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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안보’의 눈으로 본 우끄라이나전쟁

정욱식

러시아의 불법적이고 반인도적인 우끄라이나침공과 이에 대한 미국 주도의 반러 연대 구성이 세계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열전의 땅 우끄라이나에선 매일 수많은 사상자들이 나오고, 신냉전의 문턱에 있었던 세계에는 냉전시대에 버금가는 혹은 그 이상의 불안감이 짙게 드리워지는 상황이다. 세계 각국의 군비증강 열기도 우끄라이나사태를 거치면서 더욱 뜨거워지고 있으며 급기야 궁지에 몰린 블라지미르 뿌찐 러시아 대통령이 핵공격을 감행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뿌찐은 나토의 확대를 침공의 주된 명분으로 삼았지만, 정작 나토가 양적·질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현상도 주목된다. 이번에 나토 가입을 결정한 핀란드와 스웨덴은 과거 단순한 중립국들이 아니었다. 1975년 시작된 헬싱키 프로세스와 1986년 스톡홀름 협정이 보여주듯, 이들 나라는 냉전시대부터 우끄라이나전쟁 이전까지 갈등 중재와 조정 역할을 수행했었다. 그런데 우끄라이나전쟁을 거치면서 나토 가입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냉전시대에도 있었던 갈등 중재자가 2020년대에는 부재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또 나토 회원국들은 앞다투어 군비증강에 나서고 있다. 특히 재무장을 자제해왔던 독일은 2024년까지 국방비를 GDP 대비 2%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2021년에 비해 0.5%나 높아진 것이다. 아울러 미국은 동유럽을 중심으로 전진 배치 군사력 강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에 있는 한반도 안팎에서도 군비경쟁과 무력시위 공방전이 계속되고 있는데, 특히 이 과정에서 달라진 북한을 확인할 수 있다. 과거의 북한은 한미, 혹은 한미일 연합훈련에 반발하면서도 훈련 기간 동안에는 군사적 맞대응을 자제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적들’의 군사훈련을 하나하나 살피면서 즉각적이고 맞춤형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를 통해 한미일과 북한이 각각 취하는 군사적 대결 구조가 갈수록 ‘닮은꼴’이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미동맹의 전통적인 구호는 ‘Fight Tonight’(상시 전투태세)이다. 북한이 이번에 과시한 것 역시 상시 전투태세이다. 또 윤석열정부는 한미, 혹은 한미일의 강력한 대북 억제와 대응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취지의 “행동하는 동맹”을 강조한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적들’을 상대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의 행동으로 “강력한 군사적 경고”를 보내고 있다. 이는 북한이 핵무력 강화를 통해 ‘힘의 균형’을 이뤄냈다는 자체 판단에 기인한다.

 

이처럼 유라시아 대륙 양쪽에서 우끄라이나전쟁과 한반도 정전체제가 장기화되고, 신냉전의 기운을 잔뜩 담은 군비경쟁의 열기도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유라시아 심장부와 유라시아를 둘러싼 대서양-인도양-태평양의 지정학적 판도의 변화와도 맞물린다. 미국 주도의 나토 확대에 대한 러시아의 불만과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중국의 경계심은 유라시아의 거대한 두 나라를 결속시키는 접착제가 되고 있다. 중앙아시아뿐만 아니라 남아시아와 중동, 그리고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들 또한 중국 주도의 상하이협력기구(SCO)에 합류하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동북아에선 한국전쟁 이래 처음으로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 구도가 가시화되고 있다.

 

냉전시대에도 없었던 북대서양-태평양 동맹 네트워크의 출현 움직임도 보인다. 6월 말에 열린 나토 확대정상회담은 이를 알리는 장이 되고 말았다. 우선 처음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미국 주요 동맹국들인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 정상들이 참석했으며, 회의에선 나토의 새로운 전략 개념에 사상 처음으로 “중국의 체계적 도전”에 대한 대응도 명시했다. “중국의 야심과 강압적인 정책이 나토의 이익·안보·가치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략 개념은 나토의 최상위 전략 지침에 해당된다. 따라서 여기에 중국의 도전을 명시한 것은 나토의 성격이 ‘대서양 동맹’에서 ‘북대서양-태평양 동맹’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흐름은 바이든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5월 말 대중국 정책에 관한 연설에서 러시아는 “명백하고도 현재적인 위협”이고 중국은 “국제질서에 가장 심각한 장기적인 위협”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 두가지 위협이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다고도 강조한다. “유럽과 인도-태평양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전략을 통합·연결하는 것”이야말로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정책의 두드러진 특징이 될 것”이라는 제이크 설리반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발언도 이 맥락 위에 있다.

 

러시아의 우끄라이나침공은 미국이 이러한 전략을 추구하는 데 더없이 좋은 구실이 되고 말았다. 이와 관련해 5월 초 커트 캠벨 백악관 인도-태평양 정책조정관은 오바마 행정부 때에는 유럽 국가들이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에 동참하기를 꺼려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매우 생산적이고 전문적인”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아시아 동맹·우방국들의 유럽에서의 전쟁에 대한 관여 수준은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라며 만족감을 표했다. 특히 그는 대만 문제에 대해 유럽과 미국이 공통의 인식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유럽의 파트너들과의 대화 결과,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 즉 현상 유지를 수호하는 것이 미국-유럽의 근본적인 이익에 해당한다는 인식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촌 주민의 한 사람으로, 또 아이들이 있는 부모의 시선으로 이러한 상황들을 보고 있노라면, ‘뭣이 중헌디’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너 나 할 것 없이 더워지는 지구의 현실을 외면한 채, 저마다 국익과 안보를 이유로 군사활동에 몰두하면 지구는 점점 더 거주 불능의 땅이 되고 만다. 군비경쟁이야말로 잘 알려지지 않은 탄소배출의 주범이고, 기후위기 대처에 필요한 소중한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며, 기후위기 대처에 절박한 국제협력을 주변화시키기 때문이다.

 

하여 주요 국가들에게 경고하고 싶다. 거주 불능의 땅이 되고 있는 지구를 둘러싼 허망한 경쟁을 멈추라고. 지구촌 시민들에게 호소하고 싶다. 기후위기를 불확실과 불안으로 점철되고 있는 국제질서의 향방을 바꿀 수 있는 ‘게임 체인저’로 만들어보자고. 스스로 다짐하게 된다. ‘지구안보’를 공부하고 공론화해 인간도 국가도 있는 지구를 살리는 것이야말로 ‘진짜’ 안보라고.

 

 

정욱식 / 평화네트워크 대표,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2022.10.25.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