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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뒤에 남는 마음: 구정인 『기분이 없는 기분』

기분이없는기분_nocut미워했던 아버지의 죽음

 

아무리 눈을 질끈 감아도 도처에서 침입하는 죽음의 소식들을 우리는 모른 척할 수 없다. 부음(訃音)은 소리에 실려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 외부를 향해 있으며 결코 걸어 잠글 수 없는 우리의 귀는 죽음을 전하는 목소리 앞에서 언제나 속수무책이다. 『기분이 없는 기분』(창비 2019)의 주인공 ‘혜진’ 역시 마찬가지여서 그녀는 난데없이 걸려온 전화 속 목소리로부터 아버지의 죽음을 전해 듣게 된다. 경찰은 그녀의 아버지가 죽은 지 한달쯤 된 부패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고 알려주지만 아버지의 부음을 전해 들은 그녀의 태도는 의외로 무덤덤하다. 소스라치게 놀라지도 않고 슬픔에 가득 차 오열하지도 않는다. 마치 낯선 사람의 죽음을 전해 들은 것처럼 그녀는 침착하게 해야 할 일을 하나씩 처리하고 경찰서에 다녀온 뒤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 들고 딸과 남편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온다.

 

혜진의 무덤덤함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어렸을 때 가족 몰래 빚을 내 주식투자를 하다 전재산을 날려버렸고 이후로도 “낮에 하는 일”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허황된 주식투자에만 골몰하던 사람이었다. 가족을 부양하는 건 엄마만의 몫이었고 결국 엄마는 그런 아버지를 참지 못하고 이혼한 지 오래다. 자식들의 삶에 아무런 관심도 없이 딸들을 그저 사업자금을 융통할 ‘돈줄’로만 여기는 아버지를 혜진은 자신의 인생에 “시한폭탄이나 지뢰”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아버지가 죽기 얼마 전 그런 그와의 인연을 끊어버렸다.

 

아버지의 죽음을 갈무리하기 위한 일련의 절차들—개인파산, 상속포기 등 행정절차 같은 것들—을 밟아나갈 때만 해도 그녀는 괜찮았다. 하지만 그 절차가 마무리됨과 동시에 그녀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무기력과 ‘번 아웃’에 시달리면서 좀처럼 예전의 일상을 회복하지 못한다. 그녀는 밥을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일을 하거나 몸을 일으킬 수도 없는 극도의 무기력 속에서 자살충동에까지 시달리는 등 한없이 수렁 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은 우울감에 빠지게 된다.

 

그녀의 우울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줄곧 무덤덤한 태도를 취했던 혜진이었기에 이같은 우울이 조금 갑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랑했던 대상을 잃었다는 상실감이나 살아생전 아버지를 더 잘 모시지 못했다는 ‘자식된 도리’ 따위로 그녀의 우울을 설명하기 힘들다는 점 역시 그녀가 빠진 우울의 근거를 짐작하는 데 어려움을 배가시킨다. 하지만 당연히 그녀의 우울은 아버지의 죽음과 커다란 관련을 맺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책의 구절을 통해 그녀가 맞닥뜨린 우울의 정체를 짐작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장례식에 참석하는 이들 중에는 고인의 생전에 관심이 전혀 없던 사람도 있을 것이고, 고인의 오랜 투병생활로 인해서 돌아가실 날만을 기다리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다들 통곡을 한다. 떼어내야 하는 것은 사랑만이 아닌 것이다. 그 대상에 가했던 비난, 그 대상에 대한 증오와 공격성, 심지어는 그 대상에 대한 무관심조차도 떼어 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그 대상에 가했던 비난과 증오로 인해 스스로 죄책감을 짊어지게 된다.(맹정현 『멜랑콜리의 검은 마술』, 책담 2015, 57~58면)

 

사정이 이와 같다면 우리는 그녀가 아버지의 부음을 처음 들었을 때 보여주었던 무덤덤함이나 별 탈 없이 치른 장례식 같은 것을 심상히 넘길 수 없게 된다. 이 ‘무덤덤함’이야말로 어쩌면 그녀가 느낀 우울과 무기력의 은폐된 원인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죽음을 처리하면서 한번도 속 시원히 ‘통곡’하지 않는다. 그건 단순히 슬퍼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통곡’에 수반되는 어떤 격렬한 감정을 투입하지 않았다는 걸 의미한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난 혜진은 심리상담사에게 “슬프거나 답답하거나 화가 난다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평온”한 편에 가깝다고 말하지만 그 ‘평온’은 감정의 균형상태라기보다는 감정의 진공상태에 가깝다. ‘기분이 없는 기분’이라는 말 역시 이와 같은 텅 빈 진공상태를 가리킬 것이다. 우울의 수렁은 그 진공상태를 죄책감에서 비롯한 혹독한 자기비난이 채우면서 더욱 깊어진다. 그녀는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정말 한심하다” “아무 쓸모가 없어” “나 정말 쓰레기 같아” “망했다. 나 때문이야” 등의 자기 비난을 가하는데 이는 그녀가 아버지에 대해 가했던 비난과 증오를 떼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짊어져야만 했던 죄책감 에서 비롯한 것은 아니었을까.

 

본문_기분이없는기분

 

덮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들여다볼 용기

 

누군가가 죽었을 때 느끼는 슬픔은 평소 그 사람에게 지녔던 애정에 비례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이 미워하고 증오했던 사람의 죽음보다 더 슬플 거라고 믿는 일 역시 자연스럽다. 그러나 슬픔은 우리가 맞닥뜨리게 되는 하나의 감정에 불과하며 실제로 우리가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느끼는 감정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 어쩌면 중요한 건 감정의 종류라기보다 그것의 강도가 아닐까. 누군가에 대해 평소 커다란 미움과 증오를 쏟아냈던 사람이 그 사람의 죽음 앞에서 커다란 감정적 동요를 보이는 모습은 그리 낯설지 않다.

 

이 책은 우리의 마음이 미워하는 사람의 죽음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어떤 고통과 노력이 필요한지를 일깨워준다. 그녀가 찾아간 심리상담사의 말처럼 모든 사람에게는 누군가를 떠나보낼 “진정한 애도의 기간”이 필요하며 “누군가를 보낸다는 건, 그리움, 슬픔만이 아니라 쌓인 분노를 털어낼 시간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애도 작업이 공포와 불안 때문에 얼른 모르는 척하고 덮어버리고 싶은 자신의 내밀한 마음을 열어 보이는 용기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비록 누군가가 죽었다 하더라도 죽은 자와 연루된 자신의 마음은 사라지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영인 / 문학평론가

2019.7.3.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