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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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탄소중립의 삶, 지역에서 해야 할 일



배보람



비를 뚫고 퇴근해서 창문을 열어두니, 개구리 소리가 넘어온다. 아파트와 빌라촌에 구석구석을 빼앗기고 남은 겨우 손바닥만큼의 숲에서 개구리가 사는구나, 감탄 같은 것을 흘리다가 이 비에 사람이 죽고 집이 잠기는 마당에 이런 감상이 가당키나 한가 싶어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산불은 봄, 폭우와 폭염은 여름, 사과와 배 등 장바구니 물가가 무섭게 올라가는 것은 가을, 느닷없이 꿀벌이 깨어나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은 겨울이 되었다. 우리는 이제 모든 계절을 기후위기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기후위기가 계절을 바꿔내며 삶의 모든 기반을 바꾸고 있다.


문제는 기후위기가 우리의 삶을 바꿔내는 속도보다 우리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속도가 한참이나 더디다는 것이다. 정부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세금을 거두는 방식을 바꾸거나 기업이 RE100을 달성하거나 시민들의 삶의 양식이 바뀌는 것보다도 폭우와 산불이 사람들의 집을 휩쓸어버리는 속도가 더 빠르고, 폭염으로 인해 노동의 강도가 가중되는 속도가 더 빠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대중교통보다 승용차가 편리하고 자전거 타기 위험한 도로로 가득 찬 도시에서 살며, 창가에 태양광 패널 하나 내놓는 것조차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물건을 고쳐서 쓰는 것보다 새로 사거나 일회용품을 쓰는 편이 쉽고 간편하다. 가장 쉽고 편리한 삶은 ‘지금과 같은’ 삶이다.


시민들이 만드는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국가, 도시, 시민들의 삶의 방식이 모두 결합되어 탄소집약적인 사회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시민들이야말로 탄소중립을 함께 배우고 만들어내는 주체가 된다. 이는 시민들이 국가와 지자체의 제도와 예산집행 방식을 바꾸고 기업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내용이 국가, 광역자치단체, 기초자치단체로 이어지는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에 있다. 한국정부는 온실가스 배출을 제로에 가깝게 낮추고 탄소를 흡수원 등으로 관리하여 대기중 온실가스 배출을 0으로 수렴하겠다는 탄소중립을 2050년까지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약속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에 담겨 있다. 이 법에 따라 정부는 지난 2023년 국가 차원의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수립했고, 지난해 광역자치단체가 그리고 올해 기초자치단체가 탄소중립을 위한 2030 중간목표와 그 실행계획을 수립했다. 꽤 두꺼운 보고서가 국가, 17개 광역자치단체 그리고 226개의 기초자치단체 순으로 수립되었다. 지역마다 최소 일년의 시간을 쓰고, 예산을 투여하고, 각 자치단체의 부서들과 개별 사업의 물량 맟 예산을 협의하고, 공무원, 주민, 전문가로 구성된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의 검토를 받아 마무리되었다. 226개 기초자치단체의 인구, 주택, 교통, 에너지 이용방식의 특성을 고려하여 수립된 계획이니, 이제 그 계획의 성과를 주민들이 체감할 차례다.

 

탄소집약적 삶의 경로의존성을 깨뜨리는 실천


녹색전환연구소는 지난해부터 시민들과 ‘1.5°C 라이프스타일 실천’을 만들고 있다. 이 활동은 시민들이 접근할 수 있는 실천 범위 내에서 기후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변화를 만들고, 그 변화의 노력이 곧 시민의 삶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1.5°C 라이프스타일 계산기’를 검색해 보면 우리 일상의 어느 부문에서 온실가스가 가장 많이 배출되는지 알 수 있다. 1만여명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확인한 결과, 주거, 교통, 먹거리 분야에서 가장 많은 온실가스 배출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비행기 이용 거리, 주거의 면적과 자동차 이용 시간, 외식의 횟수 등이 가장 큰 변수다.


그렇다면 교통, 주거, 먹거리 분야의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이 필요할 텐데, 문제는 시민과 공동체의 자발적 의지에 기반한 활동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채식을 제공하는 식당이나 학교급식이 존재하지 않거나 태양광 설치를 하고 싶어도 집주인과 합의할 수 없는 조건, 자전거 통학과 통근을 결심해도 위험성이 너무 큰 도시 인프라를 바꿔야 한다. 이는 시민의 의지에 한정될 수 없고, 제도의 변화와 연결되어야 한다.


실제로 지역에서는 탄소집약적 도시와 삶의 양식을 깨뜨리는 실험과 실천이 만들어지고 있다. 서울노원구는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수립하며 자전거 친화도시를 선포했다. 자전거 10분 도시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자전거 교통수단 분담률을 10%까지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노원구의 계획이 잘 실행된다면, 유럽의 도시 풍경에서 보듯 이른 아침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거나 출근하는 시민들을 익숙하게 만날 것이고 자연스럽게 도로의 일부분을 자전거에 내주게 될 것이다.


‘그린 리모델링’에 있어 많은 성과를 내고 있는 경기도 광명시도 있다. 광명시는 어린이들과 어르신들이 사용하는 건물의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재생에너지 설비를 확대하여, 기후위기에 취약한 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공간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있다. 그린 리모델링의 성과가 지역에 축적되는 동시에 노후주택에 대한 주택 개선사업의 지원을 확대하고, 시가 지원한 주택을 임대할 경우에는 임대료 상승을 제한하는 협약을 건물주와 체결한다. 파주시의 경우, 대중교통 노선이 충분하지 않은 지역의 학생들을 위한 통학버스 ‘파프리카’를 친환경 버스로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 성동구의 경우 기후위기에 취약한 주거 형태인 연탄가구와 반지하가구 전수조사를 통해 안전성이 낮은 주민들에게 공공주택을 연계하거나 안전시설 설치, 주택 리모델링 등을 지원하기도 했다. 경기도는 에너지 취약 농촌지역이나 마을 협동조합을 기반으로 열가구 이상 신청하는 지역에 태양광 설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렇듯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면서도 에너지 사용을 줄이기 위한 방법이 지역단위의 사업으로 중요하게 추진되고 있다.


탄소중립의 실천이 더 나은 삶의 경험이 되도록


이러한 사례는 기후위기 시대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한 정책이기도 하지만, 시민들에게는 더 나은 삶을 지원하는 복지정책으로 경험될 수도 있다. 에너지 가격 인상에 대응하면서도 시민들의 삶의 질이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으로 태양광을 설치하고, 탄소중립 교통정책이 더 편리한 공공버스의 이용으로 경험되도록 하고, 노후주택의 개선을 지원함으로써 탄소중립 정책의 효과를 주거 쾌적성 증대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탄소중립 정책이 언제나 계획대로 실행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익숙한 삶의 방식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새로운 시도가 이질적일지도 모른다. 시민들은 탄소중립을 통한 삶의 편리성과 효율성을 충분히 경험해보지 못했고, 도시에는 익숙한 도시개발의 문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폭우와 폭염이 번갈아 등장하는 기후위기의 시대, 우리는 더 좋은 삶이 곧 기후위기를 대응하는 방법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이 더 많은 탄소중립 정책과 만나 226개의 자치단체의 일상적인 정책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시민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한 기후정책을 실험하고, 요구하고 선택해야 할 것이다.



배보람 /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

2025.7.22.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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