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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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

강만길 외 ‘공부의 시대’ 시리즈

개인이 되기 위한 공부, 타인을 이해하는 공부
--강만길 외 ‘공부의 시대’ 시리즈(전5권), 창비 2016

 

 

jtykt공부의 시대: 개인이 되고 싶은 우리

 

필자는 이따금 인터넷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을 살펴보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베스트셀러 목록을 통해 특정한 책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를 읽음으로써 오늘 이곳에 함께 살고 있는 동시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지 그 조건들은 무엇인지 가늠해보는 것이다. 사람들이 어떤 책을 보는가는 우리 시대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가령 작년부터 올해까지 돌풍을 일으켰던 베스트셀러 제목이 ‘미움받을 용기’라는 것은 우리의 자유와 행복의 조건이 공감과 이해보다는 두려움에 걸려 있다는 방증으로 읽을 수 있다. 요는, 사람들은 개인이 되고 싶어하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곳은 개인이 온전한 개인으로서 발현될 수 있는 조건이 순조롭게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인문학 열풍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나의 개인으로 거듭나고 싶어한다. 그것이 우리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백합이 되었건 장미가 되었건 코스모스나 이름 없는 들꽃이 되었건 간에 우리는 모두 하나의 꽃으로 피어나고 싶다. 그러나 우리의 사회적 토양이 빈곤하여 생존경쟁만을 강요하는 조건에 있다보니 사람들은 각자 꽃으로 피어나는 방법에 대해 터득할 틈이 없을 뿐 아니라 그 성취의 가치에 대해서도 헷갈리게 된 것 같다. 최근의 인문학 열풍은 사람들의 그런 헷갈림과 그로 인해 겪는 고통을 역설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길 없는 길을 간다는 것

 

반면, 대중적 인문학 열풍과 별도로 제도권에서 인문학은 쓸모없다고 푸대접을 받는다. 쓸모없는 공부에 대한 냉소가 사회의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어 어느 시인이 말한 “시는 언제나 패배이니 승리는 오해 마라”의 역설적 진의조차 무색해지는 세태 같다. 시는 본래 쓸모로 정의될 수 없는 것이다. ‘먹고사니즘’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잔혹한 분위기에서 개인이 개인에게 건네는 삶의 조언은 “각자도생”이다. 이런 말이 유행하는 사회라는 게 일견 우울하지만 사안을 더 넓고 깊게 보자면 이는 다른 한편 학벌과 학력이 가치를 창출하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암시로도 보인다. 기존의 제도화된 공부가 갖던 지나친 권위와 의미가 해체되고 있다는 건 어쩌면 몸과 마음의 수양과 단련이라는 공부의 본래적 의미를 회복할 기회가 다수 대중에게 열리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안전한 우리 밖에 있는 들판으로 내몰린 우리는 이제 들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하여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물론 여기서 ‘들’은 파괴의 장소도 창조의 장소도 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창비의 ‘공부의 시대’ 시리즈는 흥미로운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를 화두로 삼아 우리 시대를 “나와 세상에 대해 묻고 고민하고 손 내미는 진짜 공부가 필요한 시대”로 규정하고, 우리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공부와 실천의 접점들을 만들며 자신만의 길을 닦아왔고 여전히 그 길 위에 있는 5인의 초청강연을 정리하여 책으로 내었다. 다섯 강연집을 읽고 나서 깨달은 것은 저자들 모두가 아직 나지 않은 길을 감으로써 길을 낸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 대법관 김영란의 『책 읽기의 쓸모』는 법관에게 쓸모없는 듯싶은 문학독서가 어떻게 실상 법의 영역에서 개체적 삶을 근본적으로 보장해주는 튼실한 쓸모로서 돌아올 가능성이 있는지 보여준다. 강만길의 『내 인생의 역사공부』는 해방 이후 역사학이 외면받던 시대에 역사연구의 길이 자신의 길이라는 신념에 근거하여 가장 선진적인 연구자가 되겠다는 건전한 야심을 보태 ‘자신만의 역사’를 써낸 역사학자의 길을 보여준다. 진중권의 『테크노 인문학의 구상』은 미디어적 전회라는 인문학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맞아 “인문학이 텍스트를 넘어 사운드와 이미지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재정의해야 하는 시대”라고 우리 시대를 규정한다. 문제의 논리적 해결이 아니라 시적 해결, 생각하는 인간이 아니라 유희하는 인간, 생산자본주의가 아니라 미적 자본주의로 가고 있는 시대에 인문학적 상상력을 활용하여 세계를 해석하는 인문학에서 세계의 제작에 참여하는 새로운 기술미학의 공부길을 제시한다. 정혜신의 『사람 공부』와 유시민의 『공감필법』은 ‘개인이 되고 싶은 우리’와 좀더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강연들이라는 생각이다. 길 없는 길을 가는 것은 곧 개인이 되는 길이고 이 여정은 불안과 실패와 상처에서 결코 자유로운 길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두 저자는 치유로서의 공부길을 제시하면서 개인이 되는 방편을 일상과 습관에서 찾고 있다고 보인다.

 

치유로서의 공부

 

‘거리의 의사’라고도 불린다는 정혜신의 『사람 공부』는 사람을 구하겠다는 공부를 해서 전문가 자격증을 딴 사람에게 정작 공부가 덫이 되는 현실을 말한다. 학위나 자격증이 주는 안정감에 기대고 진료실에 제한된 지식은 무기력하다. 저자에 따르면 트라우마가 지천에 널려 있는 우리 사회의 현장이 필요로 하는 건 마음을 다친 사람들이 치유과정에서 자기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공부, 사람이 본래 지닌 “무의식적 건강성, 온전함”에 가닿음으로써 자기면역력을 키워나가게 도와주는 공부다.

 

정혜신이 말하는 무기력하지 않은 진짜 지식은 전문가적 이론이나 지식보다는 밥상이나 뜨개질처럼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치유의 요소를 찾아내 개발하는 능력과 관련된다. 정신적 외상을 입은 사람에게 “한 존재에 대한 주목, 인정, 존중을 전달하는 방법”으로서의 밥상을 차려주는 일이, 허기질 때마다 스스로 밥상을 차려먹을 수 있는 자가치유력을 유도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현대적 삶의 많은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외주화”를 지양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론이나 학문적 틀에 사람을 끼워 맞추는 전문가는 자칫 그 앞에 있는 사람의 개별성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고, 개별성의 차원을 놓친 전문가의 두려움 없는 확신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말은 새로운 생각이 아닌데도 새삼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떤 공부건 결국 근본에 두어야 할 것은 개인의 가치의 회복 혹은 개인되기의 순조로운 과정과 조건인 것이다.

 

같은 차원에서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유시민의 『공감필법』은 개인이 자기 자신을 찾고 지키는 하나의 방편 혹은 습관으로서 독서와 글쓰기를 제시한다. 저자는 “삶에는 자신이 부여하는 것 말고는 다른 의미가 없으며,” 우리는 “자기 스스로 자기 인생을 설계하고 의미있는 삶의 방법을 찾아나가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감정과 생각을 언어로 표현해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먼저 타인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공감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 저자가 보기엔 독서과정에서 감정이입을 하면 글을 쓸 때도 “타인의 감정이입을 끌어낼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결국 궁극적으로 책이 오래도록 살아남는 비결은 그것이 담고 있는 지식과 정보가 아니라 그것이 전하려는 귀하고 가치있는 감정들에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감정들에 공감할 때 우리는 책을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고 그런 이유로 책에서 적절한 “위로와 격려를 받는 것”도 저자에겐 공부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들에 던져져 각자도생하는 우리에게 이러한 공부는 지금의 우리에게는 가려져 보이지 않는, 결코 오지 않을 것만 같은 미래의 도래를 부르는 강력한 경쟁력을 가질 것이다. 여기서 경쟁력이란 남을 이기는 능력이 아니라 유시민의 말대로 “남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남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능력”이다. 나의 개별성과 타인의 개별성에 대한 존중에 기초한 공부길은 예전에 없던 수많은 새로운 길들을 낼 것이고 그 길들을 걸어갈 때 우리는 비로소 각자 아름다운 개인으로 피어날 희망을 품어볼 수 있을 것이다. 

 

박여선 / 영문학자

2016.8.24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