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할까
구정은
시리아내전이 한창이던 2014년, 지금은 쫓겨난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수도 다마스쿠스 외곽의 한 지역을 봉쇄했다. 고립된 마을에서 사람들은 굶주렸다. 아직 돌도 안 지난 아기가 바짝 말라 죽어가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지구상에 먹을 게 없어서 혹은 먹을 것을 내주려는 사람들이 없어서가 아니라, 무력집단의 봉쇄 때문에 굶는 사람들. 21세기의 굶주림은 대체로 그런 것이다. 예외가 있다면 2021년 유엔이 ‘세계 최초의 기후변화 기근’이라 했던 마다가스카르 남부의 굶주림 정도다.
지금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경악스럽다. 뼈만 남은 아이, “힘이 없어 더이상 소식을 전할 수 없다, 나는 죽어가고 있다”고 호소한 언론인, 먹을 것을 구하려다 이스라엘군과 미국 보안업체 직원들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는 사람들. 지난 8월 22일, 세계 식량 수급상황을 취합하는 IPC(통합식량안보단계분류)는 가자지구 일부 지역에서 기근이 발생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210만 인구의 100%가 높은 수준의 급성 식량불안”을 겪고 있으며 9월 중에는 거의 모든 지역이 5단계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IPC 분류를 보면 1단계 ‘정상’, 2단계 ‘경고’, 3단계 ‘위기’, 4단계 ‘비상’, 그리고 5단계가 ‘기근’(famine)이다. 이미 지난해 1월 세계식량계획(WFP) 수석경제학자 아리프 후사인은 “세계에서 IPC 5단계에 처한 사람의 80%가 가자지구 사람들”이라고 했다.
숫자로만 보면 잘 와닿지 않는다. 국제앰네스티가 가자 사람들의 증언을 모아 공개했다. “4월 말부터 젖이 줄었다. 가족들이 매일 먹는 음식은 렌즈콩이나 가지, 물 한 접시이고 아이들은 배고파 울며 잠든다. 굶어서 약해진 아들은 걷다가 넘어지곤 한다. 엄마로서 실패한 것 같다. 아이들이 굶으니 내가 나쁜 엄마인 것처럼 느껴진다.”(S, 여성) “당뇨병, 혈압, 심장질환 약이 필요한데 유통기한 지난 약밖에 없다. 아이들, 내 손주들은 살아야 한다. 가족에게 짐이 된 것 같다.”(아지자, 75세) 66세 나헤드는 “구호품 수송로에서 벌어지는 식량 쟁탈전은 사람들의 인간성을 빼앗고 있다”며 “피로 얼룩진 밀가루 자루를 나르는 사람들을 봤다. 내가 알던 사람들조차 못 알아볼 정도로 변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가자를 봉쇄한 뒤 ‘가자인도주의재단’(GHF)을 군 산하에 만들고 이 재단에 식량 배급을 맡겼다. 그러고는 질서유지를 핑계로 식량을 받겠다고 몰려든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쏜다. 그렇게 학살당한 사람이 이미 7월까지 천명이 넘었다. 이스라엘군이 2023년 10월 시작된 이 전쟁에서 살해한 팔레스타인 사람은 9월 초 기준으로 6만 5천명에 이른다.
이태 전 동유럽을 여행하면서 폴란드 아우슈비츠에 갔다. 지금은 폴란드식 지명인 오시비엥침으로 바뀌었고, 아우슈비츠라는 이름은 홀로코스트 기념관의 명칭으로만 남아 있다.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글귀가 방문객들을 맞았다. 이미 홀로코스트에 대해선 읽을 만큼 읽었다고 생각했건만, 사진 촬영이 금지된 어느 한 방에서 나는 공황장애가 온 듯 숨을 쉴 수 없었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폭력은 대체 어디까지인가.
“우리의 모습은 100여개의 창백한 얼굴들 속에, 초라하고 지저분한 100여명의 꼭두각시들 속에 반사되어 있다. 이제 우리는 어젯밤에 얼핏 본 그 유령들로 변해 있었다. 우리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밑으로는 더이상 내려갈 곳이 없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작가 쁘리모 레비는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딸리아 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에는 또다른 증언이 나온다. 수용소에 갇힌 이들은 기력을 잃고 영혼까지 빠져나간 듯 무기력해진 이들을 ‘무젤만’, 즉 ‘이슬람교도’라 불렀다 한다. 무슬림들이 기도 때 고개를 숙이듯 몸을 수그리고 다니기 때문이다. 지금 이스라엘인들은 가자의 무슬림들을 ‘무젤만’들로 만들고 있다.
이스라엘은 8월부터 가자지구 중심도시인 가자시티 점령작업에 들어갔다. 네타냐후 총리는 무장조직 하마스를 무력화한 뒤 가자를 “아랍세력에게 넘길” 계획임을 시사했다. 동시에 네타냐후 정권은 팔레스타인의 또다른 영토인 요르단강 서안지구 땅을 빼앗아 유대인 점령촌들을 계속 짓고 있다. 네타냐후는 자국 언론 인터뷰에서 ‘대(大)이스라엘 구상’을 지지한다고 했다. 이스라엘 극우파가 주장해온 이 구상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 레바논 일부, 시리아와 이집트와 요르단의 일부 지역까지 자신들 땅으로 삼아야 한다는 팽창주의 비전을 가리킨다. 이슬람협력기구와 아랍연맹 등은 공동성명을 내고 “국제법과 안정적인 국제관계의 기반을 무시하고 노골적으로 위반하는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나치가 중동부 유럽을 게르만의 생활공간으로 삼겠다며 전쟁을 벌였던 것에 빗대어 이스라엘판 ‘레벤스라움(Lebensraum) 구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기아를 무기화하는 것은 전쟁범죄다. 작년 11월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네타냐후와 전 국방장관 요아브 갈란트에 대해 ‘전쟁수단으로서의 기아라는 전쟁범죄’에 형사책임을 져야 한다며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국제기구들과 학자들은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을 인종, 민족, 언어, 문화 등의 정체성을 기준으로 한 집단을 제거하는 ‘제노사이드’라고 규정했다.
기근으로 몰아넣기 이전에도, ‘철저히 계획된 빈곤화’는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오랜 정책이었다. 1967년 점령 이후 반세기 넘도록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고립시키고 자립할 수 없는 지역으로 만들었다. 점령군은 2005년 철수했지만 이스라엘의 봉쇄로 인해 가자 주민들은 구호기구 도움 없이는 살아가지 못하는 상태가 돼버렸다. 의도적으로 가자 사람들을 굶주리게 만들고 도망쳐 나가게 해서 인구를 줄이는 이스라엘의 행위들은 2023년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이뤄져온 행위다.
“우리 주위에서 조금 조금씩 자라나던 그 끔찍한 것들에 관해서 생각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감사해 하고 있었습니다. 굳이 생각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미국 학자 밀턴 마이어는 2차 대전이 끝나고 오래 지나지 않은 1950년대 독일을 방문해 ‘나치였던’ 사람들을 찾아가 히틀러에 대해, 홀로코스트에 대한 생각을 듣는다. 그들을 만난 뒤 마이어가 펴낸 책의 제목은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다.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의 목표는 가자지구를 갖는 게 아니라 하마스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아우슈비츠 정문에 적힌 ‘자유’, 마이어가 만난 독일인들의 ‘자유’, 네타냐후가 말하는 ‘자유’. 전쟁과 학살과 굶주림과 점령을 자유라는 거짓 이름이 뒤덮고 있다.
구정은 /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
2025.9.23.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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