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정기구독 회원 전용 콘텐츠

『창작과비평』을 정기구독하시면 모든 글의 전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 중이신 회원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신예소설가 특집

 

5001

최진영 崔眞英

1981년생. 2006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이 있음. metaphor81@hanmail.net

 

 

 

첫사랑

 

 

열여섯살 때, 처음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 나는 집에서 오분 거리에 있는 중학교에 다녔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데, 남자애 서너명이 반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아는 얼굴이었다. 작은 동네에 초등학교라곤 두개뿐이었으니까. 그들과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일부러 발끝만 보고 걸었다. 남자애랑 말을 섞는 건 열두살 이후로 끊었으니까. 저희끼리 요란하게 떠들며 내 옆을 지나가던 남자애 중 하나가

“야!”

하고 나를 불렀다. 그땐 이성의 이름은 전부 ‘야’로 통했다. 나는 돌아보는 대신 걸음을 살짝 늦췄다.

“이 새끼가 씨발 존나 사랑한단다!”

묵직한 웃음이 와르르 쏟아졌다. 뒤를 돌아봤다. 내 눈치를 보던 남자애들이 서로 옷을 잡아당기며 달려가기 시작했다. 달려가면서 또 소리쳤다.

“야, 존나 보고 싶었대!”

나는 그들을 향해 신발주머니를 홱 집어던졌다. 흙길에 내동댕이쳐진 주머니에서 낡아빠진 삼선 슬리퍼가 또르륵 굴러나왔다. 그들이 뛰어간 자리로 노란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나는 가만히 선 채 흙바닥의 슬리퍼 두짝을 집요하게 노려봤다. 그걸 내 손으로 주워서 도로 신발주머니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참았던 신경질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나를 ‘씨발 존나 사랑’한다는 애가 누구인지라도 알았다면 최소한 억울하진 않았을 거다.

 

아버지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그래서 자꾸만 “돈이나 가족보다 믿음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면 엄마는 “그럼 하느님하고나 살 것이지 나랑은 도대체 왜 사느냐”고 대꾸한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입을 꾹 다물어버린다. 

나는 아버지가 하느님이 아닌 엄마와 사는 이유를 안다. 그건 바로 아버지가 짝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짝사랑이 뭐 별건가?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듣지 못하면 그게 바로 짝사랑이지. 아버지에게 효도하는 방법은 딱 하나다. 아버지처럼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하지만 나는 절대 그럴 수 없다. 내가 아무리 사랑에 죽고 사는 철부지라도 아버지와 연적이 될 순 없으니까. 하느님이 아무리 꽃미남에 피부미남에 막강파워를 가진 최고권력자라도 그짓만은 못하겠다. 나는 아버지와 연적이 되는 대신 하느님과 연적이 되는 쪽을 선택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대신 질투하는 쪽을 택했다, 이 말이다. 왜냐, 내겐 하느님보다 아버지가 더 중요하니까.

엄마는 돈을 사랑한다. 그게, 아버지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연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엄마 말에 따르면, 돈은 전지전능하며 영원불변하다. 그러니까, 음, 신 같은 거다. 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수 없으니까, 엄마의 사랑도 짝사랑이다. 그래도 엄마는 지치지 않고 사랑한다.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유일한 소망은 죽어서 하느님 품에 안기는 거다. 엄마는 죽기 전에 돈방석에 앉는 것이고.

아버지와 엄마의 사랑은 지나치게 완벽해서 나를 외롭게 했다. 솔직히 나라고 하느님이나 돈과 연적이 되고 싶겠나. 자존심 구겨지게. 외로움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별짓을 다 해봤다. 반항도 해보고 착한 척도 해보고 아픈 척도 해보고 성숙한 척도 해봤지만, 그 모든 척은 나를 ‘성격은 지랄 같고 변덕은 죽 끓듯 하는 애’로 만들어버렸다. 절망과 오기로 똘똘 뭉친 표정만 믿고 한 시절을 다 보내고서야 나는, 사랑을 받으려면 일단 무엇이든 사랑하고 봐야 한다는 간명한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부모님과 달리 살아 있는 것을 사랑하기로 했다.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살아 있는 것을 사랑할수록 더 외로워졌다. 그저 외로울 뿐이라면 꾹 참고 말겠는데, 사랑할 때의 외로움은 꼭 경멸이나 굴욕감과 함께 왔다. 상대가 바람을 피우거나 사기를 칠 때도,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이기적으로 굴 때도, 혹은 그럴듯한 데이트를 한 뒤 평온한 상태로 잠들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감정의 끝물에서는 외로움의 맛이 났다. 그것 역시 사랑의 일부라 생각하고 의연히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성숙한 사람이라면 좋겠지만, 나는 매번 미성숙과 구멍 뚫린 욕구 쪽으로 몸과 맘을 틀었다. 하느님 대신 아버지를 택한 것과 같은 이치다.

사랑이 죽고 살 때마다 나는 점점 다른 사람이 되어갔다. 무생물을 사랑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있었다. 부모님도 외로웠던 거고, 외로운 것이 싫어 무생물을 사랑했던 거다. 무생물은 나를 배신하지 않고, 항상 내 곁에 있으며,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에 실망시키지도 않는다.

옛 애인 중엔 내게 사랑한다는 말보다 헤어지자는 말을 먼저 한 사람도 있었다. 지긋지긋하니까 이제 그만 헤어지자는 사람 앞에서 나는, 헤어지려면 우선 사랑한다는 말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절대 헤어질 수 없다고 길길이 날뛰자 그 사람은 적선하듯 “그래, 그거 했다. 됐냐?”라는 말을 던지곤 곧바로 자리를 떴다. 나는 끝까지 쫓아가 그의 입에서 ‘사랑’이란 단어를 뽑아냈다. 구차하고 구질구질해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런 식으로라도 복수해야 했으니까(아름다운 이별 따위 개나 갖다주라지!). 그는 아마 ‘사랑’이란 단어에 알레르기가 생겼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마다 사랑한다고 말하라며 표독하게 쫓아다니던 내가 떠오르겠지. 아, 진짜. 나라고 사랑을 그렇게 푸대접하고 싶었겠나. 애태우고 주저하고 가슴을 부여잡으며, 사랑이란 말은 아끼고 아꼈다가 일기장에나 간신히 쓰던 때가 내게도 분명 있었다. 그리 오래전의 일도 아니다. 겨우 십년. 십년 전의 일이다.

 

*

 

처음 사랑한다는 고백을 들은 후 삼년의 시간이 흘러서야 나는 나를 ‘씨발 존나 사랑’했던 남자애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당시 나는 만성 변비와 두통 때문에 언제나 심각한 표정을 짓고 살았다. 친구는 별로 없었고 성적은 평균을 유지했으며 밤마다 죽고 싶다는 내용의 일기를 쓰던 때였다.

내가 살던 마을에는 푸른 논과 낮은 집과 표정을 알 수 없는 커다란 산이 있었다. 늘 변함없는 그 풍경도 나를 죽고 싶게 했던 것 같다. 산 너머엔 내가 사는 마을과 똑같은 마을이 있을 것이고, 그 너머엔 또 그런 곳이 있을 것이었다. 스무살이 되고 서른살이 되는 건, 가파른 산을 넘어 모든 것이 똑같지만 이름만 다른 마을로 들어서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예쁘지도 않고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반드시 하고 싶은 것도 없는, 그렇다고 남들이 가는 길을 의심 없이 따라갈 용기도 없는 사람이었으니 앞으로의 인생에 대한 기대나 희망이나 설렘 같은 건 모두 남 얘기였다. 계절마다 미세하게 변하는 색깔과 냄새와 별자리는 나를 흥분과 좌절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었다. 조금씩 말고, 한순간에 확 바뀌길 바랐다. 사소한 변화에 일일이 관심을 기울이기엔 내가 너무 권태로웠다.

 

토요일 저녁에는 일몰을 보며 지구의 자전을 몸소 느끼곤 했다. 그건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나만의 의식이기도 했는데, 그날은 그보다 더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것에 마음을 몽땅 내준 상태였기에 자전이든 부전이든 그딴 것에 마음 쓸 겨를이 없었다. 나는 땅만 보고 걸으면서 그날 본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오후 보충수업이 끝나갈 즈음이었다. 느긋하게 기운 가을볕이 교실을 가득 메웠다. 먼지와 분필가루가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게 다 보였다. 선생님은 교탁을 짚고 선 채 한시간 내내 문제를 풀었다. 아이들은 반 넘게 자거나 졸았고 종종 선생님보다 앞서 문제를 푸는 아이도 있었다.

발을 구르면.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 하나를 집요하게 쳐다보며 생각했다.

떠오르겠는데.

몸이 너무 가벼웠다. 발바닥부터 서서히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풍선처럼 떠올라 교실 천장에 콩콩 머리를 박는 나를 상상했다. 콩콩 머리를 박으며 창문 가까이 다가가다가, 창밖으로 빠져나가 운동장과 기숙사를 지나 버스가 달리는 시내까지 가다보면 해가 지고 밤이 올 텐데, 그럼 그땐 어떻게 내려오지? 추위에 발발 떨면서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하늘 위에 붕 떠 있는 나를 상상하자 절로 엉덩이에 힘이 들어갔다. 아차 싶었다. 마침 종이 울렸다. 방귀소리는 묻히고 구린내만 조금 났다.

교실은 독서실처럼 조용했다. 몇몇 아이가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다. 나는 두 팔에 얼굴을 묻은 채 자꾸만 가벼워지는 몸을 책상에 고정했다. 교실 뒷문에서 누군가가 J를 불렀다. 나를 부른 게 아닌데도 나는 고개를 들었다. 창가에 앉아 있던 J가 고개를 돌려 저를 부른 아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환하게 웃었다.

 

뭐라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미소였다.

 

가슴이 뛰었다. 머릿속 굵은 핏줄 하나가 터져버린 듯 심각한 두통이 밀려왔다. 손발이 저렸다. 나도 모르게 발을 굴렀다. 몸이 둥실 떠올랐다. J가 웃을 때마다 콩콩. 머리로 교실 천장을 박았다.

 

“야.”

집 근처 골목에서 Y의 목소리가 들렸다. J의 아름다운 미소를 몇백번쯤 곱씹으며 아름다움과 사랑이란 단어의 찰떡궁합에 대해 생각하던 중이었다.

“잠깐만 보자.”

Y가 손짓을 하며 말했다. 누구더라. 삼초 정도 생각하다가, 삼년 전 그 무리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괜히 인상이 찌푸려졌다.

“왜.”

나는 가방 어깨끈을 두 손으로 꼭 쥐며 대꾸했다. 그런 행동이 나를 더 완전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줄 게 있어.”

Y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은 동네 곳곳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Y는 같이 좀 걷자고 하더니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십분쯤 걷던 Y가 뒤를 돌아보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우리가 같이 다닌 초등학교였다.

Y와 나는 철봉 뒤 나무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Y는 내 옆에 앉았다가, 철봉에 기대섰다가, 나무를 발로 툭툭 차다가, 다시 내 옆에 앉았다. 나는 Y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지만, 왠지 가슴이 떨렸다.

“공부는 잘 되냐?”

Y는 꼭 어른처럼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거 주려고.”

화난 사람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내게 Y는 노란 종이로 포장한 선물을 내밀었다. 나를 ‘씨발 존나 사랑’하던 애가 너였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런 걸 먼저 물어볼 순 없었다.

“친하게 지내자고.”

Y가 말했다. 좀 웃겨서, 나는 피식 웃었다.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주위가 깜깜해졌다. 교내 당직실 창에 불이 켜졌다. Y가 벌떡 일어나더니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Y와 나는 일미터쯤 떨어진 채로 걸었다. 나는 언제나 그만큼 떨어져서 걷는 두 사람을 안다. 아버지와 엄마. Y의 뒤를 따라가며 아버지와 엄마를 떠올리자마자 기분이 무척 나빠졌다.

“야.”

Y를 불렀다.

“너였지?”

사방이 어두워 Y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당황하는 것 같았다.

“삼년 전에.”

나는 일부러 말을 똑똑 끊었다.

“아.”

Y가 풋 하고 웃더니 대꾸했다.

“그땐 아니었는데. 근데, 그때부터긴 해.”

Y는 내 손에 들린 선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집에 가서 그거 풀어봐.”

그러곤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집까지 바래다주겠다고 해놓고, 아직 집에 가려면 십분이나 더 걸어야 하는데도 말이다. 나는 Y를 따라 달려야 하는지 아님 그대로 서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그동안 봐왔던 드라마를 떠올렸다. 확실히, 남자가 뛴다고 같이 뛰는 여주인공은 없었으니까. 나는 선물을 든 채 그 자리에 삼분 정도 서 있다가 집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포장지를 뜯어보고 싶었지만 어딘가에서 Y가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꾹 참았다. 그리고 최대한 우아하고 서정적으로 걷기 위해 노력했다.

 

집에 돌아와 방문을 콩 닫고 포장지를 뜯었다. 스카치테이프엔 뿌옇게 지문이 묻어 있고 포장지 절단면의 굴곡이 심한 걸 보니 Y가 직접 포장한 것 같았다. 찢어진 포장지 사이로 ‘Everlasting Love Song’이란 CD와 편지 한통이 드러났다. 편지봉투를 손으로 북 찢어 탈탈 털었다. 하얀 편지지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Y의 글씨는 의외로 귀엽고 몰랑몰랑했다. 편지지 제일 위엔 “야”라는 호칭 대신 내 이름 석자가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편지는 R. 켈리의 「I Believe I Can Fly」 가사로 시작됐다. 영어는 검은색으로, 해석은 파란색으로 쓰다가 ‘But now I know the meaning of true love’란 문장엔 노란 색칠까지 해놓았는데, 나는 Y가 강조해놓은 문장 대신 ‘I believe I can fly. I believe I can touch the sky’란 문장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왜냐면, 그건 그날 내가 똑똑히 느낀 감각이니까. 하늘은 끝이 없을 테니 하늘에 닿는 게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느낌과 함께 J의 아름다운 미소가 머릿속을 꽉 채웠다. 자연스레 사랑이란 단어도 떠올랐다. 아름다움과 사랑이란 단어는 자석의 양극처럼 서로를 무지막지하게 끌어당겼다.

 

그날 일기엔 ‘I believe I can fly. I believe I can touch the sky’라는 문장과, J의 미소와, 죽고 싶다는 내용을 썼다. 어쩌다보니 Y 얘기는 빼먹고 말았다.

 

*

 

아침 보충수업을 끝내고 쉬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모두 책상에 엎드려 잤다. 수업시간보다 쉬는 시간이 더 조용했다. 그때마다 나는 고양이 걸음으로 교실을 나와 자판기 커피를 마셨다. 귀를 기울이면 누군가의 잠꼬대까지 들릴 것 같았다. 나는 그 순간의 운동장과 따뜻한 고요를 사랑했다.

종이컵의 커피가 반 정도 사라질 즈음이면 쪽문으로 걸어가는 J의 뒷모습이 보였다. 쪽문 밖에는 가파른 산이 있었다. 그 산꼭대기에 오르면 시내가 다 보인다는데, 나는 한번도 가보지 않았기에 그냥 그렇다고 알고만 있었다. 그 산 아래에서 종종 바바리맨이 출몰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J는 아마 쪽문 옆 어딘가에서 담배를 피울 것이었다. J가 담배를 피운다는 것 역시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이다.

적막한 운동장 한쪽에서 나는 커피를 마시고 J는 담배를 피웠다. 우리는 이년 동안 그 시간과 바람, 햇살과 고요를 공유했다. 가끔 J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초록색을 칠하지 않은 풍경화처럼 나의 감각은 미완으로 남아버렸다.

J와 나는 이년이나 같은 반이었는데도 서로 말 한마디 나눠본 적이 없었다.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먼 곳으로 도망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아무 감동도 느낌도 없이 시시껄렁한 말이나 주고받는 애들 중 하나가 되고 싶진 않았기에 일부러 J를 피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딱 한번, 말을 건넬 기회가 있긴 있었다. J를 처음 만났던 고2 봄. 나는 종종 야간자율학습을 빼먹고 학교에서 한시간쯤 떨어진 기차역까지 걸어가며 미쳐 날뛰는 시간과 감정을 죽였다. 머릿속엔 낯선 도시의 지도가 멋대로 그려졌다. 어디에도 가지 않을 것이면서 꼭 어딘가 갈 사람처럼 열차시간표를 심각하게 쳐다보고, 마치 먼 곳에라도 다녀온 듯 피곤에 절어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식이었다.

기차역에서 서너시간을 보낸 후, 야자 끝나기 십분 전에 학교로 돌아왔다. 몰래 교실에 들어가 내 자리에 앉기만 하면 되었다. 내 자리가 비어 있음을 알아챈 선생님이 있더라도 “화장실에 갔다왔는데요” 하고 대꾸하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다.

교실로 올라가기 전에 수돗가에서 손을 씻었다. 맨손에 닿는 찬물에 온몸의 털이 삐죽 섰다. 흙바닥에 손을 털며 무심코 현관 옆 울타리를 봤다. 누군가가 그곳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잔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나무처럼 어깨가 미세하게 들썩였다. 발소리를 죽인 채 계단을 올라 현관 근처까지 갔을 때, 작은 나무가 고개를 들었다.

J였다. 얼굴이 번들번들했다. 울고 있었다.

그때 말을 걸었어야 했다. 왜 우느냐고 물어봐야 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못 본 사람처럼 J를 지나쳤다. J 옆에 앉으면 내 심장 뛰는 소리가 다 들릴 것만 같았다. 그 소리를 들킬 순 없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면서 복도창으로 밑을 흘금 내려다봤다. 아주 느리게 몸을 일으킨 뒤 현관으로 들어서는 J가 보였다. J가 일층 계단을 오를 때, 나는 이층 계단을 밟았다. 내가 사층에 들어섰을 때, J는 삼층 복도창에 기대서서 창밖을 하염없이 내다보고 있었다. 창밖으로 뛰어내릴까봐 무서웠다. 죽고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죽어버리겠다고 마음먹는 것 자체가 나를 겁나게 했다. 나는 그 자리에 가만 선 채로 J가 먼저 움직일 때까지 기다렸다.

그때부터다. J와 어떤 말도 섞지 못하게 된 건. 그리고, J를 찾아 늘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 것도.

 

Y는 주말 밤마다 나를 불러냈다.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가 부모님이 받으면 그냥 끊고, 내가 받으면 잠깐만 나오라고 했다. Y를 좋아한 건 아니지만 주말 저녁이면 Y의 전화를 은근히 기다렸고, 잠깐 보자고 하면 새 옷을 입고 나갔다. Y는 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나를 기다렸다. 나는 Y와 시소를 타거나 그네를 탔다. Y의 점퍼 주머니엔 따뜻한 캔커피 두개가 들어 있었다. Y는 자기 친구들 얘기나 스무살 이후의 삶을 이야기했다. 나는 잘 듣다가도 가끔 신경질을 냈다.

“그래서, 너는?”

나는 발을 힘껏 구르며 물었다. 시소가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Y가 자기 학교에 떠돈 소문을 말해준 뒤였다. 이학년 후배가 같은 반 친구를 좋아했는데, 직접 고백을 했는지 아님 들킨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다른 놈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단다. 선배와 동기가 돌아가면서 그 아이에게 집단 린치를 가했다. 교실에도 못 들어가게 하고 화장실에도 못 가게 했다. 눈만 마주치면 욕하고 때리고 침 뱉고 돈을 뺏었다. 선생들이 나서서 자퇴와 전학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단다. 결국 전학을 갔는데, 그곳에도 소문이 퍼져 또 전학을 가게 됐다는 게 소문의 결말이었다.

“내가 뭐?”

Y가 공중으로 붕 떠오르며 대꾸했다.

“너도 팼냐고.”

“난 안 그랬어.”

“그럼 말렸어?”

“말리긴 왜 말려.”

“그럼 뭐 했어.”

“그냥 소문만 들었어.”

엉덩이에 힘을 꽉 줬지만 Y도 그만큼 힘을 주고 있었기에 바닥으로 내려갈 수가 없었다.

“너라면 어땠을 거 같은데.”

공중에 대롱대롱 뜬 채로 내가 물었다.

“나는 안 팼다니까.”

“아니, 남자가 너한테 고백을 하면.”

Y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벌떡 일어섰다. 나는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장난하냐?”

Y가 엉거주춤 선 채로 물었다.

“장난 아니고.”

“야.”

“기분 나빠?”

“당연하지.”

“왜 기분 나빠? 널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좋아한다는데.”

“야, 남자가 남자랑. 그게 말이 돼? 당장 패줘야지.”

나는 남자 아버지가 남자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그럼 만약에, 잘생기고 운동도 잘하고 인기도 많고 돈도 많고 음,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열라 좋은데다 싸움까지 잘하는 남자애가 너한테 사랑한다고 고백하면?”

Y는 화를 내는 대신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고개를 흔들며 대꾸했다.

“그럴 리가 없어.”

“왜?”

“그런 애가 날 좋아할 리 없잖아.”

Y는 시소에서 내려와 손을 털고 철봉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편지에 썼는지 모르겠는데. 사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너한테 별로 관심도 없었거든. 근데, 딱 하나 기억나는 게 있긴 해. 오학년 때인가, 너 전학 오고 며칠 후에. 수업 끝나고 애들이랑 축구하다가 가방 가지러 교실에 들어갔었는데, 그때 너 혼자 책상에 엎드려서 울고—”

“근데 진짜 비겁하다.”

Y는 입을 벌린 채 멍청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

“지들이 고백받은 것도 아니면서 왜 애를 패? 돈은 왜 뺏어? 누가 지들 좋댔어? 그애 사랑의 주인공도 아닌 주제에 왜 나서냐고.”

내가 말해놓고도, 사랑의 주인공이란 말이 가슴에 콕 박혀서 움찔했다. Y가 철봉에서 뚝 떨어지더니 나를 빤히 노려봤다.

“그 얘기가 왜 또 나오는데.”

“아니, 그게 그렇잖아.”

“지금 우리 얘기 하고 있잖아. 근데 왜 그 자식들 얘기가 나오냐고.”

‘우리’라는 말에 또 한번 가슴이 움찔했다. 문득 ‘나는 Y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주말 밤마다 왜 얘를 기다릴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란 단어를 따라 J의 아름다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 생각을 하자 또 가슴이 뛰었다. 움찔 쿡. 움찔 쿡. 움찔 쿡이 심장박동처럼 계속되었다. 얼굴과 두 손이 뜨거워졌다. 몸속의 뭔가가 또 터진 것 같았다. 말없이 Y를 빤히 쳐다봤다. 이상하게도 Y만 보면 마음이 차분해졌다. Y가 내 어깨를 잡더니 얼굴을 점점 가까이했다. 메마른 냄새가 났다. 메마른 냄새는 J의 것. 작은 나무처럼 웅크린 채 울던 J. 뒷모습만으로도 완전한 J.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지닌 J. 늘 나를 두리번거리게 하는 J.

 

그날 역시 죽고 싶다는 내용과 J에 대한 이야기로 일기를 가득 채웠다. ‘아름다운’이란 단어를 반복해서 쓰기도 했다. ‘아름답다’와 ‘사랑’은 지구와 달처럼 늘 함께 움직였다. 팔이 아파 Y와의 첫키스 얘기는 쓰지 않았다.

 

*

 

사랑의 정체를 알 수 없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사랑이 뭐냐고 물어봤다. 모두 다른 말을 했다. 즐거운 거야.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지. 굉장히 절대적인 겁니다. 그 사람한테만은 그러면 안되는, 그런 거. 아, 할 말이 너무 많은데.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나. 쪽팔리게 뭘. 그 사람과는 뭐든 할 수 있겠다는 마음? 일단 자봐야 아는 거야. 모르겠어요. 죽을래? 상대와 나를 알아가며 나의 내면을 확장해가는 과정 아닐까. 그거 다 사기야. 일단 좀 하자. 어디 아파? 뭔 일 있어? 배려하는 거죠. 최선을 다하는 거. 헌신적으로. 힘들 때마다 생각나요. 뭐 그딴 걸 물어보냐. 그게 뭔데. 먹는 거야?

가장 많이 들었던 대답은, 그걸 어떻게 말로 설명하느냐는 말이었다. 나 역시 그 말에 공감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십년 전의 나에게 사랑이 뭐냐고 물어봤다면, 나는 분명하게 대답했을 것이다.

그건 J야. J의 미소야.

 

3 졸업앨범을 찍던 날이었다. 역시 가을이었고, 그늘보다 양지를 더 많이 찾게 되는 날씨였다. 졸업앨범을 찍고 나면 수능이었고, 수능 후 기말고사만 대충 치르면 졸업이었다. 졸업 뒤엔 더이상 J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불행하게 했다.

그날 역시 붕, 떠오를 것 같은 예감에 몇번이나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 새도 나비도 꽃잎도 아닌 주제에 왜 자꾸 내 몸은 떠오르겠다고 붕붕거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Y는, “저녁에 시내에서 놀자. 여섯시부터 너네 학교 앞에서 기다릴게” 하고 말했었다. 나는 싫다고 했다. 부담스러웠다. 남학생이 여고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건, 그 누군가와 사귀는 사이란 걸 온동네에 소문내는 것과 같았다. 나는 소문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도 않았으며 J가 그 소문을 듣게 되는 것도 싫었다.

5반에서 8반까지 운동장으로 나오라는 방송이 들렸다. 나는 손바닥만한 필름 카메라를 들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줌 기능도 없는 구식 카메라였다. 십대의 마지막 가을을 남겨두고 싶었다. 단상 앞에서 주임 선생님이 5반 아이들을 불렀다. 우리 반 차례가 되려면 아직 시간이 남은 듯했다. 신발 속에 돌이 들어갔는지 발바닥이 아팠다. 깨금발을 한 채 운동화를 벗어 돌을 털어냈다. J의 뒷모습이 쪽문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쪽문은 바로 산길로 이어졌다. 머리 위로 마른 낙엽 밟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좁은 흙길을 따라 무조건 올라갔다. 낡은 운동화가 이미 죽은 낙엽을 잘게 부스러뜨렸다. 눅눅한 것은 소리가 없다고, 마음에 적었다. 그래서 나는 할 말이 없었다고 이어 적었다. 넉넉한 공백을 두고, 아름다운 미소는 메마른 것에 가깝다고 또박또박 적고 그 뒷장에 J의 미소를 그렸다. 새소리가 들렸다. 한마리가 소리를 내자, 다른 새도 소리를 냈다. 나와 J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우리 둘을 한 그림에 두자 머릿속이 깜깜해졌다. 트고 갈라진 Y의 입술이 떠올랐다. 까칠하고 아팠다. 입속으로 기어들어오던 Y의 혀와 냄새와 침. 기분이 좋지 않았다. J와 내가 키스하는 모습을 그려봤다. 머릿속이 잠시 암전되었다가, 귀퉁이부터 노랗게 물들어갔다. 상상만 해도 심장이 뛰고 손발이 저렸다.

라일락 향기가 날 것이다. 꽃잎을 씹듯 촉촉하고 부드럽겠지만 늦가을 서리처럼 차고 아플 것도 같다. 종소리가 날까? 정말 그럴까? Y와 키스할 땐 종소리가 안 났으니까 그건 키스가 아니었다. 그냥 장난이었다. 진짜 키스라면 그럴 리 없지. 화가 났다. Y를 만나면 반드시 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산길은 생각보다 가파르고 위험했다. 나뭇가지를 잡아 가까스로 몸을 지탱했다. 마른 낙엽 때문에 몇번이나 미끄러졌다. 오래전 부모님과 외할아버지 산소에 가던 때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엄마는 돈을 사랑하고 나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던 그때. 무척 험한 산이었다. 귀신도 밤이면 길을 잃을 것처럼 복잡했고, 높게 자란 전나무 사이로 가느다란 햇살이 인색하게 새어들었다. 아버지는 삼미터쯤 앞서 걷다가 종종 엄마와 나를 돌아봤다. 엄마와의 거리가 어느정도 좁혀지면, 아버지는 다시 앞을 보고 걸었다. 우린 그때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 서로의 손을 잡아주지도 않았다. 엄마는 아버지의 발자국을 따라 걸었고, 나는 엄마의 발자국을 따라 걸었을 뿐이다. 산 중턱에 있는 외할아버지 산소에 도착하고 나서야 아버지는 깊은 숨을 내쉬며 온몸의 긴장을 풀듯 팔다리를 흔들었다. 엄마는 내 바지에 묻은 흙을 털어주었다. 나는 입을 한발이나 내밀고서 못된 표정을 지었었다.

 

J를 놓쳤다. 먼 곳에서 낙엽 밟는 소리만 간간히 들릴 뿐이었다. J를 불러보고 싶었지만, 한번도 입밖으로 내어본 적 없는 이름이라 혀가 딱딱하게 굳었다. J가 돌아보고 기다려주길 바랐다. 그럼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네가 거기 있고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텐데. 나뭇가지 꺾이는 소리가 희미하게 났다. J는 왜 자꾸 높은 곳으로 가는 걸까. J가 쪽문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저 하루에도 몇번씩 산을 오르는 아니, 헤맸던 것일지도. 그건 어쩌면, 밤마다 죽고 싶다는 글씨로 일기장을 가득 채우는 내 마음과 비슷한 것 아닐까.

저기.

용기를 냈다.

그만 가자.

먼 곳까지 들리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이름 모를 새들이 한꺼번에 지저귀기 시작했다. 구불구불한 길 너머에서 J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누구냐고 묻는 것 같았다.

그만 가자고.

나는 내 이름을 말하는 대신 같은 말을 더 크게 내뱉었다. 곧 어두워질 것이었다. 누구냐고, J가 다시 한번 물었다. 내 이름을 댔다. 누구? J가 되물었다. 더 크게 대답했다. 내 이름 석자가 산속을 가득 채웠다. 답이 없었다. 그 자리에서 한참을 기다렸지만 J는 내려오지 않았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나를 모른단 말이야? J가 나를 볼 수 있는 곳까지 단숨에 올라가려다가, 발을 멈췄다. J가 내 얼굴을 보고도 누구냐고 묻는다면 죽을 때까지 J를 원망하게 될 것 같았다. 낙엽 밟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더 높은 곳으로 오르는 J를 뒤로한 채 나는 미끄러지듯 아래로 내려갔다.

 

목에 걸린 카메라는 돌에도 부딪히고 나무에도 부딪혔다. 종아리와 손등엔 상처가 났고 흰 블라우스와 회색 치마엔 흙이 잔뜩 묻었다. 노란 빛이 감돌더니 차갑고 어두운 공기가 산 속을 서서히 채워나갔다. 시계가 없어 몇시인지 알 수 없었다. 졸업앨범은 이미 다 찍었을 것이고, 그 속에 나와 J는 없을 것이었다.

산을 내려오면서 길을 잃었다. 올라간 만큼 내려온 것 같은데도 학교 쪽문은 나타나지 않았다. 무서웠다.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며 무작정 아래로 내려가면서, 누구냐고 묻던 J의 목소리를 몇번이나 곱씹었다. 산길을 헤매다가 혹시라도 J와 마주칠까 겁이 났다. 처음 보는 사람처럼 내 곁을 지나쳐버릴 그애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달아올랐다. 씨발 존나 사랑한다던 삼년 전의 장난 섞인 목소리도 떠올랐다. 그 말을 그런 식으로밖에 할 수 없었던 마음이 이해될 것 같았다. 어쩌면 나를 좋아했던 건 Y가 아니라, Y와 나를 놀리는 방법으로 사랑이란 단어를 입에 올렸던 그애였는지도 모른다.

한참을 걷다가 가로등을 발견했다. 조금 더 걸으니 골목이 나왔다. 골목을 돌아 아래로 내려가자 학교 정문이 보였다. 그곳에 Y가 있었다. 멍청하게 서 있던 Y는 정문이 아니라 윗동네에서 걸어오는 나를 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왜 하필 너야. Y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왜 하필 너냐고. 처음 보는 사람처럼 Y를 지나쳐 학교로 들어가면서 나는 계속 중얼거렸다.

 

*

 

오늘은 나의 스물아홉번째 생일이다. 이십대의 마지막 생일이니 죽을 만큼 먹고 마시자는 친구들을 따돌린 채 옛 애인의 집에 가는 길이다. 그의 집에서 꼭 찾아올 것이 있다. 미숙해서 더욱 생기롭던 십대 후반과 이십대 초반에 나는 많은 ‘처음’을 만났다. 첫경험. 첫키스. 첫사랑. 이십대 중반을 넘어가면서 ‘첫’이란 글자는 직장이나 월급, 통장, 집 같은 것에만 붙었다.

내가 찾아와야 할 것은 한장의 사진이다. 지난 연인들이 나의 첫사랑을 궁금해할 때마다 나는 십년 전 가을, 무턱대고 찍었던 스물넉장의 사진 중 하나를 주며 그것이 내 사랑의 원형이라 말하곤 했다. 그 사진 속엔 여러가지가 담겨 있다. 파란 하늘. 마른 나뭇잎. 죽어가는 나무. 따뜻한 햇살. 서늘한 바람. 메마른 냄새. 느슨한 대화와 삼삼오오 모여 있는 아이들. 그리고 가장 먼 곳에, J의 희미한 뒷모습이 있다.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그날의 냄새와 공기와 바람을 모두 느낀다. 붕붕 떠오를 것 같던 몸과 끊임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시선. J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는다. 뒷모습만 생각날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지금도 종종 J와 비슷한 뒷모습을 보면 한없이 따라간다. 걷는 대로 길이 만들어지는 산 속을 헤매는 기분이고, 그러다 누군가를 만나면 왜 하필 너냐고 따지고 싶어진다. J의 아름다운 미소에 반했던 그때. 혼자 울던 J를 망연히 쳐다보던 그 밤. J의 뒷모습을 찾아 셔터를 누르던 그 순간마다 내 사랑은 완성되었다.

나는 J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J도 내 목소리를 모를 것이다. 우린 한마디 대화도 나눠본 적 없으니까. 졸업 후 이년이 흘러서야 나는 졸업앨범을 들춰볼 수 있었다. J를 생각나게 하는 그 무엇도 보거나 만질 수 없던 시간이었다. 졸업앨범을 꺼내들자마자 우리 반 단체사진부터 펼쳐보았다. 그 안에 나는 없었지만, J는 있었다. 하얀 블라우스와 잿빛 치마를 입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띤 채. 그날, 찬란한 오후와 쓸쓸한 해질녘. 나는 무엇을 따라 그 가파른 산을 올랐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