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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한영혜 『재일동포와 민족무용』, 한울 2021

한국무용과 조선무용 사이에서

 

 

최해리 崔亥利

무용역사기록학회장 haeree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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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영어 ‘Korea’가 갖는 정치문화적 함의와 다변성에 대해 깨달은 계기가 있었다. 세계 최대의 아시아 관련 학회인 북미아시아학회의 연례 학술대회에 토론자로 참가하면서 발표자들의 한국예술에 대한 설명이 남한에 국한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토론을 마치자 이례적으로 토론자인 평자에게 질문이 들어왔다. ‘당신 또한 해외 한인은 소외했다’는 것이 요지였다. 아차 싶어 ‘Korean Arts’가 남북한을 넘어 ‘한민족’의 예술까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했다. 냉전 시대의 한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평자의 관념 세계에서 ‘우리’ ‘조국’ ‘민족’이라는 용어는 대한민국과 한국인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를 수없이 낭독했고,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수없이 맹세했기 때문이다. 북한 학자라고 해도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들의 조국과 민족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조선인민에 국한될 것이다. 적대적으로 분단된 국가의 학자들이 ‘조국’과 ‘민족’에 대해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며 연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우선 말하고 싶다.

조국과 이주국, 한민족과 이주민이라는 경계를 넘나드는 재외한인들에게 분열은 숙명일지 모른다. 분단 조국은 재외한인사회에 또다른 분열을 초래하는데, 민족차별을 감내하던 재일한인들에게 한반도의 적대적 분단은 민단계와 총련계로의 내부 분열을 일으켰다. 냉전 기류가 심각해지고 남북갈등이 요동칠 때마다 민단과 총련의 갈등 또한 심화했다. 총련의 존재로 재일한인을 국외자 취급하던 한국 정부의 인식은 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쳐 재일한인은 한국에서 소외 연구영역이나 다름없었다. 이에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등을 전공하던 권숙인, 김백인, 김인수, 정진성, 정호석, 한영혜는 재일한인에 대한 학문적 성찰이 충분하지 않다는 문제의식에 합의하고, 서울대에 재일동포연구단을 꾸렸다. 이 연구단은 2018년까지 3년에 걸친 학제연구로 재일한인의 역사, 일과 삶, 정체성, 그리고 그들의 조국 인식에 대해 밝혀나갔다. 그 결실이 네권으로 이루어진 ‘재일한인 연구총서’이다.

총서의 네번째 책인 『재일동포와 민족무용: 냉전의 문화지형과 디아스포라 정체성』은 연구단장인 한영혜가 단독 집필했는데, 그가 ‘민족무용’을 매개로 재일한인을 연구한 이유는 15년간 지속한 그의 전통춤 학습 내력과 무관치 않다. 춤에 대해 인류학적으로 접근하는 현장연구에서 춤 배우기를 통한 참여관찰은 거의 필수적이다. 내부자의 세계로 쉽게 진입할 수 있는 통로가 되며, 몸의 온 감각을 동원하는 춤추기를 통해 소위 말하는 ‘토착지식’을 쉽게 수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저자는 서문의 반 이상을 할애해 춤과 춤추기를 통해 많은 정보제공자와 조력자들을 만났으며, 한국에서 구하기 힘든 희귀하고 유용한 자료들을 수집할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서문은 저자의 연구 노정기로 빼곡히 채워졌다. 저자는 연구단의 활동에 앞서 이미 2008년부터 히로시마, 나고야, 요꼬하마, 쿄오또, 오오사까, 토오꾜오, 서울 등 여러 지역의 동포 무용가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하고, 그들의 공연을 보고, 그들로부터 춤을 배우는 참여관찰을 통해 자료를 수집했다고 한다. 2018년까지 근 10년간 모은 신문사료, 공연자료도 방대했을 것이다. 연구 성과물을 틈틈이 논문으로 발표했지만, 갈래를 잡아 책으로 엮어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재일한인사회의 무용을 다룬 선행연구가 미비한 상황이니 조심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또한, 사회학자가 ‘무용’을 전면에 내세워 책을 펴내는 데 주저함은 왜 없었겠는가. 그럼에도 제1장 재일한인사회 민족무용의 전사(前史)에서부터 제7장 한국무용과 조선무용이라는 분단의 경계 넘기에 이르기까지 400면이 넘는 책의 내용에서 저자가 오랫동안 쌓아 올린 자료의 힘과 연구 내공이 확인된다.

춤은 외연적으로 한 사회나 민족의 독특한 몸짓, 리듬, 소리, 복식, 미술 등을 미학적으로 표현하며, 그 사회나 민족에 내재한 관습, 사고, 종교적 태도 등을 표상한다. 디아스포라들이 민족정체성과 문화정체성의 결핍을 민족적인 춤으로 채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냉전의 문화지형과 디아스포라 정체성’이라는 부제가 내비치고 있듯이 저자는 디아스포라로 존재하는 재일한인들에게 민족무용이 정체성의 형성, 회복,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데 동의한다. 그리고 민단의 ‘한국무용’ 계열과 북한·총련의 ‘조선무용’ 계열로 이원화되어 수용 및 전승되어온 재일한인사회의 춤은 정체성의 문제를 넘어 정치문화적 맥락까지도 살펴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에 저자의 재일한인사회 민족무용 연구는 해방 후 냉전체제의 형성과 변용을 배경으로 한다.

저자는 민족무용을 “민족 고유의 양식을 바탕으로 무대 공연물로 양식화된 춤”이라고 정의하면서 본인의 연구대상은 정통적이거나 고전적인 민족춤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무용(舞踊)’이라는 용어는 20세기 초 일본에서 조어된 것으로 1920년대 일제강점기에 유입되었다. 따라서 신무용, 한국무용, 북한무용과 같이 ‘무용’이라 이름 붙은 춤은 근대 이후의 춤, 무대 위의 춤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무용’을 이식한 사람은 이시이 바꾸(石井漠, 1887~1962)라는 신무용가다. 그의 조선인 제자가 최승희(崔承喜, 1911~69)와 조택원(趙澤元, 1907~76)이며, 우리나라 신무용은 이 두 사람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무용은 서구식 현대무용에 기반을 둔 창작을 전제로 한 춤 양식이다. 조선에 정착한 신무용은 전통춤과의 문화접변 현상으로 하이브리드한 춤을 탄생시켰는데, 분단 이후 한국에서 형성된 한국무용과 북한에서 형성된 조선무용이 그것이다. 한국무용사나 신무용을 다룬 연구물에서조차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한국의 무용가들이나 재일한인 무용가들조차 자신들이 추는 춤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인지하는 경우가 드물다. 서문에서 저자가 선행연구의 부족을 토로하며 본인의 연구대상은 전승 체계와 전승 주체라고 강조하는 것은 이런 문제에 봉착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전승 주체들의 행위와 의식에 초점을 둔 연구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주체자들의 춤에 관한 생각이 책에서 뚜렷하게 포착되지는 않는다. 세밀한 서술에도 불구하고 주체들의 행위나 역사적 사건들이 나열되다보니 재일한인무용사 한편을 독파한 느낌을 준다. 연구대상인 재일한인 무용가들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들의 구술과 그들이 제공한 자료에 의존하다보니 한계점이 분명하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서술의 중심이 총련의 조선무용계에 가 있으며, 1990년대 민단 한국무용계에 영향을 끼쳤던 무용가나 한일 무용교류사의 중요한 사건이 다수 누락되어 있다. 연구대상들이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나 사건은 배제된데다가 한국에서 접하기 어려운 총련 조선무용계의 자료적 가치에 몰입한 결과라고 여겨진다. 최승희와 조택원 외에 ‘신무용 삼인방’으로 일컬어지는 배구자(裵龜子, 1905~2003)를 배귀자로 표기한 것(25면)은 신문사료의 오류를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서두에서 한국 학자들이 ‘조국’과 ‘민족’에 대해 객관적 거리를 두고 연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전제한 이유의 하나가 여기에 있다. 적대적인 분단 상황에서 정보가 차단된 북한과 재외동포에 대해 생겨나는 ‘향수’로 인해 학술적인 오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전 시기에 성장한 저자의 배경을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재일동포와 민족무용』은 ‘우리’와 ‘Korea’를 한국중심주의로 사고하는 한국학자들의 가치관에 재외동포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정치적 올바름’을 심어준 역작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