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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중대재해처벌법 어떻게 잘할 것인가?

박미진

봄을 부르는 3월 초 한주(2024년 2월 28일~3월 5일) 동안 건강했던 노동자 9명이 일터에서 사고로 사망하였다. 2022년 사고산재 사망자는 874명인데 그중 80%(5인 미만 사업장 342명(39%), 5인~49인 사업장 365명(41%). 『2022년 산업재해현황분석』, 고용노동부 2023, 314면)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였다. 노동자의 생명존중은 그가 일하는 사업장의 인원수나 공사 금액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 어느 사업장이나 그 사업장의 상황에 맞게 중대재해위험을 예방할 수 있는 실행 가능한 최대한의 방법을 찾아 실행해야 한다. 사업장 여력에 따라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고, 소규모 사업장은 국가가 지원하는 효과적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한건의 중대한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경우 그 이전에 같은 원인으로 29건의 경미한 산업재해가, 그리고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300건의 징후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중대재해 발생은 확률적 인과관계를 따르기 때문에 단지 경각심만으로 예방할 수 없음을 알려주는 법칙이다. 이렇게 보면 한동안 고용노동부가 집중했던 구호적 성격의 무재해 운동이나 지금도 강조하고 있는 작업 전 안전점검 회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재해 발생기전을 제어하여 사고의 확률을 줄일 수 있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중대재해예방을 실현하는 것이다.


재해예방은 위험관리에 의해 가능하다. 기술적 관점에서 위험관리는 세가지를 포함한다. 첫째 유해요인의 파악, 둘째 개선의 우선순위를 정하기 위한 위험성평가, 셋째 안전한 수준으로의 위험개선이다.


한편 유해요인의 위험수준은 위험제어의 방식뿐 아니라 자본주의의 생산과 서비스가 운영되는 사업장 내 역관계와 지배구조의 영향을 받는다. 산재는 안전장치 미설치 때문에 일어나기도 하지만, 안전장치를 설치한 경우라도 긴급한 생산 명령으로 안전장치를 해제하여 발생하기도 한다. 또한 작업자가 원청이냐 하청이냐 하는 소속에 따라 사고에 대한 책임과 대책이 좌우되기도 한다. 따라서 안전보건관리는 유해요인에 대한 위험제어뿐만 아니라 회사 내 지배구조 안에서 안전보건의 역할매김이라는 두종류의 보장체계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은 재해예방을 위한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났을 때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을 처벌하기 위한 것이다. 유해요인에 대한 위험관리에는 법적 기준이 있다. 중처법 제4조는 안전 및 보건 확보의무와 관련한 규정인데, 그 아래 제1항 제4호 안전보건관계법령에 따른 의무 이행에 필요한 관리상 조치 이행 여부가 그러한 기준이다. 사업장에서 안전보건에 대한 자원 할당, 역할수행을 포함한 시스템적 지원은 제1항 제1호 재해예방에 필요한 인력 및 예산 등 안전보건관리체계의 구축 및 그 이행에 관한 조치여부로 확인할 수 있다.


확률적 인과관계로 발생하는 중대재해를 효과적으로 예방하자면, 사업장은 위험관리 역량을 지니고 일상의 위험관리를 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자율예방체계는 1974년 영국의 일터보건안전법 개정 이후 유럽에서 보편화되었다. 이는 법 문구 중심의 규제를 포괄적 책임규제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이러한 전환을 실행하자면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하여 유해요인에 대한 구체적인 예방 내용을 규정하고 새로운 환경을 조성하여 그 작동을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이후 위험성평가 중심의 자기규율체계 확립이라는 중대재해 감축 중장기 로드맵을 발표하였다. 그렇지만 현실은 이와 동떨어져 있다. 세가지 문제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 관련 예산 책정이 잘못되어 있다. 2023년 고용노동부 안전보건관련 예산에서 유해위험 관리 기반 조성을 위한 예산은 단지 1%에 불과하였다. 예산의 94%는 공급자 중심의 기술지원과 재정지원에 투자하였다. 연구에 따르면 공급자 물량 위주의 지원 방식은 사업장의 안전보건역량을 키우기보다는 사업주 역할 주변화와 책임회피를 키우고 정부지원 사업 실효성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기 쉽다. 2024년 예산 내용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또한, 50인 미만(건설업 50억원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2년 유예를 위해 고용노동부가 제시하였던 1.5조의 사용 내용도 대동소이하였다.


둘째, 중대재해예방의 패러다임을 바꾸려면 일터 생명존중에 대한 진정성을 가지고 국회와 정부, 재계가 임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50인 미만 중처법 유예 주장 과정을 살펴보면 국회는 3년 동안 상임위 논의를 한번도 하지 않았고, 재계는 중대재해 감소를 위한 노력보다는 중처법 시행 반대 주장에 힘을 쏟고 있다.  

  

셋째,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후 가장 수혜를 받은 기관은 로펌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중대재해의 직접원인이 되는 위험관리보다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지만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 처벌을 피하기 위한 문서정리에 힘을 기울이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중대재해 예방 목적에 맞게 잘 시행되려면 정부정책을 재수립해야 한다. 두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산업계의 자율규제와 자체 조력을 확대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며 이와 병행하여 둘째, 사업장에 대한 국가 규제와 감독 방식을 실행하는 것이다. 첫째와 관련, 규정 개별 문구의 기계적 준수 여부로 사업장을 규제하던 이전과는 달리 사업장에서 자율적으로 유해요인을 찾아 위험을 관리하게 할 수 있는 법과 정책의 인프라를 조성해야 한다. 사업장은 새롭게 제공된 유해 위험관리 방법을 기반으로 사업장에 맞는 합리적 실행 가능한 최대한의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와 관련, 사업주가 안전보건의무를 수행하지 않아 발생한 중대재해에 대한 처벌, 즉 국가 감독은 중대재해예방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화할 것이다. 이러한 병행조치의 동시 발전을 위한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현장 작동성의 피드백을 받으며 지속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을 계기로 일터 안전보건을 확보할 중장기적인 노력을 집중적으로 시작할 때, 바로 지금이다.


박미진 /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안전보건정책실장

2024.3.12.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