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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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인 申利仁

1994년 서울 출생. 202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seeneeneen@gmail.com

 

 

 

도둑 고양이

 

 

1. 괴물

 

지난가을 어떤 고양이를 지독하게 쫓아다녔다 이제껏 한번도 좋아해본 적이 없는 품종의 고양이 조용한 고양이 예의가 바르고 몸단장에 신경을 쓰는 고양이 사람 말을 할 줄 아는데 자기가 강아지라고 말하는 고양이

 

나는 그 고양이네 집에 가서 사기그릇을 깨고 배수관을 터트리고 행거를 넘어뜨렸다 입에서는 ‘좆됐다’ 소리가 나와버렸고 ‘욕도 해요?’ 고양이는 무서워하며 내게 조금씩 거리를 뒀다 캄캄한 꿈속에 대고 고양아 고양아 부르면 오지 않았지만 고양이라 부르기를 멈췄을 때 다가와서 멍멍 소리를 냈다

 

멍멍

 

(번역: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만큼 훌륭한 동물이 아닙니다. 그러나 당신이 절 훌륭하지 않은 동물이라 여기는 것은 견딜 수 없습니다. 나는 훌륭해지기 위해 매일 털을 빗고 세수를 하고 깨끗한 양말을 골라 신습니다. 나쁜 말을 쓰지 않고 소리 나지 않게 주의해 걸으며 향수를 잊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정말로 현명하다면 내가 바라던 주인이자 몸종이라면…… 나의 진실을 벌써 눈치챘겠지요…… 그 사실을 떠올리면 발톱을 꺼내서 털을 마구 헝클어뜨리며 이 방 창문까지 날아오르고 싶어집니다. 침대 위에서 눈 감은 채 은근하게 웃는 당신 얼굴을 참을 수 없어요. 자, 이래도 내가 고양이입니까? 나는 부리를 꺼내 당신 정수리를 찍습니다.)

 

고양이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넌 날 몰라 네가 뭘 안다고 너는 아무것도 몰라 가끔 고양이는 두 발로 걸었고 세 발로도 걸었고 걷지 않고 움직이기도 했다 정말로 고양이가 아닐지도 몰랐다 그러나 피투성이 이마로 눈을 뜨면 난 되뇌어야만 했네 고양이다 고양이야 내가 쫓아간 고양이 그러니까 어젯밤 그건 일종의 애정 표현…… 입맞춤…… 내가 모르는 세상에는 부리와 날개와 단지 독특한 사랑법을 가졌을 뿐인 고양이가 있는 것이다

 

침대 아래에는 모서리 많은 파편이 자갈처럼 깔려 있으며

고양이는 이것을 본인이라 말한다 자 걸어봐 내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걸어봐

네가 선택한 아픔을

염치없이, 고양이에게 이해를 바랄 수 없는 아픔을

불안 굉음 적목현상 의기소침 연민 안으면 흘러내리는 부드럽고 연약한 몸 그 안에 무수한 칼날

모두 고양이였다고 생각해?

쏟아지는 옷 더미와 젖은 바닥과 사방에 널린 날카로운 조각 꿈의 조각

어지러이

 

나는 얼마간 분실되었다

내가 모르는 세상에서

알 수 없는 동물이 되어

 

 

2. 연인

 

봄에 나는 우연한 계기로 사람 말을 할 줄 아는 강아지를 만나게 되었다 ‘안녕, 반가워요’ 그의 첫 마디를 들었을 때 나는 깨달았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는데 한번에 반하는 것처럼 깨달았다 당신이다 당신이 고양이에게 말을 가르쳤다 조용한 당신 예의가 바르고 빈틈없는 당신 오늘 처음 만났지만 내가 열렬하게 좋아해본 적 있는 당신 외에도 중요한 여러 당신을 도둑맞은 당신이다 나는 당신이 보여주지 않은 빈틈을 본다 그 빈틈에 들어맞는 조각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서리가 얼마나 날카로운지 안다 고양이는 사라졌고 당신은 강아지도 고양이도 아니다 그러나 당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 나 이 여름이 지나기 전에 당신을 이해한다

 

 

 

영접

 

 

너는 악기란다

너를 사용해라

그러나

맹세해라

스스로를 파괴하는 어떤 행동도 않겠다고

 

오래전 신과 약속했다

—나는 귀신이랑 한 약속도 잘 지킨다

 

폐건물에

연주자로 초대되었었다

셔터를 내리고 문을 잠근 후 시작되는 그들만의 생활 그들만의 파티 그들에게 내놓은 매물

 

온몸의 열쇠 구멍을 다 잠가놓고

열쇠는 신에게만 넘겨주었다

 

바람이 세게 불 때마다 저절로 비명이 흘러나왔다

리코더처럼

신은 노래를 좋아했고

날 들었다가 안았다가 만졌다가

구멍을 두루 보살피며 멜로디를 지었다

느린 멜로디

 

어느 순간 나는 이 노래가 듣기 싫었다

이건 무슨 장르인가요?

 

대답이 없었다

고요 속에서

내가 듣기 싫은 노래

내가 부르고

내가 듣는 날

 

내가 듣는 나

 

♫♫♫

 

흉가 체험이 유행하던 여름에

당신은 몇개의 버려진 물건들을 보았습니다

 

금 간 엘피판과 휴지심

거미줄인지 곰팡이인지 모를 것이 뭉쳐진 이불을 보았어도

아마 나를 발견하진 못했을 텝니다

나는 이불 밑에서 숨죽여 울었습니다

들키기 싫어서

들킨다면

 

당신은

고함을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고 도망가거나 기절했을 것입니다 환하고 북적거리는 장소로 뛰어가 자신이 맞닥뜨린 것에 대해 상세히 늘어놓고 즐거움을 나누었을 것입니다

 

나는

그런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고

즐겁게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구멍이 많은 악기로 태어나 자리에 가만 있다보면

소음을 내기도 하고

음악을 만들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이 지구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조차 바쁘게 편을 바꾸고

그걸 바람이라고 배워왔습니다

 

음…음…음

 

아무리 사랑받아온 음악가라도 어느 순간 말할 수 있다

저는 음악을 한 적 없습니다

지긋지긋하고 추한 신음을 멈추지 못했을 뿐

그것이 나의 인생이라면

여러분은 무엇에 박수를 치고 무엇에 감동했다 말하겠습니까

차라리 내가 철저히 망해버렸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다면

이렇듯 숭악한 포르노쯤 한두번으로 멈춰도 충분하였을 텐데

아무리 미움 받아온 매미라도 생각할 수 있다

여름 동안, 저는 몸을 바쳐 노래를 불렀고 한번뿐인 사랑을 했습니다

수천수만의 영화에 배경음악으로 쓰일 만큼 멋진 사랑을요

아무리 우렁찬들 무시되었을 수도 있겠다만

그것이 나의 인생 전부였다면 어떻습니까

 

♫♫♫

 

이건 온전한 나의 의지로, 멜로디에 붙인 가사다

 

끝내 의지를 가진 악기를 벌주기 위해

신은 자유를 알려주기로 결정했다

가거라

어디 한번 가보거라

 

나는 열쇠를 쥐고 문으로 간다

귀신의 집에서 아무렇지 않았던 건

용감해서가 아니라 내가

귀신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지

숨지 않고 살았으나

저절로 숨겨졌던

 

투명이라는 속성이 적합할까? 이제 와선

폐가가 나를 위하여 있고 내가 폐가를 위하여 있는데

 

산꼭대기에 서서 몸을 펼치고 바람이 거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기차처럼 나를 뚫고 지나갈 때에

 

피리 소리가 난다

맛있는 피리 소리가 난다

다리 없는 뱀에서부터 다리 수십개 지네까지

 

열린 문으로 돌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