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농업 4법은 남태령 고개를 넘을 수 있을까
지난 12월 21일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을 비롯해 8개 농업·먹거리 단체가 조직한 ‘전봉준투쟁단’의 트랙터가 남태령 고개를 넘는 순간을 사람들은 기쁘게 기억하며 ‘남태령대첩’이라 부르고 있다. 남태령에서의 트랙터와 응원봉의 만남은 도시와 농촌의 만남이었다. 그리고 2030세대 여성들과 성소수자와의 연대 경험이 많지 않던 농민운동에 성평등 문제를 숙고하게 만들었다. 그간 진보적 농민운동도 가부장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고 농촌 내 성차별 문제에는 손을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남태령의 연대에 응답을 해야 하기에 이 문제는 농업운동의 중요한 의제로 남았다. 우선 전봉준투쟁단은 무지개떡 1만개를 서울로 올려 보내 연대에 고마움을 전했다. 백설기보다 공정이 까다로워 떡집을 찾느라 애를 먹으면서도 꼭 무지개떡이어야 한다는 그 감각은 남태령투쟁을 통해서 배운 것이다. 여기에 제주항공 참사가 일어나자마자 여성농민들은 무안공항으로 달려가 1천인분의 식사를 마련하며 남태령에서의 연대를 이어갔다.
훗날 남태령투쟁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이뤄지겠으나 트랙터와 응원봉은 남더라도 농민들이 트랙터를 끌고 온 이유는 희미해질 공산이 크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에서 2015년 11월 ‘물대포’는 기억하지만 “밥 한공기 쌀값 300원을 보장하라”는 외침은 낯설다. 윤석열정부가 처음으로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은 양곡관리법이었다. 공교롭게도 탄핵정국에서조차 행사된 한덕수 권한대행의 1호 거부권 역시 양곡관리법을 필두로 한 ‘농업민생 4법’이었다. 주무부처인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아예 농업 4법을 두고 ‘농망법(농업을 망치는 법)’이라며 발끈하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남태령에서 응원봉 시민들은 그간 농업에 무관심했다며 미안해했다. 실제로 그날 ‘양곡관리법’이 인터넷 검색어 상단에 오르기도 했다. 양곡관리법은 그나마 관심을 받았지만, 함께 거부되었던 나머지 법들도 주목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영농 의지: 양곡관리법과 농안법
양곡관리법은 쌀값이 폭락할 때 정부가 쌀을 매입하여 양곡 가격을 안정시키는 법이다. 여당의 반발과 거부권이 이어지면서 쌀값의 등락폭을 숫자로 명시하였다가 개정안에서는 양곡수급관리위원회에서 기준을 정하도록 후퇴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남는 쌀을 강제로 사들이는 법이라며 농민들을 순식간에 ‘세금충’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양곡관리법은 시중가보다 쌀값이 너무 떨어질 때 기준가격의 차액을 보존하는 법으로, 쌀을 무조건 사주는 강제매입법이 아니다. 타작물에 비해 자급률이 월등히 높다지만 쌀 자급률은 100%가 아닌 90% 내외다. 2024년 국내에서 358만 5천 톤의 쌀을 생산했는데, 그에 비하건대 11% 정도인 40만 톤이 넘는 쌀을 해마다 수입하고 있어 쌀이 넘쳐나 보이는 것이다.
쌀 대신 콩, 밀, 사료작물을 심으면 보조금을 지원하는 ‘논 타작물 재배 지원사업’도 있지만 고령의 농민들이 새로운 작물을 기르는 것도 쉽지 않다. 평생 지어온 벼농사인데다 기계화가 완료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가도 쌀 자급을 목표로 농정을 설계해온 터라 수리시설을 갖추고 경지 정리를 통해 기계화에 박차를 가한 유일한 품목이 쌀이다. 농민들은 그 기조에 맞춰왔을 뿐이건만 이제는 쌀만 고집한다며 늙은 농민들을 불한당 취급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쌀은 농촌경제의 근간이다. 아무리 헐값이라 해도 목돈을 쥘 수 있는 날은 벼를 수매하는 날이다. 그런데 농촌의 소멸을 막겠다면서 쌀을 압박하는 것은 농촌 소멸을 부추기는 처사다.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일명 농안법 개정안은 배추, 무, 양파와 같은 쓰임이 많은 주요 채소와 과일의 가격이 기준가격 미만으로 하락하는 경우 차액을 보전하자는 취지다. 양곡관리법의 채소, 과일 버전이라 할 수 있다. 기후위기와 농산물 수입으로 농가경제를 계획대로 꾸려나가기란 매우 어렵다. 농업은 변동성이 큰 산업으로 등락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농산물 가격이 폭락해 농가에서 생산비조차 건지지 못하면 빚을 진다. 그리고 농사를 지어 빚을 갚을 길이 난망하면 종당에는 농사를 포기하게 된다. 그간 윤석열정부의 농정은 농업 진흥보다는 ‘물가 관리’의 측면에서만 다뤄져 왔다. 배춧값이 오르면 급하게 배추를 수입하고 세금을 써서 할인쿠폰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농산물값이 폭락할 때는 소비촉진 캠페인을 펼치는 정도에 그친다.
식량자급률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농산물 수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농업만큼이나 글로벌 무역체제도 종종 흔들린다. 유가와 환율에 영향을 받고, 국제 분쟁의 여파를 겪는다. 무엇보다 기후는 국경을 넘나들며 농업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변동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중국에서든 미국에서든 원하는 만큼 농산물을 수입할 수 있을 것이란 장담을 그 누구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여 최소한의 먹거리 수급의 안정을 위해서도 농업은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영농 의지를 꺾지 않는 방도로 가격지지 제도가 있어야 하고 이는 미국과 일본에서도 운용되는 제도다.
사람의 일은 사람이 해야 한다: 농어업재해보험법과 농어업재해대책법
농어업재해보험법과 농어업재해대책법은 재해가 발생했을 때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보험 보장의 수준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해가 반복되면서 이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책은 마련하자는 것이다. 2024년 늦가을까지 폭염이 이어져 벼멸구가 창궐했다. 이는 농민의 노력 부족도, 공무원들의 능력 부족도 아닌 자연재해였다. 그간 병해충은 태풍이나 장마, 가뭄과 달리 예찰과 방제를 통해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 재해 인정을 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이번에 정부가 벼멸구 피해를 재해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병해충이 더이상 사람의 문제가 아님이 자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작물이 타 죽는 ‘일소병’도 잦아졌다. 이렇게 기후의 문제는 농업의 전반을 쥐고 흔드는데 기존의 재해대책법은 이상기후로 농사를 망치면 농약값과 다시 씨를 뿌리는 비용(대파대)만 지원해왔다. 하나 내다 팔 수확물이 없는 상태에서 생산비가 고스란히 손실로 남는 셈이다. 그래서 개정안에서는 재해 이전까지 들어간 생산비용을 지원하고 재해 범위에 ‘이상고온’을 명시하자는 것이다.
농어업재해보험 개정안에서는 재해로 보험금을 받으면 이듬해 보험료가 할증되는 문제를 짚었다.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과실이 없다면 보험료는 할증되지 않는다. 그런데 농업은 생산자의 잘못이 아닌 재해로 보험금을 수령한 것인데도 보험료가 할증되는 불합리한 측면이 있어왔다. 이에 대해 정부는 농산물 가격을 지지하고 재해보험의 보장범위를 넓혀주면 농민들의 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것이라는 논리를 들이댄다. 그러나 아무리 농사가 천덕꾸러기라 하더라도 알량한 보험금과 재해보상금을 받기 위해 농사를 망치려는 농민은 없다.
응원봉 시민들은 트랙터를 끌고 온 농민들이 남태령 고갯길을 넘게 해주었다. 남태령의 감동은 두고두고 이야기꽃을 피울 테지만 그날 윤석열 퇴진을 외치는 트랙터는 길을 넘었을지 몰라도 농업 4법은 고갯마루에서 멈췄다. 시민들의 응원봉과 함께, 농업 4법도 남태령 고개를 넘어갈 수 있을까. 농업 4법은 기후위기 시대에 농사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대응책일 뿐, 완벽한 법도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농업에만 주는 특혜이자 농업의 미래를 갉아먹는다 한다. 쌀을 매입해주면 벼농사를 더 짓고, 농산물 최저가를 보장해주면 농사를 짓기 위해 사람이 몰린다는 것인가. 저 고되고 외로운 농사일에 말이다.
정은정 / 농촌사회학 연구자
2025.1.6.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