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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와 유럽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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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모든 학생이 독일어와 함께 아랍어를 정규 필수 과목으로 배워야 한다.” 올해 2월 초 독일 함부르크 소재 한 사립대학 총장인 토마스 슈트로토테(Thomas Strothotte)는 아랍 지역에서 들어온 난민들이 독일사회에 순조롭게 ‘통합’하도록 만들려면 그들에게 독일어를 배우라고 ‘강요’할 게 아니라 독일인들도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필수적으로 아랍어를 배워 ‘환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응은 격했다. 비이성적인 제안이고 도리어 난민 수용과 통합에 방해가 된다는 비판이었다. 난민 문제를 둘러싼 토론의 한 에피소드로 보였다.

 

최근 3년 동안 200만명에 달하는 이민족 난민을 수용한 사회에서 그와 같이 ‘황당하지만 멋진’ 구상만 나올 수는 없었다. ‘타자’에 대한 혐오와 적대가 독일을 비켜가지 못했다. 2015년 독일 내 난민에 대한 위협과 폭력 행위는 887건에 달했고, 난민수용소에 대한 공격과 혐오범죄는 1047회였다. 2016년 상반기 발칸 루트의 봉쇄 및 터키와의 협정으로 유럽과 독일로 들어오는 아랍 난민의 수는 현격히 줄었다. 2015년 독일이 수용한 난민은 약 110만명이었지만 올해 상반기까지 독일에 도착한 난민의 수는 22만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난민들을 겨냥한 범죄행위는 오히려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세배나 늘었다. 범죄자들은 주로 극우세력이었지만 불만과 불안을 지닌 지역 주민인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극우파의 준동과 독일정부의 환대문화

 

그럼에도 독일 정부와 시민사회는 혐오나 적대를 경계하고 ‘환대문화’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메르켈 총리는 당내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해낼 수 있다”며 적극적인 난민 수용 정책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지난봄 주 의회 선거 후 극우 정치세력은 계속 약진하고 있으며 좌파 정치가들 일부도 포퓰리즘으로 돌아섰다. 메르켈 중심의 기민련/사민당 연정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 난민정책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히 지난 7월 독일의 여러 도시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한 테러와 폭력난동은 독일사회를 충격에 몰아넣었다.

 

그러나 독일 정부와 사회는 경찰력을 보강해 안전 대책을 세우는 한편으로 테러가 초래할 혐오와 적대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거듭 경계하고 있다. 주류 언론과 정치지도자들은 외부나 내부의 이질 세력을 ‘적’으로 만드는 선동 정치에 맞서 다문화 이주사회에 걸맞은 정치적 성숙과 개방적 공생을 옹호하고 있다. 20세기 전반기에 겪은 적대적 타자 인식과 폭력 가속화의 악순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의다.

 

메르켈은 테러의 충격 속에서도 테러와 난민이 서로 다른 문제라고 강조했다. 독일정부는 주류 언론과 시민사회의 지원 속에서 개방적 난민 수용정책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테러 연구자들도 공포와 불안으로 적대 상태로 빠지지 않으려면 정상적 삶을 지속하며 폭력의 악순환을 막는 신중함이 가장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프랑스와 벨기에 테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난민 유입 때문에 테러가 발생한 것도 아니고 난민을 받지 않는다고 테러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테러와 난민은 서로 다른 문제”

 

더구나 최근 독일에서 발생한 테러와 폭력난동의 경우 범죄자들은 모두 테러조직의 전사가 아니라 생애사적 좌절을 경험한 개인들이었다. 뷔르츠부르크와 안스바흐 테러범들의 경우 이슬람 근본주의에 물들었음이 확인되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처음부터 테러를 목적으로 입국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두 테러범 모두 정신질환을 겪거나 공격성의 징후를 보였고 ‘관심 대상’이었음도 확인되었다. 특히 뮌헨의 총기 난동범은 이란계 독일인이지만 오히려 극우 파시즘 세계관에 빠져 있었다. 그는 히틀러의 아리아 인종 우월주의를 받아들여 (‘이란인은 원조 아리아인!’) 터키인과 아랍인들을 경멸했고, 이슬람 테러주의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노르웨이 극우 테러범 브레이비크를 모방했다. 그는 무엇보다 수년 동안 동료 친구들로부터 놀림의 대상이었다.

 

테러의 동기와 배경이 이렇게 다르니 테러 행위를 성급하게 난민 탓이나 이슬람의 문제로 환원하지 말자는 요청은 정당하다. 그 ‘7월의 테러범들’이 모두 이주민이나 난민 배경을 가졌지만 사회부적응 또는 차별과 배제로 좌절해 홀로 분노를 키운 남성 청(소)년들이라는 데 더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도 이성적이다. 그 ‘고독한 늑대’들 중 일부가 IS의 이슬람주의 선동을 활용한 것이지 그 역이 아니었다. 모방범죄를 조장할 우려가 있으니 행위‘자’에 대한 과도한 사회적 관심은 삼가자는 제안도 현명해 보인다. 심지어 전쟁과 테러 전문 학자인 정치학자 헤어프리트 뮌클러(Herfried Münkler)는 테러의 공포에 맞설 전략으로 ‘장엄한 초연함’ 내지 ‘뚱한 무관심’을 제시했다. 냉소적으로 들리지만 그만큼 정상적 삶을 유지하는 것이 절박하다는 호소다.

 

적대와 폭력이라는 바이러스에 맞서

 

2011년 9·11테러 직후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이미 “테러주의 정신이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간다”고 예언했다. 폭력의 바이러스는 이제 이데올로기화한 테러조직을 넘어 좌절하고 병든 개인들을 덮치고 있다. 이 폭력 바이러스에 독일사회가 얼마나 ‘정상성’을 유지하며 버틸지 주목된다.

 

올해 9월 독일은 주 의회 선거를 앞두고 있다. 극우정당의 지지세가 상승하고 있다. 혹시라도 올가을 터키가 유럽으로 가는 길을 다시 연다면, 난민들은 곧 독일로 몰려올 것이고 이에 맞선 극우파의 선동정치가 성세를 누릴지도 모른다. 연쇄 테러 직후 시행된 독일 여론 조사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의 난민정책에 반대하는 비율은 3분의 2에 달했다. 그에 반해, 테러가 메르켈의 난민정책 탓이라는 비난에 동의하는 비율은 28%에 불과했다. 독일사회는 불안과 이성 사이에서 줄을 타고 있다.

 

불안과 공포를 숙주로 갖는 혐오와 폭력에 맞설 다른 무기는 없다. 평화와 공생을 만든 문명적 경험과 정치적 자산을 총동원하는 것 외에는. 다만, ‘장엄한 초연함’으로 민주주의 정치문화를 확대하고 강화하는 것으로도 뭔가 부족하다면, 앞서 말한 슈트로토테의 ‘정치적 판타지’도 필요할지 모르겠다. 망상은 거두되 자극은 살리면서 말이다. 독일이 난민 수용과 ‘포용’ 과정에서 새로운 공생의 방식과 평화의 실천들을 쌓아 유럽과 세계 전역으로 전이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0세기 말 독일과 유럽은 폭력과 갈등의 순환을 순조롭게 빠져나와 잠시나마 여타 지역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유럽은 이제 새로운 종류의 폭력과 적대를 상대하는 전위가 되었다. 21세기와 유럽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 싸움이 한반도의 우리에게도 중요한 이유는 난민이나 테러 문제가 심각하고 순식간에 경계를 넘기 때문만은 아니다. 적대와 폭력에 맞서는 모든 문명의 무기는 결국 우리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동기 / 강릉원주대 사학과 교수

2016.8.1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