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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겼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지?: 2023 서울퀴어퍼레이드에 다녀와서

김규진

2023년 서울퀴어퍼레이드는 예년까지 사용하던 서울광장이 아닌 을지로 일대에서 개최되었다. 서울시가 중복신고된 종교단체의 행사 ‘청소년·청년 회복콘서트’의 손을 들어주면서 벌어진 일인데, 성소수자 행사는 원래 고난과 역경을 겪을수록 강해지는 법. 퍼레이드는 그 어느 때보다 성황리에 이루어졌다. 따지고 보면 서울광장 밖에서의 행사가 처음이 아니기도 하다. 내가 참여했던 첫 퍼레이드도 신촌 연세로에서 개최되었다.

 

9년 전에 열린 제15회 서울퀴어문화축제는 당시 역대 최대 규모로 기록되었지만 돌이켜보면 꽤나 소박했다. 미국, 프랑스 등 대사관이나 구글 같은 다국적기업이 참여한 첫 회차였지만 동시에 아직 개인 단위에도 부스 참여가 열려 있는, 대규모 축제로 나아가는 중간 단계의 행사로 기억한다. 설레는 한편 혹시나 아는 사람을 마주치지는 않을지 조마조마해하며 연세로로 향했는데, 정작 지금도 뇌리에 남아 있는 건 퍼레이드 그 자체보다는 주변의 반(反)동성애 종교단체의 행태였다. 신촌역에 내리자마자 보이는 ‘동성애는 인류의 재앙이다!’ ‘내 딸들아 돌아와라! 하나님의 품으로!’ 등의 피켓 하며 끊임없이 들리는 예수천국 불신지옥 타령까지. 수백명의 사람들이 형형한 눈빛으로 부정적인 에너지를 뿜는 광경은 참으로 생경했다. 급기야 그들은 행진을 막기 위해 스크럼을 짜 퍼레이드 트럭 앞에 냅다 드러누우면서 행사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올해 참여한 퀴어퍼레이드는 이때와는 사뭇 다른 경험이었다. 지금 내가 임신 8개월차이기도 하고, 최고 기온이 35도로 예상되는 만큼 우리 부부는 부스 몇군데만 들리고 주변 까페에서 지인들과 안부를 나누는 정도로 퀴어문화축제를 즐기려 했으나, 국제앰네스티의 연락으로 만삭의 몸을 이끌고 퍼레이드 행렬에 참여하게 되었다. 행진 줄이 너무 길어 기업은행 사거리에서 합류하기로 약속하고 대기하는데, 아니 세상에 나는 온 세상 퀴어가 다 을지로에 모인 줄 알았다. 온갖 무지개색 아이템을 장착한 사람들이 십여분이 넘는 시간 동안 거리로 쏟아지는데, 잠시 샌프란시스코라든지 베를린 같은 곳에 온 것은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무자비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다들 힘이 넘치고 들떠 보여 정말이지 축제라는 느낌이었다.

 

반면 명동성당 모퉁이를 돌며 마주친 혐오세력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9년 전 연세로에서 트럭을 막아서던 결기는 어디로 갔는지, 수십명 남짓한 인파가 옹기종기 모여 있을 뿐이었다. 구호도 그동안 발전이 없어 저들이 ‘예수천국’을 선창하면 퍼레이드 행렬이 ‘불신지옥’을 대신 외쳐줄 지경이었다. 이들 대부분이 장년층이라 건강이 걱정되기도 했고 신실한 우리 집 친척 어른들이 떠올라 조금 마음이 짠하기도 했다. 교회의 젊은이들은 뭐 한다고 이렇게 어르신들만 고생시킨단 말인가. 와서 부채도 부쳐드리고 대신 구호도 외쳐드려야 할 것이지, 강호의 도의가 땅에 떨어졌도다.

 

문득, 우리가 이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 전에 쓴 책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위즈덤하우스)에도 언급한 적이 있는데, 젊은 연령층일수록 성소수자에 더 익숙하고 또 호의적이기 때문에 성소수자 차별을 둘러싼 싸움은 장기적으로 퀴어들이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다만 당장은 차별금지법조차 제정되지 않은 상황인지라 이론적으로만 그리 생각하고 있었는데, 행진하며 처음으로 승기를 체감하게 되었다. 이에 약간 우쭐해하며 걸음을 이어가는데 친구가 행렬의 깃발들을 가만히 보다 감탄했다. “이야, 진짜 서로 볼 일 없을 거 같은 단체들이 퀴퍼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여 있네.” 정말 그랬다. 대학교 성소수자 모임, 노동단체, 장애인권단체, 환경단체, 종교 모임, 의료인 모임, 심지어 취미활동 동호회까지. 새삼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퀴어라는 단어 하나 아래 모여 있는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번 서울퀴어퍼레이드는 역대 축제 중 가장 세가 강력하기도 했지만, 또 동시에 퀴어들이 가장 분열된 연도이기도 했다. 을지로에서 서울퀴어문화축제라는 타이틀 아래 이벤트와 행진이 이어지는 동안 합정에서는 ‘‘프라이드’가 부끄럽게 여기는 불법 존재들의 노 프라이드 파티’라는 행사가 동시에 개최되고 있었다. 서구권에서는 같은 날 다양한 퀴어 행사가 개최되는 것이 이미 흔한 일이고 메이저 퀴어 행사와 궤를 달리하는 반(反)프라이드 활동도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번 노 프라이드 파티가 최초였다.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트랜스젠더, 성노동자, 농인퀴어, 약물사용자 등 다양한 퀴어들이 경험을 나누며 성황리에 진행되었다고 한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올해 주요 과제로 내세운 ‘혼인 평등’ 역시 커뮤니티 내의 다양한 의견, 그리고 대립이 있는 주제이다. 가끔 보면 비성소수자들은 모든 성소수자가 동성혼 법제화를 최종목표로 달리고 있다고 여기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기존의 체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함으로써 다양성을 오히려 저해한다는 의견, 결혼하고 싶고 할 수 있는 동성애자만을 대상으로 해 지엽적이라는 의견,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생활동반자법을 동성혼의 전 단계로 치부되게 한다는 의견 등 우리 내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있다. 이성 부부들에게 주어지는 법적 권리가 동성 부부라는 이유만으로 허용되지 않는 것이 차별적이라는 점에서만큼은 대부분 동의하는 편이지만 말이다.

 

우리 편이 이길 것 같다고 느낀 첫해에, 과연 우리 편이란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해 생각해본다. 앞으로 우리는 무엇으로, 어떻게 함께할 것인가? 따지고 보면 단일성이 이 집단의 핵심인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 LGBTAIQ+(성소수자 및 다양한 성정체성)라는 참으로 긴 이름이나, 각자 다른 색이 합쳐진 형태인 무지개가 하필 상징인 점을 보아도 그렇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각자 다른 생각과 니즈를 가질지라도 우리에게는 서로와 연대해나가는 힘이 있다고 믿고 싶다. 나는 결혼과 임신 따위의 법적 인정에 몰입해 있지만, 그게 가족주의에 반대하며 생활동반자법을 지지하는 사람과 함께하지 못할 이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르기 때문에 연대의 범위는 더 넓어질 수 있다.

 

물론 지금 한국에는 차별금지법도 생활동반자법도 없고 성별 정정도 자유롭지 않으며 동성혼도 법제화되지 않았다. 겨우 레즈비언 회사원 하나가 애를 낳는다는 소식이 네이버 메인을 나흘 동안 장식하는 실정이다. 퀴어퍼레이드는 성공적이었지만 결국 서울광장에서는 청소년·청년 회복콘서트가 개최되었고 지자체장들이 나서서 혐오발언을 하며 성소수자 행사를 훼방놓았다. 우리 편이 이기고 있다는 믿음 자체가 헛되었을 수 있다. 그래도 승기는 이쪽에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더 분열하고 또 동시에 연대하며 나아갈 것이다. 퀴어들이 프라이드, 노프라이드, 안티-프라이드, 프라이드-프리 등 보다 다양한 행사를 해나갈 때 쟤네는 계속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나 외치고 있을 테니까. 

 

김규진 / 한국 국적 유부녀 레즈비언,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저자

2023.7.18.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