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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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평

 

 

제정임‧곽영신 엮음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 오월의봄 2021

차별을 넘어서는 당사자들의 문제제기

 

 

조형근 趙亨根

사회학자 remineur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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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에서 ‘지잡대’를 검색하면 가장 위에 노출되는 ‘나무위키’의 경우 무려 11만자(원고지 560매) 분량의 설명을 담고 있다. ‘문자 그대로 막장’ ‘형편 없는 지식수준’ ‘교수의 자질도 시궁창’ ‘답이 없는 인성’ ‘야만적인 똥군기’ ‘쓰레기 선배들’ 등 혐오표현이 이어진다.”(32면)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생들이 주축이 되어 취재하고, 제정임·곽영신이 엮은 책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의 한 구절이다. (‘나무위키’는 누구나 문서를 편집할 수 있는 한국어 웹 백과사전으로, 2021년 11월 현재는 인용된 것과 같은 과격한 표현은 완화되었으나 여전히 멸시적 설명으로 채워져 있다.) 한때 지방대에 재직한 입장에서 먹먹해진다. 교수직엔 미련이 없었지만, 선생 노릇을 그만두는 건 안타까웠다. 나는 학생들이 좋았다. 그리고 늘 미안했다. 저런 모욕이 횡행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나도 일조한 것만 같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문을 닫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 지 꽤 됐다. 서울에서 먼 순서대로 지방대가 망할 것이라는 말이다. 대학은 많고 학생은 줄어드니 불가항력 같다. 전국 334개 대학과 전문대의 2021학년도 신입생 모집 정원은 49만 2000명인데, 대학 입학 가능인원은 41만 4000명. 신입생 7만 8000명이 모자랐다. 서울권 대학 경쟁률은 여전히 높아서 5.1 대 1을 기록했다. 경기도와 인천을 제외한 지방대 경쟁률은 2.7 대 1이었다. 학생 한명이 정시에서 세곳을 지원하는 체제라 지방대는 사실상 미달이다. 2005년부터 2019년까지 이미 14개 지방대가 폐교하거나 통·폐합됐다. 대학교육연구소가 낸 보고서 「대학 위기 극복을 위한 지방대학 육성 방안」에 따르면, 2024년에는 지방대의 34% 정도가 학부 신입생 정원의 70%를 못 채우게 되고, 10%쯤은 절반도 못 채우게 된다. 그다음엔? 더 나빠질 것이다. 이대로라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퇴출이 마땅하다는 사회진화론이나 수요가 없으면 망하는 게 당연하다는 시장만능주의로 이 문제를 풀 수는 없다. 지방대 위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 책은 지방대 위기라는 증상 속에 수도권과 지방의 일자리 격차, 입시 위주 경쟁교육, 서열화와 승자독식주의, 약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등 갈수록 악화되어가는 한국사회의 병리현상들이 집약되어 있다고 진단한다. 그 깊은 뿌리에 강력한 능력주의 이데올로기가 도사리고 있다. 만만치 않은 과제들이다. 우선은 책을 따라가보자.

지방대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수도권에 좋은 일자리가 몰려 있고, 채용에서 지방대 출신을 차별하는 ‘일자리 불평등’이다. 지역에 질 좋은 일자리가 절대 부족하니 지방대 졸업생들은 수도권으로 몰린다. 필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취업포털사이트 잡코리아의 2019년 5월 채용공고에서 수도권 일자리가 전체의 78.9%를 차지한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일자리 질 지수’(2015년 기준) 상위 39개 지역 중 32곳(82%)이 수도권이며 인턴 모집 공고를 낸 대기업·공기업의 약 80%가 수도권에 위치하고 있다. 더해서 채용 차별도 있다. 공기업조차 지방대 출신을 차별한다. 개인의 실제 성과와는 무관한, 출신학교에 따른 ‘통계적 차별’이 여러 조사에서 관찰되는 것이다. 이러한 통계 분석을 통해 필자들은 지방대 저평가는 제공하는 교육의 질이 낮아서가 아니며 일자리 부족과 지방대 출신에 대한 차별이 얽힌 불평등의 문제라는 것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입시 위주 교육을 비판하는 방식도 흥미롭다. 우리 눈이 얼마나 수도권에 고착되어 있는지 깨닫게 된다. 입시 공정성 논란이 대통령 탄핵의 시발점이 되고, 정권을 뒤흔드는 나라다. 여론을 수습하고자 대통령이 정시 확대 방침을 밝힐 정도다. 대구의 한 고등학생은 이렇게 말한다. “학교에서 정시든 수시든 서울 명문대에 진학할 가능성이 있는 학생들에게만 지원을 몰아주기 때문에 입시제도가 어떻게 변하든 나와 별 상관없는 일로 느낀다.”(114면) 중하위권 성적의 대다수 고등학생과 지방대생에게 입시 공정성 논란은 ‘그들만의 전쟁’이다. 2019년 말 교육부가 발표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에 따른 정시전형 확대로 2023년에 추가 입학하는 학생 수는 전체 수험생의 1.4%다. 그럼에도 소수 상위권 학생들의 명문대 진학 방식이 온 국민의 관심사인 것처럼 부풀려진다. 지방대, 비명문대로 진학하는 대다수의 삶과 미래는 관심사가 못된다.

지방대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더 큰 충격이다. 부산의 한 사립대 졸업생은 몇해 전 학교 신입생 엠티에서 사고가 나 큰 인명피해가 났을 때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잊지 못한다. “미래의 인재들이 다친 줄 알고 깜짝 놀라 들어와 봤더니 지잡대구나…… 불행 중 다행이다” 따위의 댓글들이었다.(29면) 인종주의에 버금가는 극심한 혐오가 공공연하다.

노골적인 혐오와 차별을 이끄는 동기는 무엇일까? 이 책은 불평등을 합리화하는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지목한다. “지방대 출신의 업무 성취도가 낮다는 게 사실로 확인돼 부정적 이미지가 굳어진 경우라면 이는 차별과 혐오가 아닌 합리적 판단에 가깝다고 본다”(36면)라는 서울 소재 대학생의 말이 그 예이다. 본심일 것이다. 사회평론가 박권일이 최근작 『한국의 능력주의』(이데아 2021)에서 ‘세계가치관조사’를 인용하며 강조하듯, 한국인은 절차만 공정하다면 결과의 불평등은 클수록 좋다고 믿는 경향이 강하다. 대학입시, 공채, 고시, 등단 같은 ‘결정적 시험’들이 이런 믿음을 물질화하고 재생산한다. 능력주의의 나라 미국에서 엘리트들이 끊임없이 ‘성과’를 입증해야 한다는 압력에 시달리는 반면, 한국은 한번의 결정적 시험이 평생의 보상 차이를 정당화한다. 이른바 ‘시험 지대추구사회’다.

물론 한국인의 믿음의 세계가 이렇게 일면적인 건 아니다. 현실은 좀더 복잡하다. 2017년의 리얼미터 조사에서는 응답자들의 81.5%가 ‘출신학교차별금지법’에 찬성했다.(65면) 차별 반대의 의지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다만 의지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 대안은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각자도생은 불가능하고, 연대와 협력에 기반한 공공성 모델이 요구된다는 주장을 내어놓는다. 한국 대학의 80% 정도가 사립이며, 지방대 문제는 지방 사립대 문제이기도 하다. 이사진의 절반을 외부의 공익이사로 구성하는 등 운영의 공공성을 높이면서 국가의 재정 지원을 확대하는 공영형 사립대 모델이 적극적으로 소개되는 이유다. 필자들은 지역거점국립대, 지역국립대, 공영형 사립대와 독립형 사립대가 연대하여 자원을 공유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수평적인 대학통합네트워크도 제안한다. 어렵더라도 가야 할 길이리라.

이 책의 내용은 2년간 비영리 독립언론 ‘단비뉴스’에 연재된 것이기도 하다. 정보량이 무척 방대한데 한권의 책으로 읽으니 논점 정리가 일목요연하다. 이 주제를 위한 자료집으로도 손색이 없겠다. 무엇보다 필자들이 지방대 문제의 당사자들이라서 뜻이 깊다. 지방대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소중한 결실이다.

조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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