잊히지가 않아서 집으로 돌아간 상수는 그 노래, 경애와 누군가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노래를 마치 들키면 안 되는 어떤 것을 몰래 들여다보는 듯한 긴장 속에서 들어보곤 했다.

거기에는 상수도 고등학생 때 좋아했던 밴드인 델리스파이스의 노래도 있었다. 「챠우챠우」라는 그 노래는 친구 은총도 좋아해서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 무선호출기의 안내음으로 쓰기도 했다. 상수는 노래가 불러오는 기억들에 붙들려 밤을 지새우다가 1999년의 은총은 짝사랑하는 여자애가 있었고 영화동아리에서 만난 친구였다는 걸 떠올렸다. 걔의 메시지를 음성사서함에 저장해놓았다가 상수와 만나 일없이 돌아다니다가도 불현듯 공중전화로 가서 듣고 오곤 했다. 그럴 때 상수에게는 이상한 질투와 소외감이 들었다.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영화제작 캠프에서 만난 상수와 은총은 꽤 죽이 잘 맞았고 특히나 상수에게는 은총이 유일한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은총은 학교 야자시간에도 그러다가 선생에게 걸려서 대걸레 자루로 맞는다고 했다. 상수는 그 목소리 하나 듣겠다고 그런 고통을 감수하는 은총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달콤한 사랑의 말을 녹음해놓았기에 그런가 싶어서, 그러면 안 되지만 비밀번호를 슬쩍 봐두었다가 몰래 들어보면 일요일에 만나자는 거지, 애관이야, 인형이야,라든가, 그때 빌린 4천원 내놔라, 같은 별다른 감흥 없이 퉁명스럽기만 한 목소리였다. 「챠우챠우」의 노랫말처럼 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 해도 들릴 정도의 매혹은 아니었다.

은총이 죽고 나서도 한동안 무선호출기 번호는 살아 있어서 상수는 은총이 없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을 때면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곤 했다. 음성메시지를 남기려 하면 메시지가 가득 차서 더이상 녹음할 수 없다는 안내가 나오는 날도 있었다. 상수는 비밀번호를 눌러 거기에 남아 있는 목소리들을 들어보았다. 거기에는 은총을 기억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메시지를 남기고 있었다.

결국에는 아무도 듣지 못할 어떤 말을 하는 것, 그건 무용하고 허망하고 어떻게 보면 말이 아닌 말을 하는 것이기도 했다. 상수는 언제 오니, 엄마가 너 좋아하는 조기찌개 해놨는데, 하는 말을 듣다가 그것이 더이상 귀가를 확인하는 말이 될 수가 없다는 데 눈물을 흘렸다. 언제,라는 물음이나 엄마, 너, 조기찌개라는 단어들 모두 지금껏 상수가 들어보지 못한, 생경한, 그저 은총의 부재만을 가리키는 실체 없는 그림자처럼 느껴졌다. 은총의 교회 사람들, 어린 시절 친구들, 그 와중에 맥락 없이 잘못 메시지를 남긴 타인들의 목소리까지 모두 은총을 떠올리게는 했지만 그럴수록 정작 모든 말들은 무너지고 만다고 생각했다.

그 허스키하고 낮은 목소리의 여자애도 메시지를 남겼지만 그마저도 나야, 거기 있니, 하고 묻고는 몇마디 못하고 끊곤 했다. 정작 다른 사람들은 그 사서함에 기억나냐, 우리 교회 수련원 갔을 때 야 우리 수영장에서, 하며 추억을 회상했지만 걔는 언제나 전화해서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곧 눈이 온다는데, 눈이,라든가, 오늘도 야자 쨌어, 갈 데는 없고,처럼 혼잣말 같은 말들을 하다가 끊곤 했다. 누군가 듣고 있으리라 상정하지 않는 여자애의 말들은 온도가 낮고 덤덤했다. 상수는 문득 얘는 크게 한번 울어나 봤을까 생각했다.

 

은총의 음성사서함이 정지된 건 석달이 지나 21세기, 2000년이 되면서였다.

 

마지막까지 메시지를 남긴 사람은 그 여자애였다. 그 메시지에서 여자애는 눈이 오네, 아무것도 할 일은 없고,라고 말했다. 그리고 1분 가까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동안 여자애가 있을 공간 뒤편에, 철제문을 여닫는 소리와 자동차의 경적소리, 두런거리는 말소리와 지나가는 누가 큰소리로 내는 야 하는 외침, 그리고 여자애가 내는 숨소리만이 들리더니 끊을 때쯤 되어서야 미안해, 하고 겨우 한마디를 내놓았다. 미안해, 나는 아무래도 늦을 것 같아…… 그래서 눈을 먼저 네가 있는 곳에 보낼게. 그리고 수화기를 내려놓는 달그닥 소리가 나며 녹음이 종료되어서 상수는 긴 침묵 끝에 여자애가 내놓은 그 말이 은총이 찍고 자기가 연기했던, 어찌 된 일인지 제목은 까먹어서 기억나지 않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 같다고 생각했다.

은총은 그 영화의 마지막에 마치 카메라를 놓친 것처럼 갑작스럽게 허공을 비추면서 끝냈는데, 그걸 비스듬한 종결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엔딩을 잡아야 하는 이유는 모든 슬픈 일들은 그렇게 비스듬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마지막 씬은 1993년에 죽은 상수의 어머니가 잠들어 있는 납골당에서 찍었다. 그걸 찍으면서 상수는 슬픔도 슬픔이지만 어머니의 유골함을 들고 공항에 내린 어린 자신의 모습까지 선거를 앞두고 출간한 자기 자서전에 넣어 홍보했던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되살아나 힘들었다.

은총과 델리스파이스를 연관해 다시 떠올린 건 다음 해에 델리스파이스가 발매한 앨범 때문이었다. 그때 상수는 지방의 한 대학에 붙기는 했지만 등록금만 내고 나가지 않은 채 종로의 재수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물론 상수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기대와 달리 학원생활에 영 적응하지 못했고 점심시간에 나와 종로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수업을 다 빼먹곤 했다. 델리스파이스의 신보를 들은 것도 그렇게 나와서 거리를 헤매고 다닐 때였다. 레코드 가게를 지나다 귀에 익은 목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췄는데 델리스파이스였다. 상수는 왈칵 반가운 마음이 들어 레코드점의 문을 열었다.

거기에는 주크박스가 있어서 씨디를 들어볼 수 있었다. 그 신곡이 꼭 자기 마음을 옮겨놓은 것 같아 자기 덩치에는 너무 좁아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주크박스 안에서 상수는 엉엉 울었다.

 

길을 걷던 한 소년은 물었지

엄마 저건 꼭 토끼 같아,라고

심드렁한 엄마는 대답했지

얘야 저건 썩은 고양이 시체일 뿐이란다

오 뒤틀린 발목 너덜너덜해진 날개를 푸드덕거려도 보지만

날 수 없는 작은 새 한마리를 누가 쳐다나 보겠어

 

길을 떠나던 한 소녀는 물었지

아빠 저건 꼭 토끼 같아,라고

무표정한 아빠는 대답했지

얘야 저건 썩은 고양이 시체일 뿐이란다

오 뒤틀린 발목 너덜너덜해진 날개를 푸드덕거려도 보지만

날 수 없는 작은 새 한마리를 누가 쳐다나 보겠어

 

“이제 좀 나와, 학생. 남들 좀 배려하며 살자.”

이윽고 레코드점 사장이 주크박스의 문을 두드렸다. 상수가 자기 머플러로, 엉망이 된 얼굴을 닦으며 나오자 사장은 크리넥스 티슈를 뽑아 건네주었다. 상수는 씨디 두장을 샀는데 그 때문인지 우는 상수가 안됐어서 그러는지 사장은 문까지 따라 나오며 힘을 내고, 학생,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하며 덕담을 했다.

“혼자 꾸는 꿈은 단지 꿈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라고 존 레논이 그랬으니까 우리에게는 뮤직이 있으니까 뮤직으로 대동단결하면서 살자고, 어깨 펴고.”

상수는 그 노래를 씨디플레이어로 들으면서 부평에 있는 납골당으로 전철을 타고 갔다. 거기에 은총이 있는 걸 알면서도 상수는 그동안 차마 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건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을 견딜 수가 없어서였다. 그렇게 또 한명의 죽음을 받아들일 자신이 없어서였다. 전철에는 봄인데도 여전히 코트를 벗지 않은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거기에 앉아 신문 따위를 보는 사람들의 소맷자락에 동그랗게 말린 보풀들이 상수 눈에 들어왔다. 노래의 마지막 긴 후주에 녹음된 영화의 다이얼로그, 누군가의 절규, 총소리, 울음과 음울한 프랑스어, 다툼과 분노, 고통에 찬 비명 같은 것과 그 무심하게 매달려 있는 보풀들은 너무 다르게 느껴져서 상수는 외로워졌다. 외로우니까 볼륨을 더 키웠고 슬픔이 저 보풀처럼 작아지기 위해서는 얼마만한 시간이 필요할까, 생각했다. 그건 시간이 지난다고 되는 일일까.

 

상수는 은총이 살아 있었다면 델리스파이스의 신곡을 당연히 좋아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정은총 1981.10.1~1999.10.30”이라고 쓰인 흰 도자기를 마주하자 은총이 좋아했을 리가 없다고 정정했다. 은총이 죽지 않았다면 그 여자애, 무슨 말을 하듯 약간 귀찮은 듯이 말끝을 흐려가며 말하던 여자애와 언젠가는 본격적으로 연애를 했을 테니까. 둘은 춘천이나 제부도로 여행을 갔을지도 모르고 거기에서 서로 목소리를 들려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손을 잡았을 것이었다. 그리고 서로의 어깨를 쓸어주고 만지고 입을 맞추고 모든 연인들이 하는 평균의 포옹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음울하고 지리멸렬하고 허무에 찬 밴드의 노래에는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은총은 여기 납골당의 가34호 칸 안에 있었다. 이렇게 있는 것을 있다,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상수가 납골당에 쪼그리고 앉아 그 반복되는 기타 리프로 이루어진 노래를 듣는 동안 해가 졌다. 폐장 무렵에야 상수는 나머지 씨디 한장을 벽에 붙여놓고 나왔다. 은총이 있으라, 하고 은총이 늘 하던 인사를 떠올렸지만 은총이 죽은 뒤로 상수는 그런 것을 믿지 않게 되었으므로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청해수산에서 전어회를 먹으며 상수의 발령 이야기를 들은 경애는 좀 무자비하게도 그러니까 저에게 선택권이 있는 건가요, 하고 물었다. 매몰찬 말이었다. 상수는 그 말이 서운해서 평소에 잘 먹지도 않는 청하를 한병이나 마셨다. 경애는 소주와 맥주를 섞어서 마셨는데 자기 혼자 먹는데도 맥주잔 주둥이를 냅킨으로 막고 흔들어 회오리를 만들어가며 즐겼다.

상수는 취한 것도 취한 것이지만 이 판국에 그렇게 소맥의 기쁨을 다 누리고 있는 경애가 얄미워서 말수가 줄어들었다. 그러니까 테이블은 조용해지고 저녁을 먹은 사람들이 빠져나가면서 서울의 밤이 조용해지고 있었다. 거리와 술집이 조용해진다는 건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갔다는 얘기. 인기척을 내며 문을 열고 누구에게 왔어, 인사하며 놓쳐버린 끼니나 과일 같은 것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다가 자기들끼리 또 인사를 하며 잠이 들었다는 얘기였다. 상수는 언제나 그렇게 조용히 잦아드는 서울의 밤을 예민하게 느끼면서도 정작 그런 하루의 주기에서는 늘 소외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밤이 되면 될수록 상수의 슬픔과 상수의 회한, 상수의 고독과 상수의 분노 같은 것은 더해갔으니까.

하지만 그런 서울의 밤을 느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그 무더운 베트남에서 상상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오늘은 박경애가 회사의 어디에서 담배를 피웠나, 누구랑 말은 좀 섞었나, 커피 심부름 시키는 과장과 싸웠나 안 싸웠나, 그 애인하고는 잘 되어가나, 그 사람 앞에서는 좀 웃나, 하는.

경애는 상수를 위로하려는 건지 자기는 그 발령 건이 좌천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러자 상수는 좀 반색했지만 바로 이어서 경애가 그렇다고 마냥 반길 일 같지도 않다고 해서 바로 김이 샜다.

“그건 그냥 좋지도 나쁘지도 않고 다만 좀 이상한 일인 거 같은데. 그래도 공팀장님이 십년차인데 거기까지 왜 파견직원으로 직급을 높여서 보내는 건지 생각해봐야 할 거예요. 베트남에도 그쪽 영업 전담하는 총판, 솔 에이전트(sole agent)가 있는데 굳이 팀장급 판공비 다 감당해가며 영업사원을 파견한다는 것 말이에요.”

“영업실적을 기대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뭐 투자를 해서……”

“그런데 솔직히 우리가 그런 능력은 없잖아요. 우리가 그렇잖아요.”

경애는 그런 말을 깐마늘을 깨물어 반으로 나누면서 참 무심하게도 했는데 상수는 그것이야말로 말 그대로 ‘팩트 폭력’ 아닌가 생각했다. 하기는 사실은 사실이었다. 상수와 경애는 어떻게 해서든 공장을 돌며 눈도장을 찍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했다. 상수가 십년 동안 만나온 공장주들은 상수의 좀 불안정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패기’라면 패기라고 할 만한 것들을 지지해주었지만 그런 격려사 뒤에는 어디 중고기계 없냐라든가, 공장에서 빼돌린 B품 기계를 구할 수는 없냐고 해서 맥 빠지게 했다. 국내 영업에는 더이상 희망이 없었다. 고생이 많다며 클라이언트들이 건넨 아이스커피며 비타민음료 같은 것들을 받아 마시며 돌아다녀봤자 저녁이면 배나 더 고파질 뿐이었다.

물론 동남아에 공장을 둔 기업들과 대량의 주문을 체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계약 건은 상수에게 날아오지 않았다. 그런 건 잘나가는 영업팀들이 벌써 선점해 상수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았다, 그냥 그런 것이 있다고 풍문처럼 들려올 뿐이었다, 10억불 상당의 기계를 사간다고 했다……던가.

 

10억불이라니.

 

밤에 자려고 누우면 긴장이 발가락부터 모든 근육들을 섬세하게 누르며 올라왔다. 그리고 그 긴장이 드디어 내장기관이 있는 상수의 상복부까지 와서 천성적으로 약한 위장을 건들거나 초조하게 늘 콩닥콩닥 뛰는 심장을 부채질하면 상수는 누워 있다가 갑자기 화장실로 달려가 속을 게워냈다. 그럴 때면 형이 노상 입에 달고 살았던 그냥 아무것도 하지를 마,라는 말이 상수의 등짝을 콩콩 두드렸다. 어쩌면 상수가 뭔가를 해보려고 애써왔던 건 결국 그 말이 자기를 평생 괴롭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 결국 뭔가를 이루기는 했는가, 하는 회의가 들었던 것이었다.

상수는 형인 상규에게 지긋지긋하게 시달려왔기 때문에 상규의 어느 면도 자기화하고 싶지 않다는, 강력한 거부를 지닌 채 성장했다. 상수가 운동에 관심이 없어진 이유도 어쩌면 상규가 공부는 다 제쳐두고 몸만들기에만 몰두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키가 크고 마른 상수와 달리 상규는 중키에 근육이 다부졌고 어려서부터 폭력으로 상대를 제압할 줄 알았다. 그러다 한 사건에 연루돼 소년원에 갈 뻔하면서 아버지를 곤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1997년의 그 여름에, 상규는 자기보다 어린 전학생을 그때 상수네가 살던 빌라 옥상으로 끌고 와 표현 그대로 “매어놓고” 이틀을 보냈는데, 나중에 상수는 그즈음 들렸던 마치 어린 강아지가 우는 듯한 구슬픈 소리가 누군가의 신음소리와 비명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졌다. 자신의 방 바로 위에서 그런 감금과 폭행이 일어났다는 데 놀랐고 그 소리를 들으면서 자기가 태연하게 잠을 자고 옷을 갈아입고 영화 속 연애대사들을 필사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는 것에 절망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그동안 상규가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상수는 형과 자기 사이에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 같은 선긋기를 해가며 겨우 버텼는데 그것이 모두 소용없어지는 느낌이었다.

상수는 여전히 상규를 증오하지만 형이 정말 소년원에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아주 외면할 수만은 또 없는, 열여섯으로서는 도저히 스스로 해석할 수 없는 양극단의 감정을 오가며 며칠을 보냈는데, 거기에는 대담하게도 집까지 누군가를 데리고 와 그런 끔찍한 일을 벌인 형에 대한 기이한 공포와 경외도 포함되어 있었다.

혹시 사건이 보도라도 될까봐 아버지 쪽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그렇지 않아도 아들 문제로 현직 대통령이 위기에 몰려 있던 때에 여당 국회의원 아들이 그런 비행을 저질렀다는 건 다룰 만한 토픽이었기 때문이다. 더 문제는 형이 피해 학생에게 사과하는 것을 거부했다는 점이었다. 담임이나, 형이 그나마 따르는 외사촌형이나, 형사나,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다. 형의 행동을 제어할 수 없는 것은 그에게 ‘귀한 것’이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중요한 것이 없었고 지키고 싶은 것이 없었다. 하고 싶은 것이 없었고 그러니까 간절한 것도 없었다. 형은 사과보다는 차라리 처벌을 받고 싶다고 했다. 왜냐고 묻자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죠, 그러라고 법이 있는 거잖아요,라고 형이 웃으며 말했다고 들었을 때 상수는 왜 그런지 자신이 너무나 비참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 오후 비서관이 상수에게 아버지와 어디를 좀 가자고 했다. 뭣도 모르고 나이키 로고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상수가 나오자 비서관은 아줌마, 하고 부르더니 일요일인데도 상수에게 교복을 입혔다. 승용차에는 아버지라면 질색할 것 같은 유행가들이 나오고 있었다. 비서관은 분위기를 좀 바꿀 생각이었는지 상수에게 어떤 노래가 좋은지 계속 물었다. 그건 모두 댄스음악들이었고 상수는 그 노래들의 빠르고 발랄한 비트에 오히려 주눅이 들어서 자기는 그런 건 잘 모른다고만 대답했다.

“우리 어디 가요, 아저씨?”

“사과하러 가지, 형이 못 가니까 상수가 가는 거야.”

그때서야 아버지와 함께 소년을 만나러 간다는 걸 안 상수는 비서관 몰래 조금씩 울기 시작했다. 그건 어딘가 공포가 깃든 눈물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해결할 수 없는 분노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 겁에 질렸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상수는 형이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거둘 일도 없고 아버지가 형을 용서할 리도 없으며 그 와중에 끔찍한 이틀을 보내야 했을, 그냥 형 무리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옥상에 묶여 있어야 했던 그 소년도 절대 분노를 거두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수가 형에게 맞을 때마다 그 분노가 아주 먼 북극의 빙하처럼 차곡차곡 무서운 응집력으로 무겁게 얼어붙었던 것처럼. 그런 마음에 또다른 분노가 하나 더 올라오면 마음이 고통스러울 만큼 또 냉담해지지만 그런 인력은 너무 세서 웬만해서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형에 의해 자기 같은 사람이 하나 더 만들어졌고 이제 그 얼굴을 자기가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당에 놓인 눈사람을 보듯, 아니면 흡사 거울을 보는 것처럼.

차는 중간에 서초에 들러 아버지를 태웠는데, 차에 오르기까지 누군가들과 계속 대화하던 아버지는 앉자마자 넥타이를 풀고 재킷을 벗고 이마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아주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제 유행가들은 꺼지고 그것과 함께 천사와 그대와 사랑과 내 여자 같은 말들은 사라지고 웅웅, 하는 자동차의 엔진소리만 들렸다. 과열된 자동차 보닛에서 올라오는 아지랑이들, 도곡동, 진아운수라고 쓰인 버스가 회전할 때마다 한편으로 쏠리는 검정 머리들, 삼색의 파라솔 위로 떨어지는 칼날처럼 반듯한 햇볕, 방배 소주방, 충무 악기사 같은 간판들이 무의미하게 흐르는 창밖을 상수가 하염없이 보고 있는데 아버지가 좌석의 그물망에서 꼬냑을 꺼내 홀짝 마셨다. 아무 말 없이 그렇게 마실 뿐 상수에게는 어디를 가서 어떻게 하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과일 샀나? 하고 물었고 비서관이 준비됐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남부순환로 건너편의 그 성뒤마을은 상수로서는 처음 가본 동네였다. 연립주택들과 슬레이트지붕의 판잣집들이 뒤섞여 있었고 석재상과 고물상들, 공동변소 같은 것들이 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소년의 집은 철제미닫이문으로 된 ‘백홍식당’이라는 작은 가게였다. 상수 일행이 들어가자 식당의 곁방에서 소년의 엄마가 나왔고 형의 이름을 대자 좀 졸린 듯했던 엄마의 눈은 선명한 금을 그은 듯 또렷해졌다. 그리고 하늘색 발이 쳐져 있던 그 방에서 소년이 고개를 내밀었다. 아이처럼 체구가 작고 피부가 까만 소년이었다.

냅킨 통이 하나 덩그러니 놓인 테이블에서 아버지의 나지막한 사과의 말이 시작됐다. 소년의 엄마는 노여움을 풀지 않았다. 다 자기 잘못이라며, 애 엄마가 어려서 세상을 떠나 잘못 자랐다는 말도 상황을 나아지게 하지는 못했다. 상수가 아버지를 따라 죄송합니다,라고 하자 소년은 너는 누구지? 하고 물었다.

“너도 날 때린 애들 중 하나야?”

상수는 아니에요,라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저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라고 말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렇게 말한 사람은 소년의 엄마였다.

“상관도 없는 애를 왜 여기까지 데려왔어요? 뭐 좋은 일이라고 어린애를 데려와요?”

소년의 엄마가 그렇게 말하자 상수의 마음은, 그 막막하고 차가운 마음에는 잠깐의 온기가 지나갔다. 책임과 잘못을 다투는 대화는 이어졌고 마음이 좀 편해진 상수는 이제 눈앞의 소년이 아니라 식당 풍경에 시선을 주기 시작했다. 고딕체로 쓰인 메뉴판 글씨들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러니까 상수로서는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된장술국밥 같은 단어들에, 그런 건 소년의 엄마가 만드는 것인가, 된장술로 국밥을 만드는 것인가 아니면 된장을 술국밥이라는 것에 풀어서 만드는 것인가 그렇게 쪼개서 읽어보면 그 분리의 힘으로 그것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는 것처럼 상수는 된장술국밥을 나눠서 어떻게든 그 엄마가 아마도 새벽에 일어나서 보낼 그 된장술국밥의 조리시간에 대해서 상상하다가 그 엄마가 우리 아들은요, 우리가 얘 하나 보고 섬에서 올라왔어요, 여기 강남 학교 보낸다고요, 섬에서 섬에서 올라왔어요, 하는 말에 귀 기울이다가 자기 처지도 잊고 그러니까 저 엄마는 된장과 술국밥을, 아니면 된장술과 국밥을 팔아서 아들을 위하려고 섬에서 올라와서, 아들을 위해서 살고 있구나 생각했고 그러자 눈물이 핑 돌았다.

“대화를 그렇게 하지 마시고요, 사모님. 여기 과일 받으시고 합의금 관련 저희 제안도 봉투를 열어서 보시고요. 저희가 이렇게 사과를 하니까요.”

비서관이 준비한 모든 것들을 넘기고 나서도 분위기는 나아지지 않았다. 한참 말을 않던 소년의 엄마는 술 드셨죠? 하고 상수의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닙니다, 오해 마세요.”

아버지는 문득 당황했다.

“반주 정도 일 때문에 했어요. 식당 사장님이니 아실 것 아닙니까.”

“맨정신도 아니면서 하는 사과 안 받아요. 돈도 싫어요. 우리 애 법대 갈 애예요. 그런 돈으로 안 키운다고요. 그리고 학생, 학생이 왜 울어? 형이 그랬으면 형이 사과해야지. 울지 마, 울지 말고 학생은 똑바로 살아, 돌아가신 엄마 생각하면서 공부하며 살라고.”

소년의 엄마는 상수를 보면서는 화를 누르기도 하고 속을 누그러뜨려도 보는 것 같았는데 그러자 상수의 마음은 더 고통스러워졌다. 그건 미안하다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았고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마음이었다. 스위스제 주머니칼로 위협해 옥상으로 끌고 가고 완력을 쓰고 묶고 때리고 방치해 이틀을 보내게 한 것이 누구든 그 순간에는 그 수치의 올바른 당사자를 누구에게 미룰 수 없는 순정한 미안함이 들었다.

그날 돌아오면서 상수는 아버지와 저녁을 먹었다. 그런 외식을 하는 건 무척 드문 일이라서 상수는 어색하게 밥만 먹었다. 공기밥을 하나 더 시켜 먹고 아버지가 남긴 것까지 깍두기와 함께 열심히 퍼먹었다. 그리고 그날 밤 그걸 다 게워내고는 몸에 힘이 하나도 없이 혼자 침대에 걸터앉아 이런 문장을 일기에 써보았는데, 상수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문장이었던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     )이 되고 만다”였다.

그리고 그 괄호 안에 떠오르는 다양한 단어들을 채워보았다. 그러니까 괴물,이라든가, 악당, 악마, 찐따, 벌레, 범죄자, 양아치, 깡패, 실패자…… 그러는 동안에도 낮의 그 백홍식당의 어느 장면들은 상수의 머릿속에 계속해서 연상됐는데, 가장 뚜렷한 건 배웅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상수와 일행이 자기 시야에서 사라지는 장면을 확인하고 싶었는지 그 엄마가 식당 앞 보도까지 나와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 엄마가 신고 나온 붉은 가죽끈의 샌들 위로 떨어지던 나뭇잎의 어른거리던 그림자들. 그 검정의 그림자들은 발을 덮는 것 같기도 하고 아주 어둡게 물들이는 것 같기도 했는데 동시에 그것은 바람에 흔들리면서 마치 파도처럼 발을 여러번 쓸어주는 것 같기도 했다는 것.

 

그런 장면을 연상하다가 상수는 마침내 괄호 안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이 되고 만다.”라고 문장을 완성했다.

 

상수는 형과는 최대한 다른, 아주 다른 인간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그건 단순히 형뿐만 아니라 형이 보여주는 모든 세계와의 결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분리와 혹독한 선별을 통해서만 가능해진다고 생각해서 형이 연상시키는 모든 것들폭력, 욕설, 포르노, 가죽점퍼, 오토바이, 프로레슬링, 헐크 호건, 수음, 주머니칼, 문신, 얼차려, 여자애의 나체, 복수, 총 같은 것들의 목록을 끝없이 적어보았다.

 

결국 그 사건으로 인생의 방향을 바꾼 건 상규가 아니라 상수였다. 상규는 경찰서에서 풀려났고 정학기간에는 고모가 사둔 강화의 별장으로 내려가 지냈다. 밤마다 인적이 드문 해변길을 따라 오토바이를 탄다고 했다. 낮에는 전등사 길을 오르내리며 근육을 키운다고 했다.

소년과 소년의 엄마가 합의를 한 건 학부모회의 누군가가 나섰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대로 가다가는 소년이 나중에 대학원서를 쓸 때 지장이 있을 수도 있다고 충고했다. 특히 학교 추천이 있어야 하는 특차 전형에서. 사건은 학교로서도 부담 가는 일이었고 아버지는 그 사립고등학교의 재단 사람과도 친분이 두터웠다. 합의하지 않으면 앞으로 소년이 얼마나 신실하게, 옳게, 바르게 살 작정이든 그 길을 시작조차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아예 전제된 기회의 박탈과는 어떻게 싸움을 해볼 수 없었으리라고 상수는 나중에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생각했다. 아버지는 현명했지만 어떻게 보면 비열했던 것 같다고. 상수가 자라면서 아버지로부터 이리 온, 잘 잤니보다 더 자주 들었던 정의란 그런 것을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어차피 서울에서도 고독한 거 거기 혼자 가도 그만이라고 상수가 홧김에 생각하고 있을 때쯤 경애가 소맥을 말다가 말고 누군가의 전화를 받으러 나갔다. 횟집의 창밖으로, 배를 깔고 유영하는 광어와, 유리면을 발판 삼아 수면 위로 열심히 기어오르는 문어들 옆에서 경애의 얼굴이 환해졌다가 어두워졌다, 아주 많이 어두워져서 입술을 깨물고 어떤 감정들이 떠오르다가는 그걸 삼키면서 왜,라고 묻는 것 같았다. 왜냐고. 다시 돌아온 경애가 기분이 나빠 보여서 상수는 하려던 말을 계속해야 할지 머뭇거렸고 이윽고 경애가 아주 지친 얼굴로 그만 가죠,라고 했다.

 

 

6. 살인은 연애처럼 연애는 살인처럼

 

한주 동안 고민하던 상수는 유정과 대화한 후에 그냥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동안의 회사생활을 생각해본다면 상수로서는 꽤 패기 있는 선택이었다. 유정은 상수가 그렇게 베트남으로 파견되는 데에는 아마 사장이 그쪽 총판업자를 믿지 못하게 된 내력이 있으리라고 귀띔했다. 총판에서 반도미싱뿐 아니라 다른 회사의 미싱까지 납품하고 심지어 그것의 설치, 관리까지 맡고 있다는 얘기가 있다고. 아주 오래된 관행이라 한번 그렇게 유착이 되면 그뒤 파견되는 영업사원, 설치기술자까지 다 짜고 부수입에 열을 올리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결국 실적은 내려가고 본사에서는 그쪽을 일일이 감시할 수 없으니까 사장이 자기 사람을 보내고 싶어한다는 말이었다. 유정은 기술자까지 한 팀을 이룰 거라면 확실히 상수 편에 있을 사람을 데려가라고 충고했다.

“그러지 않으면 아주 힘들어질 거야, 상수씨.”

“왜 그렇게 힘들어지는데?”

“기계는 판다고 다 되는 게 아니잖아. 설치해야 하고 관리해야 하고 그런 순환이 잘되어야 우리 같은 영업자들은 또다른 회사에 기계를 팔 수 있는 거잖아. 그런 게 안 되면 상수씨는 신의를 잃게 돼. 자기들끼리 다 판을 짜놓은 곳에서, 더구나 그 먼 곳에서 자기를 도울 기술자가 없다면 얼마나 어렵겠어?”

그러니까 상황을 정리해보면 이건 단순한 파견이 아니라 회사의 권력구조를 재조정하려는 사장의 ‘빅 픽처’인 것이었다. 물론 사장은 막상 상수를 면담해서는 그런 어려움, 자기가 회사를 운영하는 데 꽤 난관을 겪고 있다고 인정하는 말들을 직접 하지는 않았다. 다만 어딘가에서 계속 로스(loss)가 나는 것 같다고만 했다. 그리고 상수가 나갈 때 별안간 어깨동무를 하며 “우린 뭐 탁구로 도원결의한 사이잖아”라고 친근하게 말했다.

“아버지들도 그렇고 베프로 충분하잖아. 언제 탁구 치러 서초로 한번 와.”

그런 어깨동무에는 아버지에 이어서 부임하기는 했지만 회사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젊은 사장의 고충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비록 사장은 간부들에게조차 ‘도련님’으로 은근히 무시당하고 직원들에게는 그냥 쓸데없는 경쟁에 열을 올리는 열혈 체육인쯤으로 평가되지만 그도 나름 유학까지 갔다 온 사람이었다. 근성도 있고 판단력도 있고 무엇보다 아버지가 연일 그를 괴롭혔기 때문에 회사의 실적에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그가 회사 일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나면 그 자리를 언제든 대신할 친척들삼촌, 매형, 사촌 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언제고 사장이 흰 수건만 던지면 링 위에 서로 올라오려고 드잡이를 할 것이었다.

자기가 뭔가 중요한 사명을 띠었다는 확신은 상수를 괴롭혔던 타국의 기후, 타국의 쌀, 타국에서의 고립감과 우울에 대한 걱정을 덜어주었다. 기력을 회복한 상수는 공장 쪽 사람들 중에서 누가 자신과 함께 베트남으로 가서 자기 역량을 십분 발휘하고 싶어할까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력직들은 얘기를 듣고 코웃음을 쳤고 신입들은 그렇게 버리고 떠날 만큼 그 자리를 아쉬워하지 않았다. 젊은 직원들에게는 사이좋은 애인과 부인이, 베프가, 보살펴야 할 가족과 강아지, 고양이 들이 있어서 그 먼 곳까지 가고 싶을 리가 없었다. 처음에 기술자까지 해서 완전히 세팅해주마 했던 부장은 상수가 곤란을 겪자 그러면 상수씨만 우선 갈래? 하고 발을 뺐다. 베트남만이 아니었다. 중국도 다른 동남아 나라들도 기술자들에게는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그들에게는 기술이 있으므로 어떻게 보면 선택권이 있는 것이었다. 미싱은 사양산업이라 젊은 노동자들이 잘 수혈되지 않았고 그러면서도 숙련공이 필요했기 때문에 도리어 기술자들의 연령은 높아지고 있었다. 안 되면 퇴사했던 사람까지 수소문해 인력을 충당했다.

매번 그렇게 거절을 당하던 상수가 마침내 떠올린 사람은 조선생이었다. 그는 활황기였던 1980년대에 이름난 기술자로 활동하다가 영업부로 옮겨오지 않았던가. 총무부에 연락처를 문의했지만 퇴사한 사람의 기록은 파기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때 경애가 상수에게 조선생 연락처라면 자기가 알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생을 알아요?”

“제 친구가 연락을 해요.”

“아니, 어떻게 알아요, 조선생을요?”

하지만 경애가 대답하기도 전에 상수는 그 길고 지루했던, 반도미싱 역사상 최장의 파업을 기억해냈다. 여직원 몇이 삭발을 했고 그중에 경애가 있었다는 것을. 사실 상수는 그때 한동안 오오사까에 김유정과 함께 나가 있었고 중간에 돌아와서도 해고나 파업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상수의 회사생활이란 자리보전은 당연했고 거기서 더 나아가느냐, 마느냐가 문제였지 아예 해고돼 마이너스로 떨어져 내릴까봐 걱정하는 수준은 아니었으니까. 다만 파업이 엉뚱한 국면에서 끝나고 만 것이 더 인상적이라면 인상적이었다.

 

파업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흐지부지된 건 경애가 파업 기간 동안 일어난 성희롱을 노조 측에 항의했기 때문이었다. 경애는 남성들이 여직원들에게 행했던 성희롱의 기록을 증거로 가지고 있었다. 참여자들이 자신에게 했던 말의 녹음파일과, 익명으로 쓴 『파업일기』였다. 그 일기는 외부에서 들어온 활동가가 제안했는데 노트를 걸어놓고 자기가 쓰고 싶은 아무 문장이나 적는 식이었다. 일기는 물품창고에 걸려 있었고 그곳은 딱히 그늘이 없었던 파업참여자들이 낮 동안 쉬는 장소이기도 했다. 특히 머리를 다 밀고 나서 경애는 그전보다 기온을 예민하게 느꼈기 때문에 거기서 시간을 오래 보냈다. 해가 지면 머리가 시렸고 햇볕 아래에서는 금세 뜨거웠다. 삭발에 참여한 여직원들 모두 하루이틀 지나지 않아 감기에 걸렸다.

파업자들이 물품창고를 차지하자 그 기간 동안에는 아무도 사무용품을 배급받을 수 없었고 그래서 선배들은 보급로를 끊었다고 농담을 했다. 그 창고에서 파업팀이 쓸 수 있는 건 피켓을 만들 종이나 필기구밖에 없었지만 회사에서는 파업이 끝나고 그 창고에 있던 모든 물품의 총액을 계산해서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했다. 그리고 그 정리를 총무부로 발령한 경애에게 맡겼다.

경애는 파업을 하면서 볼펜 70다스를 과연 쓸 일이 있었을까 하면서도 그것을 그렇다고 적었다. 몇백 박스나 되는 A4용지를 쓸 리가 없는데도 회사에서 그렇다고 계산하면 경애도 그냥 따랐다. 그런 일을 경애에게 시킨 데는 다분히 회사 측의 의도가 엿보였다. 파업에 직접 참여한 경애를 그런 일에 이용하는 셈이기도 했고, 일종의 굴욕을 주는 셈이기도 했다. 경애는 차라리 회사를 나갈까 싶기도 했다. 그때 경애의 엄마가 유방암 판정을 받지 않았다면, 미용실을 닫고 항암치료를 하지 않았더라면 경애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아닐지도 몰랐다. 경애는 모든 것을 망쳐놓았다는 죄책감과 그건 절대 자신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자기방어 속에 놓여 있었는데 그 사이를 갈팡질팡하면서도 일관되게 도망가고 싶지 않다고 다짐했다. 사람이 그러면 안 된다는 것, 한번 도망가버리면 다시 방에 웅크리고 앉아 계절들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필사적으로 했다.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마음의 문을 닫았을 때, 차라리 마음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기를 선택할 때 얼마나 망가지고 마는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조선생이 회사에서 잘리고 나서 여태껏 힘들게 살고 있다는 건 일영을 통해 듣고 있었다. 얼마나 망가졌을까, 그런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생각하다보면 경애는 마음이 서늘해졌다.

 

조선생은 파업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은근한 외톨이였다. 파업현장에 나오면서도 양복을 챙겨 입었고 창립 30주년 기념이라는 자수가 파랗게 새겨진 수건을 여전히 사용했다. 트레이닝복도 어느 해의 수련회에서 전직원이 입었던 것이었다. 자기는 주머니가 없고 칼라가 없는 옷은 입을 수 없다고, 같이 맞춘 티셔츠를 입지 않겠다고 해서 위원장에게 지금이 그럴 때가 아녜요, 하는 핀잔을 들었다. 일영은 그런 조선생이 꼭 자기 아버지 같다며 그의 편을 들었다. 오랫동안 학교의 소사로 일했던 일영의 아버지는 십년 전부터 투병을 해오고 있었는데 조선생처럼 칼라와 주머니가 있는 옷을 입고, 무슨 일이든 그렇게 꼼꼼하게 처리한다고 했다. 글씨를 너무나 반듯하게 잘 써서 고향인 덕적도에서 공문서 쓸 일이 있으면 마을 사람들이 아버지를 찾아왔다고. 그러면서 일영은 우리 아버지랑 나랑은 아주 달라, 하고 굳이 덧붙였다.

“나는 아버지를 못 닮아서 이렇게 됐지만.”

경애는 그 말을 가만히 듣다가 일영에게 그렇게 생각하지는 말라고 당부했다.

“누구를 인정하기 위해서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어. 사는 건 시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의 문제 같은 거니까. 각자 발을 굴러서 그냥 최대로 공중을 느끼다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내려오는 거야. 서로가 서로의 옆에서 그저 각자의 그네를 밀어내는 거야.”

조선생은 그런 자신에 대해서 직원들에게 굳이 말로 설명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날의 『파업일기』에 다른 사람들을 의식한 듯 자기 입장을 정리해놓았는데, “볼펜을 지참할 수 없는 복장은 불편하기에 입지 않았다”고 써놓았다. 볼펜을 반드시 지참해야 하는 삶, 경애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다가 해고로 지금 주차장에 나와 앉아 있기는 해도 조선생은 그렇게 양복을 입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조선생은 연대발언을 감동 있게 한다거나, 완력을 쓴다거나, 공장의 기계실을 점거한다거나 하는 데에는 그다지 소질이 없었고 다만 『파업일기』의 기록에만 충실했다. 볼펜을 들고 라면상자를 책상 삼아서 그것을 적고 있는 동안에는 편안하고 익숙해 보였다. 그렇게 해서 그가 적는 내용이란,

 

오늘의 집회는 노동부 앞. 2열로 서서 앞줄에 박경애, 김다정, 이민선, 유일영, 김선한, 장맑음 등 청년 파업자 위주로 도열. 2시간 집회 후 택시 타고 회사로. 노동부 앞에는 우리 말고도 한전, 금속, 물류, 은행 노조 사람들이 나와 피켓시위 중. 3시쯤 되자 외국계 프랜차이즈 커피숍인 스타벅스 앞에 줄이 섰고 스타벅스 창립기념 이벤트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무상으로 주는 행사였음. 박경애가 이일영과 함께 아이스아메리카노가 먹고 싶다고 함. 김다정은 그린티 프라푸치노. 그린티 프라푸치노는 우유와 말차로 얼음알갱이를 만들어서 부은 것. 오늘의 물품창고 입고 상황. 사과 무선별 50~601상자 입고, 일화천연사이다 업소용 190ml 30캔 영진정육식당 사장 , 현수막용 백색천 8001롤 매입, YT산업안전 35그램 목장갑 한 타(10켤레)*10=한 다발 , 오공 락카 적색/청색 20개……

 

같은 것들이었다.

 

경애는 그런 공들인 기록들을 읽고 있으면 조선생이 티셔츠를 입지 않는 것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지고 영영 입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달쯤 지나 『파업일기』에는 여직원들의 이런 말이 적히기 시작했다. 노조위원장이 오늘 뺨을 만졌고 손목을 잡았다. 기분이 나쁘다. 오늘 술에 취한 권씨가 나한테 너 나랑 잘래,라고 했다. 천막도 넓은데. 벽으로 밀고 안아보자고 했다. 경애가 그 사실을 노조 쪽 간부에게 말하자 그는 경애를 파업 천막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데려가 달랬다.

“지금 우리가 처지가 이렇잖아요. 그러니까 일단은 기다리자고요. 조심하라고는 할게요.”

“우리 처지가 어떤데요?”

“우리 이겨야 하지? 경애씨, 우리 이기자 하고 머리카락까지 밀었잖아.”

“그래서요?”

“그런데 이런 거 알려지면 안 돼. 우리가 불리해. 일단 파업 완수하면 그때 알아서 할게.”

하지만 경애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익명으로 남겨진 『파업일기』를 참고해 여직원들을 만나러 다녔다. 그런데 그 와중에 지방신문 기사가 났다. 파업 과정에서 빈번한 성희롱이 일어났다는 내용의 그 기사는 특히 여직원들의 이탈을 불렀다. 부모가 와서 뭘 이렇게까지 하느냐며 승용차에 태워가는 경우도 있었다.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대열이 무너졌고 사람이, 구호가, 거기에 담았던 마음들이 무너지는 동안 경애는 오해를 받았다. 회사 측에서 심어놓은 프락치가 아니냐는 사람도 있었고 그렇게 제보해서 얼마를 받았느냐는 말도 들렸다. 머리까지 밀더니 그동안 모두 쇼를 한 거냐고 비아냥대는 사람도 있었고 경애가 파업을 무마시키는 댓가로 자리를 보장받았다든가, 하는 말들이 떠돌았다. 무서운 계절이었다. 그 계절은.

직원들이 그렇게 경애를 외면할 때 조선생만은 괜찮습니다,라고 말해주었다. 사실 가장 괜찮지 않을 사람이 그라는 것을 경애는 알고 있었다. 그는 평생을 여기에 바친 사람이고 다른 일자리를 찾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회사는 파업 참가자 중 몇명만 다시 발령을 냈고 그중에 경애가 있었다. 조선생은 마지막까지 경애에게 절대 스스로 사표를 쓰지는 말라고 당부했다.

“일은요, 일자리는 참 중요합니다. 박경애씨, 일본에서는 서툰 어부는 폭풍우를 두려워하지만 능숙한 어부는 안개를 두려워한다고 말합니다. 앞으로 안개가 안 끼도록 잘 살면 됩니다. 지금 당장 이렇게 나쁜 일이 생기는 거 안 무서워하고 삽시다. 나도 그럴 거요.”

그렇게 회사를 떠나며 조선생은 보관하고 있던 『파업일기』를 경애에게 건네고 갔다. 경애는 그것을 간직하다가, 공공연한 따돌림과 적대 속에 회사생활을 근근이 버티던 겨울, 소각장에 던져 넣었다. 아무래도 마음을 잃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날들이라고 생각했다. 그 페이지의 아무리 신실한 기록들이라도 자기를 너무 고통스럽게 한다고. 경애는 묻고 싶었다. 너 하나 때문에 모두가 실패했다며 경애를 비난하던 이들은 아직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파업은 실패했지만 그것을 시작하던 처음에는 모두가 모두의 고통에 대한 선의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지.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그들은 눈보라처럼 경애에게 날선 비난을 하다가 문득 그쳐서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상수는 조선생에 대한 부채감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부장을 설득해서 만약 조선생을 데려올 수 있다면 발령은 내보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부장이 자기도 참 오랫동안 찜찜했었다고, 일본에서 건너와 기술자로 영업자로 일한 그런 사람을 나이 들었다고 내치는 게 참 모질다 싶었다고 말해서 무척 고무되어 있었다.

“박경애씨, 조선생 그리고 저 이렇게 셋이 베트남 가면 뭐 괜찮지 않겠습니까? 우리도 실적 한번 내지 않겠어요?”

경애는 그 말에 그런가요, 하고 되묻고 더이상 동의할 수는 없었다. 일영이 조선생은 아주 안 좋게 지낸다고만 언급하고 더는 말을 아꼈기 때문이
었다.

“갑시다, 가서 조선생이 산다는 인천으로 가서 데려옵시다. 설득합시다. 경애씨, 인천에 몇번이나 가봤어요?”

“가본 적 없어요. 갈 일이 없잖아요.”

경애는 인천이라고 하면 아주 많은 결의 기억들이 떠올랐지만 그 얘기를 누군가에게 하고 싶지 않아서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두었다. E의 이야기는 산주에게조차 자세히 하지 않은 것이었다.

“하기는 전철 끝이니까, 머니까.”

“어쩌면 그렇지도 않잖아요. 그쪽에서 보면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도 한 거잖아요.”

“경애씨, 경애씨는 어떻게 그렇게 근사한 말을 잘합니까?”

상수는 경애에게 연신 평소답지 않은 감탄을 했다. 상수가 요즘 어떻게 해야 경애에게 자신을 어필할까 고민하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자면 자신을 우선 이해시켜야 했다. 자신의 참모습, 자신의 진심, 그러면 그런 이해는 평판에 대한 전환으로 이어지고 호감과 신뢰의 상승으로 이어지며 최종적으로는 대머리 총무부장 밑에서 그 지루한 물품대장이나 관리하며 지내는 대신 너른 기회의 땅, 공장의 건설이 사실상 문명의 개척에 가깝다는 그 여전한 개발도상의 기쁨이 있는 곳으로 가서 자신의 주전공인 경영학에서 배운 능력을 발휘하게 할 것이었다. 그렇게 경애의 마음에 들고 싶은 것이 단순히 베트남으로 발령을 받아 가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더 원하는 게 있는지는 상수 자신도 헷갈렸다.

“제가 한 말은 아니고 인천이 집인 친구가 있었는데 걔가 했던 말이에요.”

“그런 근사한 친구가 있어요? 근사한 친구도 있고 경애씨 참 근사하네요.”

“있었다고 했지 지금도 있다고는 안 했습니다.”

경애는 불쑥 그렇게 정정하고는 화제를 돌려 일영이 그곳에 다녀온 공장 친구에게 들었다는 베트남 사정에 대해서만 건조하게 정리했다. 한국의 기업들이 미국이나 유럽 의류회사들의 오더를 받아 공장을 굴리고 있는데, 점점 더 오지로 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하노이나 호치민 같은 대도시에 머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기본적으로 시골길을 여섯시간씩 지나서 좀더 밀림으로 시골로, 도시의 그늘이 드리워지지 않은 지역으로 영업을 하러 다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회사들이 그런 곳에 공장을 짓는 건 노동력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한번 지으면 기본적으로 3000명의 노동력이 필요한데 터를 다 닦아놓고 정작 공장을 돌리려 할 때 다른 공장, 월급을 많이 주는 반도체공장 같은 곳들이 들어오면 낭패였다. 혹은 다른 방직공장이. 그렇게 경쟁이 붙어버리면 노동력이 갑이 되고 갑이 된 노동력은 임금의 상승을 부르니까. 그래서 점점 더 오지로 들어가는 방직공장들을 찾아가 영업을 해야 하니까 간다면 더 큰 고립의 상태를 각오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경애의 그런 얘기는 상수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상사가 분명한데도 대체 어느 구도에서인지 을이 되어버린 상수는 어떻게 해서든 경애의 마음, 경애의 선택, 경애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평소의 감정상태를 생각해본다면 심하다 싶을 만큼 기운을 냈다.

“원래 인생이란 게 끝이다 싶을 때 시작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끝이 계속 열리는 거잖습니까.”

상수에게 시들시들하게 말은 했지만 경애는 어쩌면 모두가 별로 가고 싶어하지 않는 곳에 나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시 총무부의 그곳으로 돌아가 고립된 채 회사생활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경애는 산주가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그렇게 산주를 마음에 걸려 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다보면 무섭도록 초라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경애가 산주를 다시 만나서 하는 일은 자주 다녔던 데이트 장소를 순회하는 것이었는데, 둘이 함께 한강공원에 가서 맥주를 마셨던 날, 둘은 서로를 안고 그전처럼 가까이 느꼈다.

그날은 좀 기이한 날이었다. 한낮 강변의 펍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데 선착장에 줄줄이 묶어놓은 오리배들이 눈에 들어왔다. 오리배들은 주둥이가 노랗고 눈은 까맣고 사람을 태우는 칸은 아주 하는데 세로로 파라다이스라는 상호가 쓰여 있었다. 오리배와 파라다이스 그리고 새들이 내려와 앉아 있는 한강, 철교와 다리 그리고 맞은편의 산주. 그런 풍경들은 뭔가 오래된 상실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불안을. 오리배들은 한데 묶여서 철교에서 전철이 지나거나 혹은 바람이 불면 서로 맞부딪치면서 물결을 탔는데 그것이 파라다이스라는 세로행 글자들의 본뜻과는 전혀 다르게 지금 산주와 앉아 있는 순간을 끊임없이 회의하게 하고 부정하게 했다. 그렇게 서로서로 묶인 채 둥둥둥 하고 떨면서 우리는 더이상 연인이 아니다, 우리가 다시 찾은 이 한강이나 여의도의 냉면집이나 광화문의 서점 따위의 장소들은 우리가 더이상 아무것도 아니라고 증명한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는 내일을 계획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선배, 저것 봐, 파라다이스라는데.”

경애가 오리배를 가리키자 산주는 아이패드로 뭔가를 확인하다가 그쪽을 힐끔 보더니 잠깐 웃었다.

“그래, 여기도 파라다이스네.”

이윽고 차에 올라탄 산주는 경애에게 너를 좀 안아도 될까, 하고 물었고 경애는 잠시 생각하다가 나도 선배를 안아보고 싶은데, 하고 대답했다.

집으로 돌아온 경애는 낮에 있었던 장면들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같이 먹었던 냉면과 나란히 걸었던 거리, 음식점 홍보지를 쥐여주던 여자들과 잎이 무성한 가로수들, 한강과 오리배, 파라다이스, 그리고 비로소 안아서 확인해보았던 산주라는 사람. 그것은 바로 오늘의 일인데도 시효가 임박한 기억들처럼 빠르게 폐기되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을 들게 했다. 어쩌면 산주가 경애와 있다가 자신의 아내가 올라온다는 시각에 맞춰 정확히 다섯시 반, 서울역으로 아내를 데리러 갔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헤어지고 각자에게 펼쳐질 일상을 생각하면 그사이에 있었던 감정들도 모두 빛을 잃었고 오리배에 적힌 파라다이스라는 글씨처럼 허울 좋은 가짜의 혐의를 풍겼다. 경애는 스스로의 삶에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발끝에서 무언가가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경애가 쌓아왔던 모든 것들이 위태로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도 산주를 생각하면 어떤 간절함이 들면서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경애를 붙들었지만 그것이 결국 자기를 파괴하리라는 것을 경애는 예감하고 있었다.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떠나야 한다고, 어디든.

 

밤에 잠깐 집 앞에서 만난 일영은 여름을 지나면서 살이 더 빠져 있었다. 온종일 걸어다녀야 하는 일이라 낮에 돌아다니다보면 몸에서 수분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더러는 정신까지 모두 증발해버리는 것 같다고 했다.

“힘들지?”

“힘은 들지, 그런데 힘들다 힘들다 하면 더 힘들어져.”

“그렇네, 안 힘들다고 해야겠네.”

“야, 안 힘들다, 안 힘들다고 해도 힘들어진다.”

“그럼 뭐 어쩌라고?”

“싸이 라이브 앨범 들으면 그런 말이 나온다. 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지금 행복해서 뛰는 게 아닙니다. 뛰어서 행복해지는 겁니다. 힘이 나서 사는 게 아니다, 살아서 힘이 나는 거지.”

“멋지네.”

“싸이 형님이야 멋지지, 고진이 감래한 인생의 맛을 아시지.”

“응, 돈도 많고.”

“그렇지, 월드 스타.”

경애는 일영에게 대꾸하다가 오랜만에 한참을 웃었고 문득 산주와의 일을 말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관계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경애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안고 천천히 혼자 가라앉고 있었다. 이제 경애의 일상에서는 다른 어떤 것보다 산주가 우선이 되었다. 산주에게는 경애가 그렇지 않아서 같이 시간을 보내다가도 아내가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되면 바로 일어서서 집으로 향했다. 경애가 아무리 이 관계가 뭔가를 바라면 안 되는 관계, 그저 죽은 사람이 돌아온 것처럼 끝이 났던 사랑이 이어진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관계라고 생각하려 해도 어떤 마음들이 경애를 괴롭혔다. 그러니까 그건 사랑이 한 사람의 완전한 차지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주지 못한다면 경애를 다시 찾아오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 하지만 산주는 경애가 그런 관계의 한계에 대해 말하면 며칠이고 연락을 끊었다가 아주 상처받은 얼굴로 나타나 그냥 옆에 좀 있으면 안 되겠니? 하고 물었다. 그냥 내가 좀 아픈데 그러면 정말 안 되겠어?

“요즘은 개들이 안 괴롭혀?”

경애가 묻자 일영은 좀 머쓱해하더니 이제 자기는 개를 쫓으며 다니지 않고 개들을 먹이며 다닌다고 했다. 수도 검침을 나가는 야산에는 버려진 개들이 믿을 수 없이 많아서 그렇게 빈집에서 쫄쫄 굶고 있는 개들을 견디다 못해 먹이를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중에는 새끼강아지들도 있다고 했다. 안 봤으면 모를까 자기처럼 반려동물 취향이 아닌 사람도 도저히 무심히 지날 수가 없다고.

경애는 일영이 집으로 돌아간 뒤로도 편의점 파라솔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자기가 알지 못하는 어느 길을 이제 등산스틱이 아니라 먹다 남은 고기나 빵 따위를 들고 걷는 일영을 상상했다. 그러자 세상은 어느 맥락에서 그렇게 순해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영은 복날이 되면 야산의 개들도 그때쯤 사람들이 자기를 잡으러 다니는 걸 알아서 더 깊은 산속으로, 도시의 외곽으로 달아난다고 했다. 그러다가 여름의 고비가 지나면 도로 밑으로 내려와 무리를 지어 달리면서 일영 같은 외부인들을 경계하면서 쫓고 그사이 또다른 개들을 낳기도 하다가 문득 일영이 건네는 먹이로 배를 채우기도 한다는 것. 그렇게 해서 개들도 순해지고 수도검침원도 순해지는 시간. 누구도 상처받지 않은 채 순하게 살 수 있는 순간은 삶에서 언제 찾아올까.

그리고 그날 밤, 경애는 잠이 오지 않아 침대에 누워 있다가 오래전 산주와 헤어졌을 때 유일하게 대화를 나눴던 페이스북의 연애상담 페이지를 떠올렸다. 몇년간 들어가지 않아서 계정 이름도 잊어버렸지만 몇번의 검색으로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언니는 죄가 없다,라는 페이지였다.

 

살인은 연애처럼, 연애는 살인처럼.

 

이제 모토는 바뀌어서 첫 페이지에 히치콕 영화를 두고 프랑스의 영화감독인 트뤼포가 했던 말이 적혀 있었다. 이전보다는 뭔가 교양이 심화된 문장이기는 했는데 뜻이 모호했다. 둘의 은유 뒤에 붙어야 하는 서술은 무엇일까. 결국 살인과 연애는 그런 일종의 파괴를 예비하고 있다는 것일까. 경애는 이 페이지를 그때 그 언니라는 사람이 여전히 운영하는지도 궁금했다. 그러면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을 것이고 얘기하기가 좀더 편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게 속사포처럼 써서 건네주던 답신을 생각해보면 그 많은 사연을 다 기억하고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어쩌면 언니는 한 사람이 아니고 여러 사람일 수도 있었다. 창으로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고 가을이었다. 가을의 공기는 더 무겁고 누그러져 있었고 몇해 전의 여름과 옥수수를 환기시키고 있었다. 경애는 텅 빈 모니터 화면을 보다가 언니에게,라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 쓰고 나자 새벽이었고 출근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 ‘언니는 죄가 없다’ 페이지의 바뀐 모토는 강성은의 동명의 시에서 재인용했다.

* 여자애가 음성메시지로 남긴 마지막 말은 신용목의 시 「울음을 다 써버린 몸처럼」의 한 구절을 변형했다.

* 인용된 델리스파이스의 노래는 「고양이와 새에 관한 진실(or 허구)」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