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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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2022 대선, 대전환의 과제 ④

 

국방개혁과 한국사회 대전환

 

 

신상철 申祥喆

진실의길 대표, 유튜브 채널 ‘신상철TV’ 운영,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조사위원. 저서 『천안함은 좌초입니다!』가 있음.

 

이남주 李南周

성공회대 교수, 『창작과비평』 편집주간. 저서 『중국 시민사회의 형성과 특징』 『변혁적 중도론』(공저), 편서 『이중과제론』 등이 있음.

 

이태호 李泰鎬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평화군축센터장. 공저서 『봉인된 천안함의 진실』 『변혁적 중도론』 등이 있음.

 

추지현 秋智賢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공저서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 『미투가 있다/잇다』 『능력주의와 페미니즘』 등이 있음.

 

 

왼쪽부터 이태호 신상철 추지현 이남주 Ⓒ 이영균

왼쪽부터 이태호 신상철 추지현 이남주 Ⓒ 이영균

 

 

이남주(사회) 안녕하세요, 이번호 대화는 1년간의 연속기획 ‘2022 대선, 대전환의 과제’ 마지막 시간으로, ‘국방개혁과 한국사회 대전환’을 주제로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분단체제하에서 국방 문제는 한국사회에 큰 영향을 주는 사안이지만, 이에 대한 논의와 결정은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간주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전제가 시민들의 상식적 판단이 국방정책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로 활용되기도 했죠. 국방비의 지속적 증가로 군의 영향력은 강해지고 있는 반면, 사회적 발전이나 합의 수준에 비해 군의 변화는 지체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군 문제와 민주주의의 연결을 논의하며 대전환의 또다른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합니다. 각자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신상철 저는 인터넷언론 ‘진실의길’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해양대학교에서 항해학을 전공한 뒤 서해5도에서 해군 장교로 근무하며 수송 업무를 맡았고, 2002년 대선 무렵부터 인터넷에 정치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천안함사건 당시 민군합동조사단 민주당 추천 조사위원으로 발탁된 것을 계기로 이후 천안함사건에 대한 조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태호 저는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장을 맡고 있습니다. 참여연대 합류 초기에 부정부패 분야를 담당하며 공익제보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면서 보니 국방 및 무기 도입 관련한 제보가 굉장히 많고 그 해결이 쉽지 않더라고요. 이 분야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강화되어야겠다, 무엇보다 시민의 감시가 없으면 문제가 본질적으로 해결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추지현 저는 젠더 연구자고, 군·경찰 등 조직에서의 젠더 폭력 문제들을 다뤄왔습니다. 젠더가 군사주의, 식민주의, 자본주의를 통해 작동한다는 문제의식에 기반해 우리 사회가 ‘안보’의 개념을 무엇으로 정의하고 상상하는지, ‘국방 인력’은 어떤 모습으로 상정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비판적 관점으로 보고자 합니다.

 

국방비 증액, 어떻게 볼 것인가

이남주 가장 먼저 이야기할 것은 문재인정부의 주요 정책 목표로 추진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국방비 증액의 관계입니다. 북한과의 관계가 정부 초기에는 상당히 희망적이었지만 최근 2년 동안은 교착상태이고, 지금은 불안한 조짐들이 다시 나타나고 있습니다. 큰 문제 중 하나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꾸준히 이루어진 국방비 증액일 텐데,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이태호 문재인정부 들어 국방비가 굉장히 많이 늘었습니다. 최저 연 4. 5퍼센트, 많게는 8.2퍼센트까지 올라서 GDP 증가율보다도 당연히 높습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진행되던 와중에도, 그리고 최근 팬데믹으로 인한 지출 압박이 굉장히 심한 상황에서도 국방비가 계속 늘었다는 거죠. 작년 국방비 총액은 52.84조원으로 한국은행이 추산한 북한 총 GDP의 약 1.5배입니다. 따져보면 지난 20년간 우리가 지출한 국방비가 같은 시기 북한 GDP의 합보다도 많아요. 이게 의미심장한 게, 2009~10년 6자회담이 좌절된 후 미국 보고서들을 보면 북한이 군비 경쟁에서 뒤처져 싸고 파괴력 있는 무기, 즉 핵에 집착한다는 내용이 계속 올라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기간에 협상 없이 국방비를 계속 늘려왔죠. 그러다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시작됐습니다. 평화를 정착시키고 신뢰 조치를 통해 비핵화한다는 일련의 합의를 맺었어요. 그런데 문재인정부는 ‘별도 문제’라며 국방비를 계속 증액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안보 및 군사력에 대한 남한과 미국 정부의 ‘내로남불’, 그 이중기준이 문제라고 지적하며 미사일 실험을 정당화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남주 국방비 증액에 대한 한국정부의 합리화 논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이태호 아주 공격적인 군사 독트린을 채택하고 불안감을 건드리는 방식으로 접근한다고 봅니다. 예컨대 무기체계에 있어서,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에 대비하여 최소한의 선제 대응 능력과 압도적인 보복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겁니다. 또 유사시 북한 지역 안정화를 위해서 충분한 병력 규모를 갖춰야 한다는 식이고요. 사실 군사력 차이가 너무 명백하다보니 최근엔 지상전 차원의 침공 위협은 잘 얘기하지 않고요, ‘미래의 잠재적 위험’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식의 구체적이지 않거나 실현 불가능한 명분을 내세우죠.

 

이남주 국방비 증액은 그 자체도 문제이지만, 증액을 둘러싸고 다양한 이해집단이 등장해 권력과 자원 분배의 메커니즘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신상철

신상철

신상철 국방부와 군의 권력집단은 자신의 영역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방비를 늘리는 식으로 관성화되어온 면이 있습니다. 문재인정부 때 국방비가 늘었다지만 이 문제는 어느 정부에 국한해서 보기보다 군당국의 입김이 작용하는 방식과 현상에 주목해야 합니다. 증액한 돈을 어디에 썼느냐를 뒤져보면 이해가 잘 안 되는 지점들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F-35 전투기 도입 과정을 보면, 차세대 전투기 도입 계획 당시 공군 조종사 선호도 조사에서는 유로파이터가 대세였습니다. 공중전이나 산악지역에 적합하기 때문이죠. 사막지역에 적합하다고 알려진 F-35는 우리 상황에 맞지 않았고, 가격도 두배 정도 비쌌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국방부가 애초 F-35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하죠. 결국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이 합당한 설명 없이 직권으로 F-35를 선정했어요. 이런 걸 보면 전력 개선 같은 여러 구실을 댔지만, 결국 군 기득권 유지를 위해 군의 의사에 따라 국방비 증액이 촉구되어온 면이 있습니다.

 

추지현 안보의 양상이 정보전을 넘어서 지능전을 염두에 두고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특정한 기술 개발에 대한 지출은 필요하고, 더욱이 줄어드는 병력을 대체하기 위해 발생하는 비용이라면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지금 국방비는 징병제 유지에 더 많이 쓰이고 있어요. 사실 국방비 얘기를 하면 징집이 과연 경제적으로 효율적인가 하는 문제도 건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거든요. 신무기 개발 등의 방위력 개선은 예산의 30퍼센트 정도고 나머지 대부분은 결국 징병제 유지하는 데 들어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 방위력 관련 지출 방향을 보더라도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전투 중심의 군수산업을 위해 쓰이고 이게 수출산업으로 강화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이태호 이에 대한 논의를 하려면 ‘적정 군사력’이 무엇이고 우리가 가져야 될 무기체계가 어떤 것이어야 하느냐를 생각해야 합니다. 최근 경항공모함 도입이 논쟁거리가 되었는데, 중국도 미국도 가진 것을 왜 우리가 못 갖느냐는 식의 목소리가 꽤 있었어요. 그런데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반도국가에서 굳이 바다 한가운데 기지 역할을 하는 배를 따로 가져야 하는가, 또 항공모함은 패권국가가 제해권을 목표로 할 때 필요한 무기체계인데 우리가 그런 군사전략을 갖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동아시아의 패권국가가 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대표적인 예산 낭비 사업이 될 게 뻔합니다. 혹 미군 항공모함 옆에 붙어서 따라다니기 위해 만드는 것이라면 한국군이 맨날 외치는 ‘자주국방’ 모토와 맞지 않는 것이죠. 게다가 정말 중국이 강해져 신냉전이 온다 해도 중국 앞바다에 경항공모함을 띄우는 것이 군사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움직임인지 하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더 강한 무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군 기득권이나 이해집단의 요구가 자가발전하게 두어서는 안 되고, 그런 논리로 전력 증강을 해서도 안 된다는 겁니다.

 

신상철 경항모 아이디어가 왜 나왔을까를 역추적해보면 제주해군기지가 보입니다. 일본 하또야마(鳩山) 총리 내각이 들어설 때 공약이 ‘오끼나와 후뗀마(普天間) 미군기지 이전’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미국의 제해권·제공권이 약화되니 이명박정부 때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제주해군기지를 추진했던 것인데 결국 후뗀마기지 이전은 무산되었고, 이미 만들어진 제주기지의 역할은 모호해졌어요. 그러다보니 이 기지에 갖다 둘 배가 필요해 도입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또 경항모 전단이 만들어지면 군 내에 높은 자리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이기도 하지요. ‘한반도가 곧 항공모함’이라는 주장도 있는 만큼 필요성에 의문이 듭니다.

 

이태호

이태호

이태호 또 하나 고민할 지점은, 현실적으로 ‘완봉승’이 가능하냐는 겁니다. 지금 군비 증강의 방향성은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선제 타격도 하고, 미사일이 날아오면 요격하고, 그래도 혹 어떤 공격이 방어체계를 뚫고 우리를 타격하면 더 강한 무기로 상대 진영을 쑥대밭으로 만들겠다는 식이에요. 말은 좋은데, 이런 군사전략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요? 심지어 그렇게 초토화한 후에 미군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 한 것처럼 병력 데리고 들어가서 안정화하겠다는 건데, 역사는 그런 방식이 불가능하다고 얘기합니다. 미군도 결국 실패했고, 우리의 한국전쟁 경험도 그걸 말해주고 있습니다. ‘완봉승’과 점령지 안정화를 위한 무기체계를 갖는 게 현실적인지 물어야 하는데, 군사전략적 차원의 합리적인 토론이 전혀 안 이루어지고 있어요. 시민들이 ‘그게 진짜 가능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질문을 던지는 것마저 봉쇄되어 있는 현실입니다.

 

안보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거리감과 정보공개 문제

이남주

이남주

이남주 국방비를 계속 늘리는 논리와 조직적 움직임이 막강한 반면 이를 통제하는 힘은 거의 작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보입니다. 국방비 증액 현상이 지속, 강화되는 것이 의도했든 아니든 남북관계나 한국의 경제 및 사회 문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단적인 예로 국방부의 예산 규모는 정부 18개 부처 중 5위이고, 하위 3개 부처인 외교부, 통일부, 여성가족부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격차가 있거든요. 그럼에도 국방비에 대한 시민사회의 관심이나 감시가 그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국방비에 대한 시민들의 일종의 수용적 태도, 혹은 국방비 문제를 자기 문제와 연관시키지 않는 상황이 의아하기도 합니다. 예산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여가부에 대한 일부의 히스테리적 반응과 비교하면 더 그렇지요.

 

추지현

추지현

추지현 2000년대 중반 이후의 연구들이 일관되게 보여주는 것은 청년세대가 다양성과 소수자 감수성 등에서 이전 세대와 다른 면모를 보이면서도 안보에 대해서는 오히려 보수적이라는 거예요. 물론 북한과의 관계를 평화협력 대 안보라는 구도로 대비시키는 것도 문제지만, 이 세대 내에 이견이 없다보니 청년세대에게는 북한 문제가 더이상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가르는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 정작 이들에게 국방정책 관련한 개별 정보를 제공해 의견을 물어보면 아는 것이 거의 없어요. 실체적 불안에 직면한 감각이라기보다는 지금의 분단 상황에 관성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위험이 있을 거라는 추상적인 감각은 있어도 그것이 실제 생활을 장악할 정도는 아닌 것이죠. 청년세대의 관심은 사실상 병역 의무에만 쏠려 있고 그외의 제도나 상황에 대한 관심으로는 확장되지 못하고 있어요. 지금 세대가 안보에 대해 듣기는 많이 들었지만 간접적으로도 전쟁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라 전쟁은 남의 일인 것 같고, 또 정치영역에서는 그간 안보를 두고 이념 논쟁만 반복해왔기 때문에 이 이슈에 대해 무관심한 반응을 보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신상철 우리 사회가 그간 군에서 결정한 안보 및 국방 문제에 선뜻 이의제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군대는 ‘적’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조직이고, 군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주적을 더 강한 존재로 각인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천안함사건만 해도 이명박 대통령이나 원세훈 국정원장이 북한 소행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할 때조차 유독 김태영 국방장관만 북의 소행으로 보인다, 어뢰에 의한 것이다, 이렇게 몰아갔어요. 결국 군당국의 발표 이후 어떠한 반론도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지금까지 흘러왔습니다. 이견에 대해서는 ‘종북’ ‘빨갱이’ 딱지를 붙여 논의 자체를 원천봉쇄해버렸죠.

 

이태호 현재 국제관계에 대한 인식이 ‘강자에게 적응해야 된다’라는 방향으로 강하게 형성되어 있어요. 우리가 미국에게 그러고 있고, 마찬가지로 북한에 대해서는 우리가 강자니까 압박을 통해 적응시키자는 식이에요. 이명박정부부터 국방정책 기조로 ‘북한의 비대칭 위협에 대비’하자는 말이 나왔고, 국정원에서는 김정일 사망을 염두에 두고 ‘유사사태 계획’을 준비합니다. 박근혜정부에서는 ‘통일대박론’도 나왔지요. 이 모두가 북한은 취약한 존재이니 이를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에 기반한 것입니다. 그런데 개별 국민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삶이 복잡한데 과연 북한의 위협이 실감나는 것일지 의문입니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북한을 실질적 위협으로 느끼고 내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냉전이 끝난 지 30년이 된 지금은 그렇지 않죠. 이런 안보 인식이 천안함사건에서도 잘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지금이나 그때나 정부 발표를 온전히 믿는 사람이 적고 대부분 ‘북한이 한 것 같기는 한데 정부 발표는 못 믿겠다’라는 중립지대를 택하거든요. 그간 북한 문제에 관해서는 국가가 해석권을 독점해왔는데, 청년세대 입장에서는 이 해석도 잘 믿기지가 않는 거예요. 군당국이나 국가의 안보 방향성과 일상적 현실 사이에서 생기는 격차, 그리고 불신 가운데서 시민들은 대체로 정부의 위협 해석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미덥지도 않아 ‘합리적’인 선택지로 ‘내 삶에만 들어오지 말라’는 식의 무관심 혹은 관성을 보이는 거라고 봅니다. 이같은 상황을 인식하고 얘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추지현 결국 담론의 판을 새로 짜야 하는데 지금은 국민 일반의 인식과도 같지 않은 일부 극우적 목소리들이 과대대표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안담론이 가능한 장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논의가 되려면 정보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관련 정보가 너무 공개되지 않습니다. 제가 국방부 관련 연구들을 수행할 때도 제일 답답한 점이 충분한 자료를 제공해주지 않는 것, 그리고 제공된 자료조차도 활용하지 못하게 전부 다 비밀로 하라는 것이었어요. 도대체 ‘비밀’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해 의문이 들더라고요. 국방연구원의 프로젝트들은 정부 예산을 쓰는데다 다른 연구·정책주체들에 의해서도 많이 검토되어야 하기 때문에 PRISM(정책연구관리시스템) 등에도 최대한 공개해야 하는데, 이것조차 잘 안 되는 실정이에요. 나랏돈을 들였는데 쓰임이 있는지를 알 수가 없고 그에 대해서 비판도 할 수 없는 것이죠. 그나마 가장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는 위치인 연구자들조차 국방정책에 관해선 장벽이 많은 상황이에요.

 

이태호 2004~2005년경에 참여연대에서 군비 관련 제보를 받아 ‘한국형 헬기’ 프로젝트 감사를 요청한 적이 있어요. 결과적으로 프로젝트를 중단해야 한다는 감사 의견이 나왔죠. 우리가 감사를 청구했고, 문제도 밝혀졌고, 거기에 필요한 자료도 우리가 다 제공했기 때문에 감사결과보고서쯤은 볼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근데 보고서의 요지도 공개가 안 된다는 겁니다. 소송을 해서 1, 2심을 다 이겼고, 그때 일부는 받았어요. 그런데 이게 대법원에서 뒤집혔습니다. 해당 문서는 2급 기밀이니까 국방부가 안 된다고 하면 일체를 공개할 수 없다는 거예요.

 

이남주 애초 ‘2급 기밀’이라고 규정하는 주체가 국방부인 거잖아요.

 

이태호 예, 사실상 국방부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상황이죠. 그게 판례가 돼서 아직까지도 F-35, F-15 도입이나 천안함사건 등에 대한 정보도 전혀 공개가 안 되고 있습니다.

 

신상철 또다른 사례를 말하자면, 한국 개발 무기 중에 ‘범상어 중어뢰’가 있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어뢰’라고 평가받아 2017년 대대적으로 홍보도 했어요. 그런데 이 어뢰에 대한 얘기 들어보신 적 별로 없으시죠? 제가 천안함사건과 관련해 재판을 받으면서 주장했던 것이, ‘어뢰 생산하려면 개발 실험이 필요하지 않냐, 해체하는 초계함에 요격훈련을 해보자, 실제 그 밑에서 터졌을 때 ‘폭침된’ 천안함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지 보자’라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안 합니다. 그러다가 2018년에 범상어 어뢰를 완성하면서 비공개로 초계함 요격실험을 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퇴역 초계함들을 보려고 정보공개 청구를 했었는데 759번 목포함의 해체 과정 정보가 없어서 이상하다 하고 샅샅이 뒤져보니까, 2019년 국제해양방위산업전(MADEX) 범상어 어뢰 홍보자료 중에 요격실험 관련 내용이 있어 알게 된 거죠. 그런데 어느날부터 범상어 어뢰에 대한 언급이 일절 사라집니다. 제가 문제제기를 한 이후 국방과학연구소와 개발사 홈페이지에서 기존에 공개하던 핵심 자료를 모두 삭제했어요. 이 요격실험의 결과가 천안함에서 발생한 폭발상황과 같은지 다른지를 덮어버리고, 세계 최고 수준의 어뢰를 개발해놓고도 대외적으로 알리지 못하는 상황이 현재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남주 우리 사회가 민주화됐다고 하지만, 군은 성역화되어서 군에서 발생한 문제들을 사회가 해결하지 못하고 군에 그냥 맡겨버리는 문화가 고착되고 있습니다. 군에 대해선 시민들도 무관심한데다 외부에서 개입하고 감독할 수 있는 시스템도 형성되지 못한 것이 우리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여주는 면인데, 해결의 출발점 중 하나가 정보 접근성 개선이 아닐까 하고, 이에 대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겠습니다.

 

징병제 논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남주 국방개혁 과제 중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크게 미치는 것이 바로 징병제 문제입니다. 징집병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데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것을 넘어 징병제 자체를 손봐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기도 한데요. 국방비 문제뿐 아니라 인권의 문제로 접근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추지현 징집이냐 모병이냐에 대한 근래의 논쟁은 ‘어느 게 더 나은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저는 병력 유지 방식에 대한 지금의 논의는 ‘개혁안’이 아니라 현실에 맞춰가는 ‘적응안’에 가깝다고 봅니다. 저출생과 청년 ‘남성’이 징집되는 상황에 논란이 많으니 뭐든 해보자는 식인데, 그런 문제 설정이라면 더욱이 모병제나 징병제 같은 특정한 병력 모집 형태가 아니어도 돼요. 최근 설문조사에서는 국민의 약 80퍼센트가 모병제를 지지하고 있다는 결과까지 나오지만, 모병제라고 해도 과연 누가 그것을 수행할 자격이 있는가의 기준을 둘러싼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군의 계급구조에서 고위층 중심으로만 의사결정과 정보 공유가 이뤄지는 폐쇄성을 감시·통제하려면 징병제 유지가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고요. 각각 장단점이 뚜렷한데, 우리는 양자택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정작 무엇을 위해 이 논의를 하는지는 누락된 채 말이죠.

 

이태호 제도만 놓고 얘기한다면 현실적으로는 징병제·모병제 혼합 형태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은 실제로 모병이 가능한가 하는 문제입니다. 지금같이 군 인권 상황이 엉망이고 대우도 안 좋으면 군인이 되려는 사람들이 있겠느냐는 거죠. 부사관은 지금도 모병제인데 모집률이 계속 떨어지고, 들어와서도 장기 복무를 하려는 사람이 대상자의 40퍼센트도 안 돼 문제가 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당분간은 징집을 유지해야겠지만, 현행 구조를 그대로 두고 징집률을 90퍼센트까지 끌어올려도 인력 부족을 해소할 수 없을 거고, 누군 가고 누군 안 가는지 하는 형평성 문제가 첨예해질 겁니다. 복무기간을 단축하고 경제적 보상을 확충하면서 징집병 중 원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직업적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합니다. 유럽의 징병제 사례를 보면 기간이 줄고 보상이 확실하면 징집률이 30~40퍼센트에 불과하더라도 형평성 시비가 일지 않았습니다. 또 모병제 대상 중에서는 여성 비율을 늘려 참여할 기회를 제공해야 하고요.

 

신상철 ‘군대 가면 2년 썩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진 것도 징병제 유지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프레임에서 ‘썩는’ 사람이 남성에 국한된다는 인식이 강화되어 젠더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군 내에서는 남성 중심 조직에서 나타나는 폐쇄성과 그로 인한 여성 구성원의 피해가 드러나기도 합니다. 국방의 개념을 국토 방위, 국가 방위에서 국민 방위까지 확대해 생각하면 어쨌든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니, 남녀 구분 없이 모든 국민이 병역 의무를 공유하자는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가령 6개월 정도 수준에서 모두가 의무적으로 교육훈련을 받는 거죠. 그게 전투훈련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군사훈련은 몸으로 뛰고 구르는 것이어야만 한다는 지금의 인식을 전환한다면, 군이 필요로 하는 역량은 점점 다양화되고 있기 때문에 본인의 전문분야에서 국방에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을 적극 개발해나갈 수 있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경력 단절도 줄일 수 있고요.

 

추지현 1947년 이후로 남성에게만 병역이 보편적인 의무로 상정되고, 계층, 신체적 특징, 성정체성, 장애 여부 등의 차이는 ‘병역 대상인 바람직한 남성’의 모델을 유지하기 위해 무시되어왔어요. 이게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얘기는 이전에도 있었어요. 한국사회에서 병역 의무가 남성에 대한 ‘역차별’ 프레임으로 얘기되고 다른 사회적 이슈의 기폭제로 소환되기 시작한 게 1990년대부터인데, 이전에는 오히려 남성들 내부에서 공익근로, 대학생 예외 조항, 산업예비군 등에 대해 형평성 문제가 대두됐죠. 이러한 논쟁의 근본적 이유는 한국 군대가 그간 남성 중심, 전투 모델 중심의 단일한 군인상(像)만 상정해왔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국방개혁이 논의되고 여러 첨단기술이 도입되는 상황에서도 으레 ‘전투’라고 하면 몸으로 싸우는 무력 다툼만을 생각합니다. ‘용사’의 스테레오타입 등을 유지하면서 이 모델에 부합하는 사람들을 계속 만들어내고, 그 과정에서 ‘비(非)남성’을 배제하고요. 이같은 흐름에서 고(故) 변희수 하사 사건도 발생했죠. 이러한 이성애, 시스젠더 중심 군인 모델 지향성이 안보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매우 많습니다. 군대는 기본적으로 일사불란한 움직임이 필요하다며 ‘군기’를 획일적인 명령 하달을 통해서만 획득 가능한 것으로 생각들 하지만, 그 안에서 구성원들의 다양성이나 인권이 존중되지 않으면 연대나 신뢰가 현저히 약화되고, 구성원의 직무 몰입도나 헌신도, 실제 직무 기간 등이 모두 저하된다는 거죠. 당연히 전문성도 제고할 수 없고요. 사회적 합의의 방향도 ‘모병제냐 징병제냐’ 수준이 아니라 ‘어떤 모델 중심이어야 하는가’로 바꾸어 전투 중심의 남성 모델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성만을 대상으로 한 현행 징병제의 폐기나 여성의 참여 증대만으로 문제가 해소되지는 않을 겁니다. 조직이론 차원에서도 조직의 성과물이 훨씬 더 인권친화적이고 평화지향적인 방식으로 달성되려면 조직 구성 자체가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현재는 군인은 물론 시민들에 대한 대피계획이나 을지훈련 등의 시나리오만 봐도 그러한 지향이 없습니다. 몸의 차이, 사회적 약자들의 공간 사용 방식이나 위험 인지의 차이 등이 하나도 고려되지 않거든요. 다양성 관점에서 이런 요소들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평화 수호라는 군대 본연의 목표를 수행하는 데도 유효하다고 봅니다.

 

이태호 성별을 떠나 모든 국민이 군대에 가자는 의견과 유사하게, 공역제에 대한 아이디어도 있습니다. 병역이 아니더라도 사회복무나 소방업무 같은 공역을 하도록 하자는 거지요. 그런데 이러한 논의 이전에 해결되어야 하는 중요한 문제가 있어요. 국가는 국민을 지킬 책무의 담지자인데, 그간은 국민들한테 해주는 것도 없이 맨날 동원하고 통제하기만 해왔거든요. 국가로서의 책무를 다하려는 노력은 충분히 하지 않고 동원의 대상을 확대해서 형평성을 맞추는 건 해법이 아니라고 봅니다. 군대에 가는 사람들의 의무를 경감하고, 징집을 하면 노동에 대해 합당한 경제적 보상을 하고, 군인으로 일하는 동안에도 시민으로 충분히 대우하는 시스템을 정착시켜서 ‘군인’과 ‘시민’의 격차를 줄여가는 방식이 되어야 합니다.

 

군의 역할 변화와 민주적 통제의 필요성

이남주 공동체의 안전감, 안녕이 어떻게 확보되는가, 그를 위해 군대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징병제냐 모병제냐 하는 식으로 병력 유지 방식을 정한다고 해서 제대로 된 변화가 만들어지기는 어렵다는 것이죠.

 

이태호 과거 국가가 책임지는 안전이 전통적 의미의 군사적 안보였다면, 세월호 이후부터 국가가 실제 삶의 안전을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이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소방대원이 진화하다가 목숨을 잃고 건설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죽어요. 지금의 시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 산업재해, 교통사고 등 일상적인 안전 문제로 죽거나 상처 입을 확률이 전쟁이나 무력 분쟁으로 사상당할 확률보다 높습니다. 군대 내에서도 전투나 훈련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폭력이나 불합리로 다치고 죽는 일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고요. 지금 시민들이 관심을 갖는 건 군사적 의미의 안보보다 일상의 안전 문제라는 것, 이러한 의제 변화를 눈여겨봐야 해요. 박근혜정권에서 세월호사건 초기에 있던 논쟁이 아주 상징적인데요. 당시 국가안보실장은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말했어요. 다뤄야 할 더 큰 국가안보가 있다는 식이었습니다. 규정(「해양사고(선박) 위기관리 실무매뉴얼」, 해양수산부)에도 있는 내용을 부정하며 구조 실패를 면피하려다가 실패했고, 이후 안보 개념에 대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촛불정부 등장에 가장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변화하는 안보관에 맞춰 군의 역할은 어디까지이며, 지금 군이 꼭 해야 할 일과 안 해도 되는 것은 무엇이냐 하는 논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남주 그런데도 군은 여전히 기존 ‘한국전쟁 모델’에 맞춘 안보 개념에 머물러 있는 듯합니다. 동시에 징집을 통한 대규모 인력을 안보뿐 아니라 웬만한 일에 다 동원해왔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도로도 닦았으니까요. 가령 한계령에는 도로 건설 과정에서 사망한 100명이 넘는 군장병들을 추모하는 위령비가 세워져 있지요.

 

이태호 최근에도 인도적 행위가 원래 군의 역할이라는 듯 재난 현장이나 평화유지활동(PKO)에 군대가 투입되곤 합니다. 물론 급할 때는 군이 갈 수 있지만, 군은 무기를 쥔 집단이지 구조를 위한 장비나 역량을 갖고 있지는 않잖아요. 구조 현장에서 군인 두명이 하는 역할을 소방대원 한명이 할 수 있는데, 이런 역량과 인프라가 사회 전반적으로 부족하니까 비전문적이더라도 군을 투입하고 있어요. 그럼 군사 장비를 줄이고 소방대원과 장비를 늘리는 것이나 국제구난대를 별도로 조직해서 국제 PKO 활동을 하게 하는 것과 같은 전환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PKO를 위해 꼭 파병을 해야 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런 효율적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건 군이 기득권을 위해서 병력을 유지하려 하고, 병사들을 어디에라도 써먹으면 된다는 논리로 뭉개고 있기 때문이에요. 군의 역할을 줄여야 합니다. 이러한 시민들의 인식은 보수·중도·진보 시민사회단체와 7대 종교가 함께 주관하고 통일부가 후원해 지난 4년간(2018~21) 진행한 ‘한반도 평화·통일에 관한 사회적 대화’에서도 나타났어요. 대화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매년 몇가지 질문을 던지는데, 그중 ‘한반도의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우리에게 더 필요한 역량은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의 응답에서 군사 역량은 대체로 10퍼센트 남짓으로 꼴찌를 기록합니다. 외교 역량이 보통 40퍼센트 내외, 경제와 민주 역량이 각각 25퍼센트 안팎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요. 시민들은 군사력 확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대충은 수긍할지언정, 군사 역량을 우리 사회에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추지현 군의 역할에 대해 논의할 때 첫번째 전제는 지금의 직무 모델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전문성의 문제도 있습니다. 현역 군인들의 큰 불만이, 여기저기 돌려쓰는 것이 제일 싫다고 합니다. ‘지금 하는 일이 나에게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지?’ 하는 것이죠. 한국사회에서 군인의 일이란 ‘까라면 까’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는 것, 군인이 전문성을 가진 좋은 일자리로 안 보인다는 점에서 회의감을 가지는 듯합니다. 젊은 군인들은 군 복무가 평화유지활동, 전술분석, 협상 등의 영역에서 전문성을 갖고 자아실현이나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직업이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병력 유지 방법에 있어 군인 직무의 성격, 나아가 군대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또 그 과정에서 성평등하고 합리적인 조직문화가 정립되어야 모병제로 전환했을 때 ‘갈 만한 군대’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이남주 군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문제도 중요할 텐데요. 아까 말씀하신 대로 ‘군대 가면 2년 썩는다’ ‘군대라는 건 원래 갈 만한 데가 아니다’ 하는 식의 생각이 오랫동안 사회에 만연했습니다. 군의 인권 개선이 이렇게 더딘 것은 ‘군대는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있고 다르게 대우해도 된다’라는 인식의 영향도 있지 않은가 합니다. 물론 군 조직의 규범이 다른 사회조직과 다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과도하게 강화되고 웬만한 건 참고 견뎌야 된다는 인식이 통용되어온 것은 분명 문제입니다. 그간 숱한 군대 내 폭력사건만 봐도 군이 너무나 낙후된 수준의 대응을 해왔습니다. 결국 징병제·모병제 등과도 연관되는데, 인권침해적 현실이 해결되지 않으면 돈을 좀더 올려준다고 해서 병역에 대한 인식이 달라질 리 만무할 테니까요. 군 내 사건의 조사과정을 많이 지켜보신 추지현 선생님 생각이 궁금합니다.

 

추지현 사실 논란이 되는 수준까지 온 것만 해도 감사할 정도입니다. 청년 남성들에게 군대가 싫은 이유에 대해 설문조사를 해보면, ‘경력 단절이 된다, 시간을 버린다’는 응답보다 ‘군대에서 사고를 당할까봐 두렵다’는 응답이 훨씬 높은 비율로 나타나요. 이 ‘사고’에는 가혹행위나 (성)폭력 등도 다 포함되죠. 군대 내의 기성세대는 군의 일사불란함과 군기를 위해 억압적 문화가 어느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러다보니 소수자들은 더 두렵고, 문제 상황에 젠더 관점으로 대응하기도 어렵습니다. 군 내에 성평등센터 같은 제도를 만들어두기는 했는데 수뇌부가 그러한 활동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아요. 그러니 누가 그 자리에서 열심히 하겠어요. 같이 일해보면 남군이든 여군이든 담당자들도 관점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년에 두번씩 열리는 위원회가 사교화되기도 하고, 사안이나 실정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 제공이 없다보니 외부 위원들의 구체적인 코멘트도 어려워요. 군 외부에서 채용된 상담가들 또한 명시된 권한에 비해 역할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고 있고요. 더 중요한 건 군사법원 문제입니다. 특히 국선변호사를 통해 피고인이 된 군인의 방어권을 보장한다는 것을 국방부가 홍보하고 있는데요. 이게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 국선변호인들 대다수가 군법무관 출신이라 조직에 대한 충성도와 내부의 네트워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사람들인데다 피해자 국선변호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무슨 공평한 대응이 가능할까요? 일반 사법기관 같으면 상상도 못할 정도로 형사사건 판결을 망친 게 너무 많아 보입니다. 내부 비리를 내부에서 조사하면 안 된다는 것, 외부의 견제 틀이 필요하다는 것이 일반의 인식인데 국방부는 그런 노력을 전혀 안 하고 있습니다. 최근 군사법원법이 개정되면서 2022년 7월부터 2심은 민간 고등법원에서 하게 하고 1심을 담당하는 보통군사법원은 국방부 산하로 통합·재편됩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1심을 성폭력, 사망사건 등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군에서 잡고 있어 기존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효율성 차원에서도 1심과 2심 법원을 분리 운영하는 게 좋지 않습니다. 수사도 꼬이고 피해자는 계속 진술을 반복해야 하고요. 그럼에도 평시 군사법원을 무조건 유지하려고 꼼수 쓴 결과가 이번 개정안입니다.

 

이태호 군지휘관이 와서 재판을 좌지우지하는 일, 형량 선고에 지휘관이 관여할 수 있는 제도 등이 여태까지 있었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죠. 문제제기만도 수십년간 지속되었는데 이제야 개선 움직임이 있다는 것도요. 많은 나라에서 ‘군인은 제복 입은 시민’이라고 해요. 군대도 우리 사회의 구성요소인데, 기존의 관행을 답습하면서 특별취급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작전 때가 아니면 일반 법원에서 재판받으면 됩니다. 이런 불합리와 부조리가 지속되는 것은 군 내에 팽배한 무사안일주의 때문이고 무조건적인 집단주의와 함께 내부의 기득권을 만들어내는 구조의 문제입니다. 장교를 필요 이상으로 많이 뽑아요. 피라미드식 구조에서 장군까지 가는 도중에 많은 장교들이 중도 이탈합니다. 이들이 예전 군부독재 시절에는 민간기업에도 잘 가곤 했는데, 이제는 그렇지도 않습니다. 군에서 배운 게 일반 사회에서는 별로 쓸모없다는 게 분명하기 때문에 선택지가 좁죠. 그러다보니 최종 목적지, 즉 장성 자리를 몇개 줄인다고 하면 반발이 심하고, ‘인사조치’에 엄청 예민해요. 뭔가 문제가 나오면 ‘진급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 때문에 꼼짝 못하게 되고요. 자기네끼리 처리해도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으니까 그렇게 덮어왔던 거죠.

 

천안함사건을 둘러싼 진실 공방

이남주 군에서 일어나는 상식 밖의 놀라운 상황들이 집약적으로 드러난 사례가 바로 천안함사건입니다. 여러 의문들이 제기됐음에도 합리적인 논의 자체를 막는 기제가 작동해 아직 논란이 해소되지 못했죠. 군의 성격 때문이기도 하면서, 정치적·사회적으로도 여러 요인이 작동해 사건에 대한 논의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 상황이에요. 시민사회에서는 천안함 폭침설에 대한 의문을 계속 제기해왔지만 무엇이 천안함 침몰 원인인가에 대해서는 확증적 결론이 제시되기 어려운 한계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입장을 분명하게 제시해오신 신상철 선생님의 주장을 먼저 들어보겠습니다.

 

신상철 제가 2010년 천안함사건 당시 민주당 추천 조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된 것은 해군과 조선소 등에서 일해왔던 선박 전문가이기 때문입니다. 조사위원으로 일할 당시, 배를 직접 보기 전까지는 군 발표자료와 언론보도 등으로 추정을 할 수밖에 없잖아요. 이때 가장 관심을 두었던 것은 폭발의 존재 여부였습니다. 그런데 제일 먼저 배제했던 가설 역시 폭발입니다. 왜냐하면 폭발은 충격파와 고열을 동반하기 때문에 화학적 변화와 물리적 변화를 동시에 야기합니다. 폭발에 의한 충격파가 있었다면 희생자와 생존자가 신체에 그로 인한 손상을 입고 선체에도 화학적 변화가 나타났어야 하는데, 보도 내용과 정황 등을 고려했을 때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다음 가능성은 좌초와 충돌입니다. 배가 해저 지반에 닿았는지를 눈으로 확인하면 좌초 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물 위로 올라오는 배를 보니 선체 하부에 줄이 죽죽 가 있더란 말이죠. 명백한 좌초의 증거입니다. 해도를 펼쳐놓고 이 배가 운항할 수 있는 곳과 없는 곳의 구획을 나누면, 이 배가 좌초할 수 있는 포인트가 딱 한군데 있습니다. 실제 항해 당사자가 그 지점에서 좌초했다고 실토합니다. 희생자 가족들한테도 같은 얘기를 하고요. 그런데 군당국은 그걸 묵살해버리면서 하는 말이, ‘여기서 좌초했다고 하더라도 배가 반토막 날 것은 아니다’라는 거죠. 저 역시 좌초로 인해서 배가 반파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충돌 여부의 문제입니다. 배를 보고 제일 먼저 눈으로 확인한 것도 충돌 흔적의 여부입니다. 배에는 무언가 둥근 물체가 와서 들이받은 손상의 흔적이 있고, 그 지점에서 녹색 페인트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녹색 페인트가 칠해진 둥근 형태의 무언가와 충돌한 것이죠. 나중에 재판 과정에서 천안함 함미를 인양한 업체의 부사장이 ‘군함과 다른 색깔의 페인트를 보았다’는 증언을 하기도 합니다. 사실 배가 좌초하면 더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어야 해요. 이미 배에 손상이 간 상태고, 그대로 두면 사람은 안 다치거든요. 항해사의 경험 부족이라고 판단됩니다. 제가 ‘좌초 후 충돌’을 주장하니, 많은 분들이 좌초만 이야기해도 충분히 납득이 되는데, 왜 충돌까지 말해서 신뢰도를 떨어뜨리느냐는 지적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모든 경험과 지식을 통해 내린 결론이 그것이고, 진실은 모든 현상을 백퍼센트 설명할 수 있어야 되기 때문에 그렇게 주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남주 신상철 선생님 주장에 대해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긴 소송이 있었는데, 10년여의 재판 끝에 2020년 10월 6일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이 났습니다. 어떤 점에 대해서 무죄를 받았는지도 말씀해주시죠.

 

신상철 2010년에 국방부로부터 고소를 당했는데요. 2016년 1심 판결에서는 제가 주장한 내용 서른네개 중 서른두개는 ‘표현의 자유’로 무죄, 두개 항목에 대해서 유죄 판결이 나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그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천안함은 북한의 소행’이라고 결론을 내렸죠. 2심에서는 재판부가 세번 교체됩니다. 2020년 10월의 항소심 판결에서는 ‘1) 어뢰에 있는 백색 물질은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군당국이 말해온 폭발에 물음표를 달고, ‘2) 프로펠러가 S자로 휘어진 것 역시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제가 주장하는 좌초설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열어놨습니다. 이는 재조사하라는 의미와 같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소행으로 보인다는 1심 판결문을 원용하면서 사건과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떡을 골고루 나눠준 모양새가 되고 말았어요. 유가족이든 군당국이든 피고인이든 ‘그만하면 됐다’라고 생각하라는 것이죠.

 

이남주 천안함사건은 이태호 선생님 역시 관심을 가져온 문제인데요.

 

이태호 천안함사건의 진실과 규명 과정에 대한 의문 제기는 얼마 전 발표한 글 「천안함, 아직 인양되지 않은 진실」(『창작과비평』 2021 가을호)에 정리해두었습니다. 다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참여연대나 저나 과학적인 가설을 제시하는 방식이 아니라 군이 발표한 내용과 조사과정에 대해 의문점을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왜 희생자 가족들을 조사에 참여시키지 않느냐, 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느냐 하는 것부터 국제조사단의 조사 내용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했고요. 한마디로 정부의 주장이 의심의 여지 없이 입증된 것이냐에 대해 의문을 던진 것입니다. 근데 결정적 증거라고 했던 어뢰의 ‘1번’ 표기부터 어뢰 프로펠러 설계도까지 북한 것임이 입증된 바가 없어요. 당시 증거라고 내놨던 어뢰 설계도도 실제 설계도가 아니라 개념도임이 드러났고, 해당 프로펠러는 여러 나라에서 복제도 많이 된 것이고요. 더군다나 국제조사단은 1번 어뢰를 조사한 적이 없더군요. 토마스 에클스 천안함 조사단 미국조사단장 역시 1번 어뢰를 증거로 인식해서 가져가 분석한 게 아니고, 몇가지 데이터만 보고 어뢰에 가깝다는 가설을 낸 거예요.

 

신상철 에클스 단장이 ‘선체 하부 1~3미터에서 비접촉 폭발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상관에게 이메일을 보낸 날짜가 4월 15일인데, 이날은 함미가 인양된 날이에요. 함수는 아직 물속에 있고 함미만 이제 막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시점인데, 제대로 된 조사도 시작하기 전에 언급한 내용이 황당하게도 모든 사고 원인 분석의 가이드라인이 돼버렸죠.

 

이태호 이렇듯 발표된 내용이 입증 안 된 정보들을 추론에 끼워 맞춘 결과라고 판단해 문제제기를 한 거고요. 그래서 참여연대에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이 사안은 아직 충분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이를 바탕으로 제재 등 이후 역진 불가한 효과를 낼 수 있는 행위를 자제해주면 좋겠다, 좀더 조사할 때까지 평화적으로 관리되도록 유엔이 도와주길 바란다’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어요. 결국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에는 북한이 공격 주체로 명시되지 않았죠. 그러는 중에 국정원이나 군이 천안함사건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민들을 사찰하고 심리전을 펼쳤다는 기록이 최근 정보공개를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신상철 천안함사건에 대한 진실 은폐 의혹은 그뿐이 아니죠. 제가 제보받은 것에 의하면 사건이 일어난 며칠 후에 군당국이 희생자 가족들을 다 모아놓고 ‘천안함은 1차 좌초했고, 해당 지점에서 빠져나와 이동하던 중에 잠수함과 충돌해 반파 침몰했습니다’라고 정확하게 브리핑하고, 국민들한테는 공개하지 않은 충돌 순간의 영상을 가족들한테는 보여줬다고 합니다. 진실을 숨기려 해도 지난 11년간 가족분들이 주변에 털어놓은 얘기들이 많고, 저한테도 계속 제보가 오고 있어요.

 

이태호 참여연대에서 유엔에 메일을 보낸 이후에, 미 대사관에서 만나자며 두번이나 찾아왔어요. 그들을 만나 1번 어뢰가 증거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대답이 없어요. ‘내가 보기에 당신들은 1번 어뢰를 조사하지 않았다. 에클스 단장도 미국조사단 측도 1번 어뢰가 증거라고 얘기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침몰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하고 물었어요. 이때 미 대사관 서기관이 명확하게 ‘소형 잠수정에 배치된 소형 어뢰에 의한 폭침이라고 생각한다’고 해요. 제가 재차 확인한 후에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언급되는 어뢰는 중어뢰인데, 중어뢰를 발사할 수 있는 최신 잠수정, 이른바 ‘연어급’ 잠수정이 실제로 있는가?’ 그랬더니 ‘소형 잠수정’이라는 거예요. 한국정부가 국내에서는 신형 ‘연어급’ 잠수정이 어뢰를 발사했다고 주장했지만, 유엔에 보고할 때는 80톤급 잠수정이라고 했단 말이에요. 80톤급이면 구식 소형 침투잠수정이고, 중어뢰 발사대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거든요. 이게 미 대사관 측의 진술과 합치하는 거죠. 이렇게 보면 에클스 단장도 중어뢰를 고려했던 게 아니라, 기뢰 아니면 소형 어뢰를 염두에 두고 가능성을 저울질했던 겁니다. 결국 보고서도 기뢰일 가능성은 동그라미 네개고 어뢰일 가능성은 동그라미 다섯개니까 어뢰일 가능성이 더 높다, 이런 식으로 추정에 의해 쓰인 것에 불과합니다.

 

진실을 밝히지 못한 이유와 그 후폭풍

이남주 천안함사건 당시 저도 한 신문 칼럼에서(「천안함 침몰의 진실이 밝혀지려면」, 경향신문 2010.4.7), ‘정부 조사 결과가 나오면 진실 논란이 분명 있을 것인데, 이런 유의 사건에서 모든 사안의 인과관계가 백퍼센트 입증되기란 어렵기 때문에 조사 절차 자체의 신뢰도가 높아야 한다’는 논지를 폈어요. 투명한 조사과정으로부터 나온 결과물을 가지고 정상적인 논의가 이뤄지도록 해야 했는데 지금까지도 안 된 거죠. 그러다보니 추론적 성격의 결론이 나온 것이고요.

 

이태호 저도 그런 관점에서 천안함사건을 계속 보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좌초설이든 폭침설이든 어느 쪽으로도 확신은 없지만, 과학적 토론에서 가설은 얼마든지 세울 수 있고, 어떤 의미에서는 정부의 추론을 존중할 의사도 있어요. 하지만 정부가 인정해야 될 건 정부의 발표도 추론에 불과하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몇차례에 걸쳐서 공식적으로 부인했고, 중국과 러시아도 한국정부의 발표를 인정하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민군합동조사단의 보고서에 대해서 유엔 중립국감독위원회 국가들이 ‘정보 브리핑에 참여하는 게 허락되지 않았을뿐더러 취사선택된 정보에만 접근할 수 있었다’며 합조단과 유엔사의 비밀정보 접근 제한을 비판하는 식의 참관 보고서를 낸 겁니다. 유엔에서도 결국 아무 결의안도 채택되지 않았고요. 이런 상황임에도 우리 정부는 마치 이 결론이 명확한 것처럼 국민들에게 얘기하면서, 이 추론이 아직 국제사회에서 입증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제로 논의하는 것은 막고 있죠. 또 이 추론에 기반해 시행한 뒤 아직도 해제하지 않고 있는 5·24 조치도 문제입니다. 지금의 북한 핵개발까지 오는 과정에서 남북관계의 악화는 물론 동북아 전체의 군사적 상황에 어마어마한 악영향을 미쳤으니까요. 증거도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조치를 취한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는 천안함사건의 진실이 무엇인가와 별개로 우리가 반드시 평가해봐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남주 실제 당시 정부 조사 결과 발표 이후 여론조사들을 보면 정부 발표, 특히 ‘북한 소행’이라는 결론에 대해 충분히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의 비율이 굉장히 높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목소리들이 이후 논의에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시간이 흐르고 나니 당시 정부의 추론이 그냥 수용되는 상황이 도래했고, 이것이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접근방법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 우려스럽습니다. 또 만약 지금까지 정부가 제시한 결론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밝혀질 경우 사회에 미칠 파장도 크겠지요. 이것도 천안함 관련 논의를 움츠러들게 하는 원인으로 보입니다. 국가가 매우 잘못 작동하고 있다는 걸 입증하는 사례가 될 수도 있고, 사건을 둘러싼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거든요.

 

신상철 군이 폐쇄적인 성격을 유지하는 동안 우리 사회가 짊어져야 할 부담이 그만큼 더 커진 겁니다. 합리적 논쟁이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을 바꾸는 대전환이 군의 폐쇄성을 해소하는 방향의 국방개혁과 궤를 같이하며 일어나야 하겠고요, 천안함사건 같은 경우 합리적 논쟁을 통해 만약 정부가 제시한 주장과 다른 결론이 도출된다면 국방뿐 아니라 언론, 사법, 학계 및 교육 등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연쇄적으로 개혁이 강제되는 상황에 이르리라고 생각합니다.

 

이태호 우선 진실이 완전히 밝혀져야 합니다. 진실이 감춰지는 일은 왕왕 있어요. 미국도 베트남전 통킹만사건, 이라크전 문제, 각종 군사 범죄 등 많이 감춰왔죠. 그런데 미국은 결국 그것을 드러내는 절차가 있다는 게 우리와 다른 점입니다. 언젠가는 비밀이 풀리고, 심지어 전쟁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도 군과 국회 간 청문회나 조사위원회 등을 통해서 정부 실패가 있었다는 보고서가 나온단 말이죠. 시스템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군사기밀은 ‘무기한’입니다. 그래서 진실이 어떤 방식으로든 밝혀져도, 군이 입을 딱 닫아버리면 그 자체로 또 진실공방에 놓일 수밖에 없습니다. 시민들이 대강의 진실을 알고 있어도 진실의 끝까지는 못 들어가는 구조를 타개하자는 논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천안함 문제에 대해서는 이것이 만일 왜곡되었다면 어느 정도로, 왜 왜곡되었는지에 대한 조사와 개선 논의가 확실하게 진행되어야 재발 방지가 가능하겠습니다.

 

추지현 정보공개 문제 등에 대해 보완 및 논의의 근거들을 제도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비단 천안함사건만이 아니라 지금도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 비슷한 상황이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오늘 논의의 궁극적인 주제는 결국 ‘국가, 군 조직, 국제정치 등이 한데 얽혀 있는 문제상황에 국민이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기초작업으로서 정보공개의 필요성은 절실합니다. 정보 은폐에 대한 문제제기가 시민사회의 역할이기도 하지만, 군 조직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군 내부에서도 새로운 문제제기의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민주사회에 걸맞은 군이 필요하다

이남주 마지막으로 우리 군이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발전과 발맞춰 갈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과제는 무엇일까요?

 

신상철 저는 천안함사건에 매달리고 있는 만큼 사건의 진실이 명백히 밝혀지는 데서 개혁이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십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논란이 지속되고 주기적으로 정치화되는 현실의 최초 원인 제공자는 정부와 군당국입니다.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사고 원인을 특정한 결론으로 몰아갔고, 그 과정에서 과학적·합리적인 추론과 문제제기를 무시하고 억압했죠. 결국 졸속으로 결론을 내리고 믿음을 강요했고요. 그 결과, 사건이 일어난 해 정부 조사 결과를 신뢰하는 국민이 전체의 32퍼센트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만약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면 국방과 안보라는 허울 속에서 폐쇄적·자의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국민들한테 일방적으로 통보해온 문화와 인식이 개혁되어야 하겠고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고 기대합니다.

 

이태호 군이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문민화 얘기 많이 하는데, 물론 민간인이나 여성 국방부장관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민주적 통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와 해석, 그를 해결하는 수단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데 있어 시민의 참여와 감시가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이 지점에서 문재인정부에 아쉬운 점은, 대통령 직속 국방개혁위원회 설치를 공약했는데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군개혁은 군에 맡기겠다며 자문위원회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그마저도 흐지부지됐죠. 그래서 새 정부가 들어선다면 국방개혁을 위한 기구를 만들어서, 우리가 직면한 위협이 무엇이고 앞으로 어떤 국가전략과 군 정체성을 가지고 이를 해결해나갈 것이냐를 시민들과 함께 토론해야 합니다. 거기서 나온 얘기들을 바탕으로 군의 역할과 규모를 현실화하고, 구체적 개혁방향도 그려가야겠지요. 이 과정에서 국방개혁을 수행한 다른 나라 사례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이때 눈여겨볼 점은, 국방개혁을 수행한 나라 중에 개혁 과정에서 국방비를 늘린 곳은 없다는 거예요. 국방비를 줄이고 군 병력을 줄여야죠.

 

추지현 시민들에 의한 민주적 통제가 외부적 개혁 동력이라고 한다면, 저는 조직 내부의 변화를 말하고 싶어요. 군의 역할과 군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 다르게 변화했다는 걸 군 조직이 인정해야 합니다. 지금 시대에 국가의 안녕을 보전하기 위한 첫번째 수단은 경제와 외교거든요. 시민들은 폭력을 무서워하고 싫어합니다. 전세계가 전쟁을 지양하고 평화를 원하는 상황에서 전투 중심의 훈련을 최우선으로 하는 게 과연 얼마나 효과적일지를 검토해보는 데서 국방개혁이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기조하에서 군의 많은 구성원들이 자기가 하는 일의 전문성을 찾지 못하겠다고 응답하고 있어요. 이는 곧 군이 스스로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해 반성하고 고민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과정을 수행한다면 장기적으로는 단일화된 남성 중심의 전투군인상도 깨질 수밖에 없어요. 안보에 필요한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조직문화나 언로의 측면에서 다양성과 합리성이 확보되어야만 하니까요. 당장 징집의 대상이 되는 청년들로부터 그들이 바라보는 군의 미래나 두려움을 적극적으로 들어보기만 해도 바람직한 방향성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남주 오늘 대화에서 국방개혁과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사이의 연관성이 잘 확인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둘 사이에 어떤 벽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 주요 결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결론이 정부가 추진하는 국방개혁에 얼마나 반영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이 많습니다. 천안함사건을 같이 이야기한 이유도 이 문제의 올바른 해결이 국방개혁, 나아가 한국사회 개혁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죠. 독자분들의 특별한 관심을 요청드립니다. 작년 여름호부터 ‘2022 대선, 대전환의 과제’라는 주제로 네차례의 대화를 진행했습니다. 대전환에 필요한 모든 과제를 다룬 것도 아니고 다루어진 의제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제시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우리 사회가 중대한 전환점에서 선거의 승패를 넘어서 계속 직시하며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문제를 다루었다는 자평으로 이 기획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동안 대화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 특히 어려운 주제를 오늘 같이 논의해주신 참가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2022.1.27. 창비서교빌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