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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남북경협 사업의 새 활로

B2B 플랫폼 구축을 통한 경협 활성화 방안

 

 

최용섭 崔鎔燮

선문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논문 「Overcoming the Division Bloc and Its Limitations」, 저서 『재벌을 위해 당신이 희생한 15가지』 등이 있음.

willphin@gmail.com

 

* 이 글은 통일부 지원 연구인 『비핵화 진행에 따른 북한 경제발전 경로 전망 및 정책 과제』에서 필자가 작성한 내용을 수정 및 보완한 글이다.

 

 

1. 들어가면서

 

기존의 남북 경제협력(이하 남북경협)은 시장성보다 한민족 간 협력이라는 당위성이 강조되면서 정부가 남북경협 사업 전반에 깊숙이 개입하였으며 민간의 자율성을 크게 제약했다. 또한 북한은 남한과의 경제교류가 북한체제를 위태롭게 하지 않을까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면서 ‘모기장 정책’에 입각해 남북경협에 참여하는 경제주체들을 소수에 그치도록 했고 지역적으로도 주요 사업을 평양, 남포 및 그 근방이나 금강산, 개성 등 접경지역 위주로 제한했다. 그 결과 남북경협의 효율성 및 파급효과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이런 문제들에 더해 이 글에서는 특히 기존 남북경협이 정부 주도로 상당 부분 국민의 세금을 재원으로 추진되었지만, 실제 한국 경제에 끼친 영향은 지극히 적었음에 주목한다. 예컨대 남북경협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시기 중 한해인 2006년 경우를 보면 남북경협이 북한의 대외무역에서 차지한 비중은 약 31퍼센트였던 반면, 한국의 대외무역에서 차지한 비중은 약 0.0002퍼센트에 불과했다. 또한 위탁가공 교역 및 개성공단 등의 협력사업에 참여한 한국 기업의 수가 매우 적었기 때문에 남북경협을 통해 수익이 어느 정도 발생했다고는 하지만 그 수혜자는 지극히 한정적이었다.

남북경협을 통해 북한은 물론 한국 역시 부유한 나라로 만들고 이를 매개로 통일을 앞당기는 것은 분단 이후 수십년 동안 계속되어온 많은 이들의 소망이었으나, 1998년 이후 남북경협이 본격화된 상황에 이르러 현실은 기대치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1980년대 이래로 심화된 남북한 간 산업구조의 차이, 경제발전 단계의 격차 등으로 말미암아 한국이 북한과의 경제협력으로 얻을 수 있었던 경제적 이익이 기대보다 훨씬 작아진 것이다. 이는 일반 국민에게 남북경협은 상호호혜적인 거래가 아니라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시혜라는 인식을 심어주었고 특히 보수 지지층을 중심으로 부정적 평가가 확산되었다.

현재의 남북경협 관련 논의 및 연구의 문제점 중 하나는 무엇보다 새롭지 않다는 점에 있다. 즉, 주변 환경의 급변에도 불구하고 과거 2000년대 초의 프레임과 내용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1 이에 대해 필자는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일환으로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유기적인 연계를 통해 남북한 모두의 경제발전을 도모하는 남북경협 사업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이 글에서는 시장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북한 내 시장 기반 남북경협의 파급효과를 극대화하며, 한국 내 혁신 기반 경제성장과 남북경협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B2B(Business-to-Business) 플랫폼을 매개로 하는 남북경협 사업을 제안한다.

 

 

2. B2B 플랫폼을 통한 남북경협

 

B2B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상거래는 기업과 기업이 거래 주체가 되어 하나의 플랫폼에 다수의 판매자 및 구매자가 접속하여 거래하는 방식이다. 가장 잘 알려진 B2B 플랫폼인 알리바바(Alibaba)로 예를 들어보면, 만약 한국의 한 기업이 한국 및 해외 시장에 판매할 무선 이어폰을 만들어줄 중국 제조업체를 찾고자 할 경우 알리바바(www.alibaba.com)의 검색창에 wireless earphones를 입력하면 된다. 필자가 검색해본 결과 2021년 4월 3일 기준으로 111,472개의 제품이 검색되었다. 이제 여기에서 마음에 드는 제품과 가격을 확인한 후 이미지를 클릭하면 제품 및 해당 업체에 대한 보다 상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계약하고자 하는 업체가 있으면 제공된 연락처로 연락하고, 이후 해당 계약을 진행하면 된다. 보통은 여러 업체와 접촉하면서 각각의 조건을 비교·검토한 후 한 곳을 선택한다.

가칭 ‘남북 B2B플랫폼회사’의 B2B 플랫폼 역시 검색을 통해 남북한 업체 간 서로의 사업파트너를 찾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기존 기업이나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고자 하는 개인이 고유한 디자인이 들어간 가방을 만들어줄 북한 제조업체를 찾고자 할 때 B2B 플랫폼 상의 검색만으로 쉽게 이를 찾을 수 있고 이후 해당 계약을 진행할 수 있다. 북한 기업 및 개인 역시 마찬가지로 B2B 플랫폼이 제공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한국 기업과 연락하여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다. 예컨대 한 북한 기업이 다년간의 위탁가공 생산 경험으로 가방을 잘 제작할 수 있는 경우, B2B 플랫폼에 등록된 한국의 가방 판매업체에 연락해 합영·합작 추진 여부를 타진할 수 있다.

B2B 플랫폼을 통한 기업 간 연결이 알리바바에 의해 처음 시도된 것은 아니지만 알리바바가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둔 이유 중 하나는 무엇보다 중국과 타 국가의 생산단가 차이에 있다. 중국의 값싼 생산비, 그리고 이에 따른 낮은 생산단가는 세계 각국에서 너도나도 알리바바를 매개로 중국의 생산시설에 접촉, 이를 통해 자신의 사업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것을 가능하도록 했다. 세계 각지의 소규모 기업 및 개인 역시 알리바바를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적은 자본금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고 또한 높은 마진율 덕택으로 많은 이익을 거둘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도 알리바바와 같은 B2B 플랫폼을 통해 창업을 활성화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국내 생산업체가 충분한 판매 마진율을 담보할 만큼 낮은 생산단가를 제공할 수 없었기 때문에 활성화되지 못했다. 어떤 사업(희망)자가 기존과는 다른 부가가치를 줄 수 있는 새로운 제품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고 이를 구현해줄 생산업체를 B2B 플랫폼을 통해 찾으려 해도 생산업체들이 모두 (경쟁력 있다고 판단되는 가격에 비해) 높은 생산단가를 제시한다면 해당 사업에 뛰어들기 어렵다. 즉 B2B 시장의 활성화, 그리고 이를 통한 ‘창업의 일상화’는 생산단가가 주요 관건이 된다. 이러한 이유로 생산비가 중국 및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해 저렴하지 않은 한국 내에서는 B2B 시장 활성화가 용이하지 않다.

북한의 제조업체들과 B2B 플랫폼을 매개로 파트너십이 맺어지는 경우 낮은 생산단가를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기업 및 개인이 손쉽게 그 구상을 현실화하여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남북경협은 선택받은 소수만이 참여하는 사업이고, 일반인이 뛰어들기에는 문턱이 너무 높다는 현재의 ‘상식’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3. 북한 내 B2B 생태계

 

B2B 플랫폼을 통한 남북경협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단지 이 플랫폼을 통한 거래 자체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의 인프라가 하나의 B2B 생태계로 구축되어야 한다. 물론 대북제재의 완화 및 해제 이후 남북경협과 외국의 대북투자가 활성화되고 나면 북한 내 관련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겠지만, 우리는 무작정 그것을 기다리기보다 현재 북한의 제반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이를 B2B 생태계로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아래에서는 B2B 생태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참여)기업, 물류, 결제, 그리고 통신망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자 한다.

 

(1) 기업: 돈주가 주도하는 시장 기반 창업의 활성화

현재 북한에서는 시장화의 급진전으로 인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장 기반의 경제활동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돈주’라고 불리는 개인자본가는 대부업뿐 아니라 국가 소유의 시설을 빌리고 직접 인력을 고용해 물품을 만드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시장 기반의 경제활동을 이끌고 있다. 2015년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식당의 약 65퍼센트, 상점의 약 57퍼센트, 지방산업공장의 약 26퍼센트, 중앙공업공장의 약 21퍼센트를 돈주가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돈주가 북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김정은 위원장 집권 시기에 더욱 높아졌는데, 평양의 창전거리, 은하과학자거리, 위성과학자주택지구, 미래과학자거리, 여명거리 등도 돈주들이 국가기관의 명의를 빌려 투자하고, 중국에서 신속하게 건축자재를 조달하여 이른 시일 내에 완공해냈다고 한다.2

B2B 플랫폼을 통한 남북경협이 시작되면 북한 내 고위관리들이 직간접적으로 운영하는 기업들에서 먼저 관심을 보이겠지만 이들의 수는 많지 않기 때문에 북한 전역 기준 파급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관건은 돈주들로, 이들은 사업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남북경협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기업과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하면 국가에 일정 이익금을 내더라도 챙길 수 있는 이익 규모가 상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평양시내 아파트단지 건설에서 보인 돈주들의 역할을 감안하면, 돈이 되는 사업에 대한 관심, 열정, 그리고 무엇보다 해당 사업을 완수하는 능력은 여느 자본주의 국가의 기업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예컨대 돈주들은 기존의 북한 내 기업을 활용하는 방식을 넘어 수익 가능성을 보고 새로 기업을 만들 수 있다. 이들은 지금까지 닦아놓은 고위층과의 연줄 및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B2B 플랫폼이 매개하는 남북경협을 북한의 경제시스템 내에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평양 미래과학자거리(연합뉴스)

평양 미래과학자거리(연합뉴스)

 

이미 북한에서도 온라인 경제활동은 낯설지 않다. 예컨대 최근 들어 (인트라넷 기반의) 온라인 쇼핑몰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현재 북한 주민들은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활용해 ‘만물상’ ‘내나라’ ‘옥류’ 등의 온라인 쇼핑몰에서 신발, 화장품, 식품, 의약품 등을 국가 중앙은행이 발행한 전자결제카드를 통해 구매하고 있고, 판매업체에 상품에 대한 문의를 남길 수 있으며, 판매업체들 사이 가격 경쟁 또한 활발하다고 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북한 당국의 주도하에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남북경협이 시작되면 돈주들은 관련 사업에 너도나도 뛰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남북경협에 참여하는 북한 기업의 수 및 사업 규모가 증가하는 것은 북한 내 시장의 확대와 궤를 같이하기 때문에, 돈주들의 활발한 남북경협 참여는 향후 북한 시장경제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B2B 플랫폼을 매개로 하는 남북경협이 활성화되면 플랫폼을 통해 직접 한국의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는 북한의 사업체들 주변에 새로운 업체들 역시 많이 만들어질 것이다. 예컨대 한국 기업과 계약한 북한 기업에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협력업체들이 생겨날 수 있고 또한 필요시 이러한 협력업체들에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소규모 업체들도 여럿 생겨날 것이다. B2B 플랫폼을 매개로 하는 남북경협이 발전하면 이러한 업체들이 북한 내 곳곳에서 생겨날 것이고, 우리는 이들을 ‘북한판 향진기업’이라고 칭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의 시장 기반 생산활동의 증진은 북한 내 시장경제 발전을 빠른 속도로 확대 및 촉진할 것이다.

 

(2) 물류: 서비차와 휴대전화의 활용

B2B 플랫폼을 통한 남북경협을 위해 장기적으로 북한의 항만·공항 시설 및 도로·철도의 현대화, 그리고 남과 북의 접경지역을 도로·철도로 잇는 프로젝트의 완성 등이 필요하지만, 단기적으로는 현 시기 북한의 운송 및 물류 인프라에 대한 적극적인 활용이 요구된다. 특히 B2B 플랫폼을 매개로 하는 남북경협은 북한의 해안선이나 남북한 접경지역과 멀리 떨어진 내륙지역 기업들과의 협력 역시 중요시하기 때문에 북한 전 지역의 운송 및 물류 인프라 현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특히 북한판 운송 및 물류 혁명을 가져온 ‘서비차’가 주목된다. 서비스와 차의 합성어인 ‘서비차’는 돈을 받고 버스, 화물차, 군용차, 오토바이, 택시 등을 통해 물건을 운반해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 등장했지만 초기에는 발전이 매우 더디다가, 2000년대 중반 이후 휴대전화의 보급이 본격화되면서 시장이 급격히 확대되었다. 현재 북한의 휴대전화 가입자는 500만명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에너지난으로 인해 제시간에 운행되지도 못하는 기차를 타고 직접 장마당을 돌아다니던 보따리상에 기대었던 북한 내 상업은 이제 자취를 감추었고, 현재는 휴대전화 주문으로 편하게 물건을 보내고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운송 및 물류 서비스를 통해 상업이 급격히 발달하고 있다.3

B2B 플랫폼을 통한 남북경협이 활성화되면 다음의 경우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북한 내 운송 및 물류 서비스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① 한국 업체가 소재·부품·장비 등을 북한 업체에 공급해야 하는 경우

② 한국 업체와 합영·합작에 나서는 북한 업체가 요구된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다른 북한 업체로부터 물품 및 서비스를 공급받는 경우

③ 북한 업체가 완성한 제품을 한국 업체에 전달하기 위해 지정된 항만이나 국경선 인근으로 운송해야 하는 경우

 

남북B2B플랫폼회사는 북한 내 관련 인프라가 완전히 구축되기 전까지 따로 운송 및 물류 업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북한 각지에 퍼져 있는 서비차 업체들을 연결하거나 제휴를 맺음으로써 운송 및 물류 수요를 소화할 수 있다. 이때 효율적인 운송 및 물류를 위해 ① 필요한 빅데이터를 구축해 이를 기반으로 소요 시간 및 비용 등을 분석하고, ② 남북경협에 참여하는 북한의 기업 및 개인에게 최적의 서비차 업체를 배치하며, ③ 담당 서비차 업체에도 관련 서비스를 최대한 그리고 신속하게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도 돈주들은 시간과 연료를 아끼기 위해 목적지까지의 최단 시간 경로를 찾고 휴대전화를 통해 운전자에게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만, 향후 한국의 자본과 기술이 투입되고 빅데이터를 축적해 활용하면 시간과 연료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

 

(3) 결제 : 안전한 결제와 품질관리의 결합

B2B 플랫폼 매개 남북경협에 참여하는 한국과 북한의 기업들 사이 결제 시스템을 만들 때, 우선 기본적으로 다른 결제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안정성이 중요하다. 남북B2B플랫폼회사가 안정성이 보장된 결제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구축하기 여의치 않은 경우 이를 우수한 기술을 보유한 국내 결제업체와 협력할 수 있다.

안정성과 함께 또 하나 유의할 사항은 이를 사기 방지 및 품질관리와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보통 B2C(Business-to-Consumer)나 C2C(Consumer-to-Consumer)에 활용되는 에스크로(escrow) 방식을 적용해볼 수 있다. 예컨대 한국 구매자가 미리 대금 결제를 하면 남북B2B플랫폼회사 또는 지정된 제삼자가 일정 기간 이를 보관하고 있다가, 북한 제조업체가 보낸 제품을 한국 구매자가 받아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품질에 만족하는 경우 북한 제조업체의 계좌에 결제 대금이 비로소 입금되는 방식이다. 단, 적어도 초기에는 한국 구매자가 제품 품질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 일방적인 환불을 허용하는 게 아니라, 남북B2B플랫폼회사 또는 지정된 제삼자가 제품 상태를 확인한 후 이를 인정하는 경우에만 환불해주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지정된 제삼자로 남북 동수로 구성된 위원회를 상정해볼 수 있으며, 여기에는 북한의 당 및 내각에서 파견된 전문인력들이 포함될 수 있다.

알리바바가 축적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신용도가 높은 업체에 여러가지 혜택을 주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북경협을 위한 B2B 플랫폼에도 남북한 기업에 대한 평가지수가 빅데이터로 축적되게 할 수 있다. 이후 예컨대 품질관리가 잘 이루어져 거래한 한국 기업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북한 기업의 경우 가산점을 부여하면서 이를 해당 기업 인터넷/인트라넷 페이지에 홍보할 수 있도록 하여 남북경협 참여 기회를 확대해주어야 한다. 반면 품질관리 수준이 낮거나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일으킨 이력이 있어서 한국 기업으로부터 낮은 평가를 받는 북한 기업에는 감점을 주고, 감점이 정해진 한도를 초과할 때는 남북경협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마찬가지로 북한 기업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한국 기업에 가산점을 부여하면서 이를 해당 기업이 홍보하게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방식을 통해 사기 방지 및 품질관리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면서 우수 기업에 혜택을 줄 수 있다.

 

(4) 통신망 : 북한 인트라넷 및 인터넷의 단계별 활용

현 시기 UN의 엄격한 대북 경제제재 아래에서 북한 기업과 외국 기업 간에 어떠한 합영·합작 사업도 금지되고 있지만, 현재 상황에서도 남북B2B플랫폼회사의 설립, 데이터 관리 플랫폼의 구축 등을 포함한 예비 단계의 여러 조치들은 실행에 옮겨질 만하다. 또한 현재에도 북한과 해당 내용을 공유하면서 사업설계를 보다 구체화할 수 있으며, 북한 관리 및 엔지니어들에게 관련 교육 등을 미리 실시할 수 있다.4

향후 대북 경제제재가 일정 정도 해제되면 B2B 플랫폼 매개 남북경협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데, 이를 크게 두 단계, 즉 이중 플랫폼 단계와 단일 플랫폼 단계로 나눠볼 수 있다.

 

① 1단계: 한국은 인터넷, 북한은 인트라넷으로 연결되는 이중 플랫폼 단계

이중 플랫폼 단계는 북한 당국의 검열 정도가 상당히 높은 수준을 상정한다. 이 경우 북한 기업은 북한이 인터넷 대신 전국적 규모로 사용하는 인트라넷에 관련 정보를 올리며, 한국 기업의 관련 정보는 남북B2B플랫폼회사가 전달받아 이를 북한의 인트라넷으로 옮기는 방식을 그려볼 수 있다. 북한의 대표적인 인트라넷으로 조선콤퓨터쎈터의 내나라 정보쎈터가 운영 중인 ‘광명망’이 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한 인트라넷으로 광명망을 생각해볼 수 있지만, 보다 바람직한 방안은 B2B를 활용한 남북경협을 위해 따로 인트라넷을 만들어 북한 기업과 사전에 등록된 한국 기업이 그곳을 이용하는 것이다. 북한 당국이 해당 인트라넷의 설계 및 관리에 참여하게 된다면 큰 무리 없이 운용될 수 있을 것이다.

 

② 2단계: 한국과 북한 모두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단일 플랫폼 단계

단일 플랫폼 단계는 북한 기업이 정해진 양식에 맞춰 인터넷 기반의 B2B 플랫폼에 관련 정보를 올리고 북한 당국은 이를 사후 확인하는 식으로 관리하는 단계이다. 진정한 의미의 B2B 플랫폼 매개 남북경협이 본격화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는데, 외부의 간섭 없이 몇번의 검색으로 원하는 정보를 확인하고 곧바로 해당 업체와의 협상 및 거래가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단계에서도 역시 북한 당국과 긴밀히 협력하여 관련 정보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북한 입장에서는 사업이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기 때문에 남북경협의 순조로운 운용을 위해 플랫폼 구축에서부터 거래의 종료까지 모든 영역에서 북한 측과 긴밀히 협조해야 한다. 모든 과정이 남북한 간 안정성 및 신뢰성을 바탕으로 진행된다면 양측 모두가 윈윈하는 상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4. B2B 플랫폼을 매개로 한 남북경협의 의의

 

북한에서의 시장경제 발전은 비핵화를 포함한 한반도 평화, 나아가 통일을 위한 대비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북한이 시장경제의 발전을 통해 경제적으로 번영하게 되면 핵무기를 계속 보유하는 것의 기회비용이 너무 커지기 때문에 북한에 핵은 큰 부담이 된다. 한국이 핵무기를 가지지 않는 이유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훨씬 많기 때문이기도 한데,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으로 체제의 대내외적 안정성이 담보되면 북한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핵에 더이상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통일 대비의 경우, 특히 독일 통일 이후 한국 국민들이 통일에 대해 가장 우려하는 사항은 높은 통일비용 및 남북한 간 경제력 격차에 기인한 사회 혼란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 단계에서 북한의 경제발전 수준이 예컨대 이미 중진산업국 정도가 되면 통일 이후 북한 땅에 한국 국민의 세금을 쏟아부을 필요가 없다. 또한, 북한의 산업역량이 발달한 상황에서 통일이 된다면 일자리를 찾아 한국으로 들어오는 북한 주민들의 수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현재 우려하고 있는 통일 이후의 사회 혼란도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

현 시기 북한에서 시장경제가 보다 높은 단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산업자본가의 육성이 필요하다. 이전 개성공단 사업처럼 북한에 돈(임금)을 직접적으로 주는 방식이 아닌, 돈 벌 능력을 갖춘 이들을 키워주는 식으로 남북경협이 바뀌어 나가야 할 것이다. B2B 플랫폼을 매개로 하는 남북경협은 북한 내 해당 사업에 관여하는 돈주들을 산업자본가로 성장시킴으로써 북한의 시장경제가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하는 데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

남북한 간의 경제협력은 북한 경제뿐 아니라 한국 경제에도 의미있는 기여를 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새로운 남북경협 사업이 현재 한국의 저성장 기조를 바꿀 수 있도록 기존 경제성장 방식의 전환을 추동 또는 조력하는 방안이어야 한다. 현재 한국을 포함한 자본주의 국가가 지향해야 할 경제성장 방식 중 하나는 예컨대 창업국가(start-up nation) 이스라엘과 같이 ‘창업이 일상화되는’ 혁신기반 경제성장으로, 여기에서는 기업 규모가 성공 여부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5 ICT의 발달로 굳이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중소기업 혹은 개인이 판로를 국내외에서 쉽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제시하는 B2B 플랫폼을 통한 남북경협은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과 개인이 북한 측 파트너와 함께 자신들의 사업 아이디어를 손쉽게 현실화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구체화한 것이다. 한국의 경제구조를 바꾸는 과정이 지난하고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방식의 남북경협을 매개 또는 촉진제로 삼으면 그 과정을 가속화할 수 있다.

또한 한국정부는 지난 수년간 경제발전과 함께 취업률 증가를 목적으로 신재생에너지, 탄소저감 에너지, 첨단 그린도시, 첨단 융합산업, 신소재-나노 융합 등의 신성장 분야 육성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었다. 그렇지만 정부가 다양한 정책수단을 통해 이들 분야를 지원한다고 해도 늘어나는 일자리의 수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일자리 창출에 보다 이바지하는 것은 기존의 상품 및 서비스를 조금이라도 개선할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용이하게 창업 또는 사업 확장을 할 수 있느냐이며6 이는 무엇보다 B2B 생태계가 얼마나 활성화되었는지가 관건이다. B2B 플랫폼을 활용한 남북경협은 경협과 관련한 창업 및 사업의 확장 붐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에 경제성장과 결합된 취업률의 제고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5. 나오면서

 

B2B 플랫폼을 통한 남북경협을 활용해 우리는 남북한 간 산업구조 및 경제발전 단계의 차이를 남북한의 경제협력을 촉진하는 수단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수십년 동안 북한은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행동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야기하는, 한국 경제에 커다란 부담을 주는 존재였다. ICT를 기반으로 하는 B2B 플랫폼을 남북경협에 효과적으로 활용한다면 한국 경제는 여느 다른 국가가 가지지 못하는 북한이라는 존재를 통해 경제성장의 도약을 현실화할 수 있다.

현재는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로 남북경협을 당장 추진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북경협에 관한 연구를 중단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향후 재개될 경협을 보다 체계적으로 준비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 글에서 제시한 방식은 기존과는 매우 다른 남북경협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 한계 역시 분명하다. 무엇보다 실제 구현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으며, 그 핵심은 B2B 플랫폼이 매개하는 남북경협 사업을 북한 당국이 받아들일지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 문제를 타개할 관건은 관련 분야 연구자들이 얼마나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사업계획을 북한 당국에 설명할 수 있느냐이다. 빈틈없이 잘 만들어진 사업 청사진 및 계획서 등은 북한 당국에 B2B 플랫폼을 통한 남북경협의 성공에 대한 믿음을 심어줄 수 있다. 아울러 이는 해당 사업의 실현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이 개혁개방 자체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이를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하는 촉매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한 진심 어린 열의는 북핵문제 해결 및 경제제재 해제를 위한 주요 조건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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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영훈 「평화와 혁신의 관점에서 본 남북경협」, 『통일정책연구』 28(1), 2019.
  2. 「‘82층 아파트’ 북 여명거리 1년만에 완공 …비결은 ‘돈주’」, 한겨레 2019.1.27.
  3. 현재는 북한 전역에 걸쳐 서비차가 활발히 운행되고 있으며 그 결과 사실상 정가제로 운송요금이 결정되고 있다. 예컨대 양강도 혜산에서 서비차를 이용할 때 함흥까지는 120달러, 원산까지는 150달러, 그리고 평양까지는 300달러의 요금을 지불하면 된다고 한다. Yonho Kim, “North Korea’s Mobile Telecommunications and Private Transportation Services in the Kim Jong-un Era,” HRNK Insider, 2019.1.
  4. 현재의 대북 경제제재 아래서도 비즈니스 관련 교육은 허용되고 있다. 싱가포르 민간단체인 조선익스체인지는 2010년부터 (코로나19로 인해 작년을 제외한) 매년 북한을 방문해 창업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예컨대 2019년 11월에는 평성시 ‘은정특별경제구역’에 소재한 북한 스타트업들을 대상으로 경영, 금융, 마케팅 등 비즈니스 교육을 실시한 바 있다. Choson Exchange, Choson Exchange 2019 Annual Report, 2020, 7면.
  5. 댄 세노르·사울 싱어 『창업국가』, 윤종록 옮김, 다할미디어 2010 참조.
  6. 미국의 경우 1980년부터 2005년까지 새롭게 창출된 4000만개 일자리 중 설립 5년 미만 기업이 기여한 비중이 3분의 2를 차지했다. Dane Stangler and Robert E. Litan, “Where Will the Jobs Come from?,” Kauffman Foundation Research Series 20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