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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앤드루 파인스타인 『어둠의 세계』, 오월의봄 2021

탐욕의 시장을 수호하는 ‘안보’의 흑막

 

 

정욱식 鄭旭湜

평화네트워크 대표 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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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세계: 무기산업을 둘러싼 부패의 내막과 전쟁 기획자들』(The Shadow World, 2011, 조아영·이세현 옮김)은 세계 도처에서 벌어져온 무기거래와 방위산업, 그리고 이것들이 전쟁과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 낱낱이 파헤친 논픽션이다. 이 책의 저자 앤드루 파인스타인(Andrew Feinstein)은 남아프리카공화국 국회의원 출신이자 여러 단체에서 부패 감시 및 구호 활동을 해온 인물이다. 각종 매체에 글을 쓰고 출연하면서 전세계 부패의 40퍼센트 이상이 무기거래 속에서 발생한다며, 이에 대한 감시와 규제, 그리고 민주적 통제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어둠의 세계’라는 책 제목은 ‘그레이마켓’이나 ‘블랙마켓’에서 활동하는 무기 딜러들과 로비스트의 세계를 그린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록히드마틴과 BAE와 같은 공식적인 대형 업체들이 무기 딜러들과 함께 “어둠의 세계를 구성하는 두 날개에 해당한다”(726면)는 점을 드러낸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치인과 고위 관료, 군 고위층, 싱크탱크, 언론 등의 유력 인사들과 기관들이 이들과 어떻게 얽히고설켜 “그들만의 세계”를 구축해 국가안보를 가장한 사익 추구를 해왔는지 낱낱이 해부하고 있다. 파인스타인은 이들의 세계를 ‘군산정복합체’라고 규정하면서 공식·비공식, 불법·초법, 정치자금을 비롯한 “합법적 뇌물” 등의 방식으로 “탐욕과 죽음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고 지적한다.(733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1961년 1월 대통령직 퇴임사에서 군산복합체의 부당한 영향력을 경계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파인스타인은 미국인들이 이 경고성 호소를 직시하지 못했다고 진단한다. 그 결과 미국은 무기제조업체, 국방부, 정보기관, 의회, 행정부가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한 “안보국가”가 되었고, “평범한 미국인들의 진정한 안보와 경제적 이익은 이처럼 합법화된 뇌물의 제단에서 희생”된다고 일갈한다.(39면)

실제로 미국의 군사비는 매년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지만, 미국인들의 기대수명은 줄어들고 있다. 그 중심에는 자살·약물 및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하는 ‘절망사’가 똬리를 틀고 있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파인스타인은 치밀한 자료 수집과 광범위한 인터뷰를 통해 유럽,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중남미 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져온 ‘죽음의 상인들’의 행태를 고발하고 있다.

이 책을 읽던 중에 조 바이든 대통령이 9·11테러 20년째를 맞이하는 2021년 9월 11일까지 아프간 주둔 미군을 철수키로 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으로 평가받는 이 전쟁과 이라크전쟁으로 인해 전세계는 막대한 비용을 치렀다. 미국 예산만도 약 4조 달러가 쓰였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했거나 집을 잃었다. 세계는 더욱 불안하고 위험하며 빈곤해졌다. ‘도대체 누구를, 무엇을 위한 전쟁이었나’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유일한 승자”는 있었다. “전쟁을 독려하는 데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고, 어둠의 세계의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땅 짚고 헤엄치듯 막대한 수익을 거둬들”인 방산업체가 바로 그들이다.(611면)

그런데 또 하나의 끝나지 않은 전쟁이 있다. 바로 한국전쟁이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이해 “평화협정이 공식 체결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한국전쟁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미국이 주도하거나 개입한 12차례의 전쟁 중 최장기 기록을 가진 사례”라고 지적했다.(2010.1.11.) 하지만 미국에서 한국전쟁은 ‘잊힌 전쟁’으로 일컬어진다.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려는 노력도 지지부진하다. 그 결과 일시적이었어야 할 정전협정은 정전체제로 굳어져왔다.

정전체제는 또 하나의 체제를 수반했다. 바로 한미동맹이다. 파인스타인은 평범한 미국인들에게 군산정복합체는 ‘합법화된 제단’이라고 표현했는데, 나는 평범한 한국인들에게 ‘합법화된 제단’은 ‘한미동맹체’라고 생각한다. 한미동맹의 기여도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 폐해는 전방위적으로 뻗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화의 진전에도 불과하고 한미동맹은 여전히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보수 진영의 ‘맹목적 친미주의’ 못지않게 중도·진보 진영의 ‘공미형(恐美形) 친미주의’의 폐해도 크다.

한국은 세계 9위의 국방비 지출국이자 6~7위 수준의 무기 수입국이다. 무기의 대부분은 미국으로부터 들여온다. 이와 관련해 2017년 4월 빈센트 브룩스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은 “한국이 무기 획득 예산의 90퍼센트를 미국 무기 도입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미국 경제에도 직접적인 이익”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군산정복합체는 천문학적인 국방비 지출 및 방위산업을 합리화하려고 국가안보와 더불어 ‘일자리’를 강조하곤 한다. 이를 대놓고 말한 인물이 도널드 트럼프였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때마다 노골적으로 무기 구매 압력을 가하면서 이를 통해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늘리게 되었다며 자랑하곤 했다.

‘장사꾼’ 트럼프가 물러나고 ‘젠틀맨’ 바이든이 들어서면서 이러한 모습도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일까? 아니다. CNN은 2월에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한국 국방예산의 의무적인 확대와 한국이 일부 군사장비를 구매할 것임을 양측이 이해한다는 내용이 포함될 수 있다”라고 보도했다. 실제 협상 결과도 2021년 방위비 분담금을 13.9퍼센트 늘리고 2022년부터 2025년까지의 분담금 인상률은 전년도 국방비 인상률을 적용키로 했다. 한국의 물가상승률은 떨어지고 국방비 증액률은 크게 오르고 있다는 것을 간파한 미국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미제 무기 구매 행렬도 계속될 조짐이다. 이미 한국은 록히드마틴의 F-35A(공군용) 40대를 도입한 데 이어 경항공모함 사업을 결정하곤 여기에 탑재할 F-35B(해군용) 20대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자 공군은 40대로는 부족하다며 F-35A 20대 추가 도입을 요청하고 있다. 아파치급 대형공격헬기 36대도 추가로 구매키로 했다. 군은 이미 2012~21년간 1조 9천억원을 투입해 미국 보잉의 아파치 가디언(AH-64E) 36대를 전력화한 바 있는데, 3조 2천억원을 투입해 추가로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미국산 무기도입 계획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파인스타인은 어둠의 세계는 “국가안보를 내세우기만 하면 다른 이들의 영향이나 판단에서 자유로워지는 곳”(40면)이라고 일컫는다. 한국은 어떨까? 국방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고 있는 반면에 많은 사람들은 생활고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는 현실을 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침묵이 우리 사회에 흐르고 있기에 던져보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