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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커먼즈와 공공성: 공동의 삶을 위하여

 

젠트리피케이션 넘어서기

사유에서 공유로

 

 

전은호 田恩浩

토지+자유연구소 시민자산화지원센터장. 공저 『99%를 위한 주거』, 공번역서 『전환의키워드, 회복력』이 있음. unochun@gmail.com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본래는 낙후지역이 활성화되는 현상을 가리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소위 ‘핫 플레이스’나 ‘뜨는 동네’라 불리는 상업적 공간에서 쫓겨나거나 전월세 가격의 상승으로 거주지를 이동하게 되는 일련의 둥지 내몰림 현상 자체를 부르는 용어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사유재산의 권한 행사가 앞서고, 장소를 빌려 사용하는 이들의 비자발적이고 강제적인 이주가 뒤따르는 과정에서 국가와 지역(장소)은 별다른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발생한 가치를 소유자가 상당 부분 독점하면서 사회적 비용이 과도하게 발생한다는 점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재산 소유권의 힘, 지대(地代)로 표현되는 공간가치가 만들어지는 구조, 그 가치가 순환되는 구조의 왜곡, 그 왜곡을 정당화하는 권력관계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 낱낱이 드러나는 경험이다. 공간에서 내몰리는 과정에서 공간가치의 생성과 순환의 구조를 결정하는 체제를 조정하는 것은 소유하는 주체이며 이들의 행위를 보장하는 역할을 맡은 국가는 현재의 욕구구조를 견고하게 유지하는 역할에 치우쳐 있다. 하지만 공간가치를 만들어가는 주체는 소유권을 가진 이와 공간을 기반으로 생산하고 이용하는 이 둘 다이다. 이들의 사회적 관계와 자원의 소통이 공간가치를 변화시키고, 또한 공공의 기반시설과 정책자원이 가치의 토대를 구성하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공동체가 공간가치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하바드 케네디스쿨의 퀸턴 메인(Quinton Mayne) 교수는 “젠트리피케이션이 만약 불가피하다면 도시정책학 과정의 학생들을 가르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그의 목표는 “학생들이 젠트리피케이션이 복잡하고 날선 이슈라는 것을 이해하고, 복잡한 문제를 구성하는 ‘구조’를 깰 수 있도록 희망을 주는 것이며, 젠트리피케이션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하는 것”이다.1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보자는 이야기다.

젠트리피케이션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우리는 ‘함께 만든 가치’와 ‘함께 공유’를 이야기하고 ‘함께’라는 것을 행하는 주체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그리고 그 ‘함께’하는 주체가 가치를 만들고 공유하는 관계와 기술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이야기하는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잃어버린 주체와 관계 그리고 기술을 회복하고 다시 창조해내는 이 과정은 개인과 개인, 개인과 국가의 구조를 넘어선 제3의 지대가 어딘가에 존재하리라는 어렴풋한 기대를 동반한다. 마이클 쌘델(Michael Sandel)도 그런 의미에서 개인과 국가를 넘어선 ‘공동체’와 ‘자산’의 관계를 언급한 바 있다.

 

전체적으로 공동체는 지역의 자연적 자산과 거기에서 생겨나는 이득을 가질 자격이 있기 때문에, 사회는 개인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제도 이전의 (선험적) 지위를 갖는다고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 까닭은 이런 식으로 접근해야만 공동체가 자기네들의 자산을 소유한다고 일컬을 수 있기 때문인데, 여기서 소유는 응분의 몫을 위한 기초에 반드시 필요한 강력한 구성요소라는 의미를 지닌다.2

 

 

공동체, 국가와 개인을 넘어

 

아마도 오늘날의 목표는 우리의 현재 상태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재 상태를 거부하는 것이다. 우리는 근대 권력구조의 동시적인 개인화와 전체화라는 정치적 ‘이중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우리가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쌓아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 결론은, 우리 시대의 개인을 해방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국가에 결부된 유형의 개인화의 두가지 모두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는 지난 몇 세기 동안 우리에게 부하되어온 이런 종류의 개인화를 거부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주체성을 세워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3

 

젠트리피케이션은 개인과 개인, 개인과 국가의 관계만으로 해소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장소를 기반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공동체가 가치를 함께 만들고 있다는 자각의 부재와, 함께 만든 가치를 공유하는 기술의 부재가 결합되어 나타나는 문제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립적인 공동체의 구성요건들이 형성되어야 하며 나아가 새로운 기술들이 출현해주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안승준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되짚으며 “계급의 형성과 국가의 조정이 지역공동체들의 자치를 파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지적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생산과정에 스스로 참여하는 것으로부터 공동체의 형성은 시작되므로, 공동체 형성을 위한 새로운 기술은 개인과 공동체가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 바탕을 두어야 하며, 자립적인 공동체들 안에서 자유로운 개인들을 발전시키는 것이어야 하고, 생활 속의 의사결정에 개인들이 참여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사회 전체 속의 특이성과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국가의 권력구조를 넘어서는 일이자 개인들을 대상화하는 도구적 합리성을 극복하는 길이라는 주장이다.4

다시 말해서, 개인의 자유성이 보장된 자립적인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것은 기존의 국가개입 방식으로는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에서 공동체로 이행경로를 만들어내야 한다. 우리 사회에는 개인의 욕구구조를 견고하게 유지시켜주는 도구로 사적 재산권의 권한이 법률로 엄격하게 보장되어 있다. 사용, 수익, 처분에 대한 독점적 권한이 개인에게 부여되면서 공동체가 아닌 개인들이 가치를 독점하는 생산구조를 형성함에 따라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현상에 공동체적 대응이 쉽지 않다. 네그리(A. Negri)와 하트(M. Hardt)도 ‘공통적인 것’, 곧 커먼즈(commons)를 지키려는 다중의 사회적 투쟁은 바로 이 사유화, 사적 통제에 대한 저항이라고 말한다.5 흔히 사람들은 사유화, 소유, 사적 통제의 대안선택지로 공적인 통제와 국가통제를 이야기한다. 자본주의사회 병폐의 유일한 치료제는 공적 규제와 케인즈주의적 국가개입 또는 사회주의적 경제관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논리로 사회주의적 폐해를 바로잡는 건 사적 소유와 자본주의적 통제뿐이라고 얘기한다. 네그리와 하트는 이 사적이냐 공적이냐, 또는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의 정치적 양자택일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생각을 거부하면서, 양자 모두 커먼즈를 배제하고 파괴하는 소유체제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서 커먼즈를 확보하고 생성하는 소유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를 좀더 구체적으로 분석해 기존 소유구조의 한계를 지적한 이가 마저리 켈리(Marjorie Kelly)다. 공생하는 사회를 위한 대안적 소유구조를 제안하는 켈리는 소유의 성격을 ‘추출적 소유’(extractive ownership)와 ‘생성적 소유’(generative ownership)로 구분한다.6

 

표1. 소유구조에 따른 차이점(출처: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 25면)

표1. 소유구조에 따른 차이점(출처: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 25면)

 

켈리는 소유의 구조를 생성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은 혁명에 가까우며 이러한 “소유혁명은 경제권력을 소수의 손에서 다수의 손으로 확대하려는 것이며, 사회적으로 무관심하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사회적 유익에 관심을 기울이게 하려는 것”이어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녀도 안승준이나 네그리·하트와 마찬가지로 “소유한다는 것, 자본주의에서의 사유와 사회주의에서의 국유는 결국 ‘소수’에 의한 지배라는 차원에서 큰 차이가 없다. ‘소유’가 권한을 가지고 ‘지배’를 해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안에 ‘속한다’(belonging)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때 진정한 변화가 시작된다”7면서 국유와 사유를 뛰어넘는 소유, 즉 공유(共有)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한다. 특히 소속감을 느끼게 하는 소유의 역할에 대한 강조가 눈에 띈다.

미국에서 커먼즈 구축 및 확산 운동을 하는 비영리조직 ‘온더커먼즈’(On the Commons)는 커먼즈의 기본 원칙들을 설명한다. 우선 핵심가치는 형평성(equity),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이다. 또한 커먼즈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원칙으로 소속감(belonging), 책임감(responsibility), 거버넌스(governance), 공동창조(co-producing)를 강조한다. 무엇보다 함께 소유하는 구조를 만듦으로써 개개인이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며, 소유함에 따르는 책임감을 갖는 것, 의사결정구조에 함께 참여하는 것, 기획하고 실행하고 공유하는 일련의 경제활동에 공동생산자로 역할을 하는 것 등이 공유재를 만드는 이유이자 과정의 중요성이라고 할 수 있다.

네그리와 하트는 ‘다중의 군주 되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회구성원 대다수가 함께 다중을 형성하고, 그 다중이 공동체로 무리지어 함께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안은 바로 공통적인 것의 회복이다. “공통적인 것은 개방적 접근과 집단적이고 민주적인 결정 및 자주관리로 정의되는 부의 한 형태, 또는 그런 부를 관리하는 하나의 방식”8이다. 이것은 자생적으로 조직되지 않기 때문에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불러일으키는 자본주의 지배구조와 욕구구조는 저절로 무너지지 않는다. 다중의 군주 되기를 통하여 변화를 만들어내야 하며 변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그 변화와 관리의 정치적 주체를 창출하는 일, “공통의 것의 관리에 적합한 집단적 자치형식의 발명”,9 새로운 공유기술의 재구성이 요구된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대응하려는 시도

 

공동체가 필요와 장소를 기반으로 하여 형성될 때 협력적인 거버넌스와 공동창조의 구조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소유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목적을 달성한 이후의 지속 가능성과 민주적 운영관리에서 한계가 나타날 수 있다. 공동체 소유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보다 우리가 지금 함께 소유해야 하는 이유를 공감해내고, 동참하는 구성원들을 장소를 기반으로 결속력 있는 조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주요한 전략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공유구조를 만들어내는 기술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익숙지 않은 것들이다. 전통적인 두레・계 등의 공동체 기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기도 하고, 시대 흐름에 대응한 공유기술의 발전이 동반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회문화적 환경과 제도의 미비는 기술 발전에 장애요인이다.

‘함께’ 만들어낸 공간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공유’되지 못한 채 유통되고 있다는 점이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의 핵심이다. 함께 만든 가치의 공동소유를 가능하게 하는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가? 새로운 주체는 어떻게 등장하는가? 이해관계자 간의 관계 형성은 열려 있고 확대되고 있는가? 공유의 기술이 구체적으로 만들어졌는가? 등과 같은 질문들을 통해 우리 주위의 대응 사례들이 이러한 이슈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함께 만든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으로 공동체 자산화에서 시사점을 도출해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은 문화예술, 상점가, 혁신계층 집적지 등에서 발생하다보니 해법도 대체로 관련 지역을 중심으로 논의된다. 그것은 지역공동체 단위의 협약, 자치구 단위의 제도 마련, 광역 단위의 정책 제시, 중앙정부 단위의 제도 개선 등으로 시도되고 있다.

협약의 사례로는 대표적으로 서울 신촌 지역 건물주-주민자치조직-자치구 간의 상생협약이 있다. 이화여대 골목상권이 젠트리피케이션의 영향으로 몰락하면서 유휴점포 소유주들과 서대문구가 상생협약을 체결(2015.9.16)했다. 건물주는 5년간 임대료·보증금을 동결하고, 서대문구는 임차료 인상 및 이주에 대한 걱정 없이 창작·판매 활동을 지속적으로 보장해주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며, 주민자치조직이라 할 수 있는 문화활력생산기지는 공방 예술인과 청년 창업자 등 임차인을 적극 발굴해 유휴 공실에 입점할 수 있도록 연계하는 데 노력하기로 했다. 핵심은 이대 골목의 가치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것을 공감하는 가운데 그 가치를 건물주가 임차료 상승으로 실현하지 않고 임차인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식으로 공유하기로 협약했다는 데 있다. 지역이 나서서 임대료를 동결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나 아쉬운 것은 5년의 협약기한 효과 이후 지속 가능한 가치공유 시스템이 부재하고, 협약 당시의 ‘우리’가 5년 후에는 어떻게 변할지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자치구 차원에서 상생조례를 제정해 젠트리피케이션에 대응하는 움직임도 있다. 성동구에서 젠트리피케이션 발생지로 알려진 성수동은 2012년부터 젊은 예술가와 비영리단체, 사회적 기업이 하나둘 둥지를 틀면서 ‘뜨는 동네’가 되었고 그 결과 임대료가 급격하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성동구는 여느 지자체와는 달리 이러한 현상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자구책을 마련했다. 구는 ‘성동구 지역공동체 상호협력 및 지속가능 발전구역 지정에 관한 조례’를 제정(2015.9.24)하고 ‘지속가능 발전구역’을 지정해 자치조직인 주민협의체를 구성하여 외부에서 들어오는 입점업체를 선별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지역상권에 중대한 해를 입히거나 입힐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업소는 사업을 시작할 때 주민협의체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등 사전 예방조치들을 강화하고 있다. 장기안심상가 조성 등 상인들의 안정적인 삶터 마련을 위한 물리적 공간을 조성하려는 노력도 함께 기울이고 있다. 공공이 앞장서서 제도를 구축하고 지역공동체 주도로 진입장벽을 두어 젠트리피케이션의 발생 가능성을 예방해주었다는 차원에서 의미있는 시도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주민 주도성이 어떻게 발현되게 할 것인지를 비롯하여, ‘함께 만들어가는 가치의 공유’라는 차원에서는 앞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도 남아 있다. 성동구는 앞으로의 지역개발사업에서 발생한 공공기여 부분을 활용해 자산화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도 주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하고 소속감을 갖게 하며 책임성을 부여해줄 수 있을지, 그리고 주민 출・투자의 가능성도 실험해볼 수 있을지 지켜볼 대목이다.

광역 차원에서 서울시는 젠트리피케이션 종합대책(2015.11.23)을 발표하면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역발전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그 개발이익이 골고루 돌아가는 시스템을 만들고, 지역 구성원들이 모두 상생하는 길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개발이익이 건물소유자와 상업자본에만 돌아가는 것은 우리 사회의 정의관념에 반하고 궁극적으로는 도시의 다양성과 지속 가능성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는 만큼 시가 종합대책을 통해 최선을 다해 지원해나가겠다”고 하였다. ‘정의관념에 기반한 지역발전 이익의 공유’라는 표현은 시스템 전환을 위한 중요한 메시지이며 광역 단위에서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은 무척이나 고무적이다. 대책의 핵심 요소들은 상생협약 체결, 핵심시설 공급, 안심상가, 소상인자산화, 도시계획 수단을 이용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대책 마련 등이다. 하지만 주체 부분에서 가치를 함께 만들어가는 이해관계자(stakeholder)를 확대해가려는 노력들은 보이나 가치를 공유해가야 하는 지분공유자(shareholder)로 주민을 등장시키는 것이 궁극적인 해법이 될 텐데 아직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상호관계에 있어서는 공공과 건물주 간의 관계를 넘어서 시민-이용자들까지 참여폭이 확장되지 못한 점이 아쉬운 대목이다. 그리고 새로운 공유기술의 출현을 기대하는 측면에서는 공공과 시민(주민)이 사회적으로 형성될/된 지분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는 생산수단의 소유가 사회적(지역적·민주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이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전략이 제시되지 않은 점도 아쉽다.

서울시의 젠트리피케이션 대응방안 중 자산화의 취지로 추진 중인 소상공인 자산화 정책의 경우에도 주체를 공동체로 확대하지 못하고 상인에 한정한 점, 관계성을 시와 상인의 관계로만 설정하고 이용자와 지역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참여의 기회를 열지 못한 점, 공유의 기술적 측면에서 기존의 사유화 구조를 넘어서 공유화 구조로 나아가지 못한 점 등이 한계라 할 수 있다. 만약 새로운 주체와 관계성에 기반한 공유기술의 구현을 모색했더라면, 새로운 정부가 추진하는 도시재생뉴딜사업의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대안으로 적극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지역공동체가 공유자산을 형성하는 주체로 등장하는 것이 방법이며, 민-관-지역공동체 간의 협력적인 거버넌스를 구성해 민주적인 의사결정과 가치공유가 가능하도록 조직화 방안을 구체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자산화를 위한 구체적인 법인화와 지속 가능한 운영관리기술이 구조화되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해결과 관련한 다양한 시도들 속에서 부족한 것은 지역공동체 기반의 주도적 대응방안과 전략들이 모색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상을 막는 정도가 우리 사회가 만들어낼 수 있는 실험의 한계인가 하는 의문도 남는다. 그렇다고 지역공동체에만 책임을 지울 수 없는 이유는 우리 사회의 급격하게 기울어진 자산구조(하위 50%의 국민이 전체 부의 2% 소유)와 더불어 소득불평등(상하위 10%의 소득수준이 28배 차이) 구조 속에서 지역공동체의 자발적 노력만으로는 ‘함께 만든 가치의 공유’ 구조를 만들어가기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지역공동체 구성원들의 자발적 노력과 더불어 공공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공유기술의 재구성

 

‘공유’에 대한 주장이 담론 수준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공유’의 경험을 일상화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기 때문에, 규모화 이전에 작지만 원형에 가까운 실험들을 해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떤 경험이 공동체의 젠트리피케이션 대응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가? 우리보다 앞서 공유의 기술들을 적용한 사례를 참고로 공유기술의 재구성을 모색해보자.

2015년 시카고 일리노이대학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대한 단계별 대응방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표2. 젠트리피케이션 단계별 대응전략. (출처: Nathalie P. Voorhees Center for Neighborhood  and Community Improvement, 2015 요약. 최명식 외 「젠트리피케이션 대응을 위한 지역토지자산 공유방안 연구」, 국토연구원 2016에서 재인용.)

표2. 젠트리피케이션 단계별 대응전략. (출처: Nathalie P. Voorhees Center for Neighborhood and Community Improvement, 2015 요약. 최명식 외 「젠트리피케이션 대응을 위한 지역토지자산 공유방안 연구」, 국토연구원 2016에서 재인용.)

 

 

젠트리피케이션 대응전략 중 사전단계의 주요한 전략은 ‘공동체 자산화’이다. 이 전략은 사전에 공동체가 자산을 공유함으로써 향후 전개되는 공간의 변화를 공동체 스스로 컨트롤하고, 이익을 독점적으로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공동체를 위해 공유하는 구조를 만듦으로써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을 구현하는 기술로 대표적인 것이 공동체토지신탁, 협동조합, 지역개발법인, 지역이익회사, 지역개발주식회사, 개발신탁 등이다.

공동체토지신탁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비영리조직이 토지를 영구히 소유하면서 지불 가능성을 지속시켜주는 역할을 하며, 주로 주거공급 수단으로 활용된다. 공동체토지신탁의 주요 특징은 ①지역의 장소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 조직, ②사익을 추구하지 않는 비영리기구, ③토지와 건물의 소유권 분리를 통한 운영, ④토지의 장기간 임대(99년간), ⑤지불 가능한 임대료와 환매 규제를 통한 지불 가능성의 영구적인 보장, ⑥실거주자 중심의 관리·운영, ⑦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의사결정 거버넌스, ⑧지속적인 토지 확보와 유연한 개발 등으로 요약된다.10

협동조합을 통한 자산화의 사례로는 미국 노스이스트부동산투자협동조합(NorthEast Investment Cooperative)이 있다. NEIC는 미국에서도 드문 사례로, 미네아폴리스의 지역주민 250여명이 1000달러(약 110만원)씩 출자하고 마을의 빈 건물을 매입해서 자전거가게, 빵집, 동네주점 등을 입점시켜 지역상권을 살리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지역 기반 경제 활성화를 이루어내는 토대를 만들고 있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빈 공간이 발생하면 마을협동조합의 자산으로 확보하고, 그 활동은 사회적 성과로 인정받아 민간재단으로부터 기금을 받기도 한다. 이렇게 지역공동체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자산을 공유하는 구조를 만들어내면 임대료의 통제가 공동체 주도로 이루어지며, 토지에서 발생하는 가치의 활용처를 공동체 주도로 결정하고 이익을 주주들에게 배당하기도 하면서 가치공유기술을 구현해낼 수 있게 된다.

이외에도 주식회사 형태의 개발방식을 활용해 자산을 공동체화한 사례도 있다. 쌘디에이고 다이아몬드 지역(Diamond Neighborhood)의 마켓크릭몰(Market Creek Mall)은 제이콥스 가족 재단(Jacobs Family Foundation)의 주도로 지역개발주식공모(CDIPO) 방식을 통해 주민들과 재단이 공동으로 출자해 상가를 개발하고 주민을 고용했다. 아울러 향후 상가를 지역공동체의 주민들이 소유할 수 있도록 리더십·오너십과 관련한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개발 10주년이 되는 2018년 지역주민들이 마켓크릭몰의 대주주가 될 수 있도록 지분을 더 개방하는 것이다. 공동체 구성원들이 지역 공간자산의 주인이 되면 건물주와 세입자가 공동생산 구조를 자연스럽게 형성하고 함께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어가면서 지속 가능한 운명공동체가 조직된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우리만의 공유의 기술을 구성해야

 

국유와 사유를 넘어 ‘공유’의 구조가 확립된다면 젠트리피케이션과 같이 공간의 소유구조가 왜곡되는 현상을 방지하고 가치를 선순환시키는 긍정적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앞에서 본 해외 사례들의 구조를 바로 적용하는 데에는 제도적 한계와 사회문화적 경험의 부재로 인한 어려움들이 상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우리는 공간자산의 민주적 소유구조를 만들어내는 일을 더이상 늦출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도시재생뉴딜사업이 수십조원의 예산이 투여돼 추진될 예정에 있고, 사회적 경제, 마을공동체의 활성화는 더 적극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공간 토대가 어떻게 형성되는가는 재생, 마을, 사회적 경제 등 우리 사회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사업들의 성공 가능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기반이다. ‘시민자산화’ ‘지역자산화’ ‘공동체자산화’ 등과 같은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자산화’의 필요성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하다.

공유는 개념을 넘어 행위로 구현되어야 의미가 있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역공동체 차원에서 커먼즈를 만들어야 하는 필요와, 그 주체들이 등장할 시에 이를 조직화하고 연대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둘째, 토지를 시장과 국가에서 분리해 지역공동체 차원에서 컨트롤할 수 있는 가칭 공유자산신탁(Common Asset Trust)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다양한 형태의 자본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지역 기반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공유자산을 형성하고 개발하는 데 필요한 자본을 모으는 일이며 향후 개발의 가치를 공유할 때 분배의 구조를 짜는 기준이 되는 일로 지역 기반 금융구조를 형성하는 것이다. 또한 이 구조에 공공기금과 사회투자, 착한 민간자본의 결합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 역시 가칭 ‘공유자산펀드’로 이름 지을 수 있다. 넷째, 커먼즈를 개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지역 기반의 개발(관리)조직을 형성하는 일이다. 최근 지역재생회사, 지역관리기업 등의 용어로 현장에서 필요성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조직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커먼즈 관리조직’이라 부를 수 있다. 다섯째, 신탁-투자-개발-관리 등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한 지원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관련 교육, 법제도 개선, 행정·재정 지원 등을 위한 기반으로 관련 부서 및 지원조직(가칭 ‘커먼즈 지원센터’)을 만들어야 한다.11

‘기술’이 필요하다. 자치적 도구가 필요하다. 이러한 전략이 지역을 기반으로 주민 주도적으로 발전해간다면 부의 집단적 자치구조가 형성되어 커먼즈의 원칙인 소속감, 책임감, 거버넌스, 공동창조의 방식이 구현될 수 있고 형평성, 지속 가능성, 상호 호혜성이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땅을 딛고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직접 주체가 되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함께 만든 것이기에 누구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대안을 모색하는 일에서도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역공동체 차원에서 공간을 재구성하고 활성화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일어나고, 주민의 참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인식되고 그 주도성이 더욱 강화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역공동체의 개입과 소유권의 확대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며 이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현상을 긍정적으로 작동시킬 수 있는, 구조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구조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단순한 물리적 소유를 넘어서 ‘함께 만든 가치를 공유’하는 것은 주민들이 지역의 가치를 누릴 권리와 함께, 그것을 만들어가는 책임을 ‘공유’하는 일이다.

앞서 보았듯 우리 사회에도 젠트리피케이션 현상과 함께 커먼즈의 필요성이 조용히 대두되면서 협력적 소유구조의 장점에 대한 인식전환의 움직임들이 감지되고 있다. 아직은 미비하지만 이러한 움직임들이 모이다보면 우리 사회의 구조는 조금씩 변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만든 가치의 공유’를 경험하는 일이 먼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어쩌면 젠트리피케이션은 우리 사회의 공동체 회복을 위한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함께해야’(commoning)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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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eanne Haffner, “Is the gentrification of cities inevitable and inevitably bad?,” The Guardian 2016.1.16.
  2. Michael Sandel, Liberalism and the Limits of Justic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8. 가 알페로비츠 외 『독식 비판』, 원용찬 옮김, 민음사 2011, 187면에서 재인용.
  3. Michel Foucault, “The Subject and Power,” Critical Inquiry 8, no. 4 (Summer, 1982). 안승준 『국가에서 공동체로』, 환경운동연합 1995, 70면에서 재인용.
  4. 같은 책 106~10면.
  5.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공통체』, 정남영・윤영광 옮김, 사월의책 2014.
  6. 마조리 켈리 『그들은 왜 회사의 주인이 되었나』, 제현주 옮김, 북돋움 2013.
  7. 같은 책 193면.
  8.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앞의 책 10면.
  9. 같은 책 12면.
  10. 이순자·전은호 「해외 공동체토지신탁 제도 현황과 시사점」, 『국토브리프』 제392호(2012) 4면.
  11. 신현방 외 『젠트리피케이션, 무엇을 할 것인가?』, 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