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미얀마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
2021년 2월, 미얀마에서 일어난 군부쿠데타는 이전 해 총선에서 83.2%라는 압도적 지지를 받은 민족민주동맹 정부를 총칼로 무너뜨렸다. 그리고 4년 반이 지났다. 그사이 우끄라이나에서, 팔레스타인 가자에서 비극이 벌어졌다. 미얀마는 잊혀지고 있다.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한국은 미얀마와 어떻게 연루되어 있고,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쿠데타와 군부라는 어휘는 미얀마 현대사에서 낯설지 않다. 군부는 1962년 쿠데타 이후 60년 넘게 미얀마를 지배해왔다. 1988년 8·8민주항쟁은 군부의 가혹한 탄압에 결국 좌절됐다. 이번에도 그럴 것 같았다. 하지만 달랐다. 민족민주동맹 정부 출신의 인사와 소수민족 지도자들이 민족통합정부(NUG)를 결성하고, 시민방위군(PDF)을 중심으로 전투를 계속하고 있다. 광범위한 시민불복종운동도 전개됐다. 독립된 소수민족 무장세력들의 저항도 강력하다. 2023년 10월부터 ‘삼형제동맹’이 펼친 대규모 공세인 ‘작전 1027’이 대표적이다.
군부가 금세 장악할 것 같던 미얀마의 형세는 팽팽하다. 2025년 10월 현재, 군부는 수도인 네피도와 양곤‧만달레이 같은 대도시, 군사적 거점 등 영토의 3분의 1 정도만 통제한다고 알려져 있다. 반면 민족통합정부 및 연합저항군이 40% 이상을, 그외의 지역은 독립적인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이 장악하고 있거나 경합 중이라고 전해진다. 즉, 지금 미얀마는 내전 중이다.
내전은 많은 이들의 삶을 파괴했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구금됐다. 350만명 이상이 고향을 잃은 채 국내난민이 됐고, 150만명 이상이 이웃나라로, 더 먼 나라로 떠나 난민이 됐다. 아이들이 부모를 잃고, 부모가 아이들을 잃었다. 친구와 연인이 헤어지고 사라졌다. 전쟁의 스펙터클에 환호하는 이들이, 무기와 전략물자를 팔아 이득을 얻는 이들이 외면하는 비극이다.
민족통합정부와 연합저항군의 승리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지만 내전의 귀추를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다. 군부는 수세에 몰렸지만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따지는 중국의 지원을 받고 있다. 공군과 해군처럼 저항세력에게는 없는 막강한 무력도 있다. 반면 민족통합정부와 시민방위군의 지휘체계에는 통일성이 부족하고, 원조를 제공하는 우방도 없다. 소수민족 중 일부는 함께하고 있지만, 일부는 완전한 자치를 주장하며 독자적으로 행동하거나 심지어 군부에 협력하고 있다. 오랫동안 이어져온 민족간 갈등이 남긴 상처다.
미얀마에서 민주주의의 회복과 진전은 군부독재의 타도를 넘어 민족간 갈등의 해결이라는 난도 높은 과제와 결합되어 있다. 미얀마는 다수민족인 버마족 외에 여덟개의 주요 소수민족과 수많은 소수민족으로 이뤄진 다민족국가다. 군부독재는 버마족을 우대하면서 민족간 분열을 조장했다. 소수민족을 우대하며 민족간 갈등을 조장한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배운 통치방식이다. 켜켜이 쌓인 역사 속에서 구원(舊怨)도 쌓였다. 이 분열의 극복 없이 군부독재의 극복은 불가능하다.
어둠을 헤쳐나갈 길이 있을까? 군부에 맞서는 미얀마인들은 한결같이 ‘팡롱협정’의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외친다. 독립 직전이던 1947년, 독립운동의 지도자 아웅산과 소수민족 지도자들 사이에 맺어진 팡롱협정은 모든 민족의 평등과 자치, 자결권의 보장, 소수민족의 권리에 대한 헌법상의 보장, 연방탈퇴의 자유보장 등을 명기했다. 협정은 미얀마의 건국정신이 됐다. 총선 압승으로 독립과 건국을 목전에 두었던 아웅산과 동지들이 정적들에게 암살되면서 혼란이 시작됐다. 협정의 정신은 형해화됐고, 결국 기나긴 군부독재로 귀결됐다. 군부의 지지기반이던 버마족마저 군부에 맞서는 지금이야말로 협정의 정신에 기초한 헌법을 만들고, 평등한 연방국가의 수립으로 나아갈 기회일 것이다. 이들의 염원과 다짐이 이뤄지길 기원한다.
그사이 한국과 미얀마의 관계는 어땠을까? 쿠데타 직후 한국의 국회는 쿠데타 규탄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외교부는 우려를 표명했다. 최소한의 ‘인도적 지원’을 제외하고 미얀마에 대한 공적개발원조(ODA)도 중단했다. 한국정부는 공식적으로 미얀마 군부정권을 승인하지 않는다고 밝힌다. 하지만 군부정권에 충성하는 주한 미얀마대사관이 영사업무 등 실무차원에서 한국정부의 파트너 노릇을 하고 있다. 윤석열정부 때인 2023년에는 무기 홍보 행사에 미얀마대사를 초청하는 바람에 유엔의 경고를 받기도 했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운영하고 한국가스공사 등이 참여한 미얀마 슈웨가스전 사업은 국제사회의 비판에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한국은 가스를 가져오는 댓가로 군부에 자금을 주고 있다.
쿠데타 이후 낯선 나라 미얀마가 내게 각별한 곳이 되었다. 미얀마인들의 저항이 존경스러워 지역에서 미얀마를 응원하는 촛불집회를 이어간 것이 계기가 됐다. 기껏 촛불이 무슨 힘이 될까 싶었지만 할 수 있는 게 그뿐이었다. 그러자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국내의 미얀마인들과 연결됐고, 할 수 있는 일들이 생겼다. 미얀마의 고아원 돕는 모임이 만들어졌다. 내전 중에 부모 잃은 아이들이 늘었는데 지원은 대부분 끊겼으니 도움이 절실했다. 작은 규모지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좀더 본격적인 연대도 진행됐다. 타이 쪽 국경도시 매솟에 망명 중인 민족통합정부와 연락이 됐고, 작년과 올해 두번의 지지방문이 이뤄졌다. 한국에서 모금한 돈과 연대의 마음을 난민촌과 학교에 전했다. 현지에 작은 한글학당을 열어 지속적인 관계의 터전도 마련했다. 미얀마와 연대하는 한국 시민이 적지 않다.
이 모두는 민주화와 산업화에 성공한 ‘선진국’ 한국인이 고통을 겪고 있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돕는다는 서사로 귀결될 수도 있다. 이조차 간절할 수 있지만 이야기의 전모는 이와 다르다. 한국에는 지금 취업‧유학‧결혼 등을 통해 4만명 이상의 미얀마인이 살고 있다. 조선업 등 제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대다수다. 한국경제의 작동에는 미얀마인의 기여가 있다. 우리는 서로 연루되어 있는 평등한 이웃이다.
각지의 미얀마 노동자들은 공동체를 만들어 서로 교류하면서 조국의 민주화를 돕고 있다. 올해의 매솟 방문에는 우리 지역의 미얀마 노동자들도 동참했다. 지난 10월 4일에는 군부정권이 추진 중인 총선 실시에 반대하는 재한 미얀마인의 집회와 행진이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총선이 끝나면 군부는 국제사회의 승인을 시도할 것이기에 이에 반대하는 것이다.
미얀마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시민단체들의 모임도 활동 중이다. 현지와의 협력은 물론 좀더 근본적인 고민도 하고 있다고 한다. 난민의 법적지위가 핵심 이슈다. 예컨대 매솟에서 한국어를 배운 미얀마 청년은 난민 지위를 얻지 못해 한국에 오지 못한다. 한국정부가 난민문제에 있어 결단을 내린다면 좋은 친구들을 얻을 수 있다. 모임은 더 나아간 미래도 고민 중이다. 한국과 타이에서 경험을 쌓은 미얀마인들이 민주화된 조국에서 훌륭한 활동가가 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작년의 매솟 지지방문 때 민족통합정부가 운영하는 작은 공장을 방문하는 일정이 있었다. 온갖 것을 만들던 공장이 타이정부의 단속에 멈춰 있었다. 수많은 문자가 아로새겨진 검은 옷 한벌이 눈에 띄어 물었다. 항쟁 중 죽은 이들의 이름을 새긴 옷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사연이 각별하게 느껴져서 사고 싶다고 했더니 파는 옷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부끄러웠다. 잠시 후에 그들은 그 옷을 내게 선물로 줬다. 달러를 내밀자 단호히 외면했다. 더욱 부끄러웠다. 글을 마치며 다시 옷을 들어본다. 미얀마는 멀지만 미얀마인은 가까이에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시민들이 앞장서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미얀마 군사정부에 단호한 입장을 취하라고 요구하자.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재한 미얀마인에 대한 미얀마대사관의 여권 취소 등 부당한 압력을 비판하고 난민지위 부여를 촉구하자. 가능하다면 지역의 이주노동자센터를 찾아가보자. 할 수 있는 일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조형근 / 동네 사회학자
2025.10.21.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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