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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임국영 林國榮

1989년 경기 안산 출생. 2017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소설집 『어크로스 더 투니버스』 등이 있음.

dlarnrdud89@naver.com

 

 

 

태의 열매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성경 시편 127편 3절

 

 

지난 명절, 오래간만에 고향 친구들과 술자리를 갖던 내 앞에 불쑥 아버지가 나타났다. 시골 상권에 마땅한 술집이 없었던 터라 우연히 마주칠지도 모른다고 예상은 했지만 아버지는 아무래도 작정하고 나를 찾아 헤맨 모양이었다. 소주 두병을 넘게 마신 나보다 취기가 올라 있던 그는 나를 윽박지른 뒤 억지로 차에 태웠다. 반발하거나 저항하지 않았다. 익숙하다면 익숙한 일이었으니까. 녹내장으로 눈이 아프다며 야밤에도 절대 벗지 않는 라이방 선글라스, 리바이스 청바지와 그 안에 집어넣은 구제 폴로셔츠 그리고 입에 문 말보로 레드. 환갑이 되어도 아버지는 아버지였다.

“아들아, 넌 오늘 뒈졌다.”

노련한 음주운전 실력으로 집으로 향하는 내내 아버지는 아들이 아니라 멸문의 원수를 대하듯 상스러운 욕을 쏟아부었다. 아버지에게 안부 연락도 일절 않고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 호로새끼라는 말이 장황하게 부풀려졌다. 틀린 말은 없었다. 나는 지난 몇년간 아버지를 피했다. 명절에 본가를 찾더라도 아버지가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간 틈을 타 어머니에게만 얼굴을 비추고 지척에 홀로 사시는 외할머니께 인사를 드린 뒤 인천의 자취방으로 돌아가버리곤 했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지만 곧이곧대로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아버지에게 전하지 못한 진심이 이거 하나뿐은 아니었지만 ‘자칫 잘못하면 아버지를 죽여버릴 것 같아서’라고 실토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아버지가 중앙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차를 몰던 그때 스피커에서 올드 록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레너드 스키너드의 「프리버드」였다. 아버지는 언제 화를 냈느냐는 듯 웃는 낯으로 노래를 흥얼거렸다.

“음악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다! 안 그러냐, 아들?”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고 어머니는 침실에 잠들어 계셨다. 한바탕 푸닥거리를 늘어놓은 아버지는 웃음을 흘리며 나를 거실 바닥에 앉혔다. 그리고 술과 잔을 꺼내왔다. 서른이 넘도록 아버지와 대작을 해본 일이 없었기 때문에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천만다행으로 나와 아버지는 이미 취할 대로 취해 있었고 술잔을 몇번 더 비우기까지 하자 문제는 해결됐다. 황당하게도 아버지는 가족으로서는 최악일지 몰라도 술친구로는 최적이었다. 어떤 점이 그러하냐면, 어떤 말에도 웃어준다는 것이 그랬다. 농담이 오가지 않는 술자리란 메시아가 등장하지 않는 신약이나 마찬가지였다. 구원은 취중에나 찾아온다는 사실을 아버지는 진즉 깨친 것일지도 몰랐다.

“기억하세요, 아버지?”

“뭐? 뭐 말인데?”

“그때 있었던 일 있잖아요. 그때 아버지가……”

긴 세월 알고 지낸 사이끼리—가족을 두고 이런 표현을 쓰는 게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오랜만에 만나서 나누는 대화란 대체로 과거에 관한 이야기인지라 나는 자꾸 시간을 거슬러 올랐다. 현재에서 과거로, 어릴 적 이야기를 한 뒤 더 어릴 적 이야기로 옮겨갔다. 난생처음으로 아버지에 관한 기억들, 농담으로라도 추억이라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안줏거리 삼기로 결심했다. 한편으론, 모순된 말이지만 내가 지금 건네는 농담을 다만 농담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길 바라는 심정도 있었다.

“십년 전 겨울,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죠. 인근 공사장에서 찾아온 덤프에 주유를 하고 있는데 낯익은 SUV 한대가 앞을 지나쳤어요. 얼어붙은 노면 위를 비틀거리며 역주행하고 있었죠. 그리고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아우디를 받아버렸어요. 와, 저거 큰일 났다. 트럭 기사 아저씨와 먼발치에서 그 광경을 구경했죠. 그때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한통 받습니다. 네 아버지가 또 사고 쳤다! 왜 엄마?라고 대꾸를 한 순간 교통사고를 낸 SUV의 운전석 문이 열리고 선글라스를 낀 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내셨죠.”

“야 인마! 언제 적 얘길 하는 거야? 술이나 마셔! 넌 오늘 뒈졌어!”

우리는 낄낄 웃었다. 당시 아버지는 무면허에 만취 상태였고 그 사고로 얻은 빚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는 수감됐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더 옛날 얘기도 있어요. 풀벌레가 울고 별이 빛나던 여름의 깊은 밤이었죠. 아버지는 갑자기 인천으로 돌아가겠다며 초등학생이던 저를 잠에서 깨워 차에 태웠어요. 물론 취해 계셨고 사력을 다해 막는 어머니를 뿌리친 뒤 기어이 액셀을 밟았죠. 출발하고 조금 뒤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셨던지 아버지는 어떤 구멍가게 앞에서 차를 멈췄어요. 그리고 돈을 쥐여주며 소주와 담배를 사 오라고, 가는 김에 제가 좋아하는 과자도 하나 집어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죠. 물건을 고르는 동안 아버지는 차를 몰고 떠났어요. 아버지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알 수 없었고 늦은 밤이었고 집까지 걸어서 한시간 거리였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날 깜빡 잊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가능하면 이대로 아버지가 나를 영원히 기억해내지 못하길 기도했다. 기도를 마친 뒤 걸어서 한시간가량 떨어진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직 근처에 머물고 있을지 모를 아버지에게 발견될까봐 가로등 빛을 피해 지그재그로 움직였다.

“그런데 저 멀리 언덕 언저리가 캠프파이어 하듯 환한 거예요. 길은 하나뿐이었고 저는 밝은 곳을 찾는 날벌레처럼 불빛을 향했죠. 그곳엔 불타오르는 포클레인과 전면이 박살 난 아버지의 지프차가 있었어요.”

마이클 베이가 감독한 인디 영화가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은 배경을 등지고 아버지는, 이마를 타고 흐르는 피도 닦지 않은 채 담배를 피웠다. 그때도 라이방을 쓰고 있었다. 아직 녹내장이 발견되지 않았을 시기였다. 아버지는 겁을 집어먹고 다가오는 나를 무심히 바라보더니 선글라스를 밑으로 내리고 이렇게 말했다. 차에 타고 있지 않았나? 이 대목을 짚을 때 아버지는 웃음을 터트렸지만 나는 이번에는 따라 웃지 않았다. 무면허 만취 상태였고 역주행이었다. 아버지는 그 일로도 수감됐다. 그렇다고 이때가 처음이었던 것은 또 아니었다.

곧 앰뷸런스가 올 거니까 기다려라. 아버지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지프차 조수석에 나를 앉혔다. 박살 난 유리창 파편들을 아버지가 옷소매로 쓸어버린 뒤였다. 아버지는 내 손에 들린 비닐봉지에서 소주를 꺼내 뚜껑을 땄다. 달리는 마라토너가 물을 마시듯 술을 삼키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나는 바스락거리는 과자 겉봉을 매만졌다.

“짜식아, 아버지는 절대 안 죽는다!”

“알죠. 잘 알죠.”

“그런데 아들, 혹시 내가 운전하다가 바다에 빠진 얘기 했던가?”

“바다요?”

“그래, 바다.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잠이 와서 눈을 몇번 감았다 떴더니 앞이 새까맣더라고. 이미 차체가 바닷물에 반쯤 잠겨 있었던 거지.”

“그랬군요. 거기에선 또 어떻게 살아남으셨어요?”

아버지는 눈매를 찡그리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답했다.

“글쎄, 그냥 정신을 차리고 나니, 집이었다.”

 

이날의 술자리가 새로운 국면을 맞은 것은 내가 오늘 과거의 어디까지 되짚어 얘기할 수 있을까, 어떤 얘기면 아버지가 웃음을 멈출까 하는 이상한 오기가 아슬아슬한 지점에 가닿을 즈음 한가지 물음을 던지면서였다.

“상자 말이에요. 단면이 거칠고 손때가 많이 탄 물건이었어요. 제가 열살 남짓일 때였던가? 아들아, 여기 뭐가 들어 있는지 아느냐, 하고 물으셨죠. 그러곤 대답도 듣지 않으시고 너는 모를 거야, 절대 모를 거야,라고 말씀했어요. 그 모습이 이상하게 기억에 남아서 언제고 묻고 싶었어요. 도대체 그 안에 뭐가 있었던 거예요? 권총이나 대마라도 있었던 거 아니에요?”

우발적으로 꺼낸 이야기였다. 이제 와서는 그 안에 뭐가 있었는지 특별히 궁금하지 않았다. 내가 예상했던 반응이란, 그런 일을 기억한단 말이냐?라며 놀라거나, 그럴 리가 있겠느냐며 또다시 호탕하게 웃는 것 정도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갑자기 지난 일을 훑는 듯 골똘한 표정을 짓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벽걸이 TV 밑 문갑을 뒤적거리더니 까만 비닐봉지 하나를 꺼내왔다.

이 대목부터 나의 지난 명절이 본격적으로 엉망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온 가족이 평온하고 행복해야 할 명절 연휴가 악몽처럼 변모하는 일 또한 내겐 익숙하다면 익숙한 일이었다.

내가 아직 유소년이었을 시기, 우리 가족은 구정과 추석이 되면 인천의 친할머니 댁을 찾았다. 친할머니가 주문한 치킨과 피자를 내가 열심히 먹어치우는 동안 맏며느리인 어머니는 명절 음식을 준비했다. 하루 내내 전을 부치고 국을 끓이고 고기를 쪘다. 아버지는 외출을 했다가 명절 특선 영화가 모조리 끝날 때쯤 돌아왔다. 간만에 가진 고향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매번 무엇이 그렇게 기분이 상했는지 잔뜩 약이 오른 아버지는 어머니가 부쳐둔 전을 바구니째로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친할머니 댁 세간을 집히는 대로 던지고 때려 부쉈다. 친할머니와 어머니가 뜯어말려도 끄떡없었다. 그는 전직 야구선수였고 제물포에서 적수가 없는 싸움꾼이었으며 고급 세단과 중장비와 대자연과 맞선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그 소동에 휘말려 쓰러지고 뼈를 다치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광증은 연유를 짐작할 수 없는 만큼 깊이도 가늠하기 어려웠다.

단편적이나마 어떤 단서라도 주어졌더라면, 이를테면 TV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이 씨발새끼들이 감히 나를 무시해?라는 발언이라도 있었더라면 나름대로 인과를 유추하거나 서사를 짜 맞춰볼 만도 할 텐데, 아버지는 무도인의 기합처럼 욕설만 관성적으로 내뱉을 뿐 아무런 힌트도 던져주지 않았다. 그 움직임은 자연재해나 신이 내린 재앙처럼 숭고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너희 아버지는 친구를 참 좋아해. 친구들은 그런 아버지를 아낀단다.”

어머니에 의하면 아버지는 대체로 즐거운 술자리를 하고 돌아오며 딱히 기분 상할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아버지가 왜 그러는지 짐작이 안 간다, 미친 사람이 달리 미친 사람이겠냐며 어깨를 으쓱했다.

작살낼 물건이 모조리 사라지면 아버지는 나와 어머니를 차에 태웠다. 친할머니는 주차장 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장남 일가를 배웅하셨다. 아버지는 스피커 볼륨을 귀청이 얼얼할 정도로 키우고 불붙은 담배를 입에 문 채 차를 몰았다. 주로 AFKN 채널을 청취하거나 오래된 팝 혹은 록 앨범을 재생했다. 못 알아들을 영어 가사를 들으며 우리 가족은 고속으로 중앙선을 갈팡질팡 침범했다. 다행히 명절 새벽의 시골길은 차가 잘 다니지 않았다. 그렇게 한시간 남짓 운전해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생존과 귀가에 한해선 천부적인 사람이었다.

그즈음의 갑작스럽고 위험천만한 귀갓길을 생각할 때면 바로 그 ‘프리 버드’가 떠오른다. 「킹스맨」에서 콜린 퍼스가 극단주의 기독교도들을 닥치는 대로 쏘고 패고 찔러 죽일 때 삽입된 경쾌한 록 뮤직 말이다. 권총을 든 젠틀맨, 죽어가는 교인들, 피 묻은 십자가와 고꾸라지는 흰머리수리의 이미지를 배경으로 정신 사납지만 끝내주게 화려한 세대의 일렉트릭 기타 연주가 폭주한다. 이것이 그 시절 내 내면의 풍경이었다.

아버지에 의해 어머니를 잃고 나까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난 것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직전, 친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였다. 아버지가 뒤늦게 철이 들어 술버릇을 고쳤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떠날 곳을 잃어 떠나지 못할 따름이었다. 아버지가 특별히 명절에만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사람은 아니었으므로 우리 집 가전제품과 가구들은 일년 내내 위기에 처했지만 최소한 인천을 오가느라 일가족을 태우고 음주운전을 하는 일은 더는 없었다. 그래서 친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얼마간은 다행이라 생각했다.

 

“특상품이다. 피우면 웃음밖에 안 나올걸?”

까만 비닐봉지 안에는 바짝 말린 찻잎 같은 것들이 한주먹 담겨 있었다. 길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을 잡초를 그러모아 말린 것만 같았다. 권총일 리는 없으니 남은 답은 하나였다.

“이거 진짜예요? 냄새가 꼭 쑥 같은데요?”

“진짜고말고.”

“어디서 난 물건인데요?”

“알아서 뭐 하게?”

의구심이 걷히진 않았으나 술기운이 동해 있던 나는 외경심이라 불러도 좋을 만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대마라니. 외국도 아니고 국내에서, 대마라니. 고소득층 자녀들 사이 혹은 어디 음험한 클럽 등지에 돌아다닐 법한 물건이 벽지에, 그것도 명절 밤 아버지의 손에 의해서 등장하리라고 누가 예상이라도 했을까. 나무상자 얘기를 꺼내며 권총과 대마 운운했던 것은 내 일상과 절대 교차할 리 없는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난생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떼를 쓰기 시작했다.

“한대만 피워볼게요. 주변 친구들은 다 해봤대요. 저 이거 안 하면 왕따당합니다.”

얼토당토않은 핑계였지만 나의 간곡한 요청이 아버지의 부성애를 자극했다.

“내 아들이 왕따를 당한다고?”

아버지는 담뱃갑을 거꾸로 들고 바닥에 내용물을 털어버렸다. 그리고 담배 한개비를 집어 알코올 과다 섭취로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며 담배 종이의 접착 부분을 뜯었다. 몇개의 담배를 망가뜨린 끝에 조악하게나마 솔기를 따라 가르는 데 성공한 아버지는 담뱃잎을 비운 종이에 대마를 채우고 세심하게 말았다. 아버지는 어쩐지 들뜬 모습이었다.

“열일곱살이었지 아마. 첫 징역이 이거 때문이었다.”

“그때가 처음이셨구나.”

“서대문형무소 가본 적 있냐?”

“독립투사들이 수감됐던 곳이잖아요.”

“거기 독립운동 안 해도 갇히더라.”

캄캄한 지하 다방 구석에서 눈 감고도 대마를 말았다는 아버지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나이를 먹긴 먹었네. 눈도 침침하고 손이 마음대로 안 움직여.”

제법 집중력과 섬세함을 요구하는 작업이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패착은 담배 종이가 침으로 잘 붙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시무룩한 아들의 모습을 곁눈질하던 아버지는 구구절절 말을 늘어놓았다.

“이게 원래 종이가 따로 있거든. 재질이 맞는 게 있단 말이야.”

“A4용지는 어때요?”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좀더 얇고 부드러운 게 필요하다. 이를테면……”

주변을 둘러보던 아버지의 시선이 한 곳에 멈췄다. 그곳에는 성경책 한권이 놓여 있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어머니의 것이었고 친할머니의 유품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죠. 이 말이 왜 나오지 않았나. 종교에 대한 반감도 이유였겠고 대마를 향한 호기심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냥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만취 상태였다. 해지고 제본도 벌어져 터질락 말락 하는 책 한권에 얼마나 대단한 가치가 있겠는가 싶었던 것이다. 나는 은근한 기대를 품고 아버지를 바라봤다. 아버지는 성경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신음했다. 그가 머뭇거리는 모습이 생소했다. 답지 않게 왜 이래? 이런 생각이 울컥 치밀었다. 나는 성경을 집어 들고 낱장 몇개를 찢어 아버지에게 건넸다.

 

친할머니를 교인으로 만든 것은 친할아버지였다. 친할아버지는 당시로서는 흔치 않게 고등교육을 받고 나라에서 높은 직책을 맡았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었다는 그는 겁 없이 여러 사업에 거금을 투자했고 하필이면 가장 큰 돈을 들인 일이 잘못돼 가세가 크게 기울었다. 그때 친할머니가 찾은 것이 교회였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었고 그는 기도했다. 사랑이 많으시고 늘 은혜로우신 우리 주 하나님 아버지, 구원하소서.

친할머니의 기도는 그랬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같은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속히 집안 형편이 나아지길, 남편이 더는 일을 크게 벌이지 않길, 장남이 사람을 때리거나 마약을 유통하지 않길 하는 식으로는 입 밖에 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기도를 한다는 점에서 언어가 지닌 주술성을 믿는 사람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육성으로 발화한 순간 애써 외면하고 있던 현실의 실체를 인정해야 했을 테니까. 안타깝다면 안타깝고 비겁하다면 비겁한 그 기도의 진정성만큼은 하늘에 가닿았는지 가세는 균형을 회복했고 그 직후 친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그 영향으로 아버지도 청소년 대마 딜러를 은퇴했으니 친할머니의 바람은 얼추 이뤄진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그게 문제였다. 짜릿한 기도의 맛을 본 친할머니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지친 심신을 신앙의 벽에 기대 지탱했다. 세상사 힘든 일투성인지라 아버지가 수감과 출소를 일평생 반복하는 동안 친할머니는 하나님과 예수의 곁을 떠나지 못했다.

“며늘아가, 예수 믿어라. 그래야 네 신랑이 정신 차린다. 이게 다 믿음이 모자라서 일어나는 일이야.”

전화를 통해서나 명절 음식을 차릴 때마다 예수 믿으라는 시어머니의 성스러운 잔소리 때문에 어머니는 긴 세월 곤욕을 치렀다. 어머니는 자신 몫의 고난을 남과 나누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본인에게 주어진 일은 스스로 처리하거나 버텨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 사람에게 신앙을 가지라는 것은 현실적인 대안이나 도움과는 거리가 먼 영 엉뚱한 소리였다. 어머니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었다. 중증 알코올중독자이자 제대로 직업을 가져본 역사가 없는 남편을 대신해 아들을 번듯이 키우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다.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

삼천리 강산 위해

하나님 명령 받았으니

반도 강산에 일하러 가세1

 

어머니는 단 한 시기도 멈추지 않고 노동했다. 그는 때가 되면 밭에 나가 농사를 지었고—소작이었다—식당에서 일했으며 가외로 다단계성 알로에 화장품을 팔았다. 마을회관에서 운영위원장이라는 이름의 잡무도 맡아 컴퓨터를 배워 엑셀로 회계 업무를 처리하고 어르신들에게 그림판과 인터넷 뉴스 기사에 댓글 다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날씨가 추워지면 개펄에 나가 능쟁이를 잡고 굴을 캤다.

그럼에도 가난은 물러가지 않았다. 아버지가 있는 한 어림도 없었다. 동네 술집마다 어머니 몰래 외상을 달아두고 노름판을 기웃거리는 정도에서 그쳤다면 감당이 됐을 텐데 아버지는 자꾸 뭔가를 부쉈다. 가전제품이나 사람이나 자동차나 어머니의 인격 같은 것들을 말이다. 생전에 친할머니는 말했다.

“너희 아버지는 착한 사람이야.”

그리고 그 말 뒤에, 술만 안 취하면,이라는 단서를 붙이곤 했다. 여태껏 그만한 악담은 들어본 일이 없다. 술에 취하지 않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나 있을까. 숙취가 극에 달한 시기에는 며칠 꼼짝없이 누워 지내긴 했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그 상태도 취기가 완전히 달아났다고 하기는 힘들었으므로 친할머니의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하자면 아버지가 착한 사람인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친할머니는 제 아들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해석하려 드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악행을 저지르는 원인을 엉뚱한 곳에서 찾았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아버지가 이상해진 것은 고등학생 때 야구부에 가입하고부터였다. 그곳에서 질 나쁜 친구들과 어울린 탓이라는 얘기였다. 친할머니는 운동하는 사람에 대해 부당한 편견이 있었고 주장은 주장일 뿐이었지만 확실히, 그들만큼은 내 눈에도 썩 좋은 사람들로 비치지 않았다. 친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마주친 아버지의 친구들은 대중매체가 악당을 묘사할 때의 조건들과 무서우리만치 부합했다. 얼굴에 칼자국이 여럿 난 사람, 상반신에 용 문신을 두르고 민소매를 입고 온 사람, 징 박은 가죽재킷 차림에 껌을 씹으며 영정 사진에 세배를 올린 사람, 그냥 무섭게 생긴 사람……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나도 면식이 있는 아버지의 죽마고우 원용이 아저씨였다. 한동안 안 보인다 싶더니 그는 환자복을 입고 아버지 앞에 나타났다. 대장암 말기라는데, 아무렴 인마, 내가 네 어머니는 모셔야지, 안 그러냐?라는 대사를 금방이라도 옆 빈소에 안치될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 읊었다. 아버지의 질 나쁜 친구들은 의리 하나는 끝내줘서 아버지의 극구 사양에도 운구를 돕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리고 장례 첫날부터 발인하는 새벽까지 해적처럼 술을 마시며 떠들썩하게 놀았다. 과음한 그들은 결국, 미안하다 친구야 도저히 안 되겠다, 우릴 버리고 떠나라며 전쟁 영화에서 들을 법한 대사들을 외치고는 뻗어버렸다. 흥미로운 점은 아버지가 그들 앞에서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친구들이 행패를 부릴까봐, 이를테면 조문객들에게 싸움을 걸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 자제했다고 한다. 놀라운 광경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놀라운 광경은 따로 있었다.

봉안당에 친할머니의 유골을 안치하기 직전, 친할머니가 권사로 있었던 대형교회의 목사가 나타나 의식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 의식이란 일종의 공개 고해성사였다. 고인에게 생전에 전하지 못한 말들, 특히 미안했던 일에 관해 털어놓고 보내드리자는 것이었다. 기름진 면상의 목사가—돼지머리를 든 제임스 헷필드처럼—하얗고 치렁치렁한 의복을 입고 친할머니의 유골이 담긴, 밥통같이 생긴 도자기 함을 옆구리에 낀 채 유족들에게 사죄를 종용했다. 와, 이거 큰일 났다, 아버지가 가만두지 않을 텐데 하는 걱정이 앞섰다. 아니나 다를까 목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버지가 그에게 날듯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유골함에 이마를 댔다.

“엄마, 미안해!”

아버지가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린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라이방 때문에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한편 친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인천을 향한 귀소본능을 고쳐먹은 것처럼 어머니 역시 그전과 달라졌다. 그즈음부터 그는 교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본 것 같은데 세상 풀리는 거 하나 없더라.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시도 안 한 게 딱 두가지 있더라고. 하나는 너희 아버지를 죽이는 거고 하나는 교회를 나가는 것이었지.”

크리스천이 된 연유를 물었을 때 어머니는 이렇게 답했다. 이 말이 농담이 아닌 게 나만 하더라도 아버지를 차도나 계단에서 밀거나 소주에 그라목손을 타는 상상에 시달리곤 했다. 몇번 정도는 상상한 바를 실행할 뻔한 적도 있었다. 이것이 근래에 내가 아버지를 기피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어머니나 나나 아버지에 의해 죽을 뻔한 경험이 한두번 있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나름대로 타당한 현상이었다. 신앙마저 별달리 신통력이 없었더라면 어머니는 아버지를 진짜로 죽였을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예수는 어머니에게 내면의 평안과 약간의 부를 가져다주었다.

어머니는 당신의 동생들과 함께 칼국수 가게를 차렸다. 상호는 ‘벧엘칼국수’. 동네 목사의 아내인 ‘사모님’이 지어준 이름이었다. 매장 곳곳에 십자가와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의 그림, 시작은 미약했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같은 성경 말씀 따위가 붙었다. 시골의 종교 네트워크가 지닌 파급력이란 무시할 게 못됐다. 동네 신도는 물론이고 같은 교파의 다른 지역 사람들까지 찾아왔다. 그들이 홍보를 돕기도 했다. 믿음과 맛이 깊은 칼국숫집이 있다고 하던데요? 종종 버스를 대절해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친할머니의 지인이었던 교인들이었다. 친할머니는 대형교회의 인망 두터운 권사였고 어머니는 그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오로지 돈 때문에 교인이 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무면허 만취 역주행으로 아우디를 들이받았을 때 어머니는 새벽기도에 열의를 올렸다. 치미는 분노 때문에 잠도 잘 오지 않았을 것이고 교도소에 있던 아버지를 당장 암살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당시 어머니의 얼굴은 모든 걸 내려놓은 것처럼 보였다. 승천할 기세였다고 해야 할까. 육수를 우리고 면을 삶고 설거지를 하는 어머니의 뒷모습에 종종 성화에서나 볼 법한 불가해한 빛무리가 둘려 있곤 했다.

“결정적으로 말이야.”

내가 매장 구석에 앉아 까맣게 타서 내어가지 못하는 해물파전을 집어 먹고 있을 때 곁에서 성경을 읽던 어머니가 불쑥 말을 꺼냈다.

“뭔가가 바뀔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 네 아버지가 목사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우는 모습을 보고 말이야.”

그때 어머니가 읽던 성경이 나와 아버지가 대마를 말아 피운 그 성경이었다.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쑥 같은데요.”

“가만히 있어봐. 특상품이라 느낌이 늦게 찾아오나보다.”

각자 한대씩 쑥일지도 모를 대마를 피운 우리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아버지는 대마를 한대씩 더 말기 시작했다. 성경 말씀에 침을 바르다 말고 아버지가, 너가 자꾸 옛날 얘기를 꺼내서 말인데, 하고 화두를 던졌다. 그때 왜 안 울었냐? 나는, 무슨 말씀이신지,라며 말끝을 흐렸지만 아버지의 말뜻을 알아챘다. 아버지는 친할머니의 장례식을, 목사 앞에 무릎 꿇고 고인에게 죄를 고백했던 그 의식에 관해 물은 것이었다.

“온 가족 다 서로 붙들고 울고 있는데 너만 멀쩡하지 않았냐. 네 말마따나, 그 모습이 이상하게 기억에 남아서 언제고 묻고 싶었다.”

조금만 생각해도 답이 보이는 이상한 질문이었다. 눈물은 좋든 슬프든 감정이 복받칠 때 흐른다. 그러니까 눈물을 흘리지 않은 이유는 좋지도 슬프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 이런 속내를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그때의 어정쩡한 기분을 이해시키려면 더 많은 얘기를 꺼내야 하고 아버지는 그 안에 담긴 속뜻과 마음을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어머니와 달리 나는 아버지가 결정적으로 바뀔 수 있을 거라 믿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 언제 적 얘길 하고 그러세요, 하고 말았다. 아버지는 대꾸하지 않았고 술자리가 시작된 후 처음으로 대화가 끊겼다.

아버지는 작업을 멈추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시선은

부모가 자식을 바라볼 때의 눈입니다.

 

어릴 적 TV에서 봤던 한 공익광고 캠페인의 문구가 떠올랐다. 이 말이 기억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는 이유는 반발을 부르는 동시에 동의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상한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눈을 잘 알았다. 선글라스 너머로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동자에는 자식을 너무도 사랑하는 이의 끈적임이 묻어 있었다. 그 가래 같은 점액질 기운이 내 피부에 달라붙고 흐를 때의 불쾌함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아들, 사랑하는 거 알지?”

“알죠. 잘 알죠.”

모른다고 할 수 없었다. 정말 알 것 같았으니까. 이상한 얘기였다.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할 수 있다니. 나는 내 아버지를 아버지라는 이유로 증오했다. 지금이라면 말해도 좋지 않을까. 오늘 술자리를 시작했을 때부터 끄집어내고 싶었던 본심을, 기억을 더듬고 시간을 장황하게 역행해도 서두조차 꺼내지 못한 이 이야기를 털어놓아도 좋을까.

기억하세요, 아버지? 제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아버지는 종종 무릎을 꿇리고 물었죠. 엄마가 좋은지 아빠가 좋은지 말이에요. 저는 곁에 있던 엄마 눈치를 살폈고 어머니는 시선을 피했어요. 그래서 저는 늘 아빠를 택했죠. 거짓말이라며 아버지는 불이 붙은 담배를 제게 던졌어요. 뜨겁다기보다는 아팠죠. 그렇게 몇시간씩 같은 질문에 아빠, 아빠, 아빠,라고 답했어요.

그러다 딱 한번, 엄마랑 살래 아빠랑 살래라는 질문에는 엄마라고 답했어요. 도저히 그 질문에는 거짓을 말할 수 없었거든요. 가정이라 하더라도 너무 끔찍한 질문이었으니까. 답을 들은 아버지는 다정하게 저를 안아주었죠. 그때 처음 아버지 품이 따뜻하단 걸 알았어요. 위로받는 기분이었죠. 아버지는 저를 번쩍 들어 올렸어요. 갓난아기를 안아 드는 것처럼. 키가 크고 팔뚝이 굵은 나의 아버지. 외야수를 맡아 야구장 끝에서 홈까지 한번에 송구를 했다는 단단한 어깨. 당신은 그대로 저를 창문 밖으로 던지려고 했어요. 어머니가 서둘러 가로막지 않았더라면 저는 유리창을 뚫고 뒤뜰을 굴렀겠죠. 그렇게 되었더라도 단층이었으니까 죽진 않았겠지만, 전 알아요. 그때 아버지는 진심으로 제가 죽길 원했어요. 기억하세요? 기억은 납니까?

물어볼까. 지금이라면 괜찮지 않나. 거듭된 교통사고로 어깨에 인공관절을 삽입한 초로의 남자가 장성한 아들을 집어 던질 수는 없을 테니까. 오히려 내 쪽에서 내던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도 되지 않나. 이미지가 떠올랐다. 아버지의 양발을 붙잡고 프로레슬링 선수처럼 빙빙 돌리다 창문 밖으로 내던지는.

아버지가 두번째 대마를 내밀었다. 다정한 눈매였다. 나는 잠자코 그것을 물고 불을 붙였다. 우리는 연기를 들이켜고 뿜었다. 그 어떤 특별한 감각도 찾아들지 않았다. 탁하고 역한 건초 타는 냄새가 거실을 메우고 코를 자극했다. 술기운까지 싹 가신 것만 같았다. 쑥이다. 이건 무조건 쑥이다. 그렇게 확신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담배를 하나 집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무심코 나도 호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담배 피우냐?”

아버지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뒤늦게 내가 흡연자라는 사실을 아버지에게 숨기고 살았단 사실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다른 것은 다 용서해도 문신과 흡연만큼은 허락하지 않는다고 버릇처럼 말했으니까. 딱히 이 문제 외에도 아버지가 뭔가를 용서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지만 기왕 들킨 김에 덤덤하게 네, 뭐, 하고 라이터를 켰다. 그러자 아버지가 손에 들고 있던 불붙은 담배를 내게 던졌다. 뜨겁지 않고 아팠다.

“이 쌍놈의 새끼가 어디 아버지 앞에서!”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분노에 담배와 라이터를 내려놓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버지와 아들 간에 마주 보고 대마는 할 수 있어도 담배는 안 되지. 지당한 말씀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역시 잘 안 바뀌어요.”

“뭐가 인마.”

“예전부터 그랬잖아요. 담배든 재떨이든 사람이든 던지는 거, 좋아하셨죠. 그래서 엄마도 아파트 창문으로 떨어트리려고 했잖아요.”

7층에서 씨발새끼야.

 

“너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냐.”

외할머니는 종종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돌아가신 친할머니가 아니라 여태 정정하신, 어머니의 어머니 말이다. 그는 당신의 남편이 고인이 되고 나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은 내 덕이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게 20리터짜리 수동분무기를 등에 지고 농약을 뿌리거나 용달차로 작물을 실어 나르는 일은 주로 남자 몫이었기 때문이다. 한량인 아버지는 경운기 운전법도 몰랐으므로 밭에서 이른바 ‘남자가 해야 할 일’은 중학교 때부터 오롯이 내가 도맡았다. 내가 타지에서 대학을 다니고 직장을 잡은 탓에 예전만큼 일손을 거들 수 없게 된 뒤로 소유하던 밭을 하나씩 처분하고 축소했지만 외할머니는 아직도 농사를 지었다. 허리가 말 그대로 호미처럼 굽었음에도 말이다. 그는 지금도 출가외인인 장녀의 아들에게 고맙다고 하면서도 꼭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내가 아직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 외할머니는 어머니에게 낙태를 강권했다. 외할머니의 사정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더 늦기 전에 당신의 딸을 구하고 싶었을 것이다.

“정말로 어쩔 뻔했냐.”

부모님은 오래된 주공아파트에 신혼살림을 꾸렸다. 그들은 처음부터 불행했다. 어머니는 아버지 때문에 불행했고 아버지는 자신이 불행한 이유를 찾지 못해서 불행했다. 그래서 그들은 싸웠다. 동등한 조건의 싸움이 아닌 승세가 일방적인 다툼이었지만. 하루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거꾸로 들고 아파트 베란다에 섰다. 그는 어쩌면 어머니와 함께 죽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외로움에 취약한 사람이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죽으려면 혼자 죽을 것이지.

우여곡절 끝에 목숨을 건진 어머니는 그대로 도망을 쳐 고향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이혼을 준비했지만 그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아버지가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빌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나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배 속에 내가 있었다. 방바닥에 바짝 엎드려 애처롭게 비는 아버지의 빽빽한 정수리를 어머니는 당신의 배를 매만지며 무감하게 바라보았다. 그때 어머니는 내가 발길질하는 것을 느꼈고, 그 순간 결단을 내렸다. 아무리 그래도 아버지 없는 자식은 안 되겠지. 내 자식이 그런 소리를 듣고 커선 안 되겠지.

두 사람이 재결합하고 내가 태어난 직후까지 나름대로 평안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장인 장모를 따라다니며 농사를 거들고 술도 자제했다. 그러나 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다시 음주와 폭력에 손을 댔다.

 

눈을 감고 담담히 때를 기다렸다. 주먹이나 발길질, 하다못해 재떨이도 날아들지 않았다. 이상한 기척이 들어 눈을 떠보니 아버지가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그는 배를 잡고 웃고 있었다. 그야말로 포복절도였다. 인생 최고의 농담이라도 들은 사람처럼 발을 굴렀다. 웃음소리 대신 구멍 뚫린 폐에서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어머니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류머티즘으로 퉁퉁 부은 손마디를 매만지며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고 그곳에 서 있었다. 그가 쓰러져 발광하는 남편과 뜯어진 성경책을 번갈아 보았다. 아버지는 어머니 곁으로 기어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선글라스가 바닥에 떨어졌다. 아버지는 눈물을 흘렸다.

“여보, 미안해!”

아버지는 뿜어져 나오는 웃음을 누르며 말했다. 그 모습이 우스워서 나도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배를 잡고 해충처럼 버둥버둥하면서 웃어버렸다. 어머니는 그런 우리를 오래도록 지켜봤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물통을 꺼내 잔에 물을 따라 마신 뒤 방으로 돌아갔다. 문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그대로 거실에 쓰러져 숨을 몰아쉬었다. 웃음이 멎었다. 그때를 기점으로 내 의식은 육신의 헤게모니를 대거 잃었다. 나의 몸이 그저 나와 같은 얼굴을 한 깡통 로봇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진짜 나’는 소인이 되어 골통 속에 숨겨진 조종석에 앉아 필사적으로 뻑뻑한 핸들을 돌리고 녹슨 스틱을 움직였다. 말하자면 제정신이 아니었다. 갑자기 겁이 났다. 모든 게 잘못된 것 같고 감당하지 못할 죄를 저지른 기분이었다. 오래된 무성영화 사이사이에 삽입된 자막처럼 머릿속에 문장들이 떠올랐다. 태어나기도 전에 지은 죄는 어떻게 씻지? 어쩌면 태어나고 싶어서 죄를 짓는지도 몰라. 죄인이 되려고 태어나는 거지. 죽으면 성인이 되는 거고. 자, 이제 가자. 떠날 곳이 있으니 떠나야지. 나는 바닥에 놓인 아버지의 차 키를 챙기고 비척거리며 밖으로 나섰다.

명절의 이른 새벽 시골길에는 차가 잘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릴 적부터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중앙선을 아슬아슬하게 침범하며 차를 몰았다. 예전과 달리 가로등의 수가 늘었고 나트륨등이 아닌 LED로 모조리 교체돼 있었다. 밤길이 너무 밝고 하얘서 어두운 곳을 골라 달릴 수가 없었다. 그간 무수한 덤프트럭과 굴삭기들이 오가며 나의 고향은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그 사실이 나를 더 겁먹게 했다.

스피커에서 올드 록이 흘러나왔다. 다시 머릿속으로 문장이 타이핑됐다. 음악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다. 왜냐면 음악은 정신을 맑게 만들거든. 아버지의 지론이었다. 그 말대로 정신을 맑게 하려고 찾는 것이 음악이라면 음악 듣기에 열중인 사람은 본래 제정신이 아니란 말일까. 제정신이 아닌 사람은 나쁜 사람이고. 음악을 듣다보니 어쩐지 조금은 착해진 기분이 들었다. 친할머니 말이 옳았다. 아버지는 착한 사람이다.

바다 위를 길게 가로지르는 다리에 다다랐다. 풍경과 진로가 바뀌지 않는 다리 위를 지루하게 달리다 불쑥 잠이 오기 시작했다. 침침해진 눈을 몇번 감았다 떴더니 앞이 별안간 새까맸다. 바다에 빠진 건가 했더니 그건 아니고 고개를 숙인 채 아주 잠깐 졸았을 뿐이었다. 나는 자세를 바로 하고 정면을 살폈다. 다행이야. 하마터면 혼자 죽을 뻔했네. 다시 가자. 인천으로.

 

삼십여년 전, 중앙선을 침범한 경차 한대가 원용이 아저씨의 ‘각 그랜저’를 들이받았다. 가벼운 접촉사고였지만 마음먹고 뽑은 고가의 신차였던지라 그의 분노는 이루 말하기 힘들었다. 사고를 낸 운전자는 그보다 어린 여성이었다.

“지금 사업차 바쁜 길을 가고 있으니 배상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합시다.”

그들은 연락처를 교환했고 머지않아 원용이 아저씨는 그녀와 약속을 잡았다. 두 사람은 제물포의 한 다방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 당일, 다급한 용무가 생긴 그녀는 대리자로 자신의 친구를 약속 장소에 내보냈다. 부평 상가의 한 꽃집에서 일하는, 체격이 왜소하고 천진한 눈을 가진 여성이었다. 그녀는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가 상대를 기다렸다. 정해진 때가 되었지만 아무도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여성은 사고를 낸 당사자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고 그 친구는 원용이 아저씨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는 사업과 관련된 예기치 못한 사정이 생겨 약속 장소에 나갈 수 없다, 대신 친구를 보냈으니 기다려달라고 말했다.

사고 당사자들은 부재하고 대리인만 참석하기로 한 이상한 자리에서 그녀는 한시간 이상 더 머물렀다. 그런 사람이 있다. 별 까닭 없이 성실하고 선한. 그녀가 그랬다. 시간을 헛되게 보내고 있어도 화가 치밀지 않았고 다만 모든 일이 원만히 해결되길 바랐다. 그래서 별 까닭 없이 태만하고 악한 사람도 존재할 수 있는지 모른다. 누군가의 인생에 한둘쯤은 존재하며 평생에 걸쳐 마주할 수밖에 없는, 한 사람의 인생을 말아먹기 위해 인과 밖에서 탄생한 천부적인 악당 말이다.

드디어 상대편 대리인이 나타났다. 청바지 안에 셔츠를 집어넣어 입은 그는 덩치가 크고 턱선이 날렵한 미남이었다.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어쩐지 위축되었지만 남자의 속내는 달랐다. 그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다.

실제로 그후 그는 그녀가 일하는 꽃집에 매일 찾아간다. 늘 붉은 장미를 사서 그녀에게 선물한다. 두 사람은 일년이 넘는 연애 끝에 결혼을 하고 한 오래된 주공아파트에 신혼살림을 장만한다. 운명적인 러브 스토리 혹은 내가 태어나기 위해 억지로 짜 맞춘 허구처럼.

미소를 짓는 그가 첫인사를 나누려 그녀에게 다가간 순간, 통유리 창문을 산산이 깨뜨리며 차량 한대가 다방 안으로 밀고 들어온다. 비극의 원인을 제거하려고, 자신이 태어나지 않기 위해 꼬박 한시간을 비틀거리며 미래의 아들이 몰고 달려온 차였다. 아들은 액셀을 더 세게 밟고 핸들을 꺾어 그에게 달려든다. 그는 범퍼 측면에 들이받히고 와이어를 단 스턴트맨처럼 비현실적인 움직임으로 날아가 벽에 부딪힌 뒤 바닥에 쓰러진다. 양어깨가 으스러지고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운전자석이 열리자 차 안에서 올드 록의 가사가 흘러나온다.

 

Lord, I can’t change

won’t you fly high

free bird

 

그는 잘 움직이지 않는 고개를 틀어 운전자를 올려다본다. 가까이 다가온 운전자의 손에 나무상자가 들려 있다. 단면이 거칠고 손때가 많이 탄 물건이다.

“멀쩡히 살아 있군요. 넌 오늘 뒈졌어.”

아들은 상자를 열어 그 안에서 장미 대신 잘 말린 대마 잎에 싸여 있던 권총을 꺼내 든다. 총구를 아버지에게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다. 찰칵. 격발되지 않는다.

“이럴 줄 알았지. 그거 알아요? 한번도 아버지를 죽이는 데 성공한 적이 없어요. 이미지가 성립되질 않거든요. 아버지는 왜 안 죽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운전자는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댄다. 찰칵, 탕. 격발된 탄환이 머리를 꿰뚫고 아들이 쓰러진다.

“이런 건 쉬운데 말이지.”

자동차가 폭발하고 주변이 화염에 뒤덮인다. 비명이 메뚜기 떼처럼 허공을 날고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안개처럼 땅 위로 드리운다. 가난한 자들이 연출한 블록버스터 같은 비주얼을 배경으로 멀리서 무신론자가 부르는 찬송가가 들린다. 바닥에 드러누운 아들과 아버지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나는 눈을 떴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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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새찬송가 580장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남궁억 작사, G. Donizetti 작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