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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3·1운동의 현재성: 100주년에 부쳐

 

3·1운동, 촛불혁명 그리고 ‘진리사건’

 

 

이남주 李南周

성공회대 교수, 정치학. 저서 『중국 시민사회의 형성과 특징』 『변혁적 중도론』(공저), 편서 『이중과제론』 등이 있음. lee87@skhu.ac.kr

 

 

2년 전 겨울, 주말마다 거리를 밝혔던 촛불들은 정당성을 상실한 권력을 탄핵하면서 사회변혁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이 극적인 변화는 촛불혁명으로 규정되곤 했고, 2017년 5월 조기대선을 거쳐 출범한 문재인정부도 촛불혁명의 계승을 공언했다. 그리고 100주년을 앞둔 3·1운동을 혁명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학계에서는 이 주장이 수년 전부터 제기되었지만 최근에야 사회적 관심과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1 이는 우리 사회에서 이념적 프레임에 의해 불온시되었던 혁명이라는 개념이 촛불혁명을 경유하면서 사회의 대전환에 대한 갈망을 담아내는 표현으로 수용되기 시작한 변화와 관계가 있다. 따라서 혁명으로 규정 가능한지 여부와는 별개로 3·1운동의 성격을 둘러싼 논란은 촛불혁명의 의미를 더 풍부히 하고 사회의 대전환과 관련한 정치적 사유를 진전시킬 수 있는 계기를 내포한다. 그렇지만 3·1운동을 혁명으로서 소환하는 것이 단순히 이 정치운동의 표피적 측면, 특히 저항의 형식을 낭만화하는 방식으로만 진행되면, 이는 사회적 대전환에 대한 열망이 높아진 시기에 일시적으로 이루어진 언어유희에 그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보다 혁명의 이름으로 소환하고자 하는 정치적 상상은 무엇인가를 점검함으로써 사회 대전환에 대한 사유를 활성화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촛불혁명의 성격과 촛불혁명이 나아갈 길을 더 분명하게 밝힐 수 있다.2

 

 

1. 국민주권을 소환한 3·1운동과 촛불혁명

 

3·1운동과 촛불혁명의 연결은 단순히 3·1운동이 100주년을 맞이한다는 외생적 계기에 의해 주어진 것만은 아니다. 촛불항쟁이라는 저항방식이 3·1운동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인식은 꽤 광범위하게 공유되고 있는데, 이를 넘어 두 정치운동은 한국 근현대사에 매우 중요한 작용을 했던 정치적 이념과 지향을 공유하고 있다. 최근 3·1운동을 혁명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학계의 주장은 이를 계기로 조선의 왕권정치가 사실상 종결되고 민주공화제가 독립국가의 정치모델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고, 이러한 지향이 대한민국의 건국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주요 논거로 삼는다. 예를 들어 1919년 4월 임시정부가 제정한 대한민국임시헌장의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제로 함”이다. 그리고 임시정부가 국내의 한성지부, 노령의 대한국민의회와 통합을 이루면서 제정한 대한민국임시헌법(1919.9.11)의 제2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한인민 전체에 재함”이라고 되어 있다.3

그리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이자 촛불혁명을 상징하는 구호다.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임시정부 헌법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거리에서 이 구호가 다시 등장한 것은 분명히 의미심장한 일이다. 헌법조항이 거리에서 외쳐지는 것 자체가 낯선 현상인데 하필이면 100년이라는 시간을 건너뛰어 두 정치운동이 같은 구호로 연결된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기서 이 연결이 정치적 낙후의 표상인가, 아니면 어떤 새로운 가능성의 표현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민주공화’라는 이념이 어느 정도는 상식화된 현대사회에서 이 이념이 계속 소환되는 현상은 정치적 낙후성의 증거로 보이기 쉽다. 실제로 한국정치의 문제점을 서구에 비해 낙후된 정치제도에서 찾는 발상이 우리 사회에서도 꽤 일반적이다. 그러나 서구 정치의 오늘이 우리 정치의 내일이 되어야 한다는 사고는 두가지 면에서 우리 현실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갖게 한다. 첫째, 한국의 정치발전이 서구와는 다른 경로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외면하게 한다. 식민주의와 분단체제가 한국사회에 미치는 제약을 고려하지 않으면 3·1운동에서 촛불혁명까지 민주와 공화라는 이념이 어째서 계속 호소력을 발휘하는지 이해하기 어렵고, 이러한 호소력이 갖는 에너지를 활용하기도 어렵다. 둘째, 이러한 저항이 지닌 가능성을 제대로 포착하기 어렵게 한다. 대의민주주의 혹은 법의 지배라는 형식은 민주주의 혹은 국민(인민)주권이라는 이념 내부의 해방적 성격을 거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나마 형식적 영역, 주로 대의제에서 이룬 진전마저 최근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반면 촛불혁명은 거리에서 민주공화라는 이념을 소환하고 그와 관련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함으로써 인류사회를 근대에 진입시켜놓고도 현재는 폐쇄된 것처럼 보이는 ‘정치적 가능성’을 다시 열었다. 따라서 민주공화라는 구호는 낙후성의 표현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3·1운동과 촛불혁명의 이러한 내적 연관성은 촛불혁명 이후 직면한 문제의 성격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정치적 사유의 길을 열어준다.

이 사유를 진전시키는 데 바디우(A. Badiou)의 ‘사건’과 관련한 논의가 유용한 참조점을 제공한다. 사건이라는 개념은 사회의 질적 전환을 매우 단절적으로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우선 바디우는 상황과 존재구조에 대립하는, 즉 “상황이, 그리고 그 속에서의 일상적 행동방식이 설명할 수 없는 것”,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존재방식을 결정하도록 강요하는” 것을 ‘사건’으로 정의했다. 그렇지만 사건에 의해 새로운 존재방식이 바로 확립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건이 소환하는 주체가 사건적인 잉여적 부가물의 관점에서 상황에 관계하는 것을 ‘충실성’으로, 그 충실성이 상황 속에서 생산하는 것을 ‘진리’로 지칭한다.4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역사에서 새로운 질서의 수립은 급격한 정치적 변동과 함께 완료되는 것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공적 선언(주체화)과 사건적 충실성에 의해 지탱되는 진리공정을 통해서 실현된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혁명이라고 일컬어지는 여러 진리사건도 진리공정을 촉발하는 계기였지, 그것이 초래한 정치사회 변동이 진리의 온전한 실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심지어 사건-이후의 과정은 선형적 발전이 아니며 중단이나 심각한 퇴보도 겪곤 한다. 3·1운동도 하나의 진리사건으로 도래했고 국민(인민)주권의 선언과 그에 대한 충실성이 지탱하는 역사적 시퀀스가 진행되어왔다. 촛불혁명은 그 시퀀스에서 또 하나의 고양기이자 그 자체로 진리사건적 의미를 갖는다. 촛불혁명의 특별한 의미는 과거의 민중항쟁·시민항쟁과는 달리 절차적·형식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되었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다시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을 소환하는 대규모 시민항쟁이 진행되었다는 데 있다.5

 

 

2. 새로운 혁명과 이중과제

 

3·1운동에서 촛불혁명까지의 과정을 진리사건 이후의 시퀀스로 인식하면 혁명에 대한 인식지평이 넓어진다. 이를 통해 촛불혁명의 혁명적 의미를 거세하려는 경향은 물론이고 혁명을 낭만화하는 경향과 구별되는 실천공간을 구성할 수 있다.

이 두 경향은 상반된 실천적 지향을 수반하지만 혁명에 대한 관습적 이해는 공유한다. 즉 혁명을 폭력을 동반하는 대규모 저항에 의한 정치권력의 급격한 교체, 그리고 이를 통한 구체제에서 신체제로의 급진적 전환으로 인식한다. 그렇지만 역사 속에서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사건 중 이러한 정의에 부합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혁명 개념이 정치적·역사적 언어 안에서 확실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계기인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 1688)도 위와 같은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6

미국혁명(1775~83), 프랑스혁명(1789~99) 등 비교적 전형적인 근대혁명의 경우도 복고적 지향과 참신성에 대한 지향이 매우 복잡하게 상호작용하며 혁명을 촉발했다. 물론 혁명이 진행되면서 참신성에 대한 추구가 전면에 등장해 혁명이라는 용어가 새로운 의미를 획득했고,7 이러한 추세가 러시아혁명(1917)까지 이어지면서 혁명에 대한 위와 같은 정의가 확립되고 광범하게 받아들여져왔다. 이에 따라 혁명은 역사의 극적인 단절을 상징하지만, 모든 혁명이 바로 혁명정신을 충실하게 반영하는 새로운 체제의 확립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혁명에 대한 전통적 이미지를 확립하는 중요한 계기인 프랑스혁명의 경우 혁명 이후 왕당파 등 전근대적 정치사회세력이 오랫동안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뿐만 아니라 왕당파 등의 정치적 영향력이 소멸하고 근대적 정치질서가 확립된 이후에도 프랑스혁명의 정신이 온전히 실현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즉 혁명은 대부분 일정한 시기 내에 이루어진 정치·사회 체제의 전환이라는 측면과 함께 새로운 정치·사회 질서에 대한 상상이 촉발하는 과정의 시작이기에 혁명정신이 구현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고 온전한 구현이라는 사유 자체가 문제화될 수 있는 과정이다. 전자의 경우에 국한하더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거치게 된다.

“비혁명적 방식에 의해 혁명적 과업을 달성하는” 촛불혁명의 경우 더욱 그렇다. 촛불혁명의 혁명적 의미도 국민(인민)주권에 대한 공적 선언을 통해 진리공정을 지속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이를 위한 새로운 에너지를 창출했다는 데 있다. 즉 촛불혁명은 장기적으로 보면 사건으로서의 3·1운동이 촉발한 역사 시퀀스 내에 있지만 그 안에서 중요한 진전을 이루는 한 국면이다. 그리고 현재의 실천이 어느 정도의 진전을 이룰지를 결정하게 되는 진행 중인 혁명이기도 하다.

동시에 촛불혁명이라는 표현이 관습적 혹은 낭만적 혁명론을 소환하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관습적이라 함은 혁명을 여전히 단기간 내에 구체제를 척결하고 신체제로 전환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태도를, 낭만적이라 함은 신체제에 대한 상상이 결여된 상태에서 막연한 새로움에 기대는 태도를 각각 가리킨다. 이러한 태도가 현재 삶에 대한 불만과 급진적 변화에 대한 열망을 담을 수는 있겠지만 사회의 대전환에 유의미한 실천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현재 촛불혁명을 경유하며 고양된 요구와 현실 사이의 낙차가 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주관적 열망만으로 그 낙차를 소멸시킬 수는 없다. 그렇다면 국민주권이라는 진리를 생산하는 과정 중 촛불혁명이라는 단계에서 얻을 수 있는 성과와 그렇지 않은 목표 혹은 지향을 구분하며 실천경로를 선택해야 한다. 촛불혁명의 혁명적 의미를 거세하며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과 혁명의 완수를 성급하게 이루려는 경향 사이에서 대전환의 길을 찾고자 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 지점에서 바디우의 진리사건 개념의 모호성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바디우는 진리사건이 단절에서 새로운 보편성 구축으로 나아가는 계기를 제공한다고 주장하지만 새로운 보편성의 내용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소위 “문자를 넘어서는 법”이라는 표현에서 바디우의 딜레마가 잘 드러난다.8 사건에 대한 충실성이 주관적 믿음으로 전락할 수 있으며 진짜 진리사건과 거짓 진리사건을 구별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9 존재와 사건을 대립시키는 방식도 실천상의 난점을 제기한다. 실천은 존재하는 상황 내에서 진행되어야 하며 이를 초월한 공간에서 진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디우도 바울의 사례를 들어 ‘보편’을 상황 내의 특수성을 부정하거나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이에 무관심하고 이를 가로지르는 것으로 설명하고 보편이 상황 내의 특수성과 결합하고 이를 활용할 가능성을 시사했다.10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바디우의 논의가 단절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존재와 사건을 이분법적으로 정의한다는 문제점을 부정하기 어렵다.11

바디우 등이 진리내용을 구성하는 데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게 만든 원인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현실 사회주의에서 실천의 좌절, 특히 소련의 실험이 실패로 규정되면서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모델을 제시하는 것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 조심성이 정치에서 윤리로 관심을 이동시키거나 차이에 주목하게 만들기도 했는데, 정치에서 보편주의적 진리관을 고수하고자 했던 바디우도 진리내용을 섣부르게 구성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지만 진리사건의 선언에 담긴 지향과 진리과정에 들어가고자 하는 주체가 직면하는 현실 사이의 간극을 좁힐 수 있는 실천 공간을 찾지 못하면 진리과정을 지속시키기 어렵다. 즉 바디우의 사건에 대한 사유가 주체화와 진리의 실현과 관련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기는 하지만 새로움을 현실에 어떤 방식으로 기입해갈 것인가라는 물음 앞에 난감한 처지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곤경을 타개하는 데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을 동시적 과제로 수행해야 한다는 이중과제의 관점이 도움을 줄 수 있다. 근대는 그 시작부터 극복에 대한 지향을 내포하고 있었다. 자본의 형성과 함께 자본을 소멸시키는 요인이 같이 생성되는 구조를 밝히고자 한 『자본론』(Das Kapital)에서 이러한 인식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내적 모순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논리가 세계를 전일적으로 지배하게 된 상황을 넘어서는 일은 쉽지 않다. 정치적 실천이 가장 기본적 토대인 일국적 차원에서 이를 근대와의 단절을 통해 단번에 극복하려는 시도는 번번이 심각한 실패로 귀결되었다. 이것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대안을 상상하는 능력을 크게 제한했다. 동시에 지구적 차원에서 이에 대한 순응 외의 길은 없다는 이데올로기를 강화했다. 이중과제론은 자본주의 세계체제 내에서 진정한 변혁은 적응과 극복을 동시적 과제로 추진하는 데서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12 이러한 접근으로 사건의 단절적 힘이 단순한 일탈로 치닫는 것이 아니라 세계 안에서 작용하도록 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이 있더라도 현실에서는 적응과 극복 사이의 긴장이 무너질 가능성은 항상 존재하고 이것이 실천적으로 극복이나 순응에 편향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구체적인 실천은 항상 이중과제의 시각에서 평가와 성찰이 진행될 때 자본주의 세계체제 내에서 진리생산 과정이 지속될 수 있다.

3·1운동부터 촛불혁명까지의 과정도 이중과제적 실천지평과 관계가 깊다. 3·1운동에서 제출된 ‘민주공화’라는 목표가 표면적으로 보면 근대적 정치모델을 추구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적으로 근대극복의 의지를 포함한다.13 그 지향이 한반도와 한국에서 어떻게 추구되었고 어떤 좌절을 겪었는지는 그 이후의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다. 그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이 글이 감당할 주제는 아니지만 이중과제적 긴장이 유지되며 새로운 실천지평을 열어나가기보다는 극복과 적응이 대립하는 방향으로 사태가 전개되었다는 점은 지적해두고자 한다. 한편에서는 극복의 측면이 극단적으로 추구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극복의 지평을 배제하는 순응이 주류적 흐름을 형성했다. 그중 순응은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 한계도 뚜렷하다. 무엇보다 촛불과 같은 시민저항이 반복된 역사가 이를 입증한다. 이러한 역사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제도정치의 낙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국민(인민)주권이라는 대의민주주의의 형식으로 소화될 수 없는, 나아가 자본주의체제와 쉽게 화해하기 어려운 근원적인 해방의 요구를 계속 문제화한 과정이다. 특히 분단체제로 인해 민주공화제의 형식마저 근본적인 위협을 받는 조건이 오히려 민주공화라는 이념에 대한 충실성을 더 강화했다. 백낙청은 촛불혁명의 혁명적 의의를, 한국 현대사에서 처음으로 반공·반북을 위해서라면 헌법이나 법률을 안 지켜도 된다는 오래된 관행, 즉 일종의 ‘이면헌법’을 무력화하고 국민주권을 명기한 헌법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고 남북관계의 전환을 촉진함으로써 이 흐름의 역진이 불가능하도록 만든 데서 찾는다.14 즉 3·1운동부터 촛불혁명까지 시민항쟁과 같은 저항운동을 통해 민주공화의 해방적 지향을 실현하기 위한 흐름이 지속되었고, 그 속에서 이중과제의 긴장도 유지되어왔다. 이는 유럽과 미국에서는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문제에 대해 국가주의적·인종주의적 경향의 대응이 주류를 이루는 것에 반해 한국의 촛불혁명에서는 더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로의 전환을 추구하는 경향이 중심이 되었다는 점에서 다시 확인된다.

 

 

3. 촛불혁명이 나아갈 길: ‘평화와 협력’의 한반도체제

 

그렇다면 역사 시퀀스 내에서 진리의 최종적 실현은 아니더라도 확실한 진전을 이루려면 촛불혁명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야 하는가? 한국사회가 혁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변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최근에 늘어난 점도 우려되는 현상이다. 이러한 의문은 높아진 변화의 기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또 촛불혁명의 정신을 퇴색시키거나 그에 반하는 방향으로 사태가 전개되는 데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앞에서 강조한 것처럼 전자의 상황을 점진적인 방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촛불혁명을 부정하거나 폄훼하는 이유로 삼아서는 안 된다. 주관적 기대를 앞세워 객관적 상황에 대한 비관적 정조를 확산시키는 것은 그 의도와 달리 촛불혁명의 진전에 장애를 조성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촛불혁명이 이미 거둔 성취를 간과하는 문제도 있다.

촛불혁명의 일차적 성취는 민주주의의 지평을 확장한 것이다. 지난 시기의 민주화는 중앙권력에 대한 견제장치를 강화시켰으나 가정이나 학교, 직장 같은 사회의 기초단위는 권위주의나 가부장주의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소위 ‘갑질’에 대한 지속적 폭로와 사회적 공분의 표출은 생활공간에서의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성차별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한국사회를 변화시키는 주요 동력이 되고 있다. 가장 은폐되어 있던 차별과 억압 구조에 대한 거센 도전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회에 편재하는 갑질을 문제화하는 것이 구조적 균열을 가리는, 사실상의 을-을갈등을 일으켜 진정한 ‘갑’의 문제가 가려지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는 있다.

더 중요한 점은 촛불혁명이 남북관계의 전환을 이끌어내고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진전시킴으로써 한국사회, 나아가 한반도의 결정적인 전환을 촉진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분단 이후 그 어느 때보다 ‘평화와 협력의 한반도체제’ 구축의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남과 북 모두 적대관계에 의존해 기득권을 지키려는 시도로는 지속 가능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진전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최근 남북관계의 진전은 우연이나 정세적 대응의 결과가 아니라 한반도 대전환의 필요성에 대해 높은 수준의 공감대가 형성된 결과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의 이해관계는 여전히 복잡하나, 한반도가 통제불능의 상황에 빠지면 자신들의 국가이익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면서 이들도 한반도 평화정착에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다. 교착과 진전을 반복하고 있는 북미관계의 변화에 따라 속도는 달라지겠지만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이 형성되고 있다. 이 과정이 지속되면 한반도 차원에서 새로운 질서의 구축과 함께 남과 북 모두에서 분단체제 아래 억눌려 있던 해방적 힘이 획기적으로 활성화될 것이고, 이는 촛불혁명이 열어놓은 가능성의 구현을 더 촉진할 수 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주체적 측면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우선 한국사회의 변화를 한반도 차원의 변화와 별도의 문제로 보는 태도를 극복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진전될수록 기존처럼 북에 대한 적대적 의존관계를 활용해 촛불의 진전을 가로막으려는 수구의 준동은 더 거세질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가 자신을 무덤으로 보낼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합리적 보수’를 자처하는 정치인조차 대통령을 두고 김정은 대변인 운운하며 결단코 남북관계의 진전을 막으려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이러한 행태가 극복되지 않는 한 한국정치에서 합리적 보수가 의미있는 정치세력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작금의 상황에서 북과의 협력관계를 진전시켜 평화프로세스를 역진 불가능하게 만들기보다는, 북의 존재를 사유지평 밖으로 밀어내는 방식으로 분단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의도와는 달리 촛불혁명이 열어놓은 가능성을 반공·반북 공세로 좌절시키려는 수구세력에게 힘을 보태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한 흐름의 영향력을 키워가면 남북관계도 새로운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남북협력을 새로운 수준으로 높여갈 때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한반도체제의 건설이 가능하다.15

그리고 현재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작업이 본격화되는 단계에 새로운 한반도체제의 비전을 구체화해야 한다. 새로운 한반도체제는 평화정착 과정을 기초로 하며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고비를 넘을 때 그 건설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과정은 긍정적 방향으로 진전되더라도 비핵화 자체의 복잡성과 평화협정 체결과 관련한 새로운 의제 등을 고려하면 단기간에 마무리되기 어렵다. 이뿐만 아니라 남북의 합의에 기초해 추진할 수 있는 일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체제의 건설은 평화프로세스를 기초로 하지만, 이에 전적으로 좌우되지는 않아야 한다. 이제 한반도 평화정착을 넘어 남북이 한반도 차원에서 새로운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질서를 구축하고 나아가 한반도와 주변 지역과의 관계 조정을 통해 동북아와 동아시아 차원에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가야 한다. 이러한 일들이 같이 진행될 때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여러 복잡한 문제 또한 최소화할 수 있다.

한반도체제는 남북이 평화적·점진적·단계적 방식으로 재통합해가는 과정을 남북연합이라는 거버넌스로 관리하는 것을 기초로 한다. 남북연합은 두가지 다른 차원의 속성을 내포한다. 하나는 남북이 국가 자격으로 국제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것과 내부에 대한 주권적 통치권을 상호인정하는 국가 간 관계로서의 속성이다. 이와 함께 민족공동체 의식을 기초로 양자의 재통합을 추구하는 특수관계이다. 특수관계적 속성은 단순히 민족통일이라는 당위성에서 비롯하지는 않는다. 남북분단이 초래한 상호적대 및 그 재생산을 뒷받침하는 정서와 사회적 기초를 청산해가는 작업은 분리의 법적 승인이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화해와 협력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진전이 없으면 국가 간 관계의 규범에 기초한 관계의 안정성도 항상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한반도의 평화번영프로세스가 순조롭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의 이러한 특수관계적 속성에 대해 국제적 승인을 받고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대북제재 해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완화가 필요한데,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의 재개 등은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인정받을 때 더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물론 남북관계의 진전에 발맞추어 남북연합 내에서 국가관계로서의 규범과 특수관계로서의 규범 사이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관리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

또한 남북연합이라는 틀에 조응하는 한반도 경제 및 사회 거버넌스를 구축해가야 한다. 개방적이고 균형적인 경제공동체로서의 한반도를 지향하는 남북의 경제협력을 규율하기 위한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영역별 협력에서 출발해 포괄적인 경제협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중국과 홍콩 사이에 체결한 ‘경제동반자협정’(CEPA, 2011)이나 중국과 대만 사이의 ‘양안경제협력기본협정’(ECFA, 2010) 등을 참조할 수 있다. 사회체제의 경우는 사회관리나 사회복지는 독자적으로 체제를 구축하겠지만 남북 간 인적왕래와 문화교류 등과 관련한 합의된 규범이 요구된다. 동아시아 협력에도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노무현정부 시기 동북아협력론은 주로 남북관계의 진전이 어려운 조건에서 비핵화 및 남북관계 진전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거나 이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하기 위한 차원에서 접근했다면 앞으로는 남북관계의 진전을 기초로 동북아 혹은 동아시아 협력을 촉진하는 일에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리고 한반도체제의 건설과 마찬가지로 적어도 동북아협력에서는 남북의 공감대를 높이고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촛불혁명이 열어놓은 새로운 가능성을 실현해가는 데 있어 핵심적인 사업이다.

물론 현재 조건에서 실현 가능한 일조차 제대로 진행되지 않거나 심지어는 촛불혁명 계승을 내세우면서 촛불혁명의 정신에 반하는 행동이 등장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촛불혁명의 성과를 제도나 정책에 반영하는 데 정부여당의 책임이 큰데 과연 이들이 그럴 의지가 있는가라는 의구심이 확산되는 것은 크게 우려할 문제이다.

논란의 중심은 경제문제였다. 다만 경제문제와 관련한 논의에서 당장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가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러한 접근은 경제문제를 정치나 이념 공세로 활용하려는 의도에 이용당할 가능성이 높다.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 시기 소위 진보진영 내에서도 ‘민주화 이후 생활이 나아졌습니까?’라는 식의 비판이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기보다는 민주주의를 폄훼하려는 수구세력에게 이용당한 선례를 반복해서도 안 된다. 경제영역에서는 당장의 성과보다도 방향성을 문제로 삼아야 한다. 정부여당이 이 방향성과 관련해 계속 혼란스러운 싸인을 보내는 것은 문제이다. 예를 들어 재벌을 적대시할 이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동안 별다른 효과가 없었던 재벌에 의존해 성장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반복한다면 이는 무능력의 발로이며 촛불혁명의 진전에도 부정적 영향을 준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책의 방향을 분명히 하고 이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넓히는 작업을 선행하고, 개별 경제주체들과의 관계는 이러한 방향을 기준으로 처리해가면 될 일이다. 전자의 작업을 진행하지 않고 재벌의 투자를 기대한다든지 노동자들의 양보를 요구하는 식으로 당면한 그때그때의 어려움을 넘기려는 시도들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 뿐이다. 시민사회도 경제문제와 관련해 개별 사안을 고립적이고 분산적으로 다룰 것이 아니라 한국경제의 미래비전과 연결해 다루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라 주어지는 새로운 기회를 한반도 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활용하는 방안들을 고려하며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남북문제를 정부의 일로만 여기는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보다 더 우려되는 일은 정부여당이 촛불혁명의 성과를 제도적으로 공고하게 만드는 일에 소극적이거나 정파적 이해를 앞세우는 모습들이다. 모든 정당들이 지난 대선과정에서 개헌을 공약했음에도 아직까지 개헌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일부 야당의 무책임한 태도 못지않게 정부여당의 촛불혁명 계승 의지가 약한 탓도 크다. 특히 정부여당은 분권형 개헌 등과 관련해 야당의 변화를 이끌어낼 만한 과감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반대로 지지율에 취해 기득권을 더 강화하려는 방식으로 행동했고, 이는 야당들에게 정쟁을 확대하는 빌미를 주었다. 지금도 선거법 개정이 중요한 정치의제로 제기되고 있는데 정당 간·정당 내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반대는 매우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예상했던 일이다. 그렇지만 정부여당이 아직도 기득권을 포기하더라도 정치적 전환을 실현하겠다는 결기를 보이지 않는 것, 특히 한편에서는 최소한의 정치제도 개혁도 과감하게 추진하지 못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촛불혁명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간주하는 식의 태도는 공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태도에 변화가 없으면 촛불혁명은 정치적으로 심각한 좌절을 겪을 수밖에 없다. 정부여당은 또한 야당이 적극적으로 선거법 개혁에 나서도록 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민의를 충실하게 반영할 수 있는 선거법 개정이 되면 총리는 의회에서 선출하는 것을 정치적으로 약속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정도의 변화가 있어야 협치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촛불혁명은 이제 정치적으로 중요한 고비를 맞고 있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국면에 진입할수록 시민들은 오히려 참여와 발언의 공간에서 딜레마에 빠지곤 했다. 당파나 개인적 이익을 앞세우는 행태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부족하다보니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의 지혜를 짜내야 했다. 선거를 앞두고 분당된 상태에서도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새누리당에 승리한 2016년 총선이 대표적 사례이다. 그러나 탄핵을 이끌어낸 정치연합이 계속 분화되어온 지금까지의 상황이 지속된다면 2020년 선거에서는 그보다 더 어려운 숙제가 주어질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촛불혁명의 성과를 굳히는 정치국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한반도체제 건설로 이어가야 한다는 점에 대한 시민적 공감대를 넓혀가야 한다. 분단체제가 가장 큰 적폐이고 이를 넘어서는 일이 적폐청산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촛불혁명은 한반도체제의 구축으로 하나의 단계가 마무리될 수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남북관계를 정부여당의 일로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이제 시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참여형’ 통일의 조건을 형성해야 한다. 남북연합을 건설하는 사업에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넓혀가는 일을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지역과 부문마다 이를 위한 시민참여조직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때 내년 총선을 수구의 정치적 영향력을 소멸시켜 진보와 보수의 발전적 관계를 만드는 장으로 만들 수 있다.

이와 함께 70% 이상의 지지를 모았던 촛불혁명의 정치적 에너지를 복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40% 전후의 득표율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는 식의 여당 승리가 2020년 총선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선거법이 개정되어야 한반도체제로의 전환을 이룰 정치연합을 구축하는 길이 열릴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선거 전 연합을 둘러싼 지루한 논란이 반복되고 성과를 거두기도 어렵다. 만약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하더라도 촛불혁명을 부정하는 강한 야당이 출현하면 정치상황은 극도로 악화될 수 있다. 적어도 정부여당이 촛불혁명의 초심을 잃지 않고 사회 대전환을 위해 기득권을 넘어서는 결단을 보여주어야 시민들도 촛불혁명의 진전을 위한 정치적 동력을 모아줄 수 있다. 이러한 방향으로 정부여당이 움직일 수 있도록 더 적극적인 개입과 발언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개입과 발언은 시민사회 혹은 그 안에서 자신의 부분적 이익을 특권화하는 식이 아니라 촛불혁명을 진리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충실성을 구현하는 지평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 점이 시민사회에서도 촛불혁명에 대해 더 깊이 논의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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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3·1혁명 95주년 기념 학술회의’(2014.2.26)에서 이 주장이 처음으로 진지하게 제기되었다. 관련 내용은 이 회의의 발표문과 토론문을 모은 『3·1혁명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결성식: 95주년 기념 학술회의』, 3·1혁명100주년기념사업준비위원회 2014 참고.
  2. 백낙청은 촛불혁명을 혁명으로 규정하면서도 이를 전통적 혁명과는 다른 새로운 성격의 혁명(“비혁명적 방식에 의한 혁명적 과업의 성취”)으로 설명했다. 이처럼 시민들의 평화적 직접행동을 기초로 하는 사회적 전환은 한국적 현상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확인할 수 있고 종래의 혁명개념에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서는 백낙청 「‘촛불’의 새세상 만들기와 남북관계」, 『창작과비평』 2017년 봄호와 Nak-chung Paik, “South Korea’s Candlelight Revolution and the Future of the Korean Peninsula,” The Asia-Pacific Journal Vol.16 No.3(2018.12.1) 등 참고.
  3. 이준식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이념적 지향」, 『인문과학연구』 24(2017) 67~69면.
  4. 알랭 바디우 『윤리학』, 이종영 옮김, 동문선 2001, 54~56면. 앞으로는 일상적 용어로서의 사건과 바디우적 용법에서의 사건을 구분하기 위해 후자는 ‘진리사건’으로 표현한다.
  5. 쌔뮤얼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은 신생 민주주의의 공고화는 ‘두번의 수평적 정권교체’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국적 맥락에서 왜 ‘두번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민주주의 공고화의 기준이 되기 어려운지에 대해서는 백낙청과 박성민의 대화를 참고. 백낙청 외 지음 『백낙청이 대전환의 길을 묻다』, 창비 2015, 316~31면.
  6. 한나 아렌트 『혁명론』, 홍원표 옮김, 한길사 2004, 115면.
  7. 같은 책 116~17면;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는 혁명과정에서 새로운 정치적 상상과 전통적 관습 혹은 제도가 서로 배척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결합하기도 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그는 새로운 정치적 상상을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정당성의 원리(인민주권 원리)의 적절한 실현이라고 간주될 수 있는 정치 관습의 존재가 혁명이 새로운 정치제도의 구축으로 이어지는 데 관건적 역할을 했으며 그 존재 여부가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의 전개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찰스 테일러 『근대의 사회적 상상』, 이상길 옮김, 이음 2004, 제8장.
  8. 바디우도 “우리는 문자를 넘어서는 법, 영의 법의 실존이라는 아주 난해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며 여기서 직면한 곤경을 간접적으로 토로한 바 있다. 알랭 바디우 『사도 바울: ‘제국’에 맞서는 보편주의 윤리를 찾아서』, 현성환 옮김, 새물결 2008, 167면. 바디우의 보편주의와 법의 관계에 대한 논의는 매우 복잡한데, 이는 바디우가 율법의 폐기를 강조하는 동시에 문자를 넘어서는 법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을 끌어들이는 데서 발생한다. 황정아 『개념비평의 인문학』, 창비 2015, 77~78면.
  9. 도미니크 핀켈데 『바울의 정치적 종말론』, 오진석 옮김, 도서출판b 2015, 48면.
  10. 예를 들어 바디우는 바울이 유대교와의 단절을 주장하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했다. 알랭 바디우 『사도 바울』 72~73면.
  11. 황정아, 앞의 책 79~81면.
  12. 이중과제론에 대해서는 백낙청 「근대, 적응과 극복의 이중과제」, 송호근 외 『시민사회의 기획과 도전』(민음사 2016)과 백낙청 외 『문명의 대전환을 공부하다』(창비 2018) 참고.
  13. 3·1운동 이후 대의민주주의를 넘어서고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는 새로운 민주주의를 모색하는 흐름이 강하게 유지되었고, 조소앙의 삼균주의가 대표적인 경우이다(이준식, 앞의 글 56~57면). 강경석도 3·1운동 직후에 작성된 염상섭의 글을 인용하며 당시 지식인 중에도 자본주의 근대의 극복을 식민성 극복과 같이 생각했던 지적 흐름을 소개한 바 있다. 그뿐만 아니라 염상섭이 “혁명을 괄호 친 실력양성론이나 자력양성을 건너뛴 사회주의혁명론”과는 다른 실력양성과 혁명적 실천을 하나의 과제로 인식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강경석 「민족문학의 ‘정전형성’과 미당 퍼즐」, 『창작과비평』 2018년 겨울호 57~59면). 이러한 지적들도 이중과제론적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14. Nak-chung Paik, 앞의 글 4~5면.
  15. 이렇게 볼 때 남북관계를 국가 간 관계로 전환시킴으로써 분단체제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은 남북협력을 실천적 지평에서 밀어낸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이다. 소위 ‘양국체제론’이 이러한 발상의 대표적인 사례인데 이에 대해서는 김상준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녹색평론』 2019년 1-2월호 47~48면 참고. 이 글에서 강조하는 국가 간 관계로서의 안정성은 현재 남북이 합의한 남북연합이나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틀 내에서도 실현할 수 있으며 더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틀 내에서 남북협력의 수준을 어떻게 높여갈 것인가에 있다. 이에 대해서는 졸고 「분단 해소인가, 분단체제의 극복인가」, 『창작과비평』 2018년 봄호 23~26면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