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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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 목소리

 

 

‘촛불’이 꺾이지 않기를

▶ 대선 이후 마음을 다잡기 힘들었다. ‘나라의 주인으로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지난호 ‘책머리에’의 질문 앞에서 대답을 바로 떠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글을 읽어나가며 촛불을 경험한 우리가 “이전과 다른 주체가 되었”(2면)고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돌아가지도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그러자 문득 ‘나라의 주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저 질문에 선뜻 답하기 어려웠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글이나 기사를 읽고 어떤 의제에 관심을 갖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 뜻이 맞는 단체에 후원을 하거나 직접 활동하는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의견을 낼 수 있다.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는 것만으로도 주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와 의견이 다른 유권자나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인을 조롱하고 깎아내리는 것은 쉽다. 그러나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관심이 제대로 된 방향을 향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절망이 들 때면 촛불을 떠올리기로 했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우리를 살게 하고, 행동하게 하니까. 모든 ‘촛불’들이 꺾이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군대 내 폭력이나 군인에 대한 형편없는 대우 등 군에 문제가 많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일반인이 논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주제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봄호 대화는 나의 그런 선입견을 깨주며 민주사회에 걸맞은 안보와 국방에 대한 명료하고 의미있는 사유를 제공해주었다. 막연히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해온 모병제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투명한 정보공개의 필요성 역시 절감할 수 있었다. 군이 앓고 있는 고질병은 한둘이 아니지만 무엇보다 군도 ‘사람’이 모인 집단이라는 것을 명심하는 데서 개선이 시작될 수 있다고 본다. 늦게나마 새로운 의제를 이해할 수 있는 눈을 틔워준 대화를 만나 다행이다.

열음 diveusintonight@gmail.com

 

슬픈 봄이 비로소 끝날 때까지

▶ 지난호는 정기구독을 시작하고 받은 첫번째 책이었다. 그간은 동료의 어깨너머로, 도서관 서가에 꽂혀 있는 책으로 『창작과비평』을 만나왔는데 ‘언젠가는 꼭 구독을 해야지’ 하며 미뤄두었던 게으름을 이번에 끝맺으며 매 계절 잡지를 받게 되었다. 오래전 처음 잡지를 손에 쥐었을 때는 수많은 문학가들의 포효에 가슴이 뛰었고, 다시 집어 들었을 때는 긴 호흡의 면밀한 비평과 필자들의 지성에 놀랐었다. 지난 봄호는 왠지 가슴 한편이 아린 채로 읽어나갔다. 봄이면 늘 그러하다. 그동안 우리가 겪어온 봄이 낭만과 새 출발로만 이루어지지는 않았던 탓이리라.

천안함사건을 마주한 국민들은 진실을 궁금해해왔다. 국방개혁을 주제로 한 대화에서 추지현은 “정보공개 문제 등에 대해 보완 및 논의의 근거들을 제도적으로 만들어야”한다며 “이에 대한 기초작업으로서 정보공개의 필요성”(289~90면)의 절실함을 거듭 강조한다. 창작란에서 김남극 시인은 “세월호는 인양하지 못했고 어린 노동자의 죽음도 막지 못했다”(79면)며 제목처럼 ‘마음이 아프니 몸도 아픈’ 우리 모두의 상황을 단숨에 환기하는 시를 보여주었다. 현장의 고성만은 「제주 4·3모델의 (불)가능성과 남은 과제들」을 통해 제주4·3특별법을 면밀히 분석하고 적실한 비판을 통해 과거사 문제 해결의 과제를 제시한다. 봄호 곳곳에서 발견한 이러한 대목들을 관통하는 단어가 있다면 ‘기록’과 ‘공유’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마주한 사건과 경험을 꼼꼼히 기록하여 남겨두면 그 기록은 힘을 갖게 된다. 기억에만 의존하는 역사는 쉽게 휘발되기 때문이다. 잡지에 글을 실은 필자들이 이러한 역할을 묵묵히 그리고 흐트러짐 없이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기록을 동시대의 이웃과 다음 세대에게 오롯이 내보일 수 있다면 비뚤어진 역사도 없을 것이요, 천안함이, 세월호가, 제주4·3이 그리고 우리의 봄이 새로운 디딤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박준희 truth-junhee@naver.com

 

살 만한 세상을 상상하기

▶ 봄호 특집은 살아가는 방식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한 최근의 현실을 살피고 새로운 주체를 발견하는 세편의 글이 묶였다. 백영경과 이현정의 글은 기후위기 앞에서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묻는다. 두 글 모두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경고와 기존 북반구 중심으로 진행되어온 문명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을 공유하고 있어 함께 읽기에 좋았다. 한영인의 글은 자못 색다른 주제인 ‘한류’와 문명적 주체를 다루어 흥미로웠다. 「오징어 게임」과 「지옥」 두 드라마가 전세계적인 관심을 얻게 된 배경을 국내외 사회적·문화적 맥락으로 날카롭게 분석하는 한편, 한류가 새로운 문명이 되기 위해 어떤 ‘협동적 창조’가 필요한지 두루 살폈다. ‘사는 것처럼 사는 삶’, 그런 세상의 모습을 생각해볼 수 있도록 이끄는 글이라 드라마의 의미가 훨씬 풍성해졌다고 느꼈다.

송지현 장류진 박상영의 최근 소설을 중심으로 ‘요즘’ 청년들의 일과 사랑에 대한 태도를 살핀 문학평론도 재미있게 읽었다. 전승민은 젊은 청년들의 삶의 태도가 방어적인 것은 이들이 불안정한 사회 속에서 안정감, 독립, 계층 상승 가능성 이 세가지를 동시에 취할 수 없는 ‘트릴레마’에 처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 읽으면서도 소설 속 개인의 모습을 살피는 것을 넘어 사회적인 문제제기도 적극적으로 해주었다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글의 끝에서 전승민은 청년들이 스스로의 삶을 직시하는 데 있어 딜레마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한번 더 짚어주면서 이를 부정적인 삶의 자세로 등치시키지는 않는데, 이러한 인식에는 크게 동의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삶의 자세가 만들어낸 고유의 궤적”(327면)이라는 구절의 의미를 천천히 곱씹으며 소개된 소설을 다시 읽고 싶다.

정원탁 demian1968@naver.com

 

처음 만나는 글, 깊어지는 감상

▶ 지난호 작가조명은 강렬한 사진부터 눈길을 사로잡았다. 문학작품은 읽으면서 늘 어려울 때가 많고, 시는 특히 그렇다. 시에 대한 이야기 역시 아무리 길게 풀어 써도 난해하게 다가올 때가 많다. 그런데 김승희 시인의 소개글을 보니 나의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에 고향도 같아, 반가운 마음에 작가조명을 읽어내려갔다. 처음 접하는 시인임에도 “엄마 비슷한/아내 비슷한/자식 비슷한/교수 비슷한/시인 비슷한 것”같이 살았다며 “내가 다하지 못한 ‘나보다 더 큰 역할’들”(367~68면, 인용시는 「떠도는 환유 5」)에 대한 회한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가는 내 모습이 비쳤다. “그녀의 시는 한 개인에게 가해지는 현실의 중력이 압축된 폭발 직전의 상태에서 쓰였고, 또한 늘 그 이상의 높이와 너머를 꿈꾸었다”(369면)는 김수이 평론가의 문장 역시 인상 깊었다. 말로는 어떻게 표현할지 몰라서, 그저 무시해도 되는 허상의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넘겨버린 수많은 나의 감정들이 생각났다. 이래서 시를 읽는구나, 시를 위로라고 하는구나. 찰나로 스치는 이런 감상이 반갑고 소중했다.

산문 「웃을 일은 없지만 빙그레」로 농촌사회학자 정은정의 글 역시 처음 읽어보았다. 전문적인 지식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부담 없이 술술 읽히는 한편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부모님 세대부터 시작해 일자리를 찾아 터전을 옮겨가며 살았던 필자의 궤적과 시대상이 축소판으로 보이는 듯했다. 나는 지방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여태껏 이곳을 벗어나지 않고 살고 있다. ‘빙그레’만큼 산업화의 생생한 증거지 같은 곳은 아니지만 여기 역시 대단지 아파트나 ‘도시형생활주택’이 빼곡히 들어서고 있다. 울퉁불퉁 정겹던 골목길은 밀려나고 직선의 골조들이 테트리스처럼 쌓여가는 것을 답답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시멘트가 흙을 이렇게 덮기까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다 기억하지 못하는 사건, 사고, 재해들이 얼마나 많았을지 떠올려보기도 했다. 모든 풍경이 당연해진 이 시대가 새삼 슬프다.

소은선 sunriseso@naver.com