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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안드레아스 말름 『코로나, 기후, 오래된 비상사태』, 마농지 2021

기후위기에 대응하라, 지금 당장!

 

 

성한아 成翰雅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연구원 ha.sung51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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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 하면 떠오르는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2006)은 미국의 부통령이었던 앨 고어(Al Gore)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알리는 내용을 담은 영화다. 영화는 지구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이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제안하면서 끝을 맺는다. 여기에는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정치적 움직임을 촉구하거나, 전기 코드를 뽑고 자원을 아끼는 작은 실천들이 포함된다. 영화가 개봉되고 무려 15년이 지났지만 지구온난화는 점점 더 심각해져서 이제는 적극 대응하지 않을 수 없는 급박한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지구온난화 혹은 기후변화 대신 ‘기후위기’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다. 기후변화가 ‘위기’라면, 그에 대한 해결책도 이전과는 달라야 할 것이다.

스웨덴의 생태사회론자이자 환경사상가인 안드레아스 말름(Andreas Malm)의 『코로나, 기후, 오래된 비상사태』(Corona, Climate, Chronic Emergency, 2020, 우석영·장석준 옮김)는 지구온난화 문제에 보다 즉각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책이다. 이 책은 기후변화의 증상을 진단하기보다 기후위기의 원인과 그에 따른 대응 방법을 고민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저자가 제안한 해결책은 개인이 일상을 변화시키는 수준을 넘어 국가가 주도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이는 저자가 기후위기의 원인을 어디서 찾느냐 하는 문제와 연관이 있는데, 이 책이 가진 차별점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말름은 기후위기의 원인이 코로나19 팬데믹을 일으킨 원인과 강하게 연동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기후위기와 팬데믹, 두가지 문제를 일으킨 동인은 야생에 기생해 몸을 불리려는 ‘기생자본’의 욕망이다. 코로나19가 박쥐로부터 유래됐다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말름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박쥐와 인간의 접촉이 빈번해진 변화를 짚는다. 그 배경에는 야생동물을 거래하는 웻 마켓(wet market, 노점시장)이 중국을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성행하는 현실이 있다. 서식지에서 포획한 야생동물을 처리해 고기로, 상품으로 판매하는 시장은 점점 더 증가하는 수요에 따라 더 깊은 야생을 침범하는 일로 이어져왔다. 이 시장에서 희귀한 야생동물은 더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는 상품이며, 이를 소비하는 이들은 비싼 값을 치를 수 있을 만큼의 경제력을 확보한 계층이다. 또다른 원인으로 산림 파괴도 손꼽힌다. 농장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대규모 벌목이나, 무분별한 자원 채취 과정에서 숲은 인간과 야생동물이 접촉해 바이러스를 주고받을 수 있는 위험지대로 변모한다. 숲의 파괴는 곧 이산화탄소 흡수를 저해해 지구온난화를 촉진하는 대표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산림 파괴를 주도하는 것은 역시 대규모 자본을 투입할 수 있는 기업이다.

이산화탄소 발생원으로 손꼽히는 항공 산업은 팬데믹을 전지구적 규모로 확산시킨 원인이기도 하다. 저자는 팬데믹과 기후변화의 원인이 이토록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다면, 현재는 특정 지역에 국한해 그 피해가 목격되고 있는 기후위기도 언젠가는 팬데믹처럼 전지구적인 연쇄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고 전망한다. 기후변화가 지구적인 규모로 확대된다면 결국 야생동물의 급격한 이동을 야기할 것이며, 이는 또다시 인간과 야생의 접촉 빈도를 증가시켜 예기치 못한 새로운 팬데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묻는다. 코로나19와 기후변화가 야기한 위기가 인류와 지구가 공동으로 처한 위기의 “뒤얽혀 있는 두개의 면”(124면)이라면, 코로나19처럼 기후위기에도 강하게 대응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저자는 그 대응의 방편으로 ‘생태적 레닌주의’를 제안한다. 이는 팬데믹과 기후위기의 원인에 적극적으로 국가가 나서서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비유적 제안이다. 말름은 이미 『화석 자본』(Fossil Capital, 2014)을 통해 화석 자본에 기반해 굴러가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석유 기반 사회로부터 대안사회로 이행할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이번 책에서는 그 일환으로 우선 야생동물 거래 시장을 철폐하고, 야생 서식지를 보호하며, 기업 주도의 산림 파괴를 저지하고, 항공 운항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216면). 그의 생태적 레닌주의는 전세계가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자유의 제약을 기꺼이 선택한 것처럼, 모두가 ‘전시’에 해당하는 현재 상황을 인지하고 생존을 위해 자유를 제약하는 딜레마와 함께 살아가는 일—그는 여기서 해러웨이(D. Haraway)의 책 제목 ‘트러블과 함께하기’(Staying with the trouble)를 차용한다(219면)—이다. 긴급한 위기에 대한 해결은 서서히 이루어질 수 없다.

이 책이 내린 진단에서 흥미로운 점은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과 기후위기라는 연결된 두 문제에 인간뿐 아니라 비인간 동물의 생존까지 얽혀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야생동물은 인간에 복수하거나 반란을 일으키는 존재가 아니라(228면) 기생자본에 의해 인간만큼이나 심각한 생존의 위기에 놓인 존재들이다. 저자는 그 불균형적 관계가 자본의 욕망에 충실한 인간의 의도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강조한다. 그것이 결국 인간 자신에 대한 파괴로 이어진다면, 즉각적인 대응의 필요성은 인간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말름이 생태적 레닌주의를 제안하는 이유는 국가 주도의 비상대응이 전체주의로 흐르지 않기를 가장 깊이 고민해온 분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후위기 비상대응에 관한 그의 제안에 대해서도 코로나19 비상대응에 제기됐던 똑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기후위기 비상대응을 위해 우리가 포기할 수 있는 자유는 어떤 종류인가? 그 조치를 취하는 가운데 새롭게 발생한 짐은 누구에게 부과되는가? 여기서 필요한 시도는 기후위기에 대한 보다 많은 이야기를 발굴하는 것이다. 물론 기후위기의 원인을 팬데믹과 연결한 그의 시도도 그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가 이 책의 끝에 라뚜르주의자, 신유물론자, 포스트 휴머니스트라고 칭한(228면) 이들이 그동안 비인간의 영향력을 드러내려고 해왔던 것도 그 다양한 관계의 양상을 위기의 논의에 포함시키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문제는 여전히 복잡하며, 복잡하게 봐야 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취할 수 있는 당장의 조치를 현실적으로 제안한 그의 책은 15년 전의 문제제기보다 몇발짝은 더 나아간 시도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