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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촛불은 계속되어야 한다

박래군

박래군

역사에는 운명의 날이 있는 것 같다. 1년 전 10월 24일이 그런 날이었다. 그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고 상황의 반전을 꾀하고자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하면서 개헌 카드를 꺼내들었다. 전날 오랜만에 정계에 복귀한 손학규씨가 마침 개헌 카드를 들고 나온 터여서 모든 이슈를 집어먹는 ‘블랙홀’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그날 낮 시간 동안에는 모든 언론이 개헌으로 뒤덮였다. 하지만 우리가 모두 아는 것처럼 그날 저녁 JTBC는 최순실의 태블릿PC를 공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뒤에서 연설문을 받아서 뜯어고쳤다는 정도의 폭로였지만 그간의 미르, K스포츠 재단 의혹 등과 연결되어 이 폭로는 순식간에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켰다.

 

1년 전의 기억들

 

10월 25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1차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도리어 분노한 국민들의 염장을 지르는 역할을 했다. 그날 자정은 물대포에 맞아 317일간 투병하다 사망한 백남기 농민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종료일이기도 했다. 그 사건 뒤 첫 주말이었던 10월 29일, 비 내리는 가운데도 3만명 이상의 시민들이 청계광장에 운집해서 그동안 아무도 내걸지 못했던 ‘박근혜 퇴진!’ 구호를 외쳤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뒤 순식간에 30만, 100만, 200만명이 전국의 광장에서 모여서 박근혜 퇴진 촛불을 들었다. 23차에 걸쳐서 1700만명이 주말 촛불집회와 시위에 참여한 역사적인 항쟁을 만들어냈다. 지난해 12월 9일, 국회는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했고, 특검이 가동되어 최순실씨와 관련자들을 수사하고 구속하였고, 한겨울을 지난 뒤에 헌법재판소는 올 3월 10일 재판관 8명 전원일치로 탄핵을 결정했다. 청와대에서 쫓겨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사저에 머물다가 3월 31일 구속 결정이 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어 503번 수번을 가슴에 달고 1심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촛불이 이끈 대선, 그러나

 

1년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촛불의 요구를 받아서 ‘적폐청산’을 앞세운 문재인 후보가 19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우리는 비로소 정부다운 정부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5·18 37주년 기념식에서 그때 아버지를 잃은 유가족을 안아주었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세월호 유가족을 청와대로 불러 위로했다. 그들이 위로받는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다쳤던 마음들을 같이 위로받으며 함께 울었다. 사람의 말을 하고,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는 대통령의 인간적인 모습은 새 정부에 대한 신뢰를 주기에 충분했다.

 

그렇지만 문재인정부를 둘러싼 정치환경은 만만치 않다. 북한과 미국의 핵대결은 일촉즉발의 전쟁위기로 한반도를 몰아가고 있고,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중국과 갈등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안보무능론이 확산되고 있고, 이를 기점으로 보수정치세력들이 다시 이합집산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부역세력이었고, 적폐청산의 대상인 자유한국당이 여전히 제2당으로 버티고 있으며 오히려 다른 정당의 의원들이 자유한국당으로 합류할 상황이다.

 

대통령의 권한과 행정력으로 비정상의 정부를 정상으로 돌려오면서 지지율 고공행진을 해온 문재인정부는 촛불 1년을 맞은 현재 이들 정치적폐세력, 적폐관료들 앞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을 맞고 있다. 그 시험대가 정기국회다. 마침 트럼프가 국빈 방문을 해서 국회에서 연설까지 하게 된다. 보수세력들이 트럼프 연설에 영향을 받아서 북과의 전쟁을 부추기는 상황이 형성될 수도 있다. 그래서 촛불 1년을 마냥 축하만 하고 있을 수는 없게 되었다.

 

촛불을 들었던 지난해 겨울과 올봄에 우리는 “이게 나라냐!”라는 구호로 분노를 표현했다. 그리고 우리는 정권 하나 바꾸고, 대통령 한명 바꾸는 싸움이 아님을 광장에서 계속 확인했다. 새로운 민주주의, 주권자인 국민이 권력의 주인인 민주공화국을 염원했다. 탄핵이 끝나고는 “죽 쒀서 개 주면 안 된다”는 말에 공감했다.

 

다시 꿈꾸고 외치자

 

문재인 정부는 ‘촛불정부’라고 스스로를 부른다. 촛불정부라면 보다 과감한 적폐청산과 개혁으로 나가야 한다. 적폐를 청산하기 위한 작업에 보다 과감하게 속도를 내야하고, 말로만이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운전자의 역할도 해내야 한다. 가장 심각한 문제로 이식되고 있는 지독한 헬조선에서 탈출할 해법도 제시해야 한다.

 

마침 지난 10월초에 유엔의 사회권위원회는 한국 사회의 사회권 상황을 심의하고 한국정부에 매우 강력한 권고를 무더기로 쏟아냈다.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영역에서 한국은 매우 비정상적인 불평등 국가다. 그래서 한국 기업들이 국내외에서 벌이는 인권침해를 제거할 것,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할 것 등을 18개월 이내에 이행하고 보고하라고까지 권고했다. 유엔의 인권규약과 기준들을 무시해온 지난 정부들의 잘못된 정책이 인권상황을 심각하게 후퇴시켰다는 점을 이례적으로 강력하게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가 촛불정부라고 한다면 이런 지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구체적으로 이행에 옮겨야 한다.

 

문제는 국회다. 문재인정부가 적폐청산과 사회대개혁의 방향을 제대로 잡는다고 해도 자유한국당이 제1야당으로 버티고 있는 국회가 이를 가로막고 나설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국회가 적폐를 청산하기는커녕 과거 기득권을 유지하는 방향에서 사사건건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촛불로 정권은 바꾸었지만 국회는 바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는 작업에 대해서도 ‘정치보복’이라는 언사를 쏟아내는 것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촛불은 정치적폐 역할을 하는 국회로 향해야 한다. 분명한 시민들의 경고를 들려줘야 한다.

 

이 겨울 우리는 다시 민주공화국을 세우느냐 아니면 여전한 기득권 세력들에 의해서 ‘기울어진 운동장’의 사회경제 질서 안에서 비통한 삶을 영위해갈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정치적폐세력을 이겨내지 못하면 우리는 촛불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다시 모이고 촛불을 들고 외쳐야 할 수밖에. 촛불은 계속되어야 한다.

 

박래군 / 인권재단 사람 소장

2017.10.25.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