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창비주간논평

학교 밖으로 보내는 가정통신문

정성식

학부모님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24년 경력의 초등교사입니다. 담임교사와 교무부장을 겸하고 있는 저는 평소에도 학교의 상황을 알리는 가정통신문을 학부모님께 자주 보냅니다. 오늘은 조금 특별한 가정통신문을 하나 보냅니다. 학교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내는 가정통신문입니다. 꼭 학부모가 아니어도 좋으니 오늘의 학교를 이해한다 생각하며 편안하게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요즘 언론에 학부모의 악성민원 사례가 종종 보도됩니다. 이를 지켜보는 학부모님의 마음은 안타까우면서 한편으로는 불편하기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학부모가 다 그런 것은 아닌데 일부의 사례를 일반화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일부의 사례 맞습니다. 대부분의 학부모는 우호적이고 협력적인데 극히 일부의 몰상식한 사람들이 이런 무례를 범합니다. 그런데 교실에는 여러 아이들이 있고, 그중 한두 아이의 가정에 꼭 이런 부모가 있습니다. 즉 교사들은 해마다 이 상황을 되풀이하며 겪고 있습니다. 그 상처가 참으로 아픕니다. 그렇다고 학부모님과 벽을 쌓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픈 속내를 솔직히 털어놓으며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을 줄이고 더 나은 교육을 위해 학부모님과 함께 노력하고 싶습니다.

 

서울 서이초 선생님의 안타까운 죽음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습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그동안 참아왔던 교사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경기 호원초에서도 학부모의 무리한 민원이 원인이 되어 두 초임교사가 생을 마감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부랴부랴 통계를 내어보니 최근 6년간 스스로 생을 마감한 교사들이 100명이 넘습니다. 참다못한 교사들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억울한 교사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 학생생활지도가 아동학대로 둔갑하는 상황을 개선하여 교육이 가능한 학교를 만들어달라고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폭염과 폭우 속에서도 6만여명의 교사들이 검은 옷을 입고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저도 주마다 익산에서 서울을 오가며 이 집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학교도 변하긴 했지만 여전히 구시대에 머물고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어느 공공기관에나 있는 공식 민원창구가 학교에는 없습니다. 아직도 많은 교사들은 개인 휴대전화로 근무시간과 무관하게 민원을 받고 있습니다. 출입관리 시스템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급기야 얼마 전 대전의 모 고등학교에서는 무단침입자가 교무실까지 들어와 교사를 흉기로 찌르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학교는 학부모님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안전하지 않습니다.

 

유럽을 여행할 때 본 학교들은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높은 담장을 세웠고, 교문 안에 들어서면 면회실이 있고, 외부인은 사전신청을 해야만 교문을 출입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다른 정책을 펴왔습니다. 수요자 중심교육이라는 말로 수요자(학생, 학부모)가 요구하면 공급자(교직원)가 이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며 학교에 많은 부담을 안겼습니다. 방과후학교, 돌봄교실만 보더라도 사회적 합의를 통해 관련 법을 만들어 시행해야 하는데 그저 학교와 교사의 헌신을 당연시하며 밀어붙였습니다. 교육은 시장이 아닙니다. 학생과 학부모는 교육의 수요자가 아니고, 교사는 교육의 공급자가 아닙니다. 교육기본법에서는 학습자(제12조), 보호자(제13조), 교원(제14조)을 모두 일컬어 ‘교육당사자’로 밝히고 있습니다. 수요자가 아닌 당사자 관점으로 교육을 바라봐주시기를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학교의 의무가 늘어갈수록 갈등도 늘어갑니다. 학교폭력, 교권침해, 아동학대, 악성민원으로 인한 갈등이 대표적입니다. 정부는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학교에 각종 위원회를 만들어서 해결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당사자들의 이해가 충돌하는 상황에 학교 스스로 이 갈등을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교육청에 교육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 조정·화해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고 학교는 교육에 전념하도록 해야 합니다.

 

2012년부터 학교폭력 가해사실을 학생부에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 이전까지는 한건도 없었던 학교로 향한 소송이 해마다 급증합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학교는 민원, 소송에 시달리느라 정작 교육이 불가능해집니다. 그런데 교권침해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자 교육부는 이마저 정쟁의 도구로 삼고 있습니다. 학생인권조례가 교권침해의 원인이라고 호도하며 교권침해사실을 학생부에 기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진단도 처방도 잘못되었습니다. 교권침해사실 학생부 기록도 결국 그 이후가 뻔히 그려집니다.

 

학부모님, 교사들은 지금 학부모님께 항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육이 가능할 수 있도록 대한민국 정부에 안전한 학교 시스템을 마련해달라는 간절한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횡단보도에 신호등과 정지선이 있어야 보행자가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듯이 학교에도 모두가 안전하게 교육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교사의 의견이 반영된 교육정책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의 시민권 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지 오래지만 교육에서만큼은 OECD 가입국 중에서 유일하게 교사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고 있는 후진적인 나라이기도 합니다. 헌법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했지 교사들이 정치에 대해 입도 뻥끗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교사도 시민입니다. 교사가 시민권을 온전히 보장받아야 학생을 민주시민으로 길러낼 수 있습니다. 교사의 시민권 확보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교사이면서 두 학생을 둔 학부모입니다. 그 마음으로 학부모단체에 가입하고 학부모운동을 응원하며 살고 있습니다. 다소 불편한 감이 있더라도 공교육 정상화를 요구하는 교사들의 외침을 부디 외면하지 말고 들어주세요. 그리고 응원해주세요. 내 아이뿐만 아니라 모두의 아이를 살리는 해법은 거기에서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교사와 학부모를 떠나서 우리는 모두 어른입니다. 오늘의 갈등상황을 어른답게 잘 해결하고 우리 아이들에게 더 나은 내일을 살게 하고 싶습니다. 어른인 우리의 마음은 같으리라 믿습니다.

 

고맙습니다.

 

2023년 여름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교사 정성식 올림

 

정성식 / 초등교사

2023.8.29.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