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창작과비평
현장

 

집토끼가 아니라 호랑이다

20대 여성의 정치 참여를 중심으로

 

 

김은지 金銀智

『시사IN』 기자, 저서 『20대 여자』(공저)가 있음.

smile@sisain.co.kr

 

 

지난 3월 31일 권인숙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의원실의 주최로 ‘제20대 대통령선거 이후 2030 여성들의 민주당 입당 의미와 과제’ 토론회가 열렸다. 대선 이후 20대 여성을 중심으로 민주당 입당이 대폭 늘어 기획된 행사였다. 민주당 조직국의 관계자는 관련 규모를 외부로 공개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16만명의 새로운 당원이 입당했다”는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의 말을 통해 현상의 규모를 짐작해볼 수 있다.

발제자로 참여한 필자에게 흥미로웠던 것은 유튜브 생중계 채널에서 본 실시간 댓글 반응이었다. “우리는 집토끼가 아니라 호랑이다”라는 댓글이 호랑이 이모티콘과 함께 빠른 속도로 끊임없이 올라왔다. 각기 다른 아이디를 가진 사람들이 비슷한 목소리를 냈다. 정치인이나 정당에 대한 지지를 팬심으로 해석하는 관점을 거부하는 “팬이 아니라 유권자다”라는 내용도 많았다. 행사에 온라인으로 참석한 2030 여성 당사자들이 직접 자기 목소리를 낸 것인데, 이는 20대 대선이 불러온 가장 흥미로운 장면 중 하나였다. 대선 과정을 끝까지 지켜보다 막판 결집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시한 젊은 여성들이 한발짝 더 나아가 정치 참여로까지 걸음을 옮긴 것이다.

3월 9일 본투표 하루 전날까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10%포인트 차이로 윤석열 후보가 이길 것이라고 단언하고 다녔다. 숱한 ‘정치평론가’ 또한 비슷하게 예측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승패만 맞았을 뿐이다. 여럿을 민망하게 만들 만한 숫자가 대선 결과 분석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무엇보다 윤석열 후보의 신승을 만든 0.73%포인트라는 차이, 그리고 58 대 58 로 나뉜1 20대 남녀 표심이 그랬다.2

누군가 내게 ‘대선을 취재한 정치부 기자로서 이런 결과를 예상했느냐’고 물어본다면, 나 또한 머쓱하다. 사실 2016년 총선 이후부터 선거 결과 예측은 시도조차 안 하고 있다. 2016년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이 단독 개헌선(200석)까지 차지할 것이라는 여론조사와 전문가 예측이 쏟아졌다. 그러나 결과는 새누리당 122석, 민주당 123석. 여소야대로의 전환이었다. 무참하게 박살 난 ‘예측’을 지켜보며 “정치부 기자가 제일 못 맞힌다”라는 반농담 반진담과 함께 예단을 삼가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래도 이번 대선에서 24만여표, 0.73%포인트 차이라는 ‘역대급’ 결과가 나올 줄은 정말 몰랐다.

다만, 개표방송을 보며 내심 어깨를 으쓱한 장면이 있다. 20대 여성 표심이었다. 대선 한달 전인 지난 2월 『20대 여자』(시사IN북)라는 책을 펴냈다. 2021년 8월 『시사IN』에서 보도한 ‘20대 여자 현상’ 기사 시리즈3를 기본으로 두고, 당시 지면 분량상 공개하지 못했던 무수한 웹조사 데이터와 국승민 오클라호마대학 교수, 정치학을 전공한 정한울 한국리서치 연구위원의 원고 등을 추가해 엮었다.

『20대 여자』의 핵심 요지는, ‘젠더 이슈’가 한국사회의 새로운 정치 균열로 떠올랐고 적어도 20대 내에서는 주요 전장(戰場)이라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사회에서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바로미터는 한미동맹이나 남북관계에 대한 태도, 성장과 분배 사이의 선호 등이었다. 그런데 이 틀로 요즘 20대를 보면 잘 읽히지 않는다. 위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응답 양상은 ‘성차별’에 대한 20대 남녀의 인식 차이만큼 뜨겁지 않다.

웹조사4를 통해 본 20대 여성 다수는 ‘나는 약자는 아니지만 차별받고 있다’라고 응답했다. 즉 사회구조 속에서 ‘나와 세상의 관계’를 파악한 것이다. 20대 남성 다수가 자신을 약자로 인식하는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또한 지금의 20대에게 페미니즘은 젠더 문제로만 머물지 않았다. 분배·노동 등 다른 의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확립하고 ‘지지 정당’을 결정하는 데까지 영향을 미치는 변수였다. 정치권에서 20대 여성 표심을 중요하게 살펴야한다고 생각한 이유다.

『20대 여자』의 출발점은 2021년 4·7 보궐선거였다. 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당시 20대 남성 72.5%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를 지지했다. 이는 60세 이상 유권자(남성 70.2%, 여성 73.3%)와 비견되는 수치였다. 보궐선거 후 정치권과 언론은 ‘20대 남자 현상’을 주목했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이것이 뉴스, 즉 새로운 얘기가 아니었다. 2019년 『시사 IN』에서 이미 반(反)페미니즘 성향이 강한 20대 남자 집단을 발견하고 분석한 기사와, 이를 토대로 한 책 『20대 남자』(천관율·정한울, 시사IN북)를 펴낸 바 있다. 오히려 취재진의 눈길을 끈 수치는 ‘15.1%’, ‘기타’로 분류된 제3정당에 표를 준 20대 여성 표심이었다. 정권 심판론이 강력하게 작동하던 선거였고, 문재인정부와 여당(민주당)에 실망한 20대 남성은 보수야당(국민의힘) 지지로 선회했다. 그럼에도 20대 여성은 그러지 않았다. ‘왜?’라는 질문을 안고 대규모 웹조사를 벌이며 이들의 여론 지형을 살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페미니즘에 우호적인 집단이 20대 여성 전반의 여론을 끌고 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해볼 수 있다. 데이터상 20대 여성은 소수자가 겪는 차별에 대한 금지 및 사회적 다양성을 우선시하는 정치세력을 선호하는 경향을 띠었다. 개방적이고 연대의식이 높은 편이었다. 사회·문화 영역에서 진보적인 태도를 지녔으며, 정치에 관심이 많고 정치 참여에 높은 열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효능감을 가질 만한 정당과 정치인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우리는 이들을 ‘부유하는 심판자’라고 명명했다.

제도권 정치는 그래서 중요해 보였다. 20대 여성 표심이 ‘부유하는’에 머물지 ‘심판자’에 방점이 찍힐지 정치권의 역할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향후 정치 상황에 따라 이들의 파워는 유동적이다. 다가올 선거에서 이들의 표심 또한 한국 정치 역학을 가늠해보는 바로미터 중 하나가 될 수 있다.”(『20대 여자』 111면) 이는 당연히 대선에도 적용되는 내용이었다.

안타깝게도 ‘부유하는 심판자 20대 여성을 주목하라’는 주장은 정치권에서 상당 기간 ‘소수의견’에 머물렀다. 여기에는 기존의 젠더 권력이 작동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모두 한표씩을 가졌지만, ‘화가 난 일부 20대 남성’의 목소리가 대선 기간 동안 상대적으로 더 가시화되었다. 여의도 정치권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청년 유권자의 보편 얼굴을 남성으로 상정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당시 청년과 접점을 늘리겠다며 온라인플랫폼을 만든 홍준표 후보의 아이디는 ‘준표형’, 대선 과정 중 열린 윤석열 후보의 유튜브 채널 이름은 ‘석열이형TV’였다. 보통 부동층이 ‘캐스팅 보터’로 대접받는 데 비해, 희한하게도 이번 대선에서 20대 여성들의 표는 ‘없는 표’ 취급을 받았고, ‘나를 안 찍을 것 같으니 상대도 못 찍게 만들자’는 정치공학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반면 이준석 대표가 주장한 ‘세대포위론’은 여야 할 것 없이 암암리에 ‘학습’하는 모양새였다. 이 대표는 전통적인 보수정당 지지층인 60세 이상은 물론이고, 반페미니즘 성향이 강한 20대 남성과—그리고 이러한 경향성이 이어지는 30대 남성 일부와도—연합해 민주당 지지세가 센 4050 유권자를 고립시키겠다는 전략을 공공연히 설파하고 다녔다. 이러한 전제의 핵심에는 젊은 여성들이 이재명 후보를 찍지 않으리라는 셈법이 있었다.

이재명캠프도 내심 동조했다. 이재명 후보의 개인적인 약점이 20대 여성에게 더욱 취약하며 ‘무섭다’는 이미지로 다가간다는 내부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민주당의 권력형 성범죄사건 등으로 20대 여성 표는 애초 기대하기 어렵다는 기류가 이재명캠프 내에서 선거 후반까지 이어졌다.

그래서인지 대선 초반 이재명 후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드러나는 반페미니즘 성향의 20대 남성 표를 구애하는 데 집중했다. 홍준표 후보가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패하자 그 지지자 그룹을 공략한 것이다. 디씨인사이드에 올라온 ‘광기의 페미니즘을 멈춰달라’는 홍준표 후보 지지자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유하는가 하면, 일부 남초 커뮤니티에서 ‘페미’라고 낙인찍은 유튜브 채널 닷페이스와 씨리얼 출연을 놓고 캠프 내부에서 잡음이 흘러나왔다. 이는 남성 시청자가 많은 유튜브 채널 김성회의 G식백과, 삼프로TV에 나갈 때는 없던 상황이었다. 박지현 당시 선거대책위원회 디지털성폭력근절특별위원장 영입도 소위 ‘이대남’ 눈치를 보다 예정보다 늦어졌다. 20대 남녀를 다 같이 지지자로 끌고 가지 못할 거라면, 20대 남성 쪽이 더 ‘표가 된다’고 판단하는 모습이었다. 성평등 문제를 ‘제로섬게임’처럼 인식한 탓이다.

이처럼 민주당이 주춤하는 사이 국민의힘의 공세는 거세졌다. 이준석 대표가 앞장섰다. “20대 여성은 어젠다 형성에 뒤처지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많이 한다”(오마이뉴스 인터뷰, 2022.1.20), “각종 조사에서 여성의 투표 의향이 남성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나온다”(CBS 라디오 「한판승부」 인터뷰, 2022.3.7)라며 여성 유권자를 공개적으로 평가절하했고 언론사의 성평등 공약 질의에 대해 답변을 거부했다는 사실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버젓이 홍보했다. 국민의힘 양성평등특별위원회에서는 여성가족부 폐지, 여성할당제 폐지 등을 중점 논의했다. 또한 페미니즘 진영을 ‘성파시즘 세력’이라고 규정하며 성평등 대신 ‘성 평화(平和)’라는 용어를 썼다.

1월 초 윤석열-이준석 갈등 봉합 후, 윤석열 후보도 적극 나섰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 일곱 글자 공약을 내놓았다. 20대 남성 지지율이 확 뛰어올랐고, 이후 윤석열 후보의 ‘젠더 갈라치기’ 행보에는 거침이 없었다.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라고 단언하는가 하면, 대통령 선거일 직전 3·8세계여성의날에는 ‘여성가족부 폐지’ ‘성범죄 무고죄 처벌 강화’ 등 성평등에 반(反)한다고 비판받는 공약을 다시금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같은 날 공개된 『워싱턴포스트』 인터뷰도 논란이 됐다. 해당 인터뷰에서 윤석열 후보의 “나는 페미니스트” 발언에 대해 국민의힘은 행정상 실수라고 변명했다. 그러자 『워싱턴포스트』는 윤후보의 서면 답변을 있는 그대로 공개해버렸고, 이를 ‘한국 대선후보, 세계여성의날에 페미니스트 표지(label) 거부’라고 보도했다.5 도를 넘는 상황을 기이하게 바라보는 외신 보도가 이어졌다.6 이같이 대선 캠페인 막판 보수정당의 젠더 갈라치기 행보는 절정에 치달았다.

이러한 흐름에 조직적으로 반기를 든 것은 주요 정치권도 언론도 아닌 20대 여성 유권자들 자신이었다. 여성 유권자 표는 없는 취급했던 소위 ‘전략’이라는 것에 대해, 그들이 가진 표로 심판했다. 대선 과정에서 체계적으로 사라질 뻔한 여성의 목소리를 살려냈다. 보수정당의 정치적 기획에는 제동이 걸렸으며, ‘세대포위론’의 맹점도 여실히 드러났다. 옳고 그름을 떠나 정치공학적으로도 목표했던 성과를 온전히 거두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대선 결과가 나오자, 세상은 마치 그동안에 없던 여성 표심이 새롭게 등장한 것처럼 웅성거렸다.

투표를 일주일을 앞두고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된 ‘깜깜이 기간’, 20대 여성의 엄청난 결집세는 주목할 만하다.7 도를 넘은 국민의힘의 여성 배제 캠페인은 역결집을 가져왔다. 선거 직전 부동층이거나 혹은 진보정당을 찍으려던 이들이 급선회했는데, 이는 선거 직후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에게 쇄도한 후원금 12억원이 방증하는 바다. ‘윤석열을 막기 위해 이재명을 찍은’ 혹은 ‘현실적으로 당선 확률이 더 높은 이재명에게 기대를 걸어보려는’ 전략투표에 대한 미안함의 발현이었다.

20대 여성의 투표가 심판 혹은 전략투표 경향을 띠었다는 것은 데이터로도 읽을 수 있다. 『시사IN』이 대선 직후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3월 11~14일 실시한 전국 2000명 대상 웹조사를 보면, 이재명 후보를 뽑은 20대 여성의 92.3%가 ‘윤석열 당선을 막기 위해서’라고 응답했다. ‘이준석 등의 반페미니즘 행보에 반대해서’라는 20대 여성의 응답(76.5%)도 전체 평균(59.8%)보다 월등히 높았다. ‘다음 정당이나 후보가 나를 정치·사회적으로 배제하려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20대 여성이 가장 강한 반응을 보였는데, 전체 평균으로는 각 정당과 후보가 30%대로 비슷했지만, 20대 여성 중에서는 63.4%가 ‘윤석열 후보가 나를 배제하려 한다’라고 응답한 것이다. 이는 이재명 후보에 대한 20대 남성의 응답(40.0%)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윤석열 후보의 당선이 존재의 위기로까지 이어진다는 의식이 20대 여성 내부에서 강하게 작동했다는 뜻이다.

변화한 이재명캠프의 기조도 20대 여성의 전략투표에 ‘명분’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캠프는 젠더 갈라치기에 반응하는 남성 표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부동층으로 남아 있는 여성 표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20대 여자』에서 국승민 교수는 20대 여성 부동층을 ‘중도’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문재인정부 및 여당(민주당)에 실망해 부동층으로 남았지만, 이들은 다른 세대의 민주당 지지자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진보적이다. 또한 페미니즘에 대한 열렬한 지지가 아니더라도 반페미니즘에 대한 거부감을 띤다. 이러한 진단에 기반해 민주당은 선거 막판에야 박지현 위원장을 전면에 내세웠다. TV토론회에서 이재명 후보는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윤석열 후보의 말을 반박하며 공세적으로 나왔다. 민주당 지방자치단체장의 권력형 성범죄에 대해서도 공개 사과했다.

그렇기에 20대 대선 결과를 역대급 신승으로 만든 주역으로 꼽히며 ‘새 판’을 만든 것은 20대 여성 유권자 자신들이었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던 윤석열 당선자와 국민의힘은 결국 공약을 실현하지 못한 채 새 정부를 출범했다. 168석(5월 13일 기준)의 거대 야당이 무서워서라기보단, 0.73%포인트 차이를 만들어 낸 유권자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다.

20대 여성들도 이 사실을 안다. 대선 직후 웹조사에서 20대 여성은 ‘내가 투표에 참여하면 정치가 달라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높았다(68.4%). 이는 전체 성별·연령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치다. 그다음이 윤석열 당선자의 주요 지지층으로 꼽히는 60대 남성(64.5%)이고,8 20대 남성(49.0%)의 응답은 전체 평균(53.1%)보다도 낮았다. 또한 2021년 8월만 하더라도 ‘현재 나의 생각과 이익을 대변해주는 정당이 있다’고 여기는 20대 여성이 17.4%에 불과했지만, 대선 직후에는 같은 질문에 대한 응답이 40%까지 올라갔다.

20대 여성들은 20대 대선의 결과를 바꾸지는 못했다. 그러나 자신들의 목소리가 뭉쳐질 수 있고 정치가 그것에 반응하는 상황을 목격했다.9 20대는 특정 정당과의 관계가 고착화되는 세대는 아니지만,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정당과 정치인이 자신들의 외침을 담아내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정치적 효능감을 느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의 진단은 대선 이후를 고민하는 정치권에 통찰을 제공한다. “민주당·정의당은 여성혐오 정치에 대한 대응을 페미니즘적인 가치 표방 하나로 밀고 나갔다. 페미니즘에 공감대를 갖는 젊은 여성들이라면, 많은 경우 동시에 복지나 노동·불평등 등에서도 진보적 태도를 취한다. 그런데 정치 행위자들은 이를 하나의 연계된 프레임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2030 여성 및 그들과 유사한 문화적 성향을 갖는 20대 남성을 연계시킬 수 있는 여러 의제 영역을 죽였다.”10 전략투표를 한 유권자를 선호투표로 바꾸는 것도, 떠나간 유권자를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것도 이제 정당의 몫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권인숙 의원실이 주최한 토론회의 유튜브 중계 화면에는 다양한 댓글이 올라왔다. 20대 여성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납작한 시선을 되돌아보게 하는 내용이 주였다. “다른 진보 스피커들이 여성 지지자들을 K팝과 유사한 ‘팬덤’이나 ‘개딸’로만 다루는 걸 봤다. 왜 저렇게만 분석할까, 의도적으로 여성 의제를 배제하나 싶었는데 오늘 토론회가 너무 감사하다” “민주당 지지하는 2030 여성들에 대한 분석을 ‘덕질’로만 언급하는 게 너무 답답했다. 덕질은 지지를 재미있게 오래 끌고 가기 위한 방식일 뿐이고, 알맹이는 다르다” “그동안 정치가 재미없다고 느꼈던 게 우리 얘기를 하지 않아서였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얘기를 듣고 말해주니 너무 재미있다” “여성차별·혐오에 있어 민주당 내부에서 더 많은 토론, 공부가 있었으면 좋겠다. 민주당이 철학 없이 현상만 쫓아다니느라 언론이 띄워준 ‘이대남 현상’에 끌려 다닌 측면이 분명 있었다. 옳은 가치에 대해 당장 불리하더라도 옳다고 말하고, 국민을 설득해내는 돌파력이 있길 응원한다” “민주당이라는 거대 정당에서 ‘플레이어가 된 우리’라니 벅차고 매우 뿌듯하다”.

이는 정치권에만 경종을 울리는 내용은 아니다. 해당 댓글을 읽으며 『20대 여자』 프롤로그에 썼던 문장을 수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20대 여자 현상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당시 나는 이렇게 남겼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 자체가 권력이었다. 설명해야 하는 삶과 설명해주는 삶이 가진 권력의 크기는 다르다.”(12면) 20대 남자 현상에만 이목이 집중되던 당시의 문제의식을 담은 대목이다. 여전히 이런 점은 유효하다고 느낀다. 다만 이번 선거에서 20대 여성 유권자들이 보여준 태도는 ‘설명해야 하는 삶’과 ‘설명해주는 삶’의 이분법을 뛰어넘은 것이란 데 생각이 가닿았다. 이들은 스스로를 설명하는 것을 저어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며 자기들의 존재가 지워지는 것을 막았다. 게다가 상대가 자신을 설명하도록 두지도 않았다. 그 결과, 사라질 뻔한 어떤 세계가 구해졌을지도 모른다는 안도감이 자못 들었다.

나는 이번 대선에서 20대 여성의 이재명 후보로의 몰아주기가 상당 부분 전략투표였을 것이고 ‘기꺼운’ 결정이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선거 결과를 받아든 후 입당으로까지 달려간 이들의 마음도 짐작할 수 있다.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선언이다. 고심 끝에 선택한 카드가 자신들이 원하는, 좀더 안전하고 성평등적이며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데 가닿기를 바라는 것이다. 바람에 머물지 않고 행동에 나선 것은 끌려 다니기보단 끌고 가겠다는 결심의 발로다.

그래서 ‘개딸’이라는 소셜미디어 속 정치인과 유권자 간 일종의 놀이문화를 팬덤으로만 협소하게 이해하는 것에 단호하게 선을 긋는 반응이 더욱 주목된다. 외피는 ‘개딸’이라 하더라도 그 본질은 정치적 행동이다. 이들의 효능감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것이 한국 정치를 몇걸음 더 나아가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를 떠나 각 정당들이 ‘20대 여자 현상’을 협소하게 바라보거나 무시하지 말고 고민을 이어나가야 하는 이유다.

무엇보다 이들은 ‘성평등은 우리 사회를 더 발전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가치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주시한다. 이것이 기후변화, 차별금지, 경제적 재분배, 노동존중 등과 이어진다고 믿고, 그 핵심에 정치가 있다고 여긴다. 유권자로서 투표하고 나아가 당원까지 되는 데 주저함이 없는 20대 여성은 이러한 흐름을 정치권이 견지하게 만들고, 역진할 경우 발언하고 싸우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그렇기에 이들은 집토끼라 불리는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호랑이라고 말한다.

 

 

  1. KBS·MBC·SBS 지상파 3사의 공동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 남성 중 58.7%가 윤석열 후보, 20대 여성 중 58%가 이재명 후보에 투표했다. 「20대 남녀의 다른 선택…‘성별 갈라치기’ 전략 성공 못했다」, 한겨레 2022.3.9.
  2.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는 6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대 여성에게서 윤석열 후보보다 높은 지지를 받았다. 비율로 보면 40대 여성(60.0%)-20대 여성(58.0%)-50대 여성(50.0%)-30대 여성(49.7%) 순이다.
  3. 『시사IN』 728호(2021.8.24) 및 729호(2021.8.31) 참조.
  4. 해당 웹조사(휴대전화 문자와 이메일을 통한 url 발송)는 『시사IN』의 의뢰로 한국리서치가 2021년 7월 30일부터 8월 2일까지 나흘간 진행했다. 인구비례에 맞춰 선별한 1만 183명에게 조사를 요청, 전국의 만18세 이상 남녀 2490명이 참여했으며, 238개 질문에 모두 응답한 사람은 2000명이었다(요청 대비 19.6%, 참여 대비 80.3%). 연령별로 보면 20대(18~29세) 600명, 30대 600명, 그외 연령대(40세 이상) 800명이다. 95% 신뢰수준, 표집오차 전체 ±2.2%포인트.
  5. “South Korean candidate disavows ‘feminist’ label on International Women’s Day after interview goes awry,” The Washington Post 2022.3.8.
  6. “Why misogyny is at the heart of South Korea’s presidential elections,” BBC 2022.3.8; “How feminism became a hot topic in South Korea’s presidential election,” CNN 2022.3.9. 등.
  7. 정한울 한국리서치 연구위원에 따르면 “2021년 10월 3주부터 진행된 대선 여론조사 결과를 살피면 20대 여성 표는 이재명·윤석열·심상정·안철수 후보에게 골고루 분산됐다. 이재명 후보가 상대적으로 높았지만, 2월 마지막 주까지 윤석열 후보와 오차범위 내에 있었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에 조사된 데이터에서 20대 여성의 지지율이 로켓처럼 올라가는 걸 확인했다.” 「20대 여성, 왜 이번 대선에서 결집했을까?」, 『시사IN』 758호(2022.3.31).
  8. 이어서 30대 남성(60.4%), 40대 남성(58.9%) 순이다.
  9. “결과적으로는 젠더 갈등을 더 도드라지게 했던 부분도 있었다. 젊은 여성들이 가졌을 만한 소외감이나 배타적인 감정에 대해서 앞으로 배려해야 한다”(윤희석 국민의힘 선대본부 대변인)거나 “20대, 30대 초반 여성들에게 좀더 소프트하게 접근하는 노력은 부족하지 않았나, 선거전략 과정에서도 한번 돌이켜봐야 될 것이 아닌가 인식하고 있다”(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는 말은 대선 결과를 받아든 국민의힘 내부에서 나온 반성의 목소리다. 「20대 남녀 극명히 갈린 선택에…국민의힘 “젠더 갈라치기 반성”」, 한겨레 2022.3.10.
  10. 「“페미니즘 정치와 계급 정치 연계시킬 토양 탄탄하게 존재한다”」, 『시사 IN』 2022.4.21.

김은지

저자의 다른 계간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