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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의 장례를 치르며: 무연고사망자 공영장례 현장에서

이수연

하늘은 푸른데 유독 울음이 짙은 날이었다. 화장장으로 들어가는 관을 붙들고 목 놓아 우는 사람들 옆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위패를 들고 서 있을 때면 조금 머쓱해진다.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얼굴부터 위패에 적힌 이름까지 천천히 내려다보는 사람들 앞에서 괜히 어깨가 움츠러든다.

 

가만히 위패를 쓰다듬으며 허리를 꼿꼿이 세운다. 내가 우물쭈물하면 고인도 민망하지 않을까. 위패에 적힌 어떤 사람을 상상하며 자세를 고치고 똑바로 선다. 오늘은 내가 이 사람의 상주다.

 

사회적 장례지원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단법인 나눔과나눔은 무연고사망자 공영장례를 ‘고인의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함께하고, 고인을 애도하고 싶은 사람에게 애도할 장소와 시간을 주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장례식이라는 형태가 곧 존엄한 삶의 마무리라고 정의할 수는 없다. 다만 공영장례가 있기 전까지 무연고사망자는 보건위생상의 이유로 ‘처리’되었다. 고인을 애도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마찬가지였다.

 

“무연고인데 참여자가 있어요?”
무연고사망자 공영장례는 내게도 낯선 것이었다. 나는 동료들이 지겹게 들었을 질문을 반복했다. 연고가 없이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이 없더라도 누군가와 관계 맺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 역시 거의 없다. 시신 인수를 포기하고 고인을 공영장례로 떠나보내는 가족이라도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보고 싶을 수 있다. 동료들은 몇번이고 반복했을 말을 지치지도 않고 답해주었다. 나는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며 알아듣는 척했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시신을 위임한다는 건 뭐지? 무연고사망자인데 연고자가 있다는 거예요?”
법이 정한 무연고사망자는 연고자가 없거나 알 수 없는 사람, 연고자가 있으나 지자체에 시신을 위임한 사람이다. 연고자가 아예 없는 사람은 드물다. 장례를 치를 형편이 안 되어서, 몸이 아파서, 오랜 시간 관계가 단절돼서 등 연고자가 있음에도 시신을 위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양했다.

 

법이 정하는 ‘장례를 치를 수 있는 가족’의 범위는 형제자매까지다. 조카, 삼촌, 이모는 장례를 치를 권리와 의무가 없다. 만약 지금처럼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에게만 장례를 치를 권한이 주어진다면, 비혼가구나 1인가구가 많아질수록 무연고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2015년 한국소비자원에서 조사한 우리나라 평균 장례비용이 1380만원이에요. 가족구성원 수가 적어지는데, 준비 없이 날아든 부고 소식에 그렇게 큰 비용을 한번에 쓰기 어렵죠.”
지금껏 장례는 시장경제에 오롯이 내맡겨져 있었다. 돈이 있으면 장례를 치르고, 없으면 치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처음 접하는 낱말들을 머릿속에 구겨 넣으며 서울시립승화원 무연고사망자 공영장례 전용 빈소인 '그리다' 빈소로 갔다. 서울시립승화원 제일 꼭대기에 있는 접수실 건물 2층이었다. 빈소에 마련된 제단에는 고인의 이름이 적힌 위패가 놓였다. 밥과 국, 나물과 과일 등 고인에게 대접하는 식사도 차려져 있다. 고인 예식이 시작되면 간단히 고인을 소개한다. 향이 피어오르면 마지막 식사를 올리는 예를 갖춘다. 술을 따르고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조사를 읽고, 국화꽃을 올린다. 그날 참여한 사람 수만큼의 꽃이 제단 위에 올라갔다.

 

동료들의 말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공영장례를 찾은 고인의 지인이나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혹시 실수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말 한마디 붙이지 못하고 벽에 붙은 곰팡이 자국처럼 까만 옷을 입고 가만히 굳어 있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달랐다.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고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물었다. 처음엔 말없이 고요했던 빈소가 조금씩 고인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그럴 때는 꼭 내가 아는 여느 장례식장의 모습 같았다. 떠난 사람을 원망하기도 그리워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인지 곱씹으며 울컥하기도 했다. 빈소에 마련된 종이에 말로는 못할 마음을 꺼내기도 한다.
“나 좀 지켜줘. 잘 가. 거기서는 아프지 마. 행복해. 이제는 괜찮아. 안녕.”

 

시간이 흐르면서 빈소를 지키는 게 조금씩 자연스러워졌다. 고인에 대해서는 생각하기도 싫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 옆에서 ‘아이고’  곡소리도 하고, 식이 진행되는 내내 우는 사람 옆에서는 가만히 티슈를 내밀 줄 알게 되었다.

 

몇 사람의 말만으로 고인을 그린다는 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유독 많은 대화를 나눈 날에는 위패에 적힌 글자가 형태가 되는 것 같았다. 어떤 성격이었는지, 무슨 일을 했고 어쩌다 연락이 끊겼는지 같은 사연을 들었던 사람의 이름은 좀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어떤 사람들은 무연고사망자의 장례를 왜 공공이 치러야 하느냐고 묻는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공영장례가 죽음 이후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 나눔과나눔이 장례를 약속한 어르신의 집을 찾으면 ‘장례: 나눔과나눔’이라는 문구와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가 벽 어딘가에 붙어 있다. 나눔과나눔 후원자 중에는 젊은 층도 많다. 비혼이거나 장례를 치를 만한 연고자가 없는 이들에게 공영장례는 자신의 장례를 고민할 계기를 마련해준다.

 

웰빙이라는 말이 한때 유행이었다. 잘 사는 것이 어느정도 해결되자 사람들은 잘 죽는 것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웰다잉’이다. 그러나 웰다잉은 죽음의 순간, 나의 죽음까지만 이야기한다. 여기에 이웃의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눔과나눔이 지원하는 공영장례는 그런 이웃의 죽음을 사회가 함께 애도하자는 제안이다.

 

현재 공영장례는 광역자치단체나 기초자치단체의 조례에 근거해 지원된다. 조례가 제정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공영장례를 지원받을 수 없고, 관련 조례가 있어도 서울처럼 모든 무연고사망자에게 보편적인 공영장례를 제공하는 지자체는 거의 없다. 사망한 지역과 관계없이 장례할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시신이 ‘처리’되지 않도록 공영장례가 모든 지역의 보편적인 사회보장제도가 되어야 한다. 돈이 없어서 장례를 못 치르는 일이 없어야 하고, 법적 가족이 아니어도 오랜 인연을 맺은 사람이라면 장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약 애도할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도 한 시대를 함께 살았던 시민들이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사회보장으로서의 공영장례를 기대해본다.

 

장례식이 끝나면 고인의 관이 화장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화장이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한시간 십분 남짓이다. 두 팔에 폭 안기는 크기의 네모난 나무상자에 한 사람의 유골이 모두 담겼다. 매일 이고 지고 다니는 내 몸이 낯설게 느껴졌다.

 

 

이수연 / 사단법인 나눔과나눔 활동가

2022.8.30.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