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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보는 자가 과거를 상속한다: 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보고

남상욱

2021년 제1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개막작이자 대상을 수상한 양영희 감독의 「수프와 이데올로기」가 얼마 전 국내에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감독의 전작 「디어 평양」(2005), 「굿바이 평양」(2009)에 이은 가족생활사 3부작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양영희 감독의 어머니 강정희씨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까닭은 비단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자신은 북한으로부터 입국금지를 당해 오빠들을 볼 수 없게 되어 더이상 그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어렵게 되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사실 강정희씨의 삶만큼 현재 동아시아 디아스포라가 처한 현실을 잘 보여주는 경우도 드물다.

 

재일코리안 여성의 삶

 

20세기 동아시아의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서 총련계 재일코리안으로 살았던 감독 가족의 파란만장한 삶에 대해서는 전작들을 통해 이미 어느정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총련 간부로서 활약했던 아버지와 그가 ‘조국’인 북으로 보낸 삼형제 그리고 아버지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었던 감독 자신과 아버지의 갈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가족들을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의 입장에 대한 논의는 좀처럼 찾아보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강정희씨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는 재일코리안 여성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수프와 이데올로기」의 주인공 강정희는 남편과 사별한 후에도 북에 있는 자식과 그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송금하며 홀로 생활하고 있다. 딸 양영희는 그만하면 충분하다며 송금을 그만두라고 할 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생전 허락할 수 없다던 일본인과의 결혼을 결심한다. 강정희는 딸이 데려온 남자에게 한국식으로 닭을 삶아 먹이며 사위로 받아들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츠하이머에 걸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쇠약해져가고, 그런 어머니를 돌보던 감독과 그녀의 남편은 4·3특별법이 제정된 2021년, 4·3희생자추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어머니를 모시고 제주로 향한다.

 

재일코리안 1세 여성 강정희씨는 평생을 열렬한 정치활동가 남편과 북의 자식들을 돌보며 살았는데, 정작 노년의 그녀를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은 가족의 이데올로기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딸과 그의 일본인 남편뿐이라는 사실, 나아가 그런 딸의 관점을 통해서만 이 가족의 역사가 기록될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과연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하지만 바로 이 아이러니야말로 전후 재일코리안이 당면하고 있는 현재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수프’와 ‘이데올로기’, 그리고 선택 이전의 기억

 

그런 맥락에서 영화의 제목 ‘수프와 이데올로기’ 속 수프는 재일코리안 여성을, 이데올로기는 남성을 각각 의미하는 듯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좀더 생각해보면 양자는 전혀 다른 것이 아닐뿐더러 실은 수프처럼 강력한 이데올로기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일본 사람도 미국 사람도 안 된다’던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딸이 데려온 일본 남자에게 어머니가 식탁에 내놓은 것은 마늘을 넣고 삶은 닭 한마리다. 여기서 닭 한마리는 새 가족이 될 사람에게 대접하는 그 가정의 대표적인 음식이며 동시에 민족문화의 상징임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중요한 점은 문화가 그 실체와 효과에 있어 이데올로기의 형태를 띠기도 한다는 점이다. 감독의 아버지가 아들들을 북한으로 보낸 것 역시 그런 의미에서 집밥을 먹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며 이는 비단 재일코리안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계급에 있어서도 집밥이 곧 이데올로기인 경우는 적지 않다.

 

하지만 딸 양영희 감독에게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수프와 이데올로기’라는 제목에서 수프(집밥)와 이데올로기는 분리 가능하며,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닐지 묻는 질문을 읽어낼 수 있지는 않을까. 영화 속에서 제주4·3연구소를 방문한 감독은 오빠들을 북으로 보내버린 부모를 탓해왔다고 밝히기도 한다. 이는 단순히 ‘지상낙원’이라는 북한의 이데올로기에 부모가 속았음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남한이든 북한이든 국가인 이상 어차피 이데올로기를 피할 수 없다면 적어도 자식들에게 선택할 권리라도 주었어야 했다는 항변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4·3의 한복판에서 친척과 약혼자를 잃은 뒤 열여덟의 나이에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도망쳐온 어머니의 기억을 하나하나 대면하고 4·3희생자추념식에도 참석한 뒤, 당시 제주에서 벌어진 학살이 왜 부모님이 총련 간부로서 그렇게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고 말한다. 즉 어느 한 이데올로기를 선택했다는 것의 의미를 그 이데올로기의 정합성과 실효성 등으로 간단히 판단할 수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열여덟살의 강정희가 경험한 1948년의 제주 그리고 그때 상실한 존재들에 대한 이해 없이 이후 그녀의 삶을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당시의 국가폭력은 강정희씨가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가능성을 말소했으며, 그녀를 일본에서 총련계 재일코리안으로서 살게 한 궁극적인 기원이다.

 

돌봄의 참여를 통해 공유되는 기억들

 

이러한 기억 역시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로 인해 풍화되기 직전에 놓여 있다. 알츠하이머에 걸려 딸의 얼굴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된 지금의 강정희씨는 4·3과 추념식의 역사적·현재적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것 같아 보였다. 그것이 현재 동아시아 디아스포라가 직면한 현실이리라.

 

하지만 동시에 영화 속에서 4·3의 의미는 강정희씨에게보다, 한 세대를 뛰어넘어 그녀의 딸 양영희 감독에게 더 다가왔던 것처럼 보였다. 나아가 그것이 배우자인 아라이 카오루에게로 나눠지는 모습, 일본인 남성이 한복 차림으로 결혼사진을 찍고 스스로 닭을 삶는 모습에서 ‘수프와 이데올로기’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예감할 수 있었다.

 

물론 아라이씨는 양영희 감독 가족의 과거 속에서는 부재한다. 하지만 북에 있는 가족 대신 아내와 함께 강정희씨를 돌보며 그녀를 기억함으로써 가족의 과거를 상속받는 일에 참여한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을 배우자를 맞은 양영희씨의 선택을 이렇게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재일코리안의 기억은 기꺼이 마늘 넣은 닭 한마리 푹 삶을 수 있는 사람에게라면 누구에게라도 열려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남상욱 / 인천대 교수, 일어일문학과

2022.11.01.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