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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아이와 나의 나라



송종원

일곱살짜리 아이와 살고 있습니다. 요즘은 크는 게 아깝다는 말을 실감하는 중입니다. 아이의 성장은 애틋한 마음과 동시에 이따금 번거로운 기분을 들게 할 때도 있습니다. 이것저것 설명을 요구할 때가 그렇습니다. 어른들이 자기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나누고 있을 때 아이는 집요하게 질문합니다. 올해 가을쯤부터는 대통령에 대한 질문이 늘었습니다. “왜 왜 우리나라 대통령이 또 뭐 잘못했어?” “미국 대통령도 우리나라 대통령만큼 문제가 많은 사람이라고?” “트럼프와 윤석열이 같은 편이야?”


12월 7일 우리 가족은 여의도로 향했습니다. 역사를 만드는 자리에 아이와 함께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유치원 운동회에 갔다가 한시간도 안 돼서 돌아올 정도로 아이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크게 긴장하는 성격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지하철에서 마주한 수많은 인파에 아이의 몸이 움츠러드는 것을 느낍니다. 여의도에 도착했을 때 아이의 눈에는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해 보였습니다. “집에 다시 갈까?” 곧 고개를 끄덕일 것같이 머뭇거리더니 아이가 의외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빠, 우리 여기 왜 온 거였지?” 아이의 질문은 언제나 근본적이어서 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역사, 주권, 계엄, 탄핵, 시민, 민주주의 등등의 단어가 머릿속에서 뒤엉켜 답을 구하기가 좀처럼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퍼뜩 아이가 안중근 열사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안중근에 관해서라면 그의 가계는 물론 하얼빈 역에서 거사를 치르기 전에 먹은 음식까지 알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여기가 하얼빈 같은 데인지도 몰라.” 갑자기 아이가 눈을 반짝입니다. “우리는 이또오와 비슷한 도둑을 잡으러 온 거야.” “무슨 도둑?” “음…… 우리가 지킨 민주주의를 훔쳐간 도둑.” 말을 던져놓고 나서야 ‘안중근’도 ‘민주주의’도 너무 나갔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나 민주주의를 설명하려고 하니 아득한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그 순간 아이가 멀리서 펄럭이는 깃발 하나를 발견하고는 나를 당겼습니다. 거기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동물인 말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아이는 안중근 열사만큼이나 말을 좋아합니다.


‘말이되는소리연합’이라고 적힌 깃발 아래 우리 가족은 슬며시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이가 천천히 깃발을 읽어봅니다. 그러고는 무슨 뜻인지 알아보려고 애쓰는 듯이 한참을 쳐다봅니다. 살다보면 말이 되는 소리가 드물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아이도 곧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아이에게 필요한 게 혼자서 끙끙 앓는 일 대신 저런 깃발일 거라는 생각도 얼핏 들었습니다. 아이의 시선에 맞춰 높은 데를 쳐다보았더니 여러개의 깃발이 눈길을 끕니다. ‘전국집에누워있기연합’ ‘미국너구리연합 한국지부’ ‘민주묘총’ ‘(내향인)’ 등등. 정말 모두가 나왔구나 생각하며 시선을 내리니 도로에 굴러다니는 낙엽과 거리의 나무들 역시 사람들과 같이 시위하고 있다는 착각까지 듭니다. 이 땅의 모든 존재가 폭압적인 반민주세력에 분노를 일으키고 있었으니까요.


누군가 내란죄를 일으킨 자의 이름을 선창하면 사람들이 입을 모아 “탄핵하라!”를 외쳤습니다. 탄핵을 합창하는 사람들을 신기하게 쳐다보며 이런저런 곳에 시선을 돌려보는 아이를 몰래 관찰했습니다. 아이는 지금 사람들이 서로를 믿고 함께 행동하는 일을 현장에서 실감하면서 민주주의의 얼굴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또 ‘피부로 체험한다’는 표현이 비유가 아니라고 새삼 느꼈습니다. 피부로 즉각 와닿는 소리와 울림 속에서 사람들 사이에 다양한 세속적 구분법이 사라짐과 동시에 뜻으로 뭉친 커다란 하나의 흐름이 생성된 광장을 경험하는 일, 그리고 공동의 존엄을 향해 목소리와 힘을 모으는 일은 당연히 몸을 필요로 하는 일이고 더불어 온몸으로 배우는 일에 가까울 것입니다. 집회에 참여하는 사이 학생처럼 보이는 누군가는 아이를 보고 쭈뼛거리며 다가와 핫팩과 초코바를 건넸고, 나이 드신 어른 몇몇은 우리 가족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무언가를 담은 눈짓을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앞선 세대가 뒤에 오는 세대를 향해서 보내는 응원 같은 거였을까요. 어쩌면 그날 아이가 어리둥절해하며 순간순간 건네받은 것은 생각보다 더 오래되고 깊은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왠지 우리가 사는 현실을 떠받치고 있는 현실의 뼈대 같은 것을 만져본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그날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분노와 욕지기가 치밀어올라 그것들을 삭이듯 “국민의힘 해체하라”는 구호를 더 크게 외쳤습니다. 아이도 직감적으로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는지 엄마와 아빠의 손을 꼭 쥐었습니다. 바람이 많이 차다고 느낄 때쯤 집으로 다시 향했습니다. 지방에서 올라온 대절 버스들이 여의도를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광주와 대전에서 올라온 버스를 보았습니다. 또 어디서 올라온 것이 있나 살피던 차에 아이가 아내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엄마, 나 3·1운동 하고 온 기분이야.”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3·1운동이라는 단어를 듣자, 새삼 ‘양심이 시키는 대로 우리의 새로운 운명을 만들어가고, 불합리한 현실을 바로잡아 자연스럽고 올바른 세상으로 되돌리려 한다’는 기미독립선언서의 내용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며칠 뒤 아내가 동물 모양 장난감 하나와 인형들이 동그랗게 모여 있는 사진 한장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내의 말인즉, 아이가 작은 블록인형들을 모아놓고 회의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더랍니다. 이런 말들을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오늘은 이 동물을 집으로 보내주는 것에 관해 투표를 하는 날입니다. 자, 모두 투표해주세요.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찬성 열네표, 반대 한표로 동물이 집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결정되었습니다!” 아이에게 민주주의를 설명한 적이 없는데 스스로 그것을 벌써 알아차리고 있는 듯했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존엄을 지키며 살 만한 자리를 찾아가는 일을, 또는 그렇지 못한 자리에서 해방되는 일을 공동의 문제로 여기며 그것을 돌보는 모습을 그려 보인 것이 대견했습니다. 아이는 어느새 그렇게 ‘말이 되는 소리’를 스스로 실현하고 있었습니다.


일주일 뒤, 우리 가족은 오래전에 계획한 일정이 있어 안타깝게도 여의도에 가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에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는 탄핵 요구 집회와 표결 뉴스를 보게 되었습니다. 가결이 선포된 후 아내와 내가 됐다며 가슴을 쓸어내리자 아이가 물었습니다. “이번에는 투표 잘됐대?” “응, 잘됐대.”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문을 하나 연 거야.” “문을 열었다고?” 이제부터 부패한 기득권 반민주세력이 해체되며 새로운 문이 하나둘 열릴 가능성을 마주할 때마다 아이에게 차분히 설명해주고 또 거리로 나가보려고도 합니다. 계엄이라는 상상하지도 못할 상황을 통과하는 순간 횡설수설하며 추악한 민낯을 보여준 세력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 탄핵이 표결되는 순간 반대표를 던진 자들이 이 시대의 적폐를 주도하는 집단임을 끝까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에게 말이 되는 소리를 전하고 싶습니다. 그 소리들이 쌓이면 아이와 함께 성숙한 나라에 가까이 가 있을 것도 같습니다.


송종원 / 문학평론가

2024.12.17.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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