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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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최일남 崔一男

1932년 전주 출생. 1953년 『문예』로 등단. 소설집 『서울 사람들』 『아주 느린 시간』, 장편 『거룩한 응달』 『숨통』 『만년필과 파피루스』 등이 있음. namil1229@hanafos.com

 

 

 

멀리 가버렸네

 

 

돌아앉은 남자의 등은 삼십 중반에 벌써 시무룩해 보인다. 깔밋한 새 양복으로 서슬을 세운들 이미 늦다. 스포티한 티셔츠로 시퍼런 젊음을 위장한다고 첫눈에 들통난 인상이 가실까. 어쩌지 못한다. 몸 가운데 제일 넓은 평면적의 무표정은 둘째 치고, 관리나 조작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부위이기 때문에도 달리 손쓸 염을 못 낸다.

모르겠다. 그처럼 오갈든 배면과는 달리, 삼십 중반 남자들의 표면이 아직 청청하지 말란 법 없다. 꽃미남 소리를 듣던 얼굴에 나이가 시키는 차분한 여유마저 감돌면 금상첨화다. 턱끝의 보일 듯 말 듯 거뭇한 면도자국과 함께 무척 ]시할 터이다. 그러나 이면은 어느새 그늘지고 츱츱하기 마련이다. 웬만한 사물의 앞뒤 대칭관계에서 세상의 모든 뒤는 어차피 앞만 못한 것이다. 앞이 전진적인데 비해 뒤는 퇴행적이다. 영화(榮華)와 업신여김의 평행선이 줄곧 이어지는 가운데 사람의 뒷것들은 때문에 그예 섭섭하고 억울했을라. 보고 듣고 말하는 기능이 모조리 앞에만 붙어 있어 으밀아밀 불만을 속닥거릴 생각조차 못한 채, 숙명적 박해의식에 빠져 있을 공산이 크다.

뿐인가, 폭력이나 모멸 앞에 무력하든가 무안할 때는 앞뒤 구분이 따로 없어 그나마 괜찮다 하더라도, 매사에 속수무책인 뒤쪽은 상대적으로 훨씬 겁이 많다. 멱살은 같이 잡을 수 있되 느닷없이 덜미를 잡히면 경황없이 아찔하고, 가슴이 철렁한 것보다는 등줄기에 흐르는 식은땀이 더 무섭다. 볼기는 애무와 곤장의 이중성에 평생을 두고 떤다. 그 앞에 달린 것이 누리는 호사를 원망할 겨를 없이…… 깨진 무릎엔 머큐로크롬이라도 바르지만 오금이 저리는 데에는 약도 없다. 정강이는 걷어채고 종아리는 회초리를 맞는다는 점에서 비슷할망정 정강이는 맏아들보다 낫다는 소리라도 듣는다. 

이래저래 돌아앉은 남자의 등은 든든하고 환하기 어렵다. 사십 오십 육십에 다다를수록 휑한 적막에 잠기기 쉽다. 터진 꽈리 던지듯 가볍게 말하는 쪽이나, 몸의 어느 한구석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느낌 없이 수용하기 힘든 ‘어르신’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리. 

전후 사정이 아무리 그렇기로 일과 육신에 점점 물이 올라가는 삼십 중반을 대뜸 등시린 남자의 시발점으로 삼는 건 너무했다고 볼 수 있다. 당연한 불평인데, 누가 사람의 등에 투사된 음영을 등푸른 생선만도 못하게 자꾸 까내리고 싶겠는가. 

한마디로 야멸친 경쟁의 잔인한 속성과 무관하지 않다. 기껏 따라잡은 변화를 미처 소화하기도 전에 이제는 그게 아닌 저것이라고, 또다른 변화에 편승하기를 강요하는 속성재배 풍토가 젊은 중년의 양산을 도운 셈이다. 그런 과정에서 싹튼 잡다한 의식의 찌꺼기나 부하(負荷)의 누적에도 불구하고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어야 산다.

하다가 생긴, 절정의 나이테를 보태면서 드러나는 일된 피로가 예전의 조로벽(早老癖)과는 다른 형태로 전염의 폭을 넓혀가는 추세다. 오십 정년에 삼사십대 사장님 등장이 상징하는 젊은 사회 출현은 아닌게아니라 환상적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성공·실패가 그 정도로 무지 빠르다. 따라서 삼십 중반에 무엇을 이루어도 이루어야 한다는 불안에 등떠밀려 눈가의 주름보다 먼저 둥글게 둥글게 눕는 어깨를 적잖이 목격한다. 앞에서 감당하고 남은 폐기물을 뒤로 넘겨야 할 만큼 추락에 대한 공포가 심한 탓이다.

그렇다면 돌아앉은 삼십 중반의 여자 등은 어떤가. 매우 다르다. 앉은 키의 높낮이나 모양새와 관계없이 상체를 떠받치고 있는 둔부를 기단(基壇)삼아 허전하지 않다. 볼륨이 빵빵하면 빵빵한 대로, 굴곡진 허리가 뚜렷할 만치 탱탱하면 탱탱한 대로, 남자의 등에 드러나기 쉬운, 일견 시무룩한 기색이 좀처럼 없다. 펑퍼짐한 앉음앉음과 더불어 무던히 좁은 안노인의 등은 하물며, 견디고 배긴 세월의 징표로 차라리 조촐하다. 

남과 여의 등에 나타난 첫인상을 굳이 나누자면 그렇다뿐, 일일이 대비하기 쑥스럽다. 여 쪽이라고 늘 신간(身幹)이 편해서 그럴 것인가. 아니다. 여자라고 들씌우는 담타기 때문에도 속에서 끓는 내출혈이 남 이상으로 분출 직전일 테다. 다만 그렇게 보일 따름이다. ‘이리 오너라 앞태를 보자. 저리 가거라 뒤태를 보자’고 했던 시절과는 동떨어진 차원에서 황금분할 비슷한 비율로 안팎 태에 마음을 쓴 결과 아니겠는가. 본래적으로 부드럽고 둥근 어깨선이 음전한 뒷모습을 거들어 애시당초 무주공산같이 폭폭한 남자의 등짝과 비교할 것이 못된다. 

얘기가 좀 빗나가는 감이 있지만 그와 같이 호의적인 묘사 속에는 18, 19세기 유럽 화가들의 회화적 엉덩이 예찬과 관련된 선입관도 끼여 있다. 규시(窺視)심리야 있고 없고, 꾸르베나 드가 등의 그림에 숱한 ‘목욕하는 여인’의 풍만한 엉덩이는 그 자체로 아름다움의 극치였으니까. 제목 한번 즉물적인 책 『엉덩이』를 보면 안다. 구석기시대에서 마릴린 먼로에 이르도록 여자의 엉덩이를 죄 등장시켜 인간해방의 관점에서 가닥을 잡아나갔다. 소제목의 하나인 ‘먹고 싶은 엉덩이’는 얼마나 당돌하냐. 역사가 따로 있나, 엉덩이도 모으면 역사지, 소리가 절로 나오게끔 만들었다.

하면, 먹는 나이를 따라 후줄근해지기 마련인 남자의 등은 그걸 받쳐주는 엉덩이가 별볼일 없어 더욱 그늘지는가. 그런 점이 없지 않다. 서양에서는 엉덩이가 작아야 성기의 볼륨이 크다고 했거늘, 착 올라붙었다가 축 내려앉은 물렁살을 의식하는 연배들은 족히 수긍할 것이다. 두부살에 인비늘마저 하얗게 떨어질 지경의 노년은 더더구나 아니라고 우길 염치가 없다. 섣부른 관찰에 무책임한 단언이 스스로 부질없지만 그같은 측면에서 또 말할 수 있다. 남자다운 기력의 원천이자 거처였던 뱃심이 이제는 힘의 저장, 방출, 조작이 한결 용이한 어깨로 옮아갔으며, 넓고 빳빳했던 어깻죽지의 점진적 위축은 뒤에서 볼수록 두드러진다는 것을.  

그야 어떻든 근엄하기 이를 데 없던 역사가 자질구레한 생활 속으로 다양하게 가지를 치는 현상이 흥미롭다. 등으로 역사를 새긴대도 시비할 것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과장이 심하거나 모호하다면, 역사의 뒤안이라든가 갓길에서 세상을 견딘 사람들의 자기 서술로 말을 바꾼들 상관없다. 쇠퇴한 기억력의 길고 짧음을 다투며 그들은 오늘도 별의별 이야기를 보고 겪은 만큼만 쓴다. 입으로 나눈다. 그런 예를 멀리서 찾을 것 무엇 있나. 천지간에 널려 있다. 

 

대충 어림하기로도 커피숍 손님이 여남은은 넘었으나 나는 금방 하총재를 알아보았다. 문을 열고 바삐 사방을 훑다가 발견했다. 그가 정면으로 앉아 있었다면 동문수학 이전 이후에 걸쳐 하도 신물나게 대해온 얼굴이기 때문에도 대번에 알아봤다는 따위 표현이 어색하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삐딱하게 돌아앉은 그의 등만 보고도 네가 너로구나 짐작한 까닭에 내 식별법이 남다르다는 뜻이다. 하총재는 다중 속에서 특히 그렇다. 앉거나 서거나, 가능하면 타인과의 면대를 피하려 든다. 뭬 그리 눈꼴신 것이 많아 티를 내지 않고는 못 배기는지, 가다가는 거꾸로 눈꼴사납다.

“어. 임당수.”

하총재는 보고 있던 신문을 접으며 나에게 눈인사를 건넨다. 임당수 소리가 조금 컸는가, 옆자리의 중년남녀가 흘깃거린다. 나이 지긋한 층에겐 ‘도리우찌’로 더 익숙한 내 헌팅캡 스타일과 당수의 이미지를 어떻게 꿰맞춰야 할지 헷갈리는 눈치다. 쑥스럽기는 내가 더한데, 세속적 가늠으로는 잠바차림인 하총재의 맵시도 총재 직함에 안 어울린다. 무엇보다도 장소가 틀렸다. 평일의 커피숍은 도대체 당수나 총재가 앉아 있을 곳이 못되기 때문이다. 

그처럼 거창한 호칭은 산행을 중심으로 자주 만나는 고향친구끼리 아무 근거 없이 멋대로 안긴 별명이다. 하 아무개, 임 아무개를 본래 이름대로 또박또박 부르느니 각계의 우두머리 직함을 따 호명하는 것도 심심찮겠다고 해서 하나씩 나눠쓴 감투이므로, 당수 총재 외에 장군 총리 의장 호칭 또한 없을 리 없다. 대통령만 빼고 다 있다. 물론 또래들의 회합 때에나 통하는 입감투인 까닭에 아무데서나 주고받을 것이 못된다. 따라서 이런 자리에서 불쑥 터뜨리면 피차 멋쩍다.

“근데 말야, 나 큰일 났어.”

“왜.”

열쩍은 장면을 눅이기 위해 불현듯이 꺼낸 것이 분명한 하총재의 말에 나도 얼른 달라붙었다.

“며칠 전부터야. 눈앞에 뜬금없이 하루살이가 날아다니지 뭐냐. 한여름이라면 몰라. 매화가 필 동 말 동 이른봄에 웬 하루살이?”

“한마리? 두마리? 갸들도 하루 빨리 세상구경이 하고 싶었던 게지.”

“장난이 아냐. 나중엔 파리로 변하네. 처음엔 엉겁결에 손으로 탁 잡으려고 나댔지 뭐냐. 알고 보니 일종의 착시래. 눈병이지. 그러니 그것들이 잡히겠어. 남들이 보고 비웃었을 거야. 병원에 갈래다 말았다. 저절로 가라앉는, 다 아는 질환이래서 아직 안 갔어.”

“너는 역시 여러가지 면에서 나보다 늦되고만. 이제사 그걸 겪다니.”

“머시라고?”

“산동(散瞳)이라는 거다, 그게.”

“산통이 아니고?”

“동공이 커지면서 생기는 현상인데 파적(破寂)거리로 좋지 머. 눈을 위로 치뜨거나 밑으로 까는 데 따라 춤추는 미물들의 고공 저공 비행이 재밌잖냐.”

“재밌기도 하겠다. 오래 가냐.”

“마음을 곱게 쓰면 석달 열흘, 지랄같이 쓰면 일년.”

“데끼!”

힐난하는 입과 달리 하총재의 눈이 안도의 기미로 넉넉하다.

“왜 나오랬냐. 설마 하루살이 퇴치법을 듣자고 나를 호출한 건 아닐 테고.”

“암.”

하총재는 주섬주섬 손가방을 뒤졌다. 이윽고 집어올린 복사물 서너 장을 다탁 위에 펼친다.

“봐라, 며칠을 뒤지고 다닌 끝에 찾은 자료다.”

나는 뜨악한 심정으로 그가 내민 옛날 신문쪼가리 등을 무심히 살폈다. 곧 눈을 크게 떴다. 중앙청 광장을 빼곡 메운 군중 앞에서 취임선서를 하는 모양의 이승만 대통령 사진이, 오래 여투어두었던 기억을 꺼내먹듯 마음을 새삼 알딸딸하게 흔들었다. 안 그래도 시원찮은 원판을 다시 복사한 탓이겠으나 사진이 몹시 흐리다. 활자는 군데군데 마디가 잘려 내용을 판독하기 어렵다. 하나 단문장으로 된 빤한 기사 아닌가. 굵은 컷제목만 주워읽어도 그만이다.

“보았지? 어디에 바이블이 있냐. 오른손을 올리고 왼손에 든 선서문을 읽었을 따름이다. 나 이승만은 어쩌고저쩌고…… 대통령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과 하나님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나는 하총재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정부수립 뒤에 벌어진, 저마다 역사적이라는 수식어를 빼면 섭섭해할 일과 사변들을 앞질러 꼽아나갔다.

“그런데 김총리는 왼손을 바이블에 얹었다고 우기네. 접때도 보았지? 내가 오히려 잘못 착각하고 있다면서 부득부득 고집피우는 거. 정작 착각한 것은 자긴데도 말이다. 요담 산행 때 이 증거를 디밀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걔는 아마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그러니까 우리도 의당 그러려니 여긴 것이 분명해. 하긴 무리도 아냐. 이승만 박사가 누구냐. 어렸을 적에 걸린 마마가 악화되어 하마터면 눈까지 못 쓸 지경에 빠지지 않았더냐고. 미국 선교사 호레이스 알렌이 그걸 치료해준 다음부터 그의 하나님은 구세주 이상이었다. 오죽하면 제헌국회 임시의장으로 추대되자마자 회순에도 없는 기도를 제의하고 나섰을까. 여기 봐봐, 그날의 기록.” 

나는 하총재가 손가락으로 짚어준 대목을 묵독했다.

---종교 사상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누구나 오날을 당해가지고 사람의 힘으로만 된 것이라고 우리가 자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심으로 일어서서 하나님에게 우리의 감사를 드릴 터인데 이윤영 의원 나오셔서 간단한 말씀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선서 끝머리에 국민과 하나님 앞에 선서한다는 구절을 우정 넣었구나. 그후의 대통령 선서에는 하나님 소리가 없었던 것 같던데.”

“없고말고. 나는, 하면 그만인 걸 굳이 나 이승만으로 허두를 뗀 것부터 유별나단다.”

“일일이 챙기느라 애썼구나. 그냥 넘어가면 어때서.”

“저런. 증언은 정확해야 돼. 우리가 우리 시대를 똑바로 증언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냐. 사소하다고? 쩨쩨하다고? 아냐. 처음부터 큰 역사가 어딨어. 얘기가 나온 김에 말인데 제헌국회에 우국(憂國)노인회 소속 의원도 있었다고 김총리가 또 아는 척을 했는데 거기 봐라. 있어? 없지.”

“쿡!”

“왜 웃어.”

“언젠가 우리 모임에서도 우국노인회 같은 걸 만들자던 소리가 나왔지. 그 생각이 얼핏 떠올라서.”

“싱겁기는, 지나가는 농담을 가지고.”

맞다. 웃자고 던진 제의에, 우국노인 같은 소리 한다는 핀잔이 덧없었다. 호박나물에 용쓴단들 허물 될 것이 없는 생의 해거름에 무엇은 또 만만하랴…… 사서 떤 궁상이 그때 다시 언짢았다.

나는 입안의 쓴 침을 삼켰다. 슬그머니 짜증이 인다. 바이블에 손을 얹었으면 어떻고 성서가 아예 없었다고 대수냐. 시어빠진 우국으로 마음 상한 날의 되새김질이 초라해서 자리를 뜨고 싶지만 참는다. 하총재의 큰 역사 운운에 아망스런 허풍이 없지 않을망정 익숙하다. 나 역시 그런 면이 없지 않은데에다, 전화로 점심 약속을 하면서 비친 ‘긴히 상의할 일’이 궁금해서도, 그의 변죽만 울리는 이야기에 계속 귀를 기울일밖에 없다.

자기가 살아낸 역사에 누가 백두대간마냥 우뚝한 조리를 세워 거침없이 술회할 수 있을까. 없다. 우리가 바로 그랬다. 골짜기 골짜기에서 제각기 보고 겪고 치댄 것들을 곰비임비 거두어 깨지락거릴 따름이다. 그나마 중구난방인 경우가 많다. 산만한 기억력은 먹은 것도 없이 불룩한 배로 하여 처진 혁대만큼이나 하강곡선을 긋기 바쁘다. 

한다고 입까지 심심하면 무슨 재미. 다물 때 다물더라도 끼리끼리 어울리면 때때로 입에 거품을 문다. 등을 대고 산 역사의 개인적 축적이 차고 넘쳐, 별별 화제의 희한한 전개가 실로 장황하다. 공유하는 유년의 빈궁 회상에 눈물 찔끔 섞어 웃고, 그제나이제나 사람들을 두세 부류로 갈라놓기 십상인 정치적 이견엔 각개격파식 옹고집을 부렸다.

유유상종의 어울림이 그렇게 해낙낙하다가 때로는 잔망스러운 심술로 바뀌기도 했는데, 통틀어 편안한 사이를 해칠 정도는 아니어서 만남이 즐겁다. 새로 교분을 트기보다는 오래 지탱해온 연분도 제물에 틈이 벌어져 고적이 쌓이는 시절에, 유유상종은 묵은정의 평화로 녹록하다. 경멸의 뜻이 다분한 상투어의 또다른 미덕으로 무방하다.

하고 보면 우리는 모든 면에서 고만고만하다. 배움도 환경도, 그럭저럭 먹은 대학물까지 포함하여 아무도 썩 튀지 못했다. 하늘과 땅이 맞닿은 듯 사람과 세월을 요절낸 전쟁을 빼면 한결같이 밋밋한 삶이다. 평생을 도막 치고 얇게 저미면 어찌 다른 부분이 없을까. 직업이 각각인 채 사는 곳이 동떨어진 동안도 있어 서로 몰랐던 풍상이 남 못잖을 테다. 대부분은 이미 소상히 꿰고 있지만 말이다. 변소에 가서 웃었는지 안 웃었는지 물어보지 않았으되, 오십 고개에 마누라가 죽자 반년도 안되어 새각시를 얻은 자, 조실부모하여 고아처럼 자란 자, 폭격통에 새끼손가락을 잃은 자, 어린 딸이 해수욕장에서 익사한 뒤로는 바다 근처에도 얼씬대지 않는 자 등등, 나름대로 적지 않다. 하지만 넓게 보면 다들 거기서 거기다. 왕창 돈을 번 부자는 물론, 총재나 당수의 반의반 정도 직위에 오른 친구 하나 없다. 사람과 산은 멀리서 보는 게 낫고,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는 공자님 말씀도 있고 보면 내 단언이 지극히 속물적이다. 반드시 그런 각도에서만 친구를 폄훼하는 허물이 이만저만 아니려니와, 실상인즉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흔히 그런 소리를 주고받는다. 관운도 재운도 지지리 못 타고난 놈들이라고…… 친근감으로 너나들이하는 사이가 아니면 입에 담기 어려운 허튼 수작이다.

이만한 의기투합의 한 방편으로 곧잘 동원되는 것이 지금은 사어가 다 된 지난날의 언어다. 곧 죽어도 왕시의 외래어를 중심으로, 장난삼아 암호삼아 일부러 뇌까린다. 따라서 방금 내가 떠올린 속물은 ‘스노브’라야 옳다. 딱히 언제부터라고 못박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자주 그러는 편이다. 말말 끝에 누군가의 입에서 ‘피앙세’라는 단어가 가령 흘러나왔다고 가정하자. 너도나도 한마디씩 초를 친다. 

---와 피앙세! 얼마만에 듣냐. 그때 꽃도곤 아름답던 내 피앙세는 어느덧 폭삭 늙었다만 회구의 정이 새롭다.

---불란서 본토 발음의 정확성이야 어떻든 휘앙세로 더 많이 통했지. 울림이 한결 부드럽거든. 

---그랬었지. 휘앙세 전엔 리베가 있었고.

---너는 데릴사위로 들앉았으면서 리베는 무슨 리베.

---말도 못하냐.

---좋다. 리베와 휘앙세는 칼피스를 마셔야지.

---칼피스의 선전문구가 뭐였는지 아냐.

---것도 모를까. 칼피스의 맛은 첫사랑의 맛.

---그럴 때의 she, 즉 가노죠(彼女) 손에는 하이얀 한캐치(손수건)가 들려 있기 마련이고.

---남자를 일단 에고이스트로 친 것도 그들이다. 뒤로는 호박씨를 깔망정.

---심하면 징글이스트로 몰아붙이고.

---징글이스트는 훨씬 나중일 게다. 콤마 이하가 먼저였어.

---옛날 이야기를 하자니 멜랑꼴리해질라고 한다. 

---야 멜랑꼴릭! 그러나 이럴 때는 안 어울려. 노스탈지아가 나을걸.

---노스탈지아는 엘레지의 사촌이지. ‘오 두 쁘랭땅 도뜨르화……’ 오 그 따뜻하던 봄날.

---일본말 사비(寂)는 어떠냐. 어쩌니저쩌니 해도 동양인 정서에는 걔네들의 운치가 그럴싸하게 와닿잖아.

---사비는 와사비(겨자)의 준말이다.

---녹슬었다는 뜻도 있다. 실상 우리가 그런 꼴이다. 녹슨 입에 구닥다리 서양말 찌끄러기를 주워담고 있으니.

---어쩐지 시들하냐? 아니거든 페이소스를 느끼거나.

---페이소스는 유머와 짝을 이뤄야 제격이다.

---우리 때는 미처 짝을 이루지 못했다. 각각 따로 놀았어.

---왜 그랬지.

---네가 아냐, 내가 아냐. 시대 탓도 있었겠지만 페이소스의 어감은 단독으로 나돌 무렵이 더 좋았던 것만은 확실해.

---좁은 지방도시치고는 엉뚱한 외래어 간판이 해방의 종소리와 더불어 거리에도 속속 등장했지. 그전에는 상해 테일러라든가 나가사끼 제과점이 고작이었는데, 리스본 양화점에 미라노 양장점, 그리고 라스베가스 까페나 뉴욕 미장원이 들어서는 등, 점포 이름이 구미 각국으로 뻗었다.

---세계화의 조짐이 그때 벌써 싹튼 폭이다.

---리스본 양화점 주인 생각나냐.

---살짝곰보?

---친구 삼촌인데, 내가 리스본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얌마 이태리에 있다는 것만 알아둬, 이러더라.

---별걸 다 기억하고 있구나.

---기억이라는 게 그래. 막상 기억해야 할 것은 까마득하고, 쓸데없는 잔챙이만 남는 경우가 많아. 몸의 기억력이 마음의 기억력보다 따뜻하기 때문이라는 말과도 관련이 있나?

---얼추 맞는 얘길 게야. 너희들도 아다시피 내가 뭐 문학을 아냐. 그래도 『죄와 벌』이랄지 『부활』만은 겨우 읽었는데 내용은 간데없고 남은 건 사모와르와 워카뿐이다. 코프, 토프, 스키로 끝나는 주인공 이름은 가뭇없고. 

---워카? 보드카겠지.

---알아, 그 정도는. 요새 제법 맛들인 보드카를 왜 몰라. 하지만 해방 전 일본어 번역판은 워카 아니더라고. 그들은 지금도 그렇게 써.

---그럼. 나도야 처음엔 프랑스 소설에 뻑하면 나오는 크롸쌍이 해장국 같은 것인 줄 알았다. 아침마다 먹길래 그런가부다 짐작했지.

우리는 산이나 회식자리, 또는 날을 잡아 떠난 여행길에서 과거의 잡다한 소재를 한시적으로 이렇게 띄워올려 빈약한 화제의 확장과 경험의 재현을 꾀했다. 방금 지적한 대로 동문서답하듯 두서없이 그것들을 주워섬기는 와중에 출몰하는 작은 알력과, 동류의식의 무던함 속에 잠복하는 염증이 그때마다 없지 않았다. 좋은 노래도 자주 들으면 지겨운 법이므로, 경험의 재탕 삼탕에 오히려 신물나 때로는 망각의 미덕에 기대고 싶었다. 그렇다고 잊어버리는 일이 그리 수월할까. 몸의 기억저장 장치는 유한하다. 잉여분을 들어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까닭에 그걸 일정부분 사상(捨象) 조절하는 기능을 따로 갖추고 있다지만 미장 흙손으로 담벼락 낙서를 지우듯 일시에 쓱싹 없애지는 못한다. 개중에는 주인이 싫다 싫어 내칠수록 죽자꾸나 하고 들러붙어 애를 먹이는 말썽꾸러기조차 있다. 

매양 헐겁게 흐르기 일쑤인 우리 입담은 따라서 파한의 몸짓에 그치지 않는 혹종의 마스터베이션과도 같다. 털어낼 것 털어내고 공감할 것 공감하며 서로서로 위무하려는 계산이 숨어 있다. 그러다 뜻밖의 감정과 해후하면 더 좋다. 자기 눈높이로 각기 세월을 구워삶다가 얻어걸린 감동의 단서는 여러가지다. 남들 귀에는 엉뚱한 옛노래 한 소절을 갖고도 삭정이처럼 마른 가슴에 모닥불을 피울 수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이야기로.

---우리 어머니 말이다.

---요즘은 어떠셔.

---그냥 그래. 망령든 구십 노인이 어디 가겠어. 정신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시는데, 간밤엔 글쎄 노래를 부르시네?

---무슨 노래. 

---하도(비둘기) 뽓뽀.

---뽓뽓뽀, 하도뽓뽀를? 옛날 옛적 일본 동요 아니냐. 우리도 초등학교 시절에 불렀던. 

---응.

---어디서 배우셨을까.

---일년인가, 간이학교를 잠깐 다니셨거든. 집사람과 내가 번갈아 모시고 자는데 어젯밤은 내 차례였어. 새벽녘이 되어 어디선가 책을 읽는 듯한 웅얼거림이 귀에 들렸으나 신경쓰지 않았다. 바깥에서 나는 소리 같기도 해서 미진한 잠을 다시 청하려는데, 웬걸! 육감이 이상해서 번쩍 눈을 떴더니 어머니잖아. 창밖을 바라보고 앉아 부르시는 거야. 얼마나 놀랐겠냐. 황당하더만.

---시쳇말로 엽기적이다야.

---전에도 부르셨나, 그 창가. 

---어디가. 유행가가 되었건 창가가 되었건 어머님 입에서 노래가 나오기는…… 몰라…… 내 귀로 들은 건 당신 일생에 겨우 몇번? 노래와는 담을 쌓고 사신 분이야.

---음성 박자는 어떻디. 

---체, 물을 걸 물어라. 글 읽는 투 음영(吟詠) 솜씨가 오죽했겠냐만 가사는 어지간히 정확하더라. 일절을 죄 외웠어.

---어떻게 기억해내셨을까. 하도뽓뽀는 이절까지지.

---글쎄 말이다. 나도 그게 궁금해서 여쭤봤더니 대답 대신 웃기만 하는 것 있지.

---소이부답(笑而不答)이렷다…… 그럴 수도 있지. 구석빼기에 깊이 처박혔던 기억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떠올라 가슴에 고이는 상황, 못 느껴봤냐?

---하긴.

---참 이상하다.

---이상하긴 뭐가. 너는 불시에 껴들어 엉뚱한 곳으로 얘기의 물꼬를 잘 틀더라. 너도 어머니의 하도뽓뽀냐. 돌아가신 지가 언젠데.

---자발 그만 떨고 잠자코 들어. 이번 것은 북망산에 가 계신 우리 큰아버지의 군가다.

---일본 군대에 나갔었나.

---아니 징용이다. 구주탄광.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후꾸오까시에서 수백리 떨어진 바다밑 탄광이랬다. 죽도록 석탄만 캐다가 귀국하신 분이야. 해방 덕에.

---바다에서 탄을 캐다니.

---그렇대. 일본사람들이 광산을 야마(山)라 이르듯이 탄광은 곧 산 속인데 바다에도 더러 있나봐. 해변에서 수직으로 오백 미터쯤 파들어갔다가 바다를 향해 수평으로 다시 칠 킬로미터까지 뻗은 탄광이라더라. 여기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상식의 헛점이야. 탄광과 산을 동일시하는 사람은 도저히 믿기지 않겠지. 그래서 서울 가본 놈하고 안 가본 놈이 싸우면 서울 가본 놈이 진다는 말이 생겼을 것 아닌가. 우리 사회엔 이와 비슷한 현상이 참 많아. 그때 그 시절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머리에 잘못 입력된 일률적인 고정관념으로……

---또 또. 기껏 큰아버지의 군가 얘기를 한대놓고.

---알았어, 알았다구. 아무튼지 그 양반은 연에 한두 차례, 술만 나우 마셨다 하면 으레 센유(戰友) 노래를 불렀단다.

---어떤 군가더라.

---몰라? 앞대목만 불러볼까. ‘고꼬와 오꾸니오 난뱌꾸리’(여기는 고향에서 몇백리).

---나는 알겠다. ‘하나레떼 도오끼 만슈노’(멀리 떠나온 만주의) 이렇게 나가지?

---너는 얘보다 낫구나. 얘는 일본 식민지 헛살았어. 도무지 아는 게 있어야 통하지.

---개떡 같은 자랑도 자랑이냐.

---좌우지간 그 노래는 무려 십사절이나 된다.

---징용 가서 죽을 똥을 싼 이가 어쩌자고 관동군 노래를.

---바로 그 점이 오묘해. 평소엔 이를 부득부득 갈며 자신을 사지로 끌고 간 일제를 증오했다구. 그런 양반이 왜 저럴까 의아하지 않을 턱 있나. 이유를 캐묻기도 했는데 본인은 의외로 담담하더라고. 아는 일본 노래라곤 그거밖에 없는데다 곡조가 마음에 든다 이거야. 만주와 탄광의 처지가 천양지판으로 다르긴 하지만 고향 떠난 설움을 삭이기 딱 알맞아 망향가를 부르듯 부른댔어. 하고 보면 일본 군가는 거의가 슬퍼. 씩씩하기는커녕 가사나 곡에 쎈치[sentiment]한 것이 수두룩해. 되레 전의를 상실하겠더라.

---걱정도 팔자. 슬픔도 지극하면 힘이 된다고 했다. 주가가 바닥을 치면 상승곡선을 기대하는 이치나 매한가지지.

---들은 풍월이 제법이구나. 어떻든 분명해. 어느날 갑자기 튀어나온   노래는 부른 사람의 일시적 정조(情操)를 실어나르는 방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 남의 가락을 빌어 자신의 울적한 기분을 달래는 심사 알겠냐? 어머니의 하도뽓뽀나 큰아버지의 전우가에 깔린 심리는 그래서 똑같다고 볼 수 있다. 

---모른다고 했다간 쌈나겠다.

---내용이 전혀 딴판이니까 같은 차원에서 논할 수는 없지만, 학도가도 그렇지 뭐. 학도야 학도야 청년학도야. 벽상의 괘종을 들어보시오…… 이것도 곡은 일본의 철도가에서 따왔잖아. 둘 다 4·4조인데 철도가는 무슨 놈의 노래가 육십육절이나 되냐. 노래의 장편소설이 따로 없어.

---노래는 단순한 노래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연상작용을 자극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크게 나오는구나. 너는 또 뭐냐. 

---내 것은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다. 일제가 아니라.

---그으래?

---「흑과 백」이라는 영화 있었지.

---토니 커티스와 씨드니 포이티어가 함께 쇠고랑을 차고 탈주하는 영화? 라스트 씬이 슬펐지. 달리는 열차 끝에서 흑과 백의 두 손이 결국은 운명처럼 떨어져나가는 장면이.

---내가 말하려는 건 씨드니 포이티어가 부른 노래 ‘롱 곤’(Long gone)의 한 대목이야. ‘멀리 가버렸네. 멀리 가버렸네. 고향에 가거들랑 재봉틀을 사놓고……’ 할 때의 재봉틀, 영어의 쏘우잉 머신(sewing machine)이라네, 이 사람들아. 그가 짐승처럼 애절하게 쏘우잉 머신을 뽑는 찰나, 나는 눈물이 핑 돌도록 가슴이 아팠다. 당시의 내가 영어 가사를 제대로 이해할 리 있나. 그런데 고음으로 내지르는 쏘우잉 머신 하나는 알아듣겠더라고. 나중에사 ‘롱 곤’ 판을 구해 떠듬떠듬 따라부르는 흉내를 냈지만서도.

---쏘우잉 머신이 어쨌길래.

---우리 어머니의 내재봉소 모르냐?

---아 그렇지, 참.

---아버지 없는 집안의 우리 네 동기를 어머니는 손틀 하나로 키우셨다. 등이 휘도록 일한다는 말은 바로 우리 어머니를 두고 하는 말이라는 느낌이, 돌아가신 지 십여 성상이 지난 지금까지 애달퍼. 어머니가 시켜 내가 백지에 써서 일각대문에 붙인 내재봉소 네 글자가 눈에 선하다. 솜씨가 좋아 단골이 꽤 있었다지만 장마철이나 한겨울엔 주문이 뜸해. 잘 지었네 못지었네 잔소리는 물론, 일감이 밀리면 허옇게 밤을 새거늘 옆에서 도와줄 수도 없는 게 어머니의 바느질이었다. 우리 형제들은 둥글납작 바스라진 노인네 등을 끝까지 파먹고 산 셈이야.

---서울로 올라온 뒤에도 내재봉소 간판, 아니 너 같은 아들이 썼음직한 종이쪽지를 골목쟁이 담벼락이나 큰길가 전신주에서 더러더러 보았다. 그때마다 청상과 바느질품의 숙명 같은 관계가 연상되더라. 둘은 항시 붙어다녔으니까. 

---짝없이 공교롭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내 경우의 미싱 애사(哀史)는 그후에도 색다른 양상으로 지속되었다. 우리 큰아이가 학생시절의 한때를 운동권에서 보낸 것 너희들도 잘 알겠지. 하루는 녀석의 빈방에서 미싱 노래를 우연히 또 만났지 뭐냐. 스카치테이프가 필요해서 들어갔을 거야. 펼쳐진 대학노트에 끼적거린 많은 노래를 무심코 들추다 발견했다구. 대충 훑기로도 내용이 미싱투성이였던 탓이다. 슬픔을 지그시 누르고 불렀을 가사가 우선 보기에 예뻤어. 호기심이 동해 주책없이 베꼈다. 가락은 모른다. 제목도 잊었다만 그중 몇 구절은 아직 욀 수 있다. 들어볼래? ‘흰눈이 온 세상에 소복소복 쌓이면, 하얀 공장 하얀 불빛 새하얀 얼굴들, 우리네 청춘이 저물고 저물도록,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어때?

---좋구나. 지구력이 강한 힘은 원래 잔잔한 서정 속에서 나온다더라.

---햐, 네 해석이 깐에 퍽 근사하다. 꿈보다 해몽이로구나.

 

하총재는 전화로 귀띔했던 긴한 얘기를 쉽사리 꺼내지 않았다. 감자부꾸미에 소주를 곁들인 국밥 점심이 거진 끝나도록 딴전을 피우며, 혼자 밑도끝도없이 띄운 화제를 제 손으로 되잡아 으스러뜨렸다. 

선비는 죽일지언정 욕을 보이지는 않는 법[士可殺 不可辱]이라고 했던 김구 선생 말씀의 출전은 『예기』로되, 그 어른의 입에서 나와 더더욱 돋보이지 않느냐. 그것은 오늘의 세상에도 여전히 유효한 선비의 기개여야 한다고 표정을 가다듬었다. 내가 거푸 고개를 끄덕이자, 그러나, 하고 다시 토를 달았다. 그러나 한신(韓信)은 불량배의 가랑이 밑을 태연히 기어나가고, 사마천은 궁형을 당하고도 견뎌 『사기』를 남겼잖냐. 여기서 생각이 갈린다. 치욕에 당장 맞설까. 일시적 수모를 넘어 훗날을 기약할까. 출중한 위인이 못되는 범인도 그와 같은 갈림길에 서기는 마찬가지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엉뚱한 선비론은 자유당 삼선개헌 때의 사사오입 발안자에 대한 나름의 추적을 거쳐 박통 시절의 지식인상으로 이어졌다. 나는 슬며시 하품이 나왔다. 말막음을 할 양으로 그에게 하나마나한 소리를 던졌다.

“일기는 계속 쓰고 있냐.”

“암.”

“매일매일 소재를 챙기기 힘들 텐데.”

“버릇이 돼서 괜찮아. 없으면 감상문이라도 긁적이니까.”

“수필조로?”

“그렇지. 전과 달리 건너뛰기도 해.”

“아이들마냥 한꺼번에 몰아쓰겠군.”

“흐흠.”

하총재의 일기는 유명하다. 늦깎이로 시작했다는 동기야 어쨌든지 끈기가 놀랍고 대견하다. 아무도 보지는 못했으나 세상의 크고 작은 사건에서 주변인물의 동태까지 일일이 적는 근력에 모두 혀를 내두른다. 덕택에 깡그리 잊어먹은 남의 기억을 되살리는 구실마저 간혹 했다. 그 일이 언제였더라 미심해서 전화를 걸면 대충 짚어주었다. 내 일기를 찾아보니 이렇다는 대답이 꼭꼭 돌아오나 똑 떨어지게 흡족치는 않다. 하지만 일기의 신빙성을 추심할 겸, 함께 갔던 여행경로 등속을 확인하는 문건으로 제법이다. 그 부분만큼은 사적 기록을 여럿이 공유하는 격인데, 그밖에 적지 않을 실언이나 노랑이짓까지 썼을 걸 생각하면 기분이 묘했다. 그가 일기에 담는다고 했던 또래들의 말이나 행실에 대해 처음에는 다들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정성이 대단하다 칭찬하면서 내 이야기를 잘 좀 써달라는 우스개를 날리며 히히거렸다. 그러다 슬그머니 신경이 쓰였다. 누가 자기에 대해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따금 찜찜했던 것이다. 까짓 일에 마음을 쓰다니 가소롭다는 느낌이 뒤미처 고개를 들었다. 그가 저승길에 오르는 날로 허섭스레기 유품과 함께 불쏘시개로 사라질 물건에 대한 쓸데없는 괘념을 자책했다.

친구들의 변화를 눈치챈 하총재는 하총재대로 당초엔 느물느물 연막을 쳤다. 그러니까 나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둥 맨입으로 되는 일이 어디 있느냐는 둥 반응을 샐샐 즐기다가 막판에 벌컥 화를 냈다. 일기장에 적을 일이 그렇게 없어 시시하게 불알동무들의 뒤통수나 치고 앉았을까. 에라 이 좀팽이들! 솔직히 아주 막설하는 건 아니다. 쓸 때는 쓰려니와, 그럴 적에도 양념삼아 재미삼아 깔짝거릴 뿐, 이래봬도 나의 주된 관심사는 세상의 흐름이야. 알겠냐? 그 안에서 나는 무엇인가를 묻고 내 나름의 생각을 추려 적는다. 이만하면 되었냐? 사리물은 입으로 되었냐?를 거듭 반문하고 나섰다. 듣는 쪽이 무춤한 순간이었으나 졸지에 굳어진 그의 안색 역시 썩 자연스럽지는 못했다.

“한데……”

수저를 놓고 찻물을 한모금 마신 하총재가 천천히 상반신을 곧추세웠다. 말머리를 바꾸려는 사람 특유의 자세다.

“슬슬 일기 쓰는 것 작파할란다.”

“………”

대뜸 흘린 말이 너무 뜻밖이다. 미처 대꾸를 못한 채 그의 안색을 조용히 살필밖에 없다. 

“이상하냐?”

“당연하지. 너에겐 소일거리 이상의 의미있는 작업 아니었냐.”

“그랬지.”

“힘에 부쳐서?”

“그런 이유도 없지 않고.”

“염증도 나고?”

“허. 네가 미리 다 말하면 내가 대답할 게 없잖냐.”

“미안하구나.”

“내 입으로 글줄 어쩌고 지껄이기 민망하다만 글이라는 게 그렇더라. 쓰면 쓸수록 나도 모르게 남을 비판하고 세상을 꾸짖게 돼.”

“나는 더구나 글에 대해 쥐뿔도 아는 게 없다마는 글은 그 재미로 쓴다더라. 비판이 없는 글은 팥고물 없는 붕어빵이나 같대.”

“붕어빵에 붕어가 없다는 말과는 어떻게 다른고?”

“웃자고 한 소리에 다르고 말고가 어딨어. 난쎈스 게임 비슷한 거지.”

“난쎈스라…… 이 세상에 난쎈스 아닌 것이 있을까.”

“점심 잘 먹고 왜 이래.”

“이것도 누군가가 지어낸 난쎈스의 하나겠지만, 어떤 신문기자가 시골 할머니의 딱한 사정을 취재하다 말고 부지불식간에 뜨거운 감자를 만나셨군요 했단다. 하필 그런 자리에서 유식을 떨래서 그랬겠냐. 입에 붙은 말이 그냥 새나온 거야. 그랬더니 할머니가 뭐라고 대꾸한 줄 아니?”

“몰라.”

“감자는 뜨거울 때 먹어야 혀. 식으면 맛없어.”

“잠깐. 왜 옆길로 새냐, 얘기가.”

“내 잘못이냐. 우리나라 화법의 고의적 능청 탓이지.”

“어럽쇼.”

“종잡기 힘들지? 제 곬으로 돌리마. 요컨대 물렸어. 기록이 너무 엉성해서 걱정인 나라니까 어떤 형태의 기록이든 기록이 많아 나쁠 건 없겠지. 그러나 기록 밖에서 떠돌다 제물에 꼬리를 사려 좋은 것까지 낱낱이 남길 건 뭐냐. 안 그래?”

“줄창 하던 일이 어느날 갑자기 싫어지는 수가 있긴 있지. 그런 종류의 회의냐?”

“반드시 그 이유가 다는 아니고.”

“지금껏 길들인 노릇을 백팔십도 바꿀 만한 까닭이 따로 있단 말이군.”

“가령 생각해보자. 전쟁이 한창일 때 산에 굴을 파고 숨은 남편에게 밤을 틈타 밥을 나르던 아낙이 있었다. 며칠째 뒤를 밟던 사내가 그걸 빌미 삼아 아낙을 덮쳤다.”

“당시의 오살육시 광기에 대면 별일 아니잖으냐.”

“두 당사자 가운데 하나가 늘 만나는 사람의 어머니였으니까 문제지.”

“?”

“사내는 도시에서 마을로 피난온 작자였다고 한다.”

“네 눈으로 직접 본 게 아니구나.”

“본 것 이상으로 확실한 이야기를 들었다.”

“일기에 썼냐.”

“그건 비밀이다. 해방 다음날 밤 일본인 가마보꼬(어묵)집에 들어가 금줄 달린 회중시계를 주머니에 넣고, 입으로는 야마하 하모니카를 불고 나온 위인도 안다. 뿐이냐……”

“그 통에 하모니카라. 그 역시 늘 만나는 사람과 관계가 있냐?”

“물론.”

“자상도 하다. 그러느라 네 등이 유난히 굽었나보다.”

“기록을 위해 여기저기 관심을 쏟다보면 풍문을 쫓아 제 발로 굴러드는 정보도 가끔 있다.” 

은수(恩讐)의 세월이었던 오십년대 밀고가 아직 끝나지 않은 폭이랄까. 더이상 입에 올릴 건덕지가 없을 만큼 바닥이 난 것 같아도 그때 그 이야기는 아직 남아 허공을 떠도는 게 이 바닥의 현실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반백년 묵은 풍문을 정보로 개칠하는 그의 어법에 나는 그러자 주목했다. 

“오나가나 오십년대. 우리는 엔간히 거기서 벗어나지를 못하는구나.”

“그때 전쟁이 있었으니까. 기억이 유년시대에 집중되어 향수를 자아낸다지만 전쟁은 서로에게 원수의 씨앗을 뿌리기 바빴으니 어쩌겠냐.”

“밀고와 살육의 아귀다툼 속에서 목격하고 체험한 은혜와 구원의 순간도 많았어.”

“누가 아니래. 보은의 후일담이 그래서 더 값지단다.”

“조금 전에 꺼낸 아무개 어머니 일, 그쪽에서도 네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까?”

“분명치 않아.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눈치 같기도 하고.”

“만약 일기에 올렸다면 가는 길로 지워라. 그대로 둔다면 너는 나쁜 놈이야. 나 또한 안 들은 걸로 해두겠다. 벌써 네가 알고 내가 아는 꼴이 되었는데 나한테 부러 일러주는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겠다. 아까 네 입으로도 말했지? 기록 밖에서 떠돌다 제물에 꼬리를 사리는 것까지 기록할 건 뭐냐고. 글줄로 옮긴다 하더라도 불가항력의 피해자는 끝내 보호하고 가해자를 저주해야겠지.”

“허. 하니까 의논하는 것 아니냐.”

하총재는 어벙한 눈으로 내 시선을 맞잡았다.

“알아서 하려무나. 알아서 하는데, 내 생각엔 방향이 문제인 것 같다. 어디선가 귀동냥한 말이다만, 진정한 역사가는 서민의 술상에 오르는 잡담마저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더라. 한 시대의 삶을 거시적으로 짚어내기 위해서는 술집 구석에서 과년한 딸의 혼사를 걱정하는 지아비의 모습까지 그릴 수 있어야 한댔어. 그만한 정신으로 큰 줄기를 도모하라는 얘기겠지. 너무 가깝고 자잘한 것들의 나열에 치우치면 곧 한계에 부딪힐뿐더러 쓰는 재미도 반감될 게다.”

“내 말이 그 말이다. 안 그래도 지극히 친근한 관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먼데 있는 것들과의 거리 좁히기라는 생각이 요새는 염두에서 떠나지 않는다. 때로는 내가 누구인지 모를 지경으로 머리가 몽롱하기도 하고.”

“낯선 나라, 낯선 도시, 낯선 사람들과의 친화력 다지기 염량(炎凉)이야 나쁘지 않은데, 기왕 맺은 인연도 한해가 다르게 줄어드는 형편에 그게 잘될 꺼나.”

“마음에 두지도 못하냐. 도처에 근친상간 수준의 지연 학연 권연 투성이다.”

“권연이라니?”

“권세 권, 인할 연, 연줄을 찾아 권세가들끼리 짝짜꿍하는 거 몰라?”

“윽박지르기는. 하마터면 궐련[卷煙]으로 알아들을 뻔했다. 이왕 먼데로 눈을 돌리고 싶다는 말이 나온 김에 나도 최신정보 한가지 알려주랴.”

“맘대로.”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먼먼 미국땅 어떤 도시에 팔십 가까운 교포 한분이 외롭게 산다. 부인이 몇년 전에 작고한 다음부터 홀로 지낸다. 미국으로 건너간 지 수십년. 국내서 보낸 공직생활을 정리하고 떠날 때 직함을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웬만한 지위에 있었던 건 확실하다. 일찍 시민권을 얻어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하다. 합중국 정부에서 주는 연금으로 삼시 세끼를 해결하고, 저녁이면 포도주 한두 잔을 반주로 삼는다. 다달이 나오는 돈이 그 정도로 딱 알맞다. 그밖의 재산은 없고 자식들은 모두 한국에서 산다.

여기까지는 그냥 그렇다. 유서 봉투를 책상 위에 늘 놓아두고 있는 것이 색다르다. 겉봉에 쓴, 받아보는 사람의 주소 성명이 노인 거주지역의 구청장 앞인 점이 더욱 눈길을 끈다. 내용 또한 파격적이다. 내가 죽거들랑 곧 행려병사자로 처리해달라. 시신을 화장하되 뼛가루는 근처 강에 뿌려달라. 가족에게는 일절 알리지 말라.

그중에 제일 두드러진 것이 삼항이다. 고국의 자식들에게 나의 사망 자체를 비밀에 붙여달라는 유언이 이상하다면 이상한데 결코 불화 때문이 아니다. 장례를 치르러 오가는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거꾸로 가는 고려장의 한 시범으로 산뜻하다. 노인은 평소에도 타인과의 번잡스런 접촉을 꺼린다. 응답전화에 메씨지를 남기라는 자신의 녹음소리에 벌써 ‘한인물입(閑人勿入)’의 의지가 실려 있다. 영어도 아니고 독일어도 아닌 말로 솰라솰라 씨부렁거렸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부담스런 방문객의 출입을 따돌리고 챙긴 시간을 근거리 버스여행이나 모국신문 읽기로 때운다.

“결벽증이 지나치게 심하구나.”

내 얘기를 다 듣고 난 하총재가 말했다.

“한편 신선하지 않냐. 보나마나 그 노인네의 등도 활처럼 만곡하게 휘었을 것이다. 그런 몸으로 생의 끄트머리를 흔적없이 지우려는 완결의 뜻이 얼마나 참신하냐.”

“아직 살아는 있고?”

“그런갑더라만 그건 궁금하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무섭도록 간결한 의지지. 쇠락과 퇴행을 허물마냥 둘러쓰고 다닐망정 그중에는 싱싱한 젊음이 못 따를 대범무쌍한 노년도 있다는 확인이 나는 즐겁다. 무엇보다 입맛이 개운해.”

“생판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네가 왜 야단이냐?”

“네 말마따나 기록 밖에서 혼자 떠돌다 소멸하는 것 가운데에도 의외로 괄목상대해야 할 대상이 없지 않고, 진짜 기록은 그들을 찾아헤매는 일이 아닌가 싶다.”

한참 떠들고 나자 어느덧 입이 아프고 어깨가 뻐근하다. 허리를 펴 기지개를 켜면서 바라본 천장에 하루살이떼가 수십마리, 눈앞에 맴돈다. 어김없이 끼여드는 허전한 기분과 함께 스멀스멀 등이 가렵다. 

김총리의 전화를 받은 것은 다음다음날이다. 늦은 밤이었고 술에 젖은 목소리였다. 고향에 갔다가 어머님 산소에 들렀다는 말로 시작하여 이것 저것 늘어놓은 끝에 하총재의 일기를 예사스런 어투로 슬쩍 건드렸다.

“그 친구 날이면 날마다 꼬박꼬박 적는 것도 아닌갑더라. 누가 보기를 하나, 대충대충 쓰고 넘기다 우리가 무얼 궁금해하면 뒤늦게 도서관에 가서 뒤지고 하는가봐. 나 아는 사람중에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는 이가 있는데 자주 만난대. 어쨌거나 빈둥빈둥 노는 것보다야 낫겠지 뭐. 하하.”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총재가 일러준 누구의 어머니 얘기가 떠올랐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잘 자라, 술 많이 마시지 말라 이르고 전화를 끊었다. 하총재가 들먹인 근친상간 수준의 연줄이라든가 멀고 가까운 것들의 틈과 사이를 이렇게저렇게 되작이느라 나는 정작 잠이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