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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 저울질하는 이재명정부, 흔들려서는 안 될 ‘촛불연합’



이태호


미국이 이란 침공을 감행한 후 분쟁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분쟁의 늪에 빠진 미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군의 참전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호르무즈해협의 ‘자유통항’을 확보하는 데 이해관계가 있는 나라로서 ‘군사적 기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 8월부터 트럼프는 한국을 콕 집어 파병을 압박해왔으며, 이에 대해 이재명정부의 국방부, 외교부, 청와대 일각에서도 미국 등과 ‘군사적 기여’를 협의해왔다고 밝히는 등 파병을 실제 선택지의 하나처럼 저울질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통상 압박이나 안보 의존 등의 현실을 고려하여 탐색, 기뢰 제거, 군수 지원 등의 ‘비전투적 지원’은 가능하다는 주장도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중이다. 그러나 나는 이재명정부가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한국군을 파병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의 대이란 침공 지원은 정부가 밝힌 비전과 완전히 상반되기 때문이다. 2026년 8·15 경축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이렇게 역설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체 불가 대한민국의 비전에는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공헌하고자 했던 독립투사들의 꿈과 오늘날 대한국민들의 의지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마저 짓밟히던 야만의 시대였지만, 높은 문화의 힘을 염원했습니다. 일제의 폭거에 맞서 싸우면서도 동양의 평화를 갈망했습니다.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냉혹한 국제질서가 나라를 집어삼켰던 그 순간에도, 모든 국가들이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평화와 공존의 시대를 꿈꿨습니다. 그 절박한 소망 위에서, 오늘의 우리 대한민국은 전세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나라,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매력적인 나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이런 연설을 한 대통령이 알량한 ‘국익’ 타령이나 ‘경제적 실리’를 앞세워 국민을 불의한 전쟁에 연루시킬 리 없다. 독립투사들의 꿈을 수치스럽게 만들 리 없으며, 공들여 키워왔고 경제적 실리와도 무관하지 않은 이 나라의 매력과 가치를 스스로 망쳐버릴 리 없다고 믿는다. 


둘째, 이미 이재명 대통령과 대한민국 정부는 “호르무즈해협 내 항행의 자유 보장을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도) 실질적인 기여”에 관한 입장을 결정했고 이것을 번복할 현실적인 이유를 결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월 ‘호르무즈해협 자유항행을 위한 국제 정상(화상)회의’에 참석해 “해협 내 항행의 자유 보장을 위해 실질적인 기여를 하겠다”고 밝혔고,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정상회의 의장성명에 공식적인 지지의사를 밝혔다.


공동의장인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 영국 스타머 총리의 공동성명 요지는 너무도 명확하여 오해의 여지가 없다. 이 회의에서 천명된 ‘국제사회의 결의’란 항행의 자유를 옹호하고, 국제법을 수호하며, 협상을 통해 갈등을 포괄적이고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결의다. 물론 이 자리에서 ‘군사적 기여’도 논의되긴 했다. 하지만 여기서 검토된 바는 최근 국방부, 외교부, 청와대의 일부 파병파들이 자의적으로 언급하는 미국에 대한 군사적 기여와는 전혀 다르다. ‘지속 가능한 휴전 협정이 체결된 후’ ‘조건이 허락하는 대로’ ‘독립적이고 엄격하게 방어적인 다국적 임무’를 수행할 계획을 말한다. 현재 진행 중인 미국의 대이란 침략행위에 전투임무든 비전투임무든 가담하는 것으로 오독될 여지는 전혀 없다.


트럼프 행정부와 파병론자들은 ‘항행의 자유’ 침해를 들어 호르무즈해협 상황을 군사적 개입을 정당화할 새로운 국면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이 주장 역시 국제법에 반한다. 항행의 자유의 실내용을 구성하는 ‘무해통항권’이나 ‘통과통항권’은 상대국의 영해에서 군사작전을 펼칠 권리를 의미하지 않는다. 도리어 유엔해양법 협약은 상대국 영해를 침범하는 군사작전을 명백한 불법으로 규정한다. 더구나 미국은 아직까지 유엔해양법 협약에 가입조차 하지 않고 있어 항행의 자유를 운운하거나 이를 위한 국제적 연대를 주도할 자격이 없다. 의장성명이 침략국인 미국의 역할이 아니라 ‘국제해사기구의 노력’을 강조하고 있는 이유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같은 국제적 합의에 ‘실질적 기여’를 약속했던 것이다. 이 합의야말로 미국의 이란 침공 이후 소위 ‘국제사회’가 도달한 유일하고도 현실적인 합의이고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할할 것’을 명령하고 있는 우리 헌법에 부합하는 합의다. 다른 길은 없다. 지난 9월 4일 시민사회단체들과의 면담에서 대통령은 호르무즈 파병 여부가 “결정된 바 없다”고 답변했는데, 보다 정확하게는 ‘기존 결정을 아직 번복한 바 없다’고 답해야 옳다. ‘결정된 바 없다’는 답변은 국민이 아니라 트럼프를 향해야 한다. 


셋째, 북한이 러시아의 우끄라이나 침공에 가담한 거의 유일한 국가가 된 데 이어 남한이 미국의 이란 침공에 가담한 거의 유일한 국가가 된다면, 분단된 두 국가가 서로 80년 가까이 ‘전쟁 중’인 것도 모자라 침략전쟁에 각각 참전해 전세계에 두루 민폐를 끼칠 모양새가 너무도 참담하고 구제불능이기 때문이다. 이재명정부가 차마 그런 길을 갈 것이라 생각하기 싫다. 더구나 역사적으로 최악의 실수라고 평가받을 것이 틀림없는 트럼프 행정부의 실패한 칼춤을 거들어 대한민국이 얻어낼 만한 ‘실리라는 것이 과연 있기는 한가. 핵추진잠수함 보유인가? 미국이 쉽사리 허용해줄 리도 없지만, 요행히 허용한다 한들 필경 ‘국토방위’가 아니라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 일본과 함께 앞장서는 조건일 것임에 틀림없다. 실제로도 미군은 남한이 보유하고자 하는 핵추진잠수함의 용도에 대해 집요하게 묻고 있다.


미국의 침략전쟁에 참전한 댓가로 좀더 쉽게 전시작전통제권을 얻어오겠다는 것도 가당찮기는 마찬가지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우리의 힘과 판단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고 공존의 질서를 만들어가겠다는 굳은 의지가 없으면 전작권 환수 자체가 어렵고, 설사 형식적인 ‘전환’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한국군이 미군을 따라 대만해협이나 남중국해 혹은 북극해로 여기저기 끌려다니는 이른바 ‘동맹 현대화’의 외피가 되기가 십상이다. 이것은 자주국방으로 가는 길이 아니고 평화공존으로 가는 길은 더더욱 아니다. 미국의 대이란전쟁에 대한 파병 참전을 통해 북미대화에서 남한이 ‘패싱’되는 것을 어느정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인식도 상식적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이란과의 협상 와중에 불법침략을 감행한 미국에 한마디 비판도 못하고 군대를 보내 도운 남한은 북한과의 관계에서 더욱 취약해질 것이다.


넷째, 2기 촛불정부인 이재명정부가 ‘빛의 혁명’으로 형성된 개혁연합을 결정적으로 파괴하는 자해행위를 할 리 없다. 한반도 평화공존과 대한민국의 국익이라는 대의를 위해서는 물론이고 이재명정부의 안위와 안정을 위해서라도 절대로 그런 파국적 선택을 할 리 없다. 2기 촛불정부로서의 사명을 다하려면 주권자들의 연대와 연합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빛의 혁명 및 정권교체 과정에서 형성된 개혁연합과 정부의 신뢰에 최근 균열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파병 결정은 이 균열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들 수 있다.


보수언론은 과거 노무현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을 ‘국익을 위한 결단’ 혹은 ‘초정파적 리더십’으로 낭만화하는데, 1·2차 이라크 파병으로 거대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개혁 리더십이 무너졌고 정권재창출 실패로 이어지는 연쇄작용이 가속화했다. 보수언론이나 현 집권여당의 일부에서 아전인수로 해석하는 것과는 달리 이라크전쟁은 전쟁주도국인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주요 참전국에 실패와 수치의 기억을 남겼을뿐더러 전세계에 깊은 상흔과 부작용을 남겼다. 대다수 국가는 그러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공식평가를 기록했다. 영국, 스페인 등 이라크전쟁 주요 협력국들이 미국의 이란 침공에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이유다.


그런데 주요 참전국 중 이라크전쟁과 파병에 대해 공식 국가평가서를 남기지 않은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평가서 한장 남기지 못할 수치스러운 결정을 반복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 일이 반복될 경우, 내란이라는 거대한 폭력을 평화적으로 극복하고 위태로운 헌정질서를 지켜낸 시민들의 자부심이 침략전쟁 파병 압력이라는 폭력에 굴복하여 국제법과 헌법의 기초를 무너뜨리도록 내몰렸다는 수치심으로 바뀌는 것과 더불어 촛불연합의 해체는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재명정부의 고심을 이해하려는 지지자들의 일부는 부당한 압박을 당하는 이재명 대통령이 아니라 압박을 가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해야 옳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악조건 속에서도 주권과 헌법을 지키고 개혁연합을 유지하고 확대해나갈 일차적 책임은 빛의 혁명으로 집권한 이재명 대통령과 집권여당에 있다. 미국에 책임을 돌린들 일단 파병을 결정하고 나면 개혁연합의 해체는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장기화하는 분쟁의 휴전과 종전을 위해 외교적 노력을 다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기여 방안이다. 안전한 항행은 분쟁 당사국들의 합의 없이 군사작전만으로는 결코 보장될 수 없다. 파병을 거부하고 외교적 노력을 지지하는 것은 장래 한미관계를 위해서도 올바른 선택이다. 무엇보다도 개혁연합과 K민주주의의 미래가 걸려 있다. 이재명정부는 과거의 실패를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



이태호 /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소장, 미국의 불법침략 중단 한국군 파병반대 긴급행동 공동집행위원장 


2026.9.16.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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