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창비주간논평

제3기 진실화해위원회, 중단 없는 과거사 해결이 필요하다



김재형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정권의 쿠데타 시도가 실패로 끝난 이후, 한국사회는 무너진 민주주의를 복원하고 정상화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는 국회와 시민사회의 움직임뿐 아니라, 인권위원회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 같은 정부기구들의 역할도 포함된다. 특히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세기 동안 누적된 국가폭력과 인권침해의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는 핵심기구라는 점에서, 그 의미와 한계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2005년 출범하여 4년 2개월 동안 활동하며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 활동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문을 닫았다. 이후 형제복지원과 같은 집단수용시설 문제가 사회적 주목을 받으면서, 2020년 12월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새롭게 출범했다. 많은 이들이 과거사의 진실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의 진전이 이루어지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윤석열정권 시기에도 극우성향 인사들이 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제2기 위원회 역시 파행을 거듭했다. 2022년 12월 임명된 김광동 위원장은 2023년 5월 25일, 조사 개시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문제와 관련해 “부역혐의 희생자 중 실제 부역자가 있는지 고려하려고 논의 중”이라고 발언했다(「“부역자 가리겠다”는 김광동… 위원회에서도 “설립 취지 뒤엎는 극언”」, 한겨레 2023.5.25.). 이는 한국전쟁 시기 정당한 재판절차 없이 산으로 끌려가 총살당한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해 공산주의 등의 부역혐의를 다시 묻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고, 피해자 유족과 시민사회는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이후 박선영 위원장(현직) 시기에도 이러한 기조에는 큰 변화가 없었으며, 두 전·현직 위원장은 줄곧 왜곡된 역사인식을 드러냈다. 피해자와 유족들은 국가기구에 의해 또다시 상처를 입고 불필요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결국 민주당은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를 더는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위원회는 오는 11월 26일 문을 닫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이재명정부의 국정기획위원회는 제3기 진실화해위원회 설립을 ‘신속과제’로 선정했다. 국가폭력연구모임 ‘질기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 집단수용시설 연구모임,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진실화해위원회지부 등은 지난 6월 공동으로 작성한 정책제안서를 국정기획위원회와 각 정당에 전달했다.


이 제안서는 △제3기 위원회의 신속한 설립을 위한 법 개정 △제2기 위원회 파행 극복과 피해자 인권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 △피해자 배·보상 및 후속조치 제도화라는 세가지 방향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거사 해결이 중단 없이 이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국회는 더이상 지체하지 말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을 신속히 통과시켜 제2기 위원회가 종료된 직후인 12월 1일, 제3기 위원회가 설립되도록 해야 한다. 이미 여러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지만, 불필요한 정쟁에 발목 잡히지 말고 피해생존자와 유족의 고통을 덜어내는 데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또한 새로운 진실화해위원회는 제2기 위원회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 넓은 범위의 진실을 다룰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한국전쟁기 소년병 동원, 집단수용시설과 강제노역, 삼청교육대, 교정시설 내 순화교육, 해외입양, 국가권력에 의한 성폭력 등 새롭게 확인되는 인권침해 사건은 물론,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까지 포함하여 조사 범위를 재설정해야 한다.


둘째, 제3기 위원회는 위원장과 위원의 자질 검증 절차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윤석열정권기에 드러난 것처럼 역사왜곡에 경도된 인사가 위원장이나 간부로 임명될 경우, 진실규명은 지연되거나 중단될 수밖에 없다. 위원장과 위원은 조사 방향과 방법을 설정하고, 조사관과 소통하며, 최종적으로 진실을 결정하는 중대한 권한을 가진다. 따라서 최소한의 검증절차는 필수적이다. 아울러 조사관 역시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확충되어야 한다. 타 부서에서 파견된 공무원의 비중을 줄이고, 과거사 사건 조사 경험이 있는 전문가를 적극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새로 합류한 조사관들을 위한 전문적 교육과 훈련도 병행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조사와 심의 과정에서 피해자와 유족의 목소리를 존중하고 이들을 보호할 공론장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한다. 피해자와 유족은 이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다시 겪을 수 있기에 세심하고 전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관료적 절차가 이들에게 또 다른 상처로 남지 않도록, 충분히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이 보장되어야 한다. 


셋째,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국가의 사과와 배·보상은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현재는 진실규명 결정을 받더라도 피해자가 별도의 소송을 제기해야만 배·보상을 받을 수 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 652명이 제기한 국가배상소송 111건, 선감학원 피해자 377명의 42건에 이르는 소송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피해자들은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을 통해 국가의 책임을 인정받고도, 다시 가해자인 국가를 상대로 긴 소송을 치러야 한다는 현실에 좌절하고 있다. 실제로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홍영식씨는 항소심 승소 후 국가의 상고로 확정판결이 지연되자 극심한 상심 끝에 세상을 떠났다. 고령의 피해자 중 일부는 소송과정에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가해자인 국가가 이미 조사가 끝난 사건에서 항소를 반복하는 것은 피해생존자에게 또다른 가해일 뿐이다. 다행히 최근 임명된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일부 사건의 상소를 취하하기로 결정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별도의 배·보상 위원회나 기구를 설치해 피해자와 유족이 더이상 소송으로 고통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단순히 과거를 정리하는 기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국가폭력의 진실을 드러내고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제도화하는 장치다. 제3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신속히 설립되어야 하며, 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새롭게 설계되어야 한다. 과거사 해결은 과거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문제다. 피해생존자와 유족의 고통을 덜어내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은 한국사회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켜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책무이자, 우리 모두가 함께 짊어져야 할 과제다.



김재형 /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2025.8.19. ⓒ창비주간논평

커버 이미지: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