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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의 매력: 노마 히데키 『한글의 탄생』

한국어를 배우는 영국인들을 종종 만난다. 한국어를 배우는 이유가 궁금했다. 한국 드라마와 K팝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K컬처가 한국어에 대한 호기심을 강력하게 끌어올린 가장 큰 동력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좋아하면 더 알고 싶고, 사랑하게 되면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법이다. 그런데 이 설명은 어쩐지 허전하다. 언어를 배우지 않아도, 드라마는 수준 높은 자막이 있으니 내용을 이해할 수 있고, K팝은 소리, 음악, 안무가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라 언어를 모른다 해도 그 세련된 멋을 느끼는 데 어려움이 없다. ‘팬심’으로 시작할 수는 있지만, 언어를 배우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더욱이 한국어는 영어와 매우 다른 글자와 발음, 문법구조를 가지고 있어 익숙하지 않다. 포기하기 쉽다. 계속 배우게 하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내 가설은 이렇다. K드라마나 K팝이 그동안 잘 접하지 못했던 한국어를 수면 위로 드러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K컬처라는 날개를 타고 전세계로 흩뿌려진 한국어가 곳곳에서 꽃을 피우는 데는 씨앗이 가진 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노마 히데끼 교수의 저작은 이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길잡이가 되었다. 언어학자의 안목을 빌려 한국어의 매력을 찾아보자.


『한글의 탄생』(박수진·김진아·김기연 옮김, 돌베개 초판 2011, 개정판 2022)에서 저자는 언어를 두가지 형태 즉, 소리의 세계에서 실현되는 ‘말해진 언어’와 빛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쓰여진 언어’로 구별한다. 대부분의 언어는 ‘말해진 언어’로만 존재하다가 소멸한다. 15세기에 훈민정음(이하 정음)이 창제되기 전에 우리에겐 쓰여 있는 언어로서 한국어는 없었다.


정음은 ‘음’이 ‘문자’가 되는 놀라운 시스템이었다. 그건 그때까지 한자 한문이 창출해놓은 지적세계를 근본에서 변혁하는 일이었다. 세종은 애초에 모든 백성이 쉽게 익혀 날마다 편히 쓰게 하기 위해 글자를 만들었고, 왕은 치밀했다. 탄생한 문자가 소멸하지 않고 텍스트로 널리 보급되도록 처음부터 활자인쇄에 적합한 타이포그래피를 구현하기까지 했다(저자는 이를 산수화의 세계에 컴퓨터그래픽이 출현한 것 같은 충격(326면)이라고 표현한다).


‘음’에서 출발하는 문자를 만들고자 했을 때 세종은 참조할 수 있는 것을 널리 찾았다. 몽골문자와 파스파문자도 보았을 것이다. 이는 지중해에서 나타난 단음문자 알파벳이 동방으로 이동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단음문자이긴 하나 히브리문자나 아랍문자처럼 기본적으로 자음만을 표기하였다. 세종은 ‘언어음’을 구분해 단위를 만들고 각 단위에 형태를 부여하는 단음문자를 구성했다. 그리고 자음과 모음을 추출해 자음뿐만 아니라 모음에도 형태를 주었다. 자음은 음성기관을 본 뜬 5개의 기본자음(ㄱ, ㄴ, ㅁ, ㅅ, ㅇ)에 가획하여 17개(현재는 14개) 형태를 만들고, 모음은 하늘, 땅, 사람(·, ㅡ, ㅣ) 3개 형태를 기본으로 조합하여 11개(현재는 10개) 모양을 구성하였다.


자모의 형태가 결합하여 글자가 되는 체계도 경이롭다. 언어음의 최소단위를 현대 언어학에서는 음소(phoneme)라고 한다. 20세기 언어학자 소쉬르가 개념화하였다. 세종이 하나하나 형태를 부여한 음의 단위는 놀랍게도 오늘날 ‘음소’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원자들이 결합하여 분자가 되듯이 음소들은 결합하여 음절을 만든다. 그런데 정음의 초성+중성+종성(자음+모음+자음) 결합구조는 매우 독특하여 음절의 경계 즉, 음절의 밖과 음절의 안을 모두 게슈탈트로 나타낼 수 있다. 이러한 결합방식은 다른 문자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어 카나는 음절의 경계는 볼 수 있지만 음절의 내부구조는 드러나지 않고, 영어는 단음과 그 배열을 알 수는 있지만 음절의 경계나 음절의 내부구조가 게슈탈트 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184~95면). 내 친구는 한글을 배워 글자를 쓸 수 있게 되었을 때 마치 정사각형 안에 퍼즐 조각을 맞춰 넣은 것 같다고 했다. 글자 간의 경계가 보이는데 글자 안의 구조도 보이는 것, 한글의 매력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이들은 ‘음악 같다’는 말을 종종 한다. 나는 한국어 소리가 거세다고 생각했었다. 과거형에는 반드시 나오는 쌍시옷 발음도 그렇고, 우리말 자음에는 된소리(농음)나 거센소리(격음)도 많다. 그런데 음악 같다니? 히데끼 교수는 신작 『K-POP 원론』(연립서가 2024)에서 K팝을 “말, 소리, 빛, 신체성이 어우러진 21세기형 종합예술”이라 부르며 상찬한다. 존재양식과 표현양식 면에서 기존의 ‘음악’이라는 테두리를 훌쩍 넘어서 지금까지 지구상에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21세기의 지구형 공유 오페라라고 평가한다(8~9면). 이런 예술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여러 관점에서 분석하는데, 그중 하나가 한국어의 특징이다.


‘왜 한국어 랩이 다른 언어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가?’ 그의 답은 이렇다. 한국어가 가진 풍부한 오노마토페(onomatopoeia, 의성어)와 말 사이사이에 넣는 간투사(間投詞, 감탄사), 음절언어가 갖는 발음의 변화, 긴장, 밀도, 그리고 종성 자음이 야기하는 성문 폐쇄와 후두 긴장이 한국어 노래와 랩의 미학을 만들어낸다.(196~290면)


저자는 내가 거칠다고 생각했던 농음이나 격음에 대해서 ‘한국어 자음의 힘이 K팝 노래 소리를 튀어오르게 한다’거나 ‘성문폐쇄음은 보이지 않는 음표’라고 하며 그게 어떤 음악적 기능을 하는지 설명한다. 예를 들어 격음이나 농음으로 시작하는 음절은 평음으로 시작하는 것보다 청각적으로 높게 들리는데, 그 특징 때문에 랩에서 농음이나 격음이 나타나면 그 소리가 두드러지고, 한국어를 모어로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언어음 자체의 매력으로 느껴질 수 있다. 또한 한국어 음소의 특별한 그룹(특히 농음)을 발음할 때는 항상 성문폐쇄 아니면 후두의 심한 긴장이 수반되는데 K팝 노래는 성문폐쇄나 후두 긴장을 자유자재로 삽입하여 묘한 긴장감을 유발하고, ‘엣지있는 소리’를 만들어낸다(231~35면).


한국어에 의성어와 의태어가 압도적으로 풍부하다는 것도 소리의 즐거움을 더하는 데 기여한다. 저자는 한국어가 세계에서 오노마토페가 가장 발달한 언어라고 밝히며 한국어를 ‘오노마토피아(오노마토페+유토피아)라고 부른다. 한국어에는 추임새 같은 간투사도 많다. K팝 노래에는 오노마토페와 간투사가 난무하는데 그게 언어의 재미를 더한다. 예컨대 블랙핑크의 「붐바야」에 대해 “이쯤 되면 이미 의미 따위는 접어 두고 말의 소리 자체를 전면에 내세워 마음껏 즐기자는 작법이 된다”(272~73면)고 쓴다. 그의 설명을 들으니, 한국어 소리가 ‘음악 같다’고 할 때 그것은 ‘곱다’는 의미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풍부하다, 변화무쌍하다, 흥미롭다, 활력이 있다, 다양하다, 즐겁다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새로운 것을 원한다. 한국어는 새롭다.


* 이 글은 세교연구소의 서평웹진 <잔다리서가>에 소개된 서평입니다.


이향규 / 런던 뉴몰든한글학교 교장

2024.11.26. ⓒ창비주간논평·잔다리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