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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민주당의 세가지 길

이남주 / 성공회대 교수, 정치학

 

지난 5월 4일 민주당은 김한길 의원을 대표로 선출하며 대선패배 이후의 내부 혼란을 수습하고 새롭게 출발하기 위한 전열정비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현재 민주당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야권을 지지하는 상당수의 유권자가 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유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의 큰 기대를 받았고 의석수가 127석에 달하는 거대 야당이 이러한 처지가 된 것 자체가 난감한 상황이다.

 

대선 패배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든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선거에 이르는 과정에서 혁신에 대한 요구에 안일하게 대응했던 것이 민주당에 대한 유권자의 불만을 고조시킨 더 주된 원인이다. 4월 24일 재보궐선거 직후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안철수 의원이 신당을 창당했을 경우 이에 대한 지지율은 31%에 달한 반면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은 15%에 불과했다. 이번 전당대회도 여론의 주목을 많이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 흐름이 크게 변화되었을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흔들리는 거대 야당

 

이제 민주당 앞에는 세가지 길이 있다. 새로운 세력에게 인수․합병되는 길, 민주당 주도로 야권을 재편하는 길, 다른 세력과의 화학적 결합을 통해 새로운 수권정당으로 재탄생하는 길 등이 그것이다. 둘째 길이 상책이고 셋째 길을 중책이며 첫째 길은 하책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길은 5공독재 시절인 1985년 2월 총선 때 양김이 새로 창당한 신한민주당에 흡수되었던 민주한국당(이하 민한당)을 떠올리면 된다. 작년 총선에서 127석을 획득했고 대선에서는 48%를 득표했으며 전통 야당을 계승하고 있는 민주당을 전두환정권의 정치적 부속품과 다름없었던 민한당과 비교하는 것은 민주당에게 자존심이 크게 상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전통 야당을 지지했던 유권자가 현재 민주당에 대해 가지는 불만, 시대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민주당의 모습 등을 고려하면 오늘의 민주당에서 민한당의 데자뷔를 느끼는 것이 환상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특히 수도권은 물론이고 호남의 동요가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는 것이 민주당에게는 심각한 불안요인이다.

 

그렇지만 다음 총선과 대선도 결국은 민주당 주도로 치러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측이 여전히 많다. 늘 있었던 일이 반복되는 길(business as usual)일 것이다. 현재 민주당에게 다행스러운 것은 소속 의원들이 다음 총선(2016년 4월)이 다가오기 전에는 민주당으로부터 대탈주를 감행하고 대규모 정계개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더욱이 현재 안철수 의원이 1980년대의 김대중이나 김영삼처럼 당장 민주당을 대체하는 정당을 만들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민주당으로서는 일단 시간은 번 셈이다. 그러나 정권교체만으로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반사이익에 기대는 것은 결국 왜소한 만년 야당으로 전락하는 길일 뿐이다. 10월 재보궐 선거와 내년 지방선거의 결과에 따라서는 벌어놓은 시간을 까먹고 외부로부터 강제되는 변화에 몸을 맡겨야 할 수도 있다. 뼈를 깎는 혁신으로 시민과 호흡을 같이 하는 수권정당으로의 신뢰를 만들어갈 때만 민주당이 새 시대를 열어가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

 

민주당 스스로 혁신 가능한가

 

여기서 문제는 민주당 스스로의 혁신이 가능한가에 있다. 작년 총선부터 민주당에 대한 혁신 요구가 많았음에도 그에 실패한 것은, 혁신의 핵심이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인데도 당내에서 서로 눈치만 본 채 누구도 스스로 이에 따른 고통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한길 대표가 취임 일성으로 “혁신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일단 문제의 핵심을 잘 짚은 것이다. 그럼에도 쉽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평가다.

 

과거 쇄신이나 혁신은 제왕적 총재와 그 주변을 대상으로 하는 상층의 인적 청산이 초점이었다. 타깃이 분명했고 단기적 성과를 만들어내기도 상대적으로 용이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혁신은 이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당의 기초를 재건하고 확대하는 문제로, 상층의 인물교체만 가지고는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다. 당이 사회의 다양한 에너지와 접속하고 이를 당내로 받아들일 수 있는 체제를 갖추는 것이 혁신의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는 어려운 일이겠지만 민주당 내에서 일정한 지위와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이 혁신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번 전당대회가 당의 정비를 위해 “당원-대의원-지도부”라는 당의 골간조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는 점도 장기적으로는 혁신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현재 민주당 당원구조가 야권을 지지하는 유권자를 세대적․계층적으로 잘 대표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데 이러한 구조를 고착화하고 의원과 지역위원장 들의 봉건영주적 권한을 강화한다면 내부에서 혁신의 동력을 만들어내기 더 어렵게 될 것이다. 외부의 정치세력이 이러한 구조에 그대로 들어간다고 해서 변화의 동력이 되기 어렵다.

 

새로운 세력과 화학적 결합 필요

 

이러한 상황에 근본적인 개선이 없으면 결국 민주당의 변화를 위해서도,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 정치세력의 형성을 위해서도 외부로부터의 압력과 안철수현상 등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세력과의 화학적 결합을 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이것이 셋째 길이다. 이 과정은 통합을 위한 통합이 아니라 민주당이 이루지 못한 혁신을 이뤄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가능성이 기대되는 것은 민주당이라는 거대정당을 혁신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공간에서의 실험이 정당혁신의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내기 쉬울 수 있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무에서 유를 창출하는 것이 더 빠를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정치세력 역시 막연한 ‘새 정치’만 기댈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당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 민주당과 민주당 외부의 세력이 정치혁신을 둘러싼 경쟁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 민주당에겐 외부의 변수에 휘둘리지 않고 위의 세가지 길 중 하나를 결정할 기회가 남아 있다. 이제야말로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국민에게 변화를 보여줄 때다. 행동이 늦을수록 기회는 사라지고 외부의 흐름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는 상황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2013.5.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