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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김금희 金錦姬

1979년 부산 출생.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너무 한낮의 연애』 등이 있음. novelist79@hanmail.net

 

 

장편연재 4

경애(敬愛)의 마음

 

 

6. 살인은 연애처럼 연애는 살인처럼

 

상수는 그 새벽, 경애에게서 온 이메일을 열지 않았던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면 무엇보다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아니, 그럴 수 없을지도 모른다. 대학 때 상수의 선배 중에는 출가해서 스님이 된 사람이 있는데, 언젠가 상수가 형, 번뇌를 어떻게 없애요, 하고 묻자 선배는 못 없애,라고 단언했다. 아니, 그렇다면 대체 불공은 왜 드리고 108배는 왜 올리는가 싶어서 상수가 항변하려고 하자 선배는 좀 머뭇거리며 “야, 내 번뇌도 못 없애” 하고 고백했다. 그런 선배의 승복 안으로 나이키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가 슬쩍 보여서 상수도 더이상 묻지 않았다. 그러니까 인생은 손쓸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냥 포기해버려야 하는 것이었다. 마음의 번뇌와 갈등, 고통, 어떤 조갈증, 허기 같은 건 지병처럼 가져가야 하는 것이었다. 하기야 아프면 고쳐가면서 쓰는 게 몸이라고 하는데 마음이라고 그렇지 않겠는가. 대체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싶으면서도 상수는 경애가 이런 행동을 할 때 번뇌의 방아쇠가 탕, 하고 당겨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직역을 하자면 “얼어 있는 프랑켄슈타인”쯤이 될 수 있는 그 아이디를 통해 경애에게서 오는 이러한 답장 같은 것.

 

네, 언니 분이 편지에 써주신 그 많은 독설 잘 읽었습니다. 돈 받고 하는 일도 아닌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런 마음은 어떻게 폐기되는 건가요? 싹 다 폐기하라고 쓰셨는데 구체적인 방법은 언급이 없어서요.

 

첫 편지를 받은 날, 상수는 경애가 그렇게 설레어하며 문자메시지를 주고받고 전화하는 상대가 일찍이 경애를 그렇게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떠나버린 옛 애인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더구나 그가 여전히 결혼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말 그대로 무참한 슬픔을 느꼈다. 그런 이기적인 누군가의 착취를 사랑이라고 착각하다니, 그런 관계 속으로 자기를 몰고 들어가는 건 죄악에 가까운 일이야! 상수는 그래서 그 새벽에 자기도 모르게 경애에게 전화를 걸고 말았는데 그사이 잠이 든 경애가 여보세요,가 아니라 아 좀, 누구야, 하고 퉁명스럽게 받는 바람에, 경애씨, 제가 잘못 걸었습니다, 더 자요, 미안해요, 하고 끊고 말았다.

‘언니는 죄가 없다’ 페이지를 운영하면서 상수가 만난 여자들은 카테고리화할 수 있을 정도로 유사한 비극에 노출되어 있었는데, 그때마다 상수는 모든 잘못은 남자들의 빤한 이기심에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상수가 10대였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런 남자들의 모습을 집단적으로 확인할 기회는 너무나도 많았다. 남자들의 이야기 속에서 여자들은 다른 신체는 없이 오로지 성기와 가슴만 지닌 존재처럼 여겨졌는데 그렇게 벗겨지고 지워진 얼굴들에 대한 시시덕거림이 은은하게 퍼져나갈 때면 상수는 내장기관 어딘가가 운동하면서 메스꺼워지곤 했다. 혐오스러웠다.

그래서 상수는 남자들의 사랑에 회의적이었는데, 그런 감정은 누군가를 아끼고 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는 피가학의 열도 정도로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상수가 이를 분명히 자각한 건 재수학원에서였다. 거기에서는 150명 정도의 남학생들이 숙식을 함께하며 공부했는데 마치 군대의 신병훈련소처럼 ‘생활조교’라는 사람이 있어서 일상의 규율을 정하고 통제했다. 6시 기상시간에 일어나기, 5분 안에 화장실 다녀오기, 15분 식사, 자율학습 시간에 자율적으로 새벽 2시까지 공부하기 같은 일반적인 규칙에서, 머리모양은 스포츠형, 계절별로 사전 등록한 상하 각 3점씩의 의류만 소유, 휴대전화 소지 금지, 일과 중 모자 착용 금지, 원내외 사적인 만남(대화, 신체접촉) 금지 같은 세세한 룰까지 조교가 입소생들의 생활 전반을 통제했다.

물론 상수는 언제나 그런 규칙의 파괴자였다. 뭔가 의지를 가지고 파괴한다기보다는 천성이 게을러서 어쩔 수 없이 그것에 반하게 되는 안타까운 고문관에 가까웠다. 재수생활이 오래되면서 상수에게는 점점 긴장이랄 것이 없어졌다. 11월이 되면 이놈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만큼 부당하게 특별한 하루, 수능 시험일이 오고야 만다는 사실마저 이 우울한 과체중의 삼수생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당연히 일어나야 할 시간에 일어나지 못했고 달려야 할 때 달리지 못했다, 음악을 들어서는 안 되는 시간에 음악을 들었으며 먹어서는 안 되는 시간에 먹었다. 불빛이 새어나가면 안 되니까 불을 끈 채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컵라면으로 젓가락질을 하고 있으면 그 MSG로 풍미를 한껏 살린 국물에 혓바닥의 온갖 미뢰가 자극되면서 비로소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감각은 남은 수능 날짜를 카운트해서 알려주는 학원의 대형 전광판이 아니라, 동일한 트레이닝복을 맞춰 입고 앉아 “관용이란 인간애의 소유이다. 우리는 모두 약함과 과오로 만들어져 있다” “인생의 위대한 목표는 지식이 아니라 행동이다” 같은 명언들이 지문으로 등장하는 사회탐구 문제 풀이 시간이 아니라, ‘라면’에 있었다. 오직 라면 국물만이 이 느글거리는 권태와 지리멸렬함 속에서 상수를 구원했다. 아니, 구원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다른 구원이 있기는 했다. 일단 한동안은 구원이었다.

 

그해 여름, 새로운 생활조교가 부임했다. 해병대 신병훈련소 조교 출신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한 그는 너무 근육질이라 몸이 마치 공사장에서 쓰는 ‘오함마’, 해머 같았다. 다른 선생들은 상수를 닦달하기는 했지만 워낙 상수가 들어먹지를 않고 안 그래도 꽤 괜찮은 집의 막내둥이였기 때문에 마치 사기접시를 퐁퐁으로 닦듯 조심조심 다루었는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상수가 늦잠을 자서 오전의 햇볕이 기숙사 침대까지 들어와 상수의 이마를 조용히 짚으면 뒤이어 그가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나옵니다!”라고 소리 질렀다. 그건 피아의 구분도 없고 능동도 피동도 아닌 애매한 상태의 동사였다. 하지만 얼른 바지를 꿰어입고 침대에서 내려와 운동장으로 얼차려를 받으러 오라는 뜻이라는 건 상수도 뭐 바보가 아니니까 바로 알았고 조교가 버티고 서 있는 이상 움직이지 않을 수는 없었다. 느적느적 나가보면 거기에는 상수뿐 아니라 예닐곱의 학생들이 엉성한 대오를 이룬 채 서 있었다.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는 얼차려의 시작을 항상 그런 말로 열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으면 그는 그렇게 한마디를 던져놓고 가만히 기다렸는데 대기시간이 길어지면 결국 이쪽 손해니까 누군가가 마지못해 묻게 되었다.

“선생님, 뭐가요?”

“의지.”

그렇게 답하고 나서 조교는 다시 한번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중요합니까, 중요하지 않습니까?”

“의지 말인가요?”

“대학.”

그는 이렇게 굳이 묻지 않아도 되는 것을 질문으로 만드는 말버릇이 있었다. 딱히 상대의 대답을 기대하는 것이 아닌 줄 알지만 질문의 형식을 띠고 있으니 하는 수 없이 귀 기울이게 되고 뭔가 관심이 갈락 말락 하다 막상 답변을 듣게 되면 시시해서 헛웃음을 짓게 되는. 하지만 그런 하나 마나 한 대화는 이어질 얼차려를 위한 일종의 사전작업일 뿐이었고 그들이 어떤 대답을 하든 올 건 왔다. 일고여덟차례의 선착순 달리기나 철봉에 매달리기 혹은 토끼뜀 같은 것이. 쏟아지는 햇살 아래 그렇게 받는 벌은 참 괴롭고 귀찮았는데 이상한 건 막상 얼차려를 받기 시작하면 상수의 마음이 혼란스러운 방식으로 요동친다는 것이었다. 눈이 양옆으로 찢어지고 턱은 사각으로 단단했으며 피부가 까만 편인 그가 양손을 허리춤에 얹고 “실시” “그만” “복창” 같은 지시어로 상수의 신체를 조련할 때면 상수의 마음은 마치 팝콘이 터지듯 온갖 감정들로 터지곤 했다. 라면에만 열렬히 반응하던 여름 이전의 마음과는 달랐다. 거기에는 모멸감도 있었고 공포도 있었으며 분노와 혐오와 슬픔이 있었지만 아주 뚜렷하게는 분명 이상한 방식의 갈구가 있었다. 조교가 상수를 누르면 누를수록 이상하게 그를 향해 어떤 갈구가 일어서고 있었다.

처음에는 자기를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에 대한 꺼림칙함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그렇게 당연한 듯 상수를 윽박지르고 간섭할 때 지시와 명령으로 위계를 설정할 때 도리어 그가 상수에게 기숙학원의 어떤 사람들보다 특별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상수는 조교가 미웠지만 어느 자리에서 마주치든 신경을 바싹 쓰고 있었고 그가 탄식하듯 공상수 학생 참 안타깝지 말입니다,라고 한마디 한 날이면 마치 머신처럼 정해진 몇개의 단어들로 얼차려 시간을 꾸려가던 것과 비교해 이제 그런 기계적인 관계로는 해결되지 않는 어떤 감정의 교환 상태를 만든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안 하던 운동을 하는 바람에 근육통이 온 가운데 줄기차게 하곤 했다. 그러면 상수의 방배동 집에 있는 그 숱한 사랑의 교과서들, 상수를 깨우치고 단련시켰던 그 수많은 영화와 소설들이 생각났고 그것들이 총동원돼 지금 상수가 느끼는 감정이 바로 애정의 또다른 형태라는 사실을 알려주곤 했다. 이것이 사랑이라니! 그런 생각이 들면 상수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도 놀라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럴 리가 없었다. 그때까지 상수는 피가 돌고 살이 있는, 그러니까 실제 형태의 몸이 있는 누군가와 사랑을 해본 적이 없긴 했지만 이런 형태는 아닐 것이었다. 하지만 아니다,라고 마음먹고 조교를 대하려고 해도 그가 상수를 뛰게 한다든가, 팔을 뻗게 한다든가, 뜀뛰기! 뜀뛰기!를 강제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몸이 힘든 만큼 마음이 또다시 제어할 수 없는, 감정의 파티 상태가 되면서 뜨거워졌고 이 육체의 고통을 종결할 수 있는 사람은 생활조교뿐이니까 그를 향해 분노와 원망과 울분이 달려가다가 끝내는 자기가 이 관계에서 완전한 약자가 되어 그의 선처, 용서, 동정과 연민을 바라게 된다는 걸 투항하듯 동의해야 했다. 어쨌든 그는 특별했고 상수도 그가 자기를 좀더 특별하게 여기기를 바랐다. 그런 특별함이 자기 인생에서 기록할 만한 사건이지는 않으리라 부정하면서도 상수는 하지만 무릇 사랑이란 그런 권력의 격차 속에 환상처럼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상수가 다 젖은 솜이불처럼 무거운 몸을 침대에서 빼내지 못해 1교시 수업에 늦고 만 가을날, 상수는 어차피 받을 얼차려니까,라고 자신의 마음을 좀 숨겨가며 조교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운동장으로 나갔다. 오늘은 대체 몇바퀴를 돌아야 하나 상수는 생각했다. 까짓것 뛰지 뭐, 싶기도 했다. 살도 좀 빠진 것 같았다. 양말을 신기가 좀더 용이했다, 고개를 완전히 숙이지 않아도 발가락이 내려다보였다. 하지만 조교는 상수를 보고도 알은체하지 않았다.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운동장 스탠드에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다. 상수는 그가 지시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니까 중요하지 않습니까? 있습니까, 없습니까? 물으면서 운동장의 어느 목적지를 가리킬 때까지. 하지만 조교는 마치 상수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거기에 없는 사람처럼 자기 할 일만 하더니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응응, 그러니까 청량리? 청량리로 가면 되냐? 청량리지?라고 물었다. 청량리라니, 여기 용인의 기숙학원과는 얼마나 상관없이 들리는 지명인가.

“선생님, 늦었습니다.”

이윽고 침묵을 이기지 못해 상수가 먼저 말을 걸었다. 조교는 그런 상수를 바라보다가 “우리 뭐 약속이 되어 있었어요?” 하고 물었다. 상수는 ‘다’나 ‘까’로 끝나지 않는 그 생경한 어미의 문장을 마음속으로 한번 되새겨보았다. 있었어요? 하는, 상수도 쓰고 상수의 친구들과 강사들도 다 쓰지만 유독 이 해머 같은 남자는 쓰지 않을 것 같았던 그 청량한 문장을.

“제가 지각을 했거든요.”

그러자 조교는 상황 판단이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러면 여름을 보내는 동안 이 운동장에서 내내 열띠게 진행되었던 그 작업에 착수해볼까 하면서 상수가 운동화 끈을 고쳐 매는 순간, 조교가 상수에게 “이제 안 해요. 제가 계약이 끝났어요” 하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교는 왜 그런지 좀 말갛게 웃었는데 그때서야 비로소 순박하고 천진하고 어딘가 세상일에 좀 심드렁한, 깃털처럼 가벼운 20대의 미소가 그 얼굴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런데 그 순간 상수는 뭔가 당황스러운 느낌이었다.

“끝났다고요? 선생님?”

“수능 3주 남기고 누가 얼차려를 받습니까. 연필 하나가 책상에서 또르르 떨어져도 마음이 철렁한 마당에 왜 괴롭혀요. 이제 그런 시기는 지났죠, 없죠. 저도 뭐 임시직이었고요.”

상수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강렬한 강도로 자기를 다그치고 닦달했던 것이 그냥 기숙학원과의 계약이 끝나면 사라지는 것이었다니. 그렇다면 대체 자기를 그렇게 조련할 수 있는 권리는 애초에 어떻게 생겨난 것이었나. 상수에게 실감되었던 그 숱한 감정들은 대체 무엇이었단 말인가.

“수능시험 날 졸리면 안 되니까 늦잠 버릇 이제부터 꼭 고치시고요. 단백질, 비타민 같은 거 챙겨 먹고요.”

조교는 그런 조언과 시험 잘 보라는 격려를 마지막으로 상수의 시야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해머처럼 단단한 그 몸이 멀어질수록 상수의 마음에는 뭔가 ‘단도리’가 쳐지는 느낌이었다. 봉쇄되는 기분이었다. 가을을 맞은 운동장에서는 낙엽들이 바람이 불 때마다 축포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뒤로 상수는 혼자 쓸쓸히 거리를 걷거나 새벽 네다섯시에 깨어 우두커니 침대에 앉아 있을 때, 버스를 타고 가다가 옆좌석의 사람들이 크게 웃거나 자기들끼리 뭔가에 대해 열의 있게 대화할 때 그 가을의 오후가 떠올랐다. 자신을 그렇듯 풍성하게 하던 감정과 그것이 어느 임시직의 쓸쓸한 계약종료와 함께 간편하게 사라져버린 것에 대해. 그러면 늘 믿을 수 없다는 느낌이었다. 그것이 시작된 것도 진행된 것도 종료된 것도 모두 마음의 일이었는데 그 마음을 흐르게 한 동력은 자가발전이 아니었다는 것, 황망한 가운데에서도 오직 그것만은 분명했다. 조교와 상수 사이에 있었던 위계가 일종의 권력의 위치에너지를 생산해 감정을 만들어냈다는 것. 그런 상수의 분석은 스스로에게 여러모로 이로웠는데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랬다. 그렇게 생각하면 불특정한 상실감으로 너덜너덜해진 마음이 단번에 괜찮아지는 느낌이었다. 아주 말끔하게, 이를테면 고속도로 같은 것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했다. 그 길의 끝이 이제 막 도로를 포장한 콜타르의 냄새처럼 고약한 냉소와 허무 그리고 자기를 감싸는 모든 감정들에 대한 무한 회의로 이어져 있다는 건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래서 상수는 자신의 계정, ‘born-innocent’라는 언니의 계정으로 경애를 따끔하게 일깨우는 장문의 편지를 주고받았는데 그것이 “그 많은 독설”쯤으로 정리된 것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해달라고? 상수는 불현듯 화가 나면서 그게 어떤 에너지를 불러일으키면서 경애를 그 바보 같은 짓에서 구해낼 수 있다면 그쯤은 밤을 새워서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밤만 새울 뿐인가? 아주 식음을 전폐하고도 할 수 있다, 회사도 연차 쓰고 안 나가버리고 불면의 연속된 밤을 보내면서 베트남이야 가든지 말든지…… 아니 그래도 직장은 직장이니까 파견은 가야겠지만 정작 경애는 불광동 어딘가에서 단잠에 빠져 있더라도, 자기는 질문을 받았으니까, 어떻게 폐기해요? 하고 물어왔으니까 아주 그냥 집중해서 쓸 수 있다.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들이 탭댄스를 추듯이 자판들을 옮겨 다니면서 고양이들이 우다다를 하듯이 활력 있게 언니로 살아온 칠년간의 노하우를 모두 동원해서 박경애씨 그건 사랑이 아니야!라고 알려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상수는 그 일을 미루고 있었다. 의욕이 넘치고 할 말도 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일단 그 전남친의 전화번호를 수신거부로 등록합니다. 그건 그냥 손가락을 움직여서 차단 버튼을 슬며시 누르기만 하면 돼요. 그러면 일단 그 착취의 그물망에서 반은 나온 셈입니다. 자니…… 어떻게 지내…… 어디야…… 이런 개소리를 더이상 늘어놓을 수가 없어요. 일단 그것부터 하면 됩니다. 얼른 나오라고 안 해요. 나 그렇게 성급한 성미가 아니에요. 못 나오는 언니들 많아서 내가 기다려주거든, 기다립니다, 내가, 박경애씨, 기다려요. 이런 생각들을 머릿속으로 쇠똥구리처럼 굴려가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가 출근해보면 정작 경애는 상수가 붙여놓은 “물건은 팔되 마음은 팔지 않는다”라는 슬로건 아래 키보드를 타닥타닥 치며 앉아 있었다. 평소라면 역시 박경애답게 출근과 동시에 업무 모드로군, 하고 생각했겠지만 이제 상수에게는 달리 보였다. 그러니까 지금 메신저로 그 어긋난 사랑의 상대자와 연락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뭔가를 찾는 척하면서 몰래 보면 누군가에게 쓰는 이런 문장들이 눈에 띄었다.

 

안녕, 오늘도 무사한 아침이야.

무사하다는 것은 무한과 무수 사이에서 간신히 건져 올려진 낱말 같아.

막막한 바다를 떠다니는 작은 보트처럼.

 

이런 말을 쓴다면 역시 사랑이었다. 상수의 따끔한 이메일을 받고도 그 괴물 같은 감정을 진행해야 한다면 하는 수가 없지만 상수는 그런 촉촉한 말들이 견딜 수가 없어서 백스페이스키로 모든 말을 지우면서 적지 마요, 이러지 마요, 하고 말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경애가 자기를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현실에서 한번 시원하게 웃지도 않는 상수가 페이스북 공간에서는 살뜰하게 여자들을 챙기며—여자들을 챙긴다는 상황부터가 오해를 받기 알맞지 않겠는가. 그들이 고백하는 모든 사랑의 애환들을 들어주는 체하며 때로는 추잡한 관음증을 해결해왔다고 비난받지 않겠는가. 상수로서는 그저 그 마음들을 자기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질문들에 답하다보니 그렇게 되었지만.

상수는 적어도 이 페이지에서는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무모함, 펼쳐질지 안 펼쳐질지 모르는 낙하산을 멘 채 중력이 이끄는 대로 기꺼이 몸을 맡기는 사람들의 용기 같은 것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몸에서 아드레날린과 부신피질과 도파민 같은 것이 실제로 분비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정말 표현은 좀 그렇지만 “몸”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사랑의 시작이 그토록 낭만적인 것은 이후 일어날 끔찍한 살인사건을 극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가장 서정적인 씬들을 앞부분에 배치하라는 트뤼포의 영화창작론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사랑 이후에는 잔혹한 파괴였다.

어려서부터 숱한 사랑의 탄생과 죽음에 관한 서사를 접한 덕분에 상수는 무수한 사랑을 경험했고 그러는 동안 사랑의 진위나 사랑 후의 죄 없음—에 대한 일종의 기술을 터득했다고 생각했다. 그런 기술과, 삼수 끝에 들어간 대학의 독서동아리에서 읽은 필독 인문서들을 적절히 조합해 내린 결론은 사랑이라거나 연애라거나 하는 것에 복무하는 이들이 일종의 노동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다양한 통로로 물질 교환이 일어났으며 권력관계가 조성되었고 결국에는 어느 한편이나 쌍방의 착취로 관계가 종료되기까지 끊임없이 성실과 근면을 강요받았다.

누가 보면 연애를 냉소하거나 자기가 연애를 못하는 이유를 합리화하려는 가여운 노력에 지나지 않을 이 맹렬한 가설의 추동은 공상수 개인사의 최초의 연애, 김유정과의 연애가 발생하면서 오히려 강화되었다. 최선을 다해 자신을 보여주고 기꺼이 연애노동자가 되기를 지원했지만 돌아온 것은 오오사까발 인천행 비행기 안에서 받은 해고 통보였다는 것. 그렇게 내쳐진 뒤로는 끊임없는 대기의 시간이었다. 다행히 유정은 우리는 동료니까, 하면서 드물지만 함께 저녁을 먹어주기도 했으므로 그때를 기다리며 항시 대기하는 것이다. 폐쇄된 연애공장의 숙련공이랄까. 상수는 그의 이중생활 속에서는 자칭 타칭 연애의 숙련공이었으니까.

 

그렇게 상수의 매일매일은 경애에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날들이었다. 하지만 경애는 그런 상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가 지금 누구에게 자신의 비밀—옛 애인이라니, 기혼자라니!—을 털어놓은지도 모르고 태연하게 점심이면 시래깃국이나 동태찌개를 퍼먹으며 일에 관한 이야기만 했다. 그러면 상수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이런 말들을 에둘러 했다.

“경애씨, 요즘 무슨 영화 자주 봐요?”

“영화 안 보는데요, 그냥 유튜브나 봐요.”

“유튜브에서 뭐 보는데요?”

“코알라나 나무늘보 같은 것 보는데, 걔네 잠자는 거 찍은 세시간짜리 동영상이 있어요. 영상 보고 싶으면 그런 걸로 영상욕을 채우죠.”

“그런 거 보면 뭐 좀 재밌습니까?”

“나무늘보가 이렇게 사는구나, 하고 알게 되죠.”

“어떻게 사는데요?”

“시속 900미터로 살죠.”

경애는 양팔을 번갈아 들면서 어딘가로 기어가는 동작을 했다.

“그게 뭡니까?”

“나무늘보인데요, 시속 900미터로 움직인다더라고요.”

시속 900미터라면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을 상수는 했다. 아기가 아장아장 걷는 속도 아닌가, 아니면 눈에 보이는 뭔가가 아니라 무슨 분위기나 기미, 이를테면 계절 같은 것을 기다릴 때 느껴지는 속도가 아닌가. 겨울에 시달리다 시달리다 2월쯤이 되면 손꼽아 세어보게 되는 봄의 시작처럼.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감상적인 태도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거 퇴행입니다. 문제를 피하는 거죠. 제가 영화를 좀 봤지 않습니까? 경애씨, 요즘 날도 날이니까 그런 거 봐요. 「에일리언」이나 「그렘린」이나 뭐 그런 것 있죠? 외부에서 온 생물체가 숙주 몸에서 커나가다가 죽게 하지 않습니까? 죽게 한다니까요? 결국 그렇게 착취하려는 것들이 많다는 말입니다. 조심해야 해요. 깜빡 속거든요. 경애씨가 좋아하는 그 프랑켄슈타인도 있잖아요. 은혜를 원수로 갚잖아요.”

상수는 그 사람 만나지 마요,라는 메시지를 은근히 영화에 빗대어 하려다가 경애의 아이디이기도 한 프랑켄슈타인을 언급하고는 눈치를 살폈다. 혹시 경애가 언니가 자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어쩌나 싶었는데, 경애는 골똘한 표정으로 콩자반을 집어먹다가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아니에요,라고 손을 흔들었다. 아니라고? 아니라니, 상수는 경애가 뒷말을 잇기도 전에 그 쿨하고 간단한 부정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실망스러웠다. 자신이 언니의 입을 빌려 해준 모든 제안, 감정의 폐기를 경애가 거부한 것처럼 들렸다.

“아닙니까? 어쩌려고, 어떡하려고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

“프랑켄슈타인은 박사 이름이고요. 지금 팀장님이 떠올리는 그건 프랑켄슈타인이 아니라고요.”

상수가 그랬나, 하고 머쓱해하자 경애는 하기는 다들 그렇게 생각해요, 그게 프랑켄슈타인인 줄 안다니까요, 하고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저 그런 영화 싫은데요. 뭐 세상일이 그렇게 쉽게 갈려요. 그 단순한 생각이 퇴행이죠. 살면서 조금씩 안 부서지는 사람이 어딨어요? 아무 사건 없이 산뜻하게 쿨하게 살자 싶지만 안 되잖아요. 망하는 줄 알면서 선택하고,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기꺼이 부서지고. 상대를 괴물로 만들고 죄를 뒤집어씌워봤자 뭐해요?”

식당 아주머니가 와서 냄비를 가스불에 올려놓았다. 불꽃이 파랗게 돋았고 상수와 경애는 그 불꽃을 들여다보고 있을 뿐 한동안 대화가 없었다. 상수는 경애가 말한 괴물이라는 단어를, 경애는 상수의 죽게 하지 않습니까, 하는 물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건 평소에도 상수가 쓰는 좀 과장되고 허둥대는, 열도에 차 있지만 어딘가 공허해서 듣고 나면 왠지 ‘냉무’의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그런 말들의 일환이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분명하게 경애를 두드리는 부분이 있었다. 경애는 상수가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런데 무슨 근거로 자신을 걱정한다는 말인가. 자기가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도 않았는데. 하지만 그런 마음은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건지도 몰랐다. 찌개 국물이 기포를 밀어올리면서 끓는 기세에 쑥갓이며 대파가 어쩔 수 없이 흔들리는 것처럼. 상수가 그러면 프랑켄슈타인이 아니면 그것의 이름은 뭐냐고 물었다. 경애가 그냥 피조물이에요,라고 하자 상수는 피조물의 정확한 뜻이 뭐더라 하면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존재 같은 거구나, 존재.”

“존재랑은 좀 다르죠. 있다는 것과 있게 되었다는 것의 차이가 있으니까.”

경애가 다시 젓가락을 들어서 김자반을 밥 위에 올려놓고 떠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물우물 씹어 삼키면서 10대 시절에 제 별명이, 피조였어요,라고 말했다. 피조물에서 왔어요. 상수는 그 피조라는 단어가 아주 낯설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어딘가에서 들은 듯했는데 어디서였는지는 헷갈렸고 다만 피조라는 단어는 이런 것을 분명히 연상시켰다. 아주 오래전 유행하던, 거리의 낙엽을 다 쓸고 다닐 듯 통이 넓고 긴 청바지를 입고, 머리스타일은 기장의 끝을 날카롭게 자른 이른바 ‘칼머리’를 하고 다니는, 이제 막 촌스러움에서 벗어나 ‘힙함’을 표출하려고 하지만 여러모로 받쳐주지 않아서 힙함이 아니라 어딘가 ‘불우’의 느낌을 주던, 예를 들면 1990년대의 어느 풍경을.

“사실 요즘 제가 피곤하기는 하거든요.”

상수는 자기를 휩싸는 어느 먼 기억에 붙들려 들어가다가 귀가 솔깃해졌다. 그 일을 직접 털어놓으려는가 싶어서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들은 그렇지 않았고 경애는 도리어 상수에게 무슨 고민이 있느냐고 물었다.

“지금 우리 일이 뷔페집 가면 있는 슬라이스 오리고기처럼 쌓여 있거든요. 근데 영 업무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베트남 가겠다고 하고 현지에도 통보하고 거기서는 우리를 기다리는데 조선생님도 이제 만나야 하는데 조선생님은 정작 가려고 할지 알 수도 없고 아무리 일년짜리 파견이라도 파견은 파견인데 똑바로 안 하면 회사는 책임을 물을 거예요. 그게 회사예요.”

상수는 그러니까 그런 이메일을 보내서 왜 정신 사납게 하나 싶어 화가 치밀어올랐다. 하지만 생각나는 말을 다 할 수도 없으니까 잠자코 찌개 국물을 삼키면서 마음을 달랬다. 경애는 상수의 속도 모르고 그래서요, 제대로 하자고요, 우리, 하면서 저녁에 있을 약속을 상기시켰다. 조선생을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어떻게 해야 제대로 하는데요?”

“존중하기로 해요.”

경애가 약간 상수의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뭘요?”

“조선생님 상태를요.”

“무슨 상태 말입니까?”

경애는 일영에게서 조선생이 심한 알코올중독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미리 상수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알코올중독으로 손까지 떤다는 기술자를 누가 쓰려고 할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경애는 조선생 마음이 상해서, 자신을 몰아낸 회사에 돌아오고 싶어하지 않으리라 걱정했지만 현실은 좀더 비정했다. 기술을 가진 손 때문에 돌아올 수 있지만 그런 손을 통제할 수 없어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경애는 아직도 일영의 말을 믿지는 않고 있었다. 파업기간에도 언제나 볼펜을 잡고 일하는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게 준비되어 있던 손, 당장의 폭풍우가 아니라 삶을 더 집요하게 잠식할 안개를 경계하자고, 자기도 그러겠다며 경애에게 『파업일기』를 내밀던 그 손이 이제는 무언가를 붙들 수조차 없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지 않았으니까 아직은 변하지 않았다고 믿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그렇다면 상수의 마음을 믿어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수라면 그런 조선생과도 함께 일하겠다고 결심할 수 있지 않을까. 상수의 마음은 어디인지 특정할 수는 없는 무언가와 무언가 ‘사이’에 있다고 경애는 생각했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가야 할 일이 있을 때면 긴장돼서 진정제를 찾아야 하는 나약함과 상사에게 정말 낙하산이나 할 수 있을 것 같은 요구를 당당하게 하기 위해 그 상사의 방문을 열어젖히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은 패기 사이에 상수의 마음이 있었고, 경애와 자신 둘만 있는 사무실에 매번 허황된 매출 목표금액을 적어보면서 회사가 이루면 우리가 이루는 겁니다,라는 유의 근면한 노동을 강조하는 문구들에 마음을 기탁해보는 것과, 어떻게 해서든 실적을 내려고 공장들을 찾아다니다가 결국 영업담당자가 원하는 것이 커미션이나 접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눈에 띄게 낙담하는 것 사이에 상수가 원하는 세일즈맨의 마음이 있었다. 결국 상수는 마치 추처럼 어떤 것과 어떤 것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었는데 경애는 그가 그렇듯 갈등하는 것에 고유한 윤리가 있다고 느꼈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상수는 막무가내의 이기주의자나 꼴통, 심지어 고문관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마음의 질서가 있었고 다만 그런 자기윤리를 외부와 공유하는 데 서툰 것뿐이었다. 그렇다면 조선생의 통제할 수 없는 손에 있어서 그 ‘사이의 감각’은 발현되지 않을까.

“손 말인데요.”

경애가 숟가락을 내려놓고 의자에 기대어 상수를 한동안 건너보았다. 냄비에는 어느 러시아 근해에서 잡혀 꽁꽁 얼었다가 이제 경애와 상수 사이에서 토막이 나서 끓고 있는 동태가 있고 거기에는 무도 들어 있어서 가스불 위에서 아주 무르게 익어가는데 경애가 다시 한번 자기 손을 펼쳐 보이며 상수에게 손,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상수는 숟가락질도 멈추고 자기 앞으로 내밀어진 경애의 손을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경애는 본인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었지만 상수가 손을 내밀자 척 잡고는 악수를 하듯 흔들었다 놓았다.

그러고 나서 둘의 맹렬한 식사는 계속되었지만 상수와 경애는 그렇게 손을 잡았다 놓는 것만으로도 어떤 것이 교차되는 느낌이었다. 이제는 상수가 자기가 경애에게 단호하게 말했던 죽게 하지 않습니까?라는 말에 대해 생각했다. ‘언니는 죄가 없다’의 그 수많은 이들이 매번 그렇게 말이 되지 않는 사랑에 빠져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결국 페이스북에 로그인하고 말하고 떠들고 일상을 챙기는 걸 보면, 죽게 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이미 죽게 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면 경애도 그 이기적인 옛 애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든 스스로 살아남을 것이다, 좌초되거나 표류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어디론가 가닿을 것이다. 하지만,이라고 상수는 생각했다. 자신과 아무 상관 없는 일이라고 여기고 싶지 않았다. 이왕 알게 되었으니까, 경애가 일종의 SOS를 보냈으니까 연연하고 싶었다. 연연하지 않으면 오히려 자기가 어떤 상실감에 떠밀려 표류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식당에서 나온 경애는 자기가 손이라고 한 이유를 더 설명할까 했지만 조선생을 만나면 자연히 알겠지 싶었다. 들어가는 길에 상수가 까페 레이어를 가리키면서 시원한 거 한잔 살까요, 제가? 하고 물었다. 경애는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한동안 그 까페는 갈 수 없을 것이었다. 경애는 자신이 산주 선배에게 더이상 연락하지 말라고 이야기했을 때 선배가 절규하듯, 화를 내듯, 비난하듯 했던 말이 아직도 아팠다. 결국은 네가 이런 선택을 하는구나, 하는 말이었다.

“어떤 선택, 내가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는데?”

“나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서 나를 버리는 선택.”

경애는 말문이 막혔다. 자신에게 이별을 통보했던 사람은 오래전 그 여름의 산주가 아니었던가. 그때 그들이 완전히 죽은 사람처럼 멀어지지 않고 안부를 물으며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경애가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경애는 그들의 연인 시절을 기억하는 애들이 던지는 생각 없는 농담들, 그러니까 경애를 가리켜 순정파니 지고지순이니 혹은 할리우드 스타일이니 하는 소리들을 견뎌야 했고 어쩔 수 없이 마주쳐야 하는 경애의 선배이자 산주의 새 연인인 유란과의 이런 대화를 각오해야 했다. 괜찮지? 하며 살피는 기색들, 너와 나쁘게 지내고 싶지는 않아,라고 말할 때 호의를 가장했지만 경애를 난폭하게 흔드는 듯하던 말들.

유란 선배는 어느 겨울 경애를 불러 함께 영화를 보고 차를 마신 적도 있었다. 경애와 유란은 산주에 관한 화제는 애써 피하며 그들이 봤던 프랑스 영화 「잠수종과 나비」에 대해 이야기했다. 왼쪽 눈을 제외하고는 온몸이 마비된 남자가 등장하는 그 영화에서 주인공은 통제할 수 없는 육체를 지닌 자신의 처지를 깊은 바다에 잠겨 있는 잠수종에 비유하는데, 유란은 “우리는 육체에 봉인되었지만 상상력과 기억의 힘으로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라고 감독이 인터뷰한 기사를 읽어주었다. 그때 경애가 그 ‘봉인’이라는 말을 얼마나 필사적으로 붙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식에는 육체 너머의 것이 있다는 것, 어떤 사랑은 멈춰진 기억을 밀고 나가는 것만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는 것. 사라진 누군가는 그렇게 기억하는 사람의 인생에서 다시 한번 살게 된다는 것.

그 겨울 차를 함께 마시고 유란이 전화를 받으며 산주를 만나러 가는 장면을 경애는 아주 쓰디쓴 모욕감 같은 것을 밀어 넣으며 지켜보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유란이 통화하는 저편에는 산주가 있겠구나, 하는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그것은 분명한 안심이었고 이후에 산주를 완전히는 잃지 않는 것에 경애가 매달리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물론 그렇게 유란을 만나고 뒤돌면 걷는 사이사이 그만할까, 하는 말이 올라오기도 했다. 완전히 끝을 낼까,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하지만 그런 종결을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산주를 죽은 사람처럼 만들고 상관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그건 적어도 스스로를 피조,라고 불렀던 어느 시절 누군가를 잃어본 사람에게는 가능하지 않았다.

산주는 E는 어떤 애였어,라고 물어봐주곤 했다. E가 궁금하다기보다는 경애가 말하고 싶어하고 그리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산주는 경애가 블로그에 E에 관한 아카이빙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닫혀 있는 블로그가 아니라서 방문자 수가 카운트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결국 그들은 전후 사정을 아무것도 모르는 타인들이기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블로그나 마찬가지였다. 산주는 그것에 대해 기분 나빠하지 않았고 경애가 원하지 않으니까 블로그를 찾아보려 하지도 않았다. 다만 그렇게 기록할 수밖에 없는 기억이 있다면 자기에게도 알려달라고 했다. 누군가에 대한 기억을 혼자만 간직하는 것은 너무 고독한 일이니까. 그래서 경애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는데, 그건,

 

나는 아마 E와 처음 자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

나는 아마 꽤 괜찮은 파트너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

그랬어? 무슨 근거로?

그렇지 않아? 나와 하는 게 별로야?

아니지, 전혀 아니야.

사실 나는 그런 얘기를 하기도 했어, E에게.

자자고?

자게 될 거라고.

그러니까 뭐라 그랬어?

그러면 아주 따뜻하겠네,라고 했어,

얼마나 따뜻할까, 하고.

한동안 따뜻하다는 말을 쓸 수가 없었어, 기억이 나서,

어떤 말은 그렇게 기억에 빼앗기는 것 같았어, 쓸 수 없었어,

그런데 그런 말이 아니라 그렇게 일상적으로 써야 하는 말이 아니라 다른 말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어, 이를테면 경배 같은 단어, 그런 단어는 자주 쓰지 않으니까 불편할 것이 없잖아, 숙고 같은 말도 있겠지, 그런 말 따위는 쓰지 않아도 상관없잖아, 그런데 따뜻하다는 말은 어쩔 수가 없었어, 이 밥이 따뜻하다, 그런데 E가 죽고 나서는 따뜻하다,라고 생각하면 더이상 따뜻하지가 않아졌어, 따뜻하면 안 되는 것처럼 느껴졌어, 그러면 나는 그렇게 말하는 대신 말을 삼키고 밥이 먹을 만하다고 정정하면서 그런 몸은 어떻게 되는 건가 생각했어. 그러니까 거기서 3도 화상을 입고 겨우 살아남은 알바 하던 애가 자기 엄마를 붙들며 했다는 말, 엄마, 너무 아파, 이렇게 아픈데 왜 나는 죽지 않아, 대체 사람은 얼마나 아파야 죽는 거야. 그런데 E는 죽었잖아, 죽을 정도로 아팠다는 거잖아. 선배, 나는 그걸 떠올리면 무언가를 용서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대체 내가 뭘 용서할 수 없는지는 모르겠어. 나는 뭘 용서해야 하는 거야,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하는 거야, 누가 있는 거야.

 

그렇게 말하는 경애를 산주 선배가 안거나 끌어당기면 분명히 따뜻해졌다. 너무 선명하고 가까이 있던, 아주 세세하고 세밀하던, 그러니까 어느 크고 순한 개의 털이나 풀잎의 잔가시들을 만질 때 느껴지는 그 작고 촘촘한 살아 있음.

 

하지만 그런 기억이 누군가를 죽게 할 수도 있다면 상수의 말처럼 그것이 퇴행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생각에 빠져 경애가 전투적으로 걸어 횡단보도를 건넜을 때 미처 따라오지 못하고 적신호에 걸린 상수가 맞은편에 서 있는 게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햇볕이 싫은 상수는 가로수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해를 피해보고 있었다. 평소에도 점심을 먹으러 나가기 전 언제나 썬크림을 꼼꼼히 바르는 상수라서 그건 뭐 그리 유별난 장면은 아니었지만 문득 경애는 그런 상수의 몸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의 그림자들이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어두운 부분은 너무 어둡고 밝은 부분은 너무 밝아서 상수는 마치 성긴 빛의 그물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상수는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으면서 늦었으니까 먼저 들어가라며 손을 훠이훠이 흔들었다. 경애는 먼저 가려다가 담배나 피우면서 좀 기다리자 싶어서 꺼내 물었는데 상수가 또 팔을 들어서 안 된다고, 절대 안 된다고 엑스 자를 만들었다. 경애는 여태껏 그렇게 피워왔어도 여기서 걸린 적은 없는데 싶어서 무시하려다가 상수가 너무 애타게 팔을 흔들었으므로 포기했다. 그리고 그런 위반이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이라서 저렇게까지 팔을 필사적으로 흔드는가, 뭐가 왜 그렇게 안 되는가 생각하다가 마치 인사를 하듯 마주 손을 흔들어주었다.

 

*

 

집 근처 커피숍에서 만난 조선생은 일영의 말대로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전처럼 주머니가 있는 셔츠와 재킷 차림은 같았지만 너무 새것이라 도리어 긴장되고 불편해 보였다. 경애는 조선생 눈에는 자기가 어떻게 보일까 생각했다. 해고되지 않고 용케도 버텨 20대에서 30대가 된 사람의 안정감 같은 것이 느껴질까. 그렇지 않을 거였다. 조선생은 경애가 명함을 내밀자 거기에 쓰여 있는 ‘주임’이라는 직급을 마치 탄식하듯 되뇌었으니까.

대화는 쿠키처럼, 차와 함께 서비스로 나온 그 벨기에산 과자처럼 자꾸만 부스러졌다. 새로운 일자리를 제안받은 사람의 흥분이 없고,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려는 이들의 포부가 없었다. 한편 대화가 자꾸만 부스러지는 이유는 각자 너무 많은 감정을 견디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상수는 조선생이 전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뭐가 그렇게 달라졌나 싶으면서, 그새 너무 마르고 낯빛이 안 좋아진 조선생을 전과 다르지 않게 대하려고 애썼다. 과거에 상수가 도무지 세상일에 의욕이 나지 않아 근근이 출근을 해 시간만 퐁퐁 흐르길 바라고 있을 때 지금 상수가 하는 일이 어쩌다 걸린 낙하산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크게 말하면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게 돕는 노동이라고 말해준 사람이 조선생이었다. 여전히 반도미싱에서는, 베트남에서는, 중국에서는, 아무튼 세상 어딘가에서는 미싱이 돌아가고 조선생도 오래전 들고 다니던 서류가방을 여전히 들고 와 상수 앞에 앉아 있는데, 그러면 힘을 합치면 되지 않는가. 조선생을 만난 뒤 경애의 얼굴도 어두워져 과거의 어떤 일들에 잠겨가는 듯했으므로 상수는 일부러 나서서 너스레를 떨었다.

“주임이 어떻다고요. 주임이야말로 아주 정통성 있는 직급이잖아요. 요즘은 주임 생략하고 바로 대리 다는데 문제라고 봐요. 그게 다 주임(主任), 한자 그대로 묵묵히 맡겨진 주된 일에 임하는 그 주임을 안 거쳐서 그런 것 같아요. 어떻게 된 게 대리들은 직급이 말 그대로 대리하는 애들이라 그런지 잿밥이랑 줄서기에 관심이 그렇게 많고. 우리 팀은요, 조선생님, 박주임, 저, 이렇게 아주 간소합니다, 정직해요. 줄 댈 필요도 없고 경쟁 안 해도 됩니다.”

상수는 이렇듯 근거도 객관성도 없이 그저 편협한 자기분석을 하면서 분위기를 띄우려고 애썼다. 조선생과 경애가 이제 그만 앞으로 나아가기를, 오래전 그 파업의 실패를 상수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다시 만났으니까, 복직이 되는 거니까 해묵은 감정과 회한도 좋지만 이제 좀 다른 꿈을 꾸어도 되지 않는가. 그렇게 꿈이라는 말을 떠올리니까 상수의 마음이 뻐근해지면서 호찌민의 그 공단들을 휩쓰는 자신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그것은 안남미와 전쟁, 안개와 고립 같은 베트남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를 몰아내기에 충분했다.

상수가 호찌민을 구글 지도에서 검색해 보여주자 조선생은 저야 좋습니다, 월급이 다시 나온다니 좋지요, 당연히, 하고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자꾸 손바닥을 맞비비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한시간도 지나지 않아 조선생은 우리 어딘가로 옮기지 않겠어요? 하고 물었다.

“옮기다니 어디로요?”

상수가 묻자 조선생은 문득 정신이 돌아온 사람처럼 아녜요, 계속해도 됩니다, 얘기를 계속해요,라고 물러섰다. 조선생이 그렇듯 초조하고 불안해 보였던 이유가 술 때문이라는 것은 까페에서 나와 작은 선술집에 들어가고 나서야 알았다. 조선생은 안주가 나오기도 전에 소주를 연거푸 들이켰고 그러자 비로소 무언가에서 놓여난 사람처럼 편안해졌다.

“선생님, 전에는 청하 한잔만 하셨잖아요. 그러면 충분하다고 하셨잖아요.”

“충분했지, 충분했지.”

조선생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지금은 충분하지 않은지 다시 술잔을 상수에게 내밀었다. 상수가 술을 따라주고는 자기는 마시지 않고 내려놓자 조선생은 취기에 마음이 풀려 그윽해진 눈으로 마시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슬프다거나 서운하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그건 상대가 무슨 행동을 해서라기보다는 그저 자기 혼자 마음이 저 나락으로 떨어져내리는 사람의 아득함이었다. 상대가 잔을 들어주든, 같이 취해주든 상관없이 술자리가 길어지면 그냥 점점 더 자기만의 세계로 가버리는 흔하디흔한 취객처럼. 문제는 경애도 자기 잔을 자기가 채워가며 취해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서로의 고립감만 커져가는 술자리는 곤란했다. 이런 분위기로는 호찌민은커녕 공항 가는 한시간짜리 리무진버스에도 오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면 경애는 한국에 더 머물 테고 아무리 자기 동력으로 어떻게든 빠져나온다지만 한동안은 그 구남친이 자꾸 발목을 잡을 것이었다. 팀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기술자 1, 영업자 2, 이렇게 차차차 팀을 이루어 스텝을 밟지 않으면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게 되어 있다.

“선생님, 생활은 어떻게 하고 계세요?”

상수가 안주로 나온 소면을 조선생 쪽으로 밀어주며 물었다.

“생활도 생활이지만 술이 문제예요.”

“술이 왜요?”

“술술 넘어가서 문제입니다.”

“아직 기술은 쌩쌩하시잖아요. 다 잊지는 않으셨잖아요.”

상수가 그렇게 말하자 조선생은 소면을 집어먹으면서 미소를 지었다. 상수와 경애를 만난 이후 보여준 최초의 미소였지만 계속되면 될수록 살아볼 의지 같은 것을 앗아갈 듯한 웃음이었다. 그건 상수가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자주 봤던 웃음이었다. 상수는 이따금 죽은 어머니와 나눈 대화들을 맥락 없이 떠올리는데 그중 하나가 엄마, 엄마는 뭐가 어려워? 하고 물으면 어머니가 설핏 웃으면서 오늘이 어려워,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오늘이 왜 어려워?

오늘을 넘겨야 하니까 어려워.

오늘을 넘긴다는 것은 뭐야?

오늘을 견딘다는 것이지.

오늘을 견딘다는 것은 뭐야?

그건 오늘은 사라지지 않겠다는 거야.

오늘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건 뭐야?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거지.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건 뭐야?

내일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거야.

내일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건 뭐야?

내일은 못 견딘다는 것이지.

내일을 못 견디면 어떻게 되는데?

내일을 넘길 수 없게 되지.

내일을 넘길 수 없으면 어떻게 해?

그러면…… 쉬워질 수도 있다는 거야.

 

어머니가 그렇게 쉬워질 수도 있다고 말할 때 상수는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이동하는 기분이었다. 마음이 마치 계절이나 낮과 밤처럼 자연스럽게 다른 것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강제로 위치가 바뀌게 되는 것 같았다. 그건 엄마가 영영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나 엄마의 우울을 우려한다는 것과 다르게 마음이 아주 차가워지는 것이었다. 자기가 어머니에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며 누군가가 어깨를 툭 쳐낸 것처럼 한발 물러나 조용히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 순간을 ‘각오’하는 것이었다. 내쳐짐을 각오하는 마음.

그 시절 상수는 비 오는 날에도 괜히 자기 우산을 그냥 교실에 둔 채 나이키 슬리퍼를 신고 언덕배기에서 휩쓸려 내려오는 빗물을 거슬러 오르며 방황하는 아이였다. 그 빗물의 감촉은 아직도 느껴졌는데 아이의 한없이 느리고 기운 없는 발걸음이, 도시의 온갖 쓰레기들, 비닐과 크고 작은 나뭇잎들, 노끈들, 부스러진 스티로폼 조각과 연속해서 흘러드는 모래알 등을 거스를 때 느껴지던 그 섬뜩한 차가움이, 각오라는 단어와 가장 가까운 것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각오는 그렇게 대단치 않은 것들이 버려지는 가운데 무언가가 무언가를 거스르는 마음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본에서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들었을 때 상수는 찬 빗물을 거스르는 발걸음이 문득 멈춰진 기분이었다.

“가세요, 선생님, 거기 지금 기술자가 한명 있는데 선생님보다 더 나이가 있는 분이래요. 거기는 여기처럼 그렇게 안 빡세고 할 만하대요. 괜찮대요. 파업도 없을 거고 전 머리 안 밀어도 되고요. 나이가 서른다섯인데 머리 밀면 어떡해요. 공팀장도 똑바른 분이시니까 그래도 양심 있는 팀장이니까 괜찮아요. 문제없어요.”

경애가 그렇게 칭찬하자 조선생도 상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공상수씨는 정말 보기 드문 사람입니다, 강직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요, 하고 인정했다.

“그때 우리가 접대라는 것을 해야 했는데 상수씨가 절대로 안 간다고, 공장 사람들이 룸살롱을 가자고 그렇게 눈치를 줬는데도 싫다고 안 한다고, 결국 단란주점에 가서 공상수씨가 노래 부르고 탬버린 흔들면서 일인다역을 하면서, 그때 상수씨 뭐 불렀었죠? 노래를?”

상수는 은근히 기분이 좋아져서 여태껏 들고 있던 소주를 단번에 마셨다.

“제가 부르는 노래야 정해져 있으니까, 「말 달리자」 아니었을까요?”

“맞지, 그거 부르는데 아무리 춤을 한번 춰보려고 해도 클라이언트들이 박자를 맞출 수가 없어서 나중에는 그만해라, 시끄럽다, 그래도 꿋꿋하게 계속하고. 기억이 좋지요, 일하던 시절 떠올리면 그런 기억이, 그런데 저는요, 가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조선생이 최종적으로 그렇게 결론을 내자 경애는 할 말이 없었다. 조선생은 자기에게 중학생 딸이 있다고, 이제 열여섯살이라 가지 못하겠다고 했다.

“나는 한국에서 일해야 해요. 그런데 여기 자리는 반도미싱에서 줄 수 없고 베트남이나 가야 쓸모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내가 베트남에 가면 엄마도 없이 걔 혼자서 어떻게 지내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지요, 나는 아버지 아닙니까?”

 

술집에서 나와 셋은 고기 굽는 연기로 매캐한 먹자골목을 지나 하루살이 떼가 공중을 오르내리는 하수구 옆을 지나 취한 조선생을 부축해 집으로 갔다. 조선생의 집은 다세대주택의 2층이었다. 불투명한 유리문을 잡아당기자 안에서 “아빠?”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학교 체육복 차림으로 왈칵 문을 연 여자애는 조선생의 딸이었다.

“마셨구먼, 또 마셨어.”

여자애는 익숙하게 조선생을 건네받아 현관에 앉혔고 조선생이 아예 뒤로 넘어가지는 않게 간간이 잡아주면서 신발을 벗게 했다.

“영서야, 아빠랑 일했던 분들, 우리 반도미싱 직원들.”

조선생이 소개하자 영서라고 불린 여자애가 까딱 인사를 했다. 볼에 주근깨가 있어서 어딘가 장난꾸러기처럼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 인사를 받고 경애와 상수가 돌아가려는데 조선생이 둘을 잡고 여기까지 왔는데 앉았다가 가라고 고집을 피웠다.

“이렇게 또 헤어지면 우리가 마음이 어떻습니까, 들어와요, 누추해도 들어옵시다.”

영서가 아, 집, 엉망인데, 하고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그걸 본 경애와 상수는 그만 가겠다고 인사했는데 그러자 영서가 아녜요, 요거트 드시고 가세요, 하고 소리쳤다. 고마워요, 하고 경애가 말을 받고는 신발을 벗었다. 집은 방이 세칸이었고 따로 거실 없이 방 한칸의 문을 뜯어 거실 겸 부엌으로 쓰고 있었다. 흰 페인트칠이 거칠게 벗겨져 있는 문틀이 경애 눈에 들어왔다. 그런 건 집이 늙는 흔적들이었다. 어려서 엄마와 함께 오래된 집에서만 살아본 경애는 사실 집은 그렇게 낡는다기보다는 늙어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른 건물들에 비해 집이 변해가는 데는 외부의 영향보다는 내부의 소진이라는 맥락이 있었다.

영서가 식탁의자에 널려 있던 티셔츠와 수건 같은 빨래들을 치웠고 작은 포트에서 요거트를 퍼 담기 시작했다. 양파 한망이 놓여 있는 베란다에는 행운목과 산세베리아 화분이 자라고 있었다. 가지치기를 하지 않아 줄기들은 모두 들쑥날쑥했지만 그것들의 생생함은 이 집의 분명한 활기라서 경애는 화분 좀 봐, 잘 자랐네,라고 말했다. 영서가 해가 잘 들어서 그래요!라고 바로 대답했다.

“하루 종일 들어요, 해가.”

“좋다, 너무 좋다, 그런 집.”

집 안에는 자개로 만든 그릇장이 있고 조선생의 부인처럼 보이는 여자의 사진과 향불이 놓여 있었는데 물건들은 거의 낡아 보였지만 정리정돈이 깔끔하게 돼 있어서 집까지 오는 길의 소란스러움에 비하면 비현실적일 정도로 안락했다. 이윽고 영서가 요거트를 가져왔다. 자기는 요즘 다이어트 중이라서 이걸 자주 먹는다고 했다.

“선생님,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말랐어요? 난 마른 사람이 너무 부러워, 잘 안 먹죠?”

“선생님 아니고 그냥 언니. 언니 소주를 한병이나 먹었는데 요거트를 먹으니까 엄청 쏠린다.”

“괜찮아요, 화장실 바로 여기니까.”

“막힐지도 모르는데, 많이 먹어서.”

영서가 언니 되게 웃긴다, 하면서 킥킥댔다. 상수는 누구 집에 놀러 와본 것 자체가 수십년 만이라 적응이 되지 않았다. 아주 불편했지만 영서라는 여자애가 풍기는 활달함에 마음이 안정되어서 “잘 안 먹긴요, 경애씨는 매 끼니마다 충실히 먹습니다”라고 끼어들었다. 영서는 무슨씨, 무슨씨, 하는 거 들을 때마다 뭔가 웃겨요, 하면서 웃었다.

“영서야.”

조선생이 누워서 등을 돌린 채 불렀다.

“아빠 다시 취직시켜준다고 오라는데 영서는 어떤지?”

“그러면 돈 버는 거 아냐, 당연히 찬성이다. 돈 좀 벌어 와라.”

영서가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를 확인하면서 무심하게 대답했다.

“그런데 거기가 너무 먼 곳이야, 베트남이야.”

한동안 또 말이 없던 조선생이 말했다. 외국이라는 말에 영서는 고개를 들어 셔츠가 다 구겨진 조선생의 등을 잠깐 보았지만 다시 손가락을 움직여 문자를 보냈다.

“아빠는 가려고? 가고 싶지?”

“아니, 전혀.”

“나는 괜찮다. 이모도 있고.”

영서가 그릇들을 챙겨서 씽크대로 갔다. 그리고 물을 틀어 씻는 동안 조선생이 착잡한 목소리로 삼년 전 겨울에 영서 엄마가 세상을 떴어요,라고 말했다. 심장이 좋지 않았던 아내는 그날 뭔가를 예감한 사람처럼 힘이 하나도 없이 배웅하면서 잘 다녀와, 나 없어도 영서 잘 챙기고,라고 말했다고. 경애는 삼년 전이라면 조선생이 반도미싱에서 해고된 해라고 생각했다. 자기가 소각장으로 달려가서 그 노트, 여름 한철의 연대가 적힌 『파업일기』를 던져 넣었을 때쯤.

“아빠, 조문택씨, 그 얘기 그만해, 이제 하지 마.”

영서가 조선생을 일으켜 세우더니 씻으라며 욕실로 밀어 넣었다. 조선생이 욕실로 들어간 사이 상수와 경애가 이제 가겠다고 하자 영서가 계단까지 따라 나왔다. 그리고 그 일이 월급이 얼마나 되는지, 베트남으로 가기만 하면 이제 다시 회사원이 되는 것인지 물었다.

“그러면 좋은 것 아니에요? 아빠한테 좋은 거죠? 그러면 꼭 가야죠. 경비보다는 낫잖아요. 아빠 좀 거기 데려가주세요. 잘 부탁드려요.”

경애는 자기가 결정하는 사람은 아니고, 옆의 상수를 가리키며 이분이 팀장이셔,라고 했다.

“이분이 팀장님이면 우리 아빠는요?”

영서는 상수가 젊어 보여서 그런지 문득 그런 걱정을 했다.

“아빠는 선생님이셔. 선생님이라고 회사에서 불렸어.”

“선생 아닌데 왜 선생님이라고 불렀어요?”

잠깐 상수와 경애는 할 말이 없었다. 이윽고 경애가 “너무 좋은 분이라서 그래, 그런 사람은 여전히 회사에서도 선생이라고 불러. 그런 건 안 변해”라고 대답했다.

 

전철을 타고 인천에서 돌아오면서 상수와 경애는 창문에 비치는 둘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제는 이렇게 나란히 앉아 있는 장면이 어색하지 않다고 경애는 생각했다.

“조선생이 베트남에 간다고 할까요?”

역곡쯤 왔을 때 상수가 물었다.

“모르겠는데, 회사에는 어떻게 보고할 거예요?”

“뭐 다르게 보고를 합니까. 같이 간다고 하지.”

경애는 그 말이 귀에 들렸다기보다는 흘러들어온 것 같았다.

“괜찮겠어요?”

“뭐가 괜찮아요?”

“아니에요.”

“그러는 경애씨는 괜찮습니까?”

“뭐가요?”

“뭐든 말이에요.”

그러면서 상수는 경애의 얼굴을, 전철의 조명 탓인지 어딘가 말갛게 보이는 경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누군가의 얼굴을 이렇게 가깝게 바라보는 것은 아주 오랜만이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곧이어 언젠가 비행기에서 김유정을 그렇게 바라보았지 싶었고 그때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자신에게 가해졌던 밀쳐짐에 대해서 떠올렸다. 김유정의 그런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었을까 생각하면 견딜 수 없어졌다. 그런 마음이 있었지, 그랬지,라고만 생각하면 견딜 만해졌다. 그러니까 어떤 마음은 비행기가 착륙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강하듯 점점 떨어져내려 마침내 ‘0’이 되는 것이겠지. 상수는 방금의 그 생각을 꽤 괜찮다고 자평하며 메모장에 적어두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오늘도 편지를 쓰는 밤이니까 경애에게도 답장을 보낼 수 있을지 몰랐다.

폐기의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습니까? 그건 그렇게 하강하는 마음이 있다고 인정하는 겁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편지를 써야겠다고 마음먹다가 갑자기 울고 싶어져서 상수는 원래 잘 우는 사람이니까 이마를 짚는 척하면서 눈물을 쓱 닦았다. 아까 낮에 경애가 했던 말, 왜 누군가를 그렇게 괴물로 만들어야 해요, 하는 말이 비로소 귀에 들리는 느낌이었다.

물론 상수는 아직도 세상에는 분명히 괴물이 있고 괴물이 없으면 이런 난장판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으니까 있어야 한다고 믿었지만 그 있어야 한다는 것을 향한 열도는 좀 식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어딘가 마음이 굳은 것도 같고, 아니 어딘가가 조금 녹은 것도 같은 느낌이었다. 해빙기가 온 북극의 어느 빙하처럼 무언가가 녹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시속 900미터쯤의 속도로.

하지만 곧이어 그래도 되나, 괜찮은가 싶은 경계심이 들었다. 그래서 경애의 옆얼굴과 최대한 멀어지고 싶어서 시선을 밤의 차창으로 고정했는데 거기에는 대화가 끊기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는 경애가 비쳐서 곤란한 상황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시선을 주위의 승객들에게 돌리자 그날따라 전철에는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보고 싶었지, 당연히 그랬지, 하고 속삭이는 여자와, 애인이 휴대전화를 들여다볼 때마다 얼굴로 쏟아지는 애인의 머리카락을 올려주는 남자와, 서로 손을 잡고 상대의 얘기를 들으며 그랬어? 어머 그랬어? 하는 남녀가 있어서 어디에 시선을 맞추어도, 상대를 공경하고 사랑하는 경애(敬愛)의 마음이 강화되기만 하는 상황이었다.

“저기, 경애씨,”

상수는 이런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라도 입을 벌려 무슨 말을 떠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경애가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다가 왜요? 하고 물었다.

“무슨 노래 듣습니까?”

경애가 이어폰 한쪽을 건네주며 들어보라고 했다. 비치보이스의 「코코모」였다. 상수가 이거 영화 「칵테일」 주제가잖아요, 하자 경애가 그래요, 비치보이스,라고 답했다.

톰 크루즈,

자메이카,

로저 도널드슨,

겟 어웨이,

상수가 경애씨도 영화 좀 봤네요, 하면서 인정하자 경애는 심드렁하게 제가 이래 봬도 중학생 때 하이텔에서 유명하던 영화동아리 출신이에요,라고 했다.

“거기서 내는 영퀴, 영화퀴즈 그런 거 모르죠? 제가 그거 선수였다고요.”

“아이고, 제가 그걸 왜 모릅니까? 저도 거기서 놀았는데.”

경애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그래요? 하고 되물었다. 상수가 이제 자기의 전공분야가 나왔으니까 본격적으로 아는 척을 해봐야지 싶어서 경애 쪽으로 얼굴을 돌렸는데, 그때 어떤 사실이 떠올랐다. 피조와 인천과 전철과 영화동아리와 1999년 모든 것이 결합하면서 상수의 머릿속에 만들어진 것은 형상이라기보다는 소리였다. 너무 춥네, 하면서 말을 잇지 못하고 가만히 침묵을 이어가던, 은총이 죽기 전에는 아 씨 나 피조, 하면서 언제나 말을 시작하던 은총의 음성사서함에서 들었던 여자애의 목소리였다.

 

언니입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당분간 빠른 회신이 어려울 것 같아요. 사연에 답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그러면 어떡하냐, 우리는 어떡하냐, 하고 묻는 언니들이 참 많을 텐데요. 코브라자님과 애정훠궈님, 젖된느낌님 등 구력 오래된 언니 분들이 개인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연대하고 있으니까요, 급한 연애사건은 그쪽에서도 가능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진작에 받아놓고 미처 답신을 못한 이메일이 있는데 이런 말을 보냅니다. 마음을 어떻게 폐기하느냐고 물었지요.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느냐고. 그 사람이 나 너랑 전처럼 자고 싶어, 따뜻하게,라고 말한 날이 있었고 막상 당신이 욕실에 들어갔다 나오자 정작 그는 집으로 돌아가겠다며 옷을, 양말까지 챙겨 입은 뒤였다고. 그러고 나서 데려다주겠다는 그 사람 차에 타지 않고 강변북로를 달려 택시로 돌아오는데 자신이 완전히 파괴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잖아요. 그 새끼 뭔가요, 뭐, 사람 테스트해본 겁니까. 대체 어떤 욕을 해주어야 하나, 아주 고퀄로 레전드급으로 쌍욕을 하고 싶지만 언니, 폐기 안 해도 돼요.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강변북로를 혼자 달려 돌아올 수 있잖습니까. 건강하세요, 잘 먹고요, 고기도 좋지만 가끔은 야채를, 아니 그냥 잘 지내요. 그것이 우리의 최종 매뉴얼이에요.

 

 

7. 당신은 여동생이 있나요?

 

어머니가 지냈던 삿뽀로는 눈이 한해에 6미터나 오는 눈의 나라라고 했지만 상수가 기억하는 삿뽀로는 넓게 펼쳐진 감자와 옥수수와 무와 당근 같은 것들의 도시였다. 아주 작은 일본식 집들과 상수가 손가락을 가져다대며 하나둘 세어본 희고 푸르고 미끄럽던, 눈물을 닦느라 젖어버린 상수의 손바닥에 느껴지던 무표정한 병원 타일 벽의 도시. 그때 이모는 어머니의 주검을 그대로 옮겨 가 한국에서 화장하기를 바랐지만 아버지는 현지에서 처리하기를 원했다.

이모는 한국어를 잘하다가도 흥분하거나 화가 나면 일본어로 이야기했는데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상수로서도 분노에 차 있다는 것을 느꼈다. 방부 처리한 어머니는 다시 이모 집으로 돌아와 이틀을 보냈는데, 장례사들이 드나들며 준비를 하는 동안 상수는 그것이 일본식 장례였으므로 어머니를 가까이에서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입관 전까지 어머니는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평소 쓰던 이불 위에 누워 있었다.

“엄마,라고 불러봐, 소옥이가 대답하나.”

어머니는 녹색 투피스 안에 흰 블라우스를 받쳐 입은 모습이었고 그건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던 옷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첫 월급으로 산 그 옷은 아마도 묭둉이나 으르지로에서 샀을 것이라고 해서 상수는 이모의 일본식 발음도 발음이지만 자기에게 익숙한 지명들마저 미묘하게 달라져 자기를 완전히 낯설고 불안하게 하는 이 방이 싫었다. 그래서 이모의 바람과는 달리 어떠한 다정한 호칭으로도 죽은 엄마를 부르지 못하고 있는데, 어디서 주워 왔는지 고무줄 하나를 손으로 감았다 풀었다 하며 멍하니 벽에 기대어 있던 형 상규가 무릎걸음으로 와서 어머니를 들여다보았다. 어머니의 평소 사진을 보면서 화장을 했는데도 장례사가 해놓은 메이크업은 상수가 기억하는 평소의 어머니 얼굴보다 더 하얗고 입술은 붉었다, 마치 눈이 내린 얼굴처럼. 베개도 없이 누워서 천장을 마주하고 있는 그 얼굴은 내리는 눈을 정면으로 맞고 있는 듯 보였다. 지금은 여름이라서 어디에 눈을 맞추든 그 눈맞춤 하나로도 모든 것들이, 거리의 포플러나무나 옥수수밭의 잎들이나 어느 사소한 풀잎의 생장도 축복받는 듯한 한여름인데 어머니에게는 그렇게 겨울과 죽음이 연상되었다.

“엄마.”

상규가 손으로는 부산스럽게 고무줄을 잡았다 놓았다 하며 불렀다.

“응, 응, 그래, 상규야.”

이모는 마치 자기가 어머니라도 되는 것처럼, 응답인지 독려인지 모를 말을 옆에서 했다. 하지만 그러고도 상규는 말을 잇지 못하고 울었는데 변성기의 남자애가 엄마를 속 시원히 부르지 못하고 웅얼웅얼거리며 흐느끼는 소리는 내는 것이라기보다는 긁는 것에 가까웠다. 그런 형을 보면서 자기도 울어도 되는 것일까, 이제는 울어야 하는 것일까 생각하고 있던 상수는 문을 열고 들어온 아버지가 형의 뺨을 후려치는 장면을 보고 놀라 물러섰다.

“왜 때려요? 왜 때려요?”

상규가 버럭 화를 냈다.

“왜 울어, 울지 말라고 했지. 내가 그랬지, 울지 말라고.”

“왜요, 왜, 왜 때리냐구.”

장례사와 이모 쪽 친척들이 건너와 상규를 데리고 가는 동안에도 상규는 아버지에게 맞은 붉은 뺨으로 계속 왜냐고 물었지만 아버지는 대답이 없었다. 어쩌면 아버지도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 아니었을까. 그날 밤 상수는 부엌으로 나와서 이모가 건네준 푸딩을, 그 어쩔 수 없는 단맛과 청량한 레몬맛에 엄마가 죽었는데 식탐을 부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싹싹 긁어 먹었다. 이모는 냉장고에서 푸딩을 하나 더 꺼내 상수에게 건넸다. 상수는 어머니가 늘 강조했듯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고 찻숟갈로 긁어 먹었다. 형 상규는 아무것도 먹으려 하지 않았다.

“너네 부산에서 살던 때 생각나나?”

상수는 고개를 저었고, 부푼 뺨을 자꾸 주먹으로 눌러보며 울분을 참아보던 상규는 기억하는지 이모 쪽으로 힐끔 고개를 돌렸다.

“너희 오까아상이 제일 좋았던 시절로 그때의 여름을 들어. 너희 아버지가 교수도 국회의원도 아니고 그냥 정당에 일 봐주는 사람으로 그 야당총재 집 문간을 서성이던 때. 서울에 있을 때는 전두환이 방해하니까 너희 아버지는 무슨 사무실을 열어도 안 되더란다. 경제연구소니 뭐니 무슨 간판을 걸어도 안 되더래. 자꾸 집기를 들고 나가고 그렇게까지 하더란다. 그러니까 너네 엄마가 다 털고 엄마 고향인 부산으로 가서 살자고 했어. 취직을 하네, 뭐 하네, 하다가 파라솔 임대 장사를 했다더라고. 그런데 언니야, 파라솔을 백사장에 꽂아뒀는데 그해에 여름태풍이 몰려왔어, 아주 망했지, 모래가 다 쓸려나가고 망했지, 망했는데 그 시절이 나는 참 좋았지 싶다, 하면서.”

망자를 관에 넣고 하룻밤 지내는 날에 이모는 문득 어머니가 불렀다던 노래 얘기를 했다. 그건 상수도 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부부동반 자리만 가면 어머니에게 그 노래를 불러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10대 시절에 합창단을 하다가 누구 소개로 빙과류 광고의 CM송을 녹음했다. 아 달아, 아 달아, 아주 달아, 하면서 시작하는 그 노래는 일본 노래를 거의 그대로 가져와 베낀 거라고 했다. 「사탕수수밭」이라는 노래라고 이모가 짧게 흥얼거려주었는데 후렴구에 ‘자와와’ 하는 일본어는 ‘살랑살랑’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살랑 살랑 살랑

넓은 사탕수수밭은

살랑 살랑 살랑

바람이 빠져나갈 뿐

오늘도 눈에 들어오는 곳에서는

푸른 바다가 물결치고 있어

여름 햇볕 안에서

 

온통 눈을 맞은 듯 차갑게 굳어 있는 어머니와, 바다와 파도, 파쇄되는 여름의 백사장 같은 것을 떠올리게 하는 그 노래는 밤의 공기를 미묘하게 가르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겨울의 시간과 여름의 시간이 그 집에 공존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여기는 일본의 여름이니까 겹겹의 여름이 있는 셈이었다.

장례 기간 동안 아버지가 어떤 태도를 취했는가는 상수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어떤 몸짓으로 슬픔을 표현했는가 같은 것. 형인 상규는 마치 곧 터져버릴 공처럼 굴었다. 이미 어떤 것이 가득 차 있는데도 자꾸만 무언가가 주입되어서 머지않아 완전히 정말 파괴될 것처럼. 상수에게도 그런 부피를 가진 슬픔이 마음에 들어서 있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형처럼 열도와 에너지를 가진 무언가로 그 슬픔이 팽창해 외부로 나오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안에 원래 있던 것이 다 빠져나가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유령처럼 몸 같은 것이, 혹은 마음 같은 것이 없어져 어머니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들이 올 때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은 아주 비현실적인 세계로 넘어가버리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상수는 열심히 이런 것들에 대해서만 생각했다. 「인디애나 존스」나 「구니스」 같은 영화에서 주인공이 악당들에게 쫓겨 달아나다가 문득 동굴의 끝에서 벼랑이 나타나고 폭포수를 따라 떨어져도 절대 죽지 않고 살아나던 장면을, 그렇게 언젠가 고통은 느닷없이 끝나고 악당은 사라지며 주인공은 영웅이 되는 스토리를. 혹은 갤러그에서 갤러그가 내려오면 갤러그를 쏘아서 갤러그의 왕이 되거나, 테트리스에서 테트리스의 계속된 하강에도 테트리스를 쌓으면 테트리스의 왕이 될 수 있는 전자오락 게임을, 마치 지금 오락실 둥근 의자에 앉아 조이스틱을 움직이는 것처럼. 그렇게 서울에서 보내던 일상을 생각하다보면 엄마를 잃었다는 실감은 옅어졌다.

어머니의 죽음에서 그것을 설명할 말을 가진 사람은 누구도 아닌 이모였다. 이모는 중간중간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어를 써서 상수를 아리송하게 했지만 그렇게 구멍 난 사연들에도, 이상한 표현이 될 수 있지만 시퍼렇게 뛰고 살아 있는 슬픔이 있었다. 그것은 상수 형제와 아버지가 보이는 것과는 다른 질감이었다.

아버지는 뭔가 과정을 정확하게 처리하고 싶어한다는 느낌이었다. 운구차가 시간에 맞게 화장터에 도착할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조문객이 찾아왔을 때 식사대접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일이 일본식으로 흉일은 아닌지, 어머니는 잠시 성당에 다닌 적도 있는데 불교식 장례를 치르면 무리가 아닌지. 그리고 그것이 너무 중요한 듯 이렇게 확인했다.

“자살은 아니죠? 자살은 아니잖아요.”

이모는 아니에요, 병사예요,라고 선선히 대답하다가도 문득 원망스러운지 왜, 왜요, 소옥이한테 죄지은 기분이라 그래요?라고 날카롭게 물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죄는 제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하고 냉랭하게 대답했다.

“신경이나 썼고요? 여기로 쫓아낸 것 말고 무슨 신경을 썼어요? 애가 아플 때 어떻게 했어요? 아픈 애 두고 그 집에서 비서랑 동거하면서.”

지금은 새어머니가 된 그 사람, 그 사람이 단순히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와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상수는 그때서야 알았다. 그게 뭘 뜻하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면서도 이모의 힐난하는 말투, 경멸스러워하는 눈빛이 단번에 그 나쁨을 알 수 있게 했다.

“아닙니다. 그런 것 아니에요.”

“그러면 뭐, 도움이 되니까 그래요? 제부, 그렇게 하면 선거에 도움이 되는 거예요?”

“선거에 그런 게 왜 도움이 돼요?”

“그러면요, 우리 소옥이가 뒷바라지 다 했는데 좋은 시절 되자 어떻게 했어? 어떻게 했어?”

검정원피스를 입고 있던 이모는 물결무늬의 그 치마를 와락 쥐며 물었다.

“처형, 그런 소리 맙시다. 자살은 아니다, 이렇게만 말해요.”

“자살이 아니면요, 자살이면요, 제부에게 뭔 해가 될까봐 계산합니까?”

“아니요.”

아버지는 홱 일어났는데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그런 아버지의 그림자는 아주 길어졌다.

“그러면 내가 용서를 못할 것 같아서 그럽니다. 그런 짓을 했다면 내가 용서를 어떻게 합니까. 왜 합니까, 내가.”

 

그 용서는 누가 누구에게 하는 것이었을까.

 

츠야(通夜)라고 하던 그 애도의 밤은 그런 식이었다. 어머니를 조문하는 사람은 몇 안 됐는데 나중에 들어보면 어머니가 종종 갔던 베이커리, 정육점, 생선가게, 찻집, 편물점과 약국의 주인들이었다. 어머니는 작은 동네를 벗어나지 않은 채 일년을 보냈다고 했다. 이모도 거실에 나가서 잠깐 눈을 붙이는 밤, 상수는 으스스함을 느끼면서도 어머니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다른 사람 없이 상수와 어머니만 남게 되자, 아주 오래전 기차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월부 책장사를 했던 어머니는 상수를 데리고 부산에 가서 여고 동창들에게 백과사전이나 위인전 같은 책을 팔았는데, 동창 중 하나가 “니 구두가 그게 뭐꼬?” 하고 가리켰다.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오는 동안 상수는 계란이며 켄터키후랑크 같은 간식들이 먹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너무 말이 없어서 참았다. 어머니는, 지금 따져보면 서른도 되지 않았던 어머니는 대전쯤 지날 때 내리고 오르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재빠르게 내려가 가락국수를 사들고 왔고 상수에게 젓가락을 쥐여주었다. 고춧가루가 떠 있고 쑥갓 한줄기가 장식으로 놓여 있는 굵은 면발의 국수였다. 어머니는 자기 앞에 놓인 국수를 먹지 않고 한동안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문득 구두를 벗어 살펴보았는데, 마치 쥐가 쏠아먹은 것처럼 뒤축이 벗겨져 있었다. 어머니는 그걸 손톱으로 좀 긁어보다가 괜찮고마는, 하고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사투리로 혼잣말한 후에 젓가락을 들어서 국수를 후룩후룩 먹었다.

“엄마, 사라진다는 건 뭐야?”

향이 타면서 재가 부스러져 내렸다.

“오늘은 없다는 거야?”

상수는 언젠가 자기를 충격했던 엄마의 말들을 떠올리며 다시 물었다.

“그러면 내일은?”

그러자 그렇게 가볍고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을 것 같던 상수의 마음에서 통증이 생겨났다. 어디 한군데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아주 산발적으로 마음 곳곳에서 느껴졌다. 나중에는 텅 비어 있는 곳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꽉 차게 아팠다.

 

상수는 화장터에서 어머니의 뼈들을 볼 수는 없었다. 너무 어린 아이는 볼 수가 없다,라고 장례사가 제지했다. 그걸 보고 나온 것은 형 상규였고 나오자마자 상규는 왜 그런지 자기 눈을 아주 세차게 여러번 때렸다. 형이 찰싹하고 스스로를 그렇게 때릴 때마다 상수도 자기 몸 어딘가가 아픈 느낌이었다.

“형, 하지 마.”

하지 말라고 하자 상규는 더 세게 자기 눈두덩이를 때렸는데 그래서 기껏 괜찮아진 얼굴이 또다시 부풀어 오르고 말았다. 그러는 형이 싫어서 상수는 계속 말리다가 이윽고 둘의 싸움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상수가 일방적으로 맞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주먹질도 어른들에 의해서 멈춰지고 그렇게 떼놓아진 둘은 화장장 마당에 주저앉아서 숨을 골랐다, 옷을 털었다, 서로 등지고 딴 곳을 바라보았다. 화장장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나 유골함을 들고 나오는 사람들의 검은 구두 같은 것 그리고 매미의 활기찬 울음과 잠자리의 비행. 상규는 나뭇가지로 흙바닥을 마구 휘젓듯 낙서를 하다가 상수를 쏘아보면서 아버지 말은 거짓이야,라고 했다. 상수는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형이 너무 싫었으므로 고개는 돌리지 않고 귀만 좀더 열었다. 상규가 또다시 거짓이야,라고 외쳤다. 다 거짓말이야, 잊지 마, 거짓말이라고. 상수는 그 말이 뭘 뜻하는지 생각해보려 했지만 이미 그때는 상수의 마음속에 찬 슬픔이 몰아닥친 후였으므로 그러지는 못한 채 어머니가 완전히 사라진 오늘을 맞았다.

 

*

 

경애는 호찌민의 이런 것들을 좋아했다. 도로의 흐름을 완전히 장악한 오토바이, 거리에 나서면 그것들이 웅웅대는 소리에 평소처럼 이어폰을 끼고 걷기란 불가능할 정도였는데 그런 부산한 흐름이 나쁘지 않았다. 활력 있게 느껴졌다. 반도미싱의 호찌민 지사에는 대리점 관리와 영업을 맡고 있는 지점장과 김부장, 오과장, 헬레나라는 베트남 직원과 창식씨라고 부르는 기술자가 있었다. 헬레나는 영어와 한국어가 가능했고 칠년 동안 지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김부장은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푸미훙에 집을 가지고 있어서 처음에 셋은 거기에 머물렀지만 가장 먼저 조선생이 창식씨와 함께 지내겠다고 나오고 다음으로는 경애와 상수가 각자 아파트를 얻었다. 사무실이 있는 시내와는 20분 정도 거리였지만 새 건물에 방과 거실 그리고 단지 내에 작은 수영장까지 있는 아파트였다. 경애는 매번 어쩐지 믿기지 않는다는 기분으로 수영장을 내려다보았다. 수영장은 언제나 한국인 아이들로 붐볐다. 경애는 언젠가는 저기서 수영을 한번 해봐야지 싶었지만 그러자면 수영복을 먼저 사야 할 것이고 수영복을 입으려면 제모를 해야 하고 무엇보다 수영을 못하니까 일단 수영부터 배워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다가 다 귀찮아지면서 차라리 수영장이 없다고 여기자고 결론 내렸다. 상수에게 그렇게 말하자 없다고 여기면 없을 수 있으니까 좋은 겁니다,라고 동의인지 논평인지 모를 응답을 했다.

사무실 사람들은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들을 환영했다. 김부장은 상수를 데리고 다니며 호찌민의 고급 술집들을 찾아다녔지만 거기서 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상수가 난장을 피운 뒤로는 고가의 저녁을 함께 먹는 정도의 회식으로 단합을 도모했다. 경애는 베트남의 여자들, 오토바이 위에 앉아서 시동을 걸고 버스와 택시의 경적에 아랑곳하지 않고 묘기를 부리듯 빠져나가는 어리고 젊고 늙은 모든 여자들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안전모를 쓴 그들은 아이들을 태우거나 짐을 싣고 비가 오면 우비를 걸친 채, 거리를 달리니까 당연히 무표정한 얼굴로 운전했는데, 거기서 나오는 어떤 쿨함이 있었고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니까 헬레나가 이렇게 묻는 태도 같은 것. 그날은 직원들이 다 나가고 헬레나와 경애만 점심을 먹었는데 한국어로 대화한 뒤에 문득 그런데 베트남어는 전혀 모르나요? 하고 물었다. 경애는 급하게 발령받느라 준비할 시간이 없었고 산주와의 일로 힘이 들었던 터라 간단한 자기소개조차 익히지 못했다. 여기에 와서 내내 편하게 대화했던 것, 마치 환대처럼 쏟아지던 한국어들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경애는 최종적으로 미안해졌다.

“다 한국인들 상대로 하는 영업이니까 못해도 상관은 없겠지만. 몇마디 하면 더 친절할 거예요, 사이공이.”

헬레나는 평소에도 자기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는데 이렇게 한번 짚으며 넘어갔다. 헬레나의 영어 실력은 경애보다 월등했다. 직원들이 원할 때마다 영어로, 혹은 한국어로 얼마든지 이야기해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자기 편하자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경애를 위한 충고였다. 경애는 서점에 가서 교본을 샀고 베트남어가 같은 발음이라도 성조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는 사실부터 배워갔다. 예를 들어 ‘마’라는 발음은 어머니, 그러나, 혼, 무덤, 말, 볏모 이렇게 여섯가지나 되는 의미였다. 모두 다른 뜻이었지만 하나씩 떠올려보면 같은 발음을 써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처럼 연관성 있게 느껴졌다.

경애는 헬레나와 친해지기 위해 애썼는데 사무실 사람들을 본 결과 그가 가장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한국인 직원들은 상수와 경애 그리고 조선생과 미묘한 방식으로 거리를 두었다. 그들과 협력관계가 아니라 아예 다른 회사의 영업직원들과 다를 바 없는 경쟁관계라는 건 입찰할 때 여실히 드러났다. 호찌민에 온 지 일주일 만에 상수는 한 한국계 회사에 입찰을 넣으면서 입찰가격을 지점장과 상의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 팀의 김부장도 입찰을 넣은 건이었다. 그리고 김부장이 계약을 땄다. 상수가 침을 튀기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한 회사에서 어떻게 그렇게 먹느냐고요! 했을 때 지점장은 심상하게 여기 영업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여기서는 영업자 하나하나가 다 자영업자야.”

엄밀히 따지면 이미 영업부가 있는 상황에서 또다른 영업부가 파견된 셈이고, 경애네가 굴러들어왔으니까 할 말은 없었다. 그런 이중 경쟁은 직원들에게는 피곤했지만 회사로서는 손해가 아니었다. 그러니 한놈이라도 걸려라 하는 식으로 영업사원들을 풀어놓는 것이었다.

“커미션입니까? 결국 커미션이죠?”

상수는 이런 내부의 경쟁은 생각지도 못하던 터라 분을 삭이지 못했다. 조선생은 꼭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말했다.

“생각을 해봅시다. 내가 상대 회사에 오래 다닐 사람이라고 해보자고요. 누가 커미션을 줍니다, 주는데 그거 먹으면 코가 꿰이는 것이고 약점이 잡히는 셈이지요. 그러면 안 먹게 되지요. 그런 거 먹는 사람은 대부분 여기에 공장 차리는 것까지만 하고 뜨는 사람들이에요. 회사에서도 그런 사람 보내서 공장 짓고 나중에는 지사장을 교체하지요. 그런 경우에야 커미션이 기준이겠지만 아닐 수도 있어요.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아요.”

“그러면 뭘까요? 커미션이 아니면요.”

이야기가 그쯤으로 흐르면 조선생은 기술자인 제가 압니까? 하면서 발을 뺐다. 그러면서도 상수에게 슬쩍 이렇게 던져놓았다.

“사람 마음 다 똑같아요. 공팀장은 어떨 때 마음이 갑니까? 인간을 걷어내지 마세요. 내 경우에는 어떤 일이든 그렇습니다.”

조선생이 기술자인 창식씨와 함께 지내기로 한 것도 적어도 경애의 눈에는 인간적인 연민 때문으로 보였다. 창식씨는 직급 하나 없는 기술자였다. 원래는 중국에서 일했는데 여기 기술직이 갑자기 비어서 급하게 옮겨 왔다고 했다. 그게 5년 전의 일인데 여기 와서 그랬는지 아니면 원래 그런 채로 파견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생활이 엉망이었다. 가장 문제는 술이었고 그다음으로는 도박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형편없이 여린 마음이었다.

창식씨라는 호칭에서도 알 수 있었지만 지사의 직원들은 환갑이 가까운 그의 연배를 제대로 대접해주지 않았다. 무슨 일을 그렇게 매번 잘못하는지 김부장은 불러다가 “아, 창식씨, 김창식씨는 사람이 반밖에 없습니까? 정신이 반밖에 없어요? 일을 왜 그렇게 하느냔 말이에요” 하고 다그쳤다. 창식씨는 그런 욕을 먹은 날에는 괴로워했는데 그 괴로움을 표현하는 방법도 일반직원들과는 달랐다. 창식씨는 정말 울면서, 점심에 그를 위로하기 위해 조선생이 일부러 그를 불러서—상수나 경애는 그다지 원하지 않았지만—분보후에 같은 매운 쌀국수를 같이 먹으러 가면 정말 아이처럼 치대면서 이제 김부장이 자기를 미워하지 않겠느냐고, 회사에 나쁜 말을 해서 자르지 않겠느냐고 울먹이곤 했다. 무슨 일을 그렇게 잘못했느냐고 물으면 뭔가 얘기하려고 하다가 눈치를 보면서 입을 닫았다.

“내가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지요. 그런 건 배신이니까 배신할 수는 없어.”

“무슨 말이기에 배신까지 나와요?”

그렇게 상수가 나서서 물으면 창식씨 입은 더 굳게 닫혔다. 그리고 술이 먹고 싶다고 또다시 칭얼거려서 맥주를 시켜주면 그걸 마시면서 갑자기 김부장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래도 좋은 사람이에요. 아주 전두환 같은 사람이에요.”

“전두환처럼 좋다는 건 대체 뭐예요?”

상수가 그렇게 묻자 창식씨는 공팀장님이 모르는구나, 하면서 언제 울었느냐는 듯이 표정을 펴며 웃었다.

“영업 참 전두환처럼 한다, 아, 그 영업자 전두환이지, 하면 남자라는 거지. 남자답게 한다는 거지. 전두환이가 어떻게 아직도 그렇게 건재할 수 있겠어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아직도 충성하는 자들이 많으냐 이거야. 다 나눠 먹고 싸나이답게 갈라 먹어서 그래. 김부장이야말로 전두환이지, 남자지.”

조선생이 여기 와서 가장 먼저 회사에 제안을 한 일도 창식씨에 관한 것이었다. 이름을 부르지 말자는 것이었다. 조선생은 여기 올 때부터 경애와 상수가 그렇게 부르고 본사에서도 그랬다고 하니까 지사 사람들도 선생,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같은 일을 하며 나이는 오히려 많은 사람이 창식씨라고 호칭되니까 부당한 것 같다고 했다.

“창식씨를 그러면 창식씨라고 부르지, 뭐라고 해요? 회사에서 직급을 안 주는데. 조선생, 씨도 경칭이에요, 하대가 아니에요, 경칭에 붙는 말이라고요.”

김부장은 조선생의 태도가 좀 아니꼽다는 투였다.

“그러면 저도 그렇게 부르세요. 형평성을 따지면 그게 낫겠습니다.”

“그러세요, 원하는 대로 서비스해드려야죠.”

그렇게 조선생이 문택씨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과 조선생이 김부장네 집에서 창식씨네 집으로 옮긴 시기는 같았다. 조선생은 사무실과 가까운 데서 지내며 집세도 싸니까 좋다고 했다. 경애는 걷는 것마저 위태로워 보이는, 20도가 조금 안 되는 호찌민의 아침 추위로도 두통이 인다고 몸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저 만성의 알코올중독자와 조선생이 함께 지내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조선생이 혹시 더 형편없이 망가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문득 여기까지 와서 우리가 모두 망가져서 돌아갈 수는 없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뭔가를 하기 위해 나서고 싶어졌다. 그건 한국에서 떠나올 때 영서와 약속을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출국하기 전 영서는 아빠를 잘 부탁한다며 전화를 걸어왔고 경애는 지금 어디에요? 하고 묻고는 만나서 밥을 먹었다. 모처럼 서울에 온 영서는 무엇을 보아도 기분이 환해진다고 기뻐했다. 그리고 자기가 사왔다며 로드숍에서 파는 장미향이 강한 화장품을 선물로 주었다. 나중에 보니 좋아하는 연예인의 브로마이드를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선물이기는 했다.

그날 저녁을 함께 보내고 전철역에서 배웅하려는데 영서는 경애에게 언니는 여동생이 있어요? 하고 물었다. 경애가 없다고 하자 영서는 잘됐네, 나도 언니가 없는데, 하며 웃었다.

“아빠 잘 있겠죠?”

“언니가 술 많이 안 먹게 감시할게.”

“언니, 술은 괜찮아요. 먹으면 기분이 좋잖아.”

“뭐야, 영서 그런 거 어떻게 알아? 물론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러자 영서는 큭큭 웃으면서 대답은 하지 않았다.

“언니, 나는 우리 아빠가 안 죽고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아빠만 될 수 있으면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아요.”

조선생은 호찌민까지 끌고 온 캐리어를 다시 챙겨서 옮기는 것으로 간단한 이사를 마쳤다. 그 집은 여행자의 거리가 있는 빈탄 지역에 있어서 매일매일 사람들로 넘쳤다. 그런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걸어가는 조선생과 창식씨를 보고 있으면 그들은 오랜 여행에서 낙오되어 이 끊임없는 이동과 피로, 불안과 고독감이 여행이라는 임시성을 가진 과정인지 아니면 뚜렷한 영속성을 지닌 일상인지조차 중요하지 않게 된, 그렇게 해서 목적지나 도착이라는 것과는 상관없는 삶을 선택한, 그렇게 해서 특별하게 늙고 분별성 있게 남루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하지만 조선생은 경애의 걱정과는 달리 오히려 창식씨를 지지대로 삼아 생활을 챙기기 시작했다. 빈탄 거리의 그 방은 세간이랄 것 없이 창식씨의 물건들로 어질러져 있었는데 조선생은 그걸 치우는 일부터 나섰다.

“구선배는 고향이 어디라고 했어요? 구미?”

조선생이 치우기 시작하자 창식씨는 돕겠다고 나서기는 했는데 뭔가를 치워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그냥 조선생을 따라다니며 근처의 물건을 집었다 놓았다만 했다.

“김천이지, 김천.”

“거기는 누가 있나?”

“있지, 친척들 죄다 있어요. 우리 선산도 있고 밭도 있고.”

“한국은 언제 들어가고 안 갔는데?”

“한번도 안 갔지, 간 적이 없지.”

“왜, 가족들이 왔나 그럼?”

“아니, 오지도 가지도 않았어. 나보고 오지 말래.”

“그러면 생활비만 부칩니까?”

“아니, 그것도 뭐 내가 버는 게 얼마 없으니까 돈도 못 부치지. 그런데 돈 못 부쳐서 미안하다고 하면 그런 거 바라지도 않는다고 어디 가서 죽어도 연락도 말라던데 마누라가.”

창식씨가 돈이 없는 건 월급이 적어서만은 아니었다. 술 먹는 데 돈을 많이 쓰기는 했지만 그것 때문만도 아니었다. 카지노의 슬롯머신 때문이었다. 김부장은 원래 씀씀이가 큰 것인지 아니면 지사가 매번 큰 이윤을 내고 있는지 회식이 잦았다. 경애네를 끼워주는 날도 있었지만 아닌 경우가 더 많았는데, 창식씨는 회식이 있다고 하면 손꼽아 기다렸다. 술도 먹을 수 있고 여자도 안을 수 있으며 슬롯머신을 마음껏 당길 수도 있으니까. 그런 데를 따라 다니다 익힌 재미는 창식씨 몸에 아예 배어버린 것 같았다. 자기 의지랄 것이 있어야 비난도 하고 충고도 할 텐데 보이지 않으니까 연민이 생겨났다. 창식씨의 그런 탕진을 부추긴 셈이면서도 정작 김부장은 냉혹한 일갈을 하곤 했다.

“한국을 생각해봐요. 저런 인간 뭐가 됩니까? 노숙자 안 되겠습니까? 여기니까 그래도 일자리도 주고 회식도 하고 대접하는 거 아니겠어요? 그래도 베트남이니까 여기 사람들이 우리 한 칠팔십년대 같아서 정이 있으니까 거래처에서 결혼식이라도 하면 창식씨도 초대해주고 그렇게 관계 속에서 사는 거라고요.”

경애는 호찌민 지사의 직원들이 공통으로 지닌 이 해명되지 않는 구태의 톤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쪽 사람들은 출장이 잦았는데 그 건이 대체 어느 회사에 어떻게 납품된 미싱 때문인지를 숨겼다. 미싱이 납품되면 창식씨가 나가 설치하니까 물어보면 창식씨는 채 말하지는 못하고, 바빴어 경애씨, 아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어,라고만 했다.

경애는 이들이 아마도 다른 회사 미싱을 팔러 다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공업용 미싱은 미싱이라고 다 같은 게 아니라 무슨 옷을 만드느냐에 따라서 거기에 특화된 브랜드가 있었다. 얇은 원단에 사용하는 박물용 미싱과 가죽이나 두꺼운 원단에 쓰는 후물용 미싱만 해도 주끼, 미쯔비시 등 다른 일본제 미싱이 우수했다. 이곳의 한국 방직공장들은 주로 유럽이나 미국 브랜드들의 하청을 받았는데 자기가 선호한다고 반도미싱 것만 고집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발주처에서 미싱 브랜드를 지정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클라이언트가 어디 기계가 필요하다고 하면 영업자는 또 그것을 구해다 줘야 신임도 쌓이고 관계도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부수입도 생기고. 그러니 외국에 나오면 모두가 자영업자라는 말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누가 어느 정도로 얽혀 있는 건지 얼마나 불가피한 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경애는 아무에게도, 상수에게도 자기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문제를 그렇게 다른 이와 공유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지난 파업 때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달의 적응기간을 보내는 동안 경애와 상수는 함께 퇴근해본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로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둘에게 가장 먼저 주어진 과제는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드는 것이었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고 어떤 우연한 상조관계를 많이 예비해두어야 하는 것이었다. 관계망을 만들어놓아야 무슨 정보라도 얻어낼 수 있었다. 그러니 둘은 우연적이고 적어도 지금은 뚜렷한 목적이 없지만 뒷날은 모르니까 하며 여지를 남겨두는, 어찌 보면 주먹구구식의 미팅을 계속해나갔다.

그러자면 상상력과 무모함이 필요했는데 그건 상수가 어려서부터 잘 간직해놓은 능력이니까 문제는 없었다. 상수는 이른바 공장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모든 부속과 관련된 업자들을 만나러 다녔다. 호찌민에는 신기할 정도로 많은 한국인들이 그렇게 세분화된 목적을 가지고 머물고 있었다. 상수는 충청도 출신은 아니지만 인터넷에서 호찌민에 살고 있는 그쪽 출신들의 까페에 가입해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했다. 호찌민에 그쪽 지역의 발전기 회사가 나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최근 어느 지역의 회사와 신규 거래를 했는지 들었다. 껀터, 띠엔장, 까이베 등 아직 호찌민이 낯선 상수에게는 발음도 어려운 곳들이었다. 그곳을 지사의 베트남인 운전사인 토니에게 물어보면 매번 대답이 같았다.

“시골이에요, 시골, 베리베리 시골. 아무것도 없어.”

토니는 사무실의 유일한 운전사라서 회사 차를 타고 답사 나가려고 하면 미리 약속을 해야 했는데 그마저도 김부장 쪽에 일이 생기면 취소되기 일쑤였다. 상수는 자기가 약속했는데도 김부장이 토니를 데리고 나가버린 날, 직접 택시를 대절해 공장이 건설되고 있다는 소문이 도는 지역을 다녀왔다. 밤중에 돌아와서는 수영장이 보이는 아파트 벤치에서 경애를 만났다. 어때요,라고 경애가 묻자 “정말 컨테이너 하나랑 깃발밖에 없더군요”라고 답했다.

과장이 아니라 정말 상수가 왕복 여섯시간 동안 달려서 발견한 것은 충청도 말씨를 쓰는 그 공장부지의 관리자, 그리고 그 영역을 표시하는 깃발들뿐이었다. 이렇게 터닦기도 안 되어 있는 마당에 언제 건물을 올리고 미싱을 들이며 그 미싱은 언제 돌아가겠는가. 상수는 정말 맨땅에 헤딩하기를 실감했지만 그 좌절을 용케도 견디고 관리자와 안면을 텄다. 그는 마치 무인도의 로빈슨 크루소처럼 상수를 격하게 반겼다. 자기는 여기로 떨구어진 몇개월 동안 한국인과 이야기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발령을 받자마자 버젓한 술집 하나 없는 시골로 와서 그는 견디고 있었다, 외로움을. 상수는 그 각별하게 황량해 보이는 2000평 부지를 지키고 있는 관리자와 명함을 주고받았다. 관리자는 이제 날이 어둑어둑해져 어디선가 밥 짓는 냄새가 풍겨오고 오직 개들만이 컹컹 짓는 어스름 저녁까지 상수를 놔주지 않았다. 얘기를 하고 싶어하고 상수에게서 얘기를 듣고 싶어했다. 그는 견디고 있었다, 외로움을. 그런데 그 외로움이란 상수의 전문분야니까 상수는 어떻게 영업을 하면 되는지 단번에 알게 된 것이었다.

“우리는 재호찌민 한국인들은 다 외롭다,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외로움이야말로 우리의 영업방향을 결정할 중요한 조명탄이에요.”

외로움이라니, 경애는 생각했다. 경애가 보기에는 상수는 자기 외로움도 어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호찌민으로 오면서 상수는 김유정과 연락할 일이 더 많아졌다. 한국 쪽 상황을 전해 들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전화가 오가고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상수는, 그것이 꼭 김유정 때문인지 아니면 이국에 파견되었다는 사실이 주는 흥분 때문인지는 몰라도 기분의 냉온탕을 오가는 듯 보였다. 한때 연인이었던 이와 그렇게 인연을 이어간다는 것의 어려움을 경애도 이해했으므로 상수가 갑자기 경애에게 “누가 누구를 위한다는 건 대체 뭡니까?”라고 불쑥 묻는다거나, “누구랑 누구의 인연은 어떻게 정리되는 거예요?” 할 때 속내를 자세히 묻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대답해주려고 애썼다.

“그냥 일단은 마음 가는 대로 하세요. 분석은 나중에 하시고요.”

“마음 가는 대로 하라고요?”

상수는 뭔가를 생각하다가 알았어요,라고 마치 화난 사람처럼 대답했다. 상수는 의도적으로 그러는 것인지 어쩐지는 몰라도 경애를 피하는 인상이었다. 혹시 상수에게도 어떤 비밀이 생긴 건가, 경애는 생각했다. 모두가 자영업자가 되어 자기 자신의 이른바 부수입을 위해서 뛰는지도 모를 여기서 상수도 그런 말 못할 수입 건이 생긴 건가. 알 수 없었다, 물어볼 수도 없고.

“식사는 했어요? 아니면 뭐 좀 먹을래요? 떡볶이 같은 것?”

경애가 물었다.

“아니, 이 오밤중에 떡볶이 가게가 문을 엽니까?”

푸미훙은 마치 한국의 어느 신도시를 옮겨놓은 것처럼 웬만한 상점들이 다 있었다. 치킨, 떡볶이, 햄버거, 미용실, 각종 보습학원과 부동산. 대로를 중심으로 한국처럼 강북과 강남으로 나뉘어 불리는 것도 같았다. 강이 없는데도. 고급 빌라가 즐비한 이른바 ‘강남’ 쪽과 경애가 사는 ‘강북’은 집세가 세배 이상 차이 났다. 이국의 공간에서도 기어이 부려놓는 모국의 생활 패턴에 경애는 신물이 났다. 호찌민에서 한국인들은 대부분 회사에서 파견된 주재원이거나 다양한 공장의 관리급 사무원이었는데 베트남 사람들과 직접 관계를 맺는 데는 소극적이라고 했다. 게다가 한국인들끼리도 사는 곳과 직업, 소득에 따라 계층이 확실해 잘 섞이지 않았다.

“물론 신전떡볶이 같은 가게는 닫았죠. 집에 먹을 것 없으면 잠깐 우리 집에 가서 먹든가요.”

경애는 그 말을 하면서도 덤덤한 얼굴이었다. 상수만 놀랐다. 영화에서 보면 자기 집에서 뭔가를 먹자는 말은, 예를 들어 라면이나 커피나 초콜릿이나 과일이나 하는 것들의 섭취를 권유하는 건 중의적 의미를 띠지 않는가. 물론 그런 뜻은 아니겠지만, 경애는 실제의 상수에게 경계를 넘는 친근함을 표현한 적이 없었고, 언니라고 호칭되는 이에게만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지만 그래도 경애가 그렇게 말하자 상수는 견딜 수 없게 그 달콤하고 매운 간식을 원하게 되었다. 답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수상하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도 상수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하느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사이에 아파트 경비가 나와 수영장에 떠 있던 나뭇잎들을 걷어 내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베트남어로 된 가사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엘레지풍의 낭만적인 선율이었다. 엘레지는 확실히 무언가에 대한 그리움을, 그것이 가지고 있는 강한 마음의 인력을 노리면서 정작 표현은 그것을 모르는 척, 아닌 척, 가장하면서 부르는 노래였다. 가사의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내용에 비해서 저렇게 콧소리로 얇게 오히려 힘을 빼면서 부른다는 것. 하지만 그런 엘레지가 어울리는 밤도 있었다. 상수가 경애에게 속엣말을 할 수가 없고 경애도 상수에게 어떤 말을 할 수가 없는 지금처럼. 아니, 아마 경애는 그런 얘기를 할 생각도 하지 못할 것이었다. 현실세계에서는 경애가 은총이나 산주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두 사람이 얼마나 경애에게 중요한지를 역으로 드러냈다. 아직까지는 피조,라는 그 시절 자기 별명을 맥락 없이 언급하는 정도였다. 현실에서 상수는 지금 경애에게 그 정도 존재인 셈이었다.

상수는 경애와의 사이에 은총이 공통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도 아무 액션을 못하고 있었다. 어느날은 자연스럽게 얘기를 할까 싶어서 영화나 하이텔 동호회를 화제로 꺼내봤지만 깊게 들어갈 용기가 없었다. 그 얘기는 너무 아픈 상처와 연관되어 있지 않은가. 누군가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은 그 사람과 깊은 유대를 맺거나 내가 그 사람을 좀 안다는 자부심을 얻는 것과는 다르게 무기력해지는 것이기도 했다.

은총에 관한 이야기를 경애와 자연스럽게 나누고 걔가 얼마나 경애를 특별하게 생각했는지, 다정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회상하고 싶다가도 경애가 그 일을 어떤 방식으로 정리하며 살아왔을까를 생각하면…… 상수가 아는 경애는 그 기억의 어느 하나도 허투루 미뤄두지 못했을 것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페이드아웃되는 일이 다른 이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았다. 상수는 경애의 아이디를 검색해 몇년 전 이메일까지 읽어보았는데 어느날인가 경애가 말한 “봉인”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산주를 두고 한 말이었지만 은총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과거를 놓지 않은 것이란 스스로를 시간 속에 가두는 것이 아닌가. 우버 기사가 내미는 헬멧을 쓰고 호찌민의 도로를 오토바이로 달려온 경애가 사무실 앞에 활기차게 내리는 모습을 보며 상수는 하루의 시작,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기대해보면서도 그 봉인은 언제 풀릴까 생각했다. 저기 저 활기가 그것을 열어줄까.

경애의 아파트는 방 하나에만 짐들이 놓여 있고 거실과 다른 한 방은 텅 비어 있었다.

“방이 왜 이래요? 왜 한칸만 씁니까?”

“습관이 되어서요. 그냥 방 하나만 쓰는 게 편해요.”

누군가의 집에, 그것도 여자 집에 들어와보는 건 처음이라서 그런지 상수는 별것도 아닌 데 자극을 받았다. 페이스북에서 언니로 활동하면서 여자들의 일상을 끊임없이 재현하고 실제로도 화장품이나 목욕용품 같은 것들을 맹렬하게 소비해왔지만 경애의 물건들은 다르게 느껴졌다. 이를테면 경애가 구겨서 버린 화장솜이나 돌돌 말아서 끝까지 쓰고 있는 튜브형 핸드크림, 입구를 묶어놓지 않아 풀어져 있는 식빵 봉지와 오늘 살 것—소주와 베이컨이라고 메모한 종이 같은 것이, 생활을 함께하지 않으면 도무지 알 수 없을 경애의 면모가.

그때마다 상수는 어느 영화나 책에서도 그런 것, 그런 지엽말단적인 것들이 감히 어떤 감정—사랑—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다고 되뇌면서 그런 것들은 뭐 대단한 상징체계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으니까 감정의 파토스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고, 그렇게 누구나 흔하게 쓰는 소모품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코미디라고 인식하면서도 경애를 강렬하게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경애가 인스턴트 떡볶이를 전자레인지에 넣어 땡, 하고 돌리는 것도. 거기에는 어묵이나 파나 양배추 같은 것이 아주 쪼그라들어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후레이크로 처리되어 있었는데 준다는 야식을 그렇게 아무런 수고 없이 7분 만에 해치우는 일도 경애다우면서 그 집 안의 모든 경애스러움이 상수를 자극했다.

아무튼 경애가 줬으니까 상수는 묽은 국물에 둥둥 떠 있는 떡볶이, 이쑤시개처럼 가늘어서 어딘가 애처롭기까지 한 그것을 건져 먹었다. 재수 시절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먹었던 MSG가 강하게 환기되면서 상수는 그러나 그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부드럽게 감정들이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경애를 안는 상상도 어쩔 수 없이 했다. 상상이야 일단 드니까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포옹은 격정적인 게 아니라 어깨를 가만히 두드리고 싶은 정도에 가까웠다. 언니, 저는 파괴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라는 경애의 말. 나는 무엇을 기대하고 그렇게까지 한 것일까요? 그렇게 경애가 물었을 때 상수가 느꼈던 공통의 부끄러움과 슬픔.

“맛이 없어요?”

“아닙니다, 괜찮아요.”

상수가 벽에 붙어 있는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 포스터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린치 좋아해요?”

“아니요, 별로……”

“그러면 포스터는 왜 붙여놨어요?”

경애도 포스터를 올려다보았다.

“친구가 좋아하는데…… 몰라요, 그냥 한국에 붙어 있던 걸 가져왔어요.”

친구는 은총을 가리키는 것일 터였다.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을 말하는 투였지만. 막상 경애가 그렇게 은총을 암시하자 은총과 경애가 가까웠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상기하는 마음과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일어났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충동적으로 상수는 오래전 데이비드 린치 특별전에서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봤다고 이야기했다.

“집에 DVD도 있을 텐데 경애씨 뭐 친구한테 선물할 생각 있어요? 그때 영화 보고 나오는데 무슨 행사를 해서 응모했더니 그게 덜렁 왔더라고요. 나는 포장도 안 뜯었어요. 중고시장에서는 포장 안 뜯으면 가격이 뛴다면서요. 그렇게 고스란히 손도 안 댄 거면요.”

그때 경애가 DVD요? 하면서 상수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침묵이 길어지자 둘이 있는 상황이 어색해서 상수는 그릇을 개수대에 가져가 씻기 시작했다. 보드라운 수세미로 문지르자 거품들이 상수의 손에 풍부하게 일었다가 찬물을 틀자 완전히 사라져 나중에는 물기만 남았다.

“원래 그 체격이었어요? 뚱뚱한 적은 없고 계속 말랐었나요?”

상수는 경애가 자기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렇게 물었다는 데 왠지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더이상 닦을 것이 없는데도 개수대에 던져져 있던 행주까지 자기도 모르게 빨면서, 그렇게 경애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아니라고 했다. 자기는 20대 때 경애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살이 쪘었다고.

“얼마나 쪘었는데요? 잭 블랙만큼?”

“잭 블랙 정도면 양호하죠. 그건 살이 찐 게 아닙니다. 그냥 체력을 비축해둔 정도죠.”

“그러면요?”

“배우로 치면 홍금보 정도였던 것 같은데, 아니 사실은 더 쪘어요. 경애씨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쪘어요. 최대한 부피를 늘렸죠.”

상수가 행주를 탈탈 털어서 널고 돌아서는데 경애의 표정이 아까와는 미세하게 달라져 있었다. 어딘가 복잡하고 뭔가를 참아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 어떤 것을 골똘히 생각해보는 듯했다. 상수는 자기가 한때 체중이 많이 나갔다는 말이 그 정도로 놀라운가 싶었다. 곤충으로 치자면 변태에 가까운 외모의 변화가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건 아닌데, 그때 부숭부숭 살이 찌기는 했지만 이목구비의 뚜렷함이란 어디 가진 않으니까 개중에도 눈썰미 좋은 사람은 인상 좋다, 잘생겼다 칭찬하던 시절인데. 그러다 생각해보니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보러 갔을 때 아버지가 집어 던진 농구공에 얼굴이 형편없이 깨져 있었던 게 생각났다. 불행의 시절이자 굴욕의 나날이었다. 경애는 고개를 한편으로 삐딱한 채로 기껏해야 냉장고의 윙—하는 소음밖에 들리지 않는 상황 속에서 무슨 소리를 잡아내려는 듯 인상을 쓰다가 이내 대수롭지 않게 호찌민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땠느냐고, 피곤하지는 않았는지 물었다.

“네, 길은 뭐 길이니까요.”

상수는 그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 다른 건 둘째 치고 허리와 엉덩이가 진동 때문에 너무 아팠다. 그리고 왕복의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난 현장을 네군데나 지나쳐야 했던 것이—외로운 한국인 하나를 고립된 황무지 속에 남겨두고 달려오는 상황이라 더 그랬겠지만—그 저녁의 질주를 더 외롭게 했다. 그 무심히 큰 열대의 가로수 밑에 눕혀진 사망자가 흰 천으로 덮여 있는 사고도 있었다.

그런 풍경이 비애의 톤으로 느껴진 건 사무실의 오과장에게 들은 말 때문이기도 했다. 오과장은, 패기 넘치는 김부장과는 다르게 아주 심약한 젊은 직원이었는데 무슨 말이 새어나갈까봐 그러는지 상수네와는 거의 대화하지 않다가 이따금 호찌민과 호찌민 사람들에 대한 일반의 화제가 나올 때만 끼어들었다. 자기 내면에 이는 피로와 스트레스를 호찌민을 상대로 풀기라도 하는 것처럼 대부분 부정적인 평가들이었다.

김부장은 호찌민 사람들이 정이 많고 끈끈하고 온정적인 편이라고 했지만 오과장은 동의하지 않았다. 차갑고 냉혹하며 무섭도록 현실적이라고 했다. 교통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더라도 보상이 주어지면 그 처리에는 얼마 걸리지도 않는다고. 하지만 상수가 보기에 그것은 호찌민 사람들이 고유하게 지니는 속도라기보다는 자본의 속도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다른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상수는 호찌민과 그 인근에서 7만여명이 넘는 한국인이 먹고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이 비단 한국에서만 넘어온 것이 아니라 과떼말라나 사이판같이 옛날 미국기업들의 하청공장들이 있던 지역이나 중국이나 말레이시아 같은 아시아 전역에서 몰려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렇다면 호찌민은 그런 이방인들에 의해서라도 필연적으로 차가울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먹고사는 일만 아니라면 떠나고 싶은 마음이, 적어도 여기는 내 정주지가 아니라는 거부가 그들을 지탱하고 있을 테니까. 김부장은 호찌민에 10년 넘게 머물고 있었지만 자식들은 모두 한국에 들어가 있었다. 오과장도 함께 오지 못한 가족들이 한국에 있었고 지사장은 임기만 채우면 언제든 뜰 수 있으니까 지사 관리 이외의 업무에 큰 관심이 없었다. 사무실 분위기는 그래서 좀 무기력하고 허무한 톤이었다.

경애는 아파트에서 나가는 상수를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배웅했다. 괜찮다고 사양해도 바람을 좀 쐴까 해서요, 하며 따라 나왔다. 수영장 근처에는 이제 아무도 없었다. 조명을 켜놓아서 더 짙고 파란 수영장 물은 마치 누군가의 심연처럼 깊어 보였다.

“20대 때는 팀장님 체격이 지금보다 컸단 말이죠? 코뼈가 부러진 적도 있고.”

“그랬죠, 재수할 땐데 아주 엉망이었어요.”

그렇게 대답하고 둘은 헤어졌는데 자기 집으로 돌아가려던 상수는 문득, 그런데 자기가 그때 코뼈가 부러졌었다는 얘기를 했던가 싶었다. 자기가 경애 말을 듣고 그 시절을 회상한 건 맞는데—자기가 워낙 말이 많아서 늘 한 말을 다 기억 못하기는 하지만 대체 그런 말까지 했었나. 경애는 왜 그런 말을 한 건가, 어떻게 알았나 생각하다가 너무 장시간 오간 터라 피곤해서 재킷도 안 벗고 잠이 들고 말았다.

 

외로움을 영업의 중요한 무기로 삼은 것은 무척 상수다웠다. 상수는 그렇게 시골에 갇혀 있는 클라이언트들을 호찌민 시내로 불러내 관광도 시켜주고 식사도 함께했다. 단, 맥주 이외의 술은 마시지 않았는데 그러면 그들은 당연히 어떤 기대—유흥의 백미—같은 것을 품고 있다가 섭섭해서 입맛을 다셨다.

“아주 청정하네, 아주 청정해.”

경애가 있는 자리에서 그렇게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호텔이나 술집 그리고 마사지숍에서 몇십만원의 돈으로 할 수 있다고 알려진 유흥을 기대하고 온 경우였다. 그러면 상수는 처음에는 우리가 사람답게 살자고 공장을 돌리는 것 아닙니까, 하는 조선생이 전수해준 노동의 정신을 설파했지만 나중에는 안 먹힌다 싶었는지 “큰일 납니다, 차장님. 여기 공산주의 국가예요. 도박, 성매매, 마약 하다가는 공안한테 걸려요. 여기 감옥 어떤지 영화에서 보셨죠? 「빠삐용」에 나오는 감옥이 베트남 감옥 얘기예요. 바퀴벌레 잡아먹고, 아시죠?” 하면서 겁주는 편을 택했다. 의외로 효과가 있었지만 그중에도 유흥에 대한 열망이 너무 큰 이들은 상수에게서 흥미를 잃고 연락을 끊었다. 어떻게 보면 상수는 호찌민에 파견된 영업자들 중 유일한 낭만주의자 같았다.

사람들은 상수와 경애가 한 팀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둘이 모종의 연인관계라고 넘겨짚거나 결국에는 연애를 하리라 짐작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상수는 손까지 내저으며 절대 그렇지 않다고 펄쩍 뛰었다. 아주 강한 부정이었고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을 가리키는 터부에 가까운 거부였다. 하지만 상수가 그러면 그럴수록 사람들은 정말 뭐가 있나? 저들 사이에 무엇이 있나? 하는 생각을 했고 어느날에는 경애가 상수에게 그러지 말라고 충고할 정도였다.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무심하게 넘기시라고요. 왜 그렇게 아니라고, 정말 아니라고 강조하시는 건데요?”

경애가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하자 상수는 더욱 놀라면서 아니요, 절대 아닙니다,라고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왜 아닌데요? 사내연애 할 수도 있는 건데 왜 아니라고 하냐고요. 더 의심 가게.”

“아니니까 아니라고 하는 거죠.”

“그래요, 아닌 것 저도 아는데요, 아무튼 좀 자연스럽게 넘기시라고요. 그렇게 정색하니까 정말 뭐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요.”

뭐가 있는가…… 상수는 생각했다.

한 개인에 대해서 그렇게 폭풍처럼 많은 것들을 알아버리는 건 기이한 경험이었다. 경애가 꺼려진다거나 싫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언니는 죄가 없다’ 페이지에 그런 공지를 올린 뒤 ‘얼어 있는 프랑켄슈타인’에게서는 당연히 연락이 오지 않았지만 상수는 여전히 경애를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언니로서 답신을 주고받던 때와는 달랐다. 그때는 페이스북을 통해 편지를 보내는 다른 회원에게 그랬듯이 상대방보다 낫고 더 많이 알고 강인하며 깨어 있다고 여겼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이 힘을 잃기 시작했다. 경애가 더이상 익명의 페이스북 회원이 아니게 되면서 상수의 그런 우쭐함은 사라져버렸다. 경애를 돕는다는 것은 그런 위계에서는 가능하지 않았다. 상수는 경애가 파괴되었다고 생각했다며 이메일을 보냈을 때 평소처럼 정신 차리라든가, 그거 정말 똥 밟는 일이에요, 남자들은 원래 다 그럽니다, 성욕을 채우려면 어떤 사탕발림도 마다하지를 않아요, 아주 시를 쓰지요, 릴케가 따로 없어요,라고 말하지 못했다. 상수는 그렇게 양말 하나 벗지 않고 앉아 있는 산주 앞에서 경애가 느꼈을 모욕감을 떠올리며 조용한 분노를 느꼈을 뿐이었다. 경애가 아마 그랬을 것처럼 움츠러들게 되었다. 마음이 차가운 물을 뒤집어쓴 듯 오므라들었다. 기가 죽고 축소되었다. 마치 자기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이란 그렇게 함께 떨어져내리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상수가 매달린 건 그때 그 화재사건이 대체 어떻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아보는 일이었다. 상수에게는 그 불운한 사고로 은총이 죽었다는 사실이 중요했을 뿐 그 화재의 전모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그래서 회사가 끝나고 아파트로 돌아가면 인터넷에서 옛날 신문을 뒤적여 사건의 경과를 알아나갔는데 기사들의 제목만으로 마음이 힘들어졌다.

 

仁川 상사 큰불, 56명 사망

갈 곳 없는 우리 아이들 10대문화 긴급진단

술값 받으려 출입문 봉쇄

대형인명피해 화재사고 일지

“아니야, 아니야” 울다 지친 교정

“경찰, 구청에 상납할 돈 내라” 호프집 사장, 유흥업주 갹출

고위층 비호 의혹 제기 호프집 종업원 조사

피해자 보상 어떻게 되나

인천 화재 호프집 사장 자수

 

상수는 뇌물을 받은 국회의원 명단에서 아버지와 가까운 사이라 청평이며 용인으로 가족여행을 함께 가기도 했던 국회의원의 이름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다음에 상수가 고민한 것은 은총이라면 경애를 어떻게 도왔을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오래전이라서, 20여년이나 전의 일이라서 제대로 상상되지가 않았다. 분명 친한 사이였는데도 상수가 또렷이 기억하는 것은 둘이서 단편영화를 찍기 위해 사흘 동안 돌아다닐 때 은총이 집에서 간식을 싸와서 함께 먹었다는 것 정도였다. 그것은 마요네즈만 바른 옥수수식빵이었다. 그외에는 은총이 어떤 부모 밑에서 자랐고 형제관계는 어떻게 되었으며 학원을 다녔는지 다니지 않았는지 성적은 어땠는지 하는 것들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상수가 자신의 부친에 대해 독설에 가까운 불평을 하면 가만히 듣고 있다가 그래도 너는 운이 좋은 거야,라고 했던 것 정도만 생각났다. 상수가 그러면 너는 운이 나쁜 편이야? 하고 물으면 당연히 아니지, 했던 것.

은총은 화를 내는 일이 드물었는데, 딱 한번 상수에게 엄청난 분노를 보인 적이 있었다. 그 무렵 인천에 가보면 해고된 자동차공장의 사람들이 긴 행렬을 이루고 집회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 상수는 해고는 불가피한 일 아니야?라고 말했었다. 그즈음 아버지가 텔레비전을 보며 하는 대부분의 논평이 불가피하다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은총은 “너는 소중한 걸 잃는다는 게 뭔지 모르는구나”라고 탄식했다.

 

그런 걸 빼앗겨서 분노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상수는 그 일이 생각나서 맥북의 메모장에 은총은 분노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그렇게 과거를 찾아보는 일은 상수 자신의 삶을 그때까지와는 다른 프레임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기도 했다. 상수가 알고 있는 상수의 슬픔, 상수의 수난, 상수의 고난, 상수의 상처에서 벗어나 다시 과거를 재정립하는 것이었다.

 

상수는 다시 은총은 공상수를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그러다 상수는 화재사건이 일어났던 호프집 사장에 관한 최근 기사를 찾아내기도 했다. 그는 복음을 전파하는 CCM가수가 되어 있었다. 기사에서 그는 “노래는 복음을 전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이야기했다. “과실치사형으로 복역하면서 10개월간 독방 생활을 했어요. 그때 하나님을 만났지요. 하나님이 저를 찬양 사역자로 쓰기 위해서 이런 시련을 보내지 않았을까요. 십자가 은혜로 그 죄 많던 저는 죽고 다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죄 사함을 위해 목청껏 노래하고 있습니다,라고. 상수는 그 죄 사함이라는 말에 대해서 생각했다. 상수가 자주 쓰기도 했던 그 죄—없음이란, 그 사함의 주체란 누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아니 이제는 가능한가에 대해.

그때 페이스북 메시지가 도착했다. 애정훠궈라는 별명을 쓰는 페이스북 회원에게서였다. 회원이 2만여명에 이르면서 상수는 오래된 회원들과 페이지 관리를 함께했다. 소소한 일상 이야기에 댓글을 달아주거나 격려를 보내는 일은 그런 회원들이 맡았다. 애정훠궈는 요즘 인터넷 분위기가 좋지 않아서 페이지에 키보드 워리어들도 많이 드나들고 작정하고 시비 거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조심하라고 했다. 오프라인에서 한번 논쟁해보자며 특정 회원의 신상을 털려 하기도 하고 페이스북이나 이메일 계정 해킹도 시도한다고 했다. 그러면 어쩌지?라고 상수가 묻자 애정훠궈는 “할 수 있는 게 뭐 있어요? 맨날 떠드는 것들인데. 비밀번호를 주기적으로 바꾸는 정도죠, 우리가 하는 게”라고 했다. 애정훠궈는 자기만 해도 며칠 전에 누군가 자기 몰래 페이스북 계정에 로그인을 시도하다가 계정이 잠긴 적이 있다고 했다. 누군가 상수의 계정을 해킹해서 이메일을 연다면 무엇보다 거기에 수북한 사연들이 문제였다. 그런 내밀하고 감정적이며 허심탄회한 말들이 공개된다면, 그것이 나쁜 의도로 쓰이고 개인 프라이버시의 침해로 옮겨 간다면 상수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야 할 것이었다. 7년 동안 페이지의 언니들이 쌓아올린 일종의 연애의 역사에 상수라는 남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었다. 익명을 악용해 이미테이션해온 상수가 있었다고. 상상만으로도 두려운 일이었다.

 

경애도 인맥을 만들기 위해 미팅을 시작했지만 상수보다는 무모함이 덜했다. 반도미싱과 거래했지만 양이 많지 않아 뒷전으로 밀렸거나 김부장과 잘 맞지 않거나 해서 뜸해진 거래처들을 헬레나에게 소개받아서 찾아갔다. 헬레나는 그런 사람들의 명단을 성별과 출신과 특이사항까지 꼼꼼하게 작성해놓았다. 그러면 경애는 미리 준비해갈 수 있었다. 그러니까 고향이 어디인지, 회사에서 직접 발령을 받은 관리직인지, 아니면 호찌민 현지에서 고용된 직원인지. 후자의 경우에는 사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임시직이었고 따라서 계약을 수주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공장에 따라서는 경영진들이 공장일에는 관심이 없고 사고 없이 루틴하게 돌아만 가면 만족인 경우도 있으니까 의외로 그들의 입김이 셀 수도 있었다. 경애는 공장의 한국인 관리자라고 다 국적이 한국은 아니라는 것, 개중에는 조선족도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국적상으로 중국인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헬레나가 나름대로 파악한 그들의 선호 중에는 술, 돈 이외에 가족 안부와 김치,라는 단어도 있었다. 헬레나는 어떤 영업자는 한국에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클라이언트의 한국 집에 들러 베트남으로 보낼 물건을 직접 가져오기도 한다고 했다. 그중에는 무려 10킬로그램이나 되는 김치와 깍두기가 있었다고. 그렇게 보니 헬레나의 노트는 그간 호찌민 지사를 거쳐간 영업사원들의 마케팅 비망록이기도 했다. 그건 어떤 친절과 다정, 도전, 혹은 을의 생존법, 아부, 설득, 포부, 패기의 기록이기도 했다.

노트를 경애에게 넘기면서 헬레나는 공짜가 아니라고 했다.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자기 여동생을 취직시켜달라는 것이었다. 동생은 곧 대학을 졸업하는데 여행사 가이드를 할 정도로 영어를 잘한다고 했다.

“헬레나, 내가 지금 누구를 고용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알잖아요, 제일 말단인 거.”

“개인적으로 고용해서 쓰면 되죠.”

헬레나는 경애를 설득했다. 여동생이 사무실에 나와서 받게 되는 급여는 한국 돈으로 20만원인데 그쯤은 상수나 경애가 부담할 수 있지 않냐면서. 전담 경리가 생기면 업무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자기도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고. 상수네 팀이 뭐든지 김부장네와 나눠서 써야 하는 건 맞았다. 회사에서 나오는 판공비는 모두 지점장을 거쳐 김부장에게 갔고 헬레나와 토니 같은 베트남 직원도 일단 김부장네 일을 한 뒤에야 상수네 팀을 봐줄 수 있었다. 그나마 김유정의 충고대로 조선생과 함께 와서 기술자 파견 문제로 갈등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다행이었다. 매일 동원되다시피 하는 창식씨는 정말 다른 일을 할 여력이 없어 보였다. 헬레나의 노트가 얼마나 쓸모 있는가와는 별개로 그 부탁을 물리치기는 쉽지 않았다. 호찌민의 상당수 한국계 공장에서 그런 식의 소개로 취업이 이루어졌다. 가족이나 친척이 한 회사에서 일하는 건 흔해서 추천할 수 있는 수를 정해놓는 회사도 있었다.

“경애씨, 동생이 있어요?”

헬레나가 설득을 하려는지 자기 손을 경애의 손에 포개며 물었다. 경애가 외동딸이라서 형제가 없다고 하자, 헬레나는 약간의 한숨을 보태면서 동생이 있다면 제 마음을 알 텐데요,라고 했다. 동생은 없었지만 경애는 헬레나의 일상적 이야기를 들으며 이미 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호찌민은 인플레이션이 심해진 지 오래고 실업률도 높았다. 호찌민 사람들은 대부분 대가족을 이루어 좁은 집에서 살고 있었는데 헬레나만 해도 여덟 식구라고 했다. 그중에는 결혼한 오빠네 부부도 있었다. 메콩강 주변에 가면 그렇게 대식구가 몰려 사느라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없는 부부들이 데이트하는 강변의 공원도 있었다. 그곳에서는 매우 핫한 시간이 이루어진다고 헬레나는 농담했다.

그렇지 않아도 김부장에게 불만이 많던 상수는 일단은 그 여동생을 ‘개인적’으로 고용하겠다고 했다. 그런 부탁을 들어주면 헬레나가 상수네 팀에 더 호의적이 되어서 사무실로 걸려오는 견적 문의전화 같은 것도 은근히 상수네로 돌려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상수네 팀에는 그런 소량의 주문들까지 무척 중요했다.

소식을 들은 헬레나의 여동생은 바로 다음날 출근했다. 영어 이름은 에일린이었고 길고 검은 머리카락과 생글거리는 입매가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에일린은 언니와 맞은편 사무실에 자기 자리를 만들고 일을 익혀갔다. 자기 동생이니까 당연히 헬레나는 적극적으로 일을 가르쳤다. 뭔가 경계심이 들었는지 김부장이 어, 이러다 완전히 회사 하나 차리는 것 아니야, 하고 말을 툭 던질 정도였다.

에일린은 처음에는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거나 복사하는 일 정도만 하다가 점차 경애를 따라 외근을 나갔다. 대부분 한국인들을 상대했지만, 공장 분위기를 살필 때면 베트남어를 할 줄 아는 에일린이 도움이 되기도 했다.

에일린은 오토바이에 경애를 태우고 외근 나가는 순간을 좋아했다. 사무실에서는 기가 죽어 있달까, 긴장하고 있었는데 거리로 나오면 무언가에서 풀려난 듯 스물두살의 아가씨로 돌아갔다. 에일린은 경애가 왜 결혼하지 않는지 궁금해했다. 텔레비전에 보면 한국의 그 아름다운 여자들에게는 요리를 잘하고 자상한 남자들이 있는데. 경애가 자기는 결혼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하자 에일린은 자기도 그렇다고 했다. “그런 건 안 하고 돈을 모을 거예요.”

“돈 모아서 뭘 할 건데요?”

“집을 사야죠. 집 사야 돼요.”

“맞아, 집을 사야 해. 집이 있어야 해.”

“주임님은 집 있어요?”

“없어요.”

에일린은 경애와 함께 자기가 좋아하는 한국의 아이돌그룹—BTS에 대해 함께 말하고 싶었지만 경애가 처음 들어본다고 하자 BTS를 모르는 한국인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것 같았다. 에일린은 그 그룹의 노래 가사를 정확히 알았다. 「피 땀 눈물」이라는 노래의 가사를 직접 읊어주며 기억을 상기시켰다. 에일린의 노래실력으로는 랩인지 발라드인지 모르겠는 그 음률에 경애는 웃으면서 문득 상수를 떠올렸다. 피와 땀과 눈물이라는 그런 열정에의 복무는 세월이 흘러도 세대가 바뀌어도 국경이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일린은 서울의 눈에 대해서도 궁금해했다.

“에일린, 언젠가 겨울에 서울 오면 입을 수 있는 가장 두꺼운 옷을 입고 와야 해요.”

“눈이 차가워서?”

“아니, 눈은 차갑지 않지. 오히려 눈이 내리는 동안은 복사열 때문에 조금은 더 따뜻하지. 하지만 눈이 내리기 전까지는 대기가 아주 차가워요. 그래서 눈이 오는 거고.”

“그러니까 눈이 오기 전까지는 춥고 눈이 오면 안 춥고.”

“응, 덜 춥고. 눈이 오기 직전까지가 가장 춥고.”

“그러면 예쁜 것을 보려면 추워야 하네요.”

“그런데 추우면 또 치맥하고 쏘맥하고 그러면 되니까 괜찮아요.”

“한국 사람들 왜 소주랑 맥주 섞어 마시는 거예요?”

“빨리 취하려고.”

오토바이를 몰던 에일린이 고개를 뒤로 젖혀가며 크게 웃었다.

“그건 정말 웃기잖아요. 빨리 취해서 뭐하려고 빨리들 취해요?”

“빨리 취해서 집에 가려고 그러지.”

“집 없다면서요?”

“하긴 그러네.”

경애는 에일린을 좋아했지만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주의를 줄 수밖에 없었다. 자기에게 너무 다정한 것. 에일린은 밥을 먹을 때면 생선을 발라주거나 망고스틴 같은 과일을 먹을 때면 일일이 까주기도 했는데 어느날 경애는 에일린에게 그러지 않아도 괜찮다고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나뿐만 아니라 사무실의 누구에게도 그렇게는 하지 마. 그 정도로 친절할 필요는 없어.”

하지만 그 말은 에일린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았다. 에일린은 그것이 자기에 대한 거부라 생각하고 며칠 동안 경애에게 서먹하게 굴었다. 경애는 에일린의 다정이 싫었던 것이 아니라 그런 마음을 제대로 받을 줄 모르는 다른 직원들에게 그런 마음이 악용될 것이 싫었을 뿐이었다. 경애는 헬레나가 동생이 어디 마음에 들지 않아요?라고 물었을 때에야 오해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에일린, 미안해.”

경애가 사과하자 에일린은 아니에요, 하면서도 속이 상했는지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한동안 경애는 일부러 에일린을 데리고 더 자주 외근을 나갔다. 차이나타운에 내려서 로컬 시장을 구경하기도 했는데 거기에 있는 많은 맛있는 식자재들 속에서 개구리 같은 것을 발견하고 경애가 놀라면 에일린은 왜요, 맛있는데, 하면서 놀렸다. 경애는 그렇게 에일린과 함께 있을 때 문득 환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시간들은 어딘가 환하고 밝은, 이를테면 에일린이 궁금해하는 눈 같은 것을 닮았다고. 둘은 마치 자매처럼 그렇게 한 팀이 되어서 다녔는데 한국인들을 만나도 에일린의 존재는, 비록 에일린이 어리더라도 베트남 사람이라는 점은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오과장의 말대로라면 베트남에는 모든 관계들이 촘촘히 얽혀 있어서 누군가에 대한 평판은 삽시간에 번져나가니까 조심해야 했고 그래서 한국인 관리자들은 에일린을 약간 경계했다. 그러던 어느날 경애가 에일린과 함께 공단을 방문했다가 나오는데 누군가가 토요타에서 창문을 내리고 베트남어로 뭐라고 소리쳤다. 에일린이 다시 베트남어로 대답했고 뒤이어 경애에게 “주임님, 알아요? 주임님 한국 사람이냐고 하는데?”라고 통역했다.

“그런데요.”

경애가 대답하자 여자는 대뜸 “나 주끼 박이에요. 그쪽 반도미싱 새로운 영업자죠? 내 얘기 들어봤죠?” 하고 물었다. 언젠가 들은 적이 있는 이름이기는 했다. 호의적이지 않은 어떤 모욕의 결이 있는 대화 중이었는데, 호찌민에서는 20년 버틴 한국인이 아주 희귀한데 한국계 공장들이 우르르 넘어왔던 IMF 시절부터 해서 아주 유명한 영업여왕이 있다는 말이었다. 얼마나 미싱을, 특히 일본제 주끼 미싱을 잘 팔았으면 주끼 박이라는 별명이라고 했다. 그게 창피하지도 않은지 자기 자신도 그런 별명을 적은 명함을 파고 다닌다면서 그 기세가 남자 못지않다고 했다. 하지만 경애는 들어봤다고 하기에도 모른다고 하기에도 애매해서 그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했다.

“언제 밥 한번 먹어요. 전화할게요.”

주끼 박은 경애가 답하지도 않았는데 뭔가 약속이 이루어진 것처럼 그래, 그래요, 하고 자기 혼자 중얼거리고는 차를 몰고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에일린은 걱정이 됐는지 주끼 박에 대한 소문을 듣고 왔다. 헬레나나 다른 한국계 공장에서 일하는 가족들에게 듣고 왔을 얘기들은 그 여자가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오래전 나이키 하청업체의 관리직으로 일했는데 신발 원자재를 낭비한다며 베트남 공장 직원들을 한줄로 세워놓고 신발로 머리와 얼굴을 때려서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켰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호찌민을 떠나지 않고 미싱회사와 공장을 잇는 매니저로 일하다가 지금은 아예 대리점을 차렸다고.

주끼 박은 정말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경애는 호찌민에서 경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AB타워 꼭대기의 라운지바에서 그녀를 만났다. 주끼 박은 주로 자기 자신에 대해 떠드는 사람이었다. 자기가 오래전 호찌민에서 가장 유명한 파업을 일으킨 장본인이라는 사실도 숨기지 않았다.

“나약해, 너무 나약해.”

주끼 박은 이렇게 정리했다.

“그 정도가 무슨 큰일이라고. 우리 칠팔십년대에 각성제 먹어가며 일했던 거 경애씨도 영화에서 봐서 알지? 전태일 뭐 그런 것 알잖아?”

주끼 박은 대단한 주당이었다. 자꾸만 위스키를 주문했고 취해가면서 점점 더 말이 거칠어지더니 경애에게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물었다.

“영업이란 게 간 쓸개 다 빼놓아야 돼. 안 그러면 되지가 않아.”

취하고 나서는 눈앞에 경애가 있는지 없는지도 관심 없어 보였다. 그냥 자꾸 심수봉 노래를 부르며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사람 없이,라고 할 뿐이었다. 경애는 대체 주끼 박이 왜 자기를 불러냈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헤어질 때쯤 되어서야 “거기 김부장이랑 오과장 있죠? 그 사람들 회사에 꼰질러, 꼰질러도 될걸?” 하고 말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그러자 주끼 박은 어떤 재미있는 말을 아껴 하는 사람처럼 뜸을 들이다가, 이윽고 “걔네 반도미싱 물건 안 팔아. 아예 다른 미싱 팔아. 판공비는 판공비대로 받아 쓰면서 자기네 장사하는 애들이야”라고 말했다. 바를 나서는데 주끼 박이 경애에게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구역이 다르기는 했지만 둘 다 푸미훙에 살고 있었다. 저렇게 만취해서 어떻게 데려다주나 싶었는데 토요타에는 베트남인 운전사가 타고 있었다.

“경애씨, 내가 영업 비밀 하나 가르쳐줄까? 동생 같아서 그러는 거야.”

“뭔가요?”

“여기서는 절대 금방 떠날 사람처럼 굴면 안 돼. 떠나는 사람들한테 사이공은 지쳤거든. 일주일 있더라도 이십년 있을 것처럼 행동해야 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자기, 자기 마음속으로는 어떻게 해야 여기서 버티는 줄 알아?”

“어떻게 해야 버틸 수 있는데요?”

“내가 한 이삼일 내로라도 짐 싸서 한국 갈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야 해. 안 그러면 못 버텨.”

경애는 자기를 바라보는 주끼 박의 얼굴 뒤로 펼쳐지는 호찌민의 야경을 응시했다.

“알겠어요.”

경애가 말하자 주끼 박은 원하는 대답을 들은 것처럼 좋아, 하면서 문득 박수를 쳤고 운전사에게 노래를 틀어달라고 했다. 푸미훙으로 가는 호찌민의 거리 속에서 새벽이 되어도 불이 꺼지지 않는 그 현란한 간판과 술집과 오토바이의 물결 속에서 가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라고 노래했다.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라고.

 

 

8. 다친 줄도 모르고 웃는

 

아파트로 돌아간 경애는 의자에 앉아서 집 안의 빈 공간을 둘러보았다. 왜 다른 공간은 비워놓았느냐고 물었던 상수의 말이 생각났다. 그렇게 상수가 묻기 전까지 자기가 그러고 있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다. 경애는 상수가 응모엽서에 E라고 이름을 적고 나가던, 마치 미라처럼 붕대를 감고 덩치가 크며 심하다 싶을 정도로 울던 그때 그 청년일 거라고 생각했다. 상수와 경애가 친구 하나를 공통으로 두었다는 건 대단한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살다보면 그런 반짝이는 인맥을 그리는 경험이 한두번은 있으니까. 하지만 경애는 그것이 E인 이상 화제로 꺼내는 데 두려움을 느꼈다. 그건 어떤 손상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러니까 경애가 기억하는 모든 것이 누군가의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듯한 기분.

 

경애는 메신저로 미유와 일영에게 말을 걸었지만 일영만 왜, 하고 답을 보냈다. “그냥” 하고 경애가 말하자 일영이 향수병이 확실히 있는 모양이라고 대답했다.

“야, 너 센티멘털해 보여.”

“평소에는 어땠는데?”

“평소에 너? 뭘 어때, 프랑켄슈타인 같았지.”

“너 『프랑켄슈타인』 읽어는 봤어? 그거 이름 프랑켄슈타인 아니야.”

“아니라면서 내가 뭘 말하는지는 잘 아는구먼. 그러면 그냥 넘어가라.”

휴식시간이 끝났는지 일영은 더이상 말이 없었다. 답을 기다리거나 아니면 자야 할 시간이었다. 경애는 텅 비어 있는 아파트를 보면서 나머지 저 공간에 외로움이라는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 옛날 엄마의 미장원이 그렇게 느껴졌던 것처럼. 그때도 경애와 엄마는 한칸짜리 방에 살고 있었다. 나머지 공간은 엄마가 일하는, 가위를 쓰고 화학 냄새가 물씬 나는 약품들로 여자들의 머리를 말고 아주 우아한 컬을 지닌 여자들 사진을 벽면에 붙여놓은 미장원이었다.

경애는 미용실이란 무언가를 결심한 여자들이 와서 앉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여자들은 결혼식이니 누구 환갑이니 하는 집안 행사가 있을 때 주로 그 미용실 의자에 앉았는데 그런 일들 모두를 “잔치”라고 퉁쳐서 말했다. 그런 잔치에서는 아무도 초라해지고 싶지 않으니까 머리를 해볼 생각을 하는데 그런 생각은 자기를 위해 돈과 시간을 쓴다는 것이니까 특별한 결심이 되었다. 미용실에 오는 여자들은 가벼운 흥분과 기대에 사로잡혀 있었고 목소리가 크고 밝았다.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에 대한 흉이나 뒷얘기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었는데 경애는 그런 특별한 결심이 이런저런 속악한 이야기 속으로 잠기는 장면을 무언가 안타까워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이야기가 지나치다 싶으면 경애의 엄마는 그만해, 그만, 했는데 효과가 있는 날도 있었고 없는 날도 있었다. 낮에는 그렇게 여자들로 가득 찼던 미용실도 밤이면 그저 엄마가 앉아서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는, 낮 동안의 특별한 감정들이 사라지고 시멘트 바닥에서 찬 기운이 올라와 여름에도 어딘가 엄마의 표현대로라면 “썽글한” 곳이 되었다.

 

엄마는 불행했을까?

 

그렇게 불행이라는 글자를 붙들고 있으면 아파트의 나머지 빈 공간이 그런 온갖 것들로 가득 차고는 했다. 더이상 연락이 없는 산주가 방 어딘가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완전히 밀어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머리에서 다 지워낸 것은 아니라서 경애는 불행하지 않아? 하고 물어보고 싶어지곤 했다.

미유는 우리가 헤어져서 이제 발을 뻗고 잘 수 있겠대. 미유 딸이 열한시 정도가 되면 귀신같이 그 시각을 알고 우는 야경증이 있었는데 그때보다 더 힘들었대, 내가 선배를 만나는 시간이. 특정 시간이 되면 그것이 왔다는 걸 감각하고 온 힘을 다해 울 수 있는 아기라니. 우리는 같은 사람들이었을까. 그러니까 누워서 종일 음악만 듣다가 먼저 배고픈 사람이 일어나 라면을 끓였던 스무살 시절의 우리와, 한강에서 오리배를 보고 있던 지난 계절의 우리는 같은 사람이었을까. 각자 다른 차를 타고 강변북로를 달렸던 그 밤의 우리가 같았을까. 어쩌면 손상된 것이 아닐까. 제대로 봉인되어 있던 것을 뜯어서 엉망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나는 그런 의문이 들면 그날 내가 까페 레이어에 나가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해. 베이글을 먹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해. 우산은 있어? 하고 묻지 않고 옷은 왜 그렇게 입었어?라고 걱정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해. 나도 선배가 안고 싶은데,라고 하지 않고 너랑 자고 싶어 다시 따뜻하게,라는 선배 말을 믿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해. 잘 지내고 있어? 불행하지는 않아? 혹은 그 불행이 잘 되어가고 있어? 충분히 불행해하고 있어? 완전히, 후회 없이, 제대로 불행해하고 있어? 이렇게 물었어야 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이런 말들을 늘어놓다가도 정작 산주에게는 전할 수 없으니까 불행은 털실처럼 잘 말아서 이 빈 공간에 덩그러니 놓아둘 수밖에 없었다.

 

경애는 엄마가 해준 유년의 이야기들 중에서 이런 것을 좋아했다. 경애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장면들인데 이상하게 실제로 본 것처럼 떠오르곤 했다. 그 장면을 되살리자면 아주 둥근 달이 있어야 했고 무며 배추며 수박이 자라는 밭이 있어야 했다.

경애의 엄마는 그 밭의 원두막에서 아주 늦은 시간까지 서리해온 수박을 동네 친구들과 나눠 먹곤 했는데 어느날은 너무 웃어서 그 허술한 원두막이 풀썩 꺼지고 말았다고 했다. 경애는 그 얘기를 들으면 원두막 위에 앉아 있었을 그 여자애들이 오직 웃음과 수다로, 촌에서 읍으로, 인근의 시와 서울로 혹은 더 멀리 있는 국경까지 화제가 뻗어나갔을 그 무제한의 이야기의 힘으로 마침내 동네의 오래된 원두막 하나가 매가리 없이 무너졌겠구나 싶으면서 일종의 상승감을 느꼈다. 경애의 엄마는 그 이야기를 어렸을 때부터 즐겨 했는데 경애는 그 순간, “오두막이 무너진 거야, 우리는 그 와중에도 그게 웃겨서 다친 줄도 모르고 웃고”라고 하는 순간을 기다렸다. ‘다친 줄도 모르고 웃는다’는 그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는 경애가 커가면서 엄마에게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되었다. 하지만 막상 경애가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었을 때는 다친 줄도 모르고 웃을 수는 없었다.

 

호찌민의 공장들을 돌아다니면서 경애가 생각하는 것 역시 엄마의 모습이었다. 미용기술을 배우기 전 공장에 취업한 엄마는 배가 무척 고파서 공장에서 풀을 만드는 데 쓰는 밀가루를 가져와 구워서 기숙사 친구와 먹기도 했다고 했다. 벽이 너무 얇아 겨울바람이 불면 마치 둥글게 말리는 듯했다는 그 다다미방에서 공업용 밀가루를 구워서. 하지만 엄마는 그 시절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도시로 나간 것은 다른 누구의 강요도 아니고 자신의 선택이라는 긍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세계를 스스로 건너갔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얼굴에는 어떤 환함, 경애의 상상 속에서 때로는 터무니없이 밭을 압도할 정도로 정말 그것이 하나의 행성임을 의심할 수 없는 어떤 압도성을 지닌 그 여름의 달 같은 환함이 있었다.

“뭐 해? 이제 자는 거야?”

메신저 저편에서 일영이 다시 물었다.

“아직 안 자.”

“나는 지금 네가 얼마나 외로울지 짐작이 간다.”

“얼마나 외로운데?”

“내가 12월의 마지막 날, 그러니까 새해의 첫날로 넘어가는 딱 그 자정에 물류센터에서 지금처럼 야근하고 있었거든.”

“넌 특근비 나온다고 늘 그때 야근하니까.”

“그래, 그러다보면 나도 카운트다운을 한단 말이야. 십, 구, 팔, 칠, 육, 오… 땡, 하는데 상품이 뚝 떨어져내리는 거야. 바로 배송하는 상품은 이미 포장까지 다 돼서 창고에 있다가 전산으로 주문하면 컨베이어 타고 오니까. 보니까 100개들이 지퍼백이야. 내가 그거 바코드 찍어서 옮기면서 야— 너도 여간 외로운 인간이 아니구나 했지. 새해가 되자마자 하는 게 지퍼백 주문이라니. 사람 다 외롭다, 100개들이 지퍼백처럼 다들 외로워.”

경애는 그런 일영의 말이 재밌고 위안이 되어서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어쩌면 아픈 줄도 모르고 웃을 수 있는 것이 이런 말이 아닐까 싶어서. 그때 노트북에 알림이 뜨면서 이메일의 도착을 알렸다. 페이스북 페이지의 언니가 보낸 이메일이었다. 언니가 공지를 올린 후 경애는 더이상 이메일을 쓸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음을 폐기하지 말라는 그의 당부는 그가 주었던 오랜 시간의 어떤 조언보다 더 경애에게 일종의 투지를 불어넣었다. 모든 일상을 포기하고 숨어버렸던 시절과는 다르게 불행을 건너겠다는 의지를 불어넣었다. 다른 이는 몰라도 ‘언니’ 말은 경애의 마음에 관한 죄 없음—을 보장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경애는 책상 앞에 앉아 이메일을 확인했다. “예쁜 언니들의 집합소”라는 제목의 이메일은 “얼른 자요” “밥을 챙겨 먹읍시다” 같은 제목을 달던 언니와는 좀 톤이 달랐다. 그리고 그것을 클릭하자 수십개의 성인광고 창이 뜨면서 포르노 사이트로 연결되었다. 그 사이트들은 경애가 꺼버리려고 해도 도무지 사라지지가 않았고 증식하듯이 창이 늘어났다. ‘움짤’로 만든 다양한 인종의 여자들이 선정적인 포즈를 하면서 화면을 채웠다. 경애가 서둘러 그 창들을 끄고 있는데 “회원긴급공지—‘언니’ 계정으로 온 이메일을 열지 마세요”라는 이메일이 다시 도착했다. 애정훠궈라는 회원이 보내온 그 이메일에는 ‘언니’ 계정이 해킹되었고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일단 페이스북 페이지를 닫아놓겠다는 공지가 쓰여 있었다. (연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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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장의 제목은 강성은의 동명의 시에서 재인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