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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 사교육, 그리고 정치적 진보

성은애

성은애 | 단국대 영문과 교수

내신-논술과 더불어 ‘죽음의 트라이앵글’로 불리는 대학입시의 주요 관문인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근본적으로는 도대체 4년간 수업을 들었을 뿐인 대학의 이름이 과연 한사람의 일생에 그렇게 큰 영향을 미쳐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마땅하겠지만, 수험생들이나 학부모들에게는 일단 이 세 겹의 관문을 ‘통과’하는 문제가 절박하다.

자녀를 원하는 대학에 입학시켜준다는 조건을 내걸고 대한민국 수험생 엄마들을 동원하면, 북핵문제쯤은 한달 안에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농담은 대학입시가 학생과 부모들에게 얼마나 치열하고 절박한 과업인지 잘 보여준다. 이 관문 앞에서는 정치적 입장이나 철학의 차이가 아무 소용이 없다.

대한민국의 부정부패에 대해 개탄하고, 공정한 경쟁과 기회균등의 정의를 주장하며,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은 없는 사회를 갈망하면서도, 자녀의 교육문제로 들어가면 그 모든 멋진 원칙들이 일거에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경우는 그리 보기 드문 것이 아니다.

매년 수능 출제위원장이 인터뷰에 나와 ‘고교 3년의 교과과정을 충실히 이수한 학생이면 누구나……’라고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공황상태를 이용해 자꾸 커져가는 사교육시장은 이제 공교육의 규모와 수준을 훌쩍 넘어선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중 가장 두드러진 팽창세를 보이는 것은 단연 논술이다.

현재 고교교육의 틀에서는 제대로 소화할 수 없으면서도, 대입에서는 가장 결정적인 변별력이 나타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내신이나 수능처럼 학습효과가 수치나 등급으로 바로 표시될 수 없으니 속터질 노릇이다. 학원으로서야 수요자의 불안감, 높은 교육비, 제로에 가까운 책임이라는 삼박자를 두루 갖춘 분야이니, 이렇게 좋은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공교육에서 가르칠 준비가 안되어 있는 분야를 입시에 포함하는 것은 부당하며, 따라서 공교육의 틀에서 글쓰기교육에 필요한 교사와 씨스템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학교간 편차를 고려할 수 없는 내신성적과 변별력이 떨어지는 수능 외에 다른 선발기준이 필요하다는 대학의 요구도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고래들의 힘겨루기에 등이 터지는 새우 신세인 학부모들의 화제는 어쩔 수 없이, 어떻게 아이의 사고력과 글쓰기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지에 집중된다.

최근 주변 어른들의 대화는 이러하다. 어떤 학원이 논술을 잘 가르쳐요? 글쎄요. 글쓰기가 학원에 다닌다고 좋아지나. 그렇다고 그냥 놔두면 저절로 글쓰기가 되냐고요. 그래도 논술학원에 오래 다니면 글이 틀에 박히게 돼서 오히려 안 좋다던데. 그건 그럴 것 같아요. 글쓰기라는 게 생각이 자유로워야 하는데, 학원에 다니면서 들입다 외워서 쓰는 것만 배우면…… 안 좋겠지. 그럼 학원엘 보내, 말아? 일단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던데. 그럼 초등학교 때부터 독서학원에 보내야 하는 거예요? 집에서 엄마가 붙들고 책을 읽혀야지. 그걸 어떻게 엄마가 일일이 다 해. ○○학원이라는 데가 있는데요. 거기가 책 읽고 토론수업하고 글 쓰고 하는 걸 잘 시킨다던데. 어떻게 시키는데요? 글쎄, 하여간 그 학원 원장이 왕년 □□대학 △△써클 출신이래요. 응, 운동권? 아, 대학에서인들 토론수업, 글쓰기수업 제대로 했나? 그나마 책 읽고 논쟁하고 글 쓰는 훈련 제대로 한 건 그 시절엔 운동권써클뿐이었잖우. 그거 말 되네. 만날 토론하고 대자보 쓰고 팸플릿 쓰는 게 일이었잖아. 그러니까, 논술선생으로는 딱이라니깐. 그래도 정치적으루다가 편향이…… 아니, 프로그램이 꽤 괜찮더라고. 학교에서 하기 힘든 철학·역사공부도 이것저것 많이 시키고, 방학 때는 유적 답사도 간대요. 그거 괜찮겠네, 우리도 어렸을 때 그렇게 배웠으면 훨씬 더 유식해졌을 텐데. 그래도 애들은 지겨워해. 어쨌든 시험이잖아. 학원비는 또 어쩌고. 어제 TV에 논술학원 강의장면이 잠깐 나왔는데, 강사가 그러던데. 논술문제 푸는 방향도 보수 신문보다는, 약간 진보적인 신문의 논조를 따라가는 게 유리하대. 북핵문제다 하면, ‘한미동맹 공고히하고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 하는 것보단, ‘평화의 원칙을 지키며 대화로 풀어야 한다’ 이렇게 나가는 게 좀더 세련되어 보인다나. 믿거나, 말거나. 참, 웃기네, 사교육시장에서 그런 식으로 진보를 가르치며 돈벌이를…… 하하. 전교조는 요새 뭐 하나? 교원평가 받네 마네 그런 거 하지 말고, 이놈의 입시제도가 제대로 되어먹은 건지 그 얘기나 좀 계속 해보지. 하여간 이놈의 논술이 사람을 잡아요, 잡아. 학교에선 못 가르치고 안 가르치는 걸 어쨌든 해야 하니깐, 답이 없다니깐요, 에혀.

대개의 대화가 이렇게 흘러가니, 이야기를 해도 답답한 마음은 풀리지 않는다. 교육기회의 평등, 개인의 능력에 대한 공정한 평가, 일사불란한 서열화의 해체, 획일적이지 않은 평가기준, 공교육의 강화, 다양한 진로의 가능성, 이런 진보의 원칙들은 당장 자기 자식의 눈앞에 닥친 내신-수능-논술의 뻑뻑한 올가미 앞에서 꼬리를 내린다.

부모의 돈과 에너지와 문화자본이 많이 투여될수록 생존경쟁에서 유리한 세태 탓에 부모들은 자신의 무능에 자괴감을 느끼고, 학생들은 뭐든지 다 잘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에 좌절감을 느낀다. 살벌한 경쟁사회로 자식들을 내몰아야 하는 약하디약한 부모들 앞에, 더 많은 돈을 들여야 더 좋은 상품을 살 수 있다는 단호한 시장의 논리는 더욱더 기세등등하게 다가선다. 그리고 사고력과 논리력, 창의력에 대한 평가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둘러쓴 논술시험이 바로 그 최전방에 버티고 있다.

글쓰기 교육, 사고력과 창의력, 지적인 잠재능력, 모두 좋은 얘기다. 그러나 그것이 공교육이 아니라 주로 부모의 경제력과 문화자본에 의해 배양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정치적 진보의 이념과 어긋나는 것이다. 비판적인 진보 논리의 세련됨으로 글쓰기 교육에서 유리한 지점을 점유하는 데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애초에 교육을 시장논리에 맡겨놓을 수밖에 없게 하는 정책 자체를 끊임없이 비판하는 것이 정치적 진보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이러한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통과하는 와중에 행여나 정말 제대로 사고력을 키운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은 이 시험의 타당성과 의의에 대해 심각하게 회의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타당하지 않으므로 동의할 수 없는 경쟁에 어쩔 수 없이 뛰어드는 경험은 유쾌하지 않을뿐더러 인간의 자존심과 존엄성을 심하게 훼손한다는 것을, 입시제도의 입안자들은 다시 한번 생각하셔야 할 것이다.

2006.11.14 ⓒ 성은애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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