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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리 『시대의 얼굴: 잡지 표지로 보는 근대』

근대라는 정체성
―서유리 『시대의 얼굴: 잡지 표지로 보는 근대』, 소명출판 2016

 

근대의 매혹?

 

wyyyre최근 대학교육의 현장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사실은, 많은 학생들이 근대문학을 한자로 가득한 고전문학만큼이나 난해한 텍스트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근대의 텍스트에 대한 난독증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현실은 단순히 격세지감으로 치부할 만한 일은 아니다. 근·현대 문화의 소통이 단절된다는 것은, 결국 우리의 문화적 자산이 상실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근대라는 텍스트가 이처럼 괄호 속으로 혹은 주석으로 미뤄지는 매순간, 오히려 미디어 속에 반영된 근대는 놀랍도록 매력적으로 진화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케이블에서 방영된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는 그 정점을 보여준다.

 

제공:  공식 홈페이지

제공: <시카고 타자기> 공식 홈페이지

독립운동을 하다 비극적 운명을 맞이한 1930년대 청년들이 80년 후 대한민국에서 조우한다는 타임 슬립을 바탕으로 한 이 드라마는, 지난 10여년간 미디어에서 향수해온 근대라는 시각적 이미지를 강렬하게 각인시킨다. 경성의 도심을 수놓은 네온사인, 다양한 국적의 외래어 간판, 화려한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가수와 춤추는 사람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근대인을 ‘근대인’으로 만드는 이미지는 패션이다. 맥고모자나 나까오리(중절모)를 쓰지 않은 신사가 없고, 숙녀라면 당연히 플래퍼(flapper) 스타일이라 불리는 일자형 원피스에 클로슈(종 모양의 모자)를 착용하고 있다. 날카로운 눈으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순사의 도리구찌(헌팅캡) 없이는 거리의 풍경은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조선적이라기보단 이국적이고, 그래서 어쩐지 더 매혹적이다.

 

한국전쟁 이후 1960년대까지도 의복의 서양화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비록 식민지 근대의 정점을 이루었다고 평가되는 1930년대 후반이라 해도 실제 경성 거리에서 이토록 완벽하게 서구식 복식을 갖춘 인물들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드라마나 영화 속의 근대 풍경은 사실 우리에게 실재했던 근대가 아닌, 오늘의 우리가 그랬으리라 추측하는 혹은 믿고 싶은 근대에 가깝다. “특정한 시각적 이미지가 대상을 주체로서 인식시키도록 만드는 역할”(『시대의 얼굴』 16면)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성의 ‘모던’한 옷차림은 이상화된 근대의 ‘안면성’(visagéité)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잡지 표지로 읽어낸 시대성

 

한 시대를 읽는다는 것은 때로 그 시대를 둘러싼 수많은 이미지의 향연을 되짚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오늘날의 미디어 속에 나타난 ‘모던’함으로 가득한 이국적인 풍경의 경성은 ‘선택’된 일부일 뿐 그 전체는 아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거기서 생략되고 배제된 것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역으로 그 선택의 기원과 이유를 해명해내는 것이다.

 

이 점에서 서유리의 『시대의 얼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책은 현실을 넘어서 이상적인 근대를 담아내고자 했던 근대 잡지의 계몽적 기획에 주목하면서 표지에 담긴 시각적 이미지를 적극적인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것은 오늘의 상업적 미디어가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근대, 그 얼굴의 기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시대의 얼굴』이 주목하는 것은 1910년대에서 1940년대까지 조선에서 발간된 잡지의 표지와 거기에 담긴 이미지이다. 잡지는 신문과 함께 식민지시대를 관통하는 최대의 미디어였다. 특히 사실을 전달하는 신문과는 달리, 잡지는 그 시대의 문화적 기호를 직접적으로 기획하고 이끌어내는 성격을 지닌 매체라는 점에서 보다 세련된 첨단을 지향했다. 그러한 잡지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표지는, 잡지의 기획의도에 기초하여 그 이상(理想)의 가능태(可能態)를 담아내는 데 주력했다. 이는 근대 잡지의 전성기였던 1930년대의 대표적 잡지인 『신여성』과 『별건곤』의 표지에서 두드러진다. 1930년대 개벽사에서 발간된 두 잡지의 표지에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디어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근대인’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왼쪽부터 『신여성』 1931년 4월호와 『별건곤』 1933년 9월호 표지(소명출판 제공)

왼쪽부터 『신여성』 1931년 4월호와 『별건곤』 1933년 9월호 표지(소명출판 제공)

 

이러한 이미지에서 확인되는 근대 잡지의 숨은 기획, 즉 당대의 잡지 표지가 수행하고자 했던 계몽의 전략은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동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이상과 동경을 창출하는 것이었다. 가장 이상적인 근대인의 이미지를 구축함으로써, 근대를 향한 일종의 프로파간다를 적극적으로 수행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이 잡지를 읽는 모든 독자를 근대인으로 호출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들로 하여금 보다 적극적으로 ‘근대인 되기’에 동참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했다.

 

과잉된 이미지 너머

 

문제는 오늘의 우리가 떠올리는 근대라는 이미지 그 자체가 아니다. 비록 식민지 근대라는 모순적인 현실에 갇혀 있었다 해도 새로운 세계를 향한 조선인의 지향과 동경만큼은 분명히 실재했던 사실임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큰 문제는 그 시각적 이미지들이 온전히 사유되지 못한 채, 진실이 생략된 과잉된 이미지로 부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근대라는 텍스트의 망각과 부재가 지속된 상태로 상업적 미디어를 통해 과잉된 근대의 향연만이 대중에게 수용된다면, 그것은 식민지 근대에 대한 또다른 신비화로 전락되고 말 것이다. 이때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은 ‘우리의 근대’를 둘러싼 진정한 정체성이다.

 

따라서 서유리의 『시대의 얼굴』이 보여준 가능성은 한권의 연구서를 뛰어넘는다. 그것은 우리가 바라보는, 혹은 보고 싶은 근대의 얼굴이자 그 뒤에 감춰진 진실에 대한 이야기이다. 드라마가 보여주는 근대의 편린을 통해서는 충족되지 않았던 진정한 타임 슬립의 가능성을, 이 책을 통해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류수연 / 문학평론가, 인하대 프런티어학부 교수

2017.6.14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