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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통신

 

농촌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이중기 李仲基

시인. 시집 『식민지 농민』 『숨어서 피는 꽃』 『밥상 위의 안부』가 있음. 현재 경북 영천에서 농사를 짓고 있음.

 

 

1. 오사마 빈 라덴의 요새를 초토화시키는 텔레비전 화면 위로 자꾸만 한국 농촌이 겹쳐지는 바람에 진저리를 쳤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직도 내 머릿속에는 맥없이 거꾸러지는 미국의 세계무역쎈터 빌딩과 아프가니스탄 요새의 모습에 초토화되는 우리 농업의 현실이 안타깝게 교차하며 아로새겨지고 있다.

한국농업에 대한 뉴라운드의 위력은 ‘쌀’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쌀’에서 뉴라운드의 위력을 체감한 농민들의 절규가 아직도 전국의 들판을 메아리치고 있다. 농민들은 지금 400만석 정도를 북한에 지원해주지 않는 한 쌀문제의 실마리를 풀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쌀이 그나마 대접을 받았던 것은 아마도 정부에서 10만호의 전업농을 육성하겠다고 나선 지난 몇해가 고작이었지 싶다. 그 전에는 쌀값이 물가상승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저농산물가격정책이 실시된 이래 문전옥답은 버린 자식이나 다름없었다. 공산품을 팔아 국제가격이 헐한 쌀을 사다 먹으면 된다는 혹세무민의 비교우위론이 득세하여 이 나라 국민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하였다. 정부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다국적기업의 논리를 홍보하는 나팔수 노릇만 한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농업의 구조적인 모순은 ‘쌀’이 무너지면 여타 품목들이 연쇄반응을 일으켜 차례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벌써부터 소리없이 잽싸게 작목전환이 이루어지면서 사과·포도·복숭아·자두 등 묘목 값이 폭등하지만 중앙정부도 지방정부도 아무런 대안이 없다. 정부는 농산물 수입은 어쩔 수 없는 세계적 추세이기 때문에 관여할 사안이 아니라고 하기 이전에, 농민들이 마음놓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주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장벽을 없앤 무차별적 농산물 수입은 결국 소수 품목으로의 집중적인 작목전환으로 이어지고, 과잉생산이 가격폭락을 부르는 악순환만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농민들은 미국에 의한 ‘세계테러기구’라고 할 WTO 뉴라운드 협상으로 인해 어떠한 시름에 잠겨 있는가?

 

2. 작년 가을 농민들이 ‘쌀’을 사회적 화두로 제시하며 관공서와 농협에 나락 적재투쟁을 벌일 때, 정부는 경북에서 쌀은 그다지 중요한 품목이 아닌데도 농민단체들이 너무 심각하게 반발한다며 성토를 할 정도였다. 사실 경북에서는 몇몇 지역을 제외하곤 쌀이 농가소득에 차지하는 비중이 미약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게 그렇지 않다. 경북지역은 전통적으로 과수 중심의 농업이 발달해 있기 때문에 쌀이 무너지면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것이 과수농사이다. 쌀값이 보장되면 사과·배·복숭아·포도 등의 생산량도 조절되어 과잉생산으로 인한 가격폭락이 방지될 수 있기에 곡창지대 이상으로 쌀값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정부가 의도하는 대로 2005년 국내 쌀값이 400% 정도의 관세로 들어오는 외국쌀 수준으로 하락하면 과수농가만 피해를 본다는 불안심리가 팽배해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작목전환이 불가능한 미작지대의 농가에서야 싫든 좋든 직접지불제도의 보호 아래 쌀농사를 지어야겠지만, 경북지역에서는 지금까지의 전례로 보면 또다시 대다수 농가에서 쌀을 ‘버린 자식’ 취급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래서 작년 추수가 끝나자마자 논을 메워 밭으로 만드는 광경이 여기저기서 목도되곤 한다. 가족들의 양식을 생산하는 논에 나무를 심고 쌀은 사다 먹겠다고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산간벽지의 농가에서는 겨우내 포클레인으로 논둑을 뭉개고 경사지로 만들어 묘목을 심거나 심을 준비를 하는데 그 면적이 만만찮다는 점이다.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조건이 불리한 지역의 논은 정부의 쌀 감산정책에 의해 예상되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쌀만큼은 지켜야 한다는 농민단체의 호소를 비웃으며 논둑을 뭉개고 있는 농민들 때문에 묘목 장사꾼들만 때아닌 호황을 누리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우리 쌀이 비싼 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나라가 시끄럽다. 경제논리로 보자면 쌀농사를 포기하고 쌀을 수입해 먹는 것이 훨씬 이익이겠지만, 그게 또 그렇지 않아 이래저래 농민들만 동네북 꼴이다. 그렇다고 농민들이 직접 팔을 걷고 나서서 쌀농사의 홍수조절 기능, 공해물질 정화 기능, 지하수 보존 기능과 식량안보 등등 비(非)교역적 기능을 설명하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니 딱할 뿐이다.

 

WTO협상에 반대하는 농민대회 모습(2001.11.13. 서울 여의도)

WTO협상에 반대하는 농민대회 모습(2001.11.13. 서울 여의도)

 

1980년 이후 보호무역주의에 따라 가트(GATT)체제가 약화되자 미국은 과잉농산물로 인한 농업공황, 2천억 달러가 넘는 무역적자, 달러위기 등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미국 우위의 세계무역질서를 다시 만들 필요성을 제기한다. 미국의 적극적 추진에 의해 8번째 다자간 무역협상으로서 시작된 것이 우루과이라운드(UR)이다. UR협상의 특징은 ‘농산물’이 협상대상에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그 이전에 농업은 생존에 필요한 식량의 생산, 농촌사회 유지, 자연환경의 보존에 필수적인 산업이기 때문에 자유무역의 대상에서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나 UR협상에서는 무역자유화에 의한 관세인하 문제, 농업에 대한 지원 축소 문제(국내보조금 감축) 등이 대두하였다. 그리고 강대국들은 이같은 UR협상을 통해 약소국의 시장을 개방시켜놓고도 아직 무역장벽이 많이 남아 있다며 90년대 후반부터 새로운 무역문제를 다루기 위해 또하나의 무역협정을 시작하자고 했는데, 이것이 WTO 뉴라운드 협상이다.

2001년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WTO 제4차 각료회의 과정에서 정부는 농업을 ‘희생’시켜서라도 뉴라운드를 ‘출범’시키려는 입장에 무게중심을 두었던 것 같다. 농업을 내주고라도 뉴라운드를 출범시켜 수출공업국으로서의 이익을 얻자는 의중이 깔려 있었다는 말이다. 미국이 농업분야의 문구를 한 자도 수정하지 못한다고 했을 때나, 일본이 시장접근 개선 문제와 보조금 감축 문제에 대해 양보할 의사를 밝히자 “유럽연합이 수출보조금 폐지에 반대하는 것 외에 쟁점이 없다. 우리가 시장접근 개선에 반대하거나 보조금을 주장하면 이를 받아들일 나라가 어디 있겠느냐”는 불가피론만 주장했다. 결국 정부는 일본의 입장 선회와 유럽연합의 양보 의사 때문에 전혀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농업분야만 통째로 내주고 말았다.

한데 뉴라운드 각료선언문은 분명 협상의 결과를 ‘예단’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정부의 협상 여하에 따라 시장개방의 폭과 보조금의 감축 정도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정부는 뉴라운드 출범 전부터 농업 때문에 대외무역이 힘들어지면 안된다고 주장했으며, 카타르 각료회의 직전 브루나이에서 열린 동남아국가연합+한·중·일 정상회의에서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AFTA) 창설까지 제안해놓은 터라, 협상의지가 별로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협상단은 출국 전부터 “어려울 것이다”는 말을 의도적으로 흘려 협상의 책임을 피하고자 했다. 농림부에서는 “국내보조금 추가 감축 및 2004년 쌀 재협상에 대비해 정부수매 등 양정제도 전반을 개혁해야 한다”면서 추가개방과 보조금 감축을 스스로 예단한 꼴이 되어버렸다. 더욱 한심한 것은 “수석대표가 아니라 협상을 외교통상부에 맡겼다”고 말한 농림부의 저의는 무엇인가? 한 통상전문가는 “정부는 카타르에 가기 전 이미 일본이 돌아설 것을 알았다”면서 “개도국과 EU처럼 끝까지 버티었으면 협상에서 조금 더 얻고 나중 협상에서 유리한 입지를 가졌을 것”이라며 정부의 소극적이고 안일한 자세를 비판했다.

이처럼 실정을 감안하지 않는 정부 관리들의 “세계화 시대에 농업도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에는 함정이 있다. 물론 그들의 말에서 우리 농업의 취약성을 보완해야 한다는 뜻은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일본과 우리 농업이 높은 토지비용과 인건비 등 여러가지 이유로 국제경쟁력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은 무시하고 대외경쟁력만 들먹였을 뿐이다. 농가당 많아야 몇천 평 농사가 고작인 나라가 몇백만 평의 농사를 짓는 나라와 어떻게 경쟁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겠는가. 국토가 좁고 산간벽지가 대부분인 우리나라는 근본적으로 가족중심 농업으로 갈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개별 국가의 특성을 무시하고 세계의 농업을 한 용광로에 깡그리 집어넣으려는 미국의 ‘더러운 전쟁’에 투항해버린 ‘개방론자’들에게 농민은 미약한 존재이다. 농가 인구 403만명 중 3,40대는 32만 2천명에 불과하고 농업 주체의 평균 연령이 57.8세라는 사실이 그들을 더욱 호전적인 개방론자로 몰아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농업정책쯤은 정치적 혹은 정략적으로 이용해도 괜찮은 것으로 여겨온 게 지금까지의 관례였다.

 

3. 우리 농업이 진실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직접지불제도의 규모가 관건이다. UR이 타결되자마자 미국과 유럽연합, 일본 등은 발빠르게 가격보조는 줄이고 농가소득을 직접 지원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미국은 주식이 아님에도 쌀을 재배하는 농민들을 위해 헥타르(ha)당 81만원(우리는 20〜25만원이지만, 그것도 2001년에 처음으로 지급됐다)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데, 생산비에 비해 쌀값이 낮아 헥타르당 372달러의 적자를 볼 수밖에 없자 정부가 보조금(520달러)을 지급하여 148달러의 소득을 보장해주고 있다. 농업예산 중 논농사직접지불제의 예산비중이 우리는 2.5%에 불과하지만, 미국은 19.8%, 일본은 9.2%, 대만은 11.2%, 유럽연합은 70%에 이른다.

우리 정부와 정치권은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1995년부터 수매정책 축소(매년 750억원의 보조금 감축) 등을 통해 가격지지정책을 줄이면서 소득보장정책은 전혀 시행하지 않았다. UR협상 후 나라마다 자국 농업의 안전판(경쟁력)을 마련할 수 있도록 10년이라는 유보기간이 주어졌다. 마땅히 대책을 마련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는 근시안적인 인기위주의 정책으로 57조원(1차 42조원 중 실제로 농어민에게 지원된 돈은 19조원이고 그중 보조금은 3조원밖에 되지 않았는데, 언론에 잘못 보도되어 농민들만 도덕성의 문제로 몰매를 맞았다)이나 되는 천문학적인 돈만 낭비하고 농민들에게는 그에 버금갈 만한 농가부채를 잔뜩 짊어지게 만들었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29.4%로 매우 심각한 수준인데도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 자급률 107%였던 쌀을 제외한다면 다른 곡물들은 이미 멸종되었고, 더러는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어 멸종 위기라고 해야 옳다. 지난해의 쌀 풍년을 가지고 나라 전체가 너무 호들갑을 떨었다. 장기적 안목으로 보면 쌀의 과잉생산을 걱정하여 감산정책을 편다는 건 위험한 발상이다. 13억명의 인구를 가진 중국의 경제가 현재의 추세로 성장한다면 세계 쌀시장은 중국의 수요량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중국이 자체 수요량의 15%만 수입한다 해도 2천만 톤인데 이것은 세계 쌀 교역량 2천 300만 톤과 맞먹는다.

정부는 우리 농업이 국내총생산(GDP)의 4.3%를 생산하고, 2백만명 이상의 일자리를 제공하며, 농기계 생산과 농산물 유통 등 농업관련 산업을 합하여 GDP의 15%, 전체 산업종사자의 25.3%나 고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농민들은 GDP의 2%밖에 안되는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미국·유럽연합·일본을 바라보는 심정이 착잡하다. 그렇다고 수출보조금 없이도 엄청난 경쟁력을 가진 케언즈(Cairns)그룹의 국가들을 부러워할 수도 없고, 꿈에서라도 외국농산물 수입을 생각하지 못하는 후진국의 농업을 부러워할 수도 없는 농민들만 답답하다. 농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나 국민들은 농업을 단순히 애물단지로 보아서는 안된다. ‘희생’만 강요했던 농업을 ‘회생’시켜 소득을 보장한 후에 개방의 폭과 속도를 조절하라는 농민들의 말에 귀를 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