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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스랑으로 다시 발을 찍는 시간: 신경숙 씨를 생각하며

정홍수
정홍수

정홍수

내 경우 문학이 현실의 일부, 그것도 아주 작은 일부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 꽤 시간이 걸린 셈이다. 그렇다는 것은 오랫동안 내게 문학은 삶과 현실에 맞먹는 어떤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는 이야기가 될 테다. 그 맞먹음이 현실을 대체할 수 있다고 믿지는 않았지만, 잠재적 가능태의 자리에서 현실을 그려내고 성찰하는 문학의 역능은 곧잘 나 개인의 빈약한 현실을 가려주는 듯했고, 그런 가운데 그 능력은 실제의 내 것인 양 혼동되기도 했다.

 

밤을 새워 소설을 읽고 부윰한 새벽을 맞으면, 세상을 알아버린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부박하고 속된 세상에서 거듭 패배하는 주인공, 자신의 존재와 혼을 입증하기 위해 좌절이 예비된 길을 떠나는 인물들에 감응하면서 나는 내가 그 속된 세상의 가치와 힘을 얼마나 갈망하고 있는지 나 자신을 속일 수도 있었다. 그래, 내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다면…… 80년대에 대학에 들어와 백낙청을 읽고, 김현을 읽고, 김윤식을 읽으면서도 내게 문학은 여전히 그렇게 지체 상태였던 듯하다. 무엇보다 내게 문학은 인정투쟁의 희미한 형식으로 남아 있었는데, 그 사실을 받아들일 능력과 여유가 내게는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문학과 지난 시간들

 

신경숙 씨는 나와 동년배다. 꽤 일찍부터 신경숙 씨의 작품을 읽기 시작했는데, 나는 대번에 그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살아보려 했으나 마음 붙이지 못한 헤어짐들, 슬픔들, 아름다움들, 사라져버린 것들, 과학적인 접근으로 닿지 못할 논리들의 밖의 세계, 말해질 수 없는 것들, 그런 것들. 이미 삶이 찌그러져버렸거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익명의 존재들에게 생기를 불어넣어주고 싶은 욕망, 도처에 어른거리는 죽음의 그림자나 시간 앞에 무력하기만 한 사랑, 불가능한 것에 대한 매달림, 여기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 이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을 내 글쓰기로 재현해내고 싶은 꿈,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들을 불러와 유연하게 본질에 닿게 하고 자연의 냄새에 잠기게 하고 싶은 꿈, 그렇게 해서 이 순간을 영원히 가둬놓고 싶은 실현 불가능한 꿈.”(신경숙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 문학동네 46면)

 

이런 불가능한 것들을 도대체 어떻게 소설에 담아내겠다는 말인가. 적어도 소설은 이런 것이 아니다. 이 무렵이면 나도 얼마만큼 소설의 산문적 질서가 문학의 역사 안에서 스스로에게 부여해온 제약들을 이해해가고 있었지 싶은데, 신경숙 씨의 소설은 거의 어떤 매개도 없이 자신의 영혼과 세계를 대면시키는 ‘순수’의 열망에 멈추어 있었다. 신경숙 씨의 문학에서 유일한 구체는 ‘자기’다. 다만 그 ‘자기’는 마당에서는 햇병아리가 종종걸음 치고, 헛간에서는 숨어 『인어공주』를 읽는 고향집이라는 현실을 가지고 있다. 열여섯의 신경숙은 헛간에서 쇠스랑으로 발을 찍고 서울 구로공단으로 왔다. 공단에서 일을 하고, 밤이면 영등포여고 산업체특별학급에 다녔다. 글을 쓰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고 인정받기 위해.

 

그리고 거기에 ‘외딴 방’이 있었다. 많은 비평가들이 지적했듯이 신경숙의 문학은 그 고향집과 외딴 방의 반경 안에서 생성되고 끊임없이 변주되었다. 그런데 그 세계 속에 ‘타자’는 희미했다. 『외딴방』의 희재 언니가 어떻게 타자일 수 있겠는가. ‘말해질 수 없는 것들’은 끝끝내 자기 자신이어야 했다. 그러나 동시에 신경숙 문학은 거의 생리적이라 할 정도로 인륜성과 친밀성의 자장에 감싸여 있었다. 그것은 이윽고 부서져갈 공동체의 마지막 기억처럼, 신경숙의 언어를 따뜻하게 밝히고 있었다. 신경숙 문학의 완강한 자기애는 여기서 타자로, 세상의 현실로 흘러들어갈 수로를 열었다. 그것이 바로 90년대에 도착한 이른바 신경숙의 ‘내면성’이었다. 어느 면 퇴영적일 수 있는 것. 그러나 더없이 순수한 것.

 

90년대 비평이 이 내면성에 호응했다면, 그것은 두가지 역사성 때문에 그러했다. 하나는 변혁을 향한 집단적 열망이 들끓었던 80년대라는 시간. 신경숙은 그 불의 연대였던 80년대 중반에 등단했지만, 그녀에 대한 비평적 호명과 대중적 호응이 시작된 것은 90년대 들어서였다. 80년대가 억압했던(혹은 억압했다고 가정되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내면성이 신경숙 문학에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또다른 하나는 김윤식이 지적했던 이른바 ‘구로공단 체험세대’의 역사성(얼마전 개봉한 영화 「위로공단」을 생각해보자). 결국 그이들이 신경숙의 독자였다. 나도 그러했다면 혹 실례일까. 신경숙 문학의 문제성은 구로공단 체험세대의 역사성을 사라져가는 농경사회의 상상력으로 감싸려는 데 있었는데, 이는 신경숙 문학이 폭넓은 대중의 호응을 얻은 근거이자 한계이기도 한 것이었다. 문단 내부 ‘침묵의 카르텔’이나 ‘신경숙 신화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르나 90년대 비평은 이런 맥락을 충분히 언급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국 신경숙은 자신의 잊힌 단편 「외딴방」을 다시 꺼내들고 장편 『외딴방』(1995)을 완성함으로써 세상에 응답했다. 이 소설은 70년대 구로공단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글쓰기의 욕망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신경숙의 문학은 소설 이전에 글쓰기이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찾아가고, 거기에 표현을 주려는 한없는 욕망의 세계. 그 간절한 욕망이 시대와 역사의 중심과 만난 것은 단지 우연이었을까. 80년대에 제대로 도착하지 못했던 구로공단의 이야기가 90년대에 신경숙을 통해 도착한 것은 역사의 간지인지도 모른다.

 

신경숙은 『외딴방』의 서두에서 묻는다. “이 글은 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하지만 그걸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지. 글쓰기를 생각해본다, 내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하고.” 이 절실한 질문을 끝까지 철저하게 밀어붙임으로써 신경숙은 자신의 외딴 방을 세상의 그것으로 만들었다. 『외딴방』의 세계는 진실된 우리의 일부였다.

 

다시 간절함으로

 

그런데 신경숙 문학은 여기서 더 나아갔는가. 『엄마를 부탁해』(2008)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2010)를 보면 여전히 고향집 마당과 외딴 방은 신경숙 문학을 놓아주고 있지 않은 듯하다. 90년대 중반에 제출된 김윤식의 비평은 인상적이다.

 

“남은 문제는 무엇인가. ‘구로공단 의식’의 소멸 혹은 쇠퇴 현상에 신경숙의 글쓰기의 운명이 걸려 있다고 볼 수 없겠는가. 이 경우 운명이란 세속적으로 말해 인기도일 수도 있다. 이를 뛰어넘는 방식도 있는 것일까. 이 물음은 그 누구도 쉽사리 용훼할 수 없다. 제2의 쇠스랑 사건이 준비될 수도 있겠기에 그것은 그러하다. 독한 작가, ‘순수한’ 작가 신경숙도, 그를 아끼는 독자층도 공동의 운명 속에 놓여 있다는 것은 이런 문맥에서다.”(「농경사회의 상상력과 구로공단 상상력」, 『농경사회 상상력과 유랑민의 상상력』, 문학동네 1999, 142면)

 

나도 그 공동의 운명 속에 놓여 있는 독자여서일까. 나는 최근의 사태가 아팠다. 신경숙 씨는 부주의했고, 잘못했다. 이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신경숙 씨 자신 이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전설」을 읽고 또 읽으면서 쇠스랑이 있으면 내 발등을 찍고 싶은 심정이었어요.”(경향신문 2015.6.23.) 이 이상의 처절하고 아픈 사과가 어디 있으랴. 문학의 법정과 세상의 법정이 따로 있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그런데 세상의 법정에서도 하지 않는 단죄와 매도가 문학의 이름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졌다. 타인의 마음에 전짓불을 들이댈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이제 정말 신경숙 씨에게 두번째 쇠스랑의 시간이 왔는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다시 자신의 발등을 찍는 시간. 그리고 당신이 그토록 갈망했던 그 간절한 글쓰기로 다시 나아가는 시간. 어떤 이에게는 문학이, 글쓰기가 현실의 전부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시간, 그런 이들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내게도 한때는 문학이 그러했지 싶다.

 

 

정홍수 / 문학평론가

2015.10.21. ⓒ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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