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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차별받는 제빵사가 만든 빵을 먹는 우리는 행복할까?

권영국

지난 3월 28일부터 서울 양재동 SPC그룹 본사 앞에서 단식 중인 노동자가 있다. 임종린 화섬식품노조(민주노총) 파리바게뜨지회장이다.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로 일하던 그는 SPC그룹의 파리바게뜨지회에 대한 탄압과 조합원들에 대한 차별, 괴롭힘에 맞서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다. 오늘로써 단식 30일째.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애가 탄다.

 

SPC그룹은 파리바게뜨, 배스킨라빈스, 던킨도너츠, 샤니, SPC삼립 등 유명 제빵·식품브랜드를 독차지하고 있는 그룹사이다. 허영인 총수일가가 지배하고 있는 기업으로 ‘제빵업계의 삼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요즘 인기 절정인 ‘포켓몬빵’ 또한 바로 SPC그룹 계열사(SPC삼립)에서 생산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대체 SPC그룹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임종린 지회장은 한달째 단식을 지속하고 있는 것일까? SPC그룹 계열사에서 진급 차별과 원거리 배치전환 위협 등 인사상 불이익을 수단으로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민주노총에서 탈퇴시키고 회사관리자 중심으로 구성된 기업노조(한국노총 소속)로 가입을 강제하는 부당노동행위가 전국에 걸쳐 조직적으로 자행되고 있음이 드러났다. SPC그룹은 이를 노노 간의 경쟁인 것처럼 위장해 민주노조를 와해하려 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진급·승진자 956명 중 814명이 한국노총 소속 직원인 반면 민주노총 소속 직원은 21명만이 승진하는 데 그쳤다. 한국노총 소속 직원은 승진대상자 중 30%가, 민주노총 소속 직원은 6%만이 승진한 것으로, 한국노총 소속 직원을 민주노총 소속 직원에 비해 5배나 많이 승진시켰다는 의미이다. 지난 1월 24일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이러한 진급 차별에 따른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하고 파리바게뜨에 시정명령을 내렸다. 같은 달 28일 고용노동부 성남지청은 파리바게뜨 전국 8개의 사업본부 중 6개 사업본부의 본부장에 대해 진급 차별에 따른 부당노동행위를, 본부장 바로 밑의 관리자인 제조장 3명에 대해 노조 탈퇴 강요에 따른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하여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SPC그룹에서 진급 차별에 따른 부당노동행위가 벌어진 곳은 파리바게뜨뿐이 아니다. 지난해 6월 15일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던킨도너츠를 생산하는 비알코리아(주)에 대해서도 시정명령을 내렸다.

 

SPC그룹의 불법경영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6월 27일 이정미 정의당 국회의원은 파리바게뜨가 제빵 및 까페기사 5천여명을 불법파견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연장근로시간 전산 축소조작으로 ‘임금꺾기’를 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고용노동부는 근로감독에 착수해, 같은 해 9월 이러한 폭로사실이 모두 사실임을 확인하고 파리바게뜨에 제빵기사 등 협력업체 노동자 5378명을 직접고용하고, 전산조작으로 떼먹은 연장근로수당 등 110여억원을 지급하라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파리바게뜨는 불법파견을 부인한 채 소송을 제기하고 직접고용 대신 불법파견업체가 참여하는 별도의 합자회사를 만들어 고용하겠다며 직원들에게 ‘직접고용포기서’와 합자회사로의 ‘전적동의서’ 작성을 강요했다.

 

고용노동부는 파리바게뜨의 불법파견 시정지시 불응에 대해 1차로 162억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예고했다. 그러자 파리바게뜨는 2018년 1월 11일 파리바게뜨 임원이 대표를 맡는 자회사(피비파트너즈)를 만들어 불법파견 직원들을 모두 고용하고, 급여를 파리바게뜨 본사(파리크라상(주)) 직원들과 동일한 수준으로 적용한다는 내용의 사회적 합의에 날인했다. 고용노동부는 이 사회적 합의를 근거로 불법파견에 대해 부과하려던 과태료 등 행정적·사법적 조치를 모두 유예했다.

 

그러나 파리바게뜨는 이러한 유예 혜택을 누리고도 시간이 지나자 사회적 합의사항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도리어 지난해 3월부터 6월 사이 대표이사의 지시로 ‘민주노총 조합원 0%’를 목표로 한 민주노총 탈퇴 작업이 조직적으로 전개되었음이 중간관리자와 제빵기사들의 폭로로 드러났다. 사업본부장들은 아침마다 중간관리자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노동자를 민주노총에서 탈퇴시키고 한국노총에 가입시키는 ‘성과’를 올린 관리자를 치하하며 실적 1인당 5만원까지 포상금을 지급했다. 설득을 위해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만날 때는 법인카드를 사용해 밥을 사라고 하는가 하면, 현장관리 업무는 하지 않아도 좋으니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찾아가 탈퇴 실적을 쌓으라고 지시했다. 대표이사는 민주노총 조합원을 빨간색으로 표시한 명단을 가지고서 실적을 ‘관리’하고, 한국노총 가입 현황을 매일 확인했다. 그 결과 740여명 정도이던 파리바게뜨지회 조합원수는 불과 4개월 만에 340여명으로 곤두박질쳤고, 그 이후에는 아예 민주노총 조합원을 괴롭혀서 퇴사시키라는 방침에 따라 200여명만이 남게 된 실정이다. 지난해 11월에는 파리바게뜨 관리자들이 또다시 제빵기사들의 연장근로시간을 축소·조작해 임금꺾기를 해온 사실도 드러났다.

 

이 같은 SPC그룹의 불법경영은 하나의 노사문제로 치부하고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조직적인 폭력이자 집단 괴롭힘이다. 더 나아가 노동자들의 권리는 물론이고 존엄과 인격을 짓밟는 심각한 인권침해행위가 아닐 수 없다.

 

나는 한때 파리바게뜨와 던킨도너츠를 애용했던 소비자의 한사람으로서 매우 참담하고 분노를 느낀다. 차별받고 괴롭힘을 당하는 직원들이 만든 빵을 먹는 우리는 과연 행복할까? 노동자라면 누구나 ‘노조할‘ 권리를 자유롭게 누려야 함에도, 자신이 원하는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괴롭힘을 당해야 하는 것이 파리바게뜨의 현실이다. 나는 SPC그룹의 반노동적인 불법경영을 바로잡아 행복한 제빵사들이 만든 빵을 먹기 위해서 임종린 지회장의 투쟁에 연대한다. 꼭 승리하길 기원한다.

 

 


권영국 / 변호사, SPC파리바게뜨시민대책위 상임공동대표

2022.4.27.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