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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대만 선거가 남긴 퍼즐

 

백지운

2024년 1월 13일 국제사회의 비상한 관심 속에 대만의 총통 및 입법원 선거가 거행되었다. 결과적으로 큰 이변은 없었다. 집권당인 민주진보당(민진당)의 라이 칭더(賴淸德) 후보가 득표율 40.05퍼센트를 얻어 33.49퍼센트를 얻은 중국국민당(국민당)의 허우 유이(侯友宜) 후보를 여유있게 제치고 제16대 총통으로 당선되었다. 이번 선거가 특히 이목을 끌었던 이유는 지정학적 판세를 좌우하는 미중 세력갈등의 대리전적 성격이 짙었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이 선거는 친미적 성향의 민진당과 친중적인 국민당의 대결에서 전자가 승리를 거둔 것으로 정리되기 쉽다. 한국의 언론 역시 대체로 이같은 시각에서 대만 대선을 보도했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친중세력에 대한 친미세력의 승리로 결론짓는다면 자칫 중요한 본질을 놓치기 쉽다. 사실 역대 대선에서 이번처럼 끝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경우도 드물었다. 선거 직전인 2023년 12월 대만의 유력 여론조사 기관 RW NEWS가 실시한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를 보면, 민진당 라이 칭더 36.89퍼센트, 국민당 허우 유이 32.83퍼센트, 대만민중당(민중당) 커 원저(柯文哲) 28.64퍼센트로 모두 오차 범위 내에서 박빙이었다. 2024년 1월 1일 TVBS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세 후보의 지지율이 각각 33, 30, 22퍼센트였다.


전체 대선 경주 역시 흥미진진했다. 가장 큰 변수는 신생 정당인 민중당의 당수 커 원저였다. 예상과 달리 선거 초반은 민진당과 민중당의 싸움이었다. 의사 출신의 정치 신인 커 원저는 2023년 10월까지 허우 유이를 따돌리고 라이 칭더를 추격하는 다크호스로 크게 선전했다. 한시적이긴 하지만 6월 TVBS 조사에서 커는 라이 칭더를 3퍼센트 앞질러 지지율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국민당 허우 유이의 뒷심도 만만치 않았다. 선거 중반까지도 허우는 지지율 20퍼센트 초반대에 머물며 3위로 고전했다. 그런데 가을부터 지지율이 부쩍 상승하더니 11월 돌연 30퍼센트대 초반으로 올라서면서 커 원저와 크로스를 이룬 것이다. 이처럼 이번 대선은 결과적으로는 라이 칭더의 낙승인 듯 보이지만 전체 선거 정국에서 민진당은 좀처럼 주역이 되지 못했다.


양안관계의 긴장도와 대만인의 반중정서가 어느 때보다 높았던 상황에서 치러진 선거임을 생각하면, 이러한 과정과 결과는 사뭇 의외이다. 실제로 라이 칭더가 얻은 득표율 40.05퍼센트는 2016년과 2020년 차이 잉원(蔡英文) 현 총통이 얻은 56.12와 57.13퍼센트에 한참 못 미쳤다. 이는 1996년 대만에서 민주 선거제가 실시된 이래 2000년 천 수이벤(陳水扁)의 39.3퍼센트 다음으로 낮은 득표율이다. 이로써 라이 칭더는 천 수이벤과 더불어 과반 득표율을 얻지 못한 두명의 총통으로 기록되었다. 문제는 라이의 저조한 성적이 민진당에 대한 대만 민심의 반영이라는 데 있다. 여론조사 기관 대만민의기금회(臺灣民意基金會)가 매달 실시하는 총통 수행평가 추이를 살펴보면, 2020년 1/4분기 70퍼센트대에 달했던 차이 잉원의 긍정평가율은 2022년 12월에는 37퍼센트까지 곤두박칠쳤다. 총통 선거가 후반전으로 들어선 2023년 8월 이후 차이에 대한 부정 평가는 53퍼센트까지 치솟았고 줄곧 긍정평가율을 큰 차이로 상회했다. 더 흥미로운 것은 2023년 12월 동 기관이 실시한 또다른 조사결과다. “이번 선거에서 대만의 네번째 정권교체를 이루기 바라는가”라는 물음에 응답자 59.4퍼센트가 “바란다”고 답했다. “바라지 않는다”는 응답은 34.1퍼센트였다. 말하자면 이번 대선은 과반 이상이 집권여당에 불만을 품고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가운데 치러졌던 것이다.


왜 이런 상황이 생겨났을까.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2030 세대의 반란이었다. 2016년과 2020년 선거에서 차이 잉원이 큰 표차로 승리한 데에는 해바라기운동과 홍콩의 우산혁명 및 범죄인송환 반대운동 등을 통해 정치적 행위자로 집결한 청년층의 지지가 큰 역할을 했다. (부재자 투표제도가 없는 대만에서) 2020년 총통 선거 당시 투표를 위해 귀향하는 청년들의 행렬이 기차역과 고속버스, 심지어 공항에서까지 장사진을 이루기도 했다. 그랬던 청년들의 표심이 이번 선거에서는 커 원저로 대거 이동했다. 11월 이후 커 원저의 지지도가 3위로 내려앉은 후에도 20대와 30대의 커 원저 지지율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정권교체를 바라는지 묻는 앞의 조사에서도 20~24세의 73퍼센트, 25~34세 63퍼센트, 35~44세 69퍼센트가 “바란다”고 답했다. FRNN 뉴스네트워크(2023.6.21)는 청년층이 민진당에 등을 돌리게 된 주요 원인을 차이 잉원의 과도한 감정동원 정치에서 찾았다. 청년세대의 반중정서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혐오정치가 낳은 정서적 소모가 민진당에 대한 반감으로 되돌아왔다는 것이다. 친중과 반중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민진당이 실패하기만을 기다리는 국민당 또한 청년세대의 외면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선거가 끝났지만 대만 정계는 여전히 안개정국이다. 아사히신문 타이페이 특파원 노지마 쓰요시(野島剛)는 이번 선거를 두고 승자도 패자도 없는 묘한 결과라고 평했다. 총통 선거에서 승리했지만 민진당은 입법원 133개 의석 중 51석을 얻어 국민당에 제1당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이대로라면 라이 칭더는 역대 가장 약한 총통이 될 공산이 크다. 52석을 얻은 국민당은 4년 전 38석에 비해서는 선전했지만 과반 의석 획득에 실패한 만큼 여당을 견제하기에 역부족이다. 반면 민중당은 비록 3위지만 이번에 얻은 8석으로 두 거대 정당 사이에서 캐스팅보터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창당 5년이 되지 않은 신생 정당으로서 괜찮은 성과다.


미중 대결의 최전선인 양안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에서 치러진 이번 선거가 보여준 대만의 민심은 그야말로 난해한 퍼즐이다. 홍콩사태를 옆에서 지켜본 대만인 대다수는 ‘일국양제’나 ‘92공식’ 같은 중국의 양안정책을 더이상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민진당의 거친 친미반중 행보에 대해 민심은 단호히 옐로우카드를 꺼내 들었다. 중국이 두렵고 싫지만 중국과 공존하는 해법을 찾아내어 민생과 경제를 살리고, 동시에 정의와 공정, 민주와 같은 가치도 지키라는 것이다. 대만 선거가 보여준 복잡한 민심의 무게는 미중 사이에서 양자택일의 강박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좀처럼 남 일 같지 않다.


백지운 /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부교수

2024.1.30.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