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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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캐나다 교육계를 압박하는 한국의 학부모들

김종엽 | 한신대 교수, 사회학


나는 지금 연구년 출장으로 캐나다 밴쿠버에 와 있다. 이곳 밴쿠버가 북미대륙의 여러 도시들 중에 한국인의 조기유학이 집중되는 지역 가운데 하나라서 조기유학을 시키고 있는 부모들을 여럿 만나게 된다. 나 역시 아이들을 데려와서 캐나다 학교에 보내고 있으니 그런 기회가 많은 것은 자연스런 일이고, 그래서 뜻하지 않게 조기유학의 실태를 가까이서 접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한 지역에 집중된 우리의 조기유학이 해당지역의 교육조건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게 되었다. 조기유학의 현장과 실상을 알려주는 글과 책은 많으니 후자를 보여주는 에피소드 하나를 살펴보자.


지난해에 밴쿠버가 속해 있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에서는 신자유주의를 내세우며 집권에 성공한 자유당과 공공부문 노동자들 간의 대립이 심각했다. 이 대립 중에서 가장 격렬한 것이 BC교사연맹과 주정부 간의 대립이었다. 교사들의 파업으로 인해 2주일간 수업이 전면 중단되었던 것이다. 이 대립은 외양적으로는 타협으로 끝났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교사연맹의 승리였다. 교사연맹은 높은 수준의 단결을 과시했고,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하고 교육여건의 악화를 막는 투쟁에 주력함으로써 대중적 지지를 이끌어냈으며, 그런 단결력과 대중적 지지에 힘입어 주정부의 신자유주의 드라이브를 상당정도 막아냈기 때문이다.


파업과 협상의 과정도 흥미롭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그런 파업을 둘러싼 전체 사회의 분위기였다. 파업과 정부 및 주대법원의 압박 그리고 막후의 협상이 진행되는 2주일간 학생들은 언제 학교에 갈 수 있을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태로 집에서 치댔다. 그런데도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매우 평온했고 미디어의 보도태도 또한 전혀 호들갑스럽지 않았다. 그런 평정은 학교가 파업해도 여타 보완제도들이 잘 작동해서 부모와 학생들이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학교가 파업하면서 각종 보육기관과 방과후 어린이집들도 동조파업을 했기 때문에 부모들은 꽤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도 "참 어렵네요. 하지만 교사파업을 지지합니다" 하는 식의 부모의 반응이 보도되는 정도였는데, 교사들이 자신들의 연가를 이용해서 주말에 하는 시위조차 야단스런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사회에서 살아온 나에게는 퍽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조기유학을 시키고 있는 한인 학부모들의 반응은 다수 캐나다인들의 반응과 달랐다. 그들은 기껏 아이들을 데리고 힘들여 조기유학이라고 와서 학교에 보냈더니 아무 대책 없이 교사들이 파업이나 한다고 불만이 대단했다. 게다가 이들의 자녀는 국제학생(international student)으로 등록하여 상당히 비싼 학비를 내고 있었기에 그로 인한 불만도 컸다. 결국 수업결손에 대한 불만은 교육을 받지 못한 기간만큼 교육비를 환불받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수렴되었다. 한인 학부모들은 집단적인 진정서를 작성하여 교육청에 보내는 등의 활동을 전개했고, 4-5개월에 걸친 끈질긴 활동의 결과 올해 4월 마침내 광역 밴쿠버 내의 도시 가운데 하나인 웨스트민스터시 교육청으로부터 결손 수업일수에 해당하는 교육비 환불을 받아냈다. 아직까지는 광역 밴쿠버 내의 교육청들 가운데 웨스트민스터 교육청만이 환불을 결정했지만, 이런 선례는 다른 교육청의 환불로 이어질 수 있고 그렇지 않다 해도 이미 한인 조기유학생은 교육청 입장에서는 매우 신경쓰이는 집단으로 부상했다.


이 사건은 우리의 사회의 문제가 우리의 행동반경이 넓어짐에 따라 다른 나라로 이식되어 새로운 문제로 변형되어나가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우리 사회의 구조가 조기유학을 유발하고, 그런 조기유학에 유리한 지역적 탐색이 북미대륙의 어떤 도시로의 집중을 낳는다. 다른 한편으로 이 도시의 교사들은 주정부의 신자유주의 드라이브를 막기 위해 싸워서 부분적 승리를 거두었다. 그런데 이런 교사노조 대 주정부의 대립의 외곽에 있는 이방인들이 이 게임에 개입한다. 이 이방인들은 수업료를 통해 이미 이 도시 교육제도의 재정구조를 변형하고 있는 집단이다. 그 도시의 정부와 교육청들은 이들로부터 상당한 추가 재정수입을 얻었고 그로 인해 그것을 더 끌어들이려는 욕심을 내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 이 집단은 기존의 게임의 룰을 무시하고 새로운 게임의 룰을 요구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 입장에서 새로운 게임규칙이 필요하다면 그것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새로운 게임규칙이 그 사회가 방어하려는 공공적 가치관을 침식하는 구실을 한다면, 좀더 신중해져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이 도시를 엉클어놓아 이 도시가 우리에게 배타적으로 변한다면, 다른 도시를 향해 조기유학을 떠나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파괴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언젠가 우리에게 족쇄가 되어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2006.05.16 ⓒ 김종엽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