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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경 『박상표 평전』

과학자를 믿어도 될까요?
--임은경 『박상표 평전』

 

 

mghg과학자는 누구의 편인가? 이는 잘못된 질문이라고 지적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과학자는 불편부당 누구의 편도 들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과학자는 사람이나 조직이 아니라 오직 ‘사실’(facts)의 편일 뿐이다. 사실에 굳이 편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다. 사실이란 내 편이 없어도 스스로 존재하고 스스로 말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 그것은 생산되어야 하고, 자료(data)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거기에는 시간과 돈과 사람의 노력이 들어간다. 관심이나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 때로는 돈이 있는 사람들이 사실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다. 강자와 부자에게 필요한 사실은 쉽고 빠르게 만들어진다. 약자와 빈자에게 필요한 사실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적다. 어떤 종류의 사실을 탐구하고 그것을 어떻게 알릴지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과학자는 누군가의 편에 서게 될 수 있다. ‘시민과학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은 한편에서 그런 선택을 한 사람들이다.

 

임은경 기자가 쓴 『박상표 평전: 부조리에 대항한 시민과학자』(공존 2016)의 주인공 박상표(1969~2014)는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으로 일하면서 2008년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둘러싼 논쟁과 촛불시위 과정에서 크게 활약한 ‘촛불 의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박상표 국장이 시민과학자로서 수행한 역할은 자료를 발굴하고 정리하고 분석하여 미국산 소고기의 위험성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제대로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그는 ‘자료 대마왕’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엄청난 양의 관련자료를 수집·분석해 정부의 주장을 반박하는 한편, 미국산 소고기 수입제도의 문제점과 대책을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신문·잡지 기고, 기자회견·토론회 참석, 방송출연 등 여러 활동을 벌였다. 보건의료 분야 시민사회단체에 이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고 전문적으로 대응할 능력을 갖춘 사람이 부족했던 시기에 박상표 국장은 대체 불가능한 “보석 같은 존재”(201면)가 되었다. 시민사회의 비판자들이 주류 전문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반대편에 서서 그들의 해석과 입장을 반박했던 박상표는 한국사회에 흔치 않은 ‘대항 전문가’로 기억되고 있다. “광우병 위험을 위험이라고 부르지 못하게 하는 ‘홍길동’ 정부” 같은 촌철살인의 논평으로 ‘박상표 어록’을 남기기도 했다. 

 

어떤 공부와 경험이 시민과학자의 자질과 능력을 만들어내는가? 저자 임은경은 박상표를 시민과학자의 길로 이끌었던 동력이 과학 바깥에서 생겨난 것으로 본다. 문학, 미학, 역사, 그리고 사람과 사회에 대한 깊은 관심이 박상표를 과학자인 동시에 인문학자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1987년 서울대 수의학과에 입학한 박상표는 반도문학회에 가입해 문학과 사회과학을 공부하면서 입대 전까지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제대 후에는 인천에 있는 동양이화공업에 들어가 노동운동의 길을 모색했고, 복학하여 학업을 마친 이후에는 수의사로 일하면서 90년대 중반 출범한 참여연대의 활동을 돕기도 했다.

 

저자가 특히 주목한 것은 박상표가 혼자 힘으로 문화유산을 공부해 모두가 인정하는 답사와 해설 전문가로 활동한 점이다. 박상표는 어느 고적을 찾아가더라도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큼 많은 자료를 조사하고 정리하여 이를 참가자들에게 열정적으로 해설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러한 공부와 활동이 쌓여 이후 광우병 촛불시위 정국에서 박상표가 보여준 태도를 만들었다고 저자는 암시한다. “책을 읽으면서 탐구하고 확인하는 것이 몸에 밴 탓인지 박상표는 주변에서 하는 말이나 통념을 그대로 믿어버리지 않았다. 꼭 근거를 찾아 검증하고 자신의 주관을 가지고 보려고 노력했다. 또한 내 편 네 편을 떠나 진짜 옳은 것이 무엇인지를 늘 냉철하게 따져 묻곤 했다.”(104면) 과학과 관계없어 보이는 청년시절 활동이 시민과학자의 평전에서 자세하게 다루어지는 이유이다.

 

반면 책에 따르면 수의학은 박상표에게 시민을 위한 과학자로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주지 않았다. 동물병원 역시 박상표가 정부에 대항하는 전문가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배경은 아니었던 것처럼 보인다. 수의학 공부나 동물병원 진료는 그가 모든 것을 열심히 했다는 점 말고는 중요하게 언급되지 않는다. 고적답사 활동에 열정을 가졌던 박상표에게 “탈 난 강아지들을 돌보는 일은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아르바이트였을 뿐”(139면)이었다. 또 그가 동물병원에서 수의사로 일한 것은 “생계에 대한 걱정 없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경제적 자유에서 오는 독립된 삶을 누리기 위한 것”(176면)으로 해석된다. 만약 동물병원에서 일할 필요가 없었다면 박상표는 시민과학자로서 더 큰 기여를 했을지도 모른다. 

 

정식 과학교육의 바깥으로 나가고 생계문제를 넘어서야만 시민과학자로 살 수 있다는 사실은 과학과 과학자가 한국사회에서 맡고 있는 불안정한 자리와 역할을 드러내준다. 정규 과학, 의학, 수의학 교육체계에서는 시민의 안전과 건강 문제에 대해 소신있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통상적인 과학의 범주를 벗어난 활동(‘시민과학’)이자, 무려 정부와 주류에 ‘대항’하는 각별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되었다. 실험실과 현장에서 얻어낸 과학적 사실을 가지고 정부의 방침과 기업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견해를 밝히는 과학자는 유별난 연구자, 위험한 전문가가 되고 말았다. 정부와 기업이 제각각 강력한 힘으로 과학적 사실을 만들어내는 와중에 힘없는 시민이 끝까지 신뢰할 수 있는 과학자를 찾기란 점점 더 어려워졌다. 필요할 때마다 박상표 같은 ‘의인 과학자’가 홀연히 등장하기를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것은 과학의 위기이자 민주주의의 위기이다. 과학과 과학자에 대한 신뢰는 민주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다. 생명, 안전, 환경에 직결되고 막대한 예산이 오가는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그 무엇보다 과학자의 머리와 손과 입에 의존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즉 정치적 갈등과 경제적 이해가 얽혀 있는 공론장에서 믿을 만한 ‘과학적 사실’이 중심을 잡아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학적 사실이 우리가 신뢰할 수 없는 이들의 손에 맡겨지는 순간, 공적인 토론과 결정의 과정은 저잣거리 싸움보다 나을 것이 없게 된다. 정치에 절망한 시민이 마침내 과학에도 실망하기 시작할 때, 더이상 과학자의 말을 믿지 못할 때 그 사회의 민주주의는 심각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박상표가 담배회사 내부 문건에 등장하는 한국인 과학자들을 분석한 논문을 쓴 것은 그러한 위기를 지적하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한국의 과학과 과학자에 대한 신뢰의 문제가 다시 주목받는 지금, 박상표가 그랬던 것처럼 과학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튼튼하게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글은 『창작과비평』 2016년 여름호에 수록되었습니다.

 

전치형 /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2016.8.3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